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3월이 끝나간다.

도서관은 새로 열리는 강의들이 넘쳐난다.

내가 속해 있는 모임들도 올 1년을 어떻게 꾸려갈지 대강의 계획이 세워지고

본격적인 진행에 들어갔다.

 

1.

지난 한 해동안 책고르미는 서울의 산, 강, 궁, 길을 그림책으로 만드는 일 중에서

'산'을 맡아 일을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우리 아동문학의 거목을 돌아보다'라는 제목으로

방정환에서 권정생까지의 구비구비 곡절도 사연도 많은 우리의 아동문학사를 짚어가기로 했다.

그 첫단추를 아동문학사에 대한 강의를 듣는 걸로 계획,  

원종찬 선생님을 모시게 되어 지금 무척 설레며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강의를 다 듣고 나면 책고르미들이 모여 아동문학작품들을 읽고 공부해서

가을에는 바깥도서관을 열고 책잔치를 벌일 예정이다.

 

2.

6월부터는 시인 신동호 선생님을 모시고 8회에 걸쳐 책모임을 갖는다.

이 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녹취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볼까 논의중.

 

3.

지난 겨울, 도서관에 오는 유아들을 데리고 책놀이 시간을 맡아 진행했다.

겨울이 끝나자 3월부터는 도서관에서 초등2학년 문학교실을 맡게 되었다.

문학교실을 맡게 되자 1년동안 책놀이 활동가로서의 교육과정을 밟을 기회가 생겼다.

교육과정을 함께 할 10명의 사람들이 책놀이 창작소라는 모임을 꾸렸다.

가까운 초등학교의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될 것 같다.

도서관 문학교실, 초등학교 책놀이 활동... 커리큘럼을 짜고 준비하느라 머리속이 복잡하다.

 

4.

막내가 속해 있는 미술품앗이 모임 색깔아이에서는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작가 특유의 그림 기법을 배워 책을 만들기로 했다.

마당에 개를 키우신다는 이억배 선생님의 작업실을 막내는 제일 가고 싶어 한다.

아직 어떤 작가의 작업실을 갈 수 있을지는 미정이지만

이호백 선생님과 정승각 선생님은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꿈꾸고 있다.

도서관 관장님이 열심히 섭외(?) 중이니까 가능할 거라 믿는다.

색깔아이는 작년에 서울의 '강'에 대한 그림책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책을 만들지...

이미 스토리텔링 강의도 들었건만, 아이들은 고민이 없다.

아이 데리고 작업실 찾아다니며 일을 진행해 나갈 엄마들만 고민, 고민, 고민 중.

 

5.

놀기위한 3학년 아이들의 모임, 피노키오.

작년에도 참 열심히 놀러 다녔는데 올해는 움집체험이 계획 중이다.

아이들더러 움집을 만들어보라고 할 생각이다.

하루종일 땅만 파라고 해도 즐거워할 아이들이라는 걸 알기에

엄마아빠들까지 생각만으로도 싱글벙글이다.

올해도 열심히 돌아다니고 아이들에게 즐거운 기억들을 심어줘야지.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앙코르와트를 가자고 매달 회비를 내서 저축 중.

마음으로는 100번은 다녀왔을 앙코르와트다.

 

6.

해마다 여름에는 도서관 아이들이 2박 3일 캠프를 떠난다.

막내가 1학년이었던 재작년에는 목공과 건축이 주제였다.

꼬맹이들이 톱질, 망치질 해서 작은 의자도 만들고 놀이집도 만들었었다.

작년에는 생태, 세밀화 캠프. 생태 숲 해설가 선생님들과 북한산 숲을 거닐었고,

세밀화를 그렸다.

올해 도서관 여름캠프는 그림책에 나오는 집 만들기.

4,5명의 사람이 들어갈 크기의 집을 아이들이 만들게 될 것 같다.

 

7.

천문해석학 강의도 포기했고,

도서관에서 준비한 어린이들 대상의 여러 프로그램들에도 눈감아 버렸다.

특히나 도서관 노래모임인 노래소풍에서는 함께 노래할 어린이를 충원,

올해 두 번째 음반을 낼 예정이다.

첫번째 음반을 낼 때에도 막내를 참여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울 막내가 노래부르기 싫다고 딱 결정을 내려주는 덕에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막내도 10살.  마음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무리다.

욕심이 과하면 재앙을 부르기 마련.

열심히 노래소풍을 꾸려온 엄마들과 아이들을 응원하는 걸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앞으로 내 앞에 놓여진 일들을 어떻게 잘 헤쳐나갈까 생각하면 마음이 비장해진다.

정신없이 바빠진다고 해도 나름 보람있는 일이니까 괜찮은데,

어쩐지 책 읽고 끄적이는 일도 점점 멀어지고 더 멀어질 것만 같은 슬픔 예감...

내가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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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4-03-2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 문학교실에 저도 가고 싶네요!!

섬사이 2014-03-24 20:22   좋아요 0 | URL
우왕, 네꼬님~~
2학년 아이들 데리고 버벅버벅 헤매고 있어요.
문학교실에 오고 싶다는 네꼬님 댓글을 보는 순간!!!!
아, 네꼬님이 문학교실 선생님으로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어요. ^^
 

책을 읽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고, 한 2년 전에 신간평가단 활동을 할 무렵 읽고 싶은 추천 신간으로 올린 적이 있던 책이고(아쉽게도 선정되지는 않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현 작가의 책이다.  이 작가가 얼마나 솔직하고 섬세하게 아이들의 세계를, 그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지를 알기 때문에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는 제목이 오히려 기대감을 부추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몇 주 전에 구립도서관 3층 서가의 책꽂이 사이를 산책하듯,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눈으로 더듬으며 걷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아, 그래, 이 책이 있었지..  다시 만난 반가움에 덥썩 꺼냈다. 책표지 가운데가 껶였었는지 하얗게 금이 간 걸로 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던 걸까? 아니면 험하게 책을 다루는 누군가에게 걸렸던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이 책이 왜 뜨지 않았을까, 였다.적어도 김려령의 『완득이』만큼은 떠야 마땅한 책인데 말이다. 구립도서관 홈페이지에 가서 검색해보니 이 책의 대출횟수는 고작 13번. 완득이를 검색해보니 도서관에 점자책으로 두 권, 그냥 글책으로 두 권이 있었는데, 두 권의 글책의 대출횟수가 각각 133회, 222회다. 아마도 마케팅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깝다!'라는 기분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세속적인 발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서서 이 책을 가지고 청춘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겠다고 나선다고 한다면 나는 "음, 그 책은 그럴만 하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만큼 캐릭터들도 강하고, 이야기도 탄탄하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구석구석을 잘도 그려냈으며 그리고 무척 재미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 글쓰는 재주가 없는 나는 처절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다.  주로 너무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더 그렇다. 작품 자체가 그냥 막 좋은데 그걸 일일이 말로 혹은 글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아무런 의미 없는 짓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뭐라도 써보려고 했다가 결국 아무 것도 못 쓰고 넘어간 책들이 있다. 근데, 이 책이 그랬다. 리뷰를 쓰려고 했다가 포기하고 페이퍼로 돌렸다.  (2년 전에 서평도서로 선정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페이퍼로 돌리고도 한참을 헤맸고 지금도 헤매고 있다.  책은 두 번 읽었고, 밑줄긋기는 알라딘 밑줄긋기로 감당이 될 것 같지가 않아서 따로 한글파일에 12쪽에 걸쳐 컴 자판을 두들겨 댔다. 그러고도 아예 한 권을 통째로 필사 해버릴까, 생각했다. 마음에 와 닿는 몇 줄의 문장이 아니라 마음에 와닿는 복잡하고 디테일한 상황과 사건들이 대부분이라 '밑줄 긋기'의 형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얘기하든 그건, 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 될 것이다.

 

'전두환'으로 시작되는 열일곱 나금영의 남자들 이야기는 '강동원'으로 끝을 맺지만 사실 제목 '오, 나의 남자들!'과는 달리 꼭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두환'과 '강동원' 사이에는 160의 단신에 고운 미성을 가진 좋은 친구 '최강태진'과 동성애자 한상진 선생님, 고리타분 갑갑한 전교 1등의 선우완 오빠, 육사입학의 과업을 짊어진 금영의 오빠 나금호, 찌질하고도 찌질하고 다시 찌질한 오정우, 아버지 나성웅, 그리고 위험한 변 모씨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금영, 마루, 현지, 최강태진 4사람이 보여주는 '친구 사이'다. '친구란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이 네 사람은 정말 환상적인 최고의 친구들이다. 금영이네 집이 운영하는 '한마음 노래방'에서 자주 의기투합하는 이 네 명의 아이들은 나름 확고한 노래방 예술철학을 가졌고 10대의 모든 혼란과 방황과 의문과 갈등을 노래방에 쏟아버리곤 한다. 십대 그 빛나는 시기에 이런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산다는 것은 어쩌면, 뒤미처 무언가를 깨닫고 그로 인해 조금씩 외로워지는 것'(275쪽)이라고 해도 평생이 든든할 것이다.

 

노래방에 대한 우리의 세계관은 완벽하게 일치했으며 더할 수 없이 확고했다.  실력 있는 반주자와 신이 내린 목소리가 어우러진 전문가의 음악이 실용이라면, 노래방의 음악이야말로 예술 그 자체다. 잡음 섞인 반주에 불안한 음정으로 질러 대는 그 노래야 말로 100퍼센트 순수한 예술인 것이다.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실용적 음악이 아니라 오직 내 안의 나를 위한 진정한 예술이라고나 할까. (14쪽)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 나는 음, 이 책이 별 다섯개 그 이상의 청소년 책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겠구나, 라는 걸 알았다. 노래방은 금영이 선우완과 헤어지기로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장소이기도 하고, 금영이 저녁 8시 이후의 세계에 눈을 뜨고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루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금영이 '"서경 생과고의 명예를 드높이'려는 교장의 원대한 포부에 따라, 말하자면 스카우트된 학생'이며 강동원과 근접한 외모를 가진 선우완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렇다.

 

노래방까지 함께 왔으니 할 만큼 했다. 내가 곡 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노래방에서 팝송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헤어질 명분으로 충분하다. (146쪽)

 

 그리고 그걸 아무 말 없이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마을버스를 타자마자 현지, 마루, 태진이에게 문자를 날렸다. 현지와 마루는 앞다투어 전화를 걸어와서 왜냐고 물었다.

 "노래방에서 팝송을 부르더라니까."

 그 말 한마디에 현지와 마루는 나의 결단을 지지해 주었다. 아, 난 정말이지 친구 복이 있다. 예술적 동반자들과는 영혼이 통한다. (148쪽)

 

그러나 씩씩하고 발랄해 보이는 이 아이들, 현지, 마루, 태진이에게도 자기만의 상처들이 있다. 금영이가 '한마음 노래방'의 8시 이후의 세계를 알고 부모님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으로 아파하며 방황할 때 마루는 택시를 타고 달려와 금영을 다독이며

 

"좋아. 우정의 총량은 비밀의 총량과 같다! 감추고 싶은 치부라면 효과는 두 배! 이 언니도 한 건 털어놓으마.. (227쪽)

 

라며 자기의 상처와 치부를 다 내놓는다. 마루의 충고는 금영이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걸 용서하는 건 아니지만,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걸 부정하고 싶진 않다.'(290쪽)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변 모씨의 활약(?)이 있기도 했지만. 현지도 어두웠던 자신의 치명적 과거를 털어놓으며 괴로워한다. 그 모든 걸 아이들은 다 나누고 이해하고 '그래도 친구'라며 흔들리지 않는다.

 

뭐,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현지를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것이 설사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 해도 나는 내 친구 백현지를 좋아하니까. (201쪽)

 

이 책은 이 네 명의 단단한 우정을 토대로 학교와 가정과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려나간다. 아버지 나성웅과 아들 나금호가 보여주는 세대갈등, 기성세대의 이중성과 위선, 한상진 선생님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보여주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 찌질하고 치졸하고 비겁한 인간 군상, 위험한 사회, 무심한 공권력, 외모지상주의, 학력차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아니 견뎌내고 이루는 성장.

 

내가 여기에 뭐라고 쓰던 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 될 거라는 짐작이 맞았다. 이 책을 제대로 그릴 수 없어서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좁은 여백으로 12쪽, 밑줄긋기 파일을 열고 그걸 읽으며 만족하는 게 나의 최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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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4-01-16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궁금해요. 저도 도서관가서 찾아봐야겠어요.
 

아이 셋이 방학을 맞아서 느긋한 아침을 즐기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막내를 흔들어 깨워 준비시키고 집을 나섰다. 얼마 전에 알라딘에서 <가방 들어주는 아이> 연극 초대 이벤트에 댓글을 달았는데, 그게 당첨이 되었고, 오늘이 바로 그 공연을 보러가는 날이었다. 11시 공연이었지만 10시부터 티켓을 배부한다고 해서 앞자리에 앉고 싶은 욕심에 9시 20분에 버스를 타려고 서둘렀는데 버스를 20분이나 기다려야했다.  버스 안에서 벌써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막상 가보니 우리가 두 번째. 첫번째 도착한 사람은 연극공연 이벤트를 하니 빨리 댓글을 달아보라고 내가 알려줬던 동생. 

 

아이들은 앞자리 티켓을 받고 어른 두 명은 맨 뒷자리 티켓을 달라고 해서 받았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앉기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어린이 공연은 예의상 어른들이 뒤에 앉는 게 관람하러 온 아이들에게 좋다.

 

 

 

연극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종로 5가의 '더 씨어터'는 규모가 작은 소극장이었고, 그 덕분에 아이들은 무대의 호흡을 더 잘 맞춰가는 것 같았다. 원작의 뼈대를 해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각색도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아 좋았고. 원작과는 다르게 연극에서는 문방구 아저씨의 비중이 큰데, 마지막에  하얗게 내린 눈을 치우는 아저씨의 뒷모습에 관객들 모두 "오~~"하며 웃게 만드는 반전(?)이 있었다.  연극을 보고난 후의 관람평은 아이들도, 나도, 같이 본 동생도 '매우 만족'. 

 

거의 100명이 다 되는 인원을 초대해서 이렇게 예쁘고 훌륭한 연극을 선물해준 사계절 출판사에 감사. 그러고보니 지난 여름에도 사계절 출판사에서 하는 <일과 사람 전>에 다녀왔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일과 사람 시리즈' 중 『내가 만든 옷 어때?』의 그림을 그린 선현경 작가와 만나고 아이들이 전지로 옷을 디자인해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도서관 아이들이 신청을 해서 같이 다녀왔었다. 이래저래 사계절 출판사에게 고마운 일이 많구나.

 

같이 갔던 딸아이 친구를 데려와서 우리집에서 놀게 했다. 좋아라 노는 아이에게 어른된 도리로 해야 할 일은 간식 챙겨 주기.

집에 있던 또띠아를 꺼내서 피자를 만들었다. 아주 간단하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피자인데, 만들면서 마노아님이 생각났다. 너무 간단해서 시시한 이 레시피. 공개하자니 민망하지만, 뭐, 아무렴 어떠리. 어차피 내 서재는 아는 사람만 아는, 지극히 조용하고 한적한 서재니까, "고작 이런 보잘 것 없는 레시피라니!!!'하고 돌 던질 사람은 내가 알기론 내 서재에 오는 사람 중엔 없다.

아마도.... 유재석이랑 박명수가 하는 야식코너에 내놓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메뉴다. (혹시 벌써 거기에 나온 거 아닐까?)

 

재료는 또띠아, 꿀, 피자치즈, 병조림 옥수수 (또는 캔옥수수), 그냥치즈.

1. 꿀을 한 숟가락 떠서 또띠아에 잘 펴서 바른다.

2. 그 위에 피자치즈를 듬뿍 올린다.

3. 옥수수를 적당히 골고루 뿌려준다.

4. 그냥 치즈 한 장을 적당히 손으로 잘라 3 위에 올린다.

5. 예열된 오븐에 넣고 굽는다. (170~180도에서 15분~20분 정도?)

* 피자치즈가 잘 녹았을 때 꺼내주면 된다.

 

이 피자의 맛은 고르곤졸라 피자 비슷하다. 옥수수는 시중에서 파는 캔옥수수가 거의 미국에서 수입된 옥수수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라 나는 한살림에서 파는 병조림 옥수수를 사용한다. 한살림 병조림 옥수수는 맛이 좀 싱거워서 넉넉히 뿌려도 괜찮지만 시중에서 파는 캔옥수수는 너무 많이 뿌리면 맛이 너무 강해서 피자가 짜진다.

 

 

 

 

식욕에 눈이 어두워서 굽자마자 아이들이랑 마구마구 먹고,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을 때 제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군고구마가 있어서 고구마도 작게 잘라서 올렸다.  지난 번에는 옥수수가 없어서 사과를 올린 적도 있고. 

시장이 반찬이 될 즈음, 가끔 해먹으면 꽤 맛이 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하룻밤 캠프가 있는 날이다.

큰딸은 아이들을 이끄는 교사로, 막내딸은 참가하는 학생으로 도서관에 갔다.

이 저녁이 조용하다.

지금쯤 도서관은 시끌벅적 야단법석 난리도 아닐 것이다.

 

우리집은 평화와 고요..

크리스마스에도 느끼지 못했던 'A Silent Nigh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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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1-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연극으로 만들었군요. 좋았겠다~
또띠아를 사야겠어요! ㅎ
전 만두피에 고구마 으깬거랑 옥수수알 넣고 프라이팬에 구워주니 잘 먹더라구요.

섬사이 2014-01-15 10:10   좋아요 0 | URL
네, 연극으로 참 잘 만들어냈어요.
음, 만두피도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요리 아이템인 것 같아요.
얼마전에 만두피로 만드는 츄러스도 본 것 같아요. ^^
 

한 해가 가고 다시 또 한 해를 맞이한다.

오늘 하루와 어제가 별 다를 게 없지만 내가 뭘하고 살았나, 앞으로는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게 한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할수록 새해 다짐은 점점 소박해지지만.

 

알라딘 서재를 오래 비워서일까. 비워두었던 시간을 한 번 정리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꽤 오래 무심하게 비워둔 것 같지만 작년 한 해를 정리하는 것으로 공백으로 쌓인 먼지들을 말끔히 털어보기로 한다. 

 

1. 서울 그림책 <산>, <강>, <궁>, <길>

 

 도서관에서 '서울, 그림책이 되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시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였는데 <산>은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책고르미 활동을 같이 해왔던 엄마들과 한 명의 아빠, 그리고 우리집 큰딸이 함께 참여했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을 공부하고 그리는 사람, 정식으로 그림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꾸준히 밥먹듯 그림을 끄적여온 사람, 그림을 별로 그리며 살진 않았지만 그림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뜬금없는 서툰 그림을 그냥 열심히 그림 사람이 함께 뭉쳐서 작업을 했다. 작년에 일어난 일 중에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일이었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며 밤을 새우는 황홀한 경험도 맛보았다. 얼마 전에 그 결과물로 더미북을 서울 북페스티벌에 전시하고 서울시에 제출했다.

<강>은 4,5년 동안 도서관에서 '색깔아이'라는 미술품앗이 활동을 해왔던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모여서 작업했다. 우리 막내가 참여한 그림책이다. 한강을 주제로 매주 모여 작업하고, 숙제를 받아서 집에서 그림을 그려가기도 했다. <강>도 마찬가지로 북페스티벌에 전시되고 더미북은 서울시에 제출했다.

<궁>은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길>은 작가팀이 맡았다.

 

 

 

 

2. 요리사가 되고 싶다던 울아들

 

울아들은 작년에 고3이었다. 고1때부터 요리대회에 한 번 나가보고싶다고 했었는데 고3인 지난해에 대회에 출전했다. 울아들은 공부에는 워낙 관심도 흥미도 없는 스타일이라 일찌감치 대학 욕심은 저도 나도 버리고 있었더래서 마음 편히 나가보라고 했다. 물론 대회 참가 비용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떤 사람은 나와 아들을 무척 희한하게 보기도 했지만, 난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았다. 공부는 재능이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체육이 어느 정도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것처럼 공부에도 재능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이 공부에 재능이 없음은 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재능이 없음을 일찌감치 알고 마음을 비운 덕분에 나와 아들 사이는 꽤 친밀한 편이다.

어쨌든 대회에 출전해서 3일 낮밤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열심히 한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대회수상경력이 대학 가는데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들에게는 큰 경험이 된 것 같다. 대학은... 수도권 지방대 호텔외식조리학과에 진학한 것으로 만족....은 아니지만 순응하고 있다.

12월 중순부터는 맥노날드 주방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4번. 내가 "뭘 배우든지, 아니면 봉사활동을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알바라도 해! 난 놀고 먹는 꼴은 못본다"고 했기 때문이다. 좀더 그럴듯한 음식점으로 알바를 다녔으면 좋으련만 아직 나이에 걸린다. 자식을 알바현장에 내놓고 나니 마음이 짠하다. 아들이 알바하러 가 있는 동안에는 나도 집에서 편히 쉬고 있기가 미안하다. 자식을 일터에 내보낸 엄마의 심정을 생전처음 맛보았다.

 

 

 

 

 

3. 상하이에서 살다 온 큰딸

 

재작년,, 벌써 재작년이 됐구나,, 에는 여름방학 때 상하이에 가서 5주 정도 있었는데 작년에는 2학기를 통째로 상하이에서 살다가 왔다. 간지 두 달쯤 되니까 중국 음식에도 적응을 하고 살만하다면서 씩씩한 모습을 보여줘서 마음을 놓았다. 상하이에 있는 재경대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건데, 딸아이가 들어간 반은 정원 20명에 13개국의 아이들이 모여 있어서 무척 새롭고 재미난 경험을 하고 온 것 같다. 라오스,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베트남, 일본... 등등의 여러 나라 아이들이 모두 중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돌아온 딸은... 뭐랄까.. 좀 더 자신감있어진 것 같기도 하고, 들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돌아와서도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고, 이런 저런 일들에 참여해서 계획하고 실천해가고 있다. 3학년이 된 딸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마냥 좋지만은 않은데..

 

 

 

아, 울딸이 말하기를 중국 남자들이 꽤 가정적이고 자상한 편인데 그 중에서도 상하이 남자가 유명하단다. 아쉽게도 울딸은 상하이 남자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다니!!!

 

 

4. 막내 딸..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바쁜 사람이다. 작년에는 성곽길을 완주했고, 농촌을 체험한다고 봄, 여름, 가을에 한 번씩 '신론리'라는 마을로 놀러 갔다. 도서관 옥상 텃밭을 가꾸었고, 그림책 작업을 했고, 스케이트를 배웠고, 이제 1학년 때부터 조르던 우쿨렐레를 배우는 중이다. 많이 자랐다는 게 보이는데,  나는 막내딸의 성장이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다. 이다음에 막내가 다 크고 나면 나는 심각한 '빈둥지 증후군'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

 

 

 

 

5. 나는..

위의 모든 걸 함께 했다. 그리고 동국대에서 육아코치실무과정을 교육받았다. 왜? 그러게... 왜 했을까? 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원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교육이었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했다. 앞으로의 내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서관에서 유아이야기방을 맡는 계기가 되었다. 실습이라는 명목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겨울동안'이라고 말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든 알고 시작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늘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해가 갈수록 새해 다짐은 더 소심해지나보다.  새해 작심을 선포하는 것도 민망할만큼.  그저 조용히 책 읽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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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1-0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이 만든 저 요리는 무엇인가요, 섬사이님?

연말에 섬사이님의 글이 보여 좋았습니다. 2014년에는 좀 더 자주 뵙고 싶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섬사이 2014-01-02 23:20   좋아요 0 | URL
저건 에피타이저와 메인요리인데요,

에피타이저는 '가리비 바닷가재롤과 성게알 드레싱'이구요,
메인요리는 '대파와 그뤼에르 치즈향의 안심 스테이크와
고르곤졸라 치즈 소스를 곁들인 제주산 갈치 살팀보카'랍니다. (에휴.. 어렵다...)
디저트 요리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페이퍼에서 패쓰했습니다.

네, 2014년에는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력할게요.
언제 와도 늘 그 자리에 다락방님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무스탕 2014-01-02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는일의 특성성 전 일찌감치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는 '애들'을 많이 봐요.
초등학생이 개인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고2의 나이에 이미 갈 길을 정해서 3학년은 직업교육에 투자하고..
그런 애들을 보면 안스럽기도하고 기특하기도하고 부럽기도하고 그런 감정이에요.
아드님의 20대는 두루두루 만족으로 가득 찰 겁니다 ^^

섬사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섬사이 2014-01-02 23:26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무스탕님.
무스탕님한테 이렇게 좋은 덕담을 들으니 새해가 즐거울 것 같아요.

가끔,
세상엔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닌데,
세상은 그런 아이들만 있는 것처럼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참 불공평하다고 느꼈었죠.
앞으로 많이 바뀌고 변해야 할 부분이겠지요.

무스탕님도 새해엔 더욱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세실 2014-01-1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직업을 선택할때 인기보다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최고인듯요.
울 아이들 다른 재주가 없어서 공부 하지만 공부로 성공하긴 점점 힘들어요. ㅜ
미리 적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섬사이님도 자제분들도 멋져요~~~~

섬사이 2014-01-15 10:0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 사회는 공부 잘 하는 능력에 큰 의미를 두고 있잖아요.
그래서 아들녀석이 하겠다는 걸 지지하면서도 마음 한 켠은 늘 불안해요.
제가 멋져서 그런게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 더 커요.
 
소풍
존 버닝햄 글.그림, 이상희 옮김 / 토토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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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그림책의 모든 것>(마틴 솔즈베리, 모렉 스타일스 지음/시공아트)을 읽다가 존 버닝햄에 대한 이런 글을 만났다.

 

버닝햄은 런던의 센트럴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와일드스미스와 키핑과는 달리 데생에 전혀 재능이 없었다. 그의 드로잉은 서툴렀을 뿐 아니라, 솜씨는커녕 매너리즘조차 없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학창시절에 동료들은 실사 작업실에서 쩔쩔매는 그를 보고 비웃었다. 그러나 졸업 후 그는 바로 그래픽 아트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갔다. 버닝햄의 그림책들은, 데보라 오르가 이야기했듯이 "......시장의 상품이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한 예술가가 자신만의 창조에 대한 열망을 구체화하여 표현한 독창적인 공예품임이 분명하다."

버닝햄은 특별히 어린이 책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어린이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결코 잘난 체 하지 않았으며 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매우 현명하게 소통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문장들을 읽었었다. 존 버닝햄의 그림은 솔직히 다른 그림책 작가들에 비해 좀 어설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책을 읽으면 뭔가 가슴을 찡하고 울리는 게 있다. 그게 그의 '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매우 현명하게 소통'하는 탁월한 능력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그가 그림책 작가로서 이만큼의 명망을 쌓고 인정을 받는 것은 그림실력 때문이 아니라 탁월한 소통능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이 책은 3살~5살 정도의 유아들이 즐겨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버닝햄은 언덕 꼭대기 집에 사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도시락을 싸서 집을 나서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검피 아저씨>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처럼 소풍을 가기 위해 길을 가다가 동행이 생긴다. 양과 돼지와 오리. 아이들은 이들의 동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소풍 도시락도 함께 먹자고 한다. 그런데 난데없는 황소의 등장.....이라지만 그림은 이렇다.

 

 

이건, 황소가 아니라 젖소...아닌가?  가끔 유아들 책, 그 중에서도 번역책에서 이런 오류들이 발견되곤 한다. 어른들은 이 장면에서 "어? 황소가 아니라 젖소같은데? 번역을 잘못했구나!"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유아들은 이걸 그냥 받아들인다. 저렇게 생긴 소도 황소라고 하는구나, 하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이런 소는 젖소라고 하는데 황소라고 잘못 나왔네"라고 정정을 해주면 되겠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지식을 네이버에 물어보는 사람으로 자라면 어쩌란 말인가. 적어도, 책이 네이버보다는 편리하고 재미있지는 않을지언정 보다 깊이있고 신뢰할만 하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모든 지식은 의심해보아야 한다지만 젖소와 황소의 정의를 의심해 보자는 게 이 책의 의도는 아닐 거라고 본다, 나는.)

 

쫓아오는 젖소 같은 황소를 피해 오리, 돼지, 양, 남자 아이, 여자 아이는 숲으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찾기 놀이'가 시작된다.

 

 

 

 

 

 

 

 

 

 

 

 

 

 

 

 

 

 

 

 

 

 

 

 

 

 

 젖소 같은 황소를 피해 달아나 숨은 아이들 찾기다. 너무 쉽다. 너무 쉬워서 사실 6,7세 정도만 되어도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젖소 같은 황소가 가 버린 다음, 아이들은 도시락 먹을 곳을 찾아 나서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양의 모자가 날아가고, 돼지가 공을 떨어뜨리고, 오리가 목도리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차례로 일어난다. 물론 다같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데 이 또한 독자도 참여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야 한다.

 

 

 

 

 

 

사진을 붙이다 보니 두 장면이 펼친 양쪽 면에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사실은 양의 모자 한참 뒤에 오리의 목도리 찾기가 나온다. 뭐, 어쨌든 위의 그림에서도 알겠지만 찾기 놀이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5살 이하의 유아에게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로 십대의 문턱에 서게 된 우리 막내만 하더라도 서너살 무렵엔 이런 책 들을 얼마나 좋아하며 즐겼던가. 너무나 쉬운 찾기 놀이 책을 즐기며 한없이 뿌듯해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아이들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른다. 옆에서 읽어주던 엄마가 못 찾는 척하면 더 기뻐하며 거만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우리 막내는 시시하다고 투덜댔지만 이 책은 엄연히 십대의 문턱에 아슬아슬 서있는 딸을 위한 책이 아니었으니까.

이 책에서는 찾기 놀이가  버닝햄이 선택한 '현명하게 소통하는 방법'이고, 착하고 순박한 동물들과의 소풍과 도시락은 아이들에게 '시적으로 이야기하는' 장치인 것 같다.

 

 

 

 

 

 

 

 

 

 

 

 

 

 

 

 

 

 

 

 

 

 

 

 

 

 

 

 

동물들은 환한 풀밭에서 소풍 도시락을 함께 먹고 신 나게 놀고 '모두 잔뜩 지쳐서' 언덕 위의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동물들에게 "우리 집에서 자도 돼."라고 이야기하고 기꺼이 침대를 내어준다. 친구들과 소풍 가서 먹을 것도 같이 먹고 지치도록 신 나게 놀고, 그 다음에 뿔뿔이 헤어질 걱정없이 친구랑 같이 잠을 잔다는 건,,, 내가 애 셋을 키워봐서 아는데 이건 아이들을 정말 미치도록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 중에 하나다. 엄마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희생이 따르는 일이고.  이 그림책에 엄마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엄마의 그런 피곤한 면모를 숨길 수 없어서인지도.

 

맨 마지막 장면.

 

 

 

 

 

 

 

 

 

 

 

 

 

 

 

 

 

 

 

 

 

 

 

 

 

 

 

나는 이 마지막 장에서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바로 저 문장 때문이었다.

"오늘 밤 내가 어디서 자는지 알아맞혀 볼까요?"

이게 무슨 뜻일까... 틀림없이 어려운 낱말은 없는데 뭔가 문장이 꼬여있는 것 같았다.

이 문장에서 '내가 어디서 자는지'를 나더러 맞혀보라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가 어디서 자고 있는 걸' 내가 알아맞혀 보겠다는 건지...  저 문장에서 '내'에 상응하는 술어는 '자는지'일까, '알아맞혀 볼까요?'일까. 저 '볼까요?'가 '볼래요?'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다면 작중화자였던 '나'는 누구인 걸까?  저 달이었을까? 아니면 집인가?

 

이 그림책의 원서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존 버닝햄의 책들 중에 이 책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젖소 같은 황소와 저 마지막 문장을 좀 다듬는다면 유아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 될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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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1-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ull (원문을 찾아봤어요)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해석했네요. 보통 bull을 황소로 해석하긴 하는데 그림이 있으니 좀 센스 있는 번역자라면 생각을 하고 단어를 썼을텐데, 아쉽네요.
이 책 리뷰가 많이 올라와서 저도 관심이 갑니다.

섬사이 2014-01-02 00:40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hnine님.
제 서재에 새해 첫 발자국을 찍어 주셨네요. ^^
원문에 'bull' 이라고 되어 있군요. 하긴 저 소를 젖소라고 하는 게 정확한 건지도 좀 애매했어요.
'젖소'라면 마땅히 있어야할 그게 보이지 않아서요.
그럼 이 소에 대한 문제는 존 버닝햄의 애매한 실수라고 해야 옳은 걸까요?
그럼 맨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된 걸까요?
구립도서관 영어책 코너에 가서 한번 찾아볼까 하고 있어요.
이 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