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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글을 읽지 않고 그림만 들여다 보고 있어도 가슴 속이 짠해져 온다. 그림책 속 아이의 뒤를 따라 가만가만 걸어가 전차 정거장에 함께 서 있다보면 추억이나 그리움, 향수와 같은 감정들이 뒤범벅이 되어 일렁이는 걸 느낀다.
김동성님의 한국화 향내가 물씬 나는 그림이 그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초록빛과 황토빛이 그림 속에 펼쳐져 있다. 조금은 바랜 듯이, 또는 시간이라는 건널 수 없는 거리를 넘어 바라보는 먼 풍경처럼, 선명하지 않은 빛깔로 추억처럼 빛나면서..
가장 서민을 대표할 수 있는 색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것도 근대화라는 폭풍, 유난히 혹독한 근대화의 시기를 지나야 했던 우리 나라의 민중들의 색. 고단하고 슬픈 삶, 가난했지만 인정많던 순박한 사람들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 색. 그게 바로 초록과 황토빛이 아니었을까.. 이 그림책에서 느껴지는 애잔함의 발원지가 바로 저 색들이 아닐런지.
그림책 속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며 시선을 왼쪽을 향하고 있다. 꼼짝않고 서서 코끝이 빨개진 채로 그림책 화면을 넘어 아득한 저 쪽. 엄마가 오실 방향을 향해 있는 아이의 표정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데도, 아이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두 번째 차장이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하고 가버리는 그림에선 아이의 눈꼬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아래로 살짝 내려가 있기도 하다.
아이의 그 아득한 기다림이 더께 더께 묻어있어서 그런지 전차가 오는 장면의 그림은 한폭의 꿈 같다. 꼬마에게 느껴질 기다림의 아득한 시간들이 그 세 장의 그림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전차가 커다란 나무 밑을 지나는 그림, 마치 물고기 떼 가득한 바다 속을 달려오는 듯한 그림(아마 물고기 떼처럼 보이는 그 수많은 초록 빛 점들은 달리는 전차 뒤로 휙휙 흩날리는 나뭇잎들일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리고 샛노란 햇빛이 가득한 하늘 아래를 공중에 붕 뜬 채로 달려오는 그림에는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이, 커다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기다림의 시간과 불안함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보며 지난 기억 속의 하나의 풍경만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서까지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마음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그림,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혓바닥 위로 그림의 맛이 번질 것 같고, 내 눈동자 망막 위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 눈 내리는 하늘이 초록 빛이다. 하얗게 눈이 쌓인 키 낮은 지붕들이 정겹게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 골목길 풍경이다. 아이의 아득했던 기다림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빨간 막대 사탕을 쥐고 엄마와 시선을 맞대고 있는 아이의 행복한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콧마루가 시큰해져서 공연히 헛기침하게 되는 그런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