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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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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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때문에 책 읽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책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더구나. 텍스트힙이라고 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책 읽는 것을 하나의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로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대.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티겟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고 하는구나. 10여 년 전에는 어려움 없이 현장 티겟으로도 갈 수 있었는데 말이야.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점도 독서 인구를 늘리는데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구나. 두어 해 전부터 인지도를 쌓아가다가 작년에 <혼모노>로 인지도 폭발한 작가 성해나 님도 그런 작가들 중에 한 명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바로 그 성해나 작가님의 신작 <인비인>이라는 책을 이야기하려고 해. 책 띠에는 성해나 첫 기담집이라고 적혀 있더구나. 여름철이기도 하니 이런 오싹한 기담집도 나쁠 것 같지 않구나.(읽기는 여름철에 읽었는데, 아빠가 게을러서 이제야 너희들한테 이야기를 해주는구나.) <인비인>은 표제작인 <인비인>을 비롯하여 총 아홉 편이 실려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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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작품은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이야.

1944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히로타 마사히로는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하여 상품으로 벚나무 책상을 받았어. 그런데 어느 날 책상이 있는 방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거야. 원인을 찾으려 책상 아래를 보니, 고양이가 쥐 머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지. 깜짝 놀라 치우려는데 그 밑에서 쥐 머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단다. 그 기괴한 광경을 목격한 마사히로는 졸도했다가 깨어났어. 왜 그곳에 쥐 머리 무더기가 숨겨져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 마사히로의 아버지인 히로타 쇼지가 책상 밑바닥을 살펴보니, ‘칼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밖에서 묻은 녹이 아니라 제 몸에서 생긴 녹이다’라는 기분 나쁜 글귀가 새겨져 있었어. 쇼지는 찝찝한 마음에 대패로 그 글자를 아예 밀어 버렸단다.

시간이 흘러 1980년이 되었어. 김황보는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일반 입시를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됐어. 당시에는 나라에서 과외를 불법으로 규정해 사교육을 할 수 없었지만, 김황보는 몰래 비밀 과외를 받았지. 황보의 할아버지 김정식은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어서, 법을 어기고 과외를 해도 누구 하나 가로막을 사람이 없었거든. 나라에서 과외를 전면 금지했어도, 돈과 권력이 있는 특권층은 그렇게 법망을 피해 몰래 과외를 해왔던 거야. 김황보는 대물림된 그 벚나무 책상에서 공부했는데, 책상에서 풍기는 묘한 벚나무 향 때문에 늘 잠이 쏟아지는 것 같았어. 사실 공부하기 싫은 마음을 책상 탓으로 돌린 것이 아닐까 싶어. 답답했던 황보의 부모는 무당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고, 무당의 말대로 고양이 뼛가루를 먹이면 정신을 차린다는 말에 그 역겨운 가루를 아들에게 먹이기까지 했단다. 1981년, 우리나라 여권법이 개정되면서 비로소 일반인도 유학을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어. 국내 대학에 갈 성적이 되지 않던 김황보는 부모의 막강한 자금력 덕분에 결국 미국 사립대로 유학을 떠나게 된단다.

다시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 벚나무 책상은 김황보의 아들이자 서술자인 ‘나’에게까지 흘러왔어. 그러던 어느 날,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메일 한 통이 날아와. 증조부 김정식과 조부 김아홍이 친일파라며, 그 후손들에게 보내는 설문조사 메일이었지. 알고 보니 1944년의 ‘히로타 쇼지’가 증조부 김정식이었고, 작문 대회의 주인공 ‘히로타 마사히로’가 바로 할아버지 김아홍이었던 거야. 벚나무 책상은 친일로 쌓아 올린 부와 권력을 상징하며 대를 이어 후손에게 대물림되고 있었던 거지. ‘나’는 밤새도록 답변을 어떻게 쓸지 고민했지만, 결국 메일을 스팸 처리하고 잊어버리기로 해. 역시 친일파의 후손은 다르지 않구나. 벚나무 책상을 매개로 가문에 끔찍한 저주가 내릴 듯 말 듯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다가, 결국 현실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소설은 끝이 난단다. 참 기이하고 서늘한 이야기이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지 못한 채 안락하게 살아가는 친일파 후손들이 소설 속에서나마 시원하게 벌을 받으며 마무리되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씁쓸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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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인비인〉이야.

한자로 ‘인비인(人非人)’이라 적혀 있더구나.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일까? 소설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주인공이 어떤 노인에게 의문의 서류 뭉치를 전해 받으며 시작돼. 나중에 그 서류를 열어보니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지. 1943년, 생화학을 공부하던 열아홉 살의 조선인 청년 ‘히라누마 가즈오’가 있었어. 그의 지도교수인 요시무라 교수는 가즈오에게 함께 하얼빈으로 가자고 제안한단다. 음… 1943년의 하얼빈이라니, 짐작했겠지만 일본군의 잔인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를 소재로 한 이야기야.

결국 두 사람은 731부대의 반인륜적인 생체실험에 동참하게 돼.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가즈오는 추악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실험 대상이던 한 젊은 조선인 여성을 성폭행해 임신까지 시키고 만단다. 이미 온갖 약물 실험으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여자는 얼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고 팔다리도 없는, 기괴한 모습의 아이를 낳고 끝내 숨을 거두었어. 요시무라 교수는 호기심에 그 아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놀라울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랐다고 해. 훗날 가즈오와 마주친 생체실험의 결과물은 가즈오를 향해 “오야지”라고 부르짖어. 일본어로 ‘아버지’라는 뜻이지. 가즈오는 피붙이이자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증거인 그 존재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산 채로 땅에 묻어 죽여 버린단다.

전쟁이 끝난 후 가즈오는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평생을 남부러울 것 없는 의사로 살아가. 아무런 죗값도 받지 않은 채 상류층의 삶을 누리며 평생을 말이야. 그는 과연 단 한 번이라도 죄책감을 느꼈을까? 더 소름 끼치는 건, 가즈오의 스승인 요시무라 교수가 실제 731부대에 존재했던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야. 그는 전후 일본에서 처벌은커녕 훈장까지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하더구나. 인간의 탈을 쓰고 그토록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다니, 정말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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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작품은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이야. 이 소설의 서술자인 ‘나’는 영상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란다. ‘나’의 할아버지는 가문의 뼈대와 문중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분이었어. 특히 할아버지는 자신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고조부께서 고종으로부터 직접 하사 받았다는 도검을 가문의 위대한 가보로 여기며 지극정성으로 애지중지하셨지. 옛날에 집에 큰불이 났을 때도, 온몸에 화상을 입어 가면서까지 불길 속에 뛰어들어 그 도검을 품에 안고 나오실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그 도검을 들고 〈TV 진품명품〉이라는 감정 프로그램에 출연하셨어.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지. 그 도검이 고종황제의 하사품이 아니라, 일제가 친일파들에게 공을 치하하며 하사한 ‘치욕의 상징’이라는 판정을 받은 거야. 평생의 자부심이 무너진 할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으시고는 한동안 술로 나날을 보내셨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엄연한 진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셨어. 오히려 문중의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방송국 앞으로 찾아가, 〈TV 진품명품〉이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며 프로그램을 폐지하라고 거세게 시위를 벌이셨지.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땡볕 아래서 다른 어르신들은 지쳐 그늘로 숨어버렸지만, 할아버지만은 홀로 꼿꼿하게 서서 분노의 시위를 멈추지 않으셨어.

그렇게 진실을 부정하며 괴로워하던 할아버지는 결국 아흔을 얼마 앞두고 약을 드신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어. 목숨보다 아끼던 가문과 가보가 하루아침에 친일파의 추악한 흉물로 밝혀졌을 때, 할아버지가 느꼈을 배신감과 절망감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들 만큼 컸을 거야. 차마 스스로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낙인을 인정할 수 없어서 그토록 처절하게 외면하고 싶으셨겠지. 할아버지의 그 무너진 심정도 어쩐지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더구나. 진실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파괴하기보다는, 그 도검을 과감히 폐기하면서 조상들의 죄를 대신 사죄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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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작품은 〈매일(買日)〉이야. 제목인 ‘매일’의 한자를 들여다보니, 우리가 흔히 쓰는 ‘매일(Everyday)’이 아니라 ‘날을 산다’는 뜻의 ‘매일(Buy day)’이더구나.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는 재무설계사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어. 그녀의 남편은 5년째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늘 똑같은 패턴으로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단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숨막힐 수도 있겠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부족함이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하리만큼 단조롭고 무료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취미인 미술품 수집에 어울릴 만한 선물을 고르려고 인터넷을 뒤지던 그녀는 특이한 문구가 적힌 배너 광고 하나를 클릭하게 돼. 그 광고를 통해 접속한 곳은 놀랍게도 타인의 삶을 통째로 매수하고 매도하는 기이한 경매 사이트였어.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경매를 신청하고 직접 참석하기에 이르지.

경매장에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어. 그곳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인생’이었는데, 신기하게도 평범하고 굴곡 없는 사람의 삶일수록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낙찰되곤 했단다. 그러다 두 번째 경매로 ‘김수현’이라는 남자의 인생이 소개되었어. 그는 무직에 무취미, 거기다 통장 잔고마저 없는 ‘3무(無)’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지. 이 조건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낙찰가도 그리 높지 않았어. 하지만 늘 무료한 일상에 지쳐 있던 주인공은 충동적으로 1억 원이라는 거금을 불러 그의 삶을 낙찰 받고 만단다. 그렇게 전혀 다른 새로운 삶에 대한 기묘한 기대감을 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이 나. 글쎄, 아빠처럼 내향 성향(I)이 가득한 MBTI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안락하고 평온한 현실을 버리고 정체불명의 불안정한 삶을 돈 주고 사는 주인공의 선택이 참 공감하기 어려운 결말이 아닐까 싶구나.

…

다섯 번째 작품은 〈프랭크 오자와〉야. 방금 이야기한 네 번째 작품 〈매일〉의 세계관과 이어지는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더구나. 이번 소설의 서술자인 ‘나’는 경매를 통해 ‘프랭크 오자와’라는 남자의 삶을 단돈 100달러라는 아주 싼 가격에 낙찰 받게 돼. 프랭크는 서른다섯 살의 미혼 남성으로, 전업투자자였지. 경매 계약에 따라 낙찰과 동시에 프랭크의 집과 남은 재산은 모두 ‘나’의 소유가 되었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프랭크의 집에 들어간 ‘나’.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알았는지 ‘나’의 오랜 친구들이 그 집으로 찾아오는 거야. 이상한 건 그 다음부터였어. 친구들은 ‘나’를 보며 당연하다는 듯이 “프랭크 오자와!”라고 부르기 시작했거든. 그러고는 ‘나’와 함께 보냈던 옛 기억들을 늘어놓는데, 그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웠단다. 타인의 삶을 샀을 뿐인데 주변의 모든 현실과 인간관계까지 통째로 뒤바뀌어 버린 이 이야기는, 예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단다.

…

여섯 번째 작품은 〈윤회(당한) 자들〉이란다. 이 소설의 서술자인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현재는 변호인으로 일하고 있어. 어느 날, 지인 Q로부터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소재가 있다며 전생과 윤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수상한 모임을 소개받게 된단다. 재기를 꿈꾸던 ‘나’는 취재를 위해 그 모임에 잠입해 보았어. 그곳은 회원들이 저마다 자신의 전생을 하나씩 설정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기묘한 곳이었지. ‘나’는 모임에 녹아 들기 위해 과거 중국의 경극 배우였다는 거짓 전생을 지어내어 늘어놓았단다. 모임 내부에서는 보안상 촬영을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에, ‘나’는 안경에 소형 카메라가 숨겨진 ‘안경캠’까지 동원해 몰래 촬영을 시도했어. 하지만 몰래 찍은 탓에 화질은 엉망진창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정기 모임이 아닌데도 갑작스러운 연락이 와서 나가 보았더니 뜬금없이 운동장에서 오래 달리기를 시키는 거야. 회원들 중에는 ‘레게 머리’라고 불리는 심장병을 앓는 남자가 있었는데, 모임의 리더는 그의 한계를 시험하듯 계속 달리도록 강요했어. 결국 그 남자는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만단다. 더 기괴한 것은,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회원들은 슬퍼하기는커녕 “그가 드디어 62번째 윤회를 완수했다”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는 점이야.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음 63번째 윤회자가 될 사람을 추첨했는데, ‘샤오밍’이라는 회원이 당첨되었지. 이것은 종교의 탈을 쓴 명백한 살인 사건이라고 확신한 ‘나’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어. 하지만 물증이 없다면서 경찰은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단다. 결국 ‘나’는 지인 Q와 함께 속는 척 모임에 깊숙이 가담하여, 그들의 실체를 완전히 폭로하겠다고 결심해. 하지만 반전은 그 다음부터야. 폭로를 위해 그들이 준비하는 기이한 ‘윤회 의식’에 직접 참여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교리와 의식을 진심으로 믿기 시작한단다. 자신이 지어냈던 경극 배우의 삶을 진짜 전생이라 확신하며, 그 모임의 진정한 회원이 되어버린 거지. 흔히들 “저런 황당한 사이비 종교에 왜 빠질까?” 하고 의아해하곤 하잖아.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결핍과 불안을 겪는 인간이 어떻게 서서히 세뇌 당하고 이성을 잃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

….

나머지 세 작품 <아미고>, <#유령>, <고(蠱)>는 나중에 너희들이 직접 읽어보는 것으로..^^

이번 <인비인>이라는 책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기담집이라고 하면서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데,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 같은 분위기가 났단다. 아빠가 이 전에 읽은 성해나 님의 작품은 단편 소설 <스무드>가 하나였단다. 그것은 서울 한복판에서 실제 볼 수 있는 장면을 그린 소설이라 <인비인>에 실린 소설들과 결이 다른 소설이었어.  지은이 성해나 님의  다른 소설들도 좀더 읽어봐야겠구나. 여름철이 읽는 기담도 나쁘지 않더구나. 오랜만에 그런 기담책들이 더 있는지 알아봐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러니까 책상이 내게 들어오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책의 끝 문장: 욕망이 빚은 가장 큰 저주란 그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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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0)

“물론 없겠죠. 그리고 그분이 일 년 열두 달 집을 비운다 해도 당신이나 그분이나 가급적 편지를 주고받지 않겠지요. 그러니 용건이 생길 거란 생각이 들겠어요? 남자 형제들은 참 이상해요! 세상에 없는 시급한 경우만 아니면 편지를 절대 쓰려 하지 않으니까요. 말 한 마리가 병이 났다거나 친척 한 분이 사망했다든가 하는 말을 전하려고 어쩔 수 없이 펜을 들 때도 최대한 말을 줄이고요. 남자들 문제는 하나뿐이에요. 저도 그 문체를 잘 알죠. 헨리 오빠만 해도, 다른 면에서는 언제나 아주 모범적인 오라버니로 저를 아끼고 속을 털어놓고 상의도 해 오고,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여태껏 편지지 앞면을 넘긴 적이 없답니다. 대개는 고작해야 ‘사랑하는 메리, 방금 도착했다. 배스는 만원이고 모두 여전하다. 그럼 안녕.’하는 수준이라고요. 이게 진짜 남성적인 문체고, 완벽한 오라비의 편지인 거죠.”


(137-138)

“이 나라 전체의 미덕과 악덕의 비율에 대해서는 대도시가 표본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 최고의 도덕성을 대도시에서 찾지는 않잖아요. 종파를 막론하고 덕망 있는 인물들의 선행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대도시가 아니지요. 목사의 영향력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곳 또한 결코 대도시가 아니고요. 사람들은 훌륭한 설교자를 따르고 칭송하지요. 그렇지만 좋은 성직자가 교구와 이웃에 유용한 존재인 것은 훌륭한 설교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이 성직자의 개인적 인품을 알 수 있고 평소 품행을 지켜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교구이야기지만요. 런던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죠. 교구만이 너무 많아 성직자는 눈에 띄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니 사람들은 대개 성직자를 오로지 설교자로만 알게 되지요. 그리고 성직자가 일반 예의범절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지만, 부디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성직자가 훌륭한 교육을 주관하거나 세련된 예의를 단속하거나 세속적 예법에 통달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예의범절은 어쩌면 행신(行身)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올바른 원칙, 종교적 가르침을 준수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바른 행실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성직자는 바로 이런 가르침을 전하고 권장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성직자가 본분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 따라 일반 사람들이 달라지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509)

잠시 애써 마음을 추스른 후 패니가 말했다. “난 여자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일 줄 알았는데요. 아무리 인기가 많은 남자라도 여자 쪽에서 마다하거나 적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고요.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남자라도 어쩌다 마음만 주면 상대편에서는 무조건 좋다고 할 거라는 생각은 곤란하다고 봐요. 그렇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또 누구분들 생각대로 크로퍼드 씨가 모든 조건을 갖춘 분이라고 해도, 내 마음이 어떻게 그분의 마음과 같을 수 있었겠어요? 내 입장에서는 정말 뜻밖이었거든요. 이제껏 나를 대하는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사실 그분이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도 분명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할 텐데, 그런 이유만으로 억지로 관심을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 처지에 크로퍼드 씨한테 기대를 품는다면 지극히 오만한 생각 아닌가요? 그분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누이분들부터 그렇다고 볼 거예요. 그분은 별 생각이 없는데 그런다고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사랑 고백을 받는 즉시 사랑에 빠질 수 있겠어요? 그분이 원하기만 하면 사랑으로 만큼 내 입장도 헤아려 주어야지요. 그분의 가치를 높게 볼수록, 내가 그분을 마음에 두는 게 더욱 부적절해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리고…… 이번에 보니 여자의 속성에 대해 나하고는 생각이 아주 다른가 봐요.여자가 구애에 그렇게 금방 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요.”


(668-669)

이것만도 심각한 실책이었다. 그러나 점차 이것도 잘못되었지만 자신의 교육 방침에서 가장 끔찍한 과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방침 자체에 뭔가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실책의 부정적 영향도 많이 사라졌을 터였다. 그는 원칙이, 적극적인 원칙이 결여되었던 게 아닌가, 욕심과 감정을 유일한 방비책인 도리에 대한 의식으로 다스리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에게 이론적인 종교 교육은 시켰으나, 그것을 나날의 실천으로 옮기도록 요구하지는 않았다. 딸들에게 어릴 때부터 심어 준 빼어난 품위와 교양이라는 목표는 이런 면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도덕적 심성을 심어 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딸들을 착한 사람으로 키우려 했지만, 지력과 예의범절에만 신경을 썼지 성품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절제와 겸양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딸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사람들 중 누구도 가르침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679)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패니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 왔고, 그 관심은 연약하고 순진한 더없이 사랑스러운 매력에서 시작되어, 갈수록 훌륭하게 성장하는 모습에 탄복하면서 완성된 감정이었으니, 이런 마음의 변화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패니가 열 살 때부터 그는 언제나 그녀를 사랑하고 인도하고 보호해 주었고, 그의 보살핌은 그녀의 정신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녀가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친절한 배려 덕분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매우 각별하고 깊은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녀가 맨스필드의 어떤 식구보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기에 더욱 애착이 갔다. 그러니 이제 와서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있다면, 반짝이는 진한 눈동자보다 부드러운 연한 눈동자를 선호하게 되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늘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늘 그녀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그의 감정도 최근에 실연을 겪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적절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만큼, 그 부드러운 연한 눈동자가 우위를 점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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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ㅣ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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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박완서 님께서 돌아가신 지도 벌써 15년이 지났구나. 이젠 이전 시대의 작가가 되어 가시는 것 같구나. 아빠가 책을 즐겨 읽기 시작할 때는 박완서 님의 후반기 작품들이 출간하던 시기라서, 그 당시에 출간했던 장편 두어 편을 읽었고, 돌아가신 후에 예전 소설집과 에세이 등을 읽었는데, 쓰신 작품 수에 비해 아빠가 읽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단다. 헤아려 보니 다섯 권을 읽었더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엄마의 말뚝>은 세계사라는 출판사에서 박완서 소설전집으로 출간한 것 중에 한 권으로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과 단편들을 엮은 책이란다. 아빠가 알기로 박완서 님은 생계형 작가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가 쓴 소설들이 당시의 일상을 다룬 소설들이 많단다. 그래서 박완서 님의 소설을 보면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과 생활상과 사회문제를 알 수 있었단다. 잔잔하면서 따뜻한 소설을 일상의 언어로 재미있게 쓴 소설을 찾는다면 박완서 님의 소설을 추천하고 싶구나.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쓰인 소설들이라서 오늘날의 감각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나름대로 색달라서 좋았단다.

 

1.

먼저 <엄마의 말뚝>은 세 편으로 된 연작 소설이란다. 지은이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단다. 먼저 <엄마의 말뚝 1>의 이야기를 해볼게. 주인공 나는 1930년대 개성 근처 박적골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는 오빠 공부 때문에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나도 서울에서 학교를 보내려고 엄마는 박적골에 내려와서 나를 서울로 데리고 가려고 했어. 조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엄마는 나를 신여성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완강하게 주장하셔서 결국 나는 엄마를 따라 서울에 오게 되었어.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서울살이는 쉽지 않았어.

1930년대면 아직 일제 시대 아니니. 서울 현저동에 있는 달동네 초가집의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아서 늘 주인집 눈치를 봐야겠어. 엄마는 삯바느질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단칸방에 세 들어 살지만, 자존심만큼은 하늘을 찌르셨단다. 그리고 엄마의 교육관도 확실해서, 친구도 엄마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못 만나게 하고 외출 금지 당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단다.

주인공 ‘나’가 학교에 들어갈 즈음, 먼 친척집에 주소를 옮겨서 문 안에 있는 학교에 입학시킬 정도로 학구열이 높으셨어. 그렇게 성 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기는 했지만 그만큼 고된 등하굣길이었단다. 월세살이를 하다 보니 주인집 눈치를 보게 되는데 별 일 아닌 일에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도 있었어. 자존심 센 엄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사를 가기로 했는데 돈이 부족했어. 시골 조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서 집을 구했단다. 넉넉하지 않은 돈으로 집을 구하다 보니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했어. 지금 사는 곳도 비탈길을 따라 한참 올라와야 하는데,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집을 마련했단다.

이사하는 날 엄마는 드디어 서울에 말뚝을 박았다면서 좋아하셨어. 그곳에서 10년을 살았단다. 오빠는 든든한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지냈어.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서울살이도 녹록지 않았어. 잠시 시골로 피신해서 약 6개월을 살다가 해방을 맞이했단다. 오빠는 서울 문 안에 집을 마련하였고, 그 이후에는 여러 번 이사를 했지만, 엄마는 처음 서울집은 현저동 그 집을 못 잊지 못하셨단다.

….

<엄마의 말뚝 2>에서는 시간이 흘러 집 ‘나’는 결혼도 하고 오남매의 엄마가 되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었어. 그런데 ‘나’는 집을 비우면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 징크스가 있었어. 어느날 친구 집에서 놀고 온 날이 있었는데, 집에 오니 엄마가 빙판길에 넘어져서 다리 골절상을 입고 입원하셨다는 거야. 당시 ‘나’의 엄마는 오빠의 큰 아들이 모시고 있었어. 병원에 가니 의사는 엄마가 여든여섯 살의 고령이라서 깁스로 뼈가 붙기 어렵다면서 수술을 하자고 했어. 하지만 엄마는 반대를 하셨지만 결국 수술을 했단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라고 했어. 수술에서 깨어난 엄마는 헛소리를 하시고 헛것을 보는 증상이 생겼어. 엄마는 전쟁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가 있었어. 6.25 전쟁 때 오빠가 좌익 운동했다가 전향을 했는데, 북한이 다시 서울을 점령했을 때 이웃의 고발로 끌려가게 되었어. 다시 의용군을 지원해서 그냥 넘어가게 되었는데, 세 달 뒤에 이번에는 다시 국군이 서울을 점령하여 ‘나’의 집은 빨갱이 집으로 낙인이 찍혔어. 얼마 후 오빠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빨갱이 집이라서 시민증을 얻지 못했어. 그래서 피난을 갈 수 없어서 현저동 산동네에 있는 빈집에 숨어 지냈어. 그런데 인민군에 발각되었고, 오빠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어. 다 피난 간 산동네에서 오빠의 총상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결국 오빠는 그렇게 죽었던 거야. 엄마는 오빠의 시신을 화장해서 강화도에서 고향 개풍군 쪽 바다에 날려보냈단다. 그런 아픔이 있었던 거야. 자랑스러운 아들을 그렇게 보냈으니 얼마나 가슴 아팠겠니. 그 아픔을 가슴에 힘들게 간직하고 살아가시다가 큰 수술을 하고 깨어나니 무방비 상태의 마음에서 쏟아져 나왔던 것 같구나. 전쟁은 이렇듯 보통 사람들에게 더 큰 아픔을 준단다.

….

<엄마의 말뚝 3>에서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후의 이야기란다. 엄마는 골절상 수술을 한 후 7년 뒤에 돌아가셨어. 다치시기 전에는 해마다 강화도의 지인 집에 방문하여 고향을 바라보셨는데, 다치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가지 못하셨어. 엄마는 ‘나’와 장손자의 집에서 번갈아 가면서 머무셨어. 장손자도 참 착한 사람인가 보구나. 엄마는 외출도 안하고 집에서만 지냈어. 마치 살아가는 목적이 화장실 가는 것처럼 보였어.

7년 전에 다치셨을 때 엄마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단다. ‘나’는 이 엄마의 유언을 늘 마음 속에 두고 있었어.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이 일로 장손자와 의견 충돌이 있었어. 지금이야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화장이 일상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안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화장은 약간 불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단다. 결국 장조카의 의견대로 안장하기로 하고 묘지를 안칠 땅을 계약했어. 이 당시에도 장례문화는 이제 돈벌이로 전락되어서 절차 하나하나가 돈이었단다. 그렇게 <엄마의 말뚝> 연작소설은 마무리가 되었단다. 소설가의 엄마로 사신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단다. 딸이 엄마의 삶을 소설로 써주니 말이야. 엄마에게는 큰 선물이 아니었나 싶구나. 비록 그 삶이 고되고 힘든 삶이었지만 말이야.

 

2.

이 책에 실린 다른 단편 소설들 중에 세 편만 짧게 이야기해볼게.

<유실>. 주인공 김경태는 오십대 중반의 남자로 초로에 접어들기 시작한 노인으로 소개하고 있단다. 오늘날 오십대 중반이면 ‘초로’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당시에는 그렇게들 생각한 것 같구나. 김경태는 갓난아이 손주도 보았어. 5년 전 당뇨병과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 꾸준히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해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단다. 하지만 당뇨병과 함께 생긴 발기부전은 여전했단다.

어느날 책 외판원이 회사에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국민학교 동창이었단다. 그 동창은 힘들게 살아왔는지 자기보다 십 년은 늙어 보였어. 그 친구가 불쌍하기도 해서 책을 계약하고 술자리고 가졌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자리여서인지 필름까지 끊겼고 낯선 여관방에서 깨어났단다. 동네도 서울이 아닌 성남이었어. 어떻게 성남까지 왔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았어. 그리고 가지고 있던 삼백만 원의 어음과 아끼던 라이터가 모두 사라졌어. 여관방 주인한테 물어보니 어떤 젊은 여자와 함께 왔다가 여자가 방값을 계산했다고 했어. 김경태는 당황했어. 전혀 기억나질 않았거든.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 주머니를 보니 조미숙이라는 여자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어. 그 주소를 찾아가니 조미숙은 몸을 파는 여자였는데, 자신과 몇 번의 밤일을 했다는 거야. 김경태는 자신이 발기부전이라서 밤일을 한  것이 먼 과거인데, 밤일을 했다고?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어. 조미숙이 이야기하기를 삼백만 원 어음도 직접 주었다고 했어. 김경태는 이런 일들이 전혀 기억이 나질 않으니 자기 안의 또다른 자아가 깨어나 자기 모르게 벌인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구나. 그런데 박완서 님께서 이런 통속 소설도 쓰셨구나.

….

<꿈꾸는 인큐베이터>. 주인공 ‘나’는 중소기업 사장을 남편을 둔 넉넉한 집안의 아내이자, 딸 둘, 아들 하나의 엄마인데, 아이들은 다 컸단다. 이웃에 여동생이 사는데 여동생은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여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 슬기의 보호자 역할을 가끔 해주었어. 유치원 재롱잔치가 있어서 대신 가서 비디오 촬영을 해주기로 했단다. 그런데 오랜만에 비디오 촬영을 하다 보니 동작법이 생각이 나질 않았어. 이것저것 만져봐도 잘 되지 않았어.

그때 어떤 남자가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그 남자는 촬영까지 해주었어. 재롱 잔치가 끝나고 그 남자와 차 한 잔 같이 하게 되었어. 그 남자는 딸이 그 유치원에 다닌다면서 맞벌이 부부라서 아내 대신 자신이 참석했다고 했어. 그 남자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어. 그 남자는 딸만 둘이라고 했어. ‘나’는 아들을 낳고 싶지 않냐면서 아들선호사상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어. 당시 시대상이 아들선호사상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아들선호사상에 대해 열변할 정도로 당시에는 아들선호사상이 강했던 것인가?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주인공 ‘나’는 무척 무례한 행동이었단다. 아무튼 그 남자는 아들 없어도 괜찮다고 했어. 차를 마시고 헤어지는데 ‘나’는 왠지 아쉬웠어. 남자의 딸도 비디오에 담겨 있을 테니, 복사해서 주겠다면서 명함을 한 장 받았단다. 평범한 주부의 일탈이 그려지나 싶었단다.

소설 속 주인공 ‘나’도 설레는 것 같았어. 비디오 촬영한 것은 동생에서 전해주었는데 그날 밤에 연락이 왔어. 비디오 찍는 실력이 엄청 늘었다면서 같이 보자고 했어. ‘나’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어. 동생과 같이 비디오를 보는데 자꾸 남자 생각이 났어. 동생한테 비디오 복사본 하나를 받아서 며칠 뒤 다시 그 남자를 만났어. 설레는 만큼 단정하게 꾸미고 나갔어. 남자는 밤샘 작업을 하고 와서 꾀죄죄했단다. ‘나’는 실망했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또다시 아들선호사상에 대해 열변을 토했어. 지난번보다 강도가 세게 이야기했어. 그러자 남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어. 의사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대. 의사들이 딸을 임신하면 낙태시켰는데 이로 인해 남녀 성비율 균형이 깨지고 있다면서 이것은 남편들도 다 공범이라고 이야기했어.

‘나’는 뜨끔했어. 자신도 아들을 낳기 전에 딸 하나를 낙태한 경험이 있었거든. 당시가 기억나면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낙태를 당연하게 이야기해서 그 이후로 그들을 미워하게 되었던 ‘나’가 아들선호사상을 이야기하더니… 남자와 헤어지고 ‘나’는 혼자 교외로 드라이브를 했어. 하지만 여전히 남자가 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가득 찼어. 자신의 식구들은 모두 아들선호사상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깨닫는 바가 생긴 것 같았단다. 이 소설은 당시 아들선호사상을 꼬집는 소설인 듯 싶었단다.

…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이 소설도 여성의 낙태를 다루는 소설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꿈꾸는 인큐베이터>와는 좀더 다른 시각의 소설이란다. 주인공 ‘나’는 여자의과전문학교를 나오고 전쟁통에 부상병들을 치료했던 경험으로 병원을 차리기로 했어. 서울 외곽 양주 근처에 산부인과 병원을 차렸단다. ‘나’가 그곳에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한 이유는 근처에 미군부대의 기지촌이 있었어 소파 수술을 하려는 고객이 많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소파 수술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찾아 보니 자궁의 조직 내벽의 병변이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는 중절 수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개업 첫날, 첫손님은 자신의 뜻과 다르게 분만 때문에 온 사람이었어. 병원이 있는 건물의 주인 황영감이 자신의 딸을 데리고 왔어. 다른 곳에서 지내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만삭의 몸으로 집에 돌아온 거야. 딸이 미혼모였기 때문에 몰래 분만을 해달라고 했어. 그리고는 황영감은 딸은 다시 다른 동네로 쫓아내고 그 아기는 업동이라고 하고 자신이 양아들로 키우는 것으로 할 테니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어. 그 첫손님을 제외하고는 이후 30년 동안 분만은 한 번도 없었어. ‘나’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소파 전문 병원으로 큰 돈을 벌었어.

얼마 안 있으면 건물도 허문다고 해서 ‘나’는 은퇴하고 지금까지 번 돈으로 즐기면서 살기로 했단다. 이제 삼 일이 남았어. 그런데 갑자기 첫손님을 제외하고 한번도 분만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분만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하지만 마지막 날이 되어도 분만 손님은 없었어. 그런데 마지막 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한 소녀가 임신한 줄도 모르고 왔는데 진찰해 보니 7~8개월이 되었어. 소녀는 아이를 떼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어. ‘나’는 소녀의 간절한 부탁으로 일단 수술하고 수술도 잘 되었어.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살아있는 거야. ‘나’는 그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열망 같은 것이 생겼어. ‘나’는 아이를 포대기를 감싸서 큰 병원으로 정신 없이 달려갔단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안타깝게도 아이는 그만 죽고 말았단다.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데려와서 자신의 새집 마당에 묻어주었어. 사실 ‘나’는 아픈 기억이 있었어. 젊었을 때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 수술의 경험이 있었던 거야. 그런 기억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 것은 아니었나 싶구나. 그리고 마지막 그 아이를 살리려고 했던 것은 지난 30년간 아이를 지운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보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오늘날을 배경으로 이런 소설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인데, 지은이 박완서 님은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 세태를 비판하신 것 같구나.

…

그 외에 <꿈을 찍는 사진사>와 <창밖은 봄>, <우리들의 부자>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할게. 세계사에 출간한 <박완서 소설전집> 시리즈가 총 22권이더구나. 읽을만한 책들이 없으면 이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으면 좋겠지만, 밀려 있는 읽을 책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장담하지는 못하겠구나. 기회 될 때마다 하나하나 읽어보도록 하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농바위 고개만 넘으면 송도라고 했다.

책의 끝 문장: 우리 집엔 남아도는 빈방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가 세운 신여성이란 것의 기준이 되었던 너무 뒤떨어진 외양과 터무니없이 높은 이상과의 갈등, 점잖은 근거와 속된 허영과의 모순, 영원한 문밖 의식, 그건 아직도 나의 의식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 - P81

나는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신여성’이란 말을 마치 복원한 성벽처럼 옛것도 아닌 것이, 새것도 못 되는 우스꽝스럽고도 무의미한 억지라고 느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것을 복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나간 세월 역시 부정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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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악취가 나는 곳은 배수로가 아니에요.” 여자가 말했다. “세월이에요. 말하자면 부패한 세월이죠. 부패하고 타락하고 황폐해진 세월!”


(29)

“형편없는 시기에서는 말똥 맛이 나. 좋은 시가에서는 담배 맛이 나고, 아주 좋은 시가에서는 세상맛이 나지!”


(102)

수면 시간은 짧아졌고 자는 내내 뒤숭숭한 꿈이 끊이질 않았다. 이따금 프로이트 교수의 조언에 따라 잠에서 깨는 즉시 꿈 내용을 기록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진 자신의 정신 상태를 다스려보려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소용이 없었다. 전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아네스카가 그의 가슴에서 심장을 꺼내 들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의 가슴에서 여전히 두방망이질하는 건 이미 그녀의 소유가 되어버린 심장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그 심장은 이제 그녀의 활짝 벌린 손에 들려 있었고, 그녀의 앞치마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고, 그녀가 누운 침대 틀의 버팀목 사이에 눌려 있었고, 그녀 잎에서 뜨겁게 고동치며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122-123)

사랑하는 프란츨,

네가 말한 그 ‘이유’가 뭔지 잘 알 것 같아. 그래도 한 가지만 말하마. 오늘의 이유는 내일이면 벌써 어제의 이유가 되고, 늦어도 내일모레가 되면 잊어버린단다. 네가 여기 와서 불쑥 부엌 창문 앞에 서 있었다면 난 아마 너무 기뻐서 심장 마비로 죽었을지도 몰라. 그대로 네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나는 자랑스럽단다. 그렇지, 사람에겐 책임감이라는 게 있어야지! 무엇보다 자신의 양심을 지킬 줄 아는 책임감이. 그리고 어차피 집에는 일찍 오게 될 거야. 너를 꼭 껴안아주고 싶구나.

-       엄마가


(151)

“그 문제에 대해선 내가 도와줄 수 없을 것 같구나.” 프로이트가 말했다. “마음에 맞는 여자를 찾아내는 건 우리가 사는 문명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야. 그건 저마다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지. 우리는 혼자 세상에 태어나고 혼자 죽는단다. 하지만 처음으로 아름다운 여자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고독에 비하면, 태어나고 죽는 건 그야말로 일대 사회적 사건처럼 생각되지.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처음부터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야 해.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늘 자신에게 물어야 해. 바꿔 말하면, 네 머리를 수고롭게 하라는 뜻이야. 그래도 답을 얻지 못하면, 네 심장에 물어봐!”


(239-240)

프로이트는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길이 뭔가 낯익다고 생각되기는 하더구나. 하지만 길을 아는 것이 우리의 운명은 아니란다.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운명이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건 대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하기 위해서야. 말하자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가는 거지. 크게 운이 좋아야만 간혹 작은 빛이나마 타오르는 걸 볼 수 있어. 그리고 커다란 용기를 내거나 끈기를 보이거나 우직함이 있어야만, 가장 좋은 건 이 세 가지를 다 갖춰야만 스스로 여기저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거야!”


(254)

그게 참 뭔가 이상해요. 하루하루가 길어질수록 인생은 더 짧게 느껴지거든요. 모순이죠. 하지만 그게 원래 그래요. 내가 하나 물어볼게요. 인생을 연장하고 하루하루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무얼 할까요? 이야기를 해요. 이야기를 하고, 종알거리고, 수다 떨고, 남들 얘기를 해요. 그것도 거의 한시도 쉬지 않고. 이제야 드디어 조용한 곳에 왔구나. 하고 가끔 생각할 때가 있죠. 예를 들면 교회라든가, 그보다 더 조용한 공동묘지라든가 하는 곳에 갔을 때, 하지만 이게 웬걸! 벌써 누가 또 재잘재잘 수다를 떨기 시작해요! 아마 그건 천상이나 지하라고 해도 똑같을 거예요. 늘 누군가 입을 벌려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리면, 하루 종일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그냥 쓰레기통에 처박아도 되는 것들이에요! 너도나도 다 이야기를 하지만 뭔가를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뭔가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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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도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들, 관습 혹은 단순한 호감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커뮤니티, 실체도 없이 우리 삶의 테두리를 제한하고 경계짓는 국적이나 호적 같은 것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회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프린트된 명함이나 우리의 출생과 죽음, 결혼과 건강을 기록하는 관공서의 수많은 서류들도 개인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지갑 속의 기념사진, 일주일 단위로 약속과 일과를 적어내려간 수첩, 이국의 어느 공항 출입국심사대에서 경쾌한 소리와 함께 찍힌 여권 속의 스탬프들, 어딘가로 들어갈 수 있는 녹슨 열쇠나 읽고 있던 책의 접힌 페이지 같은 것들 역시 우리 삶의 부분적인 단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생애 전체를 관통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아침 7시면 눈이 떠지고 저녁 6시가 되면 온몸이 피로해지는, 시스템에 길들여진 몸의 리듬마저 변하지 않는 소속감을 약속해주지 않는다.

(48-49)


로는 의심스러웠다. 영양실조로 성장이 멈춘 아이들. 병자처럼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던 청년들, 삶의 이유이기도 했던 공장의 기계를 분해하여 중국의 값싼 곡물과 물물교환을 해야 했던 젊은 노동자들, 농장 창고에 몰래 숨어들어가 곡식을 훔쳐먹다가 체포되던 그 순간에도 악착같이 손을 뻗어 한움큼이라도 더 먹으려 했던 사람, 그런 사람들, 하루 걸러 들려오던 부음, 상비약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병원, 냉난방시설은커녕 전깃불조차 수시로 꺼지던 했던 관공서들, 더 이상 교과서와 학용품을 대주지 못했던 학교…… 그건, 그 사람들은 허구였던가. 이토록 풍요로운 세계 저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기근에 허덕이는 거대한 공동체가 분명 하나의 국가로 존재한다는 것이 로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그 세계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머나먼 연회장을 초대장도 없이 찾아온 이상한 방문객이 된 것처럼, 고향을 떠올린 그 순간 로는 스스로가 이유없이 부끄러웠다.


(91)

로는 자신의 조국이 가난하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곳이 지옥이라고는 단 한번도 여기지 않았다. 대체 지옥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로는 궁금했다. 가난이 지옥이라면 자본주의에도 지옥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자본주의 국가는 일부만이 그 지옥을 경험하지만, 자신의 조국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절박한 지옥들, 너무도 조직적으로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뿐, 그뿐이라고 로는  생각했다. 국가가 부강하여 뭐든 줄 것이 있었다면 기꺼이 베풀었을 거라는 믿음이 로에겐 있었다. 로는 나눌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던 자신의 조국을 생지옥으로 규정하는, 줄 것이 있음에도 줘야 하는 순간에는 망설이고 도망가는 자들이 경멸스러웠다.


(93)

어머니와 함께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 것도, 중국에서 공안의 눈을 피해 골방에만 갇혀 있다시피 살았던 것이나 어머니를 잃고 그 돈으로 이름도 몰랐던 벨기에라는 나라에 오게 된 것 역시, 그 모든 것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그 기다림의 시간 때문일 거라는 차가운 분노. 살기 위하여 살아왔을 뿐인데 고향을 떠나온 순간부터 쫓기고 숨어야 하는 범법자가 되어야 했고 때로는 한 인간으로서 지키고 싶었던 것까지 송두리째 잃어야 했던 그 불가해한 시간들을 오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다림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모이고 모여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이어질 때까지 체제 안의 사람들도, 바깥의 구경꾼들도 똑같이 침묵했단. 이제 더 이상 그리운 마음 하나만으로 고향을 추억하는 달콤한 시간은 자기 삶에 없을 것임으로 로는 깨달았다.


(208)

“나는 늙었어요. 김작가. 늙었다는 말의 의미를 아오? 감정이 다 사치가 된다는 뜻이에요. 남은 시간이 빤하니 저절로 그리 되어가는 거요. 관용이라면 관용이고 체념이라면 체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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