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루인 수사의 고백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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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어느덧 15권이란다. 끝을 향해 갈수록 어떻게 시리즈가 마무리가 될지 궁금하면서도 벌써부터 아쉬움이 쌓이고 있구나. 15권의 제목은 <할루인 수사의 고백>이야.

지난 14권의 이야기는 1142년 10월에 시작했는데, 이번 15권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얼마 뒤인 1142년 말에 시작한단다. 주인공 캐드펠 수사가 기거하는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이 있는 슈롭셔 지역에 아주 큰눈이 내렸어. 그 큰눈으로 5년째 이어지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의 내전도 잠시 소강 상태였어. 그런데 옥스포드에 갇혀 있던 모드 황후가 아무도 모르게 탈출에 성공했어. 전에 스티븐 왕도 포로로 잡혀 있다가 탈출한 이력이 있는데, 모드 황후도 탈출을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제대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구나. 모드 황후의 탈출은 너무 황당한 일이라서, 스티븐 왕이 일부러 놓아주었다는 소문도 있었어. 자, 그럼 본격적으로 15권 <할루인 수사의 고백>의 이야기를 해볼게.

 

1.

이번 폭설로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도 피해를 입었어. 폭설로 인해 지붕에 망가진 곳이 있어서 콘라딘 수사를 중심으로 보수 작업을 했고, 유리언 수사와 할루인 수사도 이 작업에 동참했어. 이번 시리즈의 제목에 등장하는 그 할루인 수사란다. 할루인 수사는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학식도 있고, 재신도 많았으나, 수사가 되기로 하고 수도원에 들어온 사람이야. 그 이후 18년 동안 수사로 생활했단다. 안젤름 수사 밑에서 사본 채식사 일을 했는데, 이번 폭설 때 지붕 보수 공사를 도와주게 된 거야. 그런데 할루인 수사가 지붕 보수 공사를 하다가 그만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어. 온몸에 골절상을 입고, 출혈도 심했어. 캐드펠 수사가 진료소에서 응급조치 등 치료를 했지만 살아나기 어려워 보였어. 의식도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지. 다행히 새벽에 의식이 돌아왔는데 할루인 수사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으니 그 전에 고해를 하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라둘푸스 수도원장이 와서 캐드펠과 함께 그의 고해성사를 들어주었단다.

할루인 수사는 수사가 되기 전에 버트레이드라는 여자를 사랑했다고 했어. 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해서 헤어지게 되었는데 마지막 밤을 함께 하고 난 후 할루인 수사는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했어. 그런데 얼마 후 버트레이드가 찾아와 임신을 했다고 했고, 둘은 고민 끝에 아이를 지우기로 하고 할루인 수사가 아이를 떼는 약초를 주었는데, 얼마 후 버트레이드와 뱃속 아기 모두 열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대. 그것이 모두 자신이 준 약초 때문이라면서 자신이 큰 죄를 지어 고해성사를 한 거야. 그것이 18년 전의 일이었다고 했어.

고해성사를 마친 할루인 수사는 다시 의식을 잃었어. 그 이후 일주일 넘게 의식이 없었는데, 캐프펠의 뛰어난 치료 때문인지 할루인 수사는 의식을 되찾았어. 그 이후에는 빠르게 회복을 했단다. 할루인 수사는 자신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고행의 길을 떠나겠다고 했어. 버트레이드의 묘지를 찾아가 기도를 해서 용서를 빌겠다고 했어. 몸이 회복이 되긴 했지만 워낙 중상을 입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만류했고, 할루인 수사는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고 했어. 라둘푸스 수도원장도 만류했지만, 할루인 수사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캐드펠 수사가 동행하는 조건으로 허락을 했단다. 할루인 수사는 버트레이드가 살던 헤일스 영지로 먼 길을 목발을 짚고 떠났단다. 헤일스 영지의 영주는 원래 버트런드 드 클리어리라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주고 아들이 승계 받았으며, 버트런드 드 클리어리의 부인인 애들레이즈는 아직 살아있었어.

...

수도원을 떠난 지 3일 째 헤일스에 도착한 할루인 수사는 애들레이즈 드 클리어리 부인을 만나 자신의 지난 죄를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했어. 부인은 오랜 전의 일이라면서 할루인 수시를 곧바로 용서했어. 할루인 수사는 버트레이드의 묘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교회에 갔으나 그곳에는 버트레이드의 묘지가 없었어. 교회에서 만난 수사가 이야기하길, 클리어리 집안의 납골당은 다른 곳에서 있다고 했어. 그런데 그곳이 먼 지역으로 지금까지 온 거리의 1.5배는 더 가야 했어. 캐드펠은 할루인 의 건강을 생각해서 수도원으로 돌아가자고 했으나 할루인은 완강했어. 결국 할루인 수사와 캐드펠 수사는 클리어리 집안의 납골당이 있는 엘퍼드로 다시 길을 떠났단다. 그런데 애들레이즈가 급히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카드펠은 우연히 보게 되었단다.

며칠을 걸어 납골당이 있는 엘퍼드에 도착했어. 엘퍼드는 애들레이즈의 아들 오데마가 군주로 있는 곳이었어. 그런데 그곳에 애들레이즈가 와 있었어. 애들레이즈는 할루인 수사를 보자 나무랐어. 오래 전의 아문 상처를 왜 다시 들쑤셔서 덧나게 하느냐면서 말이야. 자신도 그 상처가 다시 덧나 아파서 묘지에 왔다고 했어. 할루인 수사는 애들레이즈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버트레이드의 묘지에서 하룻밤만 밤샘기도를 하게 허락해 달라고 했단다. 소설의 전개를 보니, 버트레이트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이 강하게 의심되는구나. 버트레이드뿐만 아니라 뱃속 아기도 태어났을 것 같은 강한 의심이 들었어.

 

2.

할루인 수사는 사죄를 하면서 버트레이드 묘지에서 밤샘 기도를 했어. 아침에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캐드펠과 로셀린이라는 젊은이가 와서 도와주었어. 로셀린은 애들레이즈의 아들 오데마의 시동이었어. 로셀린이 혹시 할루인의 아들? 로셀린은 할루인과 캐드펠에게 수도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등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였어. 로셀린은 자신의 아버지는 클리어리 집안의 가신이라고 했어. 할루인 수사는 기도를 마치고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단다. 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폭설을 만났고, 캐드펠이 간신히 머물 집을 찾아서 몸을 피할 수 있었어.

그곳의 영주는 센러드 비버스라는 사람인데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센러드의 여동생 헬리센드가 캐드펠 눈에 무척 익숙한 얼굴이었어. 음… 로셀린이 아닌 헬리센드가 할루인의 딸인가? 할루인과 캐드펠이 수사인 것을 알고는 센러드는 혼인을 성사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했어. 센러드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말년에 30살이나 어린 여자와 재혼을 해서 헨리센드를 낳았다고 했어. 자신의 아들과 나이가 비슷해서 어려서부터 둘이 잘 어울렸다고 했어. 그런데 크고 나서 둘은 서로 이상한 감정을 갖게 되었어. 족보 상으로는 고모와 조카 사이잖니… 있으면 안 되는 감정이었어. 그래서 센러드는 아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헬리센드는 다른 남자랑 결혼시키기로 했단다. 하지만 센러드는 결코 강제결혼은 아니고 헬리센드도 원하는 것이라고 했어.

센러드가 이야기한 그 아들은 할루인과 캐드펠이 오데마의 집에서 만났던 로셀린이란다. 헬리센드의 엄마는 남편, 그러니까 센리드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수녀원에 들어갔다고 했어. 음... 할루인과 로셀린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헬리센드는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 의심이 들더구나. 이 이야기를 들은 할루인 수사는 센러드의 부탁대로 결혼을 성사해 주기로 했어. 캐드펠은 헬리센드와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그 결혼은 가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한 것처럼 보였어.

그날 밤. 헬리센드의 신랑 장 드 페로네가 센러드의 집에 도착했어. 그런데 센러드 집안의 하녀이자 유모 에지타가 없어졌단다. 다른 하녀에게 물어보니, 말을 타고 집을 나가면서 저녁 전에는 돌아온다고 했대. 하지만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어. 센러드는 에지타가 로셀린을 만나러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헬리센드의 결혼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야. 센러드의 집안 사람들과 캐드펠은 에지타를 찾아 나섰는데, 안타깝게도 단검에 질려 죽은 에지타의 시신을 발견했단다. 캐드펠은 시신에 쌓인 눈의 상태를 보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한 것 같다고 했어. 센러드의 집에는 난리가 났구나. 결혼을 앞두고 집의 유모가 살해당했으니 말이야.

얼마 후 엘퍼드에서 로셀린이 다급하게 와서 아버지에게 화를 냈단다. 자기 몰래 헬리센드를 결혼시키려고 했다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결혼 소식은 에지타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라고 했어. 에지타를 만난 적이 없고, 에지타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심부름꾼을 로셀린에게 보냈는데, 그 심부름꾼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거야. 그리고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것이라고 했어. 에지타가 소식을 전했다면 로셀린은 진작에 왔겠구나. 그렇다면 에지타는 로셀린을 만나러 가는 길에 변을 당한 건가? 캐드펠의 추리가 틀릴 리가 없는데... 에지타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고 오는 길일까?

신랑 페로네는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했어. 왜 조카가 고모의 결혼에 간섭하면서 말이야...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헬리센드가 사라져버렸어. 로셀린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헬리센드는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간 것 같았어. 센러드는 헬리센드가 로셀린을 만나러 엘퍼드로 갔을 것이라면서 로셀린에게 화를 냈단다. 얼마 후 엘퍼드 영주 오데마 군주 일행이 찾아왔어. 그가 말하길 헬리센드는 엘퍼드에 오지 않았고, 오는 도중에도 만나지 못했다고 했어. 그렇다면 헬리센드는 어디로 간 걸까?

다음날 아침, 오데마를 줌심으로 에지타 살인 사건을 조사하고 한편으로는 헬리센드를 찾아 나섰단다. 결혼식을 주재하려고 남아 있던 할루인과 캐드펠은 당분간 결혼식은 없을 것 같아서 그곳을 떠나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향했어. 떠난 지 첫날 그들은 같은 교단의 페워웰 수도원에서 묶기로 했어. 페어웰 수도원은 공사 중이었고, 다른 수녀원의 수녀들이 와서 작업을 하고 있었단다. 그들은 같은 교단인 할루인과 캐드펠 수사를 환대해주었어.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그곳에 작업을 하러 온 수녀 중엔 베네딕타 수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죽은 줄만 알았던 버트레이드였던 거야. 어느 정도 예상이 된 시나리오이긴 한데 이렇게 전개되는구나. 그렇다면 헬리센드도 이곳에 와 있을 것 같구나.

할루인과 버트레이드는 서로 알아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기쁨이 훨씬 컸단다. 예상대로 헬리센드는 엄마 버트레이드와 함께 있었어. 할루인과 함께 셋이 있는 모습을 보니 캐드펠은 헬리센드가 할루인의 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단다. 캐드펠은 수녀원장을 만나서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고 할루인과 버트레이드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단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나 할루인과 버트레이드는 다시 만났단다. 그리고 캐드펠은 무슨 일을 처리하기 위해 말을 타고 약간은 의외의 장소 엘퍼드로 갔단다.

캐드펠은 그곳에서 애들레이즈를 만났어. 어제 에지타가 찾아온 것은 로셀린이 아니라 애들레이즈였던 거야. 애들레이즈와 에지타는 진실, 그러니까 헬리센드가 할루인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에지타는 애들레이즈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로셀린과 헬리센드를 고통에서 구해주고 둘이 결혼할 수 있게 하자고 했으나, 애들레이즈는 강하게 거절했단다.  결국 에지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떠났는데 애들레이즈의 충성스러운 마부들이 에지타의 입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에지타를 쫓아가 죽이고 도망을 가버린 것이었어. 애들레이즈도 에지타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했어. 캐드펠은 애들레이즈에게 그 먼 옛날 할루인과 버트레이드의 결혼을 반대했던 이유를 물어보았어. 애들레이즈는 어렵게 이야기했는데, 사실은 자신도 할루인을 사랑했었기 때문이래.. 아, 사랑은 어렵고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거구나.

..

캐드펠은 애들레이즈를 설득해서 진실을 이야기하자고 하자, 애들레이즈는 결심을 하고는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비버스로 향했단다. 비버스에 도착한 애들레이즈는 그 동안 숨겨왔던 진실을 이야기해주었단다. 모두들 당황했고 어떤 이들은 화를 내기로 했어. 로셀린만이 이제 자신과 헬리센드의 사랑을 막는 방해물이 없어졌다면서 기뻐했단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자 오데마 일행과 애들레이즈도 다시 엘퍼드로 돌아왔단다. 오데마는 엄마에게 화를 내면서 에지타 의 살인을 지시한 것이냐 물어보자, 강하게 아니라고 부정했단다. 하지만 오데마는 어머니에게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여서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하고 다시는 엘퍼드에 오지 말라고 했단다.

캐드펠 수사도 다시 페어웰 수도원에 와서 할루인 수사를 만났어. 할루인은 버트레이드, 헬리센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대. 그들은 서로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버트레이드는 베네딕타 수녀로 살아갈 것이고, 할루인도 수사로 삶을 계속 살아가게 될 거야.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엘리스 피터스의 <케드펠 수사 시리즌>는 추리 소설에 그치지 않고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더욱 좋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1142년 겨울, 일찌감치 혹한이 찾아들었다.

책의 끝 문장: “집으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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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간의 삶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게 채우는 것들은 유대적인 관계, 온갖 느낌과 감정, 삶의 경험과 기억들이다. 하지만 삶이 끝나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은 형태도 없이 사라지며 잊히고 만다.

금이 간 세상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내 차례가 돌아왔다. 언젠가는 맞부딪쳐야 할 일. 마치 누군가 갑자기 내 뺨이나 콧잔등에 주먹질을 하는 것만 같다.


(53)

책장 앞에 서서 지난 수년 동안 우리가 사 모았던 책을 찬찬히 살펴보기도 했다. 수십 년간 일정한 간격으로 차곡차곡 사 모은 책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나무의 나이테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99)

모든 것이 끝이었다. 어쩌면 운명이란 것은 삶이 자연스럽게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 목적을 이행하도록 결정지어진 것이 아닐까? 비록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 얼마 가지 않아 내 신체 중에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근육들은 시들어 버릴 것이다.

내 손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마치 악몽처럼 느껴졌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때가 늦었다는 생각에 더더욱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118)

우리가 우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우리 또한 초신성 폭발로 인해 생성된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이니까. 그렇다. 우리는 우주의 티끌, 우주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우주의 티끌이라 칭하기보다 우주의 불꽃 또는 섬광이라 부르면 어떨까? 우리는 우주의 암흑 속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124)

나는 이 세상 전부를 빌려 살아왔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할부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단번에 모든 것을 갚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 채무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내겐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들과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손녀딸 사라가 있다. 친구와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삶이 내게 건네주었던 선물이자 빚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지나온 삶에 감사하며 빛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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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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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짧은 소설을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읽은 클레어 키건 책은 이번이 세 번째로구나. 책이 너무 얇은 것에 비해 책 가격은 마음에 들지 않는 가격이라 관심 두지 않았던 책인데, 아빠 친구가 추천을 해주어 읽어보기로 했단다.

클레어 키건은 아일랜드 작가로 이 소설 또한 아일랜드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단다. 제목으로만 봐서도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책의 앞부분을 읽어도 너무 평범한 일상이라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책도 얇은데 어떤 서사가 등장할지, 걱정까지 되면서 읽었는데, 후반에 가면서 이 짧은 소설에 많은 사람들이 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아빠의 친구가 왜 추천을 하고, 왜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는지 알겠더구나. 사실을 바탕으로 한 고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일랜드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를 그런 소설로 이해했단다.

 

1.

이 소설이 배경이 되는 1985년 아일랜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하는구나. 주인공 펄롱은 석탄야적장에서 석탄을 판매하고 배달하는 평범한 노동자란다. 펄롱의 엄마는 미혼모로, 16살 때 펄롱을 낳았어. 펄롱의 엄마는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임신을 하게 되면 보통 내쫓기 마련인데, 미시즈 윌슨은 엄마를 내쫓지 않고 계속 일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펄롱도 보살펴주어 큰 어려움 없이 자라날 수 있었단다. 그런데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단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다가 결국 물어보지 못한 거야.

성인이 된 후 펄롱은 아일린과 결혼하여 딸 다섯(캐슬린, 조앤, 실라, 그레이스, 로레타)을 낳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어. 펄롱은 자신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지만, 윌슨 씨에게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잘 베풀어 주는 사람이란다. 그에 반에 아내 아일린은 현실주의자로 펄롱을 사랑하지만 남들에게 베푸는 것은 좀 못마땅하게 생각했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어 펄롱과 아일린은 케익과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어. 펄롱은 석탄을 판매하고 배달하다 보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바빴단다.

…

강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수녀원이 하나 있었는데 이 수녀원은 직업여학교를 운영하고 세탁소를 같이 운영했는데, 세탁소는 세탁 품질이 좋아서 평판이 좋았단다. 하지만 직업여학교와 세탁소에서 십대 소녀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어린 아이들을 입양 보내고 받은 돈을 수녀들이 챙긴다는 안 좋은 소문들이 돌기도 했어.

어느 날, 펄롱은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는데, 어떤 소녀가 죽고 싶다면서 도와 달라고 했어. 펄롱이 아이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수녀가 곧바로 와서 대화가 중단되고 펄롱은 집으로 돌아왔어. 그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어. 아내 아일린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현실주의자 아일린은 우리 집과 관련이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펄롱은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았어.

….

또 어떤 날은 석탄 창고 문이 성에 때문에 못 열고 있었는데 창고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서 열었더니, 한 여자 아이가 벌벌 떨고 있었어. 하룻밤 꼬박 그곳에서 머물 것 같았어. 펄롱은 그 소녀를 데리고 수녀원에 갔더니 수녀원장은 형식적인 투로 고맙다고 했어. 그리고 수녀원장은 그 소녀에게 석탄 창고에 간 이유를 물어보니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숨겨서 그곳에 있었다고 했어. 수녀원장은 펄롱이 옆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소녀는 겁에 질려 있는 듯했어. 펄롱은 소녀에게 자신이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어. 그러면서 소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수녀가 펄롱에게 눈치를 주어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

펄롱이 수녀원에서 소녀 때문에 수녀원장과 실랑이를 벌인 것이 소문이 났는지 펄롱의 지인 미시즈 케호는 괜히 수녀원에 관여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조언을 했단다. 하지만 펄롱은 그냥 마음에 담아둘 수 없었어. 펄롱은 수녀원에 가서 주위를 배회하면서 생각에 잠겼어. 그런데 석탄 창고에 가 보니 그 소녀가 또 그곳에 있었어. 펄롱은 더 이상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었어. 앞으로 어떤 고통이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미시즈 윌슨으로부터 배운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로 했어. 그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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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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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이 배경이 된 것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라고 하는구나. 이 세탁소는 1996년이 되어서야 문을 닫았는데 이 시설에서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어. 적게 잡으면 만 명이지만 삼만 명이 정확한 수치일 것이라고 덧붙이는 말에게 이야기하고 있단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잃고 자신의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대. 이 시설이 가톨릭교회와 국가가 함께 운영하고 자금을 지원하던 곳이었는데 더 충격적이구나. 아일랜드 정부는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해 아무런 사죄도 하지 않고 있다가 2013년이 되어서 사과문을 발표했다는구나.

….

이 소설은 이런 부조리한 일을 고발하려는 목적보다 주인공 펄롱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보통 우리와 관련 없는 부조리한 일에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단다. 하지만 펄롱은 자신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양심에 따라 행동을 했단다. 펄롱이 한 행동은 결코 사소한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소설의 제목을 역설적으로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아빠는 과연 펄롱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했는데, 속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더구나.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 것 같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10월에 나무가 누래졌다.,

책의 끝 문장: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 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 P29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펄롱은 생각했다. 일 그리고 끝 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 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43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세상에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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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ㅣ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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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유시민 님의 유럽 도시 기행 시리즈인 <유럽 도시 기행> 세 번째 책을 이야기하려고 해. 이번 3권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표적인 도시 네 곳을 이야기해줄게. 이베리아 반도의 대표적인 도시 네 곳을 말하라고 하면, 이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이 책에서 소개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구나. 스페인 도시 두 군데, 포르투갈 도시 두 군데. 지난 <유럽 도시 기행>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번 책에서도 유시민의 인문학적 지식과 솔직한 관광지에 대한 평가로 이 곳들을 여행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구나.

 

1.

첫 번째 도시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편이란다.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항해시대까지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도시라고 했어. 18세기 이후 발전이 이루어진 곳이라서 다른 유럽의 도시에 비해 오래된 역사 유물은 없다고 하는구나. 스페인이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나 대항해 시대가 지나고 나서는 독재자 프랑코의 오랜 독재 시기로 인해 다른 유럽에 뒤쳐지게 되었대. 세계 대전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어서 전쟁에 피해가 적었지만, 유럽 주류 세계에서 멀어지게 되었어. 그러다가 1970년대 총리인 아돌프 수아레즈의 개혁으로 스페인 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하여 오늘날의 스페인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마드리드에 있는 국립고고박물관( MAN)을 방문하고 스페인의 오랜 역사를 이야기해주었단다. =================

(31)

MAN에서 파악한 스페인의 역사를 요약해 본다. 역사를 몰라도 마드리드를 즐기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알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베리아’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최초의 인간 집단 ‘이베로’ 부족은 3,600여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거나 해변을 걸어서 들어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철기를 들고 남하한 셀따(켈트) 족이 이베로 부족과 결합해 오늘의 스페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셀띠베로(celtibero) 부족을 형성했다. 페니키아와 그리스 상인들이 찾아와 기술과 문화를 전해주었으며, 로마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처절한 싸움을 벌인 끝에 로마 군대가 주요 지역을 점령했다. 라틴어로 이스빠니아라고 했던 이베리아반도는 기독교 세계에 포섭되었고 가스띠까, 까달루냐, 갈라시아 등 상이한 언어를 쓰는 열러 문화권이 무너진 5세기 이후에는 게르만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토착민과 손잡고 똘레도에 왕국을 세웠다.

=================

…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비롯하여 역사 박물관, 프라도 미술관, 소피아 미술관과 소로야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 방문한 느낌을 이야기해주었단다. 박물관과 미술관이라…. 너희들과 아빠가 좋아하는 동선은 아닌 것 같구나. 스페인을 대표하는 여러 화가들이 있는데 그 중에 고야라는 화가의 작품들이 프라도 미술관에 많이 있어서 그의 작품에 대해 여러 편 소개해 주었는데, 그림은 잘 그리는 것 같지만, 말년에 그린 그림들은 좀 기괴해 보여서 아빠 취향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림들은 스페인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의 야만성과 민중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서 그렸다고 하는구나.

예술가들은 이렇듯 시대상을 반영할 줄 알아야 하지. 고야보다 더 유명한 스페인의 화가 피카소도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독일 공군이 프랑코를 지원하려고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을 기리기 위한 <게르니카>도 마드리드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구나.

…

지은이 유시민은 마드리드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마드리드에 대한 단상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주셨단다.

=================

(97-99)

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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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두 번째 도시 바르셀로나는 까딸루냐의 주도(州都)란다. 까딸루냐는 예전에는 독립된 나라였으나, 이사벨-페르난도 공동왕의 스페인 왕국 창설 이후 스페인에 복속되어 마드리드에 억눌리고 때로는 짓밟혔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까딸루냐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독립을 하려고 한단다. 2017년에는 까딸루냐 자치정부가 주도한 주민투표에서 43퍼센트 투표율에 90퍼센트 독립에 찬성표가 나와서 독립을 시도했으나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중앙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무산되었단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까딸루냐의 주도 바르셀로나이니,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는 얼마나 앙숙인지 잘 알겠지? 그런데 무력을 사용하면 불법이 되잖아. 그래서 그걸 대신하는 것이 축구란다. 프랑코 독재 시절 언어와 깃발과 자유를 빼앗긴 까탈루냐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축구였단다. 독재 정권의 근거지였던 마드리드의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만은 기필코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 그래서 오늘날까지 강팀으로 남아 있는 것 같구나. 예전에 바르셀로나 소속의 포르투갈 출신 축구 선수인 피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레일 마드리드로 이적을 해서 배신을 느낀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피구 선수에게 강한 적대감을 보였다고 하는구나. 그들의 역사를 알면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구나.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축구는 축구 그 이상일 것 같구나.

…

바르셀로나에서 빼놓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가우디가 있단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건축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들이 있다. 1882년에 착공한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얼마 전에 드디어 완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건물 또한 가우디의 작품이란다. 사후 100년이 지나서야 완공이 되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봐도 압도적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 실려 있단다. 동화 같은 장식으로 꾸민 구엘 공원에도 가우디의 작품들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하는구나.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데, 피카소는 젊은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면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구나. 입체파 화가가 되기 전에 정교한 그림을 이 시절 그렸다고 한다.

....

 

2.

세 번째 도시는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이란다. 리스본은 영화나 소설에서도 많이 등장한단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포르투갈 출신인 주제 사라마구도 <리스본 쟁탈전>이라는 소설을 썼단다. 아빠는 이 책을 읽으려고 오래 전에 사두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구나. 유시민 님의 <유럽 도시 기행 3>에서 이 소설을 잠깐 소개해주었는데 포르투갈 12세기 무어인에게 빼앗긴 리스본을 탈환하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더구나. 이왕 주제 사라마구 이야기를 했으니 포르투갈의 또 다른 유명한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도 이야기했구나. 페르난두 페소아는 <불안의 책>으로 유명해서 아빠도 읽어보긴 했는데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단다. 유시민 님도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신의 취향은 아니라고 하더구나.

=================

(246)

페소아의 정신은 외모보다 더 특이했다. 연금술, 신비주의, 마법, 비밀결사, 점성술에 심취했고, 셰익스피어와 나폴레옹 같은 역사 인물의 별자리 운세 모음집을 만들었으며, 바이런 스타일의 영국 낭만주의부터 보들레르가 대표하는 프랑스 상징주의와 엘리어트의 모더니즘까지 온갖 문예사조를 섭렵했다. 1935년 가을 복통과 고열 증세에 시달리다가 사망한 그는 영어로 된 책 네 권과 포르투갈어책 한 권밖에 출간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원고와 스케치를 남겼다. 포르투갈 국립국서관은 나무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원고를 시민들에게 공개했고, 정부는 페소아의 관을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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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본은 1755년 엄청나게 큰 지진과 쓰나미로 도시 전체가 거의 파괴되었다고 하더구나. 그 때 도시 재건에 있어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폼발 후작이라는 사람이야. 폼발 후작은 전결권으로 받아서 도시 재건을 하는데, 그가 설계한 바이샤 지구는 현대적인 격자형 도로망과 내진 설계를 적용한 건축물로 만들었고, 완전히 새로운 리스본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까르무 성당은 지진으로 무너진 성당을 완전히 복원하지 않고 남겨두어 자연의 무서움과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는 상징물이 되었대.

그리고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 할 한 가지 중에 카네이션 혁명이란 것이 있단다. 카네이션 혁명은 1974년에 일어난 것으로 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인데 시위를 하는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아주어서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한다. 카네이션 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점에 큰 의의가 있어. 어느 나라든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힘이 있는 것 같구나.

…

자, 이제 마지막으로 뽀르뚜를 알아보자. 보통 포르투라고 하는데, 원어에 좀더 가까운 발음은 뽀르뚜라고 하는구나. 유시민 님은 뽀르뚜를 ‘걸음을 멈추게 하는 도시‘라고 했는데, 그 어떤 표현보다 좋은 평가를 해준 것 같구나. 현대 사회 어디를 가든 바쁘고 정신 없는 것이 일상인데, 강변에서 여유를 누리고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구나.

=================

(364-365)

한 가지 더, 중세와 근대 역사의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정복 전쟁을 일삼았던 포르투갈 왕국은 대항해 시대의 짧은 전성기를 지나 유럽의 변방 국가로 되돌아왔다. 공화주의 혁명을 이룬 뒤에는 살라자르의 장기독재를 겪었다. 그런 역사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다해 이웃과 싸우면서 남을 정복했지만,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고 남은 것도 없다. 이기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좋다. 이웃을 적으로 삼기보다는 서로 기댈 수 있는 친구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붐비는 거리에서도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친구나 사업 파트너를 만나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충분히 들으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이방인에게도 경계하고 의심하는 표정이 아니라 여유롭게 환대하는 미소를 선사한다. 리스본과 뽀르투 사람들한테서 나는 그런 마음을 느꼈다.

=================

뽀르뚜의 대표명소로 상벤투 역과 렐루 서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렐루 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에 하나라고 소개했어. 아빠도 꼭 한번 가보고 싶더구나. 뽀르뚜에는 도루강이라는 유명한 강이 있는데 그 강가에 파스텔 톤의 건물들과 노천 카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좋고, 도루강 건너편 가이아 지구에서는 와인 저장고들이 있는데 이곳도 소개해 주었단다. 그 외에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뽀르뚜에 있는 국립 미술관에 들러서 뽀르뚜 출신 여성 화가 아우렐리아 드 수자의 작품들에 대해 소개해 주었어.

.....

대략 이 정도 책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구나. 여행은 아무래도 이런 책을 통한 간접 여행보다 직접 여행을 해야겠구나. 여행을 다녀오면 한 단계 더 성숙한다고들 하잖니.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 경험한 것들이 자신의 세포에 새겨지면서 내적 외적 성장을 만드는 것 같구나.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핑계인 것 같지만 바쁜 일상이 발목을 잡는구나. 짧든 길든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느낌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실천인 것 같아. 사진으로나마 많이 남기는 것으로 대신해야 할 듯 하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를 다녀왔다.

책의 끝 문장: ‘잘 있어. 또 올게!’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냉전의 예고편이었다. 20세기의 모든 이념이 충돌해 참혹한 비극을 일으켰다. 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프랑코에게 병력과 물자를 지원했고, 소련 스탈린은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결성한 반파시즘 ‘국제여단’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했다. 프랑코는 1939년 3월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를 점령해 공화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3만여 명의 정치적 반대자를 처형했다. 수십만 명의 공화주의자들이 가족과 함께 페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를 탈출했다. 내전에서 사망한 군인과 민간인의 수가 50만 명이 넘었다. - P18

나는 MAN에서 이런 충고를 들었다. ‘스페인이 무엇인지 묻지 마.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의 모든 도시에서 네가 보고 겪고 마주치는 것을 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스페인 땅에 있는 모든 것, 스페인 사람이 가진 모든 것, 그게 스페인이거든.’ - P40

바르셀로나 사람들한테 1714년은 우리의 1592년이나 1910년에 해당한다. 마드리드 편에서 펠리페 5세가 전쟁을 벌인 끝에 스페인 왕위 계승권을 지켰다고 했다. 전쟁의 발단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던 카를로스 2세한테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토가 갈가리 찢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한 그는 스페인 왕국의 통합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걸고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 공작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해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로 옹립했다. 그러자 빈의 합스부르크 왕실과 독일 바이에른 왕실이 저마다의 연고를 내세워 스페인의 왕위가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했다. 1701년 전쟁이 터지자, 해외 식민지 소유권과 노예무역 해상권을 두고 스페인과 대립하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끼어들었다. 중세 내내 벌어졌던 유럽 왕족과 귀족들의 영토쟁탈권이 스페인 땅에서 벌어진 것이다. - P128

‘리스본 대성당’은 작고 소박했다. 초라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 대주교가 있어서 간단히 ‘대성당’이라고 하는 그 집은 12세기 중반 레콩스키스타 직후 지었으니 리스본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건축 기술이나 국력으로는 그보다 크고 화려한 성당은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지진이 잦은 곳이라 자주 수리했고 수리할 때마다 유행하는 교회 건축양식을 덧붙였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건물은 로마네스크, 예배당 회랑은 고딕, 실내장식은 로코코 스타일이었다는데 대지진에 다 부서져 불타버렸다. 대성당은 두 가지가 특이했다. 첫째, 군사요새 같은 외관은 레콩키스타 시대의 전투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둘째, 중앙 설교대 위 넓은 공간에 성가대 나무 의자를 놓았다. 특별히 볼만한 게 없다는 걸 알았지만 가톨릭 국가의 수도를 방문한 여행자로서 예의를 지키려고 들렀다. - P229

여행지에서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는 각자의 취향에 달렸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객관적으로 더 고상하다든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책을 서점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이 총포와 같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총포처럼 위력 있는 것은 새롭고 유용한 지식과 정보이지 문자 텍스트를 인쇄한 종이책이 아니다. 세상은 인터넷과 검색엔진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책은 지성의 상징이 아니며 숭배할 대상 또한 아니다. 책을 쓰는 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온 나는 책을 전성기가 지난 전통 미디어로 여긴다. 서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는 통념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좋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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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런데 1318년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교황이 마녀사냥을 허가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317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교황 요한 22세를 향한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범인은 놀랍게도 교회의 고위 사제인 주교였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교황을 살해하려 한 방법이 칼이나 무기가 아닌 주술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경악했고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분노한 교황이 마녀를 이단자로 단정할 논리적 근거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이단자와 마녀를 혼동하며 마녀사냥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후 프랑스 남부에서는 1320년부터 1350년 사이에 600여 명이 마녀로 기소되었고, 그중 400여 명이 화형에 처했습니다.


(47)

그렇다면 우리는 마녀사냥을 어떻게 경계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게을러지는 순간, 깨어 있지 않은 순간, 그래서 ‘쉬운 답’을 찾으려 하는 순간 마녀사냥을 일어납니다. 불행이 찾아왔을 때 문제를 똑바로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손쉬운 희생양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 희생양은 제거해야 할 악, 즉 현대판 마녀가 되는 것이죠. 게다가 오늘날의 사회는 수백 년 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고, 진실 파악은 그만큼 어려워졌습니다. 마녀사냥이 일어나기 쉬운 조건에 당면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백 년 전에 일어난 마녀사냥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지 속에서 폭력을 일삼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깨어 있기 위함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마녀사냥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118)

다이아몬드 광산 근처에 살고 있는 한 아이는 외지인에게 다이아몬드 광석을 가리키며 “이건 대체 어디에 쓰는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외지인이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자 아이는 “이 돌 안에 피가 들어 있어요. 갖고 있으면 불행을 가져와요. 우리 부족에서는 피를 부르는 돌이에요”라고 대답했죠.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에서는 그저 돌멩이에 불과한 다이아몬드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것입니다. 이처럼 권력자들의 다이아몬드 쟁탈전에 힘없는 국민만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124)

프리타운에 끔찍한 테러가 벌어진 후 UN은 다시 한번 시에라리온 내전에 관여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시에라리온의 평화에 도움이 됐을까요? 놀랍게도 UN은 평화유지군을 지원하겠다는 조건으로 또다시 카바 정부에게 반군과 협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강압에 못 이긴 카바 대통령은 결국 1999년 7월에 아프리카 토고의 로메에서 포데이 산코와 한 번 더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로메 협정의 주요 내용은 ‘모든 적대 행위를 끝내고 반군을 무장 해제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포데이 산코의 처우와 관련된 조항도 있는데, 놀랍게도 그를 부통령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잔인한 학살을 일으킨 반군의 수장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모두 사면하는 것도 모자라 부통령으로 임명하라는 조항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UN은 시에라리온의 분쟁에 깊이 관여하기보다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라며 미온적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152-153)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끝났습니다. 과연 그 많던 나치 전범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대다수의 나치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반성은커녕 숨거나 도망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남미 국가로 도망쳤는데 나중에는 가족들까지 탈출시켜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고 합니다. 독일 검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전범들이 남미로 도망쳤다는 1금 비밀문서를 확인했는데, 무려 9,000여 명이었습니다. 이 중 약 5,000명이 아르헨티나로, 1,500명~2,000명이 브라질로, 500명~1,000명이 칠레로 갔고 나머지는 파라과이와 우루과이로도 탈출했습니다. 당시 남미 국가들은 대체로 군사독재 정권이었기에 나치 전범들이 정착할 수 있었죠. 특히 백인 우월주의가 강했던 아르헨티나는 유럽 백인들의 이민을 장려한 만큼 나치 전범들을 선뜻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195-196)

사실 폴 포트가 사람들을 죽이는 데 명확한 기준과 이유는 없었습니다. 불만 많은 사람, 게으른 사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부터 인정 많은 사람, 용감한 사람, 똑똑한 사람, 개인주의자, 평판이 좋은 사람, 재주가 많은 사람,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죽였죠. 그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할 것 같거나 방해될 것 같은 사람은 모조리 죽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폴 포트는 색출한 사람만 죽이는 게 아니라 이들의 삼대까지 씨를 말려야 한다며 온 가족을 살해했습니다. 젖먹이들까지 가차 없이 죽였죠.


(225-226)

1918년 후반이 되지 프랑스와 미국에서 스페인 독감의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브라질과 카리브해 지역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 지역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스페인 독감도 폭발적인 확산세가 조금은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스페인 독감도 끝난 것은 아니었죠. 해외에서 파견했던 군인들이 귀국하면서 호주에서 유럽으로 스페인 독감이 다시 퍼졌고, 미국 도시들에서도 산발적으로 독감이 퍼지다가 멕시코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숨진 사람이 약 1,500만 명인 데 반해 스페인 독감으로 숨진 사람은 5,000만 명에 달했습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던 것입니다. 제28대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과 화가 구스타프 글림프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습니다. <절규>로 유명한 화가 뭉크도 스페인 독감에 걸렸는데 감염 전 자화상과 감염 후 자화상을 비교해 보면 그의 몰골이 심하게 망가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77)

과거에는 단순한 전통 의상이었던 히잡은 종교와 세속, 근대와 전통, 강요와 자유를 가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히잡을 두고 여성을 향한 억압이라고 하거나, 종교적 문화일 뿐이라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히잡이 무엇을 상징하느냐가 아닙니다. 강압에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유롭게 히잡을 쓰거나 벗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히잡 혁명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이제 용기를 내어 변화를 이루고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란 국민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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