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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와 천둥 - 2015 지역출판문화 및 작은도서관지원 우수도서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이규정 님의 <사할린>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 그 때 지은이 이규정 님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그가 쓴 작품
중에 독립운동가이자 몽골에서 슈바이처급으로 의사 활동을 하신 이태준 님을 모델로 한 소설 <번개와
천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태준 님은 독립운동
관련된 책에서 단편적으로 나와서 알게 되었는데, 안타깝게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어서 가슴이 아팠단다. 그런데 그런 이태준 님을 알리기 위해서 이규정 님이 소설로 쓰신 것이 있었다니, 뒤늦게 알고 아빠도 읽어보겠다고 리스트에 올렸다가 아빠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제서야 읽었단다. 아빠가 당시 구입한 <번개와 천둥>은 2015년에 출간한 것인데,
작년에 개간본이 다시 출간되었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이태준 님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1.
그럼 소설 <번개와 천둥>을 통해서 이태준 님의 삶을 알아보자꾸나. 소설이긴 하지만 일부분만 작가의 상상력을 메운 평전이라도 해도 좋을 것 같구나.
대암 이태준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단다. 이태준은 인천
이씨인데, 조상을 따라 올라가보다 보면 가야를 세운 김수로의 김해 김씨가 나온단다. 이게 어떻게 된 사연이냐면,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는 자신의 아내
허황옥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의 아들 중에 두 명의 성을 허씨가 바꿔서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고… 그들의 후손 중에 신라시대 허기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나라 황제 현종과 함께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우게 되었고, 당현종은 허기에게
고맙다고 자신의 성씨인 ‘이’를 하사하여 이허기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인천 이씨의 시조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시조가 같은 동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인천 이씨도 김해 김씨와 동본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단다.
인천 이씨는 조선시대에는 조선시대
함안에 내려와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대. 이태준은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똑똑해서
부모님은 이태준을 동네 서당에 다니게 했단다. 옛날에는 다들 그랬듯이 이태준도 일찍 결혼하고 딸 둘
낳았는데 아내가 그만 일찍 죽고 말았다는구나. 이태준의 친한 고향 친구로는 조용관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조용관은 개신교로 교회에서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었어. 영어를
독학하던 이태준도 조용관과 함께 교회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개신교도가 되는 건 마음에
걸렸단다.
1905년. 너희들도
잘 아는데 을사늑약이 있었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궐기를 했단다. 이태준도 조용관과 의병 도모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경찰서에 치도곤 맞고 풀려났단다. 그리고 경찰의
감시대상이 되었어. 고향에서 계속 감시를 받게 되자, 이태준은
조용관과 한양으로 가자고 했단다. 마침 한양에는 용관의 누나와 자형이 삼천리 만물상회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딸들이었는데, 다행히 동생 태식
부부가 보살펴 주기로 했단다.
한양에 온 이태준은 용관과 함께
용관의 누나 집에 지냈단다. 그러다가 가게 단골인 세브란스 의대생 김필순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김필순 소개로 세브란스 의학교 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세브란스
의학교 에비슨 박사가 진행하는 면접 시험을 보게 합격하여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1907년
10월 1일 부터 세브란스 의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어. 낯선 학문이라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1911년 6월 21일에 졸업했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망설였던 세례도 받았어.
졸업 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단다. 같은 병원의 간호부 민효례라는 사람이 이태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태준은 김필순의 여동생 순애에게도 마음에 두고 있었어. 이태준은
필순의 여동생 순애와 효례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은 기혼자이고 이미 딸이
둘이 있다는 거야.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민효례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민효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 와중에 데라구치 암살 모의
사건과 신민회 사건으로 김필순에 대해 검거령이 내려졌어. 그래서 김필순과 동생 김순애는 중국으로 도망가기로
했고, 그 도망길을 이태준이 배웅을 했단다. 그들을 배웅해
주고 병원에 오자, 민효례가 알려주어 자신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두어 해 전에 도산 안창호를 치료하고 그가 추천해준 청년모임에 가입하여 은밀히 활동하고 김필순을 도와주었다는
일들을 일경들도 알게 된 거야. 이태준도 도망가야 했어. 민효례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병원에서 도망 나와 무작정 경의선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향했단다. 그 때가 1911년 12월 31일이었어.
2.
이태준은 김필순이 가기로 했던
남경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김필순을 찾지 못했단다. 아는
사람 없이 지내야 했는데 이상섭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어. 이상섭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하는 신규식, 김규식을 만나게 되어 이태준도 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태준의 의사 경력을 살려서 기독회 의원에서 의사로 약 2년간 일하게도 했어. 하지만 여전히 김필순을 여전히 찾지 못해 걱정 되었어. 혹시 김필순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 해서 미국에 있는 안창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 하지만 결국 김필순의 행방을
찾지 못했어.
김규식 제안으로 몽골에서 군사학교
창립하는데 이태준도 참여하기로 했어. 그래서 김규식, 서왈보, 우동열, 이태준은 남경에서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북경에서 마차를 타고 장가구를 거쳐 울란바토르 도착했단다. 이 길은
무척 험해서 북경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데 11일이나 걸렸어. 하지만
몽골에서 군관학교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았단다. 어렵게 부지를 마련했으나 몽골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어. 돈은 떨어지고 겨울이 다가와 김규식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지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이태준은 몽골에 만연한 매독 환자들을 보고 그냥 돌아갈 수 없다고 했어. 그 동안 이태준은 몽골의 길거리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매독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당분간 몽골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했어. 그러면서 김규식에게 북경 도착하면 살바르산이라는 매독 치료를 위한 약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 약을 몽골에서 구하기는 무척 힘들었거든.
이태준의 첫 번째 몽골 환자는
버르테라는 사람이었는데, 다 나은 다음 그는 이태준을 도와주었단다. 이태준의
실력은 금방 몽골 전체에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몰려들었어. 처음에는 처음에는 무료봉사였으나 돈을 조금씩
받기로 했어. 그 돈으로 약도 구입하고, 독립자금으로 보내기도
했어. 돈이 모이는 대로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냈단다. 그리고
동의의국이라는 병원도 세우고 버르테와 다른 몽골인들이 도와주어 잘 정착했단다. 이태준의 소문은 몽골
왕실에도 알려져서 어느 날은 왕실에서 사람이 와서 왕의 병 진료 부탁했단다. 왕의 병도 금방 호전되어
왕의 전담 의사 직함까지 얻게 되었어.
중국에서 김현국이라는 의사가
찾아와 자신도 몽고에서 이태준과 함께 병원도 하고 독립운동 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이태준은 몽골보다
장가구에서 의원 차리라고 조언했단다. 장가구에서 의원을 차리면 몽골과 북경의 증간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어.
한편, 김규식은 미국인 회사에 취직하여 장가구에서 일했어. 그리고 어느날
울란바토르 방문했단다.
김규식은 아내와 함께 방문했는데, 그 아내가 이태준이 그렇게 찾던 김필순의 여동생 김순애이었단다. 김필순과
김순애는 남경오는 중간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함께 지냈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몽골에서 동지의 아내로 만나다니.. 김규식은 자신의 일을
도와주던 사촌여동생 은식도 함께 왔는데, 은식을 이태준에게 소개를 해주었단다. 둘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되어 결혼하게 되었어.
3.
시간은 흘러 1919년이 되었단다. 3.1운동 이후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어. 그런데 자금이 문제였는데 이것을 이태준이 지원했단다.
...
당시 몽골도 이웃 나라 러시아
때문에 정세가 어지러웠어. 운게른이라는 러시아 군인이 있었는데, 그는
소비에트 군대에 패배하고 쫓기고 있었어. 그는 패잔병을 이끌고 몽골로 들어와 몽골 점령한 중국군대를
몰아내주겠다고 몽골 왕을 설득했단다. 운게른과 그의 부대는 몽골군과 함께 중국군과 싸워 승리하여 중국군을
몰아냈단다. 이때 이태준과 친분이 있던 중국인 장군은 이태준에게 함께 중국에 가자고 했으나 거절했단다. 그 중국 장군에게는 의사의 윤리를 들어 거절했지만, 사실은 이태준은
소비에트의 자금 4만루블어치 금괴를 임시정부에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단다.
그런데 몽골군과 연합하여 중국을
몰아낸 운게른은 몽골인을 상대로 온갖 만행을 저질렀어. 운게른은 군대를 앞세워 몽골인들 약탈하고 잔인하게
죽였단다. 그제서야 그에게 속은 것을 안 몽골 정부는 몽골 군대는 운게른의 군대와 또다시 전투를 벌여야
했어. 운게른은 도망갔지만 여전히 그의 잔당들이 몽골에서 분란을 일으켰고, 몽골 정부는 소비에트 군대를 끌어들여 그들을 소탕했단다. 국력이
약하다 보니 이래저래 고생이 많구나. 그런데 운게른이 이렇게 몽골에서 만행을 저지를 때 이태준 식구들도
그들의 만행에 희생되고 말았단다. 안타깝지만 그 이야기를 해줄게.
...
그 사건이 있기 전 고향 후배이자
세브란스 의학교 후배 이세영이 찾아왔어. 이세영은 이태준에게 임시정부 군의관 감무 임명장을 주기 위해
왔지만, 자신도 몽골에서 일하겠다고 했어. 알고 보니 이세영은
함안 고향 후배로 이태준의 절친 조용관도 알고 있었어. 이세영은 함안에서 조용관에게 영향을 받아 3.1 주동자로 참여했다가 왜경에 쫓기어 상해로 망명했다고 했어. 그
이후 임시정부에 있다가 이태준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돕기 위해 울란바토르에 찾아왔다고 했어. 처음에는
의심의 눈으로 봤지만 그제서야 이태준은 자신과 용관이 친구임을 이야기하고 이세정을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이세정에게 병원 일을 잠시 맡기고 김립과 함께 김립이 숨겨두고 있던, 소비에트로부터 받은 금괴를 전달하기
위해 상해로 떠났단다.
상해에 금괴를 안전하게 전달하고
여력이 되어 고향 함안에 며칠 들를 시간이 있었어. 얼마 만에 온 고향인가. 하지만 동생과 딸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있어서 만날 수 없었단다. 상해로
가는 배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아쉬움만 남긴 채 다시 상해로 왔단다. 그리고 북경에 가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고 의열단에 가입했단다. 김원봉이 폭탄전문가를 구한다고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환자 중에 마자르라는 사람이 떠올랐어. 헝가리인 마자르는 1차세계대전 포로로 몽골까지 오게 되었고 돈이 없어 헝가리에 돌아가지 못하고 거기에 병까지 걸렸던 거야. 그래서 이태준이 그를 무료로 치료해주고 그 이후 동의의국에서 이태준을 도와주면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그 마자르가 군대 있을 때 했던 일이 폭탄제조였단다. 이태준은
마자르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하고 몽골에 돌아왔단다.
….
1921년 11얼 1일. 이태준과 마자르는 군자금을 쓸 금괴를 차에 숨기고 장가구로 떠났단다. 금괴와 마자르를 장가구에 있는 요원에게 인수하고 이태준은 저녁 때쯤 다시 집에 돌아오려는 계획이었어. 그런데 그 시기가 앞서 이야기했던 운게르 군대가 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살인과 약탈을 하던 시기였단다. 태준이 떠나고 난 집에 운게르의 부대가 쳐들어와 딸 수옥을 죽이고 아내 은식을 데리고 갔단다. 그리고 이태준과 마자르도 운게르 부대에 잡혀서 다시 울란바토르에 압송되었단다.
그런데 운게르 부대에는 일본군들도 있었어. 몽골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를 잡으려고 일본군들이
운게르 부대에 합류했던 거야.
마자르는 외국인이라 다시 풀려나게
되었어. 이태준이 마자르에게 북경 가서 김원봉을 만날라고 지시했단다.
이태준이 의사였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운게르 부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했어. 이태준은
의료기기를 핑계로 집에 왔는데, 딸은 죽고 아내가 사라진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 이 울분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었겠니… 그리고 다음날 일본인 군인들이
와서 그 마저 죽이고 말았단다.
이태준은 그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단다. 환생이 꼭 있었으면 좋겠구나. 이태준
님 같은 이렇게 안타깝게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될 분인데 말이야. 다시 태어나셔서 그 전에 이어가질 못한
꿈을 이어나가셨으면 좋겠구나. 너희들도 이태준 님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태준은 경의선 기차가 막 출발할 때에야 가까스로 찻간에
올라탈 수 있었다.
책의 끝 문장: 타키가 큰소리로 한번 울면서 힘차게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