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손아람이라는 젊은 작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단다. 디 마이너스. D –. 예전에 대학교 때 D – 라는 성적이 보이면 아주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예
펑크 F를 주지, D – 라니… 어차피 재수강해야 하는데 한동안 학점 평점에서 빼고 계산하게 F를
주지, D – 라니…. 그런데 이 소설에서 D – 는 중요한 역할을 하더구나. 정학을 받냐 안받냐의 기로… 그런데 그 학생이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사람이라면 더욱 절박하겠지… 참
재미있는 설정이었어.
교수는 수업에 한번도 참석을 하지 못한 해당 학생에게 F를 주었어. 당연한 것이겠지. 그리고
그 교수는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만의 룰이 있으니까 말이야. 당사자와 친구들이 교수님한테 우르르 몰려가 D-를 달라고 요구했어. 물론 사정을 이야기했지. 이미 선거에서도 압도적으로 총학생회장에 당선이 되었고, 학생회 활동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출석을 못했다고… 그러니 D-라도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정년을 앞둔 교수님은 교수 생활 내내 지켜온 자신의 원칙을 어길 수 없다면서
그 학생에게 F를 주었고, 총학생회장 자격이 박탈되었단다. 그래서 선거에서 2등을 했던 주인공의 친구가 총학생회장에 당선이
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 소설의 제목을 이야기하다 보니 소설 속의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하게 되었구나.
손아람이라는 작가는 아빠가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정말 글을 재미있고 잘 쓰는 것 같더구나. 정말 반했어.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을 마구 해주고 싶더구나. 그리고 지은이가
쓴 다른 소설들도 검색해 보게 되었어. 영화로 만들어진 <소수의견>이라는 소설도 있는데, 이 소설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이 소설의 주인공 박태의는 1990년대
후반에 대학교에 입학해서 2000년대 초반에 졸업을 하는 그런 세대란다. 이미 민주 정부로 정권교체가 된 시절, 칠팔십년대 활발했던 학생운동은
거의 흔적만 남아 있던 시절, 그는 그런 학생운동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에피소드 식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소설 <디 마이너스>란다. 총 154개의
에피소드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대학생활이라는 하나의 줄기를 이루고 있었어.
….
서울대 미학과를 입학한 주인공 박태의. 지은이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아빠는 그 자신을 모델로 삼았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경험담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단다. 그와
함께한 이들의 회고록이 아닐까 싶구나. 대학에서 만나는 많은 군상들의 사람들. 그 안에서는 짝사랑 하는 여인도 있고, 짝사랑 하는 여인의 남자친구도
있고, 괴짜 친구들도 있고, 무엇인가 가르쳐 들려고만 하는
선배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 귀염둥이 후배들도 들어오고, 함께
시위도 하고, 함께 농활도 떠나고… 그렇게 대학 생활을 함께
하다 보면 숨겨두었던 비밀들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더욱 깊은 관계가 되어가고…
…
언제까지나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어느날 문득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이 길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끝까지 이 길을 지키고 있고…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곳에는 참 다양한 일들이 늘 우리를
젊음에 두고 있었단다.
…
이 소설은 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서 당시의 일들을 떠오르게도 했단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 시리즈처럼
말이야. 만약 “응답하라
2000”이라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시나리오 작가는 이 소설을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어..
아빠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들의 대학 생활이 아빠의 대학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 그렇다 보니 소설을 읽는 내내 아빠의 대학 시절도 떠올랐단다.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이 떠오르더구나.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니면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손만 뻗으면 다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시절.. 이젠 다신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컥해지는구나.
후회한들 무엇하련만, 그
시절을 이렇게 떠올리는 시기가 올 줄 알았다면 더 신나게 더 마음껏 즐기고 더 많이 도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
PS:
책의 첫 문장 : 여자들은
운다. 남자들은 웃는다.
책의 끝 문장 :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
(10~11)
"세상은 말로 배울 수는 없어."
하나같이 줄담배를 피우던 대학 선배들은 종종 역설의 정수와 같은 설교를 늘어놓곤 했다. 세상을 말로 배울 수 없다는 말. 그것은 말로 배운 말이었다. 말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그들에게 배운 말로 나도 후배를 타일렀던 적이 있다. 그런데 세상을 말로 배울 수 없다는 건 사실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아닐 것이다. 경험보다 말을 많이 가진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끝없는 말들. 세상보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이야기. 아마도 세상은 언어가 소멸하는 날에 종말을 맞을 모양이다. 이제 선배들도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말과 함께 나이 들었고 나이와 함께 거짓말의 비중을 늘려왔지만 다 지나간 일을 굳이 거짓으로 덮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자, 묻습니다. 혹시 끊을 날이 올 걸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까?
(111)
"봐, 진보적 자녀는 어떤 경우에나 나타날 수 있지만 보수적 자녀는 보수적 부모에게서만 나올 수 있어. 이 비대칭이 인류의 역사가 야금야금 진보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리일 거야."
(227)
사실 나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였다. 인간은 불행이 따르면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불행이 닥치지 않는다고 의아함을 느끼지는 않는 법이다. 그리고 불행은 인간이 완전히 방심했을 때, 즉 몸과 마음의 긴장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았을 때, 무장강도처럼 불쑥 찾아와 최악의 피해를 남긴다. 그래서 그것이 불행이라고 불린다.
(254)
마음속에서만 꾹 담아둔 말. 그런 말은 검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입으로 하기 어려운 말이고, 그것만이 유일하게 입으로 할 가치가 있는 말이라고 느꼈다. 마음속에서만 담아두면 검증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380)
이름이 없어서 세상을 정처 없이 표류한 사람. 세상은 이름들이 만물을 남김없이 지배하는 곳이다. 부를 수 없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과 같다. 이름 없는 존재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뿐. 그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가슴 언저리가 아려오는 슬픔을 느낀다.
(500)
아름다움이 너무나도 드물기에 우리는 그것을 좇는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대번에 홀린다. 세상에 거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우주를 부유하는 작은 원소들처럼 그저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갈 뿐이다. 플라톤에 한 표를 던진다. 지상에 완전한 아름다움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다 배운 게 아닌가? 부질없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