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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봇 1 ㅣ 징검다리 동화 9
이현 지음, 김숙경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려서부터 달에 가보는 게 꿈이었던 조월아 씨는 2045년, 세계최초의 맞춤형 로봇 대여점 '마음대로봇'의 천재숙 박사와 강영재 박사의 도움으로 꿈을 실현합니다. 살림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자기도 모르게 꿈을 잊고 살았던 그녀는 심각한 건망증으로 일상생활에 곤란을 겪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알고보니 그 중증의 건망증은 꿈을 잊어버린 데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마음대로봇'의 두 박사는 조월아 씨의 건망증을 해결하기 위한 날파리형 로봇 '속다기'를 제작했고, 속다기가 조월아 씨의 귓가에서 '달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잊었나요?'라고 속닥거리기 시작하자 조월아 씨는 자기의 꿈을 잊지 않고 기억해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조월아 씨는 깨달았습니다.
"동한아, 엄마가 그동안 건망증이 심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야. 진짜 중요한 걸 잊어버려서 그래. 그걸 생각하느라고 다른 걸 자꾸 잊어버렸던 거지. 하지만 엄마를 봐. 요즘은 건망증이 조금도 없잖아."
잠깐 생각했습니다. 나의 건망증도 혹시 내가 중요한 꿈을 잊어버리고 '그게 뭘까?'하고 헤매기 때문인 걸까, 싶어서요. 조월아 씨만큼 심하진 않지만 핸드폰과 지갑을 어디에 뒀는지 몰라 자주 찾아다니고, 아이들이 미리 얘기해 주었던 것을 깜빡하는 바람에 챙겨주지 못할 때도 많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다가,
"엄마는 그동안 마음에 달을 두고서 몸만 지구에 있었던 거야. 넌, 엄마가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니? 마음을 딴 데 두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난 엄마 마음이 어디에 있든 관심 없어. 그냥, 엄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이 대목에서 조월아 씨와 저의 차이점을 깨달았습니다. 조월아 씨는 꿈을 잊었다면 저는 꿈을 포기한 것입니다. 내 꿈보다 내 아이들과 가정이 더 중요해졌고, 그리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하지만 이 '속다기'로봇 이야기를 읽으면서 적어도, 아이들이 저처럼 꿈을 포기해버리는 어른으로 자라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월아 씨처럼 아이를 마주보고 엄마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꿈 때문에 아이가 불안해하거나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시스템은 잘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요. 동한이가 달로 떠나려는 엄마에게 '엄마 마음이 어디에 있는 관심 없어. 그냥, 엄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라며 울먹일 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짠해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나는 동한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조월아 씨의 꿈을 응원해주고 싶어집니다. 매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동한아, 네가 좀 견디면 안될까?'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로봇 '속다기', 기억한다는 건 대단한 능력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망각'도 인간의 또다른 능력이라지요. 아내의 지나친 기억력을 부담스러워하는 남편들의 시위로 '속다기'는 제작 및 대여가 중지됩니다. 속다기에 이어 마음대로봇의 두 번째 로봇은 뇌파 감응형 인공지능 로봇 '남인척'입니다. '이바른'이라는 소심한 여자 아이의 주문을 받아 만들어진 이 로봇은 주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더라도 스스로 주인의 마음을 알아채'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주인이 원하는 일을 해내는 로봇이죠. '이바른'이라는 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이며 옆집에 사는 이웃이자 자기를 짓궂게 괴롭혀온 '오말성'을 혼내주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두 천재 박사가 만든 '남인척'은 탁월한 성능을 발휘해서 '이바른'의 바람을 다 이루어주지만 '마음대로봇'을 다시 찾아온 '이바른'은 고백합니다.
'막상 말성이를 울리고 보니 하나도 통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인척이 미울 정도였어요. 말성이가 장난이 심해서 더러 날 울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걸요! 날 속상하게 한 적도 많지만... 그렇지만 재미날 때도 많았다고요. 그래서인지 말성이가 떠나고 나니까 너무 보고 싶어서...."
'내 마음, 나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표면에 떠오른 생각이 꼭 내가 원하는 그것은 아닐 경우도 흔합니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도 많고, 내 마음대로 일을 끌고 간다고 해서 꼭 신나고 행복한 것도 아니죠.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이란 말도 자주 씁니다. 문제는 그 마음이라는 게 내 마음인데도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 그럴진대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엄청 힘든 일일 겁니다. 아마 아이들도 이 '남인척'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사실들을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을 무슨 수로 바꾸나요? 하긴, 보고 싶은 마음만 그런 게 아니죠. 2041년 <인간탐구백서>를 만들기 위해 설문조사를 했어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 그 결과 1위가 바로 마음을 바꾸는 일이었어요. 타임머신을 만드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결과가 나온 거죠. 그건 곧, 불가능하다는 뜻 아니겠어요?"
이바른이 태평양에 떠있는 섬 키리바시로 이민간 오말성을 보고싶어하자, 이 마음을 알아챈 남인척은 태평양을 헤엄쳐 오말성을 향해 떠나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세계최고의 로봇회사 '로보스타'에 '남인척'의 뇌파감응장치 프로그램을 판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그야말로 물건너 가게 되었죠. 천재숙 박사의 딸이자 로봇대여점 '마음대로봇'의 창립자이며 사장인 하라의 친구로봇 도도는 이 불가사의한 인간의 마음에 대해 쐐기를 박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글쎄요. 상상로봇연구소에서 만든 로봇은 결코 고장 나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너무 쉽게 고장 나잖아요? 남인척이 돌아올 수 있을지 어떨지, 누가 알겠어요? '마음대로봇'이라...... 하긴, 마음대로라는 게 사실 가장 어려운 일 아닌가요?"
인정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 쉽게 고장나고, '마음대로'라는 건 너무 큰 책임을 동반해서 두렵습니다. 때론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인간의 고장난 마음 때문에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망가지기도 하고, 인간 '마음대로' 일을 벌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다지 믿을만 하지 않으니까, '남인척'의 실패는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기술상의 실패는 아니지만 로봇을 움직이는 동인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기본 법칙상의 실패인 거지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확신하며 겁없이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발랄하고 경쾌한 글이지만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많은 책입니다. 만약 맞춤형 로봇대여점이 정말 나타난다면, 난 어떤 로봇을 바라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로봇을 작동시켰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요. 한편으로는 이민희 작가의 그림책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앞으로 1, 2권에 이어 기발한 상상력을 담은 <마음대로봇>시리즈가 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듭니다. 우리 어린이 문학에서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 캐릭터로 천재숙 박사와 강영재 박사, 그리고 영리한 하라와 로봇 도도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