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뒤, 그 사람을 잊지 못해 음악에 매달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 원스는 그렇게 시작한다. 원래 주인공은 킬리언 머피였다. 그의 출연이 결정되면서 제작비도 넉넉하게 확보됐다. 그런데 각본을 읽고 난 뒤 킬리언 머피는 출연을 포기한다. 그(영화는 이름이 나오지 않고 그와 그녀로 나온다) 노래가 너무 어려웠고,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주연이 빠지자 제작비는 순식간에 2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막막했던 감독 존 카니는 평소 알고 지내던 밴드 더 스웰 시즌의 글렌 핸사드에게 말했다. “노래가 중요한 영화인데, 네가 직접 나와 불러 달라.” 그렇게 글렌 핸사드가 주인공이 됐다. 돈이 없으니 영화도 돈 없이 만들었다. 대부분의 장면은 한 번에 끝냈고, 화면은 몰카나 홈비디오처럼 거칠다. 존 카니는 애초부터 이 작품이 극장에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남녀가 나오는 이런 영화를 누가 보겠냐는 생각이었다. 스웰시즌이 공연할 때 공연을 보러 온 팬들에게 DVD를 판매할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런던으로 떠나는 옛 연인의 사진이 나온다. 그 사진 속 여성은 감독인 존 카니의 실제 여자친구였다. 그녀가 런던으로 떠났고, 장거리 연애를 하며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각본이 됐다. 집에서 파티를 하는 장면도 글렌 핸사드의 실제 집이다. 초반에 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는 그의 어머니. 거의 되는 대로 만든 영화 같았다.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진다. 시카고 비평가 협회 관계자들 가운데 글렌 핸사드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원래 세 번만 상영될 예정이던 영화는 여덟 번으로 늘어났고,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와 ‘그녀’가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흐른다. 음악이 그 빈틈을 메우고, 관객은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한국에서도 당시 38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아무도 모르던 배우들이었는데도 말이다.우리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장면. 악기점에서 둘이 피아노를 맞춰가며 Falling Slowly를 부르는 그 장면도 제작비가 없어 원테이크로 찍었다. 구도도 흔들리고 카메라도 투박하다. 마치 열여섯 살 소년이 아버지의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며 찍은 것처럼. 하지만 그 거친 방식이 오히려 이 영화에는 가장 잘 어울렸다. 킬리언 머피조차 부담을 느꼈던 그 장면은, 어쩌면 배우보다 음악가였던 글렌 핸사드였기에 가능했던 순간인지도 모른다. 다시 보면 그때 보이지 않았던 장면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RI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로운 좀비가 나올 때도 됐다. 좀비는 오랫동안 세계 영화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 가운데 하나였다. 웬만한 설정은 이미 다 써먹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전환점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였다. 무리를 지어 파도처럼 몰려드는 좀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공포를 보여줬다. 이후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동충하초라는 설정을 더해 좀비 장르를 한 번 더 확장했다. 이제는 새로운 변이가 없으면 좀비 영화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의 군체는 분명 흥미로운 시도다. 감염체들은 군집을 이루고 신경망처럼 정보를 공유한다. 처음에는 네 발로 움직이다가 두 발로 서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을 식별하며 진화한다. 단순히 달려드는 괴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처럼 행동한다는 점이 가장 신선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설정은 군체의 정보 공유 시스템이다. 감염체들은 집단의 정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상반된 명령이 동시에 전달되면 서로 같은 자리만 맴돌며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다. 이런 설정은 몇 장면으로 끝내기엔 아까웠다. 영화보다 시리즈였다면 훨씬 밀도 있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출발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기대만큼의 완성도는 아니다. 연상호 감독에게 늘 따라붙는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마무리가 아쉽다’는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빌딩 안에 고립된 사람들이 진화하는 감염체에게 쫓긴다는 상황 자체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연상호 특유의 인간 군상도 여전히 살아 있다.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이기심, 감정에 휘둘리는 선택, 통제 불가능한 기술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공권력까지 그의 관심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연상호는 장점과 약점이 분명한 감독이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제작 속도를 보여주면서도 매번 새로운 설정을 들고 온다. 많은 배우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능력도 강점이다. 반면 이야기의 밀도와 마무리는 늘 조금 아쉽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좀비를 보여주겠다는 목표만큼은 분명히 성공했다. 그래서 관객 594만이 선택을 했을 정도로 군체는 성공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더 리프트]는 1983년에 나온 네덜란드 공포영화다. 공포영화지만 블랙코미디 분위기가 은근히 섞여 있고, 보다 보면 스티븐 킹 작품이 떠오르는 구석도 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이하 엘베]가 사람들을 죽인다는 설정이다. 암스테르담의 한 고층 건물에서 엘베가 멈추고 그 안의 에어컨이 고장 나면서 갇힌 사람들이 더위에 허덕이며 여자들이 옷을 마구 벗어던지고, 그러다가 목숨까지 잃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이한 사고가 계속 이어지자 정비공 펠릭스는 엘베 안에 뭔가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정밀 점검을 하려 하지만 상사는 계속 막아선다. 게다가 예전에 같은 엘베를 점검했던 동료가 정신이 이상해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펠릭스는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화 속 엘베는 생각보다 잔인하다. 사람을 죽이는 장면도 1983년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꽤 인상적이다. 특히 목이 잘려 나가는 장면은 최근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에서 청소차에 얼굴이 반으로 갈리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긴장됐던 장면은 인형을 들고 엘베 앞에 서 있는 어린아이였다. 별것 아닌 구도인데도 괜히 불안하다. 저 아이가 타면 어떡하지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물론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고, 전개가 툭툭 끊기는 느낌도 있다. 그래도 이런 허술함까지 포함해서 80년대 유럽 공포영화 특유의 맛이 있다. 유튜브에 풀버전이 올라와 있다. 오래된 네덜란드 공포영화나 B급 감성, 80년대 호러를 좋아한다면 한 번 볼 만한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등장하는 장면은 분량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몇 장면 나오지 않는데도 존재감이 엄청나다.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거의 전율에 가깝다. 그 앞에서 얼어붙은 장이수의 표정도 그 긴장감을 제대로 살린다. 홍범도 장군의 얼굴은 용맹한 호랑이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액션은 규모가 크고 묵직하다. 총성과 폭발, 산악 지형을 활용한 전투가 시원하게 밀어붙인다. 스케일만 키운 것이 아니라 전투의 압박감도 잘 살아 있다. 원신연 감독은 많은 영화를 연출했다. 재미있게 봤던 구타유발자들, 망했던 세븐데이즈, 김영하 원작의 살인자의 기억법 등. 묘한 건 2011년에 태권브이를 연출했는데, 그때 영화가 개봉을 했었나? 싶기도 하다. 배우들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특히 일본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한일 관계를 다룬 영화에서 침략자 역할을 맡는다는 건 자국에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예전 박치기의 사와지리 에리카,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나카무라 토오루처럼 많은 일본 배우들이 이런 역할을 맡아 왔다. 자국에서 비난을 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작품에 참여해 처절한 연기를 보여주는 걸 보면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케우치 히로유키는 얼굴만 보면 일본군 장교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연기다. 역할을 맡으면 정말 몸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2000년 태생으로 한창 주가를 달리는 다이고 코타로 배우도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봉오동 전투는 가끔 케이블에서 하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봉오동 전투가 하면 멈춰서 보게 되는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키타가와 케이코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지금 보면 유치하고 전개도 훤히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끝까지 보게 된다. 거의 20년 전 영화라 촌스러운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촌스러움 자체가 오히려 재미가 된다. 주인공 리나는 정말 답이 없는 여고생이다. 친구의 남자친구와도 거리낌 없이 잠자리를 하고, 친구는 필요할 때 이용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에게는 이름 대신 "너" 또는 “야”라고 부르고, 엄마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클럽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여자다. 가만히 있어도 술이 들어오고 남자들이 몰린다. 예쁜 얼굴과 뛰어난 외모 덕분에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을 산다. 그러다 갑자기 몸이 이상해진다. 계속 어지럽고 토하다가 피까지 보게 되고, 병원에서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병에 걸렸다고 사람이 하루아침에 착해지는 것도 아니다. 리나는 입원해서도 간호사에게 왜 불쌍한 사람 보듯 이야기하냐며 화를 내고, 누구에게나 날을 세운다. 하지만 암이 가슴까지 전이되면서 결국 한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다. 그 순간부터 세상이 달라진다. 그렇게 리나를 떠받들던 사람들은 하나둘 등을 돌린다. 특히 자신에게 진심이라며 고백했던 킹카에게 자신을 보여준다. “다리가 없어도 내가 네 다리가 되어줄게.” 그렇게 말하던 녀석이 정작 한쪽 가슴을 잃은 리나를 보자 미안하다며 떠나버린다. 외톨이라고 느낀 리나. 모두가 떠난 뒤에도 끝까지 곁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으니 친구 마키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키 역시 근육병을 앓고 있어 몸이 조금씩 굳어간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안은 채 서로에게 버팀목이 된다. 이야기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전도 거의 없고 눈물 포인트도 익숙하다. 그래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기타가와 케이코가 연기한 리나의 변화 때문이다. 자기밖에 모르던 아이가 조금씩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생각보다 담백하게 다가온다. 뻔한 영화인데도 끝까지 보게 되는 건 아마 그 변화 하나 때문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