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잽 - 김언수 소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언수님의 단편소설들을 모은 소설집을 읽었단다. 아빠가
그 동안 읽은 김언수님의 소설들은 장편들뿐이었어. 아참, 단편을
하나 읽었구나. 김유정 문학상 수상집에 포함되어 있던 <존엄의
탄생>이라는 단편을 읽었었지. 김언수의 소설들은 일단
재미있단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 모두 재미있었단다. 유머코드로
도배한 소설도 있고, 기발한 설정에 감탄을 연발하기도 했단다.
어떤 소설가들은 소설들을 읽을수록 실망감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김언수님의
소설들은 찾아 읽으면 읽을수록 존경심이 팍팍 늘게 되는구나. 소설집의 뽑은 “잽”이라는 소설을 읽다 보면, 권투는
할 줄 몰라도 “잽”이라는 기술은 한번 배워보고 싶게 했단다. 짧게 툭툭 치는 기술인 잽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 글은 본 적이 없었어. 먼저
잽을 어떻게 익히는지 설명을 한번 같이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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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게 잽이라는 거다. 어깨와 주먹에 힘을 빼고, 툭툭,
주먹으로 치는 게 아니라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빨리 꺼내온다는 느낌으로 팔을 뻗는 거야. 툭툭, 스텝을 밟으면서 기계적으로 반복적으로, 툭툭, 발의 움직임을 따라 몸에 리듬을 타면서, 툭툭, 상대가 짜증이 나도록, 상대가 초조해지도록, 상대의 얼굴에서 서서히 분노가 차오르도록 툭툭, 계속해서 날리는
거야. 그럼 알아서 무너져. 잽으로 다 무너뜨린 다음 한
방에 보내는 거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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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런 잽이 중요하냐고?
이어지는 멋진 말을 한번 들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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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링이건 세상에건 안전한
공간은 한 군데도 없지. 그래서 잽이 중요한 거야. 툭툭, 잽을 날려 네가 밀어낸 공간만큼만 안전해지는 거지. 거기가 싸움의
시작이야. 사람들은 독기나 오기를 품으라고 말하지. 마치
싸움을 할 때 독기를 품으면 훨씬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하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뜨거운 것들은 결코
힘이 되지 않아. 그렇게 뜨거운 것들을 들고 싸우면 다치는 건 너밖에 없어. 정작 투지는 아주 차갑고 조용한 거지. 상대방은 화가 나 있어. 네가 자기 땅에 함부로 들어왔으니까.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으니까. 상대방은 아주 뜨거워졌지. 하지만 너는 차가워. 너는 그저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가져오고 있는 중이니까. 툭툭, 방울토마토 하나. 툭툭, 방울토마토
두 개. 툭툭, 방울토마토 세 개. 상대방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여전히 방울토마토를 가볍게 가져올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거지. 싸움은 그렇게 잔인한 거야. 어때?
너는 끝없이 잽을 날리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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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읽어보면 잽은 링 위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는 가끔은 냉정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가볍게 잽을 던지듯 한 마음을 가져야 할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아빠도 잽을 배우고 싶은 거야. 툭툭, 툭툭, 말이야.
1
<금고에 갇히다> 이
소설은 설정이 재미있단다. 전과 10범의 남자와 전과 4범의 남자가 금고 회사에 다니는 여자를 꼬셔서 같이 은행금고를 털기로 했어.
금요일 오후 9시 안전하게 금고를 따고 들어왔어. 이제
돈을 쓸어가기만 하면 돼. 그런데 금고 회사에 다니는 여자는 너무 좋아해서 리액션을 너무 크게 한 나머지, 금고문을 지지하던 지지목을 그만 발로 차버렸고, 금고문은 손쓸 틈도
없이 쾅 하고 닫혀버렸어.
그 금고는 안에서 절대 열 수 없는 구조였어. 그들 셋은 금고 안에
갇히고 만 거야. 금고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금요일
오후 9시이니까, 경찰이 그들을 현행범으로 잡는 것도 월요일
아침이나 되어야 했던 거야. 뭐, 이런 시츄에이션이 다 있냐… 읽고 있는 아빠마저 허탈한 웃음을 짓게 만든단다. 그들도 자포자기하고
주사위 게임이나 하고 있었어. 그런데 여자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어. 자신은
협박에 끌려들어온 것으로 해달라고 했어. 그러니까 어차피 잡혀 들어가는 것. 자신은 살려달라는 것이지. 그러면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고 했어. 단 한 명만…. 남자 둘은 동의했고, 단 한 명을 결정하고 위해서 그들은 주사위 게임을 했어. 경찰에
잡혀 경찰서에 다시 잡혀 들어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야. 그들은 주사위 게임에 월드컵 결승전을 앞둔 사람만큼
긴장을 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예상치 못한 반전에
아빠도 같이 긴장되고 마음껏 웃었단다.
…
또 하나의 재미있는 설정의 소설은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이라는 소설이었어. 경찰에 끌려간 주인공 송정오. 자신은 왜 경찰에 끌려왔는지도 몰랐어. 알고 보니 간첩 의심을 받고
끌려온 것이었어. 왜냐하면 송정오의 아버지가 간첩이었다가 지금은 행적도 없이 사라졌거든.. 최근에 간첩 한 명이 죽었는데 그 범인으로 경찰은 송정오를 지목했어. 송정오는
아니라고 이야기했어. 맞아, 송정오는 간첩도 아니었고 범인도
아니었어. 하지만 경찰은 고문을 하며 진술서를 쓰지 않으면 더 심한 고문을 하겠다고 했어.
아, 송정오는 고문이 싫어서 경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써주었어. 하루를 꼬박 진술서를 썼더니, 마치 글쓰기 선생님이 글을 고쳐주는
것처럼 지적을 해주었어. 그래서 다시 진술서를 쓰고… 다시
지적을 당해서 몇 번이나 다시 진술서를 썼단다. 그러면서 점점 진술서는 매끄러웠고, 자연스러운 글이 되었어. 이렇게 진술서를 몇 번이고 다시 쓰는 장면을
읽다가 이 소설의 제목이 문득 떠오르게 되면 미소를 짓게 만든단다. 아, 이 소설의 제목이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이었지… 이야기는 그냥
그런 이야기인데, 제목을 기가 막히게 뽑은 소설이었어.
2.
그 밖의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어. 읽다 보니 공통점이 하나를 발견했단다. 주인공들의 심성이 착하다는 거야. 삶은 비참하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주인공들의 내면 깊은 곳의 그를 이루는 기둥은 “착함”이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 소설 뿐만 아니라 아빠가 읽은 그의
장편 소설 <뜨거운 피>, <캐비닛>의 주인공들도 그랬던 것 같아. 그리고 그 주인공들을 안 좋아할
수가 없었고 말이야.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구나. 얼마 전에
미국에 억대 판권이 팔렸다고 하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설계자들>도 빨리 읽어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나에게는 오래된 샌드백이 하나 있다..
책의 끝 문장 : 눈부시고,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 때문에 금세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9-10)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요즘의 깡마른 내 몸을 보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권투를 배운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였다. 선수로 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취미생활이나 체력단련을 위해 배운 것도 아니었다. 에두아르마네는 열다섯 살을 두고 ‘세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고 싶은 나이’라고 말했다. 꼭 그런 기분이 드는 시절이었다. 나는 늘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 있었는데 그 분노의 정체는 대체로 터무니없거나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163)
"통두사님! 그것은 띄엄띄엄 정신이 아니에요. 띄엄띄엄 정신은 뭘 하기는 하는데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좀 띄엄띄엄 하자는 것인데 통두사님은 아주 퍼져 있잖아요."하고 통두사의 말에 끼어들었다. 통두사는 약간 뜻밖이라는 듯이 야쿠르트님도 이런 말을 다 할 줄 아시네, 하며 껄껄 웃었다. 이어 통두사는 야쿠르트님의 지적은 참으로 좋은 지적이지만 그것은 띄엄띄엄 살기 운동의 정신을 너무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두사의 견해에 따르면 미시적 입장에서 띄엄띄엄 살기 운동의 정신이란 한 개인이 너무 열심히 말달리려는 사람들로만 가득차 있기 때문에 자기처럼 전혀 말달리지 않는 백수계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지 말달림의 진행 속도를 떨어뜨려서 사회 전체를 띄엄띄엄 발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5)
"응, 아침에 마시는 맥주 좋아. 좋은 사람들이랑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서 마시는 맥주도 좋은데, 맥주라면 역시 밤새워 일을 끝낸 다음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시는 맥주가 최고지. 너희들은 출근해라. 나는 이제 맥주 마시고 잔다. 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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