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냉전의 예고편이었다. 20세기의 모든 이념이 충돌해 참혹한 비극을 일으켰다. 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프랑코에게 병력과 물자를 지원했고, 소련 스탈린은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결성한 반파시즘 ‘국제여단’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했다. 프랑코는 1939년 3월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를 점령해 공화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3만여 명의 정치적 반대자를 처형했다. 수십만 명의 공화주의자들이 가족과 함께 페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를 탈출했다. 내전에서 사망한 군인과 민간인의 수가 50만 명이 넘었다.

(31)


MAN에서 파악한 스페인의 역사를 요약해 본다. 역사를 몰라도 마드리드를 즐기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알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베리아’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최초의 인간 집단 ‘이베로’ 부족은 3,600여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거나 해변을 걸어서 들어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철기를 들고 남하한 셀따(켈트) 족이 이베로 부족과 결합해 오늘의 스페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셀띠베로(celtibero) 부족을 형성했다. 페니키아와 그리스 상인들이 찾아와 기술과 문화를 전해주었으며, 로마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처절한 싸움을 벌인 끝에 로마 군대가 주요 지역을 점령했다. 라틴어로 이스빠니아라고 했던 이베리아반도는 기독교 세계에 포섭되었고 가스띠까, 까달루냐, 갈라시아 등 상이한 언어를 쓰는 열러 문화권이 무너진 5세기 이후에는 게르만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토착민과 손잡고 똘레도에 왕국을 세웠다.


(40)

나는 MAN에서 이런 충고를 들었다. ‘스페인이 무엇인지 묻지 마.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의 모든 도시에서 네가 보고 겪고 마주치는 것을 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스페인 땅에 있는 모든 것, 스페인 사람이 가진 모든 것, 그게 스페인이거든.’


(67)

나는 ‘어둠의 그림들’을 전쟁을 참상을 묘사한 판화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였다. 인간 본성에 대한 절망과 세상에 대한 환멸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극소수 권력자들이 종교의 권위로 인간을 억압하고 세속의 권력으로 민중을 착취하며 국가의 대의를 앞세워 대학살을 저지른 시대였다. 괴물이 깨어난 시대를 살았던 그는 괴물을 다시 잠재우려면 잠들어버린 인간의 이성이 눈을 떠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담은 그림으로 타인의 이성을 깨우려 했다. ‘어둠의 그림들’을 보면서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예술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예술이 무엇이라 하든, 괴물이 인간을 잡아먹었던 그 시대에 고야 같은 예술가 한 사람도 없었다면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97-99)

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128)

바르셀로나 사람들한테 1714년은 우리의 1592년이나 1910년에 해당한다. 마드리드 편에서 펠리페 5세가 전쟁을 벌인 끝에 스페인 왕위 계승권을 지켰다고 했다. 전쟁의 발단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던 카를로스 2세한테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토가 갈가리  찢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한 그는 스페인 왕국의 통합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걸고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 공작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해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로 옹립했다. 그러자 빈의 합스부르크 왕실과 독일 바이에른 왕실이 저마다의 연고를 내세워 스페인의 왕위가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했다. 1701년 전쟁이 터지자, 해외 식민지 소유권과 노예무역 해상권을 두고 스페인과 대립하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끼어들었다. 중세 내내 벌어졌던 유럽 왕족과 귀족들의 영토쟁탈권이 스페인 땅에서 벌어진 것이다.


(167)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종교에도 명암이 있다. 종교는 삶의 도덕적 기초를 제공하며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이타 행동을 격려한다. 그러나 종교는 또한 사람의 생각을 옭아매어 권력자가 민중을 착취하는 도구로 쓰인다.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증오하고 죽이도록 부추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간 집단에 종교가 있다. 어떤 ‘진화적 이익’이 있기에 호모 사피엔스는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일까? 철학자와 생물학자들의 여러 설명을 들어보았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종교 없이도 우리가 도덕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신앙심 없이도 이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원이나 다음 생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도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229)

‘리스본 대성당’은 작고 소박했다. 초라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 대주교가 있어서 간단히 ‘대성당’이라고 하는 그 집은 12세기 중반 레콩스키스타 직후 지었으니 리스본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건축 기술이나 국력으로는 그보다 크고 화려한 성당은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지진이 잦은 곳이라 자주 수리했고 수리할  때마다 유행하는 교회 건축양식을 덧붙였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건물은 로마네스크, 예배당 회랑은 고딕, 실내장식은 로코코 스타일이었다는데 대지진에 다 부서져 불타버렸다. 대성당은 두 가지가 특이했다. 첫째, 군사요새 같은 외관은 레콩키스타 시대의 전투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둘째, 중앙 설교대 위 넓은 공간에 성가대 나무 의자를 놓았다. 특별히 볼만한 게 없다는 걸 알았지만 가톨릭 국가의 수도를 방문한 여행자로서 예의를 지키려고 들렀다.


(246)

페소아의 정신은 외모보다 더 특이했다. 연금술, 신비주의, 마법, 비밀결사, 점성술에 심취했고, 셰익스피어와 나폴레옹 같은 역사 인물의 별자리 운세 모음집을 만들었으며, 바이런 스타일의 영국 낭만주의부터 보들레르가 대표하는 프랑스 상징주의와 엘리어트의 모더니즘까지 온갖 문예사조를 섭렵했다. 1935년 가을 복통과 고열 증세에 시달리다가 사망한 그는 영어로 된 책 네 권과 포르투갈어책 한 권밖에 출간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원고와 스케치를 남겼다. 포르투갈 국립국서관은 나무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원고를 시민들에게 공개했고, 정부는 페소아의 관을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옮겼다.


(287)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목표로 설정한 유럽의 권력자들은 책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신과 교황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더 큰 부와 더 위력적인 무기와 더 강력한 권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교회를 짓던 돈으로 도서관을 만들었다. 성서를 제작하던 정성으로 책을 모았다. 구원을 기도했던 절박함으로 교육과 학문 연구를 진흥했다. 신학을 과학으로 대체하고 책을 신의 자리에 올린 것이다. 주앙 5세도 그런 왕이었으니 도서관에 이름을 남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307)

여행지에서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는 각자의 취향에 달렸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객관적으로 더 고상하다든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책을 서점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이 총포와 같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총포처럼 위력 있는 것은 새롭고 유용한 지식과 정보이지 문자 텍스트를 인쇄한 종이책이 아니다. 세상은 인터넷과 검색엔진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책은 지성의 상징이 아니며 숭배할 대상 또한 아니다. 책을 쓰는 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온 나는 책을 전성기가 지난 전통 미디어로 여긴다. 서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는 통념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좋다.


(336-337)

술을 마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불법화할 수가 없는 마약이다. 어차피 마실 거라면 품격 있게 마시는 게 좋다. 음식과 궁합을 맞추고 철학과 문학의 향기를 입히면 최선이다. 와인은 그렇게 하기에 딱 맞는 술이다. 나도 그날 오후의 햇살에 잔을 비추어 보면서 포트와인을 마셨다. 내 인생에 제일 많이 마신 날이었지만 긴 시간 동안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우버를 불러 숙소를 돌아오는데 운전사의 영어가 심상치 않아 물어보았더니 미국 사람이었다. 농구 관련 일로 뽀르투에 왔다가 너무 좋아서 눌러앉았고 뽀르투 여인과 혼인했으며 자녀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왜 다들 미국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364-365)

한 가지 더, 중세와  근대 역사의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정복 전쟁을 일삼았던 포르투갈 왕국은 대항해 시대의 짧은 전성기를 지나 유럽의 변방 국가로 되돌아왔다. 공화주의 혁명을 이룬 뒤에는 살라자르의 장기독재를 겪었다. 그런 역사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다해 이웃과 싸우면서 남을 정복했지만,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고 남은 것도 없다. 이기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좋다. 이웃을 적으로 삼기보다는 서로 기댈 수 있는 친구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붐비는 거리에서도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친구나 사업 파트너를 만나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충분히 들으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이방인에게도 경계하고 의심하는 표정이 아니라 여유롭게 환대하는 미소를 선사한다. 리스본과 뽀르투 사람들한테서 나는 그런 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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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갈까마귀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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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또 캐드펠 수사 시리즈란다. 어느덧 12권이네. 올해 안에 21권까지 완료하는 것이 아빠의 독서 계획 중 하나란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권의 제목은 <어둠 속의 갈까마귀>란다.

12권의 이야기는 1141년 12월 1일부터 시작돼. 지난 11권의 이야기가 1141년 8월이었으니,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다음 이야기지. 1141년 12월, 잉글랜드에서 내전이 일어난 지 어느덧 4년이 되었단다. 이 내전을 다시 짧게 이야기하자면, 헨리 왕이 아들 없이 죽자 후계자 1순위인 그의 딸 모드 황후가 잉글랜드로 돌아왔어. 당시 모드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황후였기 때문에 ‘모드 황후’라고 불렸단다. 그런데 모드 황후는 잉글랜드에 오고 나서 오만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개인적인 원한을 복수하는 등 런던 시민들의 민심을 잃고 말았어. 그러자 잉글랜드의 일부 귀족 세력을 중심으로 모드 황후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헨리 왕의 조카인 스티븐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지. 그렇게 스티븐 왕 진영과 모드 황후 진영 간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게 어느덧 4년째에 들어선 거란다. 얼마 전까지 스티븐 왕은 모드 황후의 포로로 잡혀 있었는데, 최근 탈출에 성공해 대책 회의를 열게 되었어. 슈롭셔 행정관인 휴 베링어도 그 대책 회의에 참석했어.

...

한편 슈루즈베리의 성 페드로와 성 바오로 수도원의 라둘푸스 원장님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헨리 주교가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났고, 수도원은 로버트 부원장이 업무를 대리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라둘푸스 원장님은 얼마 전 수도원 구역의 교구 신부 역할을 하던 애덤 신부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후임 신부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었어.

며칠 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갔던 라둘푸스 원장님은 세 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단다. 그리고 회의 결과를 수도원 식구들에게 전달해 주었지. 회의 결과, 교회는 다시 스티븐 왕을 따르기로 했다고 해. '다시'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헨리 주교가 상황에 따라 모드 황후 편에 서기도 하고 스티븐 왕 편에 서기도 했기 때문이란다. 헨리 주교는 일 년 동안 두 번이나 지지 진영을 바꿨기에, 라둘푸스 원장님은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직책상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 이번에 데리고 온 세 명 중 한 명은 헨리 주교가 추천한 후임 교구 신부 '에일노스'라는 사람으로, 36살의 강인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단다. 나머지 두 명은 에일노스 신부의 가정부인 디오타와 그녀의 조카인 베넷이었어. 베넷은 캐드펠 수사의 채소밭에서 일하기로 했어. 베넷은 채소밭에서 열심히 일하긴 했지만, 곧 자기 길을 찾아 떠나겠다고 캐드펠 수사에게 이야기했단다.

 

1.

새로운 교구 신부 에일노스는 기존의 애덤 신부님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단다. 엄격한 규율로 교구와 신자들을 관리했어. 규율을 어긴 아이들에게 매질을 서슴지 않았고, 이웃과의 땅 분쟁으로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어. 어떤 문란한 처녀가 고해성사를 하려 하자 이를 거부하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는가 하면, 아픈 아기를 데리고 온 신자에게 자신의 기도 시간이라며 외면해 아기가 죽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단다. 인간미라고는 전혀 없는 냉철한 신부라고 할 수 있지. 이렇게 되자 라둘푸스 원장님이 에일노스 신부를 불러 면담을 했어.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원장님이 하나하나 지적하자, 에일노스 신부는 자신은 규율대로 했을 뿐이라며 꼬박꼬박 반박했단다.

...

한편 수도원 근처에 큰 영지를 가지고 있는 랠프 기퍼드라는 영주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새넌이라는 의붓딸이 있었어. 에일노스 신부의 가정부인 디오타가 랠프에게 비밀 편지를 전달하자 랠프가 불편한 기색을 보인 일이 있었는데, 둘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단다. 새넌은 베넷에게 관심이 있었는지, 캐드펠 수사를 만나러 온다는 핑계로 수도원에 와서 베넷에게 말을 걸곤 했어. 그런데 정작 베넷은 그녀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지. 베넷은 오히려 캐드펠 수사에게 그녀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단다. 하지만 그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는 사이가 되었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밤샘 미사가 열렸을 때, 베넷과 새넌은 몰래 빠져 나와 캐드펠 수사의 오두막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단다.

...

캐드펠 수사는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어디론가 급히 가는 에일노스 신부를 보았어. 망토 모양의 사제복을 입고 뛰어가는 모습이 마치 갈까마귀 같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어둠 속의 갈까마귀>인가 보구나. 그런데 다음 날 디오타가 부원장님을 찾아와 에일노스 신부가 실종되었다고 말했어. 디오타는 이마와 손을 다친 상태였는데, 밤새 신부님을 찾아 다니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졌다고 했지. 캐드펠 수사가 어젯밤 신부님이 어디론가 급히 가는 것을 목격했기에, 수도사들은 그 장소부터 수색을 시작했단다. 그리고 에일노스 신부는 안타깝게도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지. 검시 결과 누군가 에일노스의 머리 뒤쪽을 가격한 후 물에 빠뜨려 죽인 것 같다고 했어. 에일노스 신부가 살해당했지만, 교구 주민 중 그를 애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단다. 오히려 속으로 기뻐하기까지 했지. 그러니까 평상시에 사람들에게 잘해야 하는 거란다.

...

며칠 뒤 휴 베링어가 돌아와 캐드펠 수사와 함께 에일노스 사건을 맡게 되었어. 그리고 휴 베링어는 또 하나의 사건을 맡았다고 했어. 바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 2권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 등장했던 토럴드의 친구이자 모드 황후의 첩자인 '니니언 버카일레'라는 도망자를 찾는 일이었어. 휴 베링어가 니니언 버카일레에 대해 이야기하자, 캐드펠 수사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단다. 베넷이 한두 차례 말실수를 했던 것과 그의 행동들이 떠올랐거든. 바로 베넷이 니니언이었던 거야! 캐드펠이 베넷을 불러오자, 그는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단다. 자신은 모드 황후의 군대에 합류하려던 참이었고, 이모로 알려진 디오타는 사실 유모이며 자신의 도피를 돕고 있다고 했지. 앞서 디오타가 랠프 영주에게 전달한 비밀 편지 역시 모드 황후와 관련된 내용이었던 거란다.

 

 

휴 베링어는 니니언을 에일노스 살인 사건의 용의선상에 놓았어. 물론 교구 주민들도 일단 의심을 했단다. 워낙 에일노스가 교구 주민들에게 원한 사는 일을 많이 했잖니. 새넌은 니니언을 숨겨주었고, 캐드펠 수사도 지금 상황에서는 니니언이 숨어 지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새넌이 니니언을 숨겨주는 것을 도와주었고, 니니언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묻지도 않았어.

그리고 캐드펠은 우연히 죽은 에일노스의 찢어진 모자를 얻게 되고,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을까 생각하고 범행장소를 다시 조사했단다. 에일노스 신부의 사라진 지팡이도 찾아보려고 했어. 범행장소 근처에 방앗간이 있어 그곳에 갔는데 그곳에서 숨어있는 니니언을 만났단다. 좀 허술하게 숨어 있는 것 같구나.

…

니니언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자신이 밝히겠다고 했어. 젊은 패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하구나. 니니언이 그렇게 자신 있어 하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캐드펠은 니니언이 알고 있는 것을 물어보았어. 니니언은 그날 랠프와 방앗간에서 몰래 만나기로 했는데, 랠프는 안 오고 에일노스가 왔다고 했어. 그래서 몰래 방앗간을 떠났는데 그 곳에서 다른 젊은 남자를 보았다고 했어. 그렇다면 그 젊은 남자가 범인?

니니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캐드펠은 에일노스 신부의 지팡이를 찾았는데 그 지팡이에 여자의 머리카락이 있었어. 그 머리카락은 디오타의 머리카락 같았어. 그래서 캐드펠은 디오타를 찾아가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다시 물어보았단다. 디오타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지. 그날 밤에 에일노스 신부가 디오타를 찾아와 니니언을 찾는다고 했어. 아무래도 에일노스 신부가 니니언이 도망 중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 디오타는 에일노스 신부가 니니언을 찾는 것을 막기 위해 방해하려다가  에일노스 신부가 휘두른 지팡이에 머리를 맞았다고 했어.

디오타는 이후 에일노스 신부로부터 도망갔다고 했어. 니니언이 방앗간에서 에일노스 신부를 봤다는 증언과 일치하는구나. 그리고 캐드펠 수사가 에일노스가 급히 뛰어가는 것을 본 것은 에일노스가 니니언을 찾으러 가던 길이었던 거야. 자, 그럼 에일노스가 죽은 밤 에일노스가 만난 사람은 디오타, 니니언, 니니언이 본 젊은 남자로 좁혀지는구나. 아무래도 니니언이 본 젊은 남자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일 것 같구나.

…

 

2.

캐드펠은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은 휴 베링어에게 이야기했어. 휴 베링어도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이야기해주었어. 그날 밤 방앗간을 지나가는 또 한 사람을 봤다는 거야. 그 사람은 빵장수 조던이라는 사람이야. 특히 조던은 엘리노스와 시비가 붙기도 했던 사람이야. 앞서 니니언이 방앗간에서 나서면서 본 사람이 조던인 것 같구나. 하지만 조던은 엘리노스 또는 니니언과 관련 없는 일로 그곳에 지나고 있었어. 사실 조던은 그날 밤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고 귀가하던 길이었어. 그래서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되었지.

휴 베링어는 그를 이용해서 범인을 잡아보려고 했어. 에일노스의 장례식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던을 범인으로 체포하려는 계획이었어. 그러면 양심 있는 진범이라면 자백할 것이라고 기대를 한 거야. 휴 베링어는 좀 순진한 면이 있는 것 같구나. 그렇게 순순히 범인이 나타날까? 한편 마을에서는 디오타가 에일노스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어. 그 소문을 들은 니니언은 디오카가 걱정되어 장례식장에 두건으로 얼굴을 숨기고 참석했단다. 장례식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휴 베링어는 양해를 구하며 살인자로 조던을 호명하며 체포하려고 했어. 조던은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을 하면서 장례식장은 혼란스러워졌어. 그때 교회지기로 오랫동안 일했던 컨릭이 나서서 조던은 범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단다. 휴 베링어는 자신의 작전이 성공하나 싶었지. 그렇다면 컨릭이 범인?

컨릭은 그날 밤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단다. 에일노스는 어떤 여자를 지팡이로 때렸다고 했어. 여자가 에일노스의 지팡이를 붙잡고 저항했다고 했어. 에일노스는 그 여자의 손으로부터 지팡이를 빼내려고 했고, 여자는 지팡이를 놓치고 도망을 갔다고 했어. 디오타의 증언과도 일치하니까 그 여자는 디오타일 것 같구나. 갑자기 여자가 지팡이를 놓치자 에일노스가 잡아당기던 힘 때문에 뒤로 튕겨져 갔는데 그곳에 얼마 전 잘리고 남은 거칠고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있었어. 에일노스는 그 날카로운 잘려진 나뭇가지에 뒤통수를 강하게 부딪치면서 저수지에 빠졌다고 했어. 컨릭은 그 장면을 보고 저수지로 달려가서 빠진 에일노스를 봤다고 했어. 하지만 컨릭은 에일노스를 그냥 두었다고 했어. 에일노스 신부가 도움을 청한 사람들을 그냥 두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하느님이 에일노스 신부를 살려주고 싶으면 살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대. 정말 현명한 판단인 것 같구나.

아무도 컨릭의 행동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단다. 하느님이 살려주고 싶으면 살려줄 것이라고 했으니 누가 그 말에 딴지를 걸겠니. 컨릭의 이야기를 듣고 캐드펠 수사는 저수지 주변에 있는 나무에 가보았어. 컨릭이 이야기한 것처럼 잘려진 나뭇가지가 있었고, 그 나뭇가지에 끼어 있는 에일노스 모자의 털실을 발견할 수 있었어. 컨릭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였단다. 그렇게 12권의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

사람이 평상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였단다. 주는 대로 돌려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이야기 등 사람 간의 관계에 관한 동서양 할 것 없이 많은 속담과 금언들이 있단다. 아빠는 이 나이가 되어도 인간 관계는 참 어렵다고 생각한단다. 너희들도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겠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단다. 하지만 사람마다 장점이 하나 이상씩은 있는 것 같더구나. 굳이 척을 지며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싫어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속으로만 싫어하고 겉으로는 최소한의 친절로만 대해도 상대도 너희들에게 미소를 띠며 이야기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아빠가 이야기한 것이 정답은 또 아니니 사람 사이가 어려운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2월 1일, 총회에 참석한 라둘푸스 수도원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는, 수사들이 제시한 온갖 사소한 안건들을 서둘러 처리했다.

책의 끝 문장: 한 번도 서로를 본 적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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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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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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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할 책은 책제목이 눈에 띠어 알게 된 책이란다. 좀 과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지은이는 이랑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이야. 지은이 소개를 읽어보니, 이랑이라는 분은 가수이기도 하고, 영화연출을 전공하여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웹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는구나.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사람인가 보구나. 아빠도 너희들과 최신 가요를 가끔 듣는데, 이랑이라는 분은 기억에 없구나. 음악 장르가 포크라서 우리가 듣는 음악과 좀 거리가 있던 것 같구나.

아무튼, 이 책의 독특하고 과격한 제목으로 눈에 띠어 책 소개와 책 리뷰를 읽어보았는데, 아빠와 좀 다른 영역에서 생활하고 다른 사고 방식으로 생활하시는 분이라 흥미가 더 가서 읽게 되었단다. 특히 이 책을 읽고 쓴 리뷰 중에 이 책이 상당히 솔직하게 쓴 책이고 그것이 큰 장점이라는 식의 평이 있었어.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속마음을 좀 숨기거나 각색해서 쓰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글을 그렇게 솔직하게 썼다면 진실된 에세이를 읽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참고로 지은이 이랑은 가명처럼 보이지만 본명이라고 하는구나.

 

1.

자, 그러면 책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지은이 이랑은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긴 하지만 이전에도 책도 여러 권 쓰신 작가이기도 해. 2019년에도 자신의 가족에 대한 에세이를 준비하다가 범위를 줄여서 자신과 엄마와 언니의 기록을 쓰려고 했대. 그런데 2021년 겨울 갑자기 언니가 자살을 했다는구나. 매일 함께 살던 가족의 자살은 정말 아픈 기억과 상처로 마음 속에 남을 것 같구나. 지은이도 언니의 자살 이후의 글들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 글을 써야 했다. 그 고통과 아픔 때문에 글도 천천히 쓸 수밖에 없었다는구나. 이런 고통과 아픔의 내용이다 보니 책을 출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다가 출간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책으로 출간했다는구나. 책도 우리나라보다 일본과 대만에서 먼저 번역출간 되었고,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고 하는구나. 좀 독특한 출간 이력을 가지고 있구나.

….

먼저 자신의 가족을 소개했어. 지은이의 가족은 지은이와 부모님과 언니와 남동생 이렇게 다섯 명이었어. 자신의 집안은 대대로 가족 폭력이 비일비재했던 집안이라서, 자신과 언니와 남동생은 그런 폭력적인 가족의 대를 끊자면서 비혼 선언을 했다는구나. 부잣집 딸인 엄마가 오빠의 친구의 아버지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게 된 사연은 이렇대. 엄마가 젊은 시절에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집에서는 엄마를 미친 년으로 취급을 했대. 오빠가 자신의 친구에게 그런 엄마를 구제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엄마는 그런 내막도 모르고 지금의 아버지와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 했어.

결혼 후에도 엄마의 우울증 증세는 가끔씩 있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 산에 올라가서 소리 지르고 오기도 하셨대. 그런데 그렇게 혼자 산에 갔다가 강간 당할 뻔한 일이 있었어. 그 일이 있고 나서 산에 가지 못하는 엄마는 집의 옷장에서 소리를 지르곤 했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셨어. 지은이의 엄마가 그렇게 우울증이 있었던 것은 가족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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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 ‘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 탓은 아니지만 엄마가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나 또한 미친년으로 자라났다. 그나마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엄마의 미친년 역사도 무척 소중하기에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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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폭력적이라고 했다는구나. 지은이 이랑도 우울증을 보이는 엄마와 폭력적인 아버지의 가정환경이라서 그런지 고등학교는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봤다고 했어. 언니 이슬은 그래도 모범적인 생활을 해서 특수 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었어. 그리고 취미로 친구들과 댄스팀 ‘드웨즈퀸즈’를 만들어 활동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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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이니까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 말고 언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언니는 일명 ‘장녀병’에 걸린 사람이었어. 외할머니가 계셨는데, 외할머니는 100억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재산을 죽은 아들의 아내, 그러니까 며느리와 손자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았대. 외할머니가 편찮으실 때 간병하는 것은 엄마와 장녀인 이슬이었고 병원비도 언니가 꼬박꼬박 냈다고 했어. 하지만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언니는 100억 상속을 받은 외숙모의 자식들, 그러니까 사촌들에게 같이 지불하자는 메일을 보내려고 했어.. 하지만 소심한 언니는 이 메일을 써 놓기만 하고 몇 번을 다듬고 수정하였는데, 결국 보내지 못했단다. 지은이는 언니의 자살의 원인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힘을 소진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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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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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은이 주변에는 삶을 일찍 고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어. 2016년에는 친구 M이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고, 2017년에는 친구 D가 간암 말기를 선고를 받고 2020년에 삶을 마감하였고, 2021년 12월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언니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단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잇단 죽음으로 지은이도 힘들고 때론 자신도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

지은이에게도 죽음의 그림자도 드리웠단다. 2021년 자궁경부암을 선고 받고 치료를 받았다고 했단다. 그리고 2023년에는 갑자기 두 눈이 잘 보이지 않았대. 혹시 뇌종양은 아닐까 걱정해서 병원에 갔는데 원추각막이라는 병인데, 이 원추각막이라는 병도 희귀 질환으로, 완치는 어렵고, 진행을 늦출 수만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눈 수술을 세 번이다 했대. 그리고 공황 장애로 자신도 모르게 쓰러지기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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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땅에 발을 붙이고, 정신과 몸을 붙여내고야 만다. 반면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머리만으로 산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몸을 놓고 살았다. 감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방법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겪는 공황은 머리의 파업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니 몸 전체를 셧다운시켜서 몸도 머리도 멈추게 해버리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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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던 지은이에게 큰 힘이 되었던 반려묘 준이치가 있었어. 그런데 그 준이치도 2025년 2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구나. 지은이 주변에 죽음이 있어서 혹시 지은이가 힘들거나 아플 때 자살을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지은이는 죽음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때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책을 마무리했단다. 그래, 지은이의 다재다능한 재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아빠보다 젊은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더 좋은 글과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면 좋겠구나.

유튜브에서 이랑의 음악을 찾아봐서 들었는데, 아빠 스타일의 음악은 아니지만 개성 넘치는 음악이더구나. 지은이 이랑 님이 좋아하는 인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부분이 있는데, 그 인간상이 아빠 마음에도 들더구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은 해보고 싶구나. 이 나이에 그 동안의 성격과 성품이 바뀌기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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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206)

나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인간을 좋아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좋다.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좋다.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좋다.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더 탁월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좋다. 겪기 않은 이야기로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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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의 분위기라든가, 자신의 허물과 개인사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명랑한 은둔자>와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의 지은이 캐럴라인 냅이 떠오르더구나. 아빠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시간이 날 때 두 분의 책을 한번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을 듯.. 지은이 이랑의 삶에 응원을 보내며 오늘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이랑 님의 다른 책들도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사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잘 자.

 



내 감정들에 이미 정해진 간단한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 배웠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나만의 이름 짓기’를 했기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몰라서, 모든 것에 새로운 이름을 짓고 싶어하는 지금의 내가 된 걸까.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 원래 있던 것과 새로 나타난 모든 것에 이름을 짓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 P22

온 가족 구성원이 화가 많고 예민한 우리집에선 언제나 고성방가가 끊이질 않았다. 동시에 예술적 기질도 많아서 엄마 아빠는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동생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하고, 언니는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리고는 또 박 터지게 싸우다 한 번씩, 한 명씩 부엌에서 칼을 쥐고 나와 휘둘렀다. 어떻게 보면 스펙터클, 어떻게 보면 지옥 같은 광경이 자주 펼쳐졌다. 장례식상에서마저 댄스 공연을 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욕하고 소리지르며 싸운 것까지도 전부 괴롭고 웃긴 우리 가족의 풍경이었다. 귀신이 된 언니가 그 모습을 봤다면 다들 미쳤다며 껄껄 웃을 것 같았다. - P80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 P110

깊은 사랑과 냉철한 이성과 오래된 우울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언니에게 말하고 싶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모른다고 서로 말하던 우리 두 자매였는데, 언니가 떠난 뒤에 나는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생겼음을. 그래서 무척 아프고 괴롭지만 굉장한 것을 배우고 있음을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어쩐지 언니에게 전해질 거라고 느낀다. - P149

(204-205)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정신과 몸은 사실 하나였다. 영혼, 정신, 마음이라고 불리는 그것들 모두가 결국 ‘몸’ 자체였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찰나의 순간으로 결정되는 부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온몸으로 영혼의 실재를 기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닿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부재와 나의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들의 몸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내 몸을 가지고 그들의 기억과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살아 있고, 기억하는 동안 내 세계에 그들은 함께 있다. (다만 영혼이나 유령으로서가 아니라 기억으로서.)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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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나는 어려서부터 남자들에 대해 한 가지를 알아냈다. 그 족속들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 그것을 나는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배웠다. 차가운 밤마다 되살아나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한 악몽을 통해서였다. 남자들은 우리 여자들보다 훨씬 더 변덕과 욕정에 휘둘리면서도, 오히려 그런 기질을 우리에게 덮어씌운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위선이다.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해 온 위선. 아담과 이브를 생각해보라. 그래, 악마가 이브를 유혹한 건 지식을 얻으려는 욕망 때문이었다. 이브는 자신을 깨우치려 했을 뿐이다. 그렇게 미끼를 물고 나서, 이번엔 아담이 호기심과 질투에 사로잡혀 마치 제 욕심만 아는 어린아이처럼 그 일부를 탐했다. 그런데 다시 보라. 남자는 이성으로, 여자는 감정으로 지배된다고?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거짓말을 해왔다.


(378)

나는 늘 내 마지막 순간이 정원에서일 거라 생각했다. 뿌리에서 하늘로 뻗는 약초들의 날카롭고 푸른 향기에 둘러싸여, 축축하고 비옥한 흙이 마지막 베개가 되고, 고양이 수염이 주름진 뺨을 간질이며, 집과 집 멀리 들판에서 아이들, 손주들의 목소리와 웃음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그리고 토마스의 나무를 베고 사포로 문지르는 꾸준하고 참을성 있는 리듬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그런 순간. 나는 항상 그보다 먼저 죽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신이 내 삶의 태양을 먼저 앗아가실 리 없으니까. 토마스 없이 살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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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혜영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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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일본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소설이란다. 지은이 기리노 나쓰오라는 지은이는 처음 들어본 작가인데, 약력을 보니 인터넷 서점에서 많이 눈에 띄었던 <아웃>이라는 작품의 지은이더구나. 오늘 이야기할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책은 몇 달 전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골랐단다. 아빠는 귀가 얇아서 이 소설이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는 광고문구에 혹했단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잘 읽히고 재미있었단다. 그런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성문화 차이인지, 아빠 세대와 젊은 세대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공감 가지 않는 부분들이 좀 있었단다.

계급 없는 평등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알게 모르게 보이는 사회적 계급과 차별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런 것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아빠의 기준으로 봤을 때) 부자연스러운 설정들이 있었단다. 그런 것들을 차차 다시 이야기할게. 그럼 책 이야기를 해볼게.

 

1.

주인공 리키는 고향에 있는 지방의 요양원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도쿄의 종합 병원에서는 일하고 있는 스물아홉 살 아가씨란다. 보수는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월급의 3분의 1을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은 것은 얼마 없어 늘 팍팍한 생활을 하고 있단다. 먹는 것도 편의점 음식 등 간신히 끼니를 때우는 정도였어. 그러나 삶의 희망이 잘 보이지 않았어. 그러다가 친구가 난자를 기증하면 50에서 80만엔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사이트에 접속해서 등록을 했단다. 그러자 얼마 후에 사이트에서 연락이 와서 상담하러 갔단다.

그 회사의 이름은 플란테라는 곳이고 리키를 담당하는 사람은 아오누미라는 사람이었어. 아오누미와 상담을 했는데, 난자만 기증하는 것이 아니고 대리모를 제안해왔어. 돈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단다. 아오누미가 다른 사람도 아닌 리키에게 그런 제안을 한 이유가 있었어. 어떤 불임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와 닮은 사람이 있다면 대리모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거든. 대리모는 난자 기증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단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내 몸 속에 키우고 나중에 낳은 후에는 그 부부에게 아이를 주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일본에서는 대리모가 불법이었단다. 대리모를 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난관이 참 많을 것 같구나. 그래도 거금의 유혹 때문에 리키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그만큼 리키는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단다. 리키는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단다.

…

그럼 대리모를 부탁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구사오키 모토이. 그는 43살로 전직 발레리노이고 아내 유코는 44살로 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어. 임신을 위해 인공 수정 등 여러 가지 시술을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단다. 모토이는 큰 문제가 없었고 아내 유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어. 모토이는 아이를 낳아서 발레를 전수하고 싶은 간절한 꿈이 있었어. 그런데 아이를 갖지 못하자 대리모까지 생각하게 된 거야.

사실, 모토이와 유코는 불륜으로 만나 모토이가 이혼한 후 재혼을 한 거야. 모토이의 전 아내는 발레리나였는데, 이혼 후 재혼하여 아들을 둘을 낳았다는 소식들 듣고 모토이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했단다. 그렇다고 모토이가 그런 마음을 유코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어. 모토이의 엄마인 지미코도 발레를 하셨던 분으로 모토이는 엄마 지미코와 함께 발레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단다. 모토이는 자신의 아이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대리모를 통해서라도 아이를 갖고 싶어했고, 유코는 꺼렸단다. 하지만 모토이가 너무 간절하게 원하니까 유코도 결국 동의했단다.

…

 

2.

리키는 고민 끝에 의뢰 부부를 만나보기로 했어. 모토이와 유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고, 리키는 대리모를 하기로 했어. 그 대가로 1000만엔을 받기로 했단다.

…

대리모로 1년 가까이 임신한 상태를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리키는 갑자기 성적 욕구가 생겨나서 호스트바에 갔단다. 그곳에서 다이키라는 남자를 만났단다. 처음에는 대화만 나누려고 했는데, 다이키가 잘 대해주고 그래서 섹스도 나누게 되었지만,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고 공허감마저 느꼈단다. 리키가 대리모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고민하고 갈등했단다. 다른 부부의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이 말이 쉽지, 대리모라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생각도 컸어. 하지만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탈출구는 보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서 자기합리화를 했단다.

…

한편, 유코는 절친 리리코를 만났어. 그러면서 대리모를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했어. 리리코라는 사람은 비혼주의자이면서 춘화작가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야. 리리코는 대리모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여성을 도구화하는 것이라며 비판했어. 유코도 리리코의 말에 동의하지만 남편이 너무 간절히 원하고 아이가 없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

리키는 선수금 200만엔을 받고 병원 일도 그만두었단다. 대리모를 하려면 일년이나 자리를 비워야 하니 먼저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 리키는 이사도 하고 모토이와 유코 부부와 정식 계약서도 썼어. 일본에서 대리모는 불법이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몇몇 절차가 더 추가되었단다. 리키가 모토이의 아이를 낳으면 사생아가 되는 것이었어. 그래서 모토이와 유코가 위장 이혼을 하고, 문서 상으로 모토이와 리키가 위장 혼인 신고를 했단다. 그래서 나중에 아이를 낳아도 모토이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하는데 문제가 없는 거야. 리키가 아이를 낳으면 다시 이혼하고 유코와 다시 결혼하게 되는 거야. 뭔가 복잡하면서도 무척 불안하구나.

그렇게 유코는 이혼녀가 되었고, 리키는 결혼한 사람이 되었어. 모토이의 어머니 지미코는 자신의 손주가 생긴다는 생각에 모토이만큼 이 일을 기뻐했단다. 그러면서 리키의 임신 기간 동안 자신의 발레 스튜디오에 머물러 달라는 무리한 요구까지 했단다. 리키는 그것까지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거절했단다. 그리고 리키는 인공수정을 했는데, 두 번이나 실패했단다.

…

다음 인공수정 할 때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고향에 내려갔단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이모의 장례식장에도 못 가서 성묘를 한다는 이유이지만 아빠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행동이란다. 대리모로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숨어 지낼 것 같은데, 고향에 내려가다니… 심지어 부모님을 만나서는 결혼했다고 이야기도 했어. 일본 문화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부모님한테 이야기하지도 않고 부모님 초대도 하지 않고 결혼하는 것이 일상인가? 부모님도 섭섭해 한 것은 당연했어. 그리고 결혼한 딸이 고향에 오는데 신랑도 데리고 오지 않고 혼자 오다니… 고향에 와서도 결혼한 사실은 이야기하지 말지, 왜 이야기했을까? 공감 안 가는 행동들이구나.

거기에 고향에서 일했던 요양원 직원들까지 만났어. 예전에 어떤 유부남과 불륜을 저질렀는데 심지어 그 남자도 그 모임에 나왔어. 엄청 불편할 것 같은데… 더 공감 안되고 황당한 것은 그 불륜남과 다시 호텔에서 사랑을 나누었다는 거야. 리키라는 주인공이 처음에는 불쌍했는데 하는 행동들이 너무 답답하더구나. 리키는 도쿄로 돌아와서는 이번에는 호스트바에서 만났던 다이키를 만나 또 사랑을 나누었단다. 주인공 리키가 인공 수정을 앞두고 이런 문란한 생활을 하는 것이 그 다음 인공 수정에서 임신에 성공했다는 것을 보고는 지은이의 억지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친부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게 하는 설정으로 소설의 재미를 더해보려는 것 같았어. 아빠가 오늘 편지를 시작하는 부분에서 공감되지 않고 지은이의 억지 설정이라고 말한 부분의 대표적인 부분이 이 부분이란다. 리키는 불륜남과 다이키와 사랑을 나눌 때 피임을 했지만 찜찜했단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제 와서 모토이 부부에게 할 수는 없었어.

…

 

3.

모토이는 임신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지만 유코는 기분이 좋지 않았어. 모토이는 유코의 기분도 고려하지 않고 그렇게 기뻐하다니, 잘못했네. 유코는 시간이 갈수록 대리모를 선택한 것에 회의를 느꼈어. 자신이 엄마가 되어 대리모가 낳은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을 것 같았어.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것 같았어. 그래서 모토이와 말싸움을 하기도 했단다.

…

리키는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아기의 아빠가 불륜남이나 다이키면 어쩌나 걱정이 점점 커갔단다. 일 년은 금방 가는데, 그냥 꾹 참지.. 인공 수정을 앞두고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임신이 되니 누구의 아빠인지 걱정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구나. 계속 고민을 하던 리키는 유코에게 전화해서 솔직히 다 이야기를 하고 아이를 지워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어. 며칠 후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리키는 유코와 만났는데 유코는 그 자리에 리리코를 데리고 왔어. 리리코를 데리고 오는 게 맞나? 리키는 유코하고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것 같은데.. 리리코는 주변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지금의 사태를 이야기하면 이야기했단다. 아빠에게는 공감이 안 가는 설정이구나. 리리코는 당장 낙태하라고 옆 테이블까지 다 들리게 크게 이야기하고 유코는 낳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어.

결국 유코를 만나서도 결정을 하지 못했고 조금 더 생각해 보다가 낳기로 했단다. 시간을 흘러 임신 6개월째로 접어들었단다. 아참, 뱃속 아이는 쌍둥이라고 하는구나. 인공 수정을 하면 쌍둥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모토이의 아이들일 확률이 높을 것 같구나. 하지만 100퍼센트는 아니니까 리키는 계속 불안해했어. 몸이 무거워지자 혼자 지내기 어렵게 되어, 리키는 유코와 리리코의 제안으로 리리코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병원의 기숙사에서 지내기로 했어. 그래서 몸에 갑자기 이상이 있으면 병원의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리키는 리리코의 일도 도와주기로 했단다. 일종의 아르바이트라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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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는 모토이와 점점 거리감을 느끼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냥 이혼 상태로 유지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아이가 태어나면 모토이와 시어머니가 알아서 잘 키울 것이라 생각했어. 반면 모토이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리키에게 1년 동안 아이들을 키워달라고 부탁했단다. 처음과 달리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생기는구나. 모토이가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만큼 유코는 친부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어. 결국 모토이에게 아이들의 친부가 모토이가 아닐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어. 모토이는 약간 당황하면서 상관없다고 했어. 그리고 산달이 되어 리키는 갑작스럽게 양수가 터져서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낳았단다. 한 명은 아들, 한 명은 딸, 이란성 쌍둥이였어.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유코는 다시 마음이 바뀌어 모토이와 함께 재결함하여 아이를 키우겠다고 했어. 그래서 리키에게는 두 달만 아이를 봐주면 된다고 했어.

날마다 유코와 모토이는 리키를 찾아와 아이들을 보았어. 두 달이 지나고… 리키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했단다.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자기 아이들이라는 마음이 크게 생기고 모성 본능이 강하게 자라나게 된 거야.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예상되던 결과였단다. 하지만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가는 것은 유코와 모토이 부부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았어. 유코와 모토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서로 쌍둥이도 기대하지 않았기에, 한 명은 리키 자신이 키워도 된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리키는 아들 구리는 남겨 두고 딸 구라만 데리고 길을 떠났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리키의 마지막 선택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최선이었을까? 리키가 아이들을 두 달 동안 키우면서 고민했겠지만 앞으로 험난한 삶을 딸과 둘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제목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비는 철새로 봄이 되면 돌아오는 새인데,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떠나기 전의 장소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의미일까? 돈이라면 아기까지 대신 낳아주는 이런 사회에서는 다시 돌아와 살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을까? 아빠 혼자 짐작해 보았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억지 설정과 공감 가지 않는 몇몇 상황을 제외한다면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할 수 있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작은 냄비 안에서 하얀 달걀  하나가 달그락거린다.

책의 끝 문장: 리키의 달뜬 그 말이 전해진 것처럼 구라는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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