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스릴러에 가깝다, 아니 완전 스릴러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쏟아지고 있는 스릴러 작법을 안개 마을에서 이미 선보였다. 그것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욕망에 맞추어서.
폐쇄된 마을에서 폐쇄된 사람들의 마음이 불러들인 욕망이 만든 익명의 섬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폐쇄된 마을에 부임한 선생님으로 나오는 정윤희가 주인공이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주체는 깨철이 역의 안성기가 진정 주인공이다.
수옥의 눈으로 바라보는 수상하고도 이상한 깨철이와 이 폐쇄된 안개 마을의 관계가 영화의 내용이다. 동족 마을은 문명과 동떨어진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폐쇄된 마을이다. 하루 종일 거의 안개가 껴 있다.
무진의 안개가 여귀가 뿜어낸 입김 같은 것이라면 동족 마을의 안개는 좀 더 축축하고 무겁다. 동족 마을의 국민학교로 부임한 수옥은 몇 시간 기다려 몇 시간 버스를 타고 겨우 마을에 들어왔다.
도착해서 처음 본 장면이 버스 정류장 앞 평상에 기절하듯이 벽에 기대 이쪽을 보고 있는 이상한 사내 깨절이의 모습이었다. 동족 마을은 전부 먼 친척이나 가까운 친척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학교 선생님들과 깨철이만 마을 사람이 아니다.
수옥의 눈에 깨철이는 기묘했다. 일을 하지도 않고 집도 없고 옷도 갈아입지 않는다. 바보라서 아이들에게도 놀림을 받고 어른들은 깨철이 고추를 만지려 하지만 저항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런데 깨철이가 하루 재워 달라면 어느 집이던 방에 들여 잠을 재우고 밥도 준다. 한 방에 불러 잠을 잔다는 게 수옥은 이해가지 않는다. 깨철이는 한 번 잠을 잔 집에는 두 달 동안 얼씬거리지 않는다.
수옥은 점점 깨철이를 주시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깨철이를 마을에서 내치지 않고 거두고 있는 이유를. 깨철이는 마을 아낙들의 숨겨진 본능을 일깨워주곤 한 것이다.
서로가 알지만 모른 척하며 무의식 바탕에 깔려 있는 욕망을 건드리는 트리거의 역할을 깨철이가 한다. 깨철이는 바보등신으로 불리지만 정말 그럴까. 저 바보 같은 얼굴 뒤 깨철이의 본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수옥은 선술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깨철이를 방으로 불러들여 한 번 하려 하지만 깨철이는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잠만 자버린다. 성불구자였던 것이다. 거기서 수옥은 지금까지 한 의심과 조사를 관두려 한다.
그러나 수옥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만다.
영화는 83년에 나왔지만 아주 재미있다. 이문열의 원작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벙어리가 나오지 않는다. 임권택은 구조를 맞추기 위해 젊은 여자 벙어리 캐릭터를 넣어 마을의 남편의 성적 욕구를 푸는 해방구로 삼는다.
이 마을은 서로가 부정을 알지만 외면하고 묵인하면서 터지지 않는 폭탄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수옥은 학교 선생님으로 깨철이에 대한 의견을 듣는데 그 부분을 빼버린다면 완벽한 스릴러에 가깝다.
마지막 수옥은 서울로 가며 새로 부임한 여자 선생님이 오는데 영화 첫 장면이 다시 반복된다. 깨철이가 평상에서 새로 부임한 선생님을 본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수옥을 환대했듯 새로 부임한 선생님을 환대한다.
수옥의 내레이션이 많이 나오는데 그게 소설 같다. 마지막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끝난다.
깨철이. 그는 어쩌면 우리들 마음속 깊숙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얼굴이며 우리들 인간의 내면세계에 영겁을 두고 도사리고 있는 신의 존재와도 같은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