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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5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 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 ㅣ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5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8년 12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 제 5권을 읽었단다. 드디어 미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시대의
이야기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의 장점은 늘 그렇듯 대화체로 쉽게 미술을 설명해주는
것이라 부담 없이 책을 펼쳐들 수 있단다. 책 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컬러 도판 사진으로 설명을 읽으면서
바로 미술작품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단다. 중간중간 정리해 주는 것도 좋고… 5권까지 읽었다고 아빠가 미술에 대한 상식이 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마렴…
기억력은 빠르게 퇴화하고 있으니 말이야. 예전에 쓴 너희들에게 쓴 편지와 발췌록들을 읽어보면
어찌나 새로운지…
1.
유럽은 1300년대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많이 발전했대. 그렇게 사회가 발전하다 보니 미술도 덩달아 발전을 했고 말이야.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많은 도시국가들의 혼재하는 형태로 지냈다고 하는구나. 한때
200여개의 도시 국가가 있었을 때도 있다고 하는데, 1300년 즈음에는 50여개 도시국가들이 있었고…(여전히 많네)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는
등이 특히 강한 도시국가들이었대.
이 시절 향후 미술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문학작품이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단테의 <신곡>이란다. 이 책은 아주 유명한 책이지만, 어려울 것 같은 생각에 아빠는 읽어보지 못한 책이란다. 이 책은
지옥, 연옥, 천국을 단테 본인이 여행하는 이야기로, 당대 실존 인물들이 많이 많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부패한 정치인이나
성직자들도 출현하여 현실에서는 하지 못하는 쓴 소리를 하기도 했대.
이 책에서 나오는 연옥이라는 곳이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역이야. 부자들은 원래 천국에 가질 못하는데, 이 연옥이라는 곳에서 일정
시간 죄를 뉘우치면 부자들도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단다. 그럼 어떻게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느냐… 그것은 바로 예배당을 짓는 거야. 부자들과 상인들이 지은 예배당들이
하나둘 나타나는데 그 중에 파도바라는 도시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소개해 주었단다. 고리대금업으로 큰
돈을 본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속죄하기 위해 세운 예배당… 당시 유명한 화가인 조토에게 의뢰하여 벽화를
그리게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 있단다. (조토는
아빠가 학창시절 배울 때는 지오토로 배웠는데, 요즘에는 조토로 부른다고 하네.) 조토가 벽화를 꾸민 것은 프레스코 기법이라고 하는데, 석회 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리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도 변색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예배당은…. 프란체스코 성인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았고, 그가 죽고 나서 아시시라는 도시에 프란체스코 수도회 성당을 지었는데, 이 수도회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위해 쉬운 말론 강론을
이야기했고, 글을 모르는 그들을 위해 벽화로 프란체스코 성인의 일대기로 그렸다고 하는구나. 그 그림은 모두 28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시 앞서 이야기했던 조토가 그렸다고 하더구나. (모두는 아니고
대부분…) 당시의 도시국가들 중에 당시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잘 유지하고 있는 도시들이 있는데 그 중에
시에나라는 도시가 있단다. 그곳에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팔라초 푸블리코와 시에나 대성당이 있는데, 팔로초 푸블리코는 시에나의 시청사로 이 건물 안에는 로렌체티의 유명한 벽화가 있대. 그리고 시에나 대성당에는 마에스타 두초가 그린 시엔나 대성당의 제대화가 있고…
이 마에스타 두초는 앞서 몇 번 이야기했던 조토와 더불어 당대 쌍벽을 이루는 미술가로 조토는 신체의 입체감과 무게감을 두드러지게 표현을
했고, 두초는 화려한 옷에 초점을 둔 차이가 있다고 하는구나.
….
이렇게 성장을 거듭하던 유럽 세계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단다.
2.
그 위기는 다름 아닌
1347년 발생한 흑사병.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을 몰아 넣은 죽음의 병이란다. 어벤져스의 빌런 타노스가 이루려던 꿈. 전염병이 유행을 하면 꼭
언급되는 흑사병은 삶의 모습까지 바꾸었단다. 작년부터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자주 흑사병과 비교되잖니… 당시 도시는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위생 시절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정확한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흑사병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단다. 병이 생긴지 2~3일 내에 죽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 이 흑사병은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단다. 어떤 성모자상이 병을 치유한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주변으로
성당이 지어지고, 그 성당에 벽화들이 그려졌어. 흑사병이
끝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오히려 삶의 질을 좋아지면서, 중산층까지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면서 미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는구나.
이탈리아 도시 국가 중에 가장 잘 나가던 피렌체는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으로 도시가 전체적으로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혼란에 빠진 이 도시를 다시 살리자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르네상스는 서서히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르네상스의 본거지는
피렌체라고 하는구나. 르네상스는 워낙 유명해서 그 핵심이 화려했던 고대 문명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란다. 그런 점에서도 피렌체는 고대 유물을 많이 남아 있어서 유리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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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결국 르네상스의 핵심은
고대 문명의 부활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피렌체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자신감을 가질 만합니다. 고대를 부활시키려면 고대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어야 하겠죠. 피렌체는
그 어느 도시보다 고대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도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대의 전통이 도시에
각인되어 있었던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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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은 안정된 경제와 정치를 들
수 있는데, 지중해를 통한 중계 무역과 은행을 통해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고, 다른 도시에 비해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되었다고 하는구나. 한때
메디치 가문이 정치 권력을 독차지하기도 했지만, 여론이 등을 돌리게 되면서 추방당하기도 할 정도로 시민들의
권력이 센 도시가 바로 피렌체였단다. 피렌체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그 유명한 피렌체 대상당이 있는데, 30층 높이의 거대한 성당인데, 상상만 해도 엄청나구나. 우리가 계획했던 유럽 여행이 코로나 때문에 무한 연기가 되었는데, 나중에
다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더구나.
그렇다면 이 피렌체 대성당은 누가 지었을까. 특히 피렌체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만든 사람은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이란다. 이전에
피렌체에서는 세례당 청동문을 만들기로 했고, 그걸 경연에서 이긴 사람이 만들기로 했는데 브루넬레스키는
그 경연에서 기베르티라는 사람한테 졌다고 하는구나. 그 경연에서 진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를 떠나 로마
여행을 했대. 원래는 미술가였던 브루넬레스키는 로마 여행을 마치고 건축가로 변신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당시 피렌체에서는 피렌체 대성당의 직경이 45미터라서
거대한 돔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거든.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브루넬레스키였어. 그는 로마 판테온에서 힌트를 얻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완성했다고 하는구나.
수평쌓기와 수직쌓기를 교차하는 헤링본 기술과 돔을 이중을 하여 무게를 가볍게 하는 등 혁신적인 방법으로 지었대. 그래서 피렌체 사람들이 모두 자부심을 갖게 하는 피렌체 대성당의 거대한 마침표를 찍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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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294)
당시 인문학자이자 미술이론가였던
알베르티는 ‘하늘 높이 솟구친 피렌체 대성당 돔이 토스카나의 모든 사람을 그늘로 덮을 듯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시기 피렌체 사람들에게 돔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알 것 같죠. 물론 과장처럼 들리기도 해요. 하지만 막상
피렌체에 가서 직접 이 돔과 마주하면 단순한 과장으로 들리지만은 않을 겁니다.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30층 높이의 대성당이 우뚝 솟아올라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거대한
돔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하고, 가파르게 솟아오른 윤곽선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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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 미술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원근법이 생겨났다는 점이라고
하는구나. 소실점을 기준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단다. 아빠도 학창 시절 소실점을 처음 배우고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떠오르더구나.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던 아빠도 소실점을 이용해서 그리니 보이지 않던 입체감이 보였던 기억… 그런 원근법이
그리 오래 전이 아닌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생겨난 거구나. 앞서 이야기한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하고 마사초라는
사람이 그림에 적용하였다고 하더구나.
…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대부분 후원을 받았고, 그런 후원 아래서 미술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후원은 돈이 많은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대표적인 가문으로 메디치 가문이 있단다. 메디치 가문은 의사와 약재상으로 시작했으나, 이후에는 다양한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성공하면 피렌체와 인근을 다스리는 대공이라는 지위까지 오르게 되었대. 이들의 막강한
후원을 통해 많은 미술가들이 성장했고, 도나텔로와 미켈란젤로도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시대마다 미술의 유행도 변하게 되는데, 15세기 후반 피란체에서는
관념론이 유행하면서 비너스 같은 감각적 주제의 그림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관념론과 비너스가 어떤 관계이지?^^
....
르네상스 미술가라고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빠는 사실 그에 대해서 잘 몰라. 그저 몇몇 유명한 작품들의 작가로만
알고 있지. 그런 그의 작품 중에 청동 기마상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는구나. 아니, 있을 뻔 했다고 하는구나.
높이가 무려 7.5미터에 달하는 이 기마상은 스포르차 가문을 기념하기 위해 계획했으나 끝을
보지 못했다는구나. 실험정신이 대단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완벽주의자이다 보니 미완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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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사실 레오나르도의 생애에서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습니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작업 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다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였던 작가 개인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대작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만한 아량을 가진 후원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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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계획했던 청동기마상은 그 설계도가 남아
있어서 현대에 와서 미국의 어떤 작가가 실제로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엄청난 크기인데
뛰어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구나..
자, 이렇게 르네상스를
다룬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5권의
이야기를 마무리를 해야겠구나. 역사가 발전하면서 미술도 발전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고, 인간에 있어 예술과 미술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고, 책
속에서 본 건축물과 미술작품들은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단다. 중간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전세계를 2년 가까이 장악한 코로나 바이러스.. 그것은 이미 우리 삶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고, 앞으로도 더
많이 바꾸어 놓을 것 같구나. 이젠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가라고 하지 말고, 같이 살아줄 테니 힘 좀 빼라고 이야기하고 싶구나. 감기 수준으로
힘 좀 빼고 같이 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종종 저에게 유럽 여행을 가면 어떤 미술 작품을 보고 오는 게 좋을 지 추천해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책의 끝 문장: 언제나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광대하게 찾아오는 거죠.
스탕달 신드롬이 뭔데요? 미술 감상에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빠지면 겪을 수 있다는 증상입니다. 감상에 너무 몰입하다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심하면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고 해요. 실제로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다가 겪게 되면서 알려진 증상입니다. 요즘도 피렌체 여행객 중에는 이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 P18
유럽인에게 후추는 그야말로 새로운 미각의 세계를 열어 주었습니다. 아예 맛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후추 없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 거죠. 그렇게 점점 유럽인들은 더 많은 후추를 낙타에 싣고 콘스탄티노플이나 알렉산드리아 같은 지중해 동쪽의 도시까지 가져와야 비로소 유럽의 상인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후추 값이 거의 금값이라고 할 정도였죠. - P32
그런데 이 옷 색을 한번 보세요. 커피에 우유를 탄 색처럼 보이지 않나요? 여담입니다만 프란체스코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카푸친 수도회’ 사람들이 입었던 옷이 카푸치노 커피색과 똑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유를 넣은 커피에 카푸치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 P95
우리의 모든 꿈은 추진할 용기만 있으면 이뤄질 수 있다. - 월트 디즈니 - P106
이성주의가 흑사병 때문에 나온다고요? 네,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르네상스 때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건 상당 부분 흑사병이라는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가 해부학을 연구한 이유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하고 관련이 있었던 겁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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