요즘 너무 재미있게 보는 차무희와 주호진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보다 보면 차무희가 폰에 정신 팔려 사다리 밑으로 지나가지 말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미신 때문에 점 보고, 부적 속옷에 넣어 다니고, 굿하고 쓸데없이 돈 쓴다고 하겠지만, 드라마 속 캐나다를 비롯해 미국도 미신 엄청 믿는다.

미국 학교에서 수업 중에 한 학생이 그만 아츄 하고 재채기를 하면 여기저기 그리고 모두가 돌아가면서 진지하게, 궁서체로 블레슈, 블레슈 블레슈 블레슈 블레슈를 한다. 진지하게 블레스 유를 한다. 진지하다 그들은. 미국 학생들은 재채기를 하면 영혼이 빠져나온다고 믿는다. 그때 나쁜 영혼이 그 문을 통해 몸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옆에서 블레스 유를 외쳐줌으로 해서 그 문을 닫치게 만든다고 믿는다. 한국에서 모르는 미국인이 재채기를 아츄하면 옆에서 블레슈라고 해주면 좋아한다. 혹시 아나. 좋은 관계로 이어질지도.

연인 또는 나이가 있는 사랑을 하는 중년의 남녀가 키스를 할 때 미슬토우 밑에서 하려고 한다. 이 미슬토우는 겨우살이라는 기생생물로 사시사철 녹색을 띤다. 그래서 영원한 사랑을 말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미신을 믿는다. 미드를 잘 보면 미국 집 현관문 위에 미슬토우가 많을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의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깜깜한 방에서 거울을 보며 이 여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이 여자 귀신이 나타난다. 그건 바로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다. 저! 했는데 안 나타나던데요. 그건 너의 발음이 원어민이 아니라서 그래! 저 친구가 미국인인데요. 그건 한국에서 안 되는 거야. 이건 우리나라의 어떤 미신과 비슷할까. 그래 바로 그거다. 칼을 입에 물고 자정에 거울을 보며 어쩌구 저쩌구. 아!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가 그렇다.

우리들은 재수 없는 사람이 왔다 가면 소금을 뿌린다. 미국에서도 소금에 관한 미신이 있는데 소금을 만약 쏟게 되면, 잇츠 어 베드 럭(키) 투 스필 솔트라고 한다. 이건 서양인들은 오래전부터 음식이 상하지 않게 하고 청결을 유지하는데 소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금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게다가 소금은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쏟게 되면 그에 따른 재앙이 올 수도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숫자 4를 싫어한다. 미국은 6이라는 숫자를 싫어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13이라는 숫자를 꺼려한다. 13이라는 숫자는 하루를 나타내는 12시간에서 벗어났고 별자리에서 벗어난 숫자라 꺼려한다.

미국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철물점 기사를 부르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주말에 아버지들이 지붕에 직접 올라가 공구질을 한다. 그때 세워둔 사다리 사이로 아이가 지나가면 드라마 속 차무희처럼 못 지나가게 한다. 재수 옴 붙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닐 것 같지만 미국이 한국보다 미신에 더 민감할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의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이 색감, 이 그래픽, 캐나다 로케에 욕도 거침없고 거기에 자막까지. 인스타그램을 인별그램 따위가 아닌 인스타그램이라고 할 수 있고, 눈에 거슬리는 광고도 없다. 무엇보다 차무희와 주호진의 티격태격, 그럴 듯 안 그럴 듯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제 푸세식 언론들에 이어 푸세식 예능방송도 좀 물러나라. 언제까지 관찰예능을 할 거냐고. 집에 혼자 있는데 누가 그러냐고. 차무희와 주호진의 이야기는 5화까지 봤는데 남은 회차도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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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리애넌은 학창 시절에 따돌림으로 머리를 뜯는 버릇 때문에 결국 가발을 쓰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그만 가발이 아이들 앞에서 벗겨지는 수모를 겪는다. 리애넌은 자신을 잃어간다.

이렇게 자신을 밑바닥까지 떨어트리는 저 애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다. 시간이 흘러 리애넌은 존재감 없이 지역의 작은 신문사에서 사무보조로 커피나 타고 허드렛일이나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리애넌을 개무시한다. 심지어 마트 캐셔도 리애넌을 개무시, 편집장은 대 놓고 개무시, 친언니도 개무시, 모두가 개무시. 오직 입원한 아버지만 리애넌을 무시하지 않는데 아버지가 죽고 만다.

살고 있는 집을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친언니가 팔아 버리려는 것에서 각성을 하고 사이코패스 트리거가 당겨져 연쇄살인을 하는 이야기다.

살인을 하면서 리애넌은 자신을 찾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무엇보다 살인을 하면서 그 살인에 대한 사건을 자세하게 취재 기를 써 보조에서 수습기자가 된다.

점점 살인을 하게 되고 남자와 사랑도 하게 되면서 파괴의 길로 접어드는 리애넌. 상상하던 걸 실현함으로 자신을 찾아간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면서 모호한 지점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리애넌을 주시하고 점점 수사망을 좁혀오는 형사가 있다.

이 이야기는 블랙코미디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기에도 좀 모자란다. 스릴러라지만 그것 역시 애매하다.

사람들 때문에 리애넌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되는 계기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시즌 1에서만 보면 취재를 해서 기자가 되기 위해 살인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가장 살인 현장을 잘 아니까 생생한 취재 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한 형사에게 빌미를 준다.

엘라 퍼넬이 눈을 크게 뜨고 아악 하면 정말 미친년처럼 보인다. 눈이 정말 튀어나올 것 같거든. 폴아웃 시즌 2와 번갈아 가면서 봐서 그런지 엘라 퍼넬이 여기저기 한 번씩 옮겨 다니며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뭔가 다른데 비슷한.

폴아웃 시즌 1은 꽤 재미있게 봤는데 시즌 2는 보면서도 나는 뭘 보는 가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스위트피는 시즌 1이고 엘라 퍼넬은 인간적으로 눈이 너무 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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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20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아웃 시즌2는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3화까지 보고 그냥 접을까 생각중입니다.

교관 2026-01-21 11:57   좋아요 0 | URL
시간은 소중한 것! ㅋㅋ 저도 2화까지만 보고 지금은 접은 상태입니다
 

햄을 구우니 해무 다이스키를 외쳤던, 귀여움의 끝판왕 포뇨와 소스케가 떠오른다.

소스케가 좋아하는 햄을 소리를 지르며 같이 좋아하는 포뇨.

포뇨는 인어일까,

금붕어일까,

오염 변이체일까.

포뇨를 보면서 늘 생각했다.


소스케와 포뇨의 관계는

사랑일까,

우정일까.

관심일까.

포뇨 속에는 멋진 대사가 있다. 소스케와 포뇨를 남겨두고 양로원으로 가는 리사는 소스케에게 말한다.

“소스케, 우리 집은 폭풍 속의 등대야.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집 불빛으로 용기를 얻고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지켜야 해.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은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 그치만 알게 될 거야.”


소스케는 포뇨에게 아마 등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마지막에 소스케는 아무런 조건 없이 포뇨를 받아들인다.

물고기인 포뇨라도,

인어인 포뇨라도,

사람이 아닌 포뇨라도.

그 무엇이 됐건 간에 포뇨는 포뇨이기 때문에 소스케는 포뇨를 사랑할 것이라고 했다.


이 두 귀여운 존재들에게 사랑이라는 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햄 먹으며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니 햄이 그렇게 몸에 나쁜 음식은 아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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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광고 이야기 코카콜라 이야기 하나 더 하자.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코카콜라 글씨체가 68년에 등록이 되었다.

당시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가 이 글씨체를 탄생시켰는데,

이후 코카콜라 코리아는 코카콜라의 한국어 이 글씨체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 1세대 디자이너가 봉상균 화가였다.

2017년에 작고하신 봉상균 화가는 봉준호 감독의 아버지다.

봉상균 화가의 작품을 검색해서 보면 아주 좋다.

재미있는 건 봉 감독의 외할아버지도 시대의 이름을 남긴 소설가였다.

그는 김해경(이상), 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했고,

그의 유명한 소설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예전에 봉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은 외롭고 힘든 일이라고 했다.

영화라는 예술은 영화 속에 나오는 이전의 예술,

그러니까 건축, 의상, 사진, 미술이라는 선배예술에게 신세를 엄청 지는 예술이 영화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인 것 같다.

봉 감독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작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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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18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봉감독의 천부적 재능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군요. ㅎㅎ

교관 2026-01-19 11:46   좋아요 0 | URL
환경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그 환경의 영향을 받는 건 맞는 말인 거 같아요
 

고로케라고 치면 크로켓이라고 바꾸라고 인공지능이 보챈다.

이게 잘 안된다.

스랩빠도 슬리퍼라고 하라지만 스랩빠는 삼디다스, 슬리퍼는 실내서 싣는 그 느낌이 강하다.

스랩빠는 스랩빠, 슬리퍼는 그냥 슬리퍼처럼,

고로케라고 부르고 싶다.

크로켓은 이미지가 언뜻 떠오르지 않지만,

고로케는 추억의 맛과 모양이 그대로 떠오른다.

고로케는 종류도 많다.

언젠가부터 전문점이 생겼지만 어릴 때는 시장의 빵집에 가면 고로케가 있었다.

종류는 별로 없지만 맛있게 먹은 기억을 우리는 전부 하나씩 가지고 있다.

예전 백종원의 삼대 천왕에서 하니가 고로케를 먹고 그만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그다음 날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한 입 먹는 순간 시장에서 고로케를 만들어 팔던 어머니의 맛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추억이란 때로는 상황에 맞지 않게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고로케 하면 또 허니와 클로버의 첫 장면이 늘 생각난다.

떨이로 왕창 가져온 고로케, 기름에 절어 있지만 가난한 자취생들이 우르르 모여서 먹는 고로케가 늘 떠오른다.

허니와 클로버는 나의 최애 애니였다.

요즘 고로케는 맛이 너무 좋다.

너무 맛이 난다는 것이 문제다.

하나 정도 먹으면 되는데, 너무 맛이 나기 때문에 세 개가 있으면 세 개 다 먹게 되고,

네 개가 있다면 그것마저 다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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