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여 도서관에서 3회의 책모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제가 그 첫 시간.  몇 년 전에 책읽기 모임을 이끌어 주시던 신동호 시인께서 오셨다.

어제 이야기를 나눈 책은 [3시의 나].

 

선생님까지 9명이 모여 앉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각자 꽁꽁 묶어 간직했던 9개의 자루들이 한쪽 귀퉁이 실밥이 풀리면서 안에 담아두었던 뭔가가 흘러나와 각각의 서로 다른 향기를 풍기며 섞이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자루에서 흘러나오는 느낌과 생각의 향기들이 신선하게 다가와 이 시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숙제를 받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을 딱 1주일 동안 기록하는 거다. 이 책의 작가처럼.....  쓰는 게 부담스럽다면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했다. 책상 위를 찍어도 좋고, 주방을 찍어도 좋고, 거리를 찍어도 좋고...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체국에 들러 우편물을 보내고, 터벅터벅 햇살을 받으며 정류장까지 걸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매일 '다름'이 있다고,

또는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그것을 맞이하는 나의 '다름'이 있다고 그랬다.

수많은 오늘의 '다름'과 수많은 나의 '다름'이 중첩되면서 반짝이는 물결이 되어 흘러가나 보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고프다 할 아들의 간식으로 KFC 매장에 들러 할인행사중인 신메뉴 버거를 주문했다.  주문이 밀려서 패스트푸드의 면모를 읽고 1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포기하고 돌아나왔을 텐데, 15분의 기다림이 여유를 선물받은 듯 싫지 않았다. 주문한 버거가 나올 때까지 전면 유리창 앞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나의 '다름'이다.

 

어제 모임에서 눈물을 보인 K가 마음에 걸린다. 이런 일 저런 일로 몸도 마음도 아픈 모양이다. 언제나 의연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줬던 사람이라 더 안쓰럽고 마음이 간다.  카톡으로 '우리 같이 커피 마실까?'라고 보내려다 말았다. 너무 작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공허한 멘트라고 느낄 것 같았다.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에 적당한 때에 조용히 다가가 '커피 마실래?'하는 편이 나도 K도 더 편할 것 같았다. 아니면 따끈한 곰탕이라도...  시린 속을 채우고 데워주기엔 곰탕이 더 나으려나?

 

10월 중에 우리가 그린 그림들이 더미북 형태로 만들어져 11월에 있을 북페스티벌에 공개될 것 같다.  분주했던 지난 해가 따오른다. 11월까지는 단단히 각오하고 있어야할 듯.

 

 

이 그림은 일부분을 작업진행을 보기 위해 시험삼아 컬러프린트로 뽑아본 것이다.  이 부분에는 큰딸의 그림이 가장 많이 담겨 있다.  중국에 있는 큰딸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줬더니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아들이 큰딸의 스케치북 귀퉁이에 낙서처럼 끄적여 그려놓았던 새도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가는 걸 보며 한 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2013년도, 그림 작업도 저어기 끝이 보인다. 서운함에도 불구하고 기분 좋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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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그림을 그리는 여자가 되었다.  중년에 이른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지 누가 꿈이나 꾸었을까.  그렇다고 내가 그림에 탁월한 소질이 있거나 정식으로 그림을 공부해서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도서관 모임의 사람들과 함께 멋진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되는바람에 일이 그렇게 됐다.

 

저번 주에 나는 소나무를 한 그루 그려가야 했다.  소나무 말고도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연산군과 연산군의 묘, 손병희 선생님과 손병희 선생님의 묘, 남산 팔각정, 낙타의 머리 등등도 그려야 했는데, 그런 것들을 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소나무를 그리려 할 때엔 아직 날이 밝기 전 캄캄한 새벽이었다.  (그림 그리는 여자일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느라 밤도 샐 줄 아는 중년의 여자라는 사실이 기쁘다.)

 

핸드폰으로 소나무 이미지를 검색했는데 키 큰 소나무가 밑둥부터 꼭대기까지 잘리지 않고 나온 사진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잘리거나 하지 않으면 겹겹이 울창한 소나무 숲 사진이라 소나무들의 가지와 잎이 뒤엉켜 한 그루 소나무의 형태를 제대로 떠오기 힘들거나.

그래서 최대한 내 머리 속에 소나무의 이미지를 떠올리려고 애를 쓰며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나무 막대기에 강아지풀을 꽂아 놓은 모양...  혹시 모임을 같이 하는 다름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오해할까봐 '무지 어색한 소나무'라고 소심하게 해설을 달아놨다. 더러워진 빈 병을 닦기에 딱 좋을 것 같이 생긴 저 소나무를 사람들 앞에 내놓은 생각을 하니 한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가지고 갈 그림들을 체크하다가 저 소나무 그림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우리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직접 보고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식물 쓰레기 봉지나 아이 자전거를 끌거나 무거운 장가방을 들고 낑낑대며 가던 단지 길에서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려니 이것 또한 어색하고 민망하고 쪼그라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열정을 가진 화가처럼 마음을 무장하고 소나무를 스케치했다.  그래서 탄생한 소나무 그림은 이랬다.

 

 

이 소나무도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강아지풀 꽂아놓은 막대기 같은 소나무보다야 백배천배 훨씬 나아졌다.  자세히 보니 소나무는 가지가 어긋나지를 않는다.  나란히 같은 높이에서 뻗어 나온다.  그리고 쭉 뻗은 가지 끝에 잔가지들이 뻗고, 거기에 바늘같은 이파리가 다닥다닥 무더기로 붙는 편이다.  소나무다운 소나무(?)를 그리려면 역시 '잘 보고' 그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날 미워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난 항상 도대체 쟤는 날 뭘로 보고 함부로 구는지 궁금했었다.  그 때 '날 좀 잘 봐봐.' 라고 얘기했으면 좀 나았을까? 그 아이 마음 속에 있던 나는 강아지풀을 꽂아 놓은 막대기같이 생긴 저 꼴사나운 소나무같은 것이었을까? 

혹시 내 마음 속 누군가도?

 

집중해서 잘 본다고 그대로 똑같게 그려지지 않는 그림처럼 (똑같이 잘 그린다고 해도 가령 앞모습을 그리면 뒷모습은 가려지니까)  제대로 잘 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방향에서의 모습에서는 오해의 여지를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론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 너무 확신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게 잘못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사람도 나무처럼 그 모양이 해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는 거니까.  다른 방향에서 본 그 사람의 모습은 내가 모를 수 있으니까.  잘 본다는 건 중요하지만 본다고 그 사람의 면면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그 사람의 면면을 내가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어쩐지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두기가 아쉽지만 그림 그리는 길이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모이는 사람들 모두 열심히 그리느라 고생했는데 결과가 멋지게 잘 나왔으면 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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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0-01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그림 완전 잘그리셨는데요!! 멋져요!! >.<
그림그리는 여자라니, 환상적이네요!!!

섬사이 2013-10-03 00:00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때 이후로 물감, 붓, 물통, 빠레트 펼쳐놓고 그림을 그린 건 정말 오랜만이였어요.
네, 잘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는 시간만큼은 환상적이에요! ^^

프레이야 2013-10-0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을 그리느라 밤을 샐 줄 아는 중년여자사람, 아름다워요. ^^ 저도 시월부터 수채화에 도전해볼까하고 있는데 뭐가 잘 안 맞네요.

섬사이 2013-10-03 00:03   좋아요 0 | URL
언젠가부터 밤을 새고 나면 그 여파가 너무 길게 가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밤을 새본지 참 오래됐는데 그림 그리면서 밤을 세 번이나 샜어요.
학교다닐 때 미술시간에 그렸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수채화, 도전해보세요.
프레이야님의 치밀한 감성이 그림으로는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해요.
 

 

 

이 책을 읽고 있다.

「3시의 나」, 아사오 하루밍이라는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가

1년 동안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오후 3시에 자기가 뭘 했는지를 짧게 기록해 둔 것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글의 기획이, 아이디어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그것도 막내가 이제 겨우 초등 2학년인 나같은 아줌마는

오후 3시에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 뻔해서

오히려 오전 11시쯤에 벌어지는 일들을 써야 글이 다양해질 수 있겠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궁리로 머리를 굴려보기도 했다.

 

책에 쓰여진 작가의 사는 모습이 활발하고 다양해서 젊은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읽다가 중간에 작가 소개글을 확인해보니 1966년생,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았다. 

이런 나이에도 이런 글이 나올 수 있구나,

난 나에게 다양한 무게의 추를 너무 많이 올려놓고 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내 사는 모습을 돌아보며 고민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해진다.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 읽는 기분이 든다.

40대인 내가 10대나 20대 혹은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던 30대에 써놓은 일기들을 읽으면

당시엔 힘들고 지겹게 느끼던 것들이 사랑스럽고 기특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뭐, 때론 창피하고 부끄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두툼하게 쌓인 지나온 시간의 더께가 그런 것들 마저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해줘서,

오래된 일기장을 읽고 나면  조금은 내가 대견하고 심지어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일들을 잘 견디며 살아줘서 고마워, 하는 기분이랄까.

오래된 일기같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은 지금의 내 모습에 그렇게 너그러워지고 있었다.

 

내 곁에서 따뜻한 인연이 되어준 사람들과 날카로운 상처가 되었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는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며 '간장 끼얹는 걸 깜빡 잊은 두부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난 한번도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다.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너무 강하게 나를 휘감아서

거리를 두고 표현하고 묘사할 만큼의 여유를 챙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정말 작가구나, 싶었다.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넘치지 않도록 가스불을 지켜보며 조절하듯

분노와 미움을 객관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작가적 능력이 아니고 뭘까. 

일반인인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이르지 못한 경지다.

그나마 이 작가가 나보다 나이가 쬐끔 더 많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그 쬐끔의 차이 동안 과연 나는 감정의 가스불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될까?)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그 느낌을 소중히 기록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게를 자르고 있는 엄마의 손가락에 끼워진 핑거코트, 자주 가는 식당이나 카페, 상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다정하거나 의아하거나 꼴불견인 모습들, 산책하다가 발견한 네모난 유채꽃밭, 같이 사는 고양이 냥코, 

지인들과 어울려 함께 한 식사와 여행 그리고 여러가지 일과 업무들. 읽은 책들에 대한 글들이 짧지만 친근하다.

너무 친근하게 느껴져서, 얼마전 한 종교방송에서 하느님을 섬길 줄 모르는 일본 같은 국가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부르짖던 어느 성직자의 주장이 정말 이루어진다면. 이 작가가 너무 슬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될 정도였다.  (물론 그 성직자의 말을 믿는 건 아니다.  TV를 보면서도 저 성직자 좀 오버한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일본에서 잘 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라면 나와는 사는 모습이 참 많이 다르겠지만

때론 우울에 빠지고, 지독한 감기로 고생하고, 무력감에 시달리고, 일에 지치고, 실수하고, 속상해하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힘을 빼고 쓴 글이라서인지 이질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내 인생이야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지금까지 살아온 모양대로 그렇게 주욱 이어가겠지만

그런 삶이라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되는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마치 나태주 시인의 <풀꽃>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나온다. 

'수수한 것은 가까이 다가가야만 눈에 보인다.'라고.

수수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상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다정하게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은 충동이 용솟음치게 만드는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한 건

우리의 일상은 소소할지언정 시시하지는 않다는 것.

나름 잔잔하게 빛나며 흘러가고 있다는 것.

 

음,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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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라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이제 정말 말그대로 '노모'가 되어버린 우리 엄마와 늦둥이 귀여운 딸의 손을 잡고 봄햇살 따사로운 길을 걸어서 갔다. 손에는 작은 카네이션 꽃다발을 사들고, 아직은 연두빛 머금은 여린 풀과 나무들 사이를 지나서. 너무나 완벽하게 화사한 이런 날에는 아버지도 천천히 산책이라도 하고 싶으실 것 같았다.

워낙 말씀이 없고 과묵했던 아버지가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이런 꽃은 뭐하러 돈 주고 사와?"하시며 저쪽 길에서 걸어오신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아쉽고 애틋하다.

 

어린 날에 죽음은 얼마나 무서웠는지, 간혹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이 다음에 내가 죽어서 땅속에 들어가면 이렇게 캄캄하겠구나'하는 생각에 괜한 설움이 복받쳐 훌쩍훌쩍 울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자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오죽하면...'하는 마음으로 죽음보다 무거웠을 삶의 고통에 대해 안쓰러워할 줄도 알게 됐고,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유도 생긴 것 같다.  그렇다고 죽음이 무섭지 않다는 건 아니고...

 

얼마 전에 어린이 책 하나를 읽었다.  『나와 그 녀석의 마지막 경주』라는 책이다.  사사키 히토미라는 일본 작가의 책인데, 알라딘에서 검색해봐도 이 작가의 책은 이 책 한 권 뿐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골랐을 때는 남자 아이들의 성장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팽팽한 경쟁과 갈등을 경험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그런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이 책 제목에 들어있는 '그 녀석'은 돌아가신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일찍 부모님을 잃은 다케시의 아버지를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두어 키워주셨고, 그래서 다케시에게는 친할아버지 할머니나 다름없는 그런 분들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를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리움에 시달리며 장례를 치르고 있던 다케시에게 히사오라는 또래 남자 아이가 나타나 달리기를 하자고 한다.  그 히사오가 책 제목의 '그 녀석'이고 할아버지의 영혼이다. 

 

다케시는 달리기를 잘 하는데 학교 친구인 다쿠야에게는 매번 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케시 앞에 등장한 어린 모습의 할아버지 히사오는 다쿠야 보다도 훨씬 더 가볍고 빠르게 잘 달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아버지는 젋은 시절 지구 운동회나 역전 경기에 출전하던 달리기 선수였고  마지막 역전 경기 감독으로 팀을 일등으로 이끌고 난 다음 쓰러지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에 이미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내가 놀러가도 언제나 빙그레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기만 했고, 어렸을 때부터 발이 빨랐다거나,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거나, 역전 경기의 감독을 했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나, 달리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의 쑥스러운 듯한 얼굴. "다케, 느려"라고 말하면서 앞질러 갔을 때의 자랑스러운 듯한 얼굴. 달린 뒤의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 그것을 보면 히사오가, 아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달리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어. 알려고 하지도 않았어."

생각하면 할수록 뱃속이 스윽 싸늘해진다. (p.91)

 

할아버지는 다케시에게 할머니 유코에게 전해주지 못한 선물을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언젠가 건강하게 다시 걷게 되면 주려고 했던 오래 전 결혼기념일 선물이었다.

 

아버지에게 가서 알량한 카네이션을 놓아두고 온 다음 이 책이 유난스럽게 내 마음에 들어와 덜그럭거린 건 나도 다케시처럼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돌아가신 후에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쓰여진 문장을 빌어 쓴다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에 이미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어떤 어린 시절이 있었는지, 꿈이 무엇이었는지, 해보고 싶으신 일은 없었는지, 지금 남겨진 우리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나도 하나도 아는 게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당신의 옛일들에 대해 아무런 말씀이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생전에 말씀을 하셨다고 한들 누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을까. 추억은 각자의 가슴 속에서만 영롱한 빛을 낸다. 밖으로 내뱉는 순간 씁쓸해질 뿐이라는 걸 이제 나도 안다.  추억이 너무 먼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그랬을 거다. 말씀을 꺼내시는 순간 어쩌면 아버지는 더 슬퍼지셨을 거다. 당신의 소중한 기억이 TV 광고보다 관심을 끌지 못했을 테니까.

 

요즘은 친정에 가면 가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첫 집에 대해서, 어느 날 엄마가 선물로 주었던 플라스틱 목걸이에 대해서, 어린 시절 있었던 크고 작은 해프닝의 분명하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에 대해서 엄마에게 묻곤 한다. 언젠가 엄마마저 떠나시고 나면 내 어린 시절에 대해서 아무도 제대로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섬뜩해서다. 내가 시시콜콜 캐물으면 엄마는 귀찮아하시면서도 오래된 사진첩까지 펼쳐 놓으시곤 한다.  엄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한 쪽이 아예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적도 있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죽음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갑자기 그 사람의 삶이 하나하나 궁금해지지만 정작 돌아보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놀라고 당황스럽다. 미안해지고 후회되기도 하고, 내가 사는 모습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곤 결국엔 이기적이게도 앞으로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잘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곤 한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등장하는 다케시 가족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러웠다.  서로서로에게 봄볕처럼 화사하고 따뜻한 기억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널 사랑하고 있어.

힘을 내.

우리가 함께라서 너무 행복해.

말만 해, 언제든 내가 도와줄게.

네가 날 이해하고 믿고 있다는 걸 잘 알아.

그런 말들이, 아니 말보다 더 강한 그런 따끈따끈하고 촉촉한 분위기가 가족 전체를 감싸고 있다고나 할까.

 

지구 대항 이어달리기도, 다쿠야와의 승부도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저 달린다. 내 발로, 바람을 가르며.

야호, 신난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신난다!'  '신난다!'  '신난다!'

몸속 깊은 곳에서 펄떡이는 숨결이 느껴진다.

'히사오....?'

그렇다, 이 느낌은 히사오의 것이다.

'내 안에 히사오가 있어!'

힘이 솟아났다.  기뻤다.  지금처럼 하면 어디까지고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히사오는 내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를 바랄 것이다.

이어달리기 바통처럼.

달리고 싶다! 웃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소망이 담겨 있다.  '별똥별' 같은 바통이다.   (p.124)

 

 

어쩌면 지금 여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혹은 소중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소망이 담긴 '별똥별' 같은 바통. 그러니 어디까지고 힘껏 달리기나 하라고, 소원을 이루라고,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떠난 다음 아무런 물음표도 남지 않을 수는 없을 터. 물음표가 남지 않는다면 이만큼 그립고 애틋하지도 않을 터.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떠난 다음 궁금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소식이 끊어진 친구, 헤어진 첫사랑, 돌아가신 부모님... 그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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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5-0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섬사이님이 궁금해요 잘지내시지요

섬사이 2013-05-09 09:25   좋아요 0 | URL
잇힝~ 나를 궁금해해줘서 고마워요.. 하늘바람님도 잘 지내시죠?

프레이야 2013-05-0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죽음이란 건 나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이기도 하군요.^^
오랜만에 좋은 글 반가워요^^

섬사이 2013-05-14 14:07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만큼 세상에 남은 나의 기억이 흐릿해진다고 할까요.

순오기 2013-05-1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부모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많지요.ㅠ
그분들이 당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도 기회도 드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땐 너무 늦었고요.ㅠ
오랜만의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짠하네요.
앞으로 알라딘에서 자주 뵈어요, 우리~ ^^

섬사이 2013-05-14 14: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자주 서재를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왜 이리 게으름을 부리는 걸까요. ^^
 

 

 

 

 

 

 

 

 

 

 

 

 

 

 

 

 

 

 

 

막내가 2년동안 다니던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대기자로 2년 반을 기다려 6살에 겨우 들어갔던 어린이집이고,

그만큼 마음에 들었었다.

믿을 수 있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었는데

어느새 졸업이라니, 아쉽고 서운하다.

한편으로는 경쟁의 교육시스템 안으로 아이를 밀어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럽기도 하고.

 

 

졸업가운을 차려입은 아이들의 모습은 천진하고 귀여웠다.

졸업의 의미를 알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 

졸업하기 며칠 전부터 막내에게

"이제 졸업하면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가.

친구들이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들구.

그러니까 열심히 가서 열심히 놀고 와."

라며 알려줬는데도 이별은 아이들에게 너무 추상적인 것이었나보다.

원장님과 선생님들은 목이 메여 말씀도 잘 못하시고

급기야 눈물을 쏟는데,

아이들은 조잘조잘 참새처럼 즐겁다.

 

졸업하는 아이들 모두를 축복해주고 싶었다.

다시 오지 않을 유년기의 행복한 기억들을 잊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기도 했다.

 

아이들과 부모들 앞에 새로운 도전이 놓여있구나.

 

나와 막내가 받은 도전장이다.

그래, 어디 12년동안, 어쩌면 16년동안 잘 싸워보자!!

 

아이의 교육을 도전으로,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다니!

누구와 뭘 얻기위해 싸워야 하는 건지....

이런 마인드를 뜯어고치는 게 우선이지.

 

큰딸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지겨운 입시전쟁을 끝내고 난 후의 편안함이 얼굴에 묻어난다.

요즘은 수강신청을 앞두고 시간표 짜기에 여념이 없다.

중학교도 같은 학교를 나왔고, 고등학교 때에는 2,3학년 같은 반이었던

걸그룹 멤버인 친구가 반 친구들을 콘서트에 초대해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콘서트에도 다녀오고,

(졸업식 날 걸그룹 친구 앞에 앉아있던 큰딸이 그 친구보다 더 크게 나온 사진이

인터넷 기사에 떠서 우리 가족과 시부모님, 친척들까지 보고 한참 웃기도 했다.)

이번 주엔 2박3일간의 과 OT가 있다며 걱정도 했다가 기대도 했다가..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질 만큼 잘 지내고 있다.

 

12년 후, 막내에게서도 저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차근차근 즐겁게 막내 손 꼭 잡고 가자, 그래,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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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2-2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따님의 격차가 상당하네요.^^
하나를 끝내놓으니 다시 새로운 도전(?) 시작이네요.
두 따님들의 졸업과 입학을 축하드리옵니다.
오랜만이어요.잘 지내시죠?^^

섬사이 2012-02-25 16:54   좋아요 0 | URL
12살 차이에요. 셋째라서 그런지 초등입학이 설레고 뿌듯하기보다 심난하고 좀 꾀가 나요. 축하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무스탕 2012-02-23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들의 섭섭함은 알아주지도 않고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아가들이 정말 천진난만 그 자체네요 ^^
두 아가들의(애들은 크든 작든 무조건 아가!) 졸업을 축하합니다. 입학도 축하드리고요~

섬사이 2012-02-25 16: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크든 작든 다 아가지요. 무스탕님, 그동안 건강하게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왔는데 반겨주시는 정다운 분들이 계셔서 참 좋아요.

마노아 2012-02-2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두 따님의 졸업을 축하해요. 어린이집 졸업가운이 엄청 예쁘네요. 사진 속에서 까르르 웃음 소리가 들릴 것 같아요. ^^

섬사이 2012-02-25 17: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요즘은 졸업가운도 여러 디자인으로 예쁘게 잘 나오나봐요. 철모르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오히려 아이답다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선생님들께는 좀 민망했어요.

하늘바람 2012-02-2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업가운이 참 예쁘네요.
이제 학교 들어가는군요
두따님 조업 축하드려요

섬사이 2012-02-25 17:0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큰애들 초등학교 다닐때와는 또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이긴 해요. 요즘 그냥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그 불안함을 달래고 있어요.

프레이야 2013-05-0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가 이제 초등생이 되었군요. 축하해요^^
여러모로 새로우실 것 같아요.
졸업가운이 어쩜 저리 이뻐요. 사각모도 쓰고 의젓하고 귀여워라^^
큰아이도 대학진학 하였다니 축하 드려요.
그동안 애 많이 쓰셨어요. 즐겁게 다니고 있지요?

섬사이 2013-05-14 14:0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아님. 이거 재작년 페이퍼예요.
제가 너무 서재에 무심했다는 질타를 이런 식으로 하시는군요. ㅠㅠ

프레이야 2013-05-14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고 섬사이님, 제가 노안으로 침침해요ㅎㅎ 2013으로 봤네요. 재작년 아니고 작년 페이퍼?ㅋㅋ
귀여운 막내 학교 잘 다니고있지요? 큰아이는 그럼 대학 몇학년인거에요? 제 큰딸은 올해 이학년이랍니다^^
가끔 힘들어하네요. 그 나이 때의 저를 돌아보게 되어요. 막막하고 그랬지요

섬사이 2013-05-21 21:54   좋아요 0 | URL
하하, 노안... 저도 만만치 않아요. 돋보기 안경을 사야하나 고민 중이에요.
우리집 큰딸도 대학 2학년이에요. 막내는 워낙 노는 걸 좋아해서 학교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잘 다니고 있어요.
전 큰딸을 보면 부러워요. 암울했던 저의 대학시절과는 달리 큰딸은 아직까지는 즐겁고 밝더라구요.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20대는 빛나면서도 불안한 시기인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