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여 도서관에서 3회의 책모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제가 그 첫 시간. 몇 년 전에 책읽기 모임을 이끌어 주시던 신동호 시인께서 오셨다.
어제 이야기를 나눈 책은 [3시의 나].
선생님까지 9명이 모여 앉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각자 꽁꽁 묶어 간직했던 9개의 자루들이 한쪽 귀퉁이 실밥이 풀리면서 안에 담아두었던 뭔가가 흘러나와 각각의 서로 다른 향기를 풍기며 섞이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자루에서 흘러나오는 느낌과 생각의 향기들이 신선하게 다가와 이 시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숙제를 받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을 딱 1주일 동안 기록하는 거다. 이 책의 작가처럼..... 쓰는 게 부담스럽다면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했다. 책상 위를 찍어도 좋고, 주방을 찍어도 좋고, 거리를 찍어도 좋고...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체국에 들러 우편물을 보내고, 터벅터벅 햇살을 받으며 정류장까지 걸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매일 '다름'이 있다고,
또는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그것을 맞이하는 나의 '다름'이 있다고 그랬다.
수많은 오늘의 '다름'과 수많은 나의 '다름'이 중첩되면서 반짝이는 물결이 되어 흘러가나 보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고프다 할 아들의 간식으로 KFC 매장에 들러 할인행사중인 신메뉴 버거를 주문했다. 주문이 밀려서 패스트푸드의 면모를 읽고 1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포기하고 돌아나왔을 텐데, 15분의 기다림이 여유를 선물받은 듯 싫지 않았다. 주문한 버거가 나올 때까지 전면 유리창 앞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나의 '다름'이다.
어제 모임에서 눈물을 보인 K가 마음에 걸린다. 이런 일 저런 일로 몸도 마음도 아픈 모양이다. 언제나 의연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줬던 사람이라 더 안쓰럽고 마음이 간다. 카톡으로 '우리 같이 커피 마실까?'라고 보내려다 말았다. 너무 작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공허한 멘트라고 느낄 것 같았다.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에 적당한 때에 조용히 다가가 '커피 마실래?'하는 편이 나도 K도 더 편할 것 같았다. 아니면 따끈한 곰탕이라도... 시린 속을 채우고 데워주기엔 곰탕이 더 나으려나?
10월 중에 우리가 그린 그림들이 더미북 형태로 만들어져 11월에 있을 북페스티벌에 공개될 것 같다. 분주했던 지난 해가 따오른다. 11월까지는 단단히 각오하고 있어야할 듯.
이 그림은 일부분을 작업진행을 보기 위해 시험삼아 컬러프린트로 뽑아본 것이다. 이 부분에는 큰딸의 그림이 가장 많이 담겨 있다. 중국에 있는 큰딸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줬더니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아들이 큰딸의 스케치북 귀퉁이에 낙서처럼 끄적여 그려놓았던 새도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가는 걸 보며 한 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2013년도, 그림 작업도 저어기 끝이 보인다. 서운함에도 불구하고 기분 좋은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