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3 겨울 고등학교도 시험을 봐서 들어가야 했던 우리에게 해방의 날이 찾아왔다. 드디어 시험이 끝난 것이다. 학교에서는 진도가 끝난 수업시간을 매우기 위해 비디오를 틀어주는 날이 많았다.

영화에 별 관심이 없던 나도 서서히 당시 유행하던 홍콩 영화들을 하나둘씩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 마음속에 들어온 한 배우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꽃미남의 원조 장국영이었다.

초콜릿처럼 달콤한 그의 음성은 열여섯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의 영화들 중에서도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함께 본 이 한 편의 영화는 나로 하여금 한 남자 때문에 최초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고 내 일생에 한 획을 그은 영화로 남게 되었다.

그 영화는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 영웅본색 2편이다. 그런데 정작 지금까지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기억하는 건 딱 두 가지뿐이다. 너무 재미있었다는 것, 그리고 장국영이 죽어가는 장면이 최고로 슬펐다는 것.

피를 흘리며 전화부스에서 아내와 통화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다 못해 통곡을 했었다. 저렇게 잘 생긴 남자가 죽어야 하다니. 그리고 때마침 흘러나오던 애절한 그 노래. 지금도 나의 방 한편에는 영웅본색 2편의 비디오테잎이 있다.

하지만 다시 보진 않고 있다. 한 장의 사진처럼 내 마음속에 남겨져 있는 그때 그 장면과 영화 속 인물에 푹 빠져서 진정 마음으로 슬피 울었던 그때의 철없음을 고이 간직하고 싶어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보다 영화도 많이 보고 나름대로 영화에 대한 견해를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영화 때문에 행복했던 건 그 시절이었다. 마음 하나 만으로 영화를 받아들였던 그 시절.

정든 님 방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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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오구리 슌의 원맨쇼다. 오규리 슌의 분노, 슬픔, 두려움, 간절함, 광기까지. 오구리 슌 혼자 모든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 오버의 선을 넘어 버렸다. 그 와는 다르게 영화는 몰입도가 높다.

개에게 물려 얼굴과 몸이 전부 찢긴 세치가 발견되고 비슷한 엽기적인 연쇄살인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장에는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받았다는 범인의 메시지가 있었다.

요컨대 개에게 물어 뜯긴 시체의 뱃속에는 [개먹이 형벌], 또 한 시체의 몸에는 [산모의 고통을 느끼는 형벌] 등. 출생당시 무게만큼 얼굴살이 잘린 채 시체로 발견된다.

형사 사와무라(오구리 슌)는 이 살인게임을 즐기는 범인을 잡으려고 가정도 소홀하면서 덤벼 들다가 소홀한 아내와 어린 아들이 범인에게 납치되자 거의 반 미쳐버려 수사에 집착한다.

윗선에서 감정이 격해서 수사에 투입할 수 없으니 빠지라고 하자 사와무라는 더 미쳐서 불법으로 수사를 하면서 오버하게 된다. 그리고 범인과 마주한다는 내용. 이 영화는 제목처럼 처참하게 죽인 사람을 전시하는 형태로 연쇄살인을 한다.

그 장면이 아주 잔인하다. 등장인물에 츠마부키 사토시가 나오는데 영화를 끝까지 봐도 츠마부키 사토시가 나오지 않아서 뭐지? 했는데 개구리 가면을 벗은 범인이었다. 범인은 햇빛을 보면 화상을 입는 병이 있어서 얼굴이 알아볼 수 없다.

미스터리 수사물로 잔인한 장면이 많고 범인이 누굴까 하며 따라가다 보면 흠뻑 빠질 수 있다. 죽어 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예전 한 사건의 배심원들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사와무라의 아내도 있었던 것. 납치가 되고 난 뒤 사와무라의 원맨쇼가 펼쳐지는데.

이 영화는 형벌을 받은 처참한 시체의 모습을 보는 재미, 수사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범인이 왜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는지도 알 수 있다. 거의 십 년 전 영화로 지금 보면 좀 뭐랄까 재미있는데 유치하기도 하다. 이런 설정을 너무 많이 봐서.

잔인한데 그렇게 잔인하지 않은 것도 같고. 무엇보다 오구리 슌의 원맨쇼로 인해 배테랑 형사인데 뭐야? 할 만큼 답답하고 갑갑한 장면이 많다. 그럼에도 몰입해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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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에 나온 누미 라파스의 [트립]의 리메이크 영화로 원작보다 좀 더 잔인한 코미디로 변모했다.

내용은 비슷하니까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오래전 장미의 전쟁 이후 지금은 헤어진 부부 브레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같은, 부부가 서로 죽여서 보험금을 타려고 했지만 더 한 악당을 만나면서 두 사람이 합치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 영화는 원작도 있고 이미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많아서 메시지보다는 메신저에 눈이 더 간다. 그건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마라 위빙 때문이다.

늘씬늘씬 금발의 섹시한 미녀인 사마라 위빙은 정말 지치지 않고 B급 정서 가득한 영화에 등장한다. 언제나 망가져서 터지고 몸이 박살 나는 액션이 가미된 연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대사 치는 게 약간 모자란 듯 보이면서도 또 표독스러운 모습으로 바뀐다. 아무튼 주인공으로 나오면 그 영화를 보게 만드는 배우가 되었다.

거기에 할리우드에서 베테랑 코미디 배우인 제이슨 시걸이 사마라 위빙의 영화감독 남편으로 나와서 서로 죽이려 드는데 코믹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빌런은 교도소에서 탈출한 탈주자 3인방으로 티모시 올리펀트, 줄리엣 루이스, 키스 자딘이 나온다. 이 3인방은 냉혹하지만 참 바보 같아서 우리나라 영화 핸섬가이즈를 보는 것 같다. 연기 잘한다 정말.

영화는 분명 코미디인데, 부부 보험사기극에서 탈주자들과 옥신각신하는 활극으로 변모하는데 그 과정에서 잔인한 고어장면이 많다. 핸섬가이즈와 비슷하다.

감독은 티브이 시리즈로 코미디 장르를 꾸준하게 다룬 인물이다. 영화는 십 년 만에 연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꽤 재미있다.

원작이 부부의 불협화음이 펼치는 이야기를 보는 재미라면 이 리메이크는 배우들의 진지한데 코믹한 연기를 보는 맛이 있다.

몹시 잔인하고 어두운 유쾌한 코미디다. 부부가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면 더 이상 행복을 입에 담을 수 없게 되고 점점 궁핍해지면 주위의 시선, 그리고 인간관계의 틀어짐 속에 부적절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아주 다크 코미디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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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 형제의 기묘한 이야기가 아이들이 기괴한 크리처를 상대하는 얘기라면, 이 이야기는 노인들이 크리처를 상대하는 이야기다. 기묘한 이야기의 음산한 분위기를 또 다른 방향으로 잔뜩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기묘한 이야기보다는 여러 모로 축소되었다.

크리처는 저예산 영화처럼 4화까지 찔끔찔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몰입도는 높다. 물론 초반에는 그렇다. 기묘한 이야기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괴물을 상대하지만 결국 괴몰은 그 괴물을 불러낸 인간이 가장 괴물의 모습이었던 기묘한 이야기와 비슷한 구조다.

노인들이 괴물을 상대하지만 진짜 괴물은 괴물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쟁쟁하다. 스파이더맨 2에서 기계 문어발이었던 오토 역의 알프레드 몰리, 긴 뽀뽀 짧은 밤의 지나 데이비스, 루크 케이지에서 가장 악독한 빌런이었던 알프리 우다드, 빌 풀먼 등 연기 꾼들이 나온다.

실버타운에 입소하는 샘은 정말 실버타운이 싫다. 아내를 잃고 자식들 때문에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모든 것이 싫지만 이 안에서 기괴한 크리처를 본다. 하지만 노인들은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약도 먹고 가끔 자신도 못 알아보기에 사람들은 노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샘은 친구 잭을 사귀고 어느 날 밤 잭의 집에서 기기괴괴하게 생긴 괴물이 잭의 입에 촉수를 꽂고 뭔가를 빨아먹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뒤로 실버타운에서 샘은 친구들을 모아서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가끔 크리처가 나타나고, 어떤 현상들이 실버타운에서 자꾸 벌어진다. 점점 실버타운의 노인들이 죽어 나가는데 대외적으로는 나이가 들어서 늙어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리처에게 생명을 빼앗긴 것이다.

8부작으로 후반으로 가면 크리처가 어떤 존재인지, 왜 실버타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비밀이 드러난다. 비밀이 드러나면서 반전도 있다. 기묘한 이야기만큼은 아니지만 꽤 재미있다.

역시 인간,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독하고 악마 같은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노인들이 주인공이지만 통쾌한 액션도 있어서 보기에 재미있다. 시리즈 내내 비슷한 톤의 색감이 이어져서 좋다.

실버타운에서 처음 만난 노인들이 고집이 강하여 서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점점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모습과 친구가 되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까지. 비록 클리셰이긴 해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이라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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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사연.

원하던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난 대학 신입생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웬만한 대학 캠퍼스보다 멋진 야외 음악당과 고풍스러운 성당, 오작교를 닮은 구름다리, 예쁜 교복.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만큼이나 다양한 동아리들. 각 동아리의 대표 언니들이 들어와서 홍보를 할 때마다 나는 너무나도 신나 하며 열심히 원서들을 챙겨 모았다.

근데 문제는 들고 싶은 동아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교실 안으로 짧은 커트머리의 한 언니가 들어왔다. 큰 키와 하얀 얼굴, 이상은을 연상케 하는 남자 같은 목소리.

난 그때 이상은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 언니에 반해 단숨해 합창부에 들어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근데 어느새 나는 합창부가 아닌 우체부가 되어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특이하게도 우체국이 있었던 것이다.

교내 복도 한가운데 놓여 있던 빨간 우체통. 그 속에 담긴 편지와 선물을 배달하는 일. 그게 바로 우체부의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유명했던 MBC의 행사처럼 교내 예쁜 엽서전을 개최하기도 한다고.

나는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빨간 우체통과 예쁜 엽서전에 현혹되어서 결국 우체부에 가입했고 2년 내내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신세가 되어서 점심때마다 온 교실을 누비고 다녀애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나는 변함없는 애정으로 그 언니를 멀리서나마 지켜보았고 나 아닌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그 언니의 소식은 들으려 하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솔솔 들려왔다. 어느 날 친구랑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을 때였다.

바로 앞자리에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이는 거였다. 이상은을 닮은 바로 그 언니였다. 어쩜 좋아, 저 언니 톰 크루저 좋아하나 봐. 친구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남자 같은 언니가 다른 평범한 여자애들처럼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다름 아닌 톰 크루저였기에 우리는 그 언니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언니를 본 충격도 잠시, 우리는 영화 속 여자들처럼 톰 크루저의 매혹적인 미소에 넋을 잃고 말았다. 물론 톰 크루저의 미모는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여자에게도 활짝 피는 꽃다운 시절이 있듯이 남자에게도 그런 게 있다면 톰 크루저에게는 아마 그때가 아닐까. 그때의 그는 정말 아찔하게 멋졌다. 그때는 어려서 그저 잘생겼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는 거다.

아름다운 해변, 쏟아지는 햇살, 눈부시게 젊던 톰 크루저의 방황과 사랑. 그 모든 것이 마음껏 펼쳐졌던 영화, 바로 칵테일이다. 인생도 한 잔의 칵테일 같은 거라 생각한다.

미소와 냉소, 눈물과 웃음, 냉정과 열정, 미움과 사랑, 이 모든 것이 잘 조화되고 고루 섞여야만 제 맛을 내는 것. 최적의 맛과 향 색깔까지 고운 색을 만들어 내는 유능한 바텐더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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