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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일 사이에 시간이 잠깐 비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찾는다고 한다. 그게 여유일까. 커피를 마시면서도 다음 일에 관한 생각뿐이다. 카페의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 한 번 보지 못하는 여유. 그러면 여유를 어떻게 찾아요?라고 해 봤자 나는 모른다. 단지 여유는 시간이 날 때 즐기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즐겨야 한다. 그래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고 시간이 나지 않아서는 핑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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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너무 심하게 분다. 음악을 끄고 책도 덮고 가만히 있으면 바람이 창에 와서 부딪히는 소리가 화가 난 것만 같다. 저녁의 온도는 3.9도 가량으로 겨울치고는 꽤 높은 온도였는데 바람이 걷기도 힘들 정도로 불었다. 그래서 체감온도는 더 추운 것 같았다. 조깅을 하니 등에서 땀이 나긴 났지만 어제만큼 나지 않았고 바람 때문에 금방 식어 버렸다. 바람이 얼굴을 심하게 때려 달리는 것도 힘들어서 걸었는데 땀이 등에서 식어서 자칫 감기에 걸릴 뻔했다. 감기가 걸리지 않는 건 순전히 예방접종을 맞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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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유아기를 넘어서 사회에 대해 인식하며 생활하는데 가장 큰 오류는 죽음에 대해 가까이 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배를 탔을 뿐이다. 누군가는 배가 일찍 뒤집어져 빨리 죽고 뒤집히지 않고 배가 저 끝까지 가서 내리는 사람도 있다. 죽음과 나는 무관하다는 모순을 안고 살아가다 준비 없는 이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친구 부모님의 죽음, 사랑하는 이의 죽음, 친구의 죽음, 가족의 죽음, 좋아하는 음악가의 죽음을 우리는 겪었다. 그 모든 죽음이 준비 없이 다가왔다.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쳐다본다. 죽은 사람을 이야기하는 건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일인데 쉬쉬하고 꺼린다. 예전에 삼 김 시대가 열렸을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총재, 김대중 대통령에게 마이크가 다가가서 나라가 어떻게 될 거냐고 물었을 때 김영삼과 김종필은 민주화가 이루어져 부상하는 나라로 갈 것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김대중만이 끝까지 대중의 바람과는 달리 불안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국민이 고통에 휩싸일 것이라고 했다. 비관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비관에 눈 감는 것보다 낫다.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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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물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대만에서 만들어낸 청춘물이다. 그런데 기기괴괴한 청춘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괴물이나 유령이 나오는 판타지물이 가미된 거냐 한다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초현실적이다. 몹시 현실적인데 아주 초현실적이다. 파릇파릇 푸릇푸릇한 청춘물을 잘 만드는 대만인데 또 이렇게 기기괴괴한 청춘물도 꽤 재미있다.

A24에서 만든 아시아 버전 같은 영화다. 주인공은 헌책을 당근 하면서 책을 받으러 온 여성에게 반하게 된다. 여자의 요구는 뽁뽁이에 싸서 달라는 것.

주인공은 현장에 나온 예쁜 여성에 반하지만, 책을 받고 인사만 하고 그냥 가버린다. 그 뒤로 주인공은 헌책을 계속 올린다. 그리고 여성과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데이트하게 되는 사이가 된다. 여성은 주인공에게 나는 꽤 까다롭고 몸이 좋지 못하여 채식만 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오케이 함으로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첫 데이트에 영화를 보러 가는 대신 지구를 살리자는 전단지를 돌리며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물에 녹지도 않으며 꽁초 속 미세 플라스틱 때문에 지구가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마냥 재미있는 주인공.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회사 사장 집에서 저렴하게 살고 있었는데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애인은 자기 집으로 들어와서 같지 살자고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동거한다. 단지 규칙이 있다.

침대에는 항상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누울 것, 회사에서 일할 때 두 시간마다 보고 할 것, 내가 말하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사진을 찍어서 라인으로 보낼 것, 하루 동안 사용한 영수증을 보여줄 것, 무엇보다 종교적인 이유로 결혼 전까지는 몸에 손을 대지 말 것.

규칙이 까다롭지만, 주인공은 괜찮았다.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하고 같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데다 성적 욕구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고 두 시간마다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지 보고 하는 것 역시 주인공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 여자친구가 항상 밥을 해주었는데 전부 채식이라 그게 별로였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주인공 친구는 그렇게는 오래가지 못한다. 나중에 콩깍지가 벗겨지면 이 모든 것이 너를 미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듣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의 말처럼 애인의 간섭은 주인공을 점점 조여 온다. 그러다 거래처에서 한 사람이 오는데 고교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여자친구에게 점점 거짓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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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못하고 껄렁껄렁한 고리대금업자의 심부름이나 하면서도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두목이 때려주라는 것도 잘 못하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농담으로 표현을 하는 골목의 어두운 쓸쓸함과 벽난로의 장작이 피어나는 따뜻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남자, 록키 발보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태리에서 온 종마 록키 발보아. 돈을 걸어 내기를 하는 3류 복서장에서 몸을 혹사시킨다.


70년대 미국은 기회의 나라였다. 그런 나라의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의 성지이며 그 해가 독립 200년이 되는 해였다. 대중이 열광할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한 슈퍼스타 크리드는 화젯거리를 찾아서 록키 발보아를 지목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신과 인간의, 슈퍼 복서와 삼류 복서의 시합이 시작된다.


록키는 삼류 복서로 내기를 위해 시합을 뛰기 때문에 여기저기 몸이 성할 날이 없다. 나이도 젊은데 벌써 60전을 뛰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권투의 포즈도 없고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두르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복서다.


록키의 말투는 배운 것 없고, 배우기도 싫고, 나는 몸으로 되는대로 먹고살아,라는 말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투박한 말투가 영화가 진행될수록 친밀해진다.


그러다가 마지막 눈두덩이 다 터져 에이드리안을 부르짖을 땐 그 말투가 사랑스러워진다.


록키는 동물용품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에이드리안을 향해 순수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우리는 록키에게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기 위해 쓸쓸한 집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반기는 거북이와 금붕어에게 농담 연습을 한다.


어둡기만 한 필라델피아 골목은 록키의 앞날과도 같다. 하지만 록키는 친구의 여동생을 악의 소굴에서 데리고 집으로 바래다준다던가, 주위를 돌아보고 사람들을 챙긴다.

그리하여 시합을 위해 새벽마다 조깅을 할 때 먹고살기 힘든 시장 상인들이 록키에게 과일을 던져준다. 이 장면은 당시 실제로 무명 권투 선수가 매일 훈련을 하는 줄 알고 과일을 던졌는데 그대로 영화에 삽입되었다고 한다.


에이드리안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할 때 두 사람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인다. 아이스링크를 두 사람이 타는 장면에서 낭만이라고는 1도 없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은 함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시작을 알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된다.


마지막, 판정승을 한 크리드. 사람들은 록키에게 제시합을 할 거냐고 묻는다. 록키는 미쳤냐고 대답한다.

록키의 얼굴이 찰흙을 벽에 던져 흘러내리는 것처럼 될 때 에이드리안의 마음은 깨진다. 에이드리안의 얼굴을 비추는 그 장면이 압권이며 마지막 에이드리안을 부르며 그녀가 달려와 안겼을 때 박수치게 된다.


몇 번을 봐도 좋은 영화. 지치고 쓰러질 때 록키의 주제가를 들으면 어김없이 저 필라델피아 광장의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양손을 높이 들고 싶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앞도 보이게 될 것만 같다. 록키의 주먹이 슬픈 건 감성적인 삶이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록키의 주먹은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주먹을 펴서 에이드리안을 꼭 안아 주었다. 


요즘처럼 잠 못 자고 지치고 힘들 때 눈 속의 키세스 시위대를 보면서 이태리 종마 록키 발보아가 떠올랐다.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그렇게 처맞고도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맞고 또 맞아서 쓰러질 것 같지만 끝까지 버틴다면 지더라도 그게 이긴 것이다. 



록키의 명장면 https://youtu.be/eZquhQ4bLqo?si=JbWtRl3QH02u8X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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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은 이만희 감독의 영화로 일요일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 속에는 당시에도 내몰리는 청춘들의 보이지 않는 휴일의 끝없는 결락과 우울 그리고 불안을 소설처럼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68년에 만들어진 영환데 프랑스 누벨바그만큼 모호하고 비극적이며 우울하다. 그리하여 당시에 상영 금지처분을 받았다.


영화는 어둠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2000년대에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다.


서울의 복잡하고 문명의 건물들이 빼곡한 곳에서 돈이 없어 갈 곳 없는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갈 곳이라곤 남산도서관 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공원이나 육교 같은 곳뿐이다.


돈이 없는 허욱은 지연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린다. 감독은 장면들의 화면 전환, 콘트라스트가 강한 흑백과 신시사이저의 기괴한 배경음악으로 허욱의 우울의 극치를 표현한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세계가 미래인 허욱. 일요일이란 오전에는 빨리 지나갔으면 하지만 밤이 올수록 초조해지는 이상한 날이다.


일요일마다 자연을 만나는 허욱은 일요일이 너무 기다려지지만 일요일이 오는 게 싫다. 빈털털이라 지연을 다방에도 데리고 갈 수 없다.


허욱이 돈을 빌리는 동안 모래바람을 맞으며 허욱만을 기다리는 지연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보여주는데 묘하게 우울하고 아주 불안하다.


허욱이 한달음에 달려 병원으로 지연의 수술 결과를 보러 오지만 결국 눈을 뜨지 못한 지연. 허욱은 휴일이면 축축한 추억만을 잔뜩 끌어안고 암울하고 외롭게 보낸다.


감독은 지연과 행복했던 지난날을 보내는 추억을 편집하며 보여준다. 추억이 가득한 서울의 이곳저곳을 허욱은 미친 듯이 떠돈다.


전철을 타지만 목적지가 없는 허욱. 추억 속 지연의 아름다운 미소가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만추와 여로 같은 영화로 유명한 이만희 감독의 영화들은 60년대지만 인간을 담고 있어서 재미있다. 아주 짧게 살다가 고인이 되었지만 영화는 꽤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다 볼 수가 없다.


짧게 살다 고인이 된 천재 감독 중에는 대부의 프란시스코폴라 감독과 같이 영화 공부를 한 하길종 감독이 있는데 바보들의 행진이 유명하다. 여러 번 봐도 재미있다.


이만희 감독은 이혜영의 아버지고, 하길종 감독의 동생이 고교얄개에서 정윤희의 남편으로 나온 하명중으로 지금도 활동 중이다.


오래됐지만 이런 감독들의 영화를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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