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에 찍은 우리집 화단 모습이다.  그 사이에 화단 풍경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비니가 카메라 렌즈의 지문을 잔뜩 묻혀놓은 걸 모르고 그냥 찍었더니 사진이 뿌옇다.



금낭화다.   해마다 더 무성해지고 있다.  기특한 녀석~

 



땅을 가르고 올라오는 저 싹의 힘.. 정말 놀랍다.  십자로 갈라진 땅의 균열을 일으킨 녀석은 바로 백합이다.


백합 싹이 돋아 잎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싹이라 다른 것들보다 성장이 남다르다.

 





에어컨 실외기 아래에 핀 하얀 제비꽃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자라나 꽃을 피웠다.  내가 제비꽃을 좋아하는 걸 알고 찾아왔나보다.  우리집 화단을 찾아와 꽃을 피워준 게 너무 고맙고 반갑다.

 



큰꿩의 비름..  재작년에 한포기 사다 심은건데 올해 포기를 나눠줬더니 이만큼이 되었다.  금낭화가 너무 무성해져서 햇빛을 가리길래, 며칠전 옮겨 심어주었다.



올해 새로 심은 산수국도 싹이 돋았다.  세 개를 심었는데 그중 잎이 제일 많이 나온 녀석이다.  산수국은 땅이 산성이냐 염기성이냐에 따라 꽃의 색이 다르다고 해서 꽃을 더 기다리고 있다.  올해가 첫해라서 꽃이 잘 필지 걱정이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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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싹들의 힘이 느껴져요.
주인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얘들아~ 무럭무럭 자라렴. ^ ^.

섬사이 2007-05-09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잘 커줘야 할텐데... 베란다 내다 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곤 한답니다.

치유 2007-05-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금낭화가 여기도 너무 이쁘게 피었네요..산수국 궁금해요..어떤 색의 꽃이 필지,.모두 모두 님의 사랑받으며 이쁘게 뽐내며 서있으려 할거에요..

섬사이 2007-05-0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그래줬으면 좋겠어요. 그저께는 장미에 붙어 있는 진딧물을 징그러운 걸 꼭 참고 잡아주었는데 그 녀석이 그런 제 마음을 알까요?

향기로운 2007-05-0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뻐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시는 섬사이님 부럽습니다^^

무스탕 2007-05-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쁘다.. 이쁘다.. 이쁘다.. ☆.☆
작은것들의 힘은 정말 대단해요.. 정말 경이로워요..

섬사이 2007-05-1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 님 / 화초를 잘 기르는 분들이 많은데요, 뭐.. 정말 초록엄지를 갖고 태어나신 것 같은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전 심어놓고 보는 것은 좋아하는데 아직 많이 서툴러요. 그래서 꽃나무들이 더 고생이죠. 주인을 잘못만나서..^^

무스탕님 / 싹이 나오거나 봄에 새잎이 돋아나는 걸 보면 정말 감탄이 저절로 쏟아집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제가 용기를 얻기도 해요.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힘을 내곤 하죠. 또 금방 축 처져버리기도 하지만..^^
 

1. 평안히 잘 지내셨습니까?

 네. 오늘 새벽에 일어나 36인분의 도시락을 쌌지만 그래도 거뜬할만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단지 이 독서문답이 저를 무지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만 빼구요.  전 이런 독서문답을 할만큼 소양이 닦여있지 않은 사람이라 무지무지 긴장하고 있습니다.

2.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예, 좋아하고 있습니다. 

3.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그냥 좋습니다. (좋아서 좋다고 한 것인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시면...  대장금 버전^^)

4.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글쎄요, 다달이 읽은 책을 세어보고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근데 전 좀 속도가 느린 편이라 그림책이나 짧은 동화책들을 빼면 한달에 열 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5.주로 읽는 책은 어떤 건가요?

청소년 소설이나,  동화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랑 같이 읽다 보니까 그렇게 되네요.  인문, 문학 서적들도 가끔 읽구요.

6. 당신은 책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창문? 또는 하우젠 세탁기? 또는 무선주전자?

7.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6번 질문에 대한 답변이랑 연관되는 거로군요.  책이 창문이라면 독서는 창문을 열고 바깥을 만나고 내 자신을 환기시키는 작업이 되겠지요.  책이 하우젠 세탁기라면 독서는 내 늘어진 정신과 영혼에 대고 "살균 세탁 하셨나요?"라고 묻는 행위이고, 책이 무선주전자라면 나를 온도에 맞춰 따뜻하게 데우기도 하고 뜨겁게 끓이기도 하는 작업입니다.

8. 한국은 독서률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너무 지쳐있기 때문 아닐까요?  너무 지쳐서 시간이 날 땐 책을 읽기보다는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각박한 사회현실의 반영 아닐까요?  책읽기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시간을 내어 책을 펴 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는 책을 고르고 읽는 행위 자체가 너무 귀찮을테니까요.  
그러고보면 어릴 때부터 너무 입시위주 교육에 치여 독서가 습관화될 시기를 놓쳐버린 게 가장 큰 근본적인 이유가 되겠네요.

9. 책을 하나만 추천하시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요.

10.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에게조차 거침없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조르바의 삶의 자세가 너무 좋거든요.  제가 그렇게 살지 못해서 조르바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나 봐요.     

11.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문학을 더 많이 읽고 있어요.  비문학 쪽도 많이 읽고 싶은데,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아직은 집중력이 딸려서요.  늦둥이 막내가 좀 더 자라면 독서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읽는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해봅니다.

12.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당연히 책 아닌가요? 

13.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비문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네요.  하지만 말 그대로 보자면, 요즘 소비되지 않는 문학도 있나요?  모든 것이 소비되고 있는 세상인 것 같은데..   말자체가 이상하단 생각이 드네요.

 14.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15.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 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그런 적이 없으니까 기분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려운 기쁨이 될 것 같네요.

16.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지는 않습니다.  전 그냥 이 작가의 이 작품이 좋고, 저 작가의 저 작품이 좋다는 식입니다.  예를 들면 하루키의 경우 <상실의 시대>는 너무 좋았지만,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나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레지어 위를 흐른다> 는 별로 였습니다.   린드그렌의 경우 <미오, 나의 미오>는 참 좋았지만 <얄미운 카알손>은 별로였구요.   늘 이런 식이라 특별히 어느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네요. 

17.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없으니까 작가 분들 모두에게 말씀드리죠.  "고맙습니다~^^"   저에게 창문을 내주셔서, 저를 살균세탁해주셔서, 저를 따뜻하게 데워주셔서..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

18.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음.. hnine님, 앤디뽕님, 무스탕님, 만치님, 이매지님, 승연님.. 향기로운님도 아직 안하신 거 딱 걸렸어요.  향기로운 님도 추가 합니닷~~~!!! ㅋㅋㅋ

내가 바통을 받을 땐 무척 당황스러웠는데 바통을 넘길 땐 쾌감을 느끼게 되는 군요.하하하

--- 휴, 너무 어렵네요.  진땀이 삐질삐질..  독서문답을 하면서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저의 소양부족을 많이 느낍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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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0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저도 바통 넘겼는데요 ㅎㅎ
하우젠세탁기, 재미있어요. 살균세탁하셨나요?? 이건 저한테도 딱 해당되는
말이에요. 전 AEG... 근데 님, 전, 18문항이던데요^^

섬사이 2007-05-0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한테서도 바통이 넘어왔었군요. ^^ 제가 페이퍼를 올리던 중간에 잘못해서 '등록하기'를 눌러버렸거든요. 이제 18문항 다 채웠어요. ^^

무스탕 2007-05-0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저도 이미 작성하여 올렸어요 ^^
그리스인 조르바... 제목은 알고 있는데 읽지 않은 책이네요. 기회가 닿는다면 꼭 읽어볼게요..
글고.. 36인분을 손수 제작(?) 하셨단 말씀? 어우어우어우~~ 어깨 안빠지셨어요? @_@

섬사이 2007-05-0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그러셨구나. 얼른 가서 읽어봐야지. 그리고 36인분이라지만 김밥은 주문했구요, 반찬 몇가지만 제가 더 보탰어요. 주문한 김밥 찾아서 도시락 포장하는 일이 시간이 더 많이 걸린 것 같아요. ^^

홍수맘 2007-05-0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세요. "36인분" 전 아예 도망가고 말껄요.
독서는 "무선 주전자!"라는 님의 말에 "역시~" 소리가 납니다. 너무 잘 읽고 가요. ^ ^.

치유 2007-05-0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대단하시네요..그리스인 조르바는 저도 읽으며 그런 생각 했더랍니다..
8번 인텨뷰에 저도 공감 대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사랑스런 님..추천 백만번 하고 싶지만 한방 뿐이라네요..*^^*

섬사이 2007-05-0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닥치니까 해낼 방법을 찾게 되더라구요. 홍수맘님도 닥치면 너끈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랍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예요. 홍수맘님 무선 주전자에서는 끓으면 "역쉬쉬쉬쉬~~~"하고 소리가 나나요? ㅋㅋㅋ ^^

섬사이 2007-05-0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사랑스럽다 불러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사와요~~ 이 가슴떨림을 어찌 감당하라고,,,, 얼른 달려와 안아주셔요~~ 부끄부끄..

향기로운 2007-05-0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정말^^;;;; 섬사이님의 재미난 글 잘 읽었어요^^;; 저는 모두가 잠잠할 때 할래요..^^;;

섬사이 2007-05-1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잖아요. 배꽃님으로부터 바통을 확인하는 순간 못본 척 눈감아 버릴까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정면돌파하기로 마음 먹었죠. 시작하신 분이 계시면 마치는 분도 계시죠. 님은 마치는 분이 되셨어요. 저처럼 물귀신이 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선 좋은 선택이셨어요.
 

  그대는 별인가 

                         -시인을 위하여

 

하늘의 별처럼 많은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모래
반짝이는 건 반짝이는 거고
고독한 건 고독한 거지만
그대 별의 반짝이는 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는 반짝인다"고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대의 육체가 사막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밤이 되고 모래가 되고
모래의 살에 부는 바람이 될 때까지
자기의 거짓을 사랑하는 법을 연습해야지
자기의 거짓이 안보일 때까지.

 

                                                 정현종

--------------------------------------------------

언제쯤 반짝일 수 있는 거지?
언제쯤이면 나의 거짓까지 껴안아줄 수 있는거지?
그게 언제쯤이냐구.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은데,
나의 거짓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면.
네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반짝이지 않아도 난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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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던 바다코끼리가 해변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녀는 바다코끼리에게 먹이를 갖다 주고 관찰 중이란다.  

바다코끼리가 해변에 올라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휴식과 생식, 배변 뿐이지 않을까?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끔 바다코끼리나 바다사자 같은 것들이

해변에 떼지어 있으면서 뒹굴거리고 짝을 찾고 교미를 하고 새끼를 돌보는 장면들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바다코끼리가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없다고 했다. 

들을 수는 있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단다.

바다코끼리에게 귀가 있던가? 

어쩌면 귓볼이나 귓바퀴, 귓등 그런 부분들 없이 귓구멍 하나만 몸 어딘가에

조그맣게 뚫려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또 바다코끼리가 해변에 올라와서도 늘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하긴 바다코끼리는 바다에서 더 자유스러우리라. 

그런데 왜 해변에 올라오는 걸까..

물고기나 고래처럼 왜 바다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그 육중하고 둔한 몸으로 해변에 올라와 뒹굴면서 시선은 바다에 두고 있는걸까.

왜 해변에 올라와 그녀를 귀찮게 구는 걸까.

바다코끼리는 그녀의 사랑이 그리운 걸까.

바다 속에서 자유를 누리다가 문득 외롭고 그리워지는 걸까.

 

전화를 통해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야말로 외로웠다.

바다코끼리는 자유와 그리움을 물고 살고,

그녀는 기다림과 외로움을 물고 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바다코끼리가 되어 함께 바다로 들어가거나

바다코끼리가 '그'가 되어 그녀와 함께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역'이 서로 다른 두 개체가 함께 사는 모습은 억지스러웠다.

 

오늘도 그녀는 바다코끼리에게 먹이를 줄 것이다.

바다코끼리에겐 귀가 없다. 

있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바다코끼리에겐 바다소리만 들릴 뿐이다.

 

오늘은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하게 될 것 같다.

 

2007 / 5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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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이신가 봐요? 어딘지 모르게 아픔이 느껴져요.

비로그인 2007-05-0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코끼리를 볼 수 있는 곳이 어딜까요? 우리나라는 아닐 것 같은데,.,

섬사이 2007-05-0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 네, 아픕니다. 아플 때가 많은 친구죠.

체셔님 / 그 곳이 어딘지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네요. 워낙 별난 친구라..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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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이 유행이다.  책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과학과 요리가 만나기도 하고, 예술과 역사가 만나기도 하며, 동화와 철학이 만나기도 한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도 이런 퓨전도서(이런 명칭이 있는지 모르겠지만)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통해서 철학을 이야기 하는.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철학개론 강의를 듣고, 몇 번 쯤 <인간본질에 관한 일곱가지 이론>이라든가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등등의 철학 관련 책들을 읽었었다.  그런데 그 얄팍함이 어디가랴.  대학을 졸업하고 15년을 훌쩍 넘겨버린 시점에서 철학을 논하던 교수님의 카리스마 넘치던 강의도 친구들과 모여 앉아 강독했던 책들의 내용도 흐릿한 윤곽만 겨우겨우 막연하게 떠오를 뿐이다.

이제 한 번 덤벼볼까 하는 용기마저 꺾여버린 듯한 상황에서 "철학은 몰라도 영화얘기라면 혹시?"하며 겁도 없이 덥썩 잡은 책이다.   당연히 저자가 책을 통해서 말하는 철학에 관한 내용에 대해  반박하거나 이의를 제기할만큼의 철학지식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이 리뷰는 극히 내 개인적인 느낌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저에 깔아둘 수밖에 없다.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이 책의 장점은 내 일상의 삶에서 잠시 물러나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지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내가 나의 미래와 현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그리고 내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삶에 대한 나의 인식에서 잘못된 부분은 무엇인지.

내게 철학은 이론이었고, 철학자 그들만의 심오한 사상이었고, 삶과 동떨어진 난해함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비추는 철학이라는 거울을 보게 된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이 책을 쓴 저자가 철학을 솜씨좋게 풀어간 덕분인지, 아니면 더께더께 쌓인 나이만큼 내 삶의 품이 조금은 더 넓어진 덕분인지, 아니면 그 둘 다 때문인지 그건 모르겠다.  피타고라스의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한 정의, 파이어아벤트의 왼손잡이의 예술에 대한 논의, 공자의 화이부동과 동이부화의 가르침, 하이데거가 말하는 '있음'과 '있는 것'의 차이,  니체의 춤과 망각과 기억, 실존에 대한 외침, 포스트모더니즘의 '바깥'과 유목민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주장...  이 책에 소개되는 철학적인 논의들이 내가 받아들일 수있는 만큼의 크기와 깊이로 다가오는 것이 기뻤다.  

철학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학문일까?  나를 향한 시선과 타인과 세상을 향한 시선을 억지스럽지 않게 조율해주고 그리하여 나와 세상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학문은 아닐까.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저 너머까지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의 난해한 이야기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으로 점점 근시안이 되어가는 나의 손을 잡아끌고  넓은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의 탁트인 시야를 경험하게 해주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래서 다시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더 넓어진 시각 안으로 내 삶과 세상을 넉넉하고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그런 것... 치열하게 살지만 너무 매이지 않게 해주는 어떤 것...

책이 나를 선동하고 좌지우지하려는 듯한 느낌의 자기계발서들보다 훨씬 더 사려깊고 지혜로운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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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0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와 함께 저자의 철학적 해석이 괜찮더군요.
철들게 하는 학문, 맞는 것 같네요^^ 전,아직 멀었지만요.

섬사이 2007-05-0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저도 까마득하답니다. 물리적 나이와 심리,정신적 나이의 격차가 심해지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는걸요. 배혜경님은 우아하신줄만 알았더니, 겸손하시기까지.. 배혜경님을 통해서 아직도 저의 갈 길이 멀었음을 또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ㅠ.ㅠ

알맹이 2007-05-0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적 나이와 심리,정신적 나이의 격차가 심해지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는걸요 -> 이거 정말 제 얘기에요 -_-;; 이 책 찍어두고 갑니다~

섬사이 2007-05-0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뽕님, 물리적 나이와 심리,정신적 나이의 격차가 생기는 거, 인생 비극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카프카의 변신을 예로 들면서요. ^^

fallin 2007-05-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서 있는 이 지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이 말에 혹해서 주문합니다^^ 근데 제겐 좀 어려울 수도 있을 그런 책인 거 같아요. 아직은 쌓인게 없어서^^;;;

섬사이 2007-05-1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lin님,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제 서재에 오셔서 댓글까지 남겨주시니 감사해요. 저도 오랜만에 '철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읽은 건데 다른 철학책들에 비해서 받아들이기가 수월하더라구요,. 물론 어려운 부분들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영화 속 인물들과 줄거리와 연결되어 설명되니까 이해하기가 좀 더 쉬웠던 것 같아요. 님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