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라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이제 정말 말그대로 '노모'가 되어버린 우리 엄마와 늦둥이 귀여운 딸의 손을 잡고 봄햇살 따사로운 길을 걸어서 갔다. 손에는 작은 카네이션 꽃다발을 사들고, 아직은 연두빛 머금은 여린 풀과 나무들 사이를 지나서. 너무나 완벽하게 화사한 이런 날에는 아버지도 천천히 산책이라도 하고 싶으실 것 같았다.
워낙 말씀이 없고 과묵했던 아버지가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이런 꽃은 뭐하러 돈 주고 사와?"하시며 저쪽 길에서 걸어오신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아쉽고 애틋하다.
어린 날에 죽음은 얼마나 무서웠는지, 간혹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이 다음에 내가 죽어서 땅속에 들어가면 이렇게 캄캄하겠구나'하는 생각에 괜한 설움이 복받쳐 훌쩍훌쩍 울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자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오죽하면...'하는 마음으로 죽음보다 무거웠을 삶의 고통에 대해 안쓰러워할 줄도 알게 됐고,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유도 생긴 것 같다. 그렇다고 죽음이 무섭지 않다는 건 아니고...
얼마 전에 어린이 책 하나를 읽었다. 『나와 그 녀석의 마지막 경주』라는 책이다. 사사키 히토미라는 일본 작가의 책인데, 알라딘에서 검색해봐도 이 작가의 책은 이 책 한 권 뿐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골랐을 때는 남자 아이들의 성장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팽팽한 경쟁과 갈등을 경험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그런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이 책 제목에 들어있는 '그 녀석'은 돌아가신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일찍 부모님을 잃은 다케시의 아버지를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두어 키워주셨고, 그래서 다케시에게는 친할아버지 할머니나 다름없는 그런 분들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를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리움에 시달리며 장례를 치르고 있던 다케시에게 히사오라는 또래 남자 아이가 나타나 달리기를 하자고 한다. 그 히사오가 책 제목의 '그 녀석'이고 할아버지의 영혼이다.
다케시는 달리기를 잘 하는데 학교 친구인 다쿠야에게는 매번 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케시 앞에 등장한 어린 모습의 할아버지 히사오는 다쿠야 보다도 훨씬 더 가볍고 빠르게 잘 달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아버지는 젋은 시절 지구 운동회나 역전 경기에 출전하던 달리기 선수였고 마지막 역전 경기 감독으로 팀을 일등으로 이끌고 난 다음 쓰러지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에 이미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내가 놀러가도 언제나 빙그레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기만 했고, 어렸을 때부터 발이 빨랐다거나,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거나, 역전 경기의 감독을 했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나, 달리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의 쑥스러운 듯한 얼굴. "다케, 느려"라고 말하면서 앞질러 갔을 때의 자랑스러운 듯한 얼굴. 달린 뒤의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 그것을 보면 히사오가, 아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달리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어. 알려고 하지도 않았어."
생각하면 할수록 뱃속이 스윽 싸늘해진다. (p.91)
할아버지는 다케시에게 할머니 유코에게 전해주지 못한 선물을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언젠가 건강하게 다시 걷게 되면 주려고 했던 오래 전 결혼기념일 선물이었다.
아버지에게 가서 알량한 카네이션을 놓아두고 온 다음 이 책이 유난스럽게 내 마음에 들어와 덜그럭거린 건 나도 다케시처럼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돌아가신 후에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쓰여진 문장을 빌어 쓴다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에 이미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어떤 어린 시절이 있었는지, 꿈이 무엇이었는지, 해보고 싶으신 일은 없었는지, 지금 남겨진 우리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나도 하나도 아는 게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당신의 옛일들에 대해 아무런 말씀이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생전에 말씀을 하셨다고 한들 누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을까. 추억은 각자의 가슴 속에서만 영롱한 빛을 낸다. 밖으로 내뱉는 순간 씁쓸해질 뿐이라는 걸 이제 나도 안다. 추억이 너무 먼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그랬을 거다. 말씀을 꺼내시는 순간 어쩌면 아버지는 더 슬퍼지셨을 거다. 당신의 소중한 기억이 TV 광고보다 관심을 끌지 못했을 테니까.
요즘은 친정에 가면 가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첫 집에 대해서, 어느 날 엄마가 선물로 주었던 플라스틱 목걸이에 대해서, 어린 시절 있었던 크고 작은 해프닝의 분명하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에 대해서 엄마에게 묻곤 한다. 언젠가 엄마마저 떠나시고 나면 내 어린 시절에 대해서 아무도 제대로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섬뜩해서다. 내가 시시콜콜 캐물으면 엄마는 귀찮아하시면서도 오래된 사진첩까지 펼쳐 놓으시곤 한다. 엄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한 쪽이 아예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적도 있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죽음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갑자기 그 사람의 삶이 하나하나 궁금해지지만 정작 돌아보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놀라고 당황스럽다. 미안해지고 후회되기도 하고, 내가 사는 모습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곤 결국엔 이기적이게도 앞으로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잘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곤 한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등장하는 다케시 가족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러웠다. 서로서로에게 봄볕처럼 화사하고 따뜻한 기억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널 사랑하고 있어.
힘을 내.
우리가 함께라서 너무 행복해.
말만 해, 언제든 내가 도와줄게.
네가 날 이해하고 믿고 있다는 걸 잘 알아.
그런 말들이, 아니 말보다 더 강한 그런 따끈따끈하고 촉촉한 분위기가 가족 전체를 감싸고 있다고나 할까.
지구 대항 이어달리기도, 다쿠야와의 승부도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저 달린다. 내 발로, 바람을 가르며.
야호, 신난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신난다!' '신난다!' '신난다!'
몸속 깊은 곳에서 펄떡이는 숨결이 느껴진다.
'히사오....?'
그렇다, 이 느낌은 히사오의 것이다.
'내 안에 히사오가 있어!'
힘이 솟아났다. 기뻤다. 지금처럼 하면 어디까지고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히사오는 내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를 바랄 것이다.
이어달리기 바통처럼.
달리고 싶다! 웃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소망이 담겨 있다. '별똥별' 같은 바통이다. (p.124)
어쩌면 지금 여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혹은 소중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소망이 담긴 '별똥별' 같은 바통. 그러니 어디까지고 힘껏 달리기나 하라고, 소원을 이루라고,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떠난 다음 아무런 물음표도 남지 않을 수는 없을 터. 물음표가 남지 않는다면 이만큼 그립고 애틋하지도 않을 터.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떠난 다음 궁금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소식이 끊어진 친구, 헤어진 첫사랑, 돌아가신 부모님... 그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