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벨이 울렸다.  일을 하던 중이었더래서 좀 짜증이 났다. 
"여보세요."라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자동응답시스템에서 들리는 그 여자 로봇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 고객님의 OO은행 카드로 ** 백화점에서 백 구십 칠 만원이 결제되었습니다.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0번을 눌...---

이렇게 황당할 수가.. 누가 내 카드로 거금 백 구십 칠 만원이라는 거금을 긁어댔단 말인가.  오늘 조신하게 집 안에서 살림만 하고 있었던 나를 대신해서 그 누가~!!!  드디어 나의 금융정보가 새어나갔구나, 말로만 듣던 금융사기사건에 내가 휘말렸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상담원을 연결했다. 

"네,,,"

"지금 막 **백화점에서 제 카드로 결제된 게 있다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전 오늘 계속 집에 있었거든요?"

....... 전화 끊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싶어 얼른 OO은행 영업점에 전화를 해서 사정 설명을 했더니 담당자를 바꿔주었다.  담당자란 사람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만,

"고객님, 고객님께서는 저희 은행 신용카드를 갖고 계시지 않고, 직불카드만 갖고 계시다고 나오는데요.."

"네, 맞아요."

"직불카드는 은행계좌에 잔고가 그만큼 있을 경우에만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같은 문제가 생기진 않습니다."

... 그래, 은행계좌에 2백만원이나 남아있을리가 없다. OO은행 계좌는 거의 자동이체 목적의 계좌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액수가 남아있을리가 없다.  잘해야, 10만원 정도나 있을까?

"요즘 그런 금융사기전화가 많거든요. 그런 전화를 받으시면 그냥 아무 말씀 마시고 끊으신 후에 지금처럼 고객센터로 전화하셔서 확인하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별 황당한 전화를 다 받아본다.  하긴 난 신용카드를 딱 한 장만 갖고 있다.  백화점 쇼핑은 최근 2년 넘게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명품이나 최신 가전제품이나 비싼 화장품이나 최고급 식기셋트 같은 거에도 관심이 없다.  귀걸이 하나, 반지 하나도 걸거나 끼지 않을 정도로 악세서리도 안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원래 성격이 그렇다.

어릴 때부터 레이스나 프릴 달린 옷이라도 입을라치면, 미대를 다니고 있던  오빠들이 놀렸었다. "너 어디서 미친년 속치마 뜯어서 옷 해 입었냐?"하고..  좀 커서 립스틱이라도 바르면 오빠들은 "쥐 잡아 먹었냐"고 했고, 색깔 없는 립클로즈라도 바르면 "튀김 먹었으면 입 좀 닦아라. 뭐냐? 입술에 기름이 잘잘 흐른다."하며 놀렸다.  그러니 내가 이 지경이 될 수 밖에..ㅠ.ㅠ

그러니 **백화점에서 그런 거금(나한테는 무지 거금이다)을 결제했다는 그 황당한 전화에 내가 긴장할 밖에.

그러고 보니 예전에 받았던 황당한 전화도 생각난다.  요즘은 발신번호가 뜨니까 장난 전화가 많이 사라졌는데, 예전엔 장난전화가 간혹 걸려오곤 했다.  "여기는 화장터다.."하는 류의 장난전화는 차라리 애교스러운데, 거친 숨소리와 함께 변태스러운 말 같지 않은 말들을 해댈 때는 어떤 전화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끊어버린다고 해도 그 찜찜하고 더러운 기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느 날,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청소기를 끄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런 변태 전화였다.  에이씨~~ 또 오늘 기분 망쳤다, 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순간 번쩍 떠오른 생각..

난 수화기를 거실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리곤 청소기의 세기 조절을 최강으로 해놓고 수화기에다 대고 틀어버렸다.  우윙윙윙윙~~~~ 청소기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ㅋㅋㅋㅋㅋ

변태 전화를 받고는 그렇게 통쾌하고 상쾌하기는 처음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 받은 전화가 예전에 받았던 변태 전화보다 훨씬 나쁘다.  다음에 또 그런 전화를 받으면 상담원 연결 버튼을 누른 후에

"난 네 통장에서 5백만원 꺼냈지롱~"하거나  요즘 애들 쓰는 말로 "뷁~!!"이라고 크게 외쳐주거나, 아니면, 아니면... 뭐 통쾌한 방법,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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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07-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아무래도 신종 사기에 걸리신 거 같은데요. 앞으로는 절대 통화연결을 하지 마세요.10초당 1,0000원 이상 나오는 유료통화일 가능성 있습니다. -.-;;

섬사이 2007-07-23 11:35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께서 찾아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전화가 그렇게 비싼 유료전화일 수도 있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다음에 또 그런 전화가 오면 무조건 1초도 넘기지 않고 잽싸게 끊어버려야겠네요. 찾아주신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꼭 알고 있어야할 정보까지 챙겨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꾸~벅~^^

fallin 2007-07-2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무실에서 그런 전화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한번은 여기는 경찰서라고 했더니, 자기는 국제경찰서라네요-.-;;;은행과 경찰서를 같이 한다는 말도 안되는..그러고는 변태성 이야기를 시작하길래 전화버튼을 마구마구 눌러줬죠. 그 뒤엔 그냥 끊어버려요. 중국에서 오는 전화 같은데 정말 너무 자주 걸어서 너무하다 싶어요. FTA반대조선인님처럼 수신전화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그것도 국제-.-;;그냥 받지 마세요~~요즘은 참 별의별 범죄가 많네요..씁쓸해요..

섬사이 2007-07-23 11:4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예요. 어떻게 두뇌가 그런 방향으로 돌아갈까요? 반복해서 그런 장난전화가 온다면 정말 짜증날 것 같아요. 그런 장난전화하는 사람을 혼내줄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 있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무스탕 2007-07-22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 받은 전화가 제가 갖고있지도 않은 카드이름을 대고 어쩌고 저쩌고 자동응답 투로 말하길래 그냥 끊어버렸어요.
그리고 울 엄마에게 수시로 교육시키고 있지요. '여기 경찰청인데요..' 하면 '내 딸이 경찰청장 비서걸랑요?' '여기 법원인데요..' 하면 '내 딸이 법원장(?) 비서걸랑요?' 라고 대답해 주라고요.. ^^;

섬사이 2007-07-23 11:42   좋아요 0 | URL
ㅎㅎㅎ ㅋㅋㅋ 너무 웃겨요~

비로그인 2007-07-2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구리 지금 고민중입니다. 괜찮은 답변들을 모아가지고 다시 오겠습니다 (불끈)

섬사이 2007-07-25 02:46   좋아요 0 | URL
너구리님, 저런 전화가 오면 무조건 빨리 끊어버리는 게 가장 좋다고 하던 걸요. 하지만 너구리님의 답변은 기대하고 있을게요. 재밌는 답변들이 많을 것 같아요. ^^
 
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글을 읽지 않고 그림만 들여다 보고 있어도 가슴 속이 짠해져 온다.  그림책 속 아이의 뒤를 따라 가만가만 걸어가 전차 정거장에 함께 서 있다보면 추억이나 그리움, 향수와 같은 감정들이 뒤범벅이 되어 일렁이는 걸 느낀다.

김동성님의 한국화 향내가 물씬 나는 그림이 그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초록빛과 황토빛이 그림 속에 펼쳐져 있다.  조금은 바랜 듯이, 또는 시간이라는 건널 수 없는 거리를 넘어 바라보는 먼 풍경처럼, 선명하지 않은 빛깔로 추억처럼 빛나면서.. 





가장 서민을 대표할 수 있는 색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것도 근대화라는 폭풍, 유난히 혹독한 근대화의 시기를 지나야 했던 우리 나라의 민중들의 색.  고단하고 슬픈 삶,  가난했지만 인정많던 순박한 사람들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 색.  그게 바로 초록과 황토빛이 아니었을까.. 이 그림책에서 느껴지는 애잔함의 발원지가 바로 저 색들이 아닐런지.




 

그림책 속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며 시선을 왼쪽을 향하고 있다.  꼼짝않고 서서 코끝이 빨개진 채로 그림책 화면을 넘어 아득한 저 쪽.  엄마가 오실 방향을 향해 있는 아이의 표정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데도, 아이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두 번째 차장이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하고 가버리는 그림에선 아이의 눈꼬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아래로 살짝 내려가 있기도 하다. 

아이의 그 아득한 기다림이 더께 더께 묻어있어서 그런지 전차가 오는 장면의 그림은 한폭의 꿈 같다. 꼬마에게 느껴질 기다림의 아득한 시간들이 그 세 장의 그림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전차가 커다란 나무 밑을 지나는 그림, 마치 물고기 떼 가득한 바다 속을 달려오는 듯한 그림(아마 물고기 떼처럼 보이는 그 수많은 초록 빛 점들은 달리는 전차 뒤로 휙휙 흩날리는 나뭇잎들일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리고 샛노란 햇빛이 가득한 하늘 아래를 공중에 붕 뜬 채로 달려오는 그림에는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이, 커다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기다림의 시간과 불안함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보며  지난 기억 속의 하나의 풍경만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서까지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마음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그림,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혓바닥 위로 그림의 맛이 번질 것 같고, 내 눈동자 망막 위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  눈 내리는 하늘이 초록 빛이다.  하얗게 눈이 쌓인 키 낮은 지붕들이 정겹게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 골목길 풍경이다. 아이의 아득했던 기다림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빨간 막대 사탕을 쥐고 엄마와 시선을 맞대고 있는 아이의 행복한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콧마루가 시큰해져서 공연히 헛기침하게 되는 그런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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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이뻐라...
정말 정감이 담뿍 묻어나는군요 :)

섬사이 2007-07-22 01:13   좋아요 0 | URL
예, 정말 고운 그림책이에요.^^

프레이야 2007-07-2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오는 저녁 저 연두빛 하늘이 아스라하지요. 저도 이 그림책 무척 좋아해요.
님이 맛깔스런 리뷰로 다시 느껴봅니다.^^

섬사이 2007-07-22 01: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님, 정확한 표현을 집어주시네요. 아스라해요.^^

치유 2007-07-20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가 참 좋으네요..이 책 참 좋아했어요..
저 마지막 초록에 눈이 내리는 장면은 희망을 나타낸게 아닐까 싶어 더욱...
코끝 빨간 아이 너무 귀엽지요??
그 옛날 우리네 오빠가 아니였을까...

섬사이 2007-07-22 01:15   좋아요 0 | URL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1930년대 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인데도 참 친숙하고 정겹게 느껴져요. 명작 수준의 그림책이지 않을까 싶어요. ^^

fallin 2007-07-2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의 설명을 들으니 정말 그림이 이쁘고,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거 같아요..저는 이런 걸 봐도 좀처럼 느끼지를 못하는데...감수성이 메말랐나 -.-;;; 암튼 이뻐요 ^^

섬사이 2007-07-23 16:10   좋아요 0 | URL
fallin님, 그림책을 직접 보신다면 더 잘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글재주가 없어서 이 정도 밖에는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네요. ^^

알맹이 2007-07-2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정말 곱네요. 님의 글도 아름답고요.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섬사이 2007-07-24 12:29   좋아요 0 | URL
음미의 맛이 깊은 그림책이었어요. 앤디뽕님, 휴가계획은 잡으셨어요?^^
 

세 차례에 걸친 일정 수정..  여권발급.. 이제 티켓팅만 남았다...하는 순간,

뽀의 폭탄 발언.

"나도 가고 싶어~~"

"넌 유럽은 싫고 호주가 좋다며?"

"마음이 바뀌었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지니가

"내년에 뽀랑 같이 갈게요."

그래서 유럽여행이 내년에 중학생이 된 뽀와 같이 가는 걸로 변경되었다.

노심초사했던 내 마음..

어린 딸을 혼자 먼 타국에, 말도 안 통하는 저 먼 나라에 보내기로 마음 먹고 나서도

마치 내가 무슨 인디언 부족의 여인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성인식을 위해 아들을 거친 황무지로 보내는 인디언 어머니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하면서도, 내년엔 좀 안심이 될까 싶기도 하고..

옆지기랑

"저 녀석들 유럽 보내면 둘이서 얼마나 티격태격하며 싸울까?"  하며 웃었다.

그게 추억이 되겠지. 이 담에 커서도 그 때 유럽에서 니가 어쨌네 누나가 저쨌네 하면서.

이래서 지니의 올해의 유럽여행은 내년으로 보류되었다.

지니도 지금까지 혼자서 낑낑대며 여행일정을 짜느라 고생했었는데,

이제 함께 의논하고 얘기할 사람이 생겨 그리 나쁘진 않은가 보다.

뽀의 방에서 둘이 침대에 엎드려 여행 가이드 책을 펼쳐놓고는 두런두런 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내년으로 미루어졌어도 마음은 불편하다.

아직도  엄마 인디언의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년엔 저 철부지들을 먼 낯선 땅으로 보내야 한다는..

몇 번,, 영 마음이 안 놓여서 그냥 패키지 배낭여행을 가는게 어떻겠냐고 떠봤었더랬다.

싫단다.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싶단다. 

누구 딸인지.. 절대로 나를 닮진 않은 것 같다.

역마살 끼가 살짝 있는 즈이 아빠를 닮았다. 

내년까지 난 엄마 인디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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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지니와 뽀는 '트랜스포머'를, 나와 옆지기 그리고 비니는 샘터 파랑새 극장으로 '찌료쉬까 마녀 탈출 대소동'이라는 인형극을 보러 갔다.

지니와 뽀를 대한극장 앞에 내려주고 인형극관람까지는 시간이 좀 넉넉하게 남아서 필동면옥에서 냉면으로 좀 이른 점심을 먹고, 옆지기 충무로 사무실에서 커피까지 마셨다.  사무실에 딱딱한 공간 구성이 마음에 안들고 답답했던지 비니는 칭얼칭얼.  그러다가 사무실 책상 위로 기어올라가서는 전화 내선을 누르며 다른 쪽 책상에 앉은 아빠와 내선통화중.



러시아 국립인형극단의 초청공연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인형극이었지만 사실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었다.  그냥, 지난번 도서관에서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인형극을 너무 진지하게 보고 재밌어 하기에, 한 인터넷 까페를 통해 15000원짜리 티켓을 7000원에 구입해서 보러가기로 했던 것.

사람이 꽤 복작복작했다.  휴일 대학로라는 게 늘 그렇겠지만. 비니는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옆에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아이스크림과 천사표 도너츠에 눈독을 들이며 사달라고 졸랐다.  인형극을 보고 난 다음에 사주겠다고 달래고 달래서 겨우 입장.

인형극은 러시아어로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기대보다... 무지 재미있었다.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극의 진행도 그랬고, 소품의 효과적이고도 재치있는 사용, 배우들의 춤과 연주, 개성있는 캐릭터의 인형들, 어른들도 즐거워할 유치하지 않은 유머..

러시아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관계로 대사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안내책자를 1000원에 구입했는데, 그 안에 인형극의 우리말 대본이 들어있었다. 

인형극의 시작은 러시아 어느 마을에서 사이좋게 지내며 살아가던 소년과 소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게 되고, 둘은 너무나 서로를 사랑하며 즐겁게 사느라 해가 지는지 달이 지는지, 일년이 가는지 십년이 가는지, 심지어 자신들이 늙어버렸다는 것도 몰랐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사람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어떻게 사랑하며 살면, 자기들이 늙는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면서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부러웠다.  현실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꿈꾸게 하는 것.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향해 조금은 더 가깝게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게 동화나 인형극의 힘인지도 모른다. 

비니는 인형극을 보는 내내 다시 또 진지 모드..  박수도 치고 "저건 뭐야?"하며 간혹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심각한 표정이었다.  먹고 싶다고 조르던 도너츠도 잊어버리고..  인형극이 끝나고 배우들과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디카를 소지한 관객에 한해서만 사진촬영이 허락되었다)



 원래 남자 배우가 한 명 더 있는데 사진 촬영엔 나오지 않았다.  좀 마르고 인상 좋은 배우였는데, 조금 아쉬웠다. 

사진을 찍는데 비니가 갑자기 아랫입술을 삐죽~  그래서 좀 이상하게 나왔다. 

비니 왼쪽에 있는 인형이 주인공 찌료쉬까이고 오른쪽에 앉은 인형이 마녀의 못된 딸 알룐까이다. 

사랑하다 늙는 것도 몰랐던 소년과 소녀, 즉 할아버지와 할머니 인형도 무척 인상적인 인형이었는데...

 

 

 

인형극을 마치고 나오니 우리 비니 또 인형극 보고 싶단다.  그리곤 다시 이어진 도너츠 타령...
다시 대한극장으로 가서 지니와 뽀를 태우고  똥낀도너츠(우리 아이들식 발음이다)로 갔다.

비니가 찾는 도너츠는 분홍색 얼굴도너츠다.  비니는 늘 그 도너츠를 먹겠다고 하고, 그리고 늘 포장은 싫고 매장에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먹겠다고 한다.



 "얼굴도너츠~~"하며 떼쓰는 비니다. 

도너츠를 고르고 계산하기까지의 시간을 못참아서 저러고 있다. 

그동안 지니랑 뽀는 자기들이 본 영화에 대해 열심히 얘기 중..

나에게도 얘기해주는데 별로 감이 오질 않는다.

무지 재밌었다는 건 알겠다.

 

 

 

 

 



자, 비니의 도너츠가 바로 저기 있다.  그 옆에 코코넛 가루를 뿌린 초코 도너츠는 내가 좋아하는 도너츠다.  가격도 싸고 많이 달지도 않아서 좋아한다.  우리 옆지기가 고른 도너츠는 덩치에 안어울리게 저 꼬마도너츠 여섯개다. 

도너츠를 먹고 나서 비니는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얼굴도너츠 다 먹고 아빠 꺼 뺏어먹고 있는 중이다. 

도너츠 다 먹고 나더니

"또 인형극 보퍼~" 한다.

피곤해서 지친 것 같은데.. 우리 비니 그날 낮잠도 안자고 놀이터에서 저녁 늦게까지 놀았다. 

놀이터에서 비니 데리고 놀다보면, 나는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어머나~~ 아직도 안 들어가셨어요?"

비니는 엄청나게 잘 노는 체력 좋은 아이로 소문이 났다. 

오늘은 또 어떨지.. 비도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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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팟의 날개책 시리즈 (에릭 힐 글, 그림/ 한국 프뢰벨)
스팟의 날개책 시리즈 중에서 고른 것들이다.  일단 날개라는 장치를 아이들이 좋아하다보니 비니의 집중적인 애정공세를 받은 책이다.  그림 하나에 문장 하나의 아주 간결하고 단순한 그림책이라서 읽어 주기가 어렵지 않다는 게 엄마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었다.  스팟이라는 강아지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주로 부활절에 있을 것 같은 초콜릿 달걀 찾기라든가 하는 내용은 우리나라 아이들의 일상과는 좀 괴리감이 있긴 하지만.. 
비니가 선호도만을 따지고 본다면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줘야하는 그림책이다.

 구두구두 걸어라 (하야시 아키코 글, 그림/ 이영준 옮김/ 한림출판사)
<싹싹싹>이나 <달님 안녕>과 비슷한 그림풍,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책이다.  어린 아이의 구두가 걷기도 하고, 발끝을 세워 걷기고 하고, 높이 뛰기도 하다가 넘어지고 혼자 일어서고, 그러다 졸려서 쿨쿨 잔다는 이야기.  다소 싱겁긴 하지만 비니는 구두만 나와서 걷고 뛰고 하는 걸 보고 재밌어 한다.  아직은 단순한 그림책이 좋을 나이다.

 저런, 벌거숭이네 (고미타로 글,그림/ 비룡소)
고미 타로의 그림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발상과 그림이 재밌어서 고른 책이다.  사자에서 곰으로, 곰에서 남자아이 용이로 변하는 과정이 재밌다.  변하는 과정이라고 해봐야 옷을 벗는 것 뿐이지만.  비니도 재밌어했고, 중학생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짜리 아들도 보면서 히히거린 그림책이다. 

 

 바다 건너 저쪽 (고미타로 글,그림/ 보림)
매우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림책,  바닷가에 수평선 저 너머를 바라보며 서있는 여자 아이의 낯선 세상에 대한 동경과 친구를 갖고 싶어하는 외로운 마음이 나타나 있다.  바다 저 너머를 상상하는 아이의 마음에 내 마음이 포개졌던 그림책이다.  고미타로의 그림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그림책은 꽤 괜찮다.  글은 짧지만 비니가 공감하기엔 너무 정적이고 결이 곱다. 

 안돼, 데이빗! (데이빗 섀논 글,그림/ 지경사)
비니는 데이빗 팬이다.  처음엔 데이빗처럼 말썽꾸러기가 되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였다.  비니는 데이빗이 저지르는 말썽을 보면서 그런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자기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 같다. ㅎㅎㅎ  암튼 그다지 섬세하지도 않고, 꽤 과장이 심한 그림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꼬마 데이빗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을 잘도 표현해놓았다.  비니는 데이빗 시리즈 중에 자기가 안 본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도 보퍼"한다. 

 엄마 마중 (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소년한길)
 우리나라 그림책 중에 명작 반열에 들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추억을 자극하는 정감어린 그림이 감동적이다.  비니는 그다지 재밌어하진 않지만,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비니는 그림 속에서 꼬마아이를 찾아내기도 하고 눈이 오는 그림에서 "눈이다, 눈"하며 반가워하기도 한다.  꼬마 아이가 엄마를 만나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찾아내곤 슬며시 웃는다.  29개월밖에 안된 아기라도 그림 속 아이가 엄마를 만났다는 결말에 대해서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다.

 모두 친구들이야 (박은정 글/강근영 그림/이수현 꾸밈/웅진주니어)
잼잼곰 시리즈 중 하나.  수학 영역에 속하는 그림책이다.  모양과 색깔에 따른 분류의 개념을 알려주고 있다.  여러가지 과일과 채소의 모양대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서 아이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잼잼곰 시리즈 중에서 만족도가 높은 그림책이다. 

보물찾기는 힘들어
(카도노 에이코 글/다루이시 마코 그림/김난주 옮김/웅진 주니어)
가장 의외였던 그림책. 겉표지에 보라색 공룡의 발톱을 가위로 잘라주고 있는 아이의 그림에 혹해서 비니가 고른 그림책인데 꽤 글이 길었다.  너무 글이 길어서 집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찾기식의 이야기 구성과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있어서 그런지 비니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진지하게 집중했다.  그리곤 몇 번 더 읽어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그림에서는 약간 하야시 아키코 풍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노랑 버스가 부릉부릉 (신순재 글/오정택 그림/이수현 꾸밈/웅진주니어)
잼잼곰 시리즈 중 수학 영역의 그림책이다.  규칙성에 대한 내용인데 노골적으로 티나지 않게 잘 만든 것 같다.  만족스럽다.  노랑 버스가 동물들을 태울 때마다 내는 소리가 달라지는 걸 비니랑 같이 흉내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씽씽 쌩쌩'에서 '부릉부릉', '부르르릉', 그러다가 '터덜터덜 탈탈탈'로 변하는 과정 말이다.  비니의 선호도도 높은 편이다.

  윌리와 악당 벌렁코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웅진주니어)
앤서니 브라운은 아무래도 천재다.  유머, 휴머니티, 선과 정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 모든 것을 그림책에 담아낼 줄 아는 천재. 이 그림책을 읽으며 나는 또 웃다가 감동하다를 반복.  비니는 내용을 이해하기엔 어렵다 해도 그림을 보는 재미만으로도 이 책을 즐긴다.

 

 내 친구 깡총이 (에릭 로만 글,그림/이상희 옮김/바다출판사)
굵은 윤곽선, 마치 판화를 보는 듯한 느낌의 그림. 코끼리와 코뿔소와 하마의 거대한 느낌이 잘 전해지는 그림책이다.  비니도 그림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걸까?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표정과 행동에 집중하는 듯하다.

 

 제 각기 자기 색깔 (레오 리오니 지음/ 김영무 옮김/분도출판)
아이에게 색에 대한 개념을 심어줄 수 있는 그림책인 동시에 자기 색이 없는 카멜레온이 친구를 만나 어울려 살아가며 외로움을 덜어낸다는 이야기.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 몇 가지..금붕어의 빨간색과 돼지의 분홍색이 잘 구별이 안되는 것, 코끼리의 색깔을 왜 잿빛이라고 번역했을까 하는 점(유아에게 잿빛은 실감하기 어려운 색이다),  "빨강"이라는 좀더 확실한 색의 명칭에도 불구하고 "붉다"라는 폭넓은 색의 개념을 가져다 번역했을까 하는 점, 번역을 멋지게 하겠다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유아들의 언어이해의 측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몇 구절..암튼,,그런 몇 가지들 때문에 그림책의 매력이 반감한 것 같아 속상했다.

 

  끼리꾸루
 (초신타 그림/ V.베르스토프 원작/사카타 히로오 글/유문조 옮김/비룡소)

이 세상 최초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 비니는 눈과 입이 없이, 몸의 윤곽과 형태만 지닌 이구아노돈의 그림과 "끼리꾸루"라는 말의 어감에 관심을 갖고 즐거워했다.  '그림을 너무 쉽게 그린 것 아냐?"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친 붓놀림이 느껴지는 그림책인데도 비니의 마음을 당긴다. 화려한 색과 커다란 이구아노돈 때문일까?

 

 비가 오는 날에 (이혜리 지음/ 정병규 꾸밈/ 보림)

오래 전부터 군침 흘리며 찍어두었던 책. 일단 이혜리님이 그림작가로서가 아니라 그림책 작가로(글까지 이혜리님이 지으셨으므로) 만든 그림책이라는 점이 이 책에 대한 욕심을 부리게 했다.  기대했던만큼, 만족한 책. 비니도 보면서 즐거워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아빠가 선물을 들고 있어서일까?

 

 한입에 덥석 (키소 히데오 그림,글/한수연 옮김/시공주니어)

동물들이 수박을 나눠먹는 이야기. 동물들의 입 모양에 따라 한 입 덥석 물고 났을 때의 수박에 새겨지는 모양이 다르다.  비니는 그게 재밌나 보다.  마지막에 하마가 한입에 덥석 했을 때, 비니가 웃었다!!! 와~~ 우리 비니가 그런 유머를 이해하고 웃다니! 

 

  데이빗, 무슨 냄새지? / 데이빗은 못말려/ 데이빗은 궁금해
(데이빗 섀논 지음/김혜원 옮김/지경사)

데이빗이 비니의 이상형이 될까봐 심히 걱정스럽다. 글이 별로 없으니 읽어주기는 편하다만 말썽꾸러기 데이빗의 모습을 닮게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책 속의 데이빗의 표정이 볼수록 사랑스럽긴 하다. 아이의 천진한 모습을 너무나 잘 나타낸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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