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도 헤라의 젖방울이 떨어졌다. ^^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젖을 너무 힘차게 빠는 바람에 헤라의 젖방울이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는데, 우리집 화단에도 하얀 백합이 피어났다.
우리말로 흰나리라고 부르는 게 더 정감있기는 하다. 화단에 핀 하얀 백합은 꼭 동그랗게 펼쳐진 신부의 화려한 웨딩드레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저 수술과 암술을 보면 안어울린다 싶을 정도로 생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순결해보이는 하얀 꽃잎과는 다르게 좀 음란스럽게 보인다.
백합처럼 수술과 암술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낸 꽃도 없는 듯...
(그런데 털은 왜 난거야?)
인터넷에서 백합에 대해 찾아봤더니, "백합"이라는 말이 옛 사람들의 배고픔에서 비롯된 꽃이름이란다.
예전엔 사람들이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식용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구근이 백개의 인편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백합이라고 불렀다고..
배고픈 설움이 담겨있는 이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꽃의 미적인 면만 보고 좋아했던 내가 잠시 부끄러웠다.
또 중국 후한시대에는 젊은 여자가 멍청해지는 병을 백합병이라고 했다는데, 그 병의 치료에 효과가 있는 풀뿌리를 백합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백합 구근을 약용으로 꾸준히 먹으면 똑똑해질 수 있는 걸까? 뭐, 멍청해지는 걸 예방할 수만 있더라도 대단할텐데..
백합이 이브의 눈물이라는 전설도 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이브는 이 세상 먹고 사는 고통이 너무 힘겨워 눈믈을 흘리며 나날을 보냈는데, 그 눈물이 땅에 떨어져 흰나리가 되었단다.
붉은 나리에 대한 전설도 있었다. 성경의 마태복음 6장 28절에 "들의 나리꽃이 어떻게 자라는 가를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고 한 [산상수훈]의 비유에서 예찬 받은 나리 꽃이 붉은 빛이 된 전설이 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둔 밤에 겟세마네 동산을 거닐었다. 그 때 꽃들은 예수님을 동정하여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었는데 나리만이 자기의 아름다움으로서 예수님을 위로할수 있다고 고개를 높이 쳐들고 있었다. 그때 구름 사이로 달빛이 훤히 비추자 나리는 다른 꽃들이 고개숙여 시름에 잠겨있는 것을 보았다. 이 후 나리는 자기의 교만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붉은 꽃이 생기고 옆을 보고 피었다는 전설이다.
아무튼 우리 동 출입구에서부터 백합의 달큰한 향기가 솔솔 풍겨오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구근꽃들은 꽃이 피면 줄기를 잘라줘야 한다던데.. 그래야 꽃에 뺏길 영양을 알뿌리에 비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알뿌리를 튼실하게 해놓아야 다음해에 다시 꽃을 볼 수 있다나..
그런데 줄기 자르기가 참 꺼려진다. 꽃에게 미안하단 생각도 들고..
사람들은 예쁜 것들에 약하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깨닫는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않고, 기본이 되는 뿌리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과감하게..
아름다운 것도 지고 나면 이렇게 되는 걸..
아름다움의 근원은 바로 뿌리에 있는 걸..
흙과 뿌리를 병들지 않게, 벌레 먹지 않게, 튼실하게, 기름지게 가꾸어놓아야 아름다움도 지속되는 걸..
내년에도, 또 후년에도..
또 한가지 상식, 프랑스의 국화가 바로 백합이란다. 그래서 "The Lilies"라는 말은 프랑스 국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