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던 바다코끼리가 해변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녀는 바다코끼리에게 먹이를 갖다 주고 관찰 중이란다.
바다코끼리가 해변에 올라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휴식과 생식, 배변 뿐이지 않을까?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끔 바다코끼리나 바다사자 같은 것들이
해변에 떼지어 있으면서 뒹굴거리고 짝을 찾고 교미를 하고 새끼를 돌보는 장면들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바다코끼리가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없다고 했다.
들을 수는 있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단다.
바다코끼리에게 귀가 있던가?
어쩌면 귓볼이나 귓바퀴, 귓등 그런 부분들 없이 귓구멍 하나만 몸 어딘가에
조그맣게 뚫려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또 바다코끼리가 해변에 올라와서도 늘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하긴 바다코끼리는 바다에서 더 자유스러우리라.
그런데 왜 해변에 올라오는 걸까..
물고기나 고래처럼 왜 바다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그 육중하고 둔한 몸으로 해변에 올라와 뒹굴면서 시선은 바다에 두고 있는걸까.
왜 해변에 올라와 그녀를 귀찮게 구는 걸까.
바다코끼리는 그녀의 사랑이 그리운 걸까.
바다 속에서 자유를 누리다가 문득 외롭고 그리워지는 걸까.
전화를 통해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야말로 외로웠다.
바다코끼리는 자유와 그리움을 물고 살고,
그녀는 기다림과 외로움을 물고 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바다코끼리가 되어 함께 바다로 들어가거나
바다코끼리가 '그'가 되어 그녀와 함께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역'이 서로 다른 두 개체가 함께 사는 모습은 억지스러웠다.
오늘도 그녀는 바다코끼리에게 먹이를 줄 것이다.
바다코끼리에겐 귀가 없다.
있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바다코끼리에겐 바다소리만 들릴 뿐이다.
오늘은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하게 될 것 같다.
2007 / 5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