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중요하다. 요즘 유튜브 [오재나]를 보면 김재환 PD가 대패삼겹살을 백종원이 개발했다는 주장에 대해 하나씩 근거를 찾아 반박하는 영상이 올라온다. 그냥 말싸움이 아니다. 기록을 찾아간다. 오래된 기사와 자료를 뒤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당시의 흔적을 확인한다. 결국 그 모든 걸 뒷받침하는 건 기록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더본코리아가 점주들과 함께 김재환 PD를 상대로 스무 건이 넘는 고소를 했고, 김재환 PD는 그때부터 자신이 문제를 제기한 주장들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말로 맞서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맞서는 셈이다. 김재환 PD는 원래 이런 일을 해온 사람이다. 여러 TV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나는 그의 영화를 거의 다 봤다. 재미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던 것을 붙잡고 끝까지 파고든다.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트루맛쇼]다. TV 음식 프로그램들이 맛집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방송가의 음식점 소개가 얼마나 엉망으로 돌아가는지를 까발린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웃긴 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떡볶이 맛집을 소개하면서 온갖 약재가 열 가지 넘게 들어간다는 식의 황당한 프로그램이 여전히 방송되고 있다. [쿼바디스]에서는 한국 교회를 들여다봤다. 미국에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초대형 교회들이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인지 파고든 영화다. 내가 더 재미있게 본 건 [미스 프레지던트]다. 개봉 당시 박사모 사람들이 극장으로 엄청나게 몰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제목의 ‘미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세스, 미스가 아니다. 영화를 보면 안다. 제목부터 묘하게 사람을 낚는다. 김재환 PD는 [미각 스캔들]도 연출했다. 음식과 식당, 식재료의 진실을 파헤치는 프로그램이었다. 반응이 좋았다. 시청률도 잘 나왔고 방송국에서는 회차를 늘려 더 방송하자고 했다. 그런데 김재환 PD는 처음부터 정해놓은 분량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하겠다고 했다. 방송국의 유혹을 뿌리치고 계획한 회차만 하고 끝냈다. 이런 사람이 지금 기록을 들고 다시 현장으로 나간 것이다. 요즘 그는 유튜브 [오재나]를 통해 기록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닌다. 거대한 자본을 가진 더본코리아와 백종원을 상대로 말이다. 누가 뭐라고 했느냐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느냐를 찾아간다. 그래서 영상이 재미있다. 기록 하나가 기존의 이야기를 뒤집어버리는 순간이 있으니까. 기록은 남의 이야기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개인에게도 그렇다. 기록해 놓지 않으면 그때는 분명 중요했던 일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진다. 사진 한 장, 메모 한 줄, 오래된 영수증 하나가 나중에는 그 시절을 다시 불러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니 기록하자. 아주 좋은 순간뿐만 아니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도. 어쩌면 그런 기록이 나중에는 가장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호러블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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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재미가 그리 썩 좋지 않은데 시즌 3까지 나왔다. 한 시즌에 10회씩. 마니아들도 있겠지만,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삼키는 이야기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재미가 없다. 보다 보면 여기저기서 익숙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외계종족과 텔레파시를 하거나 기술을 이용해 교신하는 설정은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가 생각나고, 지구 전체를 뒤덮은 위기 상황은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 같은 분위기가 있다. 뒤로 갈수록 [기묘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 밖에도 외계생명체가 등장하는 여러 영화들이 조금씩 스쳐 지나간다. 내가 시즌 2까지 봤는데 재미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들이 전부 심각하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진지한 건 괜찮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심각하다. 진지함과 심각함은 정말 한 끗 차이인데, 이 시리즈는 철학적인 문제와 인간의 생각을 너무 많이 말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자꾸 무거워진다. 보다 보면 나까지 같이 근심걱정을 떠안은 기분이다. 미국 시리즈인데 의외로 열쇠를 쥔 인물은 일본 우주국의 시오리다. [데드풀]에서 유키오로 나왔던 일본 배우가 맡았다. 이 시리즈에는 외계종족과 직접 교신하거나 기술을 이용해 교신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시오리가 그중 한 명이고, 사실상 주인공에 가까운 역할이다. 그런데 시오리가 제일 심각하다. 온 지구인의 근심걱정을 혼자 짊어진 것처럼 계속 심각한 표정을 짓고, 심각한 생각에 심각한 말만 한다. 가장 심각한 건 정작 외계종족이다. 지구를 침공해서 인간사회를 지옥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시즌 1에서 보니 불태우면 죽는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도 촉수 같은 걸로 찔러 죽이는 정도다. 그 밖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염병 만들어서 던지면 불타 죽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군대가 멸망하고 지구 방위군이 몰살당한다. 더 웃긴 건 그렇게 무서운 외계종족이 나오는 장면 자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늘 그렇듯 인간과 인간이 싸운다. 인간집단과 인간단체가 서로 총구를 겨누고 죽인다. 이것도 심각하다. 차라리 외계종족이 인간의 뇌를 조종해서 서로 죽이게 만든다면 이해라도 하겠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들이 서로 싸운다. 지구가 왜 망하는지도 정확히 이해가 안 된다. 그냥 망한다. 그 와중에 외계종족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것마저 너무 심각하게 그려낸다. 등장하는 지구의 기술력은 최첨단인데 결국 외계종족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텔레파시 같은 것이 나온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결국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게 제일 낫다는 식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보고 있으면 좀 거참스럽다. 시즌 1에서 꼬마였던 아이들이 시즌 2에서는 엄청 커버린 것도 묘하다. 몇 년을 이런 상황에서 버텼다는 이야기인데, 성인들은 거의 그대로다. 아이들은 훌쩍 자랐는데 어른들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늘어뜨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시즌 3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여기까지 봤으니 결국 봐야겠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라도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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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 시즌 4는 내가 읽었던 리처 소설 「사라진 내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스핀오프인 니글리 시리즈가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리처 시즌 4가 먼저 나왔다. 지금은 3화까지 공개됐고 매주 한 편씩 나오는 모양이다. 예고편을 보자마자 소설 내용이 확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야호!”가 나왔다. 이 이야기를 드디어 영상으로 보는구나 싶었다. 이번 시즌은 이전보다 판이 훨씬 커졌다. 시즌 3까지 리처가 상대했던 빌런들은 어느 정도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CIA부터 연방 요원들, 정치인까지 줄줄이 상대해야 한다. 리처 하나를 잡겠다고 달려드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 이번에는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리처야 다들 알다시피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머리까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리처」는 결국 액션 드라마라 액션이 중심인데, 시즌 4 초반에는 이상하게 리처가 많이 얻어맞는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도 꽤 나온다. 그게 오히려 이번 시즌의 리처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에는 주먹보다 머리를 더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다. 눈앞의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보다 누가 적인지, 누가 자신을 쫓고 있는지,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계산해야 한다. 리처의 전략가적인 면모가 훨씬 두드러질 것 같다. 시즌 3에서 리처는 정부 편에 서서 악당의 본거지에 언더커버 요원으로 잠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다. 정부의 여러 기관과 정치인들에게 쫓기는 입장이 됐다. 상대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이번 시즌은 단순한 액션물보다는 정치 스릴러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물론 리처가 나오는 이상 주먹질과 총격전이 빠질 리는 없겠지만, 그보다 이번에는 리처가 어떻게 이 거대한 판을 뒤집을지가 더 궁금하다. 8부작이라고 하니 매주 한 편씩 기다리면서 보는 재미도 꽤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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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는 꼭 시 같다. 중간에 초코파이를 배신한 적도 있다. 오예스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고, 몽쉘통통이 더 맛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 있는 건 초코파이다. 어릴 때도 맛있게 먹었고, 지금도 여전히 맛있다. 참 이상하다. 이렇게 오래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는다. 그런 음식이 몇이나 있을까. 아마 누구에게나 초코파이에 관한 일화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오리온에서 초코파이 일화 공모전을 연다면 굉장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특히 남자들, 그중에서도 군필자라면 더 그렇다. 훈련소에서 종교행사를 갔다. 기독교를 선택하면 초코파이를 줬다. 그 초코파이 하나를 먹겠다고 일요일 오전에 에이급 전투복을 차려입고 먼 길을 행군해서 교회에 갔다.

잠을 참아가며 설교를 듣고 나면 드디어 초코파이를 받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좋았다. 전투복 주머니에 초코파이 하나를 넣고 돌아오는 길은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자주 두 개를 먹었다. 조교 한 명이 나와 같이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헤어질 때 자기 초코파이를 내게 줬다. 왜 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오는 동안 대화를 꽤 많이 했던 기억은 난다.

그래서 퇴소할 때 그 조교를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그 조교도 조교 중에서 막내라 얼굴에 고생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막내 조교는 매일 늦은 시간까지 선임 조교에게 혼나면서 훈련받았다. 부모님이 싸 오신 닭고기는 아마 그 조교가 거의 다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대배치를 받고 신병이 되자 초코파이가 갑자기 다른 얼굴로 변했다. 밥을 먹고 들어왔는데 고참이 나를 불렀다. “먹어.” 초코파이였다. 한 개. 두 개. 세 개. 우욱. 다 먹지 않고 틈이 보이면 군화로 머리를 한 대씩 처맞았다. 머리통은 맞아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신병 생활이 끝나고 막내로 지내던 어느 날, 새벽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관물함을 열었는데 초코파이가 들어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괴롭히던 고참이 새벽에도 잠을 안 자고 있다가 나를 불러내 초코파이를 먹였다. 우욱. 첫 외박을 나가기 전날에는 더 심했다. 밥을 먹고 들어온 나에게 초코파이 한 박스를 먹게 했다. 우욱. 웩. 결국 다 토했다. 그리고 신나게 맞고 첫 외박을 나갔다.


그 뒤로 초코파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예스도 있고 몽쉘통통도 있었다. 그런데 참 기묘하다. 시간이 지나자 그때의 괴로운 기억이 조금씩 밀려났다. 초코파이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무심코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 맛이 그대로였다. 

군대에서는 생일이 되면 케이크 대신 초코파이를 쌓았다. 그 위에 요플레를 잔뜩 뿌리고 초를 꽂았다. 이상하게 그게 케이크보다 좋았다. 요플레가 묻은 초코파이는 정말 맛있었다. 나는 원래 간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도 가끔 초코파이를 먹는다. 한 입 먹으면 어린 시절도 떠오르고, 훈련소도 떠오르고, 그 조교도 생각나고, 초코파이를 억지로 먹던 그 고참도 생각난다. 맞았던 기억까지 따라온다. 그런데도 먹는다.

초코파이는 꼭 시 같다. 한때 배신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문득 돌아보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곁을 지키고 있는 것. 초코파이는 그런 시다.

초코파이에 관한 시를 지어 보자.

어릴 때 평상에 앉아 할머니와 함께 먹던 초코파이,

이제 할머니는 없고 초코파이만 옆에 남아 있네.

초코파이를 먹으면 아픈 배를 약손이라며

슬슬 문질러 주었던 할머니의 손이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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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8-20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부대는 쨈 듬뿍 바른 햄패티를 그렇게 먹이더군요. ㅎㅎ

교관 2026-08-21 13:05   좋아요 0 | URL
아무튼 군대는 참 특이한 곳입니다 ㅋㅋㅋ
 

2024년에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별로였다. 이게 무슨 재미야?’ 싶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히려 처음 봤을 때보다 재미있게 봤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설정도 꽤 재미있고, 곳곳에 코믹한 장면을 심어놓았다. 무엇보다 애비게일이 연기를 잘했다. 자기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뱀파이어의 표정. 그게 꽤 능글맞다. 특히 혼자서는 안 되니까 손을 내밀며 같이 힘을 합쳐서 처죽이자고, 파이팅까지 하는 장면은 웃겼다.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뱀파이어인데 하는 짓은 묘하게 귀엽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코믹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 누가 특별히 웃기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서 웃음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뉴튼이 재미있었다. 까불까불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잘 헤쳐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애비게일에게 속내를 모조리 간파당한다. 그리고 뱀파이어에게 물려버린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된 모습이 참 웃긴다. 무섭다기보다 ‘큭큭’ 웃게 만든다. 캐서린 뉴튼이 원래 가지고 있던 그 까불거리는 느낌이 뱀파이어가 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더 그렇다. 그리고 딘 역의 앵거스 클라우드. 영화에서 약과 술에 찌들어 있다가 제일 먼저 목이 잘려 죽는 인물이다. 그런데 앵거스 클라우드는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해인 2023년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포리아] 에서도 마약상을 연기했던 배우다. 그 사실을 알고 보니 영화 속 모습이 묘하게 다르게 보였다. 배우의 실제 삶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가끔 이런 기분을 준다. 영화 자체는 1936년에 나온 [뱀파이어의 딸]을 바탕으로 했다. 뱀파이어인 애비게일이 먹잇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꼬드기고, 가지고 놀다가 하나씩 죽여버리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반전도 하나 던진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그런 공포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설정이 꽤 재미있었다. 요즘 공포영화가 워낙 가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별 감흥이 없었던 영화가 오히려 지금 다시 보니 꽤 재미있는 공포영화가 되어 있었다. 공포영화라고 해서 사람을 계속 놀라게 하고 피가 철철 흐른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고어가 심한 영화들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 무섭다기보다 피곤해진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면 징그럽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 [애비게일]은 적당하다. 잔인한 장면이 없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역겹지는 않다. 피가 나오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다. 중간중간 웃기는 장면이 끼어들고 배우들이 그걸 잘 받아낸다. 그래서였을까. 2024년의 나는 ‘이게 무슨 재미야?’ 하면서 봤는데, 2026년에 다시 본 나는 꽤 재미있게 봤다. 영화도 가끔은 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영화인데 내가 달라진 건지, 영화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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