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업.

도서관으로 미술놀이 하러 가자니까 좋아하며 따라나선 비니. 



맨 먼저 도서관 야외 탁자에서 요구르트와 과자를 간식으로 먹고.. (꼭 챙겨야 하는 중요한 절차다)  강의실로 올라갔다.

 



  일단 신나게 공놀이 한 판.


  큰 공, 작은 공, 빨간 공, 파란 공, 초록 공, 노란 공, 축구공, 농구공...


갖가지 공을 가지고 던지고, 발로 차고, 굴리고, 야단법석...


비니는 여러 아이들 틈에서 공 좇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많은 공들을 아이들은 선생님께 기꺼이

가져다 바치며 선생님과 눈을 맞춘다. 

 선생님의 위대한 힘이여...

그 많은 공이 순식간에 치워졌다.

심지어 한 쪽으로 치워진 책상과 의자 틈에 끼어 있는 공까지, 샅샅이 찾아서 선생님이 들고 있는 저 커다란 비닐 봉지 안에다 얌전히도 갖다 넣는 모습이라니..


 

 

 

 


  스펀지 질감의 작은 공에 물감을 묻혀 종이에 콕콕 찍기도 하고 데구르르 굴리기도 하고 양손으로 잡고 꽉 쥐어짜기도 하는 놀이를 했다. 

나중엔 종이에 주르르 흐른 물감을 손과 발로 마구 문지르기도 했다.

비니와 나의 손과 발이 슈렉의 피부색과 똑같아 졌다.

비니는 뭐랄까.. 즐겁게 깔깔거리며 웃을만도 한데, 모든 작업에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임한다.


 

 

 

 



 

 

 

 

 

 

 

 



  오늘도 수업을 끝내고 나면 대성통곡 우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얌전히 선생님께 '안녕히 계세요' 인사까지 하고 강의실을 나왔다.

 집에서부터 울면 안된다고 다짐을 해둔 보람이 있었다. 

 지난 번 숙제 검사..

ㅎㅎㅎ 선생님이 비니 것을 보더니 검은 수영복 입은 여자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누구야?"하고 물으셨다.

우리 비니 "....... 엄마요"

ㅋㅋㅋ 비니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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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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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극적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칙칙함이나 음습함 없이 이렇게 반짝일 수도 있는 거구나.
유난히 '빛'이라는 낱말이 많이 나오긴 하더라.
'무지개 빛으로 번지는 오솔길'이라든가, '깊은 빛을 발하는 눈동자', '마음 속에서 따뜻한 빛이 잔상처럼 여리게 반짝'거린다는 표현도 있었고, '온 방안이 온실처럼 빛으로 가득했다'고도 했지.
오죽하면 '암울하고 쓸쓸한 이 산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가 빛나는 것'이라고 했을까. 햇빛마저도 '금빛 달짝지근'하고 빌딩의 나란한 창문들이 '저녁 빛으로 파랗게 물드는' 이야기.

그게 바로 바나나의 키친이야. 끈끈한 혈친의 정을 잃은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를 배려하고,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가슴을 내어주고, 마음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고름을 핥아주며 서로의 마음에 조금씩 '빛과 바람이 통하여'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이야기.  냉소도 적의도 없이 오직 삶을 사랑하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도 난 생뚱맞게 창가에 서서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  자꾸 되풀이해서 나오는 '빛', '투명', '반짝이다'란 낱말에 내 마음이 전염된 걸까?

에리코, 부인을 잃고는 자기의 성정체성까지도 바꿔가며 적극적으로 상실의 상처를 극복하고 삶을 사랑하려 노력한 사람이야.  그 모습이 아름답고 정겹고 애잔해서 빛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사람이지. 닮고 싶단 생각도 들었어. 이 사람만큼 살아가는 일에 덤빌 수 있다면, 집착이라든가 성공이라든가 하는 것들 때문이 아니라, "아무쪼록 살아갈 수 있도록"하는 절실함만으로 씩씩하게 덤벼볼 수 있다면, 삶의 비극적 이면 따위도 서늘하게 빛나는 달빛쯤으로 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더라구.

추운 겨울밤 미카게가 유이치에게 돈까스 덮밥을 배달하는 장면에서처럼 '특별한 이유도 없이 포기하지 못하고' 무모하고 바보스러울 필요도 있는 거잖아.  오히려 그런 것들이 마음에 더 세게 부딪치고, 언제든 살아 빛나는 추억이 되어서 '더 힘들고 더 밝은 곳으로 가자' 며 힘을 내게 해주는 거니까.  

슬픔, 고통, 아픔, 쓰라림, 절망 같은 걸 조금 가볍게 하고 싶어지면 바나나의 키친을 읽듯이 빛이라든가 반짝임이라든가 투명하다라는 말들을 주문처럼 외어볼까봐. 말이 씨가 된다는데, 그렇게 하면 캄캄절벽처럼 답답하던 마음에도 어느날 반짝 빛이 들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지도 모르잖아.

가볍고 예쁘고 읽기도 쉽지만, 작은 힘을 가진 소설은 아니더라.  하지만 그렇게 큰 힘을 가진 소설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가 애용하는 낱말처럼 이 소설이 '반짝'하고 어느 날 저 뒤편으로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살짝 들었지만, 문학사적인 평가야 그 쪽 분야의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겠지.

오늘은 그저 모든 것을 빛나게 해놓고서 그 속에 조용히 앉아 있고 싶어.  그러고 보니 부엌이라는 장소가 그러네.. 깨끗이 문질러 닦아놓은 조리대나 칼 같은 것들은 차갑고 서늘하게 빛나지만,  온기가 있고, 나눠먹을 음식이 있고,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식탁이 있고, 누군가에게 건네줄 따끈한 차 한 잔을 끓일 수 있는 곳이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엌이 되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슬퍼도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미카게가 부엌에서만은 편히 잠들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너의 부엌은 누구지?  또 나의 부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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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7-16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이란 단어가 그리 힘을 주진 않았나보군요.
나의 부엌은? 무얼까? 여기 알라딘마을일까, 아님?

섬사이 2007-07-17 21:07   좋아요 0 | URL
유이치와 미카게, 그리고 에리코는 서로에게 서로의 부엌이 되어주었던 것 같아요. 마음의 부엌을 찾는 일이 쉽진 않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잔잔한 아름다움이 깃든 소설이었어요.

홍수맘 2007-07-1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를 처음 알았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어느분의 책방출로 <티티새>라는 책을 얻게 되었답니다. 괜히 반가운거 있죠? 갑자기 "통하였는냐"라는 단어가 떠 올랐어요.
며칠전 6촌오빠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컴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섬사이 2007-07-17 21:08   좋아요 0 | URL
네,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우리 홍수맘님이 너무 힘든 날들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아 걱정이 되네요. 너무 힘들어 병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알맹이 2007-07-17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돈까스 덮밥 부분을 너무 좋아해서 저 부분을 읽을 때마다 온몸이 짜릿해요. ^^ 님의 리뷰는 언제나 '빛'을 발하네요~

섬사이 2007-07-17 21:0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돈까스 덮밥 부분에서 감동했어요. 소설로서가 아니라 그 스토리 자체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참 따뜻하게 감동하며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fallin 2007-07-2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이 들어본 책인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네요..리뷰 읽으니 궁금해지네요 ^^

섬사이 2007-07-23 16:15   좋아요 0 | URL
저도 뒤늦게 읽은 책이에요. 하루키와 겐자부로 외에 다른 일본작가 작품은 읽어보질 못해서요. ^^

유스케 2007-07-29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리뷰를 쓰신 분이 섬사이님이셨군요.. 리뷰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사실 키친에 리뷰달러 들어갔다 이 글 보고 포기하고 나왔거든요.. 제 일본소설 홀릭의 동기가 된 책입니다. 일상적인 장소가 이렇게 위안이 될 수 있구나..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일로도 위로받을 수 있구나 하며 따뜻한 봄볕 아래서 정말 아쉬워하며 책장을 넘기던 그런 책이었더랬죠..

섬사이 2007-07-30 09:31   좋아요 0 | URL
유스케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 리뷰를 보고 쓰기를 포기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저도 그냥 내가 좋은대로 써가는 막무가내형 리뷰거든요. ^^;; 감동을 받으신 작품이라니까 유스케님의 느낌도 궁금해지는데,, 사실 전 리뷰쓰기 전에 다른 분들 리뷰 절대 안봐요. 다른 분들 리뷰 읽고 나면 기가 죽어서 쓸 용기가 안나더라구요. 용감하게 쓰시고 보여주세요. ^^
 

노란 장미가 백합자랑만 한다고 삐질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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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7-1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 장미의 꽃말이 '질투'라는 얘기를 듣고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장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미에요. 그 외에도 지는 사랑, 우정(사랑이 지면 우정이란 말이냐;;) 등의 꽃말이 있다고 합니다.

섬사이 2007-07-16 01:58   좋아요 0 | URL
저도 장미 중에서는 노란 장미가 제일 좋아요. 빨간 장미는 너무 식상하고, 너무 대놓고 나 장미다, 하고 뽐내는 것 같기도 하고,, 노란장미의 꽃말에는 이별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지요. 그래서 예쁜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선물하기엔 꺼려지는 꽃이에요.

프레이야 2007-07-1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저 노란 장미 좋아해요.^^
얘는 좀 부정적인 꽃말들을 갖고 있던데요, 전 그런 깐깐함이 좋아요.
겉으론 예쁜 색의 웃음을 짓지만,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 순수한 무모함 같은..

섬사이 2007-07-16 02:00   좋아요 0 | URL
꽃말이 좋아서 꽃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혜경님 댓글을 일고 나니 노란 장미에게 '순수한 무모함'이란 말이 딱 어울린단 생각이 들어요. ^^

비로그인 2007-07-1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랏, 하이드님이랑 혜경님처럼 저도 노란 장미를 좋아하는데...질투, 깐깐함,무모함..그런걸 (말로 표현못하고 그저 그 까칠하고도 아름다운 게) 좋아서요..

섬사이 2007-07-16 02:11   좋아요 0 | URL
전 지난 번 꽃시장에서 보라빛이 도는 장미를 본 적이 있어요. 정말 환상적이더군요. 원예시장에 갈 때면 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괴로워하곤 해요. 지금도 내년엔 꼭 도라지 꽃을 보고야 말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느날 다른 어떤 꽃에 한 눈에 홀딱 반해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꽃을 심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한련화도 심고 싶고, 패랭이꽃도 심고 싶고, 구절초나 마가렛도 심고 싶고.. 에고에고~~^^

비로그인 2007-07-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그 장미 꼭 찍어주셔요~~ 말씀하신 꽃들도 정말 다 보고 싶네요..꽃집에도 매번 그꽃이 그꽃이라.....

섬사이 2007-07-17 21:10   좋아요 0 | URL
넵~!! 다음에 꽃시장에 가서 그 장미를 발견하면 꼭 찍어 올게요. 디카 챙겨가는 거 잊지 말아야 할텐데..^^

fallin 2007-07-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진을 잘 찍으시나봐요. 사진이 위에서 찍어서 그런가..독특하면서 생기있어보여요^^ "순수한 무모함"이라..노란 장미를 보면 이젠 이 말이 생각날 것 같아요ㅋ
 

우리집에도 헤라의 젖방울이 떨어졌다. ^^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젖을 너무 힘차게 빠는 바람에 헤라의 젖방울이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는데, 우리집 화단에도 하얀 백합이 피어났다. 

우리말로 흰나리라고 부르는 게 더 정감있기는 하다.  화단에 핀 하얀 백합은 꼭 동그랗게 펼쳐진 신부의 화려한 웨딩드레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저 수술과 암술을 보면 안어울린다 싶을 정도로 생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순결해보이는 하얀 꽃잎과는 다르게 좀 음란스럽게 보인다.  

백합처럼 수술과 암술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낸 꽃도 없는 듯...

(그런데 털은 왜 난거야?)

인터넷에서 백합에 대해 찾아봤더니, "백합"이라는 말이 옛 사람들의 배고픔에서 비롯된 꽃이름이란다.

예전엔 사람들이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식용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구근이 백개의 인편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백합이라고 불렀다고..

배고픈 설움이 담겨있는 이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꽃의 미적인 면만 보고 좋아했던 내가 잠시 부끄러웠다.

또 중국 후한시대에는 젊은 여자가 멍청해지는 병을 백합병이라고 했다는데, 그 병의 치료에 효과가 있는 풀뿌리를 백합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백합 구근을 약용으로 꾸준히 먹으면 똑똑해질 수 있는 걸까?  뭐, 멍청해지는 걸 예방할 수만 있더라도 대단할텐데..

백합이 이브의 눈물이라는 전설도 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이브는 이 세상 먹고 사는 고통이 너무 힘겨워 눈믈을 흘리며 나날을 보냈는데, 그 눈물이 땅에 떨어져 흰나리가 되었단다. 

붉은 나리에 대한 전설도 있었다.   성경의 마태복음 6장 28절에 "들의 나리꽃이 어떻게 자라는 가를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고 한 [산상수훈]의 비유에서 예찬 받은 나리 꽃이 붉은 빛이 된 전설이 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둔 밤에 겟세마네 동산을 거닐었다. 그 때 꽃들은 예수님을 동정하여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었는데 나리만이 자기의 아름다움으로서 예수님을 위로할수 있다고 고개를 높이 쳐들고 있었다. 그때 구름 사이로 달빛이 훤히 비추자 나리는 다른 꽃들이 고개숙여 시름에 잠겨있는 것을 보았다. 이 후 나리는 자기의 교만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붉은 꽃이 생기고 옆을 보고 피었다는 전설이다.
 

  아무튼 우리 동 출입구에서부터 백합의 달큰한 향기가 솔솔 풍겨오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구근꽃들은 꽃이 피면 줄기를 잘라줘야 한다던데..  그래야 꽃에 뺏길 영양을 알뿌리에 비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알뿌리를 튼실하게 해놓아야 다음해에 다시 꽃을 볼 수 있다나..

 그런데 줄기 자르기가 참 꺼려진다.  꽃에게 미안하단 생각도 들고..

 사람들은 예쁜 것들에 약하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깨닫는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않고, 기본이 되는 뿌리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과감하게..

 

아름다운 것도 지고 나면 이렇게 되는 걸..

아름다움의 근원은 바로 뿌리에 있는 걸..

흙과 뿌리를 병들지 않게, 벌레 먹지 않게, 튼실하게, 기름지게 가꾸어놓아야 아름다움도 지속되는 걸..

내년에도, 또 후년에도..

또 한가지 상식, 프랑스의 국화가 바로 백합이란다.  그래서 "The Lilies"라는 말은 프랑스 국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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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는 성경에는 들의 백합화- 라고 적혀있는데
들의 나리꽃- 하니까 훠얼씬 운치가 있잖아요 ^^
떨어진 꽃은 마음아프지만... 그래도 이쁜 나리꽃!

섬사이 2007-07-16 02:02   좋아요 1 | URL
저도 나리꽃이란 이름이 더 정겹고 예쁜 것 같아요. 나리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화단에 심어놓고 보니 그 화려한 존재감 하나는 인정해줄만 하더라구요.

프레이야 2007-07-1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흰나리꽃, 참 정겨운 이름이에요. 백합보다 훨씬..
뿌리가 튼실히 있다면 저렇게 지는 건 아무것도 아닐 거에요.
잠시 물러날 뿐..

섬사이 2007-07-16 02: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혜경님. 중요한 건 흙과 뿌리예요. 그래야 아름다운 꽃을 다시 피울 수 있으니까요.

알맹이 2007-07-15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식물 기르는 것, 꽃이 피게 하는 것, 여간 손길이 많이 가지 않을 것 같은데.. 님의 마당은 점점 풍성해지네요. 모처럼 꽃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섬사이 2007-07-16 02:06   좋아요 0 | URL
앤디뽕님, 화분에 키우는 것보다 훨씬 손이 덜 가는 것 같아요. 화분은 물주는 것, 겨울나기, 분갈이 등등 신경써줘야 할 것들이 많은데, 화단 흙에 심어놓으면 하늘에서 알아서 물주고, 겨울나는 것도 화분보다 더 수월하고, 분갈이 대신 봄가을에 한번씩 웃거름을 주면 되니까요. 제가 들인 노력보다 훨씬 더 큰 결과를 보고 있어요. 즐겁고 기쁜 일이죠. ^^
 

겨울 지리산..


오래 전에 눈 덮힌 겨울 지리산을 올랐었다.  아이젠을 부착하고 눈이 얼은 길을 콩콩 찍으며 오르는 산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침낭이며 쌀, 김치, 열량을 보충하기 위한 비상식품, 버너와 코펠 등등 이것저것 싸넣은 베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낑낑대며 산을 오르다 보면 덥고 땀이 났다.  겨울 산행이라고 입고 온 파카를 벗어 배낭에 구겨 넣어야 했다.
그러다가도 잠시 쉬려고 바위턱에라고 걸터앉아 있으려면 땀이 식으며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져 구겨 넣었던 파카를 꺼내어 주섬주섬 다시 입어야 했다.  
(삶의 뜨겁고 차가움, 적응은 우리 몫이었다.)


서서히 지쳐갔다.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산장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요.  힘내세요." 했다.
얼마 후, 난 그게 선의의 하얀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10분 정도면 더 올라가면 돼요, 라는 말은 한 시간이 지나도 되풀이 되었다. 
(삶은 그렇게 희망에 속으면서 지속되고 완성되는 것인지도.)


산행에 익숙한 분들이 나를 재촉했다.  그분들 걸음을 좇아가려니 조바심이 났고, 걸음은 더 엉기는 것 같았다.
결국, 위험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먼저 가세요, 제가 뒤쫓아 갈게요, 하며 제발 먼저 가주시길 부탁했다.
그리고 나서 내 페이스를 찾은 산행은 어렵지 않았다. 
난 꾸준히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산을 올랐고 처음처럼 지치지도 않았다. 
상당히 뒤쳐질 거라 생각했지만, 난 느린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대신에 중간에 자주 쉬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에 앞서 가는 분들의 뒤를 많이 뒤쳐지지 않고 좇아갈 수 있었다. 
(삶은 타인의 걸음, 타인의 속도로 걸을 수 없다. )


장터목 산장에 이르렀을 땐 이미 저녁, 겨울 산이라 해가 금방 저물었다. 
산장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너무 사람이 많았다.
우리 일행 일곱명 중에 텐트를 가져온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다들 산장에 들어가 잘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텐트를 큰 것으로 준비하지 않았었다.
고작 2인용 텐트 하나가 일곱명이 누울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잠자리였다.
하얗게 쌓인 눈밭에 텐트를 세웠다. 
각자의 침낭을 꺼내어 모로 누웠다. 좁은 자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눕지도 못하고 내 머리 앞뒤로 옆에 누운 사람의 발이 놓여져야 했다.  물론 내 발도 누군가의 머리 옆에 놓여있어서, 아무리 침낭 속의 발이라고는 하지만 혹시라도 옆에서 자는 사람의 머리를 발로 차는 일이 벌어질까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텐트 안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일곱 명의 들숨 날숨의 위력은 생각보다 커서 금세 텐트 안의 공기가 탁해졌고, 텐트 벽엔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렸다.
우리들의 칼잠은 더욱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일곱명 모두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눈 덮힌 산에 세운 텐트 안이 전혀 춥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오니 벗어놓은 등산화가 꽁꽁 얼어 있었다.
서로 까칠해진 얼굴을 마주하고 웃으며 버너에 신발을 녹였다.   
(함께 하는 삶은 나를 숨막히게 하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따뜻하고, 우리를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 일행 중 한 명이 탈이 났다.
다른 한 분이 병이 난 분의 배낭까지 짊어졌고 또 다른 두 분이 부축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지탱하며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면서 발을 딛었다.
내가 겨울 산행이 처음이라는 걸, 다른 일행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만큼 배려를 받았었다.
그래서 나는 병이 난 그 분이 그렇게 힘들고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내가 다른 분들에게 폐가 될까만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무능과 의지박약은 다른 이의 삶을 방해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내 삶까지도 약하고 결핍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


무사히 산을 다 내려오고 나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시는 고생하며 산에 오르지 않으리라는 심술과 내가 저 산 속으로 걸어들어가 정상에서 하늘과 고사목과 산 아래 물결치는 구름안개를 모두 보고 왔다는 자부심이 뒤엉켰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 평생 모를 일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이 내가 가서 낯선 것들과 부딪쳐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낯선 것들과 부딪쳐 나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내가 나를 알 수 있고, 세상을 알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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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7-1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리산 몇 번 갔었더랬지요. 대학교 4학년때 처음 단체로 갔었는데, 장터목 산장,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산에 오른 다음날 다리에 느껴지는 그 뻐근함을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은 산에 올랐다 와도 다리가 뻐근하지 않더군요. 나이가 들면 여자도 남성호르몬 분비가 증가해서 그렇다나 흑 흑...

섬사이 2007-07-15 17:46   좋아요 0 | URL
등산을 즐기시나봐요. 산에 자주 오르는 사람들은 역시 다리가 튼튼하더라구요. 저는 산에 조금만 올라도 장딴지가 땡기고 허벅지가 뻐근해져와요.(운동부족을 뼈저리게 느껴요) 남성호르몬 분비와 상관없던데요.^^ 님이 건강하다는 증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