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봇 1 징검다리 동화 9
이현 지음, 김숙경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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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려서부터 달에 가보는 게 꿈이었던 조월아 씨는 2045년, 세계최초의 맞춤형 로봇 대여점 '마음대로봇'의 천재숙 박사와 강영재 박사의 도움으로 꿈을 실현합니다. 살림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자기도 모르게 꿈을 잊고 살았던 그녀는 심각한 건망증으로 일상생활에 곤란을 겪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알고보니 그 중증의 건망증은 꿈을 잊어버린 데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마음대로봇'의 두 박사는 조월아 씨의 건망증을 해결하기 위한 날파리형 로봇 '속다기'를 제작했고, 속다기가 조월아 씨의 귓가에서 '달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잊었나요?'라고 속닥거리기 시작하자 조월아 씨는 자기의 꿈을 잊지 않고 기억해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조월아 씨는 깨달았습니다.  

"동한아, 엄마가 그동안 건망증이 심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야. 진짜 중요한 걸 잊어버려서 그래. 그걸 생각하느라고 다른 걸 자꾸 잊어버렸던 거지. 하지만 엄마를 봐. 요즘은 건망증이 조금도 없잖아." 

잠깐 생각했습니다. 나의 건망증도 혹시 내가 중요한 꿈을 잊어버리고 '그게 뭘까?'하고 헤매기 때문인 걸까, 싶어서요. 조월아 씨만큼 심하진 않지만 핸드폰과 지갑을 어디에 뒀는지 몰라 자주 찾아다니고, 아이들이 미리 얘기해 주었던 것을 깜빡하는 바람에 챙겨주지 못할 때도 많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다가,

"엄마는 그동안 마음에 달을 두고서 몸만 지구에 있었던 거야. 넌, 엄마가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니? 마음을 딴 데 두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난 엄마 마음이 어디에 있든 관심 없어. 그냥, 엄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이 대목에서 조월아 씨와 저의 차이점을 깨달았습니다. 조월아 씨는 꿈을 잊었다면 저는 꿈을 포기한 것입니다.  내 꿈보다 내 아이들과 가정이 더 중요해졌고, 그리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하지만 이 '속다기'로봇 이야기를 읽으면서 적어도, 아이들이 저처럼 꿈을 포기해버리는 어른으로 자라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월아 씨처럼 아이를 마주보고 엄마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꿈 때문에 아이가 불안해하거나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시스템은 잘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요.  동한이가 달로 떠나려는 엄마에게 '엄마 마음이 어디에 있는 관심 없어. 그냥, 엄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라며 울먹일 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짠해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나는 동한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조월아 씨의 꿈을 응원해주고 싶어집니다. 매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동한아, 네가 좀 견디면 안될까?'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로봇 '속다기', 기억한다는 건 대단한 능력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망각'도 인간의 또다른 능력이라지요. 아내의 지나친 기억력을 부담스러워하는 남편들의 시위로 '속다기'는 제작 및 대여가 중지됩니다. 속다기에 이어  마음대로봇의 두 번째 로봇은 뇌파 감응형 인공지능 로봇 '남인척'입니다. '이바른'이라는 소심한 여자 아이의 주문을 받아 만들어진 이 로봇은 주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더라도 스스로 주인의 마음을 알아채'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주인이 원하는 일을 해내는 로봇이죠. '이바른'이라는 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이며 옆집에 사는 이웃이자 자기를 짓궂게 괴롭혀온 '오말성'을 혼내주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두 천재 박사가 만든 '남인척'은 탁월한 성능을 발휘해서 '이바른'의 바람을 다 이루어주지만 '마음대로봇'을 다시 찾아온 '이바른'은  고백합니다.

'막상 말성이를 울리고 보니 하나도 통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인척이 미울 정도였어요. 말성이가 장난이 심해서 더러 날 울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걸요! 날 속상하게 한 적도 많지만... 그렇지만 재미날 때도 많았다고요. 그래서인지 말성이가 떠나고 나니까 너무 보고 싶어서...." 

'내 마음, 나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표면에 떠오른 생각이 꼭 내가 원하는 그것은 아닐 경우도 흔합니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도 많고, 내 마음대로 일을 끌고 간다고 해서 꼭 신나고 행복한 것도 아니죠.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이란 말도 자주 씁니다. 문제는 그 마음이라는 게 내 마음인데도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 그럴진대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엄청 힘든 일일 겁니다. 아마 아이들도 이 '남인척'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사실들을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을 무슨 수로 바꾸나요? 하긴, 보고 싶은 마음만 그런 게 아니죠. 2041년 <인간탐구백서>를 만들기 위해 설문조사를 했어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 그 결과 1위가 바로 마음을 바꾸는 일이었어요. 타임머신을 만드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결과가 나온 거죠. 그건 곧, 불가능하다는 뜻 아니겠어요?" 

이바른이 태평양에 떠있는 섬 키리바시로 이민간 오말성을 보고싶어하자, 이 마음을 알아챈 남인척은 태평양을 헤엄쳐 오말성을 향해 떠나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세계최고의 로봇회사 '로보스타'에 '남인척'의 뇌파감응장치 프로그램을 판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그야말로 물건너 가게 되었죠. 천재숙 박사의 딸이자 로봇대여점 '마음대로봇'의 창립자이며 사장인 하라의 친구로봇 도도는 이 불가사의한 인간의 마음에 대해 쐐기를 박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글쎄요. 상상로봇연구소에서 만든 로봇은 결코 고장 나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너무 쉽게 고장 나잖아요? 남인척이 돌아올 수 있을지 어떨지, 누가 알겠어요? '마음대로봇'이라...... 하긴, 마음대로라는 게 사실 가장 어려운 일 아닌가요?" 

인정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 쉽게 고장나고, '마음대로'라는 건 너무 큰 책임을 동반해서 두렵습니다. 때론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인간의 고장난 마음 때문에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망가지기도 하고, 인간 '마음대로' 일을 벌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다지 믿을만 하지 않으니까, '남인척'의 실패는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기술상의 실패는 아니지만 로봇을 움직이는 동인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기본 법칙상의 실패인 거지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확신하며 겁없이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발랄하고 경쾌한 글이지만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많은 책입니다. 만약 맞춤형 로봇대여점이 정말 나타난다면, 난 어떤 로봇을 바라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로봇을 작동시켰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요. 한편으로는 이민희 작가의 그림책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앞으로 1, 2권에 이어 기발한 상상력을 담은 <마음대로봇>시리즈가 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듭니다. 우리 어린이 문학에서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 캐릭터로 천재숙 박사와 강영재 박사, 그리고 영리한 하라와 로봇 도도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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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게 고장나지만, 또한 자체 회복력도 강한게 인간의 마음이라고 믿어보려구요.
쉽게 고장난다는 것은 그만큼 섬세하고 쉽게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 좋은 것이고,
자연이 주신 자체 회복력이 있기에 그만큼 대단한 것이라고도 믿어보려구요. ^^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망증이 엄청나게 심해지는데,
꿈 대신 악의(분노, 불안, 원망, 짜증)로 머리를 채워서 그런가봐요. 읽다가
별별 엉뚱한 상상으로 머리를 굴려보네요. 아하하.

섬사이 2011-04-26 17:17   좋아요 0 | URL
^^
저도 그래요. 뭔가 신경쓸 것이 생기면 가끔은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애들 밥줄 때를 놓치곤 하죠.
마음은 자주 약해지곤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마음공부 하시는 마고님이 더 잘 아시겠죠? ^^
 
여섯 번 저녁 먹는 고양이 시드 - 좋은책어린이그림책, 세계창작 03
잉가 무어 글.그림, 김난령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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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절판된 책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것도 별을 다섯 개나 찍어놓고 리뷰를 써내려가는 건, 어쩌면 잔인한 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얘기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좀 서운하다. 책을 빌려 읽고는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나에겐 이 책이 그런 책 중에 하나였는데, 책을 주문하려고 했다가 빨갛게 쓰여진 '절판'이라는 글자 앞에 좌절했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빽빽하게 꽂혀있는 그림책들 사이에서 다시 이 책과 조우하고는  "너 아무래도 안되겠다. 나 따라와라."하고 한 번 더 대출했다. 사진과 리뷰로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상품검색을 했더니 중고책으로 나와있었다.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제 내 것이 된 이 책,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이럴 때도 통하는 말일까?  

처음엔 '여섯 번 저녁 먹는 고양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동했었다.  특이함은 때로 신선함을 느끼게 하니까. 표지 속의 저 새카만 고양이가 저녁을 여섯 번 먹는다는 최고의 먹성 고양이 시드다.     

 

 

 

 

 

 

 

시드는 아리스토 거리에 산다. 1번지, 2번지, 3번지, 4번지, 5번지, 6번지에. 집이 여섯 군데라 저녁도 여섯 번 먹을 수 있고, 주인이 여섯 명이라 이름도 여섯 개, 잠 잘 곳도 여섯 군데인데다가 여섯 명의 주인이 저마다 다른 곳을 골고루 긁어주어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보낸다.   

 

 

 

 

 

 

 

 하지만 그 행복이 깨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시드가 지독한 감기에 걸리자 여섯 명의 주인들이 저마다 각자 시드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간 것이다. 여섯 가지 다른 방법으로 여섯 명의 주인에게 이끌려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시드는 물약을 여섯 번 먹어야 했던 것이다. 일이 이쯤에서 마무리되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수의사가 예약수첩을 확인하다가 감기에 걸린 여섯 마리 고양이가 모두 아리스토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여섯 명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그러자 여섯 명의 주인들은 시드더러 '하는 일도 없이 저녁을 여섯 번이나 먹었다'며 '얌체고양이'라고 화를 낸다. 그리고는 '앞으로 시드한테 하루에 저녁을 딱 한 번만 주자고' 결의한다.   

만약 이 책이 고전적인 도덕관념을 따른다면 시드가 저녁을 한 번밖에 먹지 못하고 배고파하거나, 더 심하게라면 아리스토 거리에서 쫓겨나는 걸로 마무리를 짓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을 속이고 제 욕심을 채운 시드가 인과응보에 따른 처벌을 받는 걸로 끝난다면 그야말로 가장 단순한 교훈을 심어주는 따분한 그림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지금부터 더 빛을 발한다.    

누가 뭐래도 시드는 저녁을 여섯 번 먹어야 하는 고양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속았다'라고 느끼는 건 순전히 사람들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다. 시드는 여섯 주인이 불러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느라고 노력해야만 했고,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됐다. '우쭐이'이기도 하고 '돌쇠'이기도 하고, '익살이'였다가 '촐랑이'가 되어야 했고, '살랑이'이면서 '흑기사'이어야 한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런 시드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 나름 시드를 보면서 행복해 했을 테니까, 시드더러 '하는 일도 없이 저녁을 여섯 번'이나 먹는 '얌체'라고 하는 건 시드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고 억울한 일이다. 오히려 '이웃끼리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아리스토 거리 사람들이 더 문제다. 이웃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정답게 살았다면 시드가 이 집 저 집 다니며 저녁을 여섯 번 먹어야 하는 특이한 고양이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시드도 여섯 가지 이름에 걸맞게 사느라고 힘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드는 미련없이 아리스토 거리를 떠난다. 그러고는 피타고라스 광장의 1번지, 2번지, 3번지, 4번지, 5번지, 6번지에서 살기 시작한다. 시드가 새롭게 정착한 이 동네 사람들은 '광장'에 사는 사람들답게 이웃끼리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시드가 저녁을 여섯 번이나 먹는 고양이라는 걸 처음부터 모두 알았고, '시드가 저녁을 여섯 번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떠오른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리스토 거리의 사람들은 시드를 '소유'해야 했다. 내가 이 책을 '내 것'으로 삼아 행복한 것처럼 아리스토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시드를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고, 시드 또한 한 사람의 것이어야 마땅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시드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화를 내며 시드를 배척해야 했던 것 아닐까. 대조적으로 피타고라스 광장에 사는 사람들은 시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림을 보면 내 것도 아니고 우리 것도 아니고 시드까지 전부 다 함께 '우리'라는 것에 행복해하는 따스한 느낌이다.   

 

그렇게 이 책을 손 닿는 곳에 두고 몇 번을 뒤적이다 보니 또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아리스토 거리에는 아이들이 없다는 점. 그리고 피타고라스 광장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 중에는 어느 집 창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드를 모여서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 그림을 비교해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우리집 꼬맹이딸 생각이 났다.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면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세 친구가 되어 논다. 나중에 "오늘 놀이터에서 만나서 재미있게 논 친구는 이름이 뭐래?"하고 물으면 "몰라"한다. "이름도 안 물어보고 그냥 놀았어?"하면 노는 데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는 듯이, 오히려 이름을 묻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다. 어른들은 친해지기 위해서는 이름과 나이는 기본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취향인지, 결혼은 했는지 안했는지, 고향이 어딘지, 심지어는 학벌이 어떻게 되고 재산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시시콜콜 다 알아야 한다. 아니, 그런 걸 다 알고 나서도 친해지기는 어렵다.  

아이들 사이의 관계는 어른들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열려있다. 아마 시드가 저녁을 여섯 번 먹는 고양이이고 그래서 저녁 때마다 여섯 집에 들러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아이들이 가장 먼저 알아냈을 것이다.

이 그림책은 나에게 관계를 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중고책으로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지금, 누군가 이 책을 빌려달라고 하면 난 끽 소리도 못하고 기꺼이 빌려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절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사람들에게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인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 책에서 시드가 살던 거리와 광장의 이름이 왜 '아리스토'와 '피타고라스'인 걸까? 모르긴 해도 '아리스토'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따온 게 아닐까 싶은데... 왜지? 왜일까? 끙... 

사족 하나,
이 책 맨 뒤에는 '어린이 친구들에게'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는 이웃끼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면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겨도 알 수 없다고 쓰여있다. 그리고 아리스토 거리와 피타고라스 광장 사람들을 비교하면서 '시드 같은 고양이가 아니라 고약한 침입자가 들어온다면 어떤 동네 사람들이 먼저 알게 될까요?'하고 묻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 이 그림책이 이렇게도 풀이가 될 수 있구나.'했다. 갑자기 이 그림책이 무지 교훈적인 책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해야 하나...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목적이 '더 빨리 힘을 모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건, 뭔가 개운하지 않은 면이 있다. 차라리 이 글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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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드에게 속은(?) 사람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나가다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가슴이 쿵 했습니다.
아, 그렇네요. 아이들은 틀림없이 시드가 여섯끼를 먹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겠지요. 그것은 욕심만 가득한
제 행동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즐거운 주말되셔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섬사이 2011-04-25 14:39   좋아요 0 | URL
재미있고 가슴 '쿵'하게 읽어줘서 제가 오히려 고마워요.
가만 보면, 아이들에게 배울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면서도 내가 아이보다 못하구나, 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아이들이 모두 제대로 학교며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달이다. 정신없던 겨울이 정리되는 느낌.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돌아왔구나, 하며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딸이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청소할 땐 청소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 빨래할 땐 빨래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밥을 먹을 땐 오직 먹는 일에만 충실할 수 있는 시간,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아무도 이 자리를 빼앗으려는 사람이 없다는 안도감에 기뻐할 수 있는 시간.. 사소하지만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니 내가 나만의 시간을 되찾았다고 기뻐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너무 섭섭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3월이면 공식적으로는 봄인데, 겨울동안 읽겠다고 했던 <안나 카레니나>를 3월까지 끌고 왔다. <안나 카레니나>가 거장이 쓴 작품이라고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건 인물들의 마음을 미묘한 변화까지도 참 잘도 묘사했다는 점이다.  

레빈은 결혼한 지 석 달째가 되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한 걸음마다 예전에 했던 공상에 대한 환멸과 뜻밖의 새로운 매혹을 찾아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매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직접 그 작은 배를 탔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빈이 키티와 결혼한 후 자신이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과 실제 결혼 생활이 다른 점을 기가막힌 비유를 써서 묘사한 구절이다. 결혼해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씩은 다들 공감할 만한 이야기 아닌가? 레빈은 톨스토이 자신이 투사된 인물같았다.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호감형이긴 하지만 너무 진지하고 반듯한 성격때문에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말하긴 힘든. 그에 비해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파괴적이다. 하지만 두 사랑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된다. 사랑은 저마다의 빛깔로 수백수천의 난반사를 일으키니까. 사랑하면서 현명하기란 어렵고, 끝난 사랑은 미치도록 아프고, 지나간 사랑은 늘 저만치서 아름답게 손을 흔들어대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레빈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계속 제기한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해 등장인물 전체가 반응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3권 마지막에 레빈에게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사람은 레빈의 농장에서 일하는 표도르라는 농부였다.  

"그야 사람은 각양각색이니까요. 어떤 사람은 그저 자기의 욕심만으로 살고 있고, 미티우하 같은 놈은 그런 치입니다만, 그저 제 배때기에다 처쟁이는 짓만 하고 있습죠. 그런데 포카느이치는 성실한 늙은이입죠. 그분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길래 하느님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 어떻게 하면 영혼을 위해서 사는 거야?"레빈은 거의 외치듯이 말했다.
"뻔하잖아요. 진리에 의해서, 하느님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뿐이에요. 사람은 각양각색이니까요. 이를테면 나리만 하더라도 사람을 모욕하는 짓은 하지 않으시니까 말예요..."

톨스토이에게 종교, 특히 기독교의 향이 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 권에 걸쳐 진지하게 물어왔던 질문에 대해 작가가 보여주는 해답이 좀 실망스럽기는 했다. 난 교회도 권력이며 종교와 신앙은 별개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성당에서 '냉담자'로 분류된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교인들의 방문, 전화, 초대에 선뜻 응하지 못하는 건, 내가 종교생활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언정 신앙생활을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내 아이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라'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일까. 

또한 나는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이 마지막 문장들을 씁쓰름하게 읽어야 했다. 지난 겨울에 보았던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함께 떠올라서 이 마지막 문장들 사이사이를 배회하게 만들었다. 톨스토이는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정말 확신하며 눈감았을까.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영화와 소설 속에다 대고 작가에게 당신의 삶이 그랬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다고 여기면서도 100년도 전에 죽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숨이 확신 속에서 거두어졌을지 궁금했다.  

봄기운이 스멀거리는 3월까지 <안나 카레니나>를 잡고 있었다는 것이 좀 무안했는데, 그러면서도 애써 아직 민들레를 못 봤으니 봄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정말로 민들레는 4월 6일이 되어서야 만났고, 난 봄이 오기 전에 <안나 카레니나>를 다 읽은 거라며 좋아했다. 그동안 <안나 카레니나>를 다 못 읽은 걸 알고 민들레가 내 눈에 띄지 않으려 조심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참 속이 깊은 민들레구나. 그래.. 민들레는 뿌리가 깊지.. ???? (뭐라는 거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신 기생뎐>을 다시 읽었다. 책읽기 모임때문에 읽었는데,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맛이 나는 것 같다. 같은 책을 읽고 읽고 또 읽고 하는 것도 좋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책욕심때문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여유를 잃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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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1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나 카레니나는 다시 읽고 싶어요. 그리고 몇년뒤에 또 다시 몇년뒤에 또 다시. 인용해주신 문장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섬사이님이 이렇게 쓰신걸 읽으니,

[하지만 두 사랑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된다. 사랑은 저마다의 빛깔로 수백수천의 난반사를 일으키니까. 사랑하면서 현명하기란 어렵고, 끝난 사랑은 미치도록 아프고, 지나간 사랑은 늘 저만치서 아름답게 손을 흔들어대니까.]

소주 생각이 간절해져요. 뭔가 길게 쓰다가 다 지워버렸는데요, 섬사이님, 제 요지는 그거에요. 저는 안나 카레니나를 쓴 작가도 아니고 편집자도 아니고, 그저 그의 책을 읽은 또다른 독자에 불과하지만, 섬사이님이 안나 카레니나를 이렇게 읽어주셔서 고맙고 기뻐요. 안나와 브론스키와 그리고 레빈이 섬사이님의 몇개월을 함께했다고 생각하니 참 좋아요. 책들을 읽고 생각을 하고 이렇듯 글로 그것들을 표현해주시는 섬사이님이 좋아요.

그래서 민들레더러 제가 일러뒀어요. 섬사이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고. 섬사이님이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그때 눈에 띄라고. 그거 제가 그런거에요.
:)

섬사이 2011-04-18 12:57   좋아요 0 | URL
어쩐지~~ 민들레가 어디로 꽁꽁 다 숨어버렸나, 했어요.
일본원전의 원자로폭발때문에 민들레도 방사능이 무서워 안 나오는 건가, 하며 남몰래 슬퍼했었다니까요.
다락방님이 시켜서 그런 거라니까 참 다행이에요.

저야말로 다락방님 덕분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을 수 있어서 참 고맙고 기뻤어요. ^^

순오기 2011-04-16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만의 시간은 꼭 있어야 해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와 왜 세계는 굶주리고 있는가는,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였어요.
안나 카레니나는 언제 차분히 읽게 될런지...

섬사이 2011-04-18 13: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엄마만의 시간은 너무너무 중요한 거, 맞죠?
잠을 자든, 책을 읽든, 집안 일을 하든 정신이 쉴 시간이 필요해요.

알맹이 2011-04-16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나 카레니나 읽고 싶은 사람 여기 또 있네요. 1권 200여 페이지 읽다 만 것 같은데.. 무슨 승마장 장면이었나 거기까지 읽었던 거 같아요. 저희 집에 있는 건 범우사에서 나온 글씨 빽빽한 옛날책인데 저렇게 예쁜 책이 새로 나왔네요. 제가 구할 땐 없었는데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도 집에 있는데.. 지금 같아선 과연 저 책들을 집어들 날이 올까 싶어요. ㅠㅠ

섬사이 2011-04-18 13:06   좋아요 0 | URL
저도 거의 두 달이 넘어 걸린 것 같아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독서등을 켜놓고 조금씩 매일 꾸준하게 읽었어요. 하루 이틀 안 읽으면 자꾸 레빈이 말을 시키더라구요. 아마도 제가 레빈에게 가장 많이 동일시했나봐요. ^^
 
우리 동네 미자 씨 낮은산 작은숲 12
유은실 지음, 장경혜 그림 / 낮은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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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유은실 작가의 새 책 <나도 편식할거야>를 읽게 되었다. 일곱살 막내랑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모른다.  군더더기 없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글도 좋았고 먹성좋은 1학년 정이의 깜찍한 이야기도 정감있었다.  그렇게 "역시 유은실이야!"하며 읽고 나니 문득 아, 내가 아직 <우리동네 미자씨>를 안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우리 동네 미자 씨>뿐 아니라 <마지막 이벤트>도..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 한 번은 대출중이라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 성공했다 - 빌렸다.  

돈도 잃고 사랑도 잃어 몸도 마음도 가난하고 외로운 미자 씨의 이야기는 어둡게 흘러가게 놔둔다면 끝도 없이 춥고 음울한 곳으로 흐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의 억척스럽고 궁상맞은 모습을 그리다가 난데없는 희망으로 끝을 맺는 잔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대책없이 밝고 슬프다.  

미자 씨는 '찢어진 모기장도 바꾸지 못하고 햬진 구두를 그냥 신고' 다녀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 그리고 잔치음식은 갖다주기 전에 찾아가 잔뜩 먹고 하다못해 아이들 아이스크림이랑 과자도 뺏어 먹을 정도로 식탐이 강하다. 가난해서 배고픈 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이라고 여기면 간단하겠지만 작가는 이 씩씩하고 밝은 미자 씨 이면의 슬픔을 슬쩍 보여준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죠. 미자 씨는 먹고 싶은 걸 참지 못하게 되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돈을 몽땅 잃어버린 다음부터 말이에요.
"오늘도 눈치 없이 먹고 다녔나 보다."
밤이 되면 미자 씨는 하루를 돌아보며 슬픔에 잠기곤 했어요. 어떤 날은 훌쩍훌쩍 울기도 했죠.

 미자 씨의 억척스러운 식탐 뒤엔 잃어버린 것들이 남겨놓은 텅 빈 자리들이 훵하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슬픈 것을 슬프지 않게 보여주고 웃고난 다음에 아프게 한다.  

<동태 두 마리>에서 미자 씨는 수요일과 토요일 아침마다 반찬거리를 트럭에 싣고 팔러 오는 부식차 장사가 선물로 준 동태 두 마리를 가지고 '얼큰 시원 동태찌개'를 만든다. 이혼한 부모때문에 큰아빠네 얹혀서 혼자 사는 5학년짜리 성지가 마을회관 컴퓨터로 검색해서 알아다준 레시피를 참고로 해서. 그런데 레시피대로 찌개를 끓일 수가 없다. 레시피에 있는 재료를 다 갖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초대받은 손님 성지는 그 점이 못마땅하다. 도무지 제대로 된 찌개가 될 것 같지가 않아 불만이다.  

"정말 그것만 넣을 거야?" 
"음, 걱정하지 마. 이렇게 해도 돼." 
"맛없잖아."
"아니야. 맛이 있긴 있어. 많지 않아서 그렇지 보통은 돼."
"아, 아줌마 보통은 보통이 아니라니까."
"........"
미자 씨는 마늘을 다지다 말고 성지를 물끄러미 바라봤어요.
"있잖아 성지야, 내 보통이 보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게?"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불행해져."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보통이라고 우기면서 살아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기를 쓰고 우기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불행해지지 않는다. 우리를 보통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것까지만 봐야 한다. 유명한 블로그에서 찾아냈다는 '얼큰 시원 동태찌개 만드는 법'같은 건 아예 눈을 질끈 감고 보지 않아야 한다. 보고도 못 본척 해야 한다.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야 하는'얼큰 시원 동태찌개 만드는 법'을 '보통'이라고 할 수 없듯이 억소리도 모자라게 비싼 집, 차, 옷, 가방, 구두 그리고 기죽이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늘씬하고 예쁜 사람들이 절대로 보통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화려한 것들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가려진 다음에야 보통인 우리들이 비로소 아름답게 반짝 드러날지도 모른다.   

"칫, 어떤 미친 도둑이 아줌마네 집을 털어" 
성지가 피식 웃었어요.
"너 모르는구나. 캄캄한 데서 언뜻 보면 우리 집도 부잣집으로 보일지 몰라. 옛날에 니네 큰엄마가 그랬거든. 캄캄한 데서 언뜻 보면 나도 되게 예뻐 보인다고." 

모든 것을 밝게 드러내는 곳에서는 우리의 추레함도 적나라하게 드러날 터,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늘 속에 있는 것은 양지의 그러한 횡포를 잘 알기 때문이다. 외로운 성지는 외로운 미자 씨에게 올 때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가 된다. 치약의 다양한 사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 동태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아는 사람, 동물학대에 대해서 자신있게 주장을 펼치고 여우목도리가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만나서 조금은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걸까.   

"성지야." 
"왜 그러는데."
"나 한 번만 안아 줄래?"
"그러면 들어갈 거야?"
"음."
"여우 목도리 풀어. 그럼 안아 줄게."
미자 씨는 목도리를 풀었어요. 그리고 성지를 꼭 안았지요.
"아, 숨 막혀. 팔에 힘 좀 빼."
성지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요. 사람 품에 안겨 본 게 아주아주 오랜만이었거든요. 

그래, 외로움은 꽉 안아줘야 한다. 자꾸 억지로 쫓아내려하면 더 질기게 붙잡고 늘어질 위험이 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그 사람이 외로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다), 하다못해 베개를 끌어안고서라도 외로움은 풀어내야 한다. 자기가 '보통'이라고 믿는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작가는 '내 안에 미자 씨가 있다.'고 했다.  내 안에도 미자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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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4-1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도 미자씨가 있어요~~~~~~ 라고 고백하고 싶은 리뷰!

섬사이 2011-04-14 10:37   좋아요 0 | URL
그럼 우리 숨막히게 꽉 안아줘야 하는데.. ^^

다락방 2011-04-1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여동생 읽으라고 줬더니 "미자씨 읽으니까 언니 생각난다" 하더라구요. 제 안에도 미자씨는 있어요.

섬사이 2011-04-14 10:36   좋아요 0 | URL
우린 거의 모두 '보통'으로 외로운가 봐요. ^^

마녀고양이 2011-04-1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래서 오늘 잘 때도, 딸아이의 곰돌이를 꼭 껴안고 잤나 봐요. ^^

섬사이 2011-04-15 13:35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꼬맹이딸을 꼭 안고 자요.
꼬맹이딸이 자라서 제 품을 떠나면...그 땐 저도 곰돌이를.. ^^
 

마트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탔다. 대형마트는 늘 사람으로 넘쳐나고, 그래서 늘 버스정류장도 복잡하다. 내가 타는 마을버스는 대형마트로 들어서는 길에서 오고가는 버스노선이 겹친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큰길에서 좀 들어간 곳에 대형마트가 있는데 대형마트 가는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는 같은 번호의 버스가 다 들렀다가 가려다보니, 대형마트로 들어서는 도로에서는 다른 방향의 같은 번호 버스가 서야 하는 정류장이 똑같아 지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를 타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가는 버스인지 잘 확인하고 타지 않으면 버스가 반대방향으로 달려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오늘도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르 몰려들었다. 앞문으로도 타고 뒷문으로도 탄다. 타야할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버스기사들도 마트 앞 정류장에서만큼은 뒷문으로 타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버스가 유턴을 해서 다시 큰길로 빠져나가는 도로 중간에서 어떤 아줌마 같은 할머니, 또는 할머니가 되려는 아줌마(?) - 편의상 젊은 할머니라고 부르자 - 로 보이는 분이 버스를 세웠다. 거긴 버스정류장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버스기사가 앞문을 열자 막 소리를 지르신다.  

"왜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도 안태우고 그냥 가!"
버스기사가 타서 말씀하시라고 하면서 일단 올라타기를 독촉하니까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진 젊은 할머니께서 올라타신다. 그러고는 막 소리를 지르시는 거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사람을 태우고 가야지! 사람도 안태우고 그냥 내빼면 어떡해!"
그러니까 버스기사가
"어디 계셨는데요? 정류장마다 다 섰는데, 어디서 제가 안 태워요?"
"내가 저-기서 계속 기다렸는데, 사람도 안태우고 앞에 차 앞질러서 그냥 갔잖어!"  

아마 젊은 할머니는  내가 탄 정류장 바로 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셨던 것 같았다. 그 정류장은 버스 방향에 따라 한 3미터 간격을 두고 두 개의 정류장이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 하는 정류장이다. 그러니까 이 젊은 할머니께서는 아래쪽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잘못해서 3미터 위쪽에 있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서 서서 기다리고 계셨던 거다. 당연히 버스기사는 앞쪽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만 태운 거고.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중에 몇 분이
"저 그 정류장에서 탔어요. 이 버스 거기서 섰었는데.."하고 기사를 변호했지만 아주 작은 목소리라서 그 젊은 할머니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노여움을 잔뜩 안고 버스 뒷편으로 갔는데, 버스기사가 그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얘기했다.  

"거기는요, 정류장이 두 개예요. 이쪽 방향 버스를 타시려면 아래쪽 정류장에서 기다리셔야 하는데, 할머니가 잘못하시고는 저한테 화를 내시면 어떡해요. 다음엔 정류장 확인하시고 기다리세요. 아셨어요?" 
할머니가 무안하셨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이
"그래, 그 정류장이 많이 헷갈려. 왜 그렇게 해놨는지 몰라."하면서 수근댔다.  
할머니가 아무 대답도 없자 버스기사가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대답하세요!" 

난 그 때 좀 조마조마했다. 버스기사의 말투는 따지는 듯한 말투가 아니라 공손하지만 당당한, 그런 말투였다. 난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무척 노여워하고 계셨고, 그래서 버스기사의 "대답하세요!"라는 재촉에 "젊은 사람 운운, 버릇없이 운운.. " 뭐 그럴까봐, 그래서 싸움이 될까봐 두근두근했다. 버스 안엔 정말 바늘 끝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알았어!" 아직 노여움이 가시지 않은 퉁명스러운 할머니의 대답. 일단 할머니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신 셈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향해 버스기사가 마무리짓는 결정적 멘트를 날렸다.  
"왜 운전하는 사람 스트레스 받게 그러세요. 미안하다는 말씀도 안하시고.." 

와, 저 버스기사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내가 지금 저 버스기사였다면 할머니를 따라 나도 화를 냈을 것이고, 할머니가 심술궂은 목소리로 "알았어!"하신 걸로 나도 감정이 풀어지지 않았지만 그냥 덮어버렸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내내 짜증을 내며 구시렁댔을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기사는 은근슬쩍 할머니의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내 뒤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그러게.. 운전하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데 그러면 안되지.."하고 버스 기사 편을 들었다.  

젊은 할머니가 버스기사 곁으로 가더니 "알았어!"했을 때의 심술궂음, 노여움, 퉁명스러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목소리로
"거기 버스 정류장이 어떻게 돼있다구?" 하고 물으셨다.
"거기는요, 버스정류장이 두 개라구요. 청계천 방향으로 가는 버스는 위쪽 정류장에서 타셔야 하구요, 이쪽 방향 버스는 아래쪽에서 타셔야 해요."
버스기사가 자분자분 다시 설명을 해드렸다. 버스기사도 원망같은 게 전혀 없는 말투다.
"그래.. 내가 잘 몰랐어. 미안하네.." 

와~~ 할머니가 버스기사에게 사과를 하셨다. 버스기사는 할머니에게 사과를 받았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런 싸움이 벌어지면 같이 타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피곤해진다. 그런데 난 오늘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이 갈등과 해소과정이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완벽한 드라마처럼 여겨졌다. 너무 멋졌다. 버스기사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공손하면서 당당하게 자기 말을 다 전달하는 것도 대단했고, 젊은 사람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 어르신도 멋있었다.  (게다가 버스기사는 젊은 할머니와 입씨름을 하는 동안에도 버스에 타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난 살짝 버스기사의 얼굴을 보았다. 나이는 30대 초반? 까무잡잡한 피부에 약간 마른 듯하지만 단단한 몸집이다. 앉아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키도 작아보이지 않는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빛을 보지 못한 게 좀 아쉽다. 다음에 버스를 탔을 때 이 버스기사가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꼭 웃으며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착한 사람이 좋다. 그리고 착하면서 당당한 사람들은 더 좋다. 
사람들이 다투는 건 싫지만 기승전결이 있고 해피엔딩으로 깔끔하게 끝나는 싸움이라면 그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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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1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기사처럼 성정을 가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단 발끈하고 속으로 움츠리고 두고두고 게워내고,
할 수 있는 지저분한 일은 다 하니까요. 참..... 멋지네요.
기사나 할머니나 이렇게 전달해주시는 섬사이님 두요.

평생, 이 성질머리 고쳐지지 않을까봐 요즘은 걱정스럽답니다, 전.

섬사이 2011-04-13 21:10   좋아요 0 | URL
그 버스기사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어요. 화가 나고 짜증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버스기사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저도 바람직하지 못한 성질이라서.. ^^;;

희망으로 2011-04-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면 저절로 아량이란게 생기는 줄 알았는데 제 경우를 보면 고집과 아집이 더 단단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나이드신 분들이 사과하는 경우가 드문게 아닌가 해요. 정말 할머니도 멋지고 기사님도 멋지십니다. 싸우는 일이 많아지길 바라는 것은 그렇지만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이 바람직하게 이뤄지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건....괜찮은거죠^^

섬사이 2011-04-13 21:16   좋아요 0 | URL
나이 많은 사람이 자기 보다 어린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불필요한 기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더 많죠.
필요하다면 싸워야겠지만 싸움 뒤에 화해가 온다면 더 좋겠지요.

순오기 2011-04-14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드문 풍경이네요~~ ^^
그 버스기사님 아니어도 같이 인사하면 좋아요~~~~헤헤!^^

섬사이 2011-04-14 10:38   좋아요 0 | URL
인사를 하더라도 버스기사님 얼굴도 안보고 카드 찍으면서 대~충 했거든요.
이제 버스기사님 얼굴을 확인하고, 인사하게 됐어요.
거기다 살짝 웃어줄 거예요. ^^

무스탕 2011-04-1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달에 영화보러 가려고 제가 탔던 버스기사 아저씨랑은 참 비교되네요.
울동네 아저씨는 목적지에 가는 내내 옆차선, 반대차선, 하여간 주변에 지나가는 버스의 기사 아저씨들을 모두 참견하고 심지어는 이어폰을 사용했지만 핸드폰 통화까지 하고 아주 번잡스러워서 불안했는데 말이에요. (글쎄, 이 아저씨가 운전하는 버스를 극장에 갈때 집에 올때 모두 탔다는거 아닙니까?!)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는 젊은이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어른이나 모두 멋지네요!

섬사이 2011-04-14 10:43   좋아요 0 | URL
그런 버스기사를 만나면('님'자가 저절로 탈락하네요!) 정말 불안해요.
제가 만난 그 버스기사님은 '전문가'다웠어요.
화난 승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무조건 참거나 양보하거나 눈감아주는 게 '착함'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그건 잘못하면 '위선'이나 '비겁'에 더 가까워지게 되니까요. 기꺼이 다가가 미안하다고 하신 어르신의 용기도 감동이었구요.

Mephistopheles 2011-04-1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마주치는 노인네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할머니시군요. 젊은 사람에게 사과를 하는 할머니 역시 멋지십니다..^^

섬사이 2011-04-15 13:38   좋아요 0 | URL
지하철에서 몇 번 사건이 있었죠? 그 때마다 잘 늙어야지, 생각했어요.
잘못했다면 상대가 나보다 젊건 어리건 사과할 줄 아는 것,
그것도 잘 늙는 비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반갑습니다. 메피님.^^

Arch 2011-04-1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한편의 드라마 같아요.

섬사이 2011-04-15 13:40   좋아요 0 | URL
버스에서 내리면서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고보니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드라마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때론 좀 추잡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면면들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영화제작에 손대야 하나....^^;;)
반가워요, 아치님.

감은빛 2011-04-1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한 기사님이시네요. 잘못을 인정하신 할머니도 대단하구요.
저도 잘못된 상황을 못 참는 성격인데,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다보면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몇번 그러고나면 또 비슷한 상황이 생겨도,
그냥 귀찮아서 참아버리고 말지 하고나서(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나중에 속으로 혼자 속상해하게 되더라구요.

저 기사님의 현명한 태도가 참 부럽네요!

섬사이 2011-04-18 13:1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거든요. 겉으론 참고 넘어가는 것 같지만 속은 하루종일 부글부글하죠. 버스기사님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현명하게 자기전달을 잘 한 것 같아요. 또 버스기사님이 그렇게 했다고 해도 할머니가 고깝게 여겨 더 화를 냈다면 일은 또 안좋게 흘러갔을 텐데, 할머니도 자기 잘못을 빨리 인정하시더라구요. 두 분 다 정말 멋졌어요. 싸움구경하고 이렇게 산뜻하기는 정말 흔치 않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