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신 들린 인형 이야기다. 영화적 재미는 기존의 귀신 인형의 이야기 정도다. 인형이 된 아이 귀신이 무섭게 나타나는 장면도 없고 피가 낭자하거나 인형이 인간에게 덤벼들어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도 없다.
사고로 다섯 살 딸을 잃은 요시에가 시장에서 딸과 비슷한 크기의 인형을 집으로 들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딸을 잃은 요시에가 인형 덕분에 안정을 되찾다가 임신으로 다시 딸을 출산하면서 인형이 뒷전이 되면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점점 주위를 압박하고 인형을 없애려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요시에는 인형의 사정을 알고 원한을 풀어주려고 하는데. 영화는 거의 두 시간 러닝타임이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무서운 장면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영화 속에 잘 나가는 일본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조연으로, 단역으로, 카메오로 우르르 나온다. 영화적 재미가 거의 없는 이 영화에 왜 이렇게 많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드라마에 가깝다. 슬픈 드라마, 안타까운 이야기다. 그리고 딸을 한 번 잃었던 요시에가 그 인형을 죽은 엄마와 같이 있게 하려고 한다.
엄마 입장에서 딸을 잃은 그 마음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의 어른들은 타인의 아이도 자신의 아이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드러낸다. 영화의 톤 앤 매너가 그렇다.
요즘 스레드나 결혼지옥 같은 프로그램에서 폭력에 무너지는 아이들 영상을 많이 본다. 아이들은 현관문이 닫힌 가정에서 찬밥신세에 어른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속수무책이다. 나약하기 이를 때 없고 무력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왜 그렇게 잔인할까.
물론 아이들이 정신없고, 뛰어다니고, 자꾸 어딘가 오르려 하고 시끄럽고 사고뭉치다. 나는 요즘에 아이들의 사진을 많이 찍으면서 느낀 건 아이들이 생각보다 시키는 대로 말도 잘 듣고 대화도 잘 통한다는 걸 알았다.
어린아이들은 무해하다. 웃으면 따라 웃게 되고,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마냥 귀엽다. 타인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사라진 곳은 이미 지옥과 비슷하다.
내가 다니는 길목과 나의 문화권 안에는 노키즈 존 같은 곳은 없다. 여기 줄 서는 식당에도 어른들이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밥을 먹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슬프다. 인형이 엄마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고 점점 조여드는데, 죽은 딸 메이가 그 인형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간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영화가 주는 공포는 평소에 우리가 자주 느끼는 현실의 공포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