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지니와 뽀는 '트랜스포머'를, 나와 옆지기 그리고 비니는 샘터 파랑새 극장으로 '찌료쉬까 마녀 탈출 대소동'이라는 인형극을 보러 갔다.
지니와 뽀를 대한극장 앞에 내려주고 인형극관람까지는 시간이 좀 넉넉하게 남아서 필동면옥에서 냉면으로 좀 이른 점심을 먹고, 옆지기 충무로 사무실에서 커피까지 마셨다. 사무실에 딱딱한 공간 구성이 마음에 안들고 답답했던지 비니는 칭얼칭얼. 그러다가 사무실 책상 위로 기어올라가서는 전화 내선을 누르며 다른 쪽 책상에 앉은 아빠와 내선통화중.

러시아 국립인형극단의 초청공연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인형극이었지만 사실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었다. 그냥, 지난번 도서관에서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인형극을 너무 진지하게 보고 재밌어 하기에, 한 인터넷 까페를 통해 15000원짜리 티켓을 7000원에 구입해서 보러가기로 했던 것.
사람이 꽤 복작복작했다. 휴일 대학로라는 게 늘 그렇겠지만. 비니는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옆에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아이스크림과 천사표 도너츠에 눈독을 들이며 사달라고 졸랐다. 인형극을 보고 난 다음에 사주겠다고 달래고 달래서 겨우 입장.
인형극은 러시아어로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기대보다... 무지 재미있었다.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극의 진행도 그랬고, 소품의 효과적이고도 재치있는 사용, 배우들의 춤과 연주, 개성있는 캐릭터의 인형들, 어른들도 즐거워할 유치하지 않은 유머..
러시아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관계로 대사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안내책자를 1000원에 구입했는데, 그 안에 인형극의 우리말 대본이 들어있었다.
인형극의 시작은 러시아 어느 마을에서 사이좋게 지내며 살아가던 소년과 소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게 되고, 둘은 너무나 서로를 사랑하며 즐겁게 사느라 해가 지는지 달이 지는지, 일년이 가는지 십년이 가는지, 심지어 자신들이 늙어버렸다는 것도 몰랐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사람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어떻게 사랑하며 살면, 자기들이 늙는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면서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부러웠다. 현실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꿈꾸게 하는 것.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향해 조금은 더 가깝게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게 동화나 인형극의 힘인지도 모른다.
비니는 인형극을 보는 내내 다시 또 진지 모드.. 박수도 치고 "저건 뭐야?"하며 간혹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심각한 표정이었다. 먹고 싶다고 조르던 도너츠도 잊어버리고.. 인형극이 끝나고 배우들과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디카를 소지한 관객에 한해서만 사진촬영이 허락되었다)

원래 남자 배우가 한 명 더 있는데 사진 촬영엔 나오지 않았다. 좀 마르고 인상 좋은 배우였는데, 조금 아쉬웠다.
사진을 찍는데 비니가 갑자기 아랫입술을 삐죽~ 그래서 좀 이상하게 나왔다.
비니 왼쪽에 있는 인형이 주인공 찌료쉬까이고 오른쪽에 앉은 인형이 마녀의 못된 딸 알룐까이다.
사랑하다 늙는 것도 몰랐던 소년과 소녀, 즉 할아버지와 할머니 인형도 무척 인상적인 인형이었는데...
인형극을 마치고 나오니 우리 비니 또 인형극 보고 싶단다. 그리곤 다시 이어진 도너츠 타령...
다시 대한극장으로 가서 지니와 뽀를 태우고 똥낀도너츠(우리 아이들식 발음이다)로 갔다.
비니가 찾는 도너츠는 분홍색 얼굴도너츠다. 비니는 늘 그 도너츠를 먹겠다고 하고, 그리고 늘 포장은 싫고 매장에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먹겠다고 한다.

"얼굴도너츠~~"하며 떼쓰는 비니다.
도너츠를 고르고 계산하기까지의 시간을 못참아서 저러고 있다.
그동안 지니랑 뽀는 자기들이 본 영화에 대해 열심히 얘기 중..
나에게도 얘기해주는데 별로 감이 오질 않는다.
무지 재밌었다는 건 알겠다.

자, 비니의 도너츠가 바로 저기 있다. 그 옆에 코코넛 가루를 뿌린 초코 도너츠는 내가 좋아하는 도너츠다. 가격도 싸고 많이 달지도 않아서 좋아한다. 우리 옆지기가 고른 도너츠는 덩치에 안어울리게 저 꼬마도너츠 여섯개다.
도너츠를 먹고 나서 비니는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얼굴도너츠 다 먹고 아빠 꺼 뺏어먹고 있는 중이다.
도너츠 다 먹고 나더니
"또 인형극 보퍼~" 한다.
피곤해서 지친 것 같은데.. 우리 비니 그날 낮잠도 안자고 놀이터에서 저녁 늦게까지 놀았다.
놀이터에서 비니 데리고 놀다보면, 나는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어머나~~ 아직도 안 들어가셨어요?"
비니는 엄청나게 잘 노는 체력 좋은 아이로 소문이 났다.
오늘은 또 어떨지.. 비도 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