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존 버닝햄 글.그림, 이상희 옮김 / 토토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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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그림책의 모든 것>(마틴 솔즈베리, 모렉 스타일스 지음/시공아트)을 읽다가 존 버닝햄에 대한 이런 글을 만났다.

 

버닝햄은 런던의 센트럴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와일드스미스와 키핑과는 달리 데생에 전혀 재능이 없었다. 그의 드로잉은 서툴렀을 뿐 아니라, 솜씨는커녕 매너리즘조차 없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학창시절에 동료들은 실사 작업실에서 쩔쩔매는 그를 보고 비웃었다. 그러나 졸업 후 그는 바로 그래픽 아트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갔다. 버닝햄의 그림책들은, 데보라 오르가 이야기했듯이 "......시장의 상품이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한 예술가가 자신만의 창조에 대한 열망을 구체화하여 표현한 독창적인 공예품임이 분명하다."

버닝햄은 특별히 어린이 책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어린이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결코 잘난 체 하지 않았으며 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매우 현명하게 소통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문장들을 읽었었다. 존 버닝햄의 그림은 솔직히 다른 그림책 작가들에 비해 좀 어설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책을 읽으면 뭔가 가슴을 찡하고 울리는 게 있다. 그게 그의 '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매우 현명하게 소통'하는 탁월한 능력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그가 그림책 작가로서 이만큼의 명망을 쌓고 인정을 받는 것은 그림실력 때문이 아니라 탁월한 소통능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이 책은 3살~5살 정도의 유아들이 즐겨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버닝햄은 언덕 꼭대기 집에 사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도시락을 싸서 집을 나서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검피 아저씨>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처럼 소풍을 가기 위해 길을 가다가 동행이 생긴다. 양과 돼지와 오리. 아이들은 이들의 동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소풍 도시락도 함께 먹자고 한다. 그런데 난데없는 황소의 등장.....이라지만 그림은 이렇다.

 

 

이건, 황소가 아니라 젖소...아닌가?  가끔 유아들 책, 그 중에서도 번역책에서 이런 오류들이 발견되곤 한다. 어른들은 이 장면에서 "어? 황소가 아니라 젖소같은데? 번역을 잘못했구나!"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유아들은 이걸 그냥 받아들인다. 저렇게 생긴 소도 황소라고 하는구나, 하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이런 소는 젖소라고 하는데 황소라고 잘못 나왔네"라고 정정을 해주면 되겠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지식을 네이버에 물어보는 사람으로 자라면 어쩌란 말인가. 적어도, 책이 네이버보다는 편리하고 재미있지는 않을지언정 보다 깊이있고 신뢰할만 하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모든 지식은 의심해보아야 한다지만 젖소와 황소의 정의를 의심해 보자는 게 이 책의 의도는 아닐 거라고 본다, 나는.)

 

쫓아오는 젖소 같은 황소를 피해 오리, 돼지, 양, 남자 아이, 여자 아이는 숲으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찾기 놀이'가 시작된다.

 

 

 

 

 

 

 

 

 

 

 

 

 

 

 

 

 

 

 

 

 

 

 

 

 

 

 젖소 같은 황소를 피해 달아나 숨은 아이들 찾기다. 너무 쉽다. 너무 쉬워서 사실 6,7세 정도만 되어도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젖소 같은 황소가 가 버린 다음, 아이들은 도시락 먹을 곳을 찾아 나서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양의 모자가 날아가고, 돼지가 공을 떨어뜨리고, 오리가 목도리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차례로 일어난다. 물론 다같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데 이 또한 독자도 참여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야 한다.

 

 

 

 

 

 

사진을 붙이다 보니 두 장면이 펼친 양쪽 면에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사실은 양의 모자 한참 뒤에 오리의 목도리 찾기가 나온다. 뭐, 어쨌든 위의 그림에서도 알겠지만 찾기 놀이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5살 이하의 유아에게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로 십대의 문턱에 서게 된 우리 막내만 하더라도 서너살 무렵엔 이런 책 들을 얼마나 좋아하며 즐겼던가. 너무나 쉬운 찾기 놀이 책을 즐기며 한없이 뿌듯해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아이들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른다. 옆에서 읽어주던 엄마가 못 찾는 척하면 더 기뻐하며 거만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우리 막내는 시시하다고 투덜댔지만 이 책은 엄연히 십대의 문턱에 아슬아슬 서있는 딸을 위한 책이 아니었으니까.

이 책에서는 찾기 놀이가  버닝햄이 선택한 '현명하게 소통하는 방법'이고, 착하고 순박한 동물들과의 소풍과 도시락은 아이들에게 '시적으로 이야기하는' 장치인 것 같다.

 

 

 

 

 

 

 

 

 

 

 

 

 

 

 

 

 

 

 

 

 

 

 

 

 

 

 

 

동물들은 환한 풀밭에서 소풍 도시락을 함께 먹고 신 나게 놀고 '모두 잔뜩 지쳐서' 언덕 위의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동물들에게 "우리 집에서 자도 돼."라고 이야기하고 기꺼이 침대를 내어준다. 친구들과 소풍 가서 먹을 것도 같이 먹고 지치도록 신 나게 놀고, 그 다음에 뿔뿔이 헤어질 걱정없이 친구랑 같이 잠을 잔다는 건,,, 내가 애 셋을 키워봐서 아는데 이건 아이들을 정말 미치도록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 중에 하나다. 엄마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희생이 따르는 일이고.  이 그림책에 엄마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엄마의 그런 피곤한 면모를 숨길 수 없어서인지도.

 

맨 마지막 장면.

 

 

 

 

 

 

 

 

 

 

 

 

 

 

 

 

 

 

 

 

 

 

 

 

 

 

 

나는 이 마지막 장에서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바로 저 문장 때문이었다.

"오늘 밤 내가 어디서 자는지 알아맞혀 볼까요?"

이게 무슨 뜻일까... 틀림없이 어려운 낱말은 없는데 뭔가 문장이 꼬여있는 것 같았다.

이 문장에서 '내가 어디서 자는지'를 나더러 맞혀보라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가 어디서 자고 있는 걸' 내가 알아맞혀 보겠다는 건지...  저 문장에서 '내'에 상응하는 술어는 '자는지'일까, '알아맞혀 볼까요?'일까. 저 '볼까요?'가 '볼래요?'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다면 작중화자였던 '나'는 누구인 걸까?  저 달이었을까? 아니면 집인가?

 

이 그림책의 원서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존 버닝햄의 책들 중에 이 책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젖소 같은 황소와 저 마지막 문장을 좀 다듬는다면 유아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 될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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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1-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ull (원문을 찾아봤어요)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해석했네요. 보통 bull을 황소로 해석하긴 하는데 그림이 있으니 좀 센스 있는 번역자라면 생각을 하고 단어를 썼을텐데, 아쉽네요.
이 책 리뷰가 많이 올라와서 저도 관심이 갑니다.

섬사이 2014-01-02 00:40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hnine님.
제 서재에 새해 첫 발자국을 찍어 주셨네요. ^^
원문에 'bull' 이라고 되어 있군요. 하긴 저 소를 젖소라고 하는 게 정확한 건지도 좀 애매했어요.
'젖소'라면 마땅히 있어야할 그게 보이지 않아서요.
그럼 이 소에 대한 문제는 존 버닝햄의 애매한 실수라고 해야 옳은 걸까요?
그럼 맨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된 걸까요?
구립도서관 영어책 코너에 가서 한번 찾아볼까 하고 있어요.
이 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