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는 아이 고정수 꿈소담이 고학년 창작동화 3
고정욱 지음, 원유미 그림 / 꿈소담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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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다분히 신파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 정수가 구순열이라는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라는 점, 정수의 아빠가 고아라는 점, 그리고 신파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시한부(이 책에선 정수의 엄마가 암이다.)까지, 신파의 구색을 골고루 갖추고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정수네가 부유하지 않다는 점도 신파의 보조요소 쯤이 될 수도 있겠다. 난 아이들이 신파의 주인공이 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신파라는 것이 누군가의 비극을 통해 감동은 쉽게 끌어낼 수 있을지언정 감정의 격랑, 대책 없는 동정심, 철없는 낭만 외에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뒷 표지를 보고 머뭇했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엄마에게 소원이 뭐냐고 묻는 남자아이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 소개가 내게 위험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고정욱님인데, 설마 무턱대고 신파로 빠져들 지야 않겠지, 하는 생각이 위험신호를 차단했고, “말 잘하는 아이 고정수”라는 경쾌한 느낌의 제목이 책장을 펼칠 용기를 줬다.

정수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구순열, 쉽게 말하면 언청이로 태어난 아이다. 수술을 두 차례 받아서 생활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빨갛게 남아있는 수술흔적이 신경에 거슬려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려하고 남 앞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앞에 나가 발표하는 것이 두려운, 좀 소심한 아이다. 엄마는 늘 정수에게 “상처가 있어도 당당하게 너 자신을 보여주라”며 용기를 주려고 하지만 정수는 늘 ‘입이 안 보이게 고개를 약간 숙이고’ 말을 하고 나서기를 싫어한다. 그런 정수가 투병하는 엄마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아빠를 보면서 엄마가 늘 당부하던 말씀대로 변해보리라 결심을 한다.

코끝이 찡하게 저려오는 부분은 정수가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고하고 엄마를 위해 기도해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장면이다. 눈물까지 흘리진 않았지만 어쨌든 열등감을 극복하고 사람들 앞에 선 정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감동적인 장면이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수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에 마음이 답답했고 정수가 헤쳐 나가야하는 숨은 난관들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제목의 “말 잘하는”은 단순히 언변이 좋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말 잘하는”은 “당당하게 자기 뜻을 펼친다”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정수의 이야기에서 찾은 희망은 그것이다. 엄마가 안계시다는 것, 구순열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정수의 삶을 틀림없이 힘들게 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수가 당당하게 자기 뜻을 펼치는 ‘말 잘하는 아이’가 되어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야기 속에서 정수가 중증장애인으로 설정되었다면 엄마가 암에 걸려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의 극적효과를 위해 시한부인 엄마가 이용되었을 거라는, 못돼먹은 의심도 지워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현실 속에서, 떼거지로 겹쳐서 들이닥치는 불행을 보기도 하거니와 그런 불행을 겪는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동화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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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다리 기사와 땅딸보 기사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16
비네테 슈뢰더 지음, 조국현 옮김 / 봄봄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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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읽고 나서는 생각이 꼬리를 길게 이어가는 책이 있지요. 이 그림책이 그런 경우였어요. 내용도 그렇지만 그림도 썩 마음에 들었고, 그림 사이사이에 배열된 글들이 그림을 방해하지 않는 독특한 편집도 눈에 띄네요. 『악어야, 악어야』와 『보름달의 전설』이라는 그림책의 그림을 그린 비네테 슈뢰더의 그림책인 걸 보면,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저의 불찰이었어요.

표지의 그림을 보면 꺽다리 기사와 땅딸보 기사가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어요. 그 뒤편으로 보이는 성과 노을 진 붉은 하늘에서 비네테 슈뢰더 특유의 낯설고 조금은 기괴한 환상의 세계를 엿보게 돼요. 속표지에는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두 기사의 성 위로 날아가는 한 마리 검은 새가 보여요. 노란 구슬 같은 것을 하나 떨어뜨리고 가는 데, 이것이 바로 문제의 발단이랍니다.  




사이좋은 두 기사네 부부. 너무 사이가 좋아서 두 성 사이의 벽도 허물어버리고 갑옷이 녹슬어 갈 정도로 각별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성 사이 벌판에서 꺽다리 기사의 아내 로네가 새싹을 발견했어요. 리네는 닭똥을 모아 거름을 주고, 땅딸보 기사의 아내 리네는 물을 주었죠. 새싹은 쑥쑥 5미터나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꽃은 아침에는 꺽다리 기사네 쪽을 바라보고 낮에는 꼿꼿이 서 있다가 저녁이 되면 땅딸보 기사네 쪽을 바라보았죠. 두 부부는 기뻐하며 날마다 꽃 아래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겁게 지냈대요.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요? 언제부터인가 로네는 꽃이 자기네 성 쪽만 바라보았으면...하는 욕심이 생긴 거죠. 그 때부터 사이좋았던 두 기사 부부 사이로는 욕설이 오갔어요. 욕설이 괴물의 형상으로 서로를 향해 날아가는 저 그림을 보세요. 


 
양쪽 모두 얼굴이 붉어진 채 욕심을 다스리지 못한 네 사람은 싸움의 원인이 된 꽃마저 망가뜨리죠. 그렇게 뿌리가 뽑히고 줄기가 꺾이고 잎이 찢기는 동안에 꽃은 후두둑 꽃씨 몇 알을 뿌리지요.  


 

꽃을 잃은 두 기사는 마침내 얼음처럼 차가운 사이가 되어버렸어요.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얼음 벽을 보세요. 두 기사는 물론이고 두 기사 뒤편에 서 있는 로네와 리네 역시도 추위에 떨며 서 있는 것이 보여요. 검은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는데, 눈이 쌓이는 만큼 두 기사의 마음에도 후회가 쌓이진 않았을까요.

다음 해 봄, 놀랍게도 정원에 무려 14송이나 되는 꽃이 피었어요. 꺽다리 기사네 일곱 송이, 땅딸보 기사네도 일곱 송이. 꽃을 바라보며 두 기사는 서로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앞 속표지에 나왔던 검은 새가 또 꽃씨 한 알을 물고는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어요. 그 꽃씨가 우리가족 사이에 혹은 나와 친구사이에 아니면 우리집과 이웃 사이에, 더 크게는 우리마을과 이웃마을 사이에 떨어진다면 어쩌시겠어요?

이 그림책을 덮으며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현미경으로 뭔가를 관찰할 때 쓰는 얇디얇은 커버글라스가 먼저 떠올랐어요. 학교 다닐 때 생물시간엔가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커버글라스가 얼마나 얇던지 조금만 세게 쥐면 금방 갈라지고 말았거든요.  커버글라스를 잘 덮으려면 손에 힘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어요. 평화라는 게 그 커버글라스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아슬아슬하고 조심스러운 그런 것. 그래서 아주 세심하게 돌봐야 하는 것. 그래서 깨뜨리지 않으려면 내 힘을 모두 빼야할지도 모르는 그런 것.

또 양쪽에 똑같이 일곱 송이씩 피어난 그 꽃들을 바라보게 되네요. 만약에 어느 한 쪽이 한 송이라도 더 모자라거나 혹은 더 많았다면 화해가 이루어졌을까요. 어둡고 춥던 겨울 동안 두 기사의 마음에 쌓였던 후회만으로도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평화의 조건은 공평과 조화였던가요. 우리 세상이 공평하고 조화로운 세상인지 가만히 돌아봅니다. 우리집에 있는 일곱 송이의 꽃이 이웃집에도 있는지, 우리 마을에 있는 일곱 송이의 꽃이 이웃마을에도 있는지, 아시아에도 유럽에도 아프리카에도 세상 구석구석까지 일곱 송이의 꽃들이 있고 그 꽃들이 모두 무사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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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17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탐나는 책이네요. 꼭 보고 싶어요. 꼭 읽겠습니다. 잘 읽었어요.^^

섬사이 2009-10-17 09:10   좋아요 0 | URL
예, 꽤 괜찮은 그림책이었어요.
마노아님이 탐낼줄 알았어요. ^^
 

도서관 책고르미 모임에서 "작가 따라하기"라는 제목의 작업을 하면서 권윤덕 선생님을 찾아뵈었었다.   

그리고, 한 사람당 4쪽씩 '우리 마을'에 대한 주제로 그림을 그려 모아서 그림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내내 밑그림 그리기만 가지고 끙끙댔다.  

아파트 단지 곳곳과 유빈이와 잘 어울려 노는 이웃 아이들, 친한 이웃 엄마들 사진을 찍어서 나름 정성을 보태어 완성한 밑그림이다.  

10월 중으로 다시 한 번 권윤덕 선생님을 뵙고 채색에 들어가려고 한다.   

채색을 하다가 망칠 경우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아 밑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해두기로 했다.

그림책으로 만들어질런지는 아직 미지수. 

만들기로 결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또 미지수.  

그림책 꼴을 갖춘다 하더라도 기념으로 한 권을 묶고 말지,  

아니면 조금 더 만들어 각자 한 권씩 나눠갖게 될지, 그것도 미지수. 

조잡하지만 며칠 밤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림 그리느라 생애 처음으로 팔도 아파가며 그린  

밑그림이다.  



유빈이네 집은 아파트랍니다. 아파트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삽니다. 그래서 함께 놀 친구, 오빠, 언니, 동생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같이 자전거도 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하고,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도 하고, 더운 날엔 물총놀이도 합니다. 여름엔 아파트 안을 구석구석 다니며 같이 매미를 잡았습니다. 매미가 참 많았습니다.
우리는 해가 져서 깜깜해질 때까지 어울려 놉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다보면 배가 고파집니다. 아이들은 더 놀고 싶다고 하고, 엄마들은 들어가 밥 먹을 시간이라고 하며 옥신각신합니다.  
결국 엄마들이 놀이터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옵니다. 놀이터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집니다. 고구마, 옥수수, 주먹밥, 과일, 떡, 빵... 집에서 먹는 것보다 놀이터에서 여럿이 함께 먹는 게 훨씬 더 맛있고 즐겁습니다.
난 우리 놀이터가 참 좋습니다. 
 

첫번째 그림 속, 야쿠르트 아줌마와 비둘기 두 마리는 유진이가 협찬(?)해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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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1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고생하셨지만 엄청 뿌듯하실 것 같아요. 채색이 들어가면 느낌이 또 달라지겠죠? 채색 그림도 꼭 보여주세요.^^

섬사이 2009-10-17 09:09   좋아요 0 | URL
권윤덕선생님과 화요일에 만나기로 했어요. 저희가 댁으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엄마도 있고 해서 선생님이 도서관으로 오시기로 했지요. 채색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날 다하기는 어렵고 일단 먹선을 뜨기로 했어요. 두근두근해요. ^^
 

신문에서 광화문 세종대왕상 사진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게 뭐야..  하는 황당함.  90년대 초반 법주사에 갔다가 거대한 금불상 앞에서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세종대왕상 사진 위를 덮쳤다. 
그 때 법주사 거대 금불상을 보면서 손톱만큼의 경외감도 느낄 수가 없었고, 1미터가 안되는 크기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보다도 귀품이 떨어지는구나, 했었다.   
그 거대 불상은 크기에 있어서나 번쩍임에 있어서나, 그리고 비례의 불균형에 있어서나 오히려 코미디에 가까웠다.   

광화문에서 법주사 거대불상에 이은 또하나의 코미디를 보는 듯했다. 세종대왕님도 어이없어하시지나 않을지.  그렇게 세종대왕을 기리는 방법이 고작 저거라니.
세종대왕상의 크기가 10.4m에 이르고 동전 3200만개 분량이라는데, 그게 뭐 어쨌다고 떠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커서 뒷 배경의 산허리를 잘라먹고 그 뒤의 경복궁이 개집처럼 보이는 것만 빼면, 그나마  법주사 거대불상처럼 비례가 맞지 않아 불상이 큰바위 얼굴같다는 느낌이 들거나 하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에고... 그래도 유명한 홍익대 교수의 작품이다.  아줌마에 지나지 않은 내가 뭐라고 한다고   어느 동네 개가 짖나..겠지만, 어쩐지 광화문이 싫어지려고 한다.  자꾸 광화문이 망가져가는 건 아닌지, 집구석에 앉아 공연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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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10-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가서 보면 더 흉물스럽습니다. 거대한 똥덩어리에요. ㅠ.ㅠ

섬사이 2009-10-13 13:40   좋아요 0 | URL
허걱, 정말요? 이런 낭패가.... ㅠ.ㅠ

네꼬 2009-10-1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백 번. ㅠㅠ 그러니까 제 말이 그 말이에요. ㅠㅠ

섬사이 2009-10-14 19: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그렇다니까요..ㅠㅠ

qualia 2009-10-1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세종대왕님께 정말 죄송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동상이나 기념적 건축물에서 우리가 경외감, 숭고함, 아름다움, 자랑스러움 따위를 느끼는 것은 그 크기/규모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역사적 배경, 공간적 배경, 심리적 배경, 미학적 구조 등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그 조형물들을 세운다면, 그 크기/규모가 크든 작든 얼마든지 우리의 미적 감각이나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화문 세종대왕상은 (섬사이 님 말씀처럼) 역사적/공간적/심리적 배경들과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특히 미학적 구조의 설계/디자인 측면에서 세종대왕상을 안치한 기단은 너무나 조악한 수준입니다. 세종대왕상과 그 기단 사이의 부조화, 그 이물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군요. 미를 창조하는 예술가의 머리에서 어떻게 저런 조야한 디자인이 나왔는지, 참으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저 기단을 어떻게 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기단 내부와 외벽을 어떤 재료로 처리했는지, 즉 내부는 콘크리트로 하고 외벽은 대리석 판재로 마감한 것인지 궁금하군요. 제가 판단하기에 저런 설계와 디자인과 재질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종대왕상에 걸맞지 않게 품격도 없고 싸구려이고 내구성도 없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세종대왕님의 위엄을 크게 해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 세종대왕님께 불경스런 짓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2009. 10. 13. 화요일. 낮 3시 18분. 구름.)

섬사이 2009-10-14 19: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 기단, 정말 흉해요. 그리고 왜 세종대왕은 한손에 책들고 저렇게 교무실에 앉아 있는 선생님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는지.. 어떻게 보면 체육시간에 애들 줄넘기 시켜놓고 점수 매기는 선생님같기도 하구요..
아아아아 좀 더 창의적일 수 없냐구요,,
그나저나 qualia님은 전문가이신듯.. 전문가 입장에선 일반인보다 더 속상할 수도 있겠네요...

쿠키별 2009-10-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색깔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단만이라도 좀 어떻게 하면...

섬사이 2009-10-14 19:52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볼수록 속만 상합니다.

비로그인 2009-10-1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이상합니다. 확 쓸어버리고 싶을 만큼 이상해요.

섬사이 2009-10-15 22:29   좋아요 0 | URL
예, 볼수록 이상하고 괴기스러워요.
 

만화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아주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웃집 언니들 때문이었는지, 만화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로 일찌감치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내가 한글을 언제 떼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엄마와 버스를 타고 외할머니댁을 가면서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지나가는 간판들을 줄줄 읽어대면 앉아 있던 아줌마나 아저씨들이 똑똑하다 귀엽다 하며 무릎에 앉히던 게 기억이 난다.  나보다 두어살 위였던 동네 언니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깍뚜기 공책에 '가나다라..' '가갸거겨고교..'등을 쓰기 연습할 때 같이 끼어서 글씨쓰기를 공부하기도 했으니 아마 대여섯살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내 기억으로는 내가 한글의 조합과 그 음가에 대해 아직 익숙하지 않았을 때다.  그 때 엄마아빠를 졸라 10원인가 5원인가를 받았고, 그 돈으로 동네 만화가게에 위풍당당하게 들어섰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지금 내 막내딸 또래였을 테니, 만화가게 아저씨도 어이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그 날 내가 빼곡히 꽂혀있던 만화책들 중에 뽑아들었던 것은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라는 만화책이었다.  당연히, 내용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그 제목이 확실한지도 잘 알 수가 없다.  신기하게도 만화 속의 깔끔하고 우아해보였던 2층집 계단이나, 머리를 귀부인처럼 올리고 긴 홈드레스(?)를 입고 있던 만화속 인물(아마도 엄마였겠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1977년도에 제작된 영화라고 뜬다.  좀 더 검색해보니 이게 소설이 원작이었다. 일제시대에 탐정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던 김내성이라는 작가가 쓴 청소년 소설이란다. 알라딘에서도 검색이 된다. 신기하군... )

그리고 띄엄띄엄 어떻게든 글자를 읽어서 만화의 재미 속에 빠져보려고 기를 쓰던 나 자신이 무엇보다 잘 기억난다.  그 만화를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그제서야 나는 한글의 닿소리와 홀소리의 조합과 음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한글의 문장어미, ~~어요, ~ㅂ니다'등과 조사들 '을, 를, 이, 가, 에게,,,'등등의 쓰임에 눈을 떴던 것 같다. 그 때 그 글자들을 터득하면서 기뻐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게 내 최초의 배움의 환희가 아닌가 싶다.  

두번째로 기억이 나는 만화는 초등학생 때 읽었던 <바벨2세>던가,하는 만화책이다.  사막 한 가운데 바벨탑이 숨겨져 있고 검은 표범인가가 나오고, 로봇도 등장했던 것같다.  그 때 벌써 대학생이었던 오빠들까지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놀랍게도, 알라딘에 혹시나 하고 검색해봤더니 아직도 출판되어 판매가 되고 있다.  몰랐었는데 요꼬야마 미쓰테루라는 유명한 만화가의 작품이란다.  이 만화에 대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뭔지 모를 고독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아직도 판매가 되고 있다니,,  갑자기 다시 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일기 시작한다.   

 

세번째 만화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 만난 <캔디캔디>다.  그야말로 나의 사춘기를 열어준 만화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캔디는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만화책들과는 달랐다.  지금 생각하면 신파인 부분이 없지 않고 유치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당시 사춘기 소녀였던 나로서는 캔디를 거의 우상화했을 뿐 아니라, 견디기 힘든 사랑과 온갖 역경을 이기고 다시 밝게 일어서는 캔디를 내 인생의 본보기로 삼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엄마나 오빠들이 순순히 캔디를 사줬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혹시 내가 학교에 가거나 집에 없을 때, 엄마와 오빠들도 캔디를 즐겨 읽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전권을 모두 갖고 있었는데, 오빠들의 여자친구들이 빌려달라며 한 권 두 권 가져가고는 반납하지 않는 바람에 이제 단 한 권도 내 곁에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림책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동화책들도 조악했다.  청소년들이 읽을만한 책들은 더더욱 가뭄에 콩나듯했던 것 같다.  그림책과 동화책은 우리를 유년시대에 붙들어두려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감성이나 관심사도 변하기 마련인데, 당시만 해도 그림책과 동화책들은 우리를 반공방첩 정신이 투철하고 말 잘듣는 착하고 바른 어린이 쯤으로 고정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삐라를 주워서 파출소에 갖다주며 영웅심리를 맛보거나 하교길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나름 비장한 기분으로 멈춰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학급회의 시간에도 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치며, 6월이면 반공포스터 대회에 전교생이 참여하던, 네모지고 견고한 시대였으니. 

그래서였을거다.  만화책은 나에게 어른의 세계, 또는 유년 너머의 뭔가 아프고 애틋한 세계를 살짝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매체였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만화도 거의 학습이 주를 이룬 지금, 아이들은 행복할까?  어릴 때 읽었던 <꺼벙이>라든가 <도깨비 감투>같은, 만화책이 아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도 애매한 문학의 세계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실감나고 재미있는 만화 속 세계에서 유년 너머의 세계를 엿보고 있을까.. 

큰아이 유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밍크>라는 만화잡지를 구독해서 읽었다. 지금도 유진이나 명보가 읽고 싶다고 하는 만화책이 있으면 조금씩 사주는 편이다.  그래서, 초밥왕이나 원피스, 데스노트, 궁, 하백의 신부, 펭귄혁명 등등의 만화책을 소장중이다.  

만화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만화는 독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한겨레 신문에는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가 실린다.  언젠가 느티나무 도서관 그림이 실렸다.  박재동씨는 그 그림 밑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편안하게 만화책을 읽고 있는 도서관의 모습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았다고 썼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 이 페이퍼는 나의 사심이 잔뜩 묻어있다. (어떤 페이퍼라고 안 그러겠습니까..) 
다음 주에 도서관 모임에 만화에 대한 짧은 글을 써가려고 하는데,,,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다른 분들의 의견을 참고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제발 도와주세요.... 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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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1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이사를 가서 전학도 갔고, 엄마는 늘 바쁘고, 언니들은 나랑 놀아주지 않고, 심심해할 나에게 엄마가 헌책방에서 보물섬 세 권을 사주셨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50원 100원씩 들고 가서 만화방에 가서 서식(?)했지요. 처음 본 책은 김동화의 '아카시아'였구요. 그 다음에 황미나의 '주의 어린양 아뉴스데이'였지요. 신일숙의 '사랑의 아테네'도 그때 읽었어요. 주로 순정만화를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홉살 짜리가 이해하긴 힘들었을 것도 같지만 무척 재밌어 했어요. 10살 때부터는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읽었구요.^^
만화만 읽고 다른 책을 도통 읽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그래도 아무 책도 안 읽는 것보다는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만화가 주는 환상의 힘이 무척 큰 것 같아요. 울 엄니는 나를 만화의 세계로 인도한 것을 한때 후회하셨지만, 지금은 뭐 그런 말씀 하실 때는 아니지요.^^;;;

섬사이 2009-10-11 14:07   좋아요 0 | URL
아뉴스데이, 중학생땐가 고등학생땐가, 시험 끝나고 올캐언니랑 빌려다가 눈물 질질짜며 읽었던 만화에요. ㅎㅎ 굳바이 미스터 블랙도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
다른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화가 독서의 호흡을 짧게 해서 나중에 좀 길고 지루하다 싶은 책들을 아이들이 읽을 수 없도록 만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나오는 말일 수 있는데, '읽는다'는 행위 뒤에 오는 '느낌'과 '여운', 그리고 '생각의 되새김질'이라고나 할까,,, 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만화가 가진 힘도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만화에서도 거르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요..
이렇게 긴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감격이어요.. 고맙습니다. 마노아님.

다락방 2009-10-12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때였어요. 옆집애가 저와 동갑이란걸 알고 급친해지면서 그 친구의 집을 수시로 놀러갔는데요. 세상에, 거기엔 제가 집에서 읽었던 모든 책들이 만화책들로 있더라구요. 아마 어린이용 만화전집, 이런거 같았어요. 로미오와 줄리엣도, 춘희도, 잔다르크도 거기 다 있었어요. 물론 제가 저희집에 가지고 있는 글만 써진 책과는 겹치는 것도 겹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완전 심봤다의 기분이었달까요. 근데 그 친구는 그 책을 읽지 않았고, 저는 저희집에 있는 책은 다 읽은 상황이라 매일 그 집에 가서 그 만화책을 읽었거든요. 세권씩 빌려오기도 하구요. 아마 백권 셋트였던 것 같은데, 잔다르크 같은 건 그 만화로 본게 훨씬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좀 성인물(?)스럽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전 정말 흠뻑 빠져서 그 친구 집에 있는 그 만화책들을 다 읽었거든요. 하루는 제 친구가 친구어머님께 혼나더군요. 왜 너 보라고 사준건데 니 친구가 다 읽고 너는 읽지를 않는거냐, 하면서요. 살살 눈치 봐가며 빌렸어야 했는데 저는 그래도 꿋꿋하게 다 읽었어요.

음, 독서의 호흡을 짧게 해서 나중에 좀 긴 책들을 읽을 수 없도록 만든다고 하는 말도 일리는 있는 것 같지만 저는 독서를 전혀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만화책을 읽는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아예 독서를 안할지도 모르는데 어릴때부터 만화가 악영향을 미칠까봐 꺼려한다면 지레짐작 미리부터 겁먹는 것 같은데요. 잔다르크를 모르는 것 보다는 만화를 읽고 잔다르크를 아는쪽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섬사이 2009-10-13 06:45   좋아요 0 | URL
1. 페이퍼인가 댓글인가 헛갈릴 정도로 길고 정성스러운 댓글에 감동..
2. 어릴 때 그런 옆집 친구가 있었다니!! 다락방님은 참 복도 많구나,, 하는 부러움.
3. 엄마에게 혼나는 다락방님 옆집 친구에 대한 동정과 연민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했던 다락방님께 박수. 짝짝짝짝!!!
5. 역시! 마노아님이나 다락방님처럼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 분들은 만화에 히스테리를 일으키지 않고 당당하구나, 하는 기쁨.
6. 도서관 모임에 써갈 숙제(?)에 탄력이 붙을 것만 같은 예감.
7. 마노아님과 다락방님 두 분이 옆에 있었다면 와락 끌어안고 볼에 뽀뽀해주고 싶다는 주책성 충동.
8. 그래서 이 모든 것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고맙습니다" ^^

정말 고맙습니다. 다락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