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미스터리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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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주기적으로 읽고 있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중 11<위대한 미스터리>를 할 차례란다. 10권까지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한 권씩 샀는데, 알고 보니 세트로 사면 좀 더 싼 가격을 살 수 있더구나. 첫 번째 세트가 1권부터 10권까지 모았고, 두 번째 세트는 11권부터 21권까지 모았단다. 어차피 21권까지 다 읽기로 마음 먹었으니 11 21권까지는 거금이 나가긴 하지만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으니 세트로 샀단다. 세트로 사니 보관 박스도 있더구나. 그 박스에서 새 책 냄새 풀풀 나는 11 <위대한 미스터리>를 꺼내 들었단다.

11권은 1141 8월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지난 10권의 이야기가 1141 5월의 이야기였으니 그로부터 약 세 달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잉글랜드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진영 간 내전이 계속되고 있단다. 윈체스터를 점령하고 스티븐 왕을 인질로 잡은 모드 황후가 승기를 잡은 상태였지만, 모드 황후의 거만함 때문에 급격하게 윈체스터의 민심을 잃고 말았단다. 이를 눈치챈 윈체스트 헨리 주교는 모드 황후의 진영을 떠나 민심을 이용하여 모드 황후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란다. 참고로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헨리 주교는 스티븐 왕의 동생이란다. 그리고 스피븐 왕의 아내 마틸다 왕비는 군대를 이끌고 모드 황후 진영으로 향하고 있었어.

….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은 여전했단다. 캐드펠 수사는 구호소에 필요한 약들을 제조했단다. 어느날 베네딕트 회 하이드 수도원 소속의 휴밀리스 수사와 피데일리스 수사가 찾아왔어. 그들이 찾아온 이유는 모드 황후와 헨리 주교의 싸움으로 그들이 머물고 있던 하이드 수도원에 화재가 발생하여 폐허가 되어서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에 오게 되었어. 그 중에 휴밀리스 수사는 40대 후반이었는데 수사가 되기 전에 십자군에서 큰 공을 세워 유명해진 고드프리드 메이스콧이라는 사람이었어. 휴밀리스 수사는 십자군 원정 당시 다신 부상으로 배에서 다리까지 이어지는 큰 상처를 있고 계속 고름이 나오고 있어서 걷는 것도 쉽지 않았어. 그에 반해 피데일리스 수사는 젊은 수사로 몸이 불편한 휴밀리스 수사를 계속 간호를 해주었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휴밀리스 수사는 말을 하지 못한 벙어리였단다.

휴밀리스 수사가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쓰러지고 말았단다. 캐드펠 수사가 그를 진료해주었는데, 캐드펠 수사가 봤을 때 휴밀리스 수사의 부상을 손쓰기에는 너무 상처가 깊었단다. 피데일리스 수사는 나이가 비슷한 흐륀 견습수사와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어. 흐륀 수사는 지난 10권에서도 나왔는데, 성 위니프리드 은총을 받아 다리를 치유한 그 사람인데 기억나니?

 

1.

니컬러스 하니지라는 사람이 수도원에 휴밀리스 수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어. 니컬러스는 휴밀리스 수사가 고드프리드였던 시절 십자군을 함께 갔던 사람으로 고드프리드의 부하였던 사람이란다. 니컬러스가 고드프리스를 찾아온 이유는 이렇단다. 고드프리드에게는 정혼자가 있었어. 그런데 십자군 원정에서 하반신을 크게 다치고 나서 수사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자신이 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니, 부하 니컬러스에게 시켜서 결혼 약속을 파기하자는 내용을 신부 가족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단다. 그것이 3년 전이었어. 그런데 니컬러스는 고드프리드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줄리언 크루스를 보고 첫눈에 반했단다. 당시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머릿속에서 그녀가 떠나지 않았어. 그래서 니컬러스는 이번에 고드프리드를 찾아와 자신이 줄리언에게 청혼해도 되는지 허락 받으려고 온 것이란다. 고드프리드, 그러니까 휴밀리스 수사는 흔쾌히 허락했단다. 자신이 결혼을 파기하여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는데, 니컬러스처럼 성실한 남자와 결혼한다면 줄리언의 가족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니컬러스는 고드프리드의 허락을 받고 줄리언의 집을 찾아갔단다. 하지만 줄리언은 3년 전에 이미 수녀가 되어 웨어웰 수녀원에서 지낸다고 했어. 이 사실을 알게 된 니컬러스는 크게 좌절했단다. 니컬러스는 다시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에 와서 휴밀리스 수사를 만나 줄리언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단다.

다음날 휴 베링어는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왔단다. 모드 황후의 군대가 공격해서 웨어웰 수녀원이 불타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거야. 그 소식을 듣자마자 니컬러스는 웨어웰 수녀원으로 떠났단다. 그곳에 줄리언이 있다고 했으니 걱정이 되어 간 것이란다. 니컬러스는 수소문 끝에 웨어웰 수녀원의 원장님을 만났으나, 원장님이 말씀하시기를, 웨어웰 수녀원에서는 줄리언 크로스라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 어떻게 된 거지? 니컬러스는 다시 줄리언의 집에 가서 줄리언의 오빠를 만났는데 줄리언의 오빠도 그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어.

3년 전 줄리언이 수녀원에 갈 때 호위했던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때 호위한 네 명 중에 한 명인 애덤 헤리엇은 군대에 차출되어 만나지 못했고, 나머지 세 명은 만나보았어. 그들이 이야기하기를, 수녀원 근처까지 갔는데, 마지막 6km를 남기고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는 거야. 거기부터는 줄리언의 지시로 애덤 혼자 줄리언을 호위하고 갔다는 거야. 6km면 길어야 두 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3년 전이긴 하지만 줄리언 크로스가 사라졌으니 이는 실종 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더욱이 당시 줄리언은 수녀원에 기증할 은화 300냥과 귀금속을 지니고 있었거든. 그 돈과 귀금속을 노리고 누군가 줄리언을 공격했을 수도 있잖니. 어쩌면 그 누군가가 애덤 헤리엇일 수도 있고 말이지.

니컬러스는 휴 베링어에게 줄리언의 실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신고를 했단다. 휴 베링어는 실종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애덤의 여동생 부부의 집을 찾아갔는데 애덤 헤리엇이 휴가를 나와서 그곳에 머물고 있었어. 휴 베링어는 애덤에게 3년 전 있었던 일을 물어보니, 애덤도 줄리언의 소식을 듣고 싶다고 했어. 알고 보니 애덤은 줄리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살펴주던 충직한 하인이었어. 그날 수녀원까지 6km부터 애덤과 줄리언이 함께 간 것은 맞다고 했어. 그런데 1km 정도 남았을 때 줄리언은 혼자서 수녀원에 가겠다고 했대. 충직한 애덤은 줄리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대. 1km 밖에 남지 않았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일단 휴 베링어는 애덤을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데리고 왔단다. 애덤의 말들이 아직 진실임이 확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감옥에 가두기로 했단다. 애덤이 줄리언이 실종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기도 하고애덤도 순순히 휴 베링어의 말을 따랐단다.

             

2.

수도원에 진료소에 새로 온 수사인 유리언 수사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이 사람은 좀 음흉한 사람인 것 같았어. 휴밀리스 수사를 보살펴주고 있는 벙어리 수사인 피데일리스 수사에게 집적댔어. 어느 날은 은밀히 피데일리스 수사를 만나 협박까지 했단다. 줄리언이 잃어버린 목걸이로 추정되는 목걸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자신과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겠다면서 말이야. 그렇게 협박하는 장면을 흐륀 수사가 우연히 보았단다. 흐륀 수사는 고자질까지는 못하고, 유리언 수사를 따로 만나서 고해성사를 하도록 설득했단다.

한편 휴밀리스 수사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단다. 밤에 자다가 깼는데 옆에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는 피데일리스 수사가 줄리언의 목걸이를 하고 있는 보았단다. 그리고는 휴밀리스 수사는 무엇인가 깨닫게 되었어. 입 밖으로는 내뱉지는 않았지만이쯤 읽었을 때 아빠도 피데일리스 수사가 줄리언인 것 같았어. 줄리언이 남장을 하고 휴밀리스 수사를 옆에서 간호를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어렸을 때 정혼한 상대에 대한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이런 예측이 맞는지 계속 살펴보자꾸나.

휴밀리스 수사는 죽기 전에 자신의 고향인 솔턴에 가보고 싶다면서 캐드펠 수사에게 도와달라고 했단다. 캐드펠은 수도원장을 만나 휴밀리스 수사의 의사를 전달하고 허락을 받았단다. 그리고 캐드펠 수사가 잘 알고 있는 뱃사공 마독에게 그 일을 부탁했단다. 한편, 니컬러스는 줄리언의 행방을 찾는데 동분서주하고 있었어. 윈체스터까지 가서 3년 전 사라진 줄리언의 귀금속 중 반지를 찾게 되었어. 어떤 은세공업자의 아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3년 전에 50대 정도 되는, 거친 남자한테서 구입했다고 했어.

외모를 설명한 것을 듣는 순간 그 남자는 애덤 헤리엇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어. 그 반지를 판 사람이 이야기하기를 반지의 주인은 죽었다고 했대. 그런데 그가 이야기한 것이 의심스러워 반지를 구입하고 나서도 그 낯선 사내의 뒤를 쫓아갔대. 그 사내는 어떤 젊은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주고 받는 것을 보았다고 했어. 니컬러스는 애덤 헤리엇이 그 젊은 남자와 짜고 줄리언을 죽였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 니컬러스는 그 은세공업자의 아내에게 반지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하고 반지를 가지고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돌아왔단다.

휴밀리스 수사는 피데일리스 수사는 뱃사공 마독의 배를 타고 솔턴에 갔단다. 휴밀리스 수사는 솔턴에 도착해서 고향을 보고 감격을 했단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 휴밀리스 수사는 마독에게 다시 돌아가자고 했어. 그런데 다시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만났어. 강가에 있던 나무가 번개에 맞아 부러졌는데, 그 나뭇가지가 마독의 배로 떨어져서 배가 부서지고 말았어. 그리고 배에 타고 있던 휴밀리스 수사, 피데일리스 수사, 마독은 모두 물에 빠지고 말았어. 중상을 입고 있던 휴밀리스 수사는 혼자 힘으로 뭍으로 올 수 없었어. 피데일리스 수사가 휴밀리스 수사를 데리고 뭍으로 간신히 올라왔지만 힘에 부쳐서 쓰러지고 말았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휴밀리스 수사는 이미 죽고 말았단다.

마독은 캐드펠 수사를 찾아가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두 수사가 쓰러졌다고 이야기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캐드펠 수사는 휴 베링어의 집으로 갔어. 휴 베링어의 아내 얼라인을 만나서 도와달라면서 어디로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어. 얼라인도 캐드펠 수사을 존경하였기 때문에 이유도 묻지 않고 함께 갔단다.

윈체스터를 떠난 니컬러스는 수도원에 도착해서 휴 베링어를 만났어. 그리고 윈체스터에서 알게 된 일들을 이야기하고 애덤 헤리엇을 범인이라고 이야기했단다. 휴 베링어와 니컬러스는 감옥에 갇혀 있는 애덤을 만나러 갔어. 증인도 있고 반지라는 증거도 내밀면서 애덤에게 자백하라고 했어. 그러나 애덤은 자신이 반지를 판 적이 없다면서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어. 휴 베링어는 자백하라고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애덤은 같은 말만 반복했어. 그런데 그곳에 휴밀리스 수사와 피데일리스 수사가 익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그 소식을 들은 애덤은 갑자기 좌절의 눈빛을 보였어. 이젠 피데일리스 수사가 줄리언이라는 것이 확실시 되는구나.

….

 

3.

휴밀리스 수사와 피데일리스 수사의 장례식이 있었어. 장례식을 하고 있을 때 고드릭 포드의 매그덜린 수녀가 방문을 하고 어떤 편지를 휴 베링어에게 전달해 주었단다. 휴 베링어는 그 편지를 보고 깜짝 놀라고, 그 편지를 장례식장에서 낭독했단다. 그 편지는 줄리언 크루스가 쓴 편지였어. 자신이 죽었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 특히 애덤이 피해를 본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해명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다고 했어. 자신은 수녀는 아니지만 수녀원에서 지내면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어. 자신은 죽지 않았으니 애덤은 죄가 없다는 내용이었어. 그리고 자신이 슈롭서에 방문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방문하겠다는 내용도 있었어. 이로 인해 줄리언의 오빠 래지널드와 충직한 하인 애덤이 함께 고드릭 포드에 가서 줄리언을 데리고 왔단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지? 이것은 캐드펠 수사가 꾸민 것이란다. 이미 한참 전에 캐드펠 수사는 피데일리스 수사를 만난 이후 그와 함께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정리해 보고 피데일리스 수사가 줄리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 피데일리스 수사가 줄리언이라고 그냥 이야기하면 남장을 하고 수사가 되어 수도원에서 지낸 줄리언은 큰 죄를 지은 것이 되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무도 피해입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단다. 피데일리스 수사는 사라지고 줄리언이 나타나게 하는 방법 말이야. 그러던 중 폭풍우로 두 수사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거야. 순간적으로 이것이 캐드펠 수사가 고민하던 것을 해결해줄 기회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얼라인을 데리고 휴밀리스 수사와 피데일리스 수사가 있는 것으로 갔어. 피데일리스 수사, 아니 줄리언은 휴밀리스 수사를 붙잡고 실신해 있었어. 줄리언이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손을 대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얼라인을 데리고 가서 도움을 청했던 거야. 얼라인의 도움을 받아 줄리언을 말에 태워 고드린 포드에 가서 매그덜린 수녀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매그덜린 수녀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5권과 9권에서도 등장했던 사람은 수녀가 된지 얼마 안된 수녀로 캐드펠과 친분이 있고, 무엇보다 융통성 레벨이 높은 사람이었단다. 캐드펠의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한 거야. 휴 베링어가 장례식장에서 읽은 편지도 매그덜린 수녀가 쓴 거야.

줄리언이 아리따운 여자의 모습을 하고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에 왔단다. 니컬러스는 줄리언이 피데일리스 수사인 걸 알아보았지만, 눈치채고 모른 척 했단다. 줄리언은 앞으로 자신이 머무를 레이 장원으로 니컬러스를 초대했단다. 그들의 사랑이 싹틀 것 같구나. 한편, 흐륀 수사와 유리언 수사는 피데일리스 수사의 죽음이 자신들 책임 같아서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줄리언을 보고 깨닫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들도 비밀을 지키기로 했어. 그래서 캐드펠의 계획대로 피데일리스 수사는 강물에 떠내려가 시신을 찾지 못하고 죽은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고, 줄리언 크루스는 고드릭 포드의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었던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단다.

그렇다면 줄리언은 왜 남장을 하고 수사가 된 것일까? 줄리언은 결혼이라는 약속을 쉽게 어길 수 없다고 생각한 거야. 장애를 갖고 중상을 입은 휴밀리스 수사를 옆에서 봉사하는 것이 부부의 연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휴밀리스 수사도 피데일리스 수사의 목걸이를 보고 그가 줄리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끝내 줄리언에게도 말하지 않고 모른 척 하면서 줄리언의 비밀을 지켜주었단다.

이번 <위대한 미스터리> 편은 소중한 비밀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구나. 너희들도 고의든 우연이든 어떤 사람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잘 지켜주는 것도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휴밀리스가 줄리언 당사자에게도 모른 척 한 것처럼, 비밀의 당사자에게도 모른 척해주는 그런 성품을 지녔으면 좋겠네. 누구나 비밀이 있으니까그런데 너희들 비밀은 무엇일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141년 여름, 8월이 되었다.

책의 끝 문장: 이 위대한 신비로 부부의 결합을 거룩하게 하신 하느님, 당신의 종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소서. – 가톨릭 기도서 중 <혼인 예식의 축복>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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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6-30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구판 20권 같고 있는데 중세추리소설의 정점인거 같더군요.

bookholic 2026-07-01 18:45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유명했던 시리즈군요~~^^ 저는 최근에 알게 되어 읽고 있는데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김세라 지음 / 은빛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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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두어 달 전에 유튜브 <매불쇼>를 보다가 초대 손님으로 나온 유시민 작가님의 신간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책을 알게 되고, 인터넷 서점으로 가서 주문해서 읽었단다. 누군가는 유시민 작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빠에게 유시민 작가는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스승님과 같은 분이란다. 그래서 그의 신간이 나오게 되면 꼭 읽곤 한단다. 이번에 나온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책의 부제는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로 되어 있단다. 강순희라는 분을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강순희라는 분은 어떤 분일까? <매불쇼>에서 유시민 작가가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대충 해주셔서 강순희 님이 인혁당 사건의 유가족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인혁당 사건은 인민혁명당 사건의 줄인 말로, 1964년 첫 번째 인혁당 사건이 있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두 번째 인혁당 사건이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두 번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인데,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해서 자백을 받는 식으로 누명을 씌우고 속전속결로 재판을 진행하여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내린 지 하루도 안되어 사형을 집행하는 만행을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렀단다. 전세계에도 유례가 없는 사법살인의 사례로 알려졌단다. 암울한 독재 시대의 잊지 못할 잔상이구나. 그들뿐만 아니라 연좌제로 그들의 가족도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했는데,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의 강순희 님은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의 희생자 우홍선 님의 아내 되시는 분이란다.

1998년 인혁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되었고, 2005년에 다시 재판이 시작되어 2007년에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해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가 내려졌단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다행이라고 하기도 뭣 하구나.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이라도 달래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홍선 님의 아내 강순희 님은 직접 유시민 님께 연락을 하셔서 자신의 자서전 작업을 부탁하셨다고 하더구나. 이 책은 강순희 님이 2011 4.9통일평화재단과 진행한 인터뷰한 내용과 최근에 유시민 님과 진행한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란다.


1.

강순희 님은 1933년 함경북도 박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어. 아버지가 하얼빈에서 와이셔츠 사업을 하셔서 어렸을 때는 하얼빈에서 자랐대. 세 살 때 하얼빈으로 이사를 가서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 지냈다고 했어. 그리고 광복 2년 전에 다시 박천으로 돌아와서 해방을 맞았다고 하는구나. 북한에서는 해방 후 대대적으로 토지개혁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강순희 님의 아버지의 땅도 나라에 몰수 당했다고 했어. 그리고 사업을 위해 아버지는 남한에도 오가곤 했다는구나.

강순희 님은 평양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전쟁이 일어나서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는구나. 대전에서 옷가게를 하다가 아버지의 의견으로 다시 부산까지 내려왔대. 강순희 님은 부산에서 남강고아원이라는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을 했어. 그러다가 지인 소개로 한국은행에 취직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다는구나. 그렇게 한국은행에 취직했지만, 강순희 님의 꿈은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대학교를 다녔대.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서 그 꿈을 잠시 중단했다는구나. 당시에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성이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대학교를 다니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결혼까지 했으니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구나.

강순희 님이 우홍선 님을 만나 결혼한 사랑이야기도 해주셨어. 강순희 님의 친구의 남편이 전쟁 중에 죽어서 그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우홍선 중위가 찾아왔는데 강순희 님도 한자리에 있어서 같이 만나게 되었고, 둘은 첫눈에 반해서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그때가 1956년이었는데, 당시 한국사회에서 결혼 후에 여자가 회사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 하지만 양가 부모님 모두 개방적이시고 좋은 분이시라 결혼 후에도 한국은행을 계속 다니셨대. 아이들도 낳고 하면서 결혼한 후에도 10년을 더 다니시다가 퇴직금이 사라진다는 해서 그 전에 그만 두셨다고 하더구나. 딸 셋 아들 하나를 낳고 애처가 남편과 함께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생활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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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강순희) 그 사람이 맨날 그랬어요. 사람은 살면서 선택을 잘해야 하는데 배우자를 잘 고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나를 잘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내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어요. 무시했으면 내가 가만있지도 않았겠지만, 남편 떠난 다음에 지인이 해준 이야기인데, 한번은 얘기를 하다 말고 일어서더래요. 무슨 약속 있냐고 하니까 아내를 만나기로 했다면서 휙 가버렸대요. 그때는 어이없었다 하더라고. 그 사람하고 이웃에 산 적이 있어요. 갈현동 살 때였는데 바로 길 건너편으로 이사온 거예요. 그 집에 놀러 갔을 때 남편이 과일을 포크로 찍어서 나한테 줬어요. 그걸 보고 다른 집 여자들이 남편한테 자가지 긁었나 봐. 남편들이 안 되겠다고, 우리더러 빨리 이사 가라고 우스개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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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64년 통일운동 모임이 있어 참석을 했을 뿐인데, 이 모임을 인혁당 사건으로 조작하여 수배령이 내려졌단다. 1년 동안 도피하다가 잡혀서 구치소에 들어갔고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고 하는구나. 억울했지만 그래서 집행유예라서 다행이었구나. 출소한 후에도 사업을 하며 평범한 생활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 사건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혀질 즈음인 1974 2차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일어났어.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사건은 완전히 조작된 사건이었어. 그래서 무죄로 판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무죄를 호소하는 편지를 정부 관련자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편지를 쓰셨다고 하는구나. 박정희와 육영수에게도 편지를 썼다고 했어.

하지만 1974 7 11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곧이어 9 7 2심에서도 사형 선고를 받았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어. 그때부터 다른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가족들과 함께 본격적인 구명 운동을 했다고 하는구나. 조지 오글 목사,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국내외 종교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었어. 수많은 사람들의 탄원서도 받아냈단다. 이 때 명동성당에서 강순희 님이 호소문을 낭독했는데 그 글도 명문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글을 보고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없겠다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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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36)

(유시민) 그 호소문을 보면 좋겠다 싶어서 찾아봤어요.

우리들은 살고 싶습니다.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저희들은 10년 전에도 없었고 현재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조작된 인혁당에 묶여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들의 아내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인혁당을 조작하여 북괴에 이롭게 하는 것은 무슨 법, 무슨 조에 해당하는지 만천하에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부디 저희들의 남편을 정치 제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름 없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정치 제물로 삼는다면 그 제물 위에 피는 꽃은 무슨 꽃이 피더라도 향기 없는 꽃이요, 빛깔 없는 꽃이요, 생명력이 없는 꽃일 것입니다. 죽이고 난 다음에는 살릴 수가 없습니다. 이 절실한 호소를 모른 체 묵인함으로 저희들의 남편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자들과 같은 편에 서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중정에서는 저희 남편들을 사형을 시켜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저 무시무시한, 온 권력을 다 가진 정보원들과 아무 힘없는 저희들과 누구의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물론 둘 다 믿을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자세일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 못 믿겠으니 가만히 있자!’하는 것은 공정한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 정보원들과 같은 편에 서서 저희들이 남편을 죽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저희들이 원하는 공명정대한 재판을 죽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저희들이 원하는 공명정대한 재판을 하라고 하신다면 이는 저희들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다 못 믿겠으니 온 국민이 납득이 가는 공정한 재판을 하자 하는 가장 공정한 입장이며 국민의 권리며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시지 마십시오. 만약 포기하신다면 8인의 생명을 죽이는 데 도움을 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살인자들의 편에 서게 되는 결과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희들의 남편은 주교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시인도 아니요, 교수도 아니요, 목사도 아닙니다. 따라서 인혁당원도 결코 아닙니다. 이름 없고, 힘없고, 짓눌린, 선량한 대한민국의 한 국민입니다. 더 이상 저희는 사형이라는 몸서리쳐지는 말을 들을 기력이 없습니다. 피를 토하는 아픔과 절망을 의식하며 여러분 앞에 호소 드리는 바입니다. 1974 12 5. 가족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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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청원하고 호소했지만, 대법원은 1975 4 8일 사형을 선고했단다. 좌절감을 느낀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았어. 사형 선고를 받은 다음날 면회를 위해 감옥을 찾아갔지만 이미 사형 집행을 하고 난 후였단다.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불과 50년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란다. 이 사법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는 그럼 누구인가.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단다. 아빠도 이 사건에 대해서만 알지 이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악한들은 누군인지 몰랐단다. 아빠의 기억력이 나쁘지만 조금이라도 기억하기 위해 그들을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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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민복기(1913~2007)는 이완용의 사돈이자 자신도 일제 귀족 작위를 받았던 민병석의 아들로 경성에서 태어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다음 경성지방법원 판사가 되었다. 미군정청 법률심의국장을 거쳐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대통령 비서관, 법무부 차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으로 승승장구하다가 1968년부터 10년 넘게 대법원장 자리를 지켰다. 두 번째 임기에 인혁당재건위 사건 상고를 기각해 사형에서 징역 15년까지 모든 피고인의 형을 확정했던 그는 1978년 정년퇴임하면서 내 재임 시의 공과는 후세의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전두환의 국정자문회의 위원 위촉을 받아들였고 국정자문회의 위원직도 수행했던 민복기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부친과 나란히 올랐던 민복기의 이름은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박정희가 자행한 사법살인의 하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당시 대법관은 민복기,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 김윤행, 임항준, 한환진, 안병수, 이일규 등 13명이었으며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이일규 한 사람뿐이었다는 사실을 덧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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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을 허망하게 잃었지만, 강순희 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단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살아가야 했단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그리움 또한 잊지 않았어.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한 편지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모곡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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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저 구름 넘어 아득한 곳에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남은 여생을

가시밭길을 걸어서 걸어서

단 한번 만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나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외롭다 하지 않고 고달프다 하지 않고

힘껏 달리고 달려가련만

! 이처럼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니

, 시작도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 서러움을 감당할 길이 없고나,

감당할 길이 없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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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순희 님의 억울함을 속으로 삭이지만 않고, 밖으로도 쏟아 부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병이 나지 않으셨을까 싶구나. 억울하게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자에게 독재자도 무섭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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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강순희) 택시 기사들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웃 사람들도 다 좋았어요. 그때 우리집 골목은 양쪽으로 집이 쭉 있었으니까, 한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다 들렸는데도 내가 맨날 문 열어놓고 소리 질렀어. ‘박정희 살인마!’ ‘민복기 살인마!’ 하도 분해서 나도 잡아가라,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 쪽을 쳐다보면 이웃집 아줌마들이 그냥 지나가라고 했지. 다들 우리 부부를 안타깝게 봤던 것 같아. 그 골목에서 우리 아들 친구네가 살았는데 그 엄마가 하는 말이, 우리 부부가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일부러 내다보곤 했었대. 가뭄이 심해서 동네에 물차가 온 적이 있어요. 물통을 갖다 놓고 물을 받는데 제대로 안 되는 거야. 열불이 나서 한마디 했지. ‘, 이 개새끼야! , 박정희 새끼 잡아 먹고 싶은데 오늘 어느 놈이든지 박정희 대신 잡아먹어야 되겠다!’ 물차 운전사가 막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날 건드리지 말라고 말리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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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강순희 님의 인터뷰의 내용을 읽다 보면 아빠에게도 좋은 가르침을 주는 글들이 참 많았단다. 구순을 넘긴 어르신의 인생에 대한 정의도 요즘 심리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아빠에게 위안을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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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강순희) 중학교 다닐 때였는데 공책에 인생이란?’하고 써놓은 적이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 그거 보고 놀렸어. ‘, 순희, 벌써 인생을 생각하냐?’ 인생이 뭘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한테 주어진, 자기 앞에 펼쳐진 운명을 열심히 살아가는 거, 그게 인생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극복하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다.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장애물이 닥쳐도, 원망 같은 거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런 게 쌓여 인생이 된다. 애들한테 늘 그렇게 얘기했어요. 나도 그렇게 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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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힘껏 노력하는 사는 것, 쉽지 않은 삶의 철학인데 그것을 실천하면서 사셔서 남편을 억울하게 잃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 같구나. 그리고 그런 삶의 자세로 한 평생을 살으셔서 인터뷰를 하신 유시민 님도 나도 아흔세 살까지 산다면 아흔세 살의 강순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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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강순희) 사는 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해요. 불행하지 않았어요. 행복하게 만났고, 행복하게 살았고, 행복하게 애들 키웠고, 일도 닥치는 대로 행복하게 했고, 남편 때문에 싸울 때도 있는 힘을 다했어요. 행복이란 게 사람마다 달라요. 남들 눈에는 행복해 보여도 그 사람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했다’ ‘불행했다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은 거예요. 주어진 운명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며 살았다는 걸로 나는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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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읽은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한 분의 좋은 스승님을 만난 기분이란다. 아빠가 오늘 독서편지를 쓰면서 책의 내용을 많이 인용했는데, 그 외에 좋은 글들도 많아서 더 많이 따로 발췌를 했단다. 50년 전 같은 사법살인이 설마 우리나라에서 다시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2024년에 그 근처까지 갈 뻔한 사건이 있었기에 방심할 수는 없단다.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그리고 당시 사법시스템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사법 카르텔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년여 동안 목격을 했단다. 이런 시스템을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개혁이 되었으면 좋겠으나 사법부가 잡고 있는 권력이 너무 막강하여 지지부진한 것 같더구나. 국민들의 공감대의 힘이 약해지기 전에 얼른 사법 개혁이 진행되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2025 5 21일 오후,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책의 끝 문장: 나도 아흔세 살까지 산다면 아흔세 살의 강순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강순희) 노무현 대통령 생각하면 유시민 작가 생각나고, 유시민 작가 생각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요. 내가 구순 잔치에 노무현 대통령 초대하고 싶었어요. 돌아가셔서 못 하게 되었으니까, 문재인 대통령하고 유시민 작가 초대하려고 했어. 그랬는데 윤석열이 대통령 되는 바람에 구순 잔치를 안 했어요. - P16

(199)
(강순희) 다시 볼 수 없다는 거, 딱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데 어디 가도 볼 수가 없다는 거, 그게 참 기가 막히더라고. <전쟁과 평화> 영화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죽자, 여자가 제일 먼저 한 말이, ‘당신 어디 있느냐’는 거였어요. 나는 그 사람 만나려고 산소에 갔어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꼭 갔지. 택시 타고 다녔어. 누구 보기가 부끄럽더라고. 그래서 버스를 못 타는 거야. 밖에 나가지도 못하겠고, 누구를 만나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꼭 내가 잘못해서 남편이 죽은 것 같았어. 누가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나 혼자 그랬던 건데, 이거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다들 그랬대요.
- P199

(강순희) 택시 기사들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웃 사람들도 다 좋았어요. 그때 우리집 골목은 양쪽으로 집이 쭉 있었으니까, 한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다 들렸는데도 내가 맨날 문 열어놓고 소리 질렀어. ‘박정희 살인마!’ ‘민복기 살인마!’ 하도 분해서 ‘나도 잡아가라,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 쪽을 쳐다보면 이웃집 아줌마들이 그냥 지나가라고 했지. 다들 우리 부부를 안타깝게 봤던 것 같아. 그 골목에서 우리 아들 친구네가 살았는데 그 엄마가 하는 말이, 우리 부부가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일부러 내다보곤 했었대. 가뭄이 심해서 동네에 물차가 온 적이 있어요. 물통을 갖다 놓고 물을 받는데 제대로 안 되는 거야. 열불이 나서 한마디 했지. ‘야, 이 개새끼야! 나, 박정희 새끼 잡아 먹고 싶은데 오늘 어느 놈이든지 박정희 대신 잡아먹어야 되겠다!’ 물차 운전사가 막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날 건드리지 말라고 말리고 그랬어요. - P201

(강순희) 도대체 어떤 놈이 내 남편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느냐, 네깟 것들이 무슨 명예회복을 해주느냐, 이게 나라냐, 나도 힘 있으면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엎고 싶다, 힘이 없어서 못 하는 거다, 이 세상 뒤집어엎으려고 한 게 내 남편의 명예인데, 이 명예가 어때서? 명예 회복 같은 거 신청 안 한다, 돈 몇 푼 보상받는 거 안 한다. 내 생각은 그런 거였어. 명예회복 신청해서 보상받으면 더 분하고 더 억울할 것 같았어. 사람이 죽고 없는데 뭐가 필요하단 말이야? 이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은 거야. 그래서 신청을 안 했어요. 재심 무죄 판결 나고 나서 한명숙 총리가 우리를 공관에 초대했어요. 2007년 2월쯤이었지, 아마? 한 총리가 왜 여태 명예회복이 안 되었냐고 걱정하기에, 내가 안 한 거라고 이유를 싹 설명하고 재판으로 해결했으니까 이제는 할 거라고 했어요. 그 후에 신청해서 했고. - P232

(262)
(강순희) 아무 여한이 없어요. 오늘 밤에 죽는다 해도 괜찮아. 남편 일로 좀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 다 했으니까. 신랑도 잘 만났고, 사랑도 잘 했고, 남편 일로 싸울 때도 잘 싸웠어요. 자기한테 주어진 것을 극복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나한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내 힘껏 노력하고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남편 죽었을 때는 막 같이 죽고 싶었지.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 그렇지만 아이들 위해 살아야겠다 싶어서 고비를 넘겼어요.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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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그 노트에는 아인슈타인이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이라 불렀던 궁극의 이른이 미완의 상태로 적혀 있었다. 그의 목표는 신의 마음이 담겨 있는단 한 줄짜리 방정식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것이었으나, 끝내 신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2)

* 빅뱅 직전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무엇이 빅뱅을 유발했는가?

* 블랙홀의 내부(또는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 우리 우주에는 웜홀(wormhole)이 존재하는가?

* 4차원 이상의 고차원 공간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 우리 우주 외에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가? ,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가 존재하는가?


(27)

뉴턴이 발견한 운동 및 중력이론은 기존의 운동법칙을 하나의 원리로 묶은 최초의 통일이론이자, 인간의 지적 능력이 낳은 최고의 산물이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포프는 뉴턴에 대한 존경을 담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자연의 법칙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뉴턴이 있으라!”는 신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났다.


(39)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수학적으로 대칭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맥스웰의 방정식에는 이중성(duality)’이라는 대칭이 존재한다. (전자기파)에 포함된 전기장을 E라 하고 자기장을 B라 했을 때, E B를 맞바꿔도 맥스웰의 방정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기와 자기가 동일한 힘의 두 가지 측면임을 의미한다. 맥스웰은 E B 사이의 대칭을 이용하여 전기와 자기를 통일했고, 그 덕분에 19세기 과학은 위대한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55)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면, 물질과 에너지를 포함하여 당신이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도 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체중은 증가한다. 그런데 이 초과질량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움직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초과 질량의 출처는 바로 운동에너지이다. 이는 곧 운동에너지의 일부는 질량으로 변환되었음을 의미한다.


(83)

양자의 개념은 1900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제기한 간단한 질문에서 탄생했다. ‘뜨거운 물체는 왜 빛을 발하는가?’ 물체를 불에 달구면 특정한 색의 빛이 방출된다. 인류는 이 사실을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릇을 만드는 도공들은 가마의 온도가 수천 도에 도달하면 그 안에 넣은 도기가 적색에서 황색을 거쳐 청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이것은 성냥이나 촛불, 또는 라이터만 있으면 즉석에서 확인 가능하다. 촛불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아래쪽은 푸른색을 띠고,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지면서 노란색-붉은색으로 변한다.)


(96)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두고 성공을 거둘수록 더욱 멍청한 이론처럼 보인다고 했고, 전자파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던 슈뢰딩거조차도 자신의 이론에 대한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도 일부 물리학자들은 파동이론의 철학적 의미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이는 중이다. 당신이 어떻게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양자역학과 관련하여 내가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은 한 가지뿐이다.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119-120)

지난 100년 사이 최고의 발명품으로 손색이 없는 트랜지스터를 예로 들어보자. 이 조그만 회로소자는 장거리 통신 네트워크와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혁명을 견인한 일등공신이다. 간단히 말해서, 트랜지스터는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일종의 밸브이다. 수도 파이프에서 장착된 밸브를 돌려서 수량을 조절하는 것처럼, 트랜지스터는 홍수처럼 밀려오는 전자들 중 극히 일부만 통과시키는 초미세 전자밸브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트랜지스터를 이용하면 작은 신호를 크게 증폭할 수 있다.


(132)

약력은 다양한 원자의 핵을 단단하게 유지시킬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원자핵이 더 작은 입자로 붕괴되는 과정에 관여한다. 앞서 말한 대로 지구의 내부가 뜨거운 이유는 그곳에서 방사성붕괴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산폭발과 지진을 일으키는 막대한 에너지의 원천은 약력인 셈이다. 중성자는 상태가 불안정하여 양성자와 전자로 붕괴되는데(이것을 베타붕괴beta decay라 한다.), 붕괴 전과 붕괴 후의 물리량이 보전되려면 제3의 입자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유령입자로 알려진 뉴트리노이다.


(141-142)

둘째, 표준모형은 각기 다른 힘을 서술하는 여러 이론을 인위적으로 묶어놓았기 때문에 다소 부자연스러우면서 누더기 같은 인상을 준다(한 물리학자는 표준모형을 칭찬하는 것은 마치 오리너구리와 땅돼지, 고래를 하나로 묶어서 희한한 동물을 만들어놓고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동물을 예뻐할 생명체는 엄마밖에 없다고 말했다.)


(160)

블랙홀과 관련된 책과 논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블랙홀에서는 아무것도 탈출할 수 없다고 했지만, 호킹은 이것이 양자이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블랙홀이 완전이 검은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빛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때문인데, ‘완벽한 암흑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확정성원리에 위배된다. 양자세계에서는 암흑조차도 불확실하다. 그리하여 호킹은 블랙홀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양자복사quantum radiation를 방출한다는 혁명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79)

1920년대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우주에 적용하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 대부분이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지도, 수축되지도 않으면서 항상 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서 얻은 해는 우주가 격렬하게 팽창하거나 수축된다고 강변하고 있었다(아인슈타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것은 리처드 벤틀리가 제기한 질문의 해답이었다. 중력이 작용해도 우주가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팽창하는 힘이 중력을 압도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206)

* 대칭은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어낸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와 표준모형은 다양한 원소와 소립자로 매우 혼란스럽지만, 대칭을 도입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 대칭은 이론의 공백을 메워준다. 대칭을 도입하면 이론에 나타난 공백으로부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와 소립자를 예측할 수 있다.

* 대칭은 무관해 보이는 객체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대칭은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 전기와 자기, 그리고 페르미온과 보손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더 큰 항목으로 통일시킨다.

* 대칭은 의외의 자연현상을 알려준다. 대칭은 반물질과 스핀, 쿼크 등 새로운 입자와 물리량을 예측했으며, 결국 사실로 판명되었다.

* 대칭은 이론을 망칠 수도 있는 의외의 결과를 제거해준다. 양자보정에서 나타난 무한대와 변칙은 대칭을 통해 제거할 수 있다.

* 대칭은 고전적인 이론을 업그레이드해준다. 끈이론의 양자보정은 매우 엄밀한 과정이어서, 원래 이론을 수정하여 시공간의 차원을 결정해준다.


(212-213)

홀로그램 원리hologram principle라는 기이한 이중성도 예상치 못한 발전을 이끌었다. 홀로그램이란 3차원 물체의 모든 정보를 2차원 플라스틱 평면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평평한 면에 레이저를 쪼이면 갑자기 허공에 3차원 입체 영상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3차원 영상의 모든 정보가 2차원 평면스크린에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영화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나 로봇 R2-D2를 실물처럼 볼 수 있고, 디즈니랜드에 있는 유령의 집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유령을 만들 수도 있다.


(216)

스티븐 와인버그는 끈이론을 북극점을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에 비유했다. 고대에 작성된 모든 지도에는 북극점에 커다란 구멍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구 어디서나 나침반의 바늘은 그 신비한 장소를 가리켰지만, 북극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북극점이 존재한다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하나도 없었기에, 일부 사람들은 북극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9년에 미국에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마침내 북극을 정복했다.


(225)

초대형 가속기가 완성되면 끈이론에서 예측된 미니블랙홀의 존재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끈이론은 중력과 소립자를 모두 포함하는 만물의 이론이므로, 물리학자들은 가속기에서 미니블랙홀이 발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미니블랙홀은 진짜 블랙홀과 달리 에너지가 입자 몇 개 분량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매순간 지구로 쏟아지는 우주선의 에너지가 미니블랙홀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도 지구는 멀쩡하니까, 미니블랙홀이 지구를 삼킬 걱정은 붙들어 매도 된다.)


(233-234)

인류원리는 우리 우주와 관련된 이상한 실험적 사실을 설명해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의 모든 상수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세팅된 것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우주는 마치 우리가 등장할 것을 처음부터 예견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핵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약했다면 태양이 점화되지 않아서 태양계는 암흑천지가 되었을 것이고, 강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강했다면 태양은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연료가 고갈되어 죽은 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핵력의 세기가 기적처럼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252)

그러나 이 세상을 이해할 때에는 증명 가능하고 재현가능하며 반증도 가능한과학을 동원해야 한다. 이것이 논지의 핵심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마다 각양각색인데, 이 상황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흐를수록 몇 개의 방정식으로 축약되면서 더욱 단순하고 강력해진다. 이것이 바로 물리학의 매력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과학을 넘어선 영역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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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와 천둥 - 2015 지역출판문화 및 작은도서관지원 우수도서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이규정 님의 <사할린>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 그 때 지은이 이규정 님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그가 쓴 작품 중에 독립운동가이자 몽골에서 슈바이처급으로 의사 활동을 하신 이태준 님을 모델로 한 소설 <번개와 천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태준 님은 독립운동 관련된 책에서 단편적으로 나와서 알게 되었는데, 안타깝게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어서 가슴이 아팠단다. 그런데 그런 이태준 님을 알리기 위해서 이규정 님이 소설로 쓰신 것이 있었다니, 뒤늦게 알고 아빠도 읽어보겠다고 리스트에 올렸다가 아빠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제서야 읽었단다. 아빠가 당시 구입한 <번개와 천둥> 2015년에 출간한 것인데, 작년에 개간본이 다시 출간되었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이태준 님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1.

그럼 소설 <번개와 천둥>을 통해서 이태준 님의 삶을 알아보자꾸나. 소설이긴 하지만 일부분만 작가의 상상력을 메운 평전이라도 해도 좋을 것 같구나.

대암 이태준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단다. 이태준은 인천 이씨인데, 조상을 따라 올라가보다 보면 가야를 세운 김수로의 김해 김씨가 나온단다. 이게 어떻게 된 사연이냐면,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는 자신의 아내 허황옥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의 아들 중에 두 명의 성을 허씨가 바꿔서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고그들의 후손 중에 신라시대 허기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나라 황제 현종과 함께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우게 되었고, 당현종은 허기에게 고맙다고 자신의 성씨인 를 하사하여 이허기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인천 이씨의 시조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시조가 같은 동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인천 이씨도 김해 김씨와 동본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단다.

인천 이씨는 조선시대에는 조선시대 함안에 내려와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대. 이태준은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똑똑해서 부모님은 이태준을 동네 서당에 다니게 했단다. 옛날에는 다들 그랬듯이 이태준도 일찍 결혼하고 딸 둘 낳았는데 아내가 그만 일찍 죽고 말았다는구나. 이태준의 친한 고향 친구로는 조용관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조용관은 개신교로 교회에서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었어. 영어를 독학하던 이태준도 조용관과 함께 교회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개신교도가 되는 건 마음에 걸렸단다.

1905. 너희들도 잘 아는데 을사늑약이 있었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궐기를 했단다. 이태준도 조용관과 의병 도모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경찰서에 치도곤 맞고 풀려났단다. 그리고 경찰의 감시대상이 되었어. 고향에서 계속 감시를 받게 되자, 이태준은 조용관과 한양으로 가자고 했단다. 마침 한양에는 용관의 누나와 자형이 삼천리 만물상회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딸들이었는데, 다행히 동생 태식 부부가 보살펴 주기로 했단다.

한양에 온 이태준은 용관과 함께 용관의 누나 집에 지냈단다. 그러다가 가게 단골인 세브란스 의대생 김필순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김필순 소개로 세브란스 의학교 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세브란스 의학교 에비슨 박사가 진행하는 면접 시험을 보게 합격하여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1907101일 부터 세브란스 의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어. 낯선 학문이라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1911 6 21일에 졸업했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망설였던 세례도 받았어.

졸업 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단다. 같은 병원의 간호부 민효례라는 사람이 이태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태준은 김필순의 여동생 순애에게도 마음에 두고 있었어. 이태준은 필순의 여동생 순애와 효례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은 기혼자이고 이미 딸이 둘이 있다는 거야.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민효례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민효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 와중에 데라구치 암살 모의 사건과 신민회 사건으로 김필순에 대해 검거령이 내려졌어. 그래서 김필순과 동생 김순애는 중국으로 도망가기로 했고, 그 도망길을 이태준이 배웅을 했단다. 그들을 배웅해 주고 병원에 오자, 민효례가 알려주어 자신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두어 해 전에 도산 안창호를 치료하고 그가 추천해준 청년모임에 가입하여 은밀히 활동하고 김필순을 도와주었다는 일들을 일경들도 알게 된 거야. 이태준도 도망가야 했어. 민효례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병원에서 도망 나와 무작정 경의선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향했단다. 그 때가 19111231일이었어.


2.

이태준은 김필순이 가기로 했던 남경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김필순을 찾지 못했단다. 아는 사람 없이 지내야 했는데 이상섭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어. 이상섭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하는 신규식, 김규식을 만나게 되어 이태준도 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태준의 의사 경력을 살려서 기독회 의원에서 의사로 약 2년간 일하게도 했어. 하지만 여전히 김필순을 여전히 찾지 못해 걱정 되었어. 혹시 김필순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 해서 미국에 있는 안창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 하지만 결국 김필순의 행방을 찾지 못했어.

김규식 제안으로 몽골에서 군사학교 창립하는데 이태준도 참여하기로 했어. 그래서 김규식, 서왈보, 우동열, 이태준은 남경에서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북경에서 마차를 타고 장가구를 거쳐 울란바토르 도착했단다. 이 길은 무척 험해서 북경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데 11일이나 걸렸어. 하지만 몽골에서 군관학교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았단다. 어렵게 부지를 마련했으나 몽골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어. 돈은 떨어지고 겨울이 다가와 김규식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지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이태준은 몽골에 만연한 매독 환자들을 보고 그냥 돌아갈 수 없다고 했어. 그 동안 이태준은 몽골의 길거리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매독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당분간 몽골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했어. 그러면서 김규식에게 북경 도착하면 살바르산이라는 매독 치료를 위한 약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 약을 몽골에서 구하기는 무척 힘들었거든.

이태준의 첫 번째 몽골 환자는 버르테라는 사람이었는데, 다 나은 다음 그는 이태준을 도와주었단다. 이태준의 실력은 금방 몽골 전체에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몰려들었어. 처음에는 처음에는 무료봉사였으나 돈을 조금씩 받기로 했어. 그 돈으로 약도 구입하고, 독립자금으로 보내기도 했어. 돈이 모이는 대로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냈단다. 그리고 동의의국이라는 병원도 세우고 버르테와 다른 몽골인들이 도와주어 잘 정착했단다. 이태준의 소문은 몽골 왕실에도 알려져서 어느 날은 왕실에서 사람이 와서 왕의 병 진료 부탁했단다. 왕의 병도 금방 호전되어 왕의 전담 의사 직함까지 얻게 되었어.

중국에서 김현국이라는 의사가 찾아와 자신도 몽고에서 이태준과 함께 병원도 하고 독립운동 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이태준은 몽골보다 장가구에서 의원 차리라고 조언했단다. 장가구에서 의원을 차리면 몽골과 북경의 증간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어.

한편, 김규식은 미국인 회사에 취직하여 장가구에서 일했어. 그리고 어느날 울란바토르 방문했단다.

김규식은 아내와 함께 방문했는데, 그 아내가 이태준이 그렇게 찾던 김필순의 여동생 김순애이었단다. 김필순과 김순애는 남경오는 중간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함께 지냈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몽골에서 동지의 아내로 만나다니.. 김규식은 자신의 일을 도와주던 사촌여동생 은식도 함께 왔는데, 은식을 이태준에게 소개를 해주었단다. 둘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되어 결혼하게 되었어.


3.

시간은 흘러 1919년이 되었단다. 3.1운동 이후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어. 그런데 자금이 문제였는데 이것을 이태준이 지원했단다.

...

당시 몽골도 이웃 나라 러시아 때문에 정세가 어지러웠어. 운게른이라는 러시아 군인이 있었는데, 그는 소비에트 군대에 패배하고 쫓기고 있었어. 그는 패잔병을 이끌고 몽골로 들어와 몽골 점령한 중국군대를 몰아내주겠다고 몽골 왕을 설득했단다. 운게른과 그의 부대는 몽골군과 함께 중국군과 싸워 승리하여 중국군을 몰아냈단다. 이때 이태준과 친분이 있던 중국인 장군은 이태준에게 함께 중국에 가자고 했으나 거절했단다. 그 중국 장군에게는 의사의 윤리를 들어 거절했지만, 사실은 이태준은 소비에트의 자금 4만루블어치 금괴를 임시정부에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단다.

그런데 몽골군과 연합하여 중국을 몰아낸 운게른은 몽골인을 상대로 온갖 만행을 저질렀어. 운게른은 군대를 앞세워 몽골인들 약탈하고 잔인하게 죽였단다. 그제서야 그에게 속은 것을 안 몽골 정부는 몽골 군대는 운게른의 군대와 또다시 전투를 벌여야 했어. 운게른은 도망갔지만 여전히 그의 잔당들이 몽골에서 분란을 일으켰고, 몽골 정부는 소비에트 군대를 끌어들여 그들을 소탕했단다. 국력이 약하다 보니 이래저래 고생이 많구나. 그런데 운게른이 이렇게 몽골에서 만행을 저지를 때 이태준 식구들도 그들의 만행에 희생되고 말았단다. 안타깝지만 그 이야기를 해줄게.

...

그 사건이 있기 전 고향 후배이자 세브란스 의학교 후배 이세영이 찾아왔어. 이세영은 이태준에게 임시정부 군의관 감무 임명장을 주기 위해 왔지만, 자신도 몽골에서 일하겠다고 했어. 알고 보니 이세영은 함안 고향 후배로 이태준의 절친 조용관도 알고 있었어. 이세영은 함안에서 조용관에게 영향을 받아 3.1 주동자로 참여했다가 왜경에 쫓기어 상해로 망명했다고 했어. 그 이후 임시정부에 있다가 이태준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돕기 위해 울란바토르에 찾아왔다고 했어. 처음에는 의심의 눈으로 봤지만 그제서야 이태준은 자신과 용관이 친구임을 이야기하고 이세정을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이세정에게 병원 일을 잠시 맡기고 김립과 함께 김립이 숨겨두고 있던, 소비에트로부터 받은 금괴를 전달하기 위해 상해로 떠났단다.

상해에 금괴를 안전하게 전달하고 여력이 되어 고향 함안에 며칠 들를 시간이 있었어. 얼마 만에 온 고향인가. 하지만 동생과 딸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있어서 만날 수 없었단다. 상해로 가는 배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아쉬움만 남긴 채 다시 상해로 왔단다. 그리고 북경에 가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고 의열단에 가입했단다. 김원봉이 폭탄전문가를 구한다고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환자 중에 마자르라는 사람이 떠올랐어. 헝가리인 마자르는 1차세계대전 포로로 몽골까지 오게 되었고 돈이 없어 헝가리에 돌아가지 못하고 거기에 병까지 걸렸던 거야. 그래서 이태준이 그를 무료로 치료해주고 그 이후 동의의국에서 이태준을 도와주면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그 마자르가 군대 있을 때 했던 일이 폭탄제조였단다. 이태준은 마자르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하고 몽골에 돌아왔단다.

….

1921111. 이태준과 마자르는 군자금을 쓸 금괴를 차에 숨기고 장가구로 떠났단다. 금괴와 마자르를 장가구에 있는 요원에게 인수하고 이태준은 저녁 때쯤 다시 집에 돌아오려는 계획이었어. 그런데 그 시기가 앞서 이야기했던 운게르 군대가 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살인과 약탈을 하던 시기였단다. 태준이 떠나고 난 집에 운게르의 부대가 쳐들어와 딸 수옥을 죽이고 아내 은식을 데리고 갔단다. 그리고 이태준과 마자르도 운게르 부대에 잡혀서 다시 울란바토르에 압송되었단다. 그런데 운게르 부대에는 일본군들도 있었어. 몽골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를 잡으려고 일본군들이 운게르 부대에 합류했던 거야.

마자르는 외국인이라 다시 풀려나게 되었어. 이태준이 마자르에게 북경 가서 김원봉을 만날라고 지시했단다. 이태준이 의사였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운게르 부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했어. 이태준은 의료기기를 핑계로 집에 왔는데, 딸은 죽고 아내가 사라진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 이 울분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었겠니그리고 다음날 일본인 군인들이 와서 그 마저 죽이고 말았단다.

이태준은 그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단다. 환생이 꼭 있었으면 좋겠구나. 이태준 님 같은 이렇게 안타깝게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될 분인데 말이야. 다시 태어나셔서 그 전에 이어가질 못한 꿈을 이어나가셨으면 좋겠구나. 너희들도 이태준 님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태준은 경의선 기차가 막 출발할 때에야 가까스로 찻간에 올라탈 수 있었다.

책의 끝 문장: 타키가 큰소리로 한번 울면서 힘차게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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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메이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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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진주 귀고리 소녀>로 유명한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신작 <글래스메이커>라는 소설이야. 아빠는 <진주 귀고리 소녀> 2004년에 읽고 그 이후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책은 읽은 적이 없구나. 의도적으로 읽지 않은 것은 아니고 그 작가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야. 그리고 <진주 귀고리 소녀>가 독특하긴 해도 아주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 이번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책을 읽게 된 것은 몇 달 전에 신간코너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란다..

한 작가의 책을 22년만에 다시 읽게 되다니, 감회가 좀 새롭니다. 얼마 전에 읽은 것 같은데 22년이나 흘렀다니... 작가도 22살 더 먹고, 독자도 22살 더 먹고 말이지. <진주 귀고리 소녀>는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지난 22년 동안 잘 있는지 모르겠구나. 검색을 해보니 지은이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그동안 꾸준하게 작품을 쓰신 것 같구나.

그럼, 22년만에 다시 만난 작가의 책 <글래스메이커>를 이야기해줄게. 글래스. 유리. 메이커. 만드는 사람. 이 소설은 유리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베네치아 인근에 있는 무라노를 주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그런데 판타지 요소가 좀 더해져서 무라노 섬과 베네치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그 밖에 세상과 다르게 흘러간단다. 무라노와 베네치아 밖의 시간은 수백 년이 흘러도 무라노 섬에서는 한 소녀의 한평생 정도만 시간이 흐른단다. 수백 년 동안 유리 공예 제작자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를 하되, 주인공들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그런 판타지 요소를 적용한 것 같더구나.

..

 

1.

시작은 1486년 무라노 섬에서 시작한단다. 아홉 살 소녀 오르솔라 로소가 주인공이야. 로소 집안은 유리 공방을 대대로 하고 있고, 아버지 로렌초 로소가 장인으로 공방을 이끌고 있고, 두 아들이자 오르솔라의 오빠들인 마르코와 자코모, 도제인 파울로가 로렌초의 밑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단다. 오르솔라의 엄마 라우라는 주로 집안 일을 하셨어. 그들의 경쟁 공방으로 바로비에르 공방이 있는데, 사실은 바로비에르 공방이 좀더 잘 나가는 공방이란다. 아버지 안젤로 아래 아들 조반니와 딸 마리아를 중심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 유리 공방의 직책을 간단히 이야기 보면, 처음에는 가르초네트로 시작해서 실력이 늘어나면 가르초네, 세르벤테(도제)로 직책이 올라간다.

시간은 흘러 오르솔라는 17살이 되었어. 유리 공방에서 작업 중 직원의 실수로 유리가 깨지는 사고가 났는데 그 깨진 유리에 아버지 로렌초가 목에 찔려 출혈과다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어. 두 아들에게 아직 기술을 모두 전수하지도 못하고 갑자기 죽게 된 거야. 첫 아들 마르코가 공방을 물려받아야 하는데 마르코는 실력도 안 되고 인성도 좋지 않아서 유리 공방을 운영을 제대로 운영할지 모르겠구나. 제품의 품질이 떨어져서 거래선이 줄어들기 시작했단다.

오르솔라는 길에서 우연히 경쟁 공방의 유리 공예사 마리아를 만났는데 그때 오르솔라가 작고 낡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랬는지 마리아는 오르솔라에게 드레스 선물을 주었단다. 오르솔라는 마리아에게 유리장신구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마리아는 사촌 엘레나에게 보내서 장식구슬을 배우게 했단다. 이후 오르솔라는 유리구슬 만드는 것에 열심이었어. 평상시에도 꿀을 이용하여 연습했어. 마리아와 오르솔라의 인연이 나중에도 중요하게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구나.

...

어느 날 큰오빠 마르코가 유리잔을 팔기 위해 베네치아 본토에 있는 상인 클링엔베르크를 만나러 갔는데 하루가 지나 올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아서 둘째 오빠 자코모와 오르솔라가 마르코를 찾으러 베네치아에 갔단다. 당시에도 베네치아의 주요 이동수단은 곤돌라였어. 클링엔베르크를 찾아갔더니 마르코가 가지고 온 유리잔은 품질이 떨어져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공방에서 잘하는 것부터 서서히 하라고 조언해주었어. 오르솔라는 장식유리구슬도 받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단다. 그건 그렇고 마르코는 어디에 있는 거야? 자코모와 오르솔라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찾다가 술에 만취해 있는 마르코를 발견해서 섬으로 데리고 왔단다.

 

2.

얼마 후 마르코는 니콜레타라는 여자와 결혼했고 엄마 라우라는 딸 스텔라를 낳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임신 중이었거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었나 보구나. 오르솔라는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단다. 그렇다 보니 유리구슬 만드는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어. 어느날 베네치아의 어부로 일하던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찾아와 유리 공예를 배우겠다고 했어. 일전에 마르코가 약속했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안토니오도 마르코의 유리 공방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오르솔라의 눈에 자꾸 안토니오가 거슬렸어. 그에게 자꾸 끌린 거야. 오르솔라는 장식유리구슬을 만들어 클링엔베르크에게 보냈는데 소식이 없었단다.

그런데 몇 달 뒤 클링엔베르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한 달에 100개씩 제작해 달라고 했어. 오르솔라의 첫 수입이 성사되는 순간이었지. 오르솔라의 유리구슬 주문량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어. 안토니오는 유리공예에 재능이 있었어. 금방 배우고 창의적인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놨어. 그래서 유리공방이 그럭저럭 다시 자리를 잡아갔단다.

....

그런데 역병이 돌아서 베네치아 전체가 폐쇄되었어. 이제 자리를 잡아가던 공방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 무라노 섬에도 감염자가 생기더니 마르코의 아내 니콜레타가 그만 감염되고 말았어. 당시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큰일이구나. 감염이 되면 신고하고 격리시설로 보내야 하는데 어머니 라우라는 격리시설에 가면 무조건 죽을 거라는 생각에, 몰래 집에서 돌보기로 했단다. 집에 있는 아기들, 스텔라와 마르코의 첫째 아기 마르콜린은 할머니 댁으로 보내고, 집에서 일하던 시녀도 혹시 몰라서 집으로 보내고, 안토니오에게 특효약을 찾으러 베네치아에 보냈어. 그리고 라우라와 오르솔라가 번갈아 가면서 니콜레타를 보살폈단다. 그런데 집으로 보낸 시녀가 역병 증세가 나타나 죽고 말았어. 그래서 조사단이 라우라의 집에 와서 조사를 했고, 니골레타의 감염 사실도 발각되어 니골레타도 격리시설로 가야 했어. 그런데 엄마 라우라가 함께 가겠다고 했단다.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대단한 엄마구나.

오르솔라, 마르코, 자코모, 파울로도 감염자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40일간 집에 격리해야 했어. 다행히 안토니오가 집밖에 머물고 있어서 생필품과 음식, 물 등으로 창문으로 넣어주었단다. 역병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져서 죽는 사람들도 늘어났어. 함께 격리하고 있던 파울로도 그만 감염이 되어 얼마 못 가 죽고 말았어. 할머니도 감염되어 이모와 아기들도 격리해야 했단다. 오르솔라는 구슬을 만들어 역병퇴치구슬이라고 하여 팔기 시작했단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들이 그 구슬을 사기 시작해서 돈을 좀 벌어들였지만 인기는 이내 시들었단다.

...

격리한 지 40일이 지나고 격리가 해제되었단다. 다행히 오르솔라, 마르코, 자코모는 병에 걸리지 않았어. 그리고 격리시설에 갔던 엄마 라우라가 아기만 데리고 돌아오셨단다. 니골레타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거야. 그 아기 이름은 라파엘레라 지었단다. 역병은 베네치아의 3분의 1이 죽고 나서야 역병이 사라졌단다.

..

 

3.

바깥 세상은 시간이 흘러 흘러 1631년이 되었어. 마르코의 둘째 딸을 위한 유모 모니카라는 사람이 일하게 되었어. 모니카는 로셀라라는 딸이 있었단다. 그런데 얼마 안가 모니카는 마르코와 결혼했단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집안일 도와주는 하녀로 모니카의 사촌 이사벨라가 왔는데 얼마 안가 이사벨라는 자코모와 결혼을 했단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르솔라도 결국 안토니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이 되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유산을 하고 말았어.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이제 공방도 다시 정상궤도를 찾는 듯 했어. 오르솔라도 다시 장식용 유리구슬을 만들었어. 안토니오의 실력도 점점 좋아져서 순리대로라면 마르코의 도제가 되어야 하는데 마르코가 안토니오를 싫어했어. 이웃에 있는 바로비에로 공방에 있던 스테파노를 스카우트해 와서 도제가 되었단다. 아니, 더 큰 공방에서 일하고 있던 스테파노가 왜 작은 공방의 도제로 왔을까. 오르솔라는 자신 때문이라고 눈치챘어. 역시나 얼마 후 스테파노는 마르코에게 오르솔라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마르코도 허락을 했단다. 아마, 사전에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을 거야. 물론 오르솔라는 싫다고 했지.

안토니오는 도제 건으로 화가 나서 공방을 떠나 북부 지역으로 갔단다. 오르솔라는 안토니오에게 남아달라고 하고 안토니오는 오르솔라에게 함께 떠나자고 했는데 결국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안토니오는 홀로 길을 떠났단다. 마르코는 안토니오가 기술을 빼돌렸다면서 그를 신고하여 추적하게 했단다. 역병이 돌았을 때 안토니오가 도와준 일, 공방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된 것을 마르코는 잊은 것인가. 나이를 먹어도 그 더러운 성격은 그대로이구나. 스테파노의 계속된 청혼에 안토니오가 떠난 지 1년이 지나고 오르솔라는 스테파노와 결혼을 하게 되었어. 하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안토니오가 있었단다.

...

8년이 지나고 오르솔라는 네 번의 유산 끝에 딸 안젤라를 낳았단다. 8년 사이에 자코모의 아내 이사벨라가 딴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갔단다. 오르솔라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겸 (그런데 사실은 혹시 안토니오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테라페르마에 갔다가 길거리에 말똥이 널브러져있는 등 너무 더러워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어. 그런데 곤돌라에서 어떤 남자가 추파를 던졌어. 얼마 후 그 남자가 어떻게 알고 공방에 구슬을 사러 왔는데 그의 속셈은 오르솔라를 보려고 왔던 거란다. 그런데 그 남자 이름이 카사노바였어. 바람둥이로 유명한 실존인물 카사노바였단다. 굳이 이 사람을 등장시킨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실존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단다. 카사노바가 베네치아 출신이라서 그랬나?

아무튼 카사노바는 오르솔라를 어찌해보려는 이유인지 샹들리에를 포함하여 엄청난 양의 유리 공예를 주문했단다. 공방이 한동안 바쁘게 움직였는데 물건이 거의 다 만들어질 즈음 카사노바가 빚쟁이 사기꾼으로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어. 다 만들어놓은 샹들리에는 팔지도 못하게 되었고, 들어간 비용도 받을 길이 없었단다. 공방은 이 일로 몇 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고 다시 신뢰를 되찾는데 몇 년이 더 걸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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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간이 흘러 1794년이 흘렀어.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조금만 나이를 더 먹었단다. 당시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휩쓸던 시기였어. 나폴레옹은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에게 넘겨버렸어. 이 때가 베네치아와 무라노 섬의 암흑기였어. 망하는 유리 공방들도 늘어났어. 마르코의 공방도 주문량이 줄어 힘든 시기를 보냈어. 다행히 나폴레옹의 부인인 조세핀의 유리 목걸이 주문이 들어와서 좀 숨통을 트였단다. 또 한번의 실존인물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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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세상의 시간은 또 흘러 1915년이 되었어.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나이를 조금만 먹어 오르솔라는 이제 마흔네 살이 되었어. 오르솔라는 얼마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씨앗구슬을 만들고 있었어. 다른 유리 공예품으로 영역을 넓혀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 그런데 1915년이면 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이겠구나. 전쟁은 그들도 피해가지 못했어. 전쟁 중 조카 한 명도 참전하여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여동생 스텔라는 간호사로 전쟁에 참여했는데 역시 폭격으로 죽고 말았단다. 전쟁이 끝나고 베네치아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 오르솔라네 공방도 유리 공예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가게를 열어 유리 공예품을 팔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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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또 흘러 2019년이 되었어. 이제 오르솔라 나이는 65세가 되었어. 이제 베네치아는 관광도시로 한 해에 480만명이 오곤 했어. 그리고 베네치아 풍경도 많이 변했지. 무엇보다 예전에 드물던 홍수가 예삿일이 되었단다. 기후 변화가 그렇게 만든 거야. 2019 11월에는 대홍수로 베네치아 대부분이 물에 잠기기도 했어. 이 사건을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코로나19 때문에 전세계가 격리되었단다. 베네치아도 마찬가지였어. 남편 스테파노가 이때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황망하게 죽고 말았단다. 오르솔라는 그 옛날 역병이 생각났을 거야.

시간이 또 흐르고 이제 60대 후반이 된 오르소라. 어느 날 손님이 왔는데, 깜짝 놀랐단다. 안토니오를 꼭 닮은 손님이었어. 알고 보니 그는 안토니오가 아니고 안토니오의 몇 대 후손이었단다. 안토니오가 당시 간 북부 지역은 시간이 제대로 흘렀던 거야. 안토니오는 이미 수백 년에 죽고, 안토니오가 남긴 유언에 따라 그의 후손들은 정기적으로 베네치아의 어떤 집의 주소로 돌고래 모양의 유리 공예를 보냈던 것이야. 그렇게 돌고래만 보내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결국 안토니오의 만남은 끝내.이루어지지 않았구나.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었단다. 아빠가 시작할 때 이야기했듯이 이 소설은 두 세상의 시간의 속도가 다른 판타지 요소가 있었는데, 아빠는 그런 구성에 다소 반대였단다. 소설의 시작부분인 중세 시대 베네치아의 유리 공예가들의 삶과 그들만의 철학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구나. 지은이 트레이시 슈발리에 소설을 22년만에 읽었는데, 다음에 또 22년만에 읽는다면 아빠 나이가? , 상상하고 싶지 않구나. 지난 22년이 휙 갔는데, 앞으로 22년은 더 빨리 가겠지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물 위로 납작한 조약돌을 던져 솜씨 좋게 물수제비를 뜬다면, 돌은 떨어지기 전까지 길게, 혹은 짧게 간격을 두고 물 위를 여러 번 통통 퀴어갑니다.

책의 끝 문장: 그를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안토니오가 떠날 때마다 로소 가족 세 사람은 그가 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자기들도 폰다멘타 데이베트라이를 따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걷다가 캄포산토 스테파노에 들러 굴을 먹고 로모 살바데고에서 술 한잔하고, 산티 마리아 에 도나토에 들어가서 기도를 올리거나 바닥의 모자이크를 감상하고, 북쪽의 정원들을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체리를 따고 은방울꽃 향기를 맡아보고 싶었다. 또 캄포 산 베르나르도에 서서 누가 다투고 누가 결혼했는지, 누가 아이를 가졌는지, 누가 육아로 고생하는지, 어떤 공방이 다른 공방을 앞섰는지, 누가 사업을 그만두었는지, 누구의 와인이 상했는지, 누구의 치즈가 남아도는지, 로소가의 도제가 누구를 만나고 그가 정말로 좋아하는 건 누군지 같은 소문을 얻어듣고 싶었다. 인생에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 - P187

인생은 다양한 자극 없이는 지루했다. 장소, 소리, 사람들. 오르솔라는 자기 자신에게 싫증이 났고 다른 사람들이 그리웠다. 전화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는 건 그들과 같은 방에 함께 있는 것과 같지 않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루치아나가 비웃겠지만, 그래도 오르솔라는 베네치아가 그리웠다. 낯선 사람의 존재, 산 마르코 광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유리 제품을 집어 들었다 다시 내려놓고, 로셀라가 구슬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관광객들이 그리웠다. 오르솔라가 직접 만든 사람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무례하게 평하는 짜증스러운 손님들까지도 그리웠다. - P487

그 여행 후, 라파엘라는 각 카지노가 어떻게 모두 다른 주제, 대개 장소들을 본떠 지어졌는지 설명해주었다. 파리, 로마, 이집트, 그리고 물론 베네치아까지. 라파엘라는 모형 캄파닐레, 두칼레 궁전, 리알토 다리, 수영장처럼 맑고 푸르게 염소 소독한 물이 가득한 운하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곤돌라까지도 있었지만, 어떤 사공들은 노를 틀린 방식으로 젓고 있었다. 심지어 베네치아에서 정통성 있는 곤돌라 사공들을 데리고 간 거라고 하는데도 그랬다. 라파엘레가 그들 베네치아인 중 한 명에게 그것을 지적하자 그는 정통 베네치아식으로 욕을 내뱉더라고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라파엘레는 이 ‘베니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미국인이 이러는 거예요. ‘굳이 이탈리아까지 한참 비행기 타고 갈 필요가 있겠어?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시란 리조트에 가면 똑 같은 게 다 있는데, 게다가 도박도 할 수 있잖아! -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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