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이옥전집 1 :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완역 이옥 전집 1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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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환절기라고 답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과 여름과 가을의 건널목이 좋다. 둘 중에서도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후자를 고르겠다. 그러니까 요즈음과 같은 때다. 파장이 많이 짧아지긴 했지만 태양은 여전히 여름의 그것처럼 따갑고 바람은 완연한 가을이다. 절기로 치면 추분에서 한로 상강 지나 입동 직전까지이다. 나는 이때쯤 일 년 중 최고의 정신적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같다. 평생을 저질체력으로 손가락질 받아온 몸뚱어리는 일찌감치 제쳐두고 말이다. 나는 거의 이 환절기에 취하다시피 사는 것 같은데, 아무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나의 증세가 조금이나마 호전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무엇에 취한다는 것. 그것이 일이든 취미든 도박이든 가끔은 부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중 가장 부러운 남자를 최근 만났다. 이 남자는 묵향에 취해서 묵향을 토하며 살았던 남자다. 그의 이름은 이옥. “붓 끝에 혀가 달렸다.”고 그를 극찬한 사람도 있었지만 문체반정으로 정조에게 콕 찍혀 일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남자다. 한미한 무반계의 서족이라는 출생도 한 몫 했겠다. 하지만 그는 초시에 응시하여 수석을 차지하고서도 그의 글이 격식에 어긋난다고 꼴찌로 밀려나고 군역에 복무하는 충군의 벌을 받았다.


나는 처음 이 남자를 도서관에서 주워왔다. 그러니까 동네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한다고 필요한 책이 있으면 가져가라는 공지가 떴고 나는 거기 가서 『담배, 연경의 모든 것』을 가져왔다. 몇 년 동안 책꽂이에 죽은 듯이 박혀있더니 그가 책의 향기에 취한 탓인지 내가 환절기에 취한 탓인지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이상하다! 먹은 누룩이 아니고, 책에는 술그릇이 담겨있지 않는데 글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겠는가? 장차 단지를 덮게 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런데 글을 읽고 또다시 읽어, 읽기를 삼 일 동안 오래했더니 꽃이 눈에서 생겨나고 향기가 입에서 풍겨 나와, 위장 속에 있는 비릿한 피를 맑게 하고 마음속의 쌓인 때를 씻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이 즐겁고 몸이 편안하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어가게 한다.” <墨醉香序 이옥전집1권, 268쪽>  

책을 어떻게 읽으면 눈에 꽃이 피고 향기가 입에서 풍겨 나온단 말인가? 위장 속에 있는 비릿한 피를 맑게 하고 마음속의 때까지 말끔히 씻어내는 책읽기의 경지라니! 마치 알코올이 모세혈관을 광포한 말처럼 달려 나가 혈관을 확장하고 심장을 펌프질 하고 뇌세포를 마비시킨 다음 지금까지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사람을 퀵 배송한 다음에야 느낄 수 있는 기분일 것 같다. 아무것에도 취해보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시여(詩餘)는 사(詞)이지, 술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취(醉)’라고 이름 붙이니, 그 글이 사람의 폐부를 적시고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흥겹게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자가 그 누구인들 취하지 않으리오. 나도 이제 진실로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하게 되었다.
크게 취해서 취함이 극에 달한 자는 반드시 토하게 되는 것이니, 마치 옛날에 이불에 토했다는 것과 혹 수레에 토했다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나는 술이 있어서 취하면 토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니, 나의 주벽이 그런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읽고서 이것을 지은 것은 또한 내가 취하여 토한 것이다. <묵토향의 앞에 적는다, 이옥전집1, 270> 


술 마시고 토하는 일은 나도 잘 할 수 있다. 소주 세 잔, 막걸리 두어 잔, 맥주 두어 병 정도면 아주 공손한 자세로 변기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몸과 정신을 취하게 하지 못한 상태에서 토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지구상의 모든 이에게 추파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그 흔한 알코올마저도 자기로 하여금 취하는 것을 내게는 허락하지 않으니 술에게서조차 버림받은 나는 그가 정조에게서 버림받은 것을 은혜 입은 광신도처럼 찬양해야할 판이다.

토하는 것은 진실로 취한 사람의 보통 일인데, 위가 약하거나 결벽증이 있는 자는 남이 토하는 것을 보고 또한 그 때문에 토하기도 한다. 나는 남들이 나의 이 <묵토향>편을 보고 땅바닥에 손을 짚고 꽥꽥 구역질을 하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없다. < 묵토향의 앞에 적는다. 이옥 전집1 271)

중국여행길에서는 아침에 호텔에서 주는 흰죽 한 그릇만 먹고 4박 5일을 버틸 만큼 위도 부실하고, 아이들이 젖을 먹고 게우면 나도 같이 토악질을 할 만큼 결벽증(근데 이거 내가 아는 결벽증이랑 다르잖아?)도 있다. 지금 내가 두어 시간 만에 휘둘려 쓴 이 글이 이 옥의 토사물을 보고 내가 땅바닥에 손을 짚고 꽥꽥 구역질을 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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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10-2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니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보관함에 담아갈게요.
환절기, 건널목, 건너다... 이말에 사로잡히네요.
이게 길을 건널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딱 제게 오는 것 같아요.

반딧불이 2010-10-25 23:39   좋아요 0 | URL
음주교정에 이어, 음주스크랩은 아니시죠?
농담이었어요~ ㅎㅎ

프레이야 2010-10-26 19:16   좋아요 0 | URL
헤헤 음주는 아니었고 그 뒤에 밤늦게 했어요ㅋ

비로그인 2010-10-25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취하는 글이네요 ㅋㅋ
환절기를 좋아하고 술 몇 잔이면 불콰해지지만 취해본 적 없고...
반딧불이님의 체질과 제 체질이 많이 닮았네요 ㅎㅎ

"마치 알코올이 모세혈관을 광포한 말처럼 달려 나가 혈관을 확장하고 심장을 펌프질 하고 뇌세포를 마비시킨 다음 지금까지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사람을 퀵 배송한 다음에야 느낄 수 있는 기분일 것 같다."

동감입니닷!!^^

반딧불이 2010-10-25 23:41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후와님도 저질체력??? ㅋㅋ
이거 자꾸만 후와님이 궁금해지는데요.

cyrus 2010-10-2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옛 글을 읽으면 참 좋은거 같습니다.
외국의 시랑 그 읽는 분위기와 느끼는 정서도 다르니까요.
그러고보니 저도 한시 안 읽은 지 꽤 됐네요.
세계문학작품만 읽다보니 참...-_-
반딧불이님의 글을 읽고나니, 한국고전문학들도 읽고 싶어지네요,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도 이옥 전집이 있던거 같기도 해서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ㅋ

반딧불이 2010-10-25 23:46   좋아요 0 | URL
처음 읽을 땐 '사랑스러운 찌질이'라고 불렀드랬는데 아무래도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이름짓기를 다시해야할 듯해요. 책값이며 분량이 묵직하니까 도서관 가시면 한번 훑어보세요. 정말 재미있는 아저씨여요.

양철나무꾼 2010-10-2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랑스러운 찌질이'가 더 맘에 드는 걸요~
이옥도 궁금하지만,전 이 가을 님도 좀 궁금합니다.^^

반딧불이 2010-10-26 12:37   좋아요 0 | URL
하는 짓을 보면 찌질이가 분명한데..글을 보면 찌질이라고 할 수가 없더라구요. 제가 이름을 붙여주는건 상당한 애정의 표현인데 마땅한 이름이 없어서 고민에요.

이옥은 도서관에서 금방 궁금증을 해소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저에 대한 궁금증은 어떻게 해드려야 하나 저도 고민이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문학 전공수업을 들으며 이옥의 이름을 들은듯도 해요. '소품문학'과 관련해서요.
벽사 이우성 문하의 제자들이 번역을 했군요? 고전문학은 정말 순교자적 정신으로 번역을 하는 분야지요. 품이 많이 들지만, 알아주는 이도 없구요.
겨울 날씨네요. 전 감기 들어서 병원에 잠깐 들렸답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반딧불이 2010-10-26 12:40   좋아요 0 | URL
저는 정말 이 책을 번역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더라구요. 번역이 없었더라면 이 아름다운 글들을 한편도 못봤을거 아니에요.
정말 오랜만에 저를 흥분시키는 글을 발견해서 감기는 근처에도 못오고 있습니다. 근데 이맘때쯤이면 감기정도는 한번 앓아주시는 것도 계절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어요? 그래야 겨울을 건강하게 나실 수 있으실테니까요. 너무 심하게 앓지는 마시구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11-0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볼까 했는데, 가격이 만만치가 않네요.
속물이라고 불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도서관에 들여놔 달라고 신청해야겠네요 ^^;

반딧불이 2010-11-03 16:52   좋아요 0 | URL
속물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 저도 책값내는데 손이 벌벌 떨리던걸요~ 이거 사느라고 다윈평전을 못사서 저도 도서관에 구입요청했놨어요. 근데 요청하나마나 가서 한번 들여다보면 아마 밑줄긋고 싶어서 또 사고 말거에요.

도란도란 2010-11-1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반딧불이님!^^ 알찬 블로그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반딧불이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반딧불이 2010-11-22 12:35   좋아요 0 | URL
네..감사합니다만 저의 관심분야는 아니네요.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넙치 2011-01-19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반딧불이님 리뷰 봤더니 밑줄 그은 곳이 똑같아요!ㅎ
반딧불이님 저질체력도 완전 공감.ㅋ

반딧불이 2011-01-19 15:29   좋아요 0 | URL
이럴땐 하이파이브 해야되는데 말이에요. 근데 넙치님도 저질체력이세요?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 소설 (최신판)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류대성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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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심리와 갈등, 정서와 분위기, 역사적 상황이라는 각각의 주제아래 4편씩을 묶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눈여겨 보아야할 주제들이다. 주제에 맞게 작품이 잘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심리와 갈등’에 실린 4편은 모두 가슴이 뭉클한 이야기들이다. 아이들은 이현주의 <육촌형>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폭력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매를 맞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인지 때리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정서와 분위기’에 있는 단편들에서는 각 편마다 전라도 강원도 등의 사투리가 등장한다. 전성태의 <소를 줍다>는 농촌을 배경으로 찰진 전라도 방언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이 전라도 사투리가 외국어보다도 더 낯선 모양이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영어로 한다. 한 녀석은 7번을 읽었고 마지막에는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좀 이해가 되더라나....... ‘소’하면 생각나는 것이라곤 스테이크 밖에 없다는 아이들이다. 온갖 힌트를 주며 침대위에 신경증 환자를 눕혀놓은 프로이드처럼 추궁을 했더니 간신히 광우병과 촛불 얘기도 나온다.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핸드폰이면 몰라도 소를 어떻게 주워오며 왜 주워 오느냐고 되묻는다. 또 한 녀석은 아들이 소를 주워왔으면 그냥 아무 말 말고 키우면 되지 왜 그걸 되돌려주지 못해 안달이냐고, 도무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단다. 이런 아이들에게 <워낭소리>를 보게 했더니 한 장면도 이해할 수 없었고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며 이런 영화를 보게 한 내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역사적 상황’이라는 주제 하에 묶인 <수난이대>, <학>, <기억 속의 들꽃>은 한국전쟁이 배경이고 함께 묶인 <진구네가 겪었던 그해 여름 이야기>는 70년대 산업화시대의 도시빈민의 이야기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소설로만 읽기에는 안타까운 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이에겐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전쟁영화가 훨씬 더 현장감 있게 다가가는 모양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소설은 소설이고 현실은 더욱 소설 같다는 반응이다.

아이들에게 읽은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쓰게 하면서 작가소개를 곁들이라고 시켰다. 나는 작품 앞에 간단하게 적혀있는 작가소개나, 가지고 있는 책에 실린 연보를 참조하라고 덧붙였었는데 아이들은 모두 네이버 지식인을 이용했다. 작가 윤흥길에 대해서는 지식인 검색에 안 나온다고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고 한다. 사용자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아이들을 통해 네이버 지식인의 폐해를 맛보는 것은 씁쓸했다. 

이 시리즈를 읽힌 일차적인 목표는 시, 소설, 수필 등의 각 장르의 차이를 이해하고 각 장르별 독서의 방법을 나름대로 경험해보게 하는 것이었다. 문학작품을 통해 당대를 이해하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도록 하려던 것은 한참 뒤로 미루어야 할 듯 싶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Teaching is Learning이라는 말이 내게는 거의 진리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기성세대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이 아이들이  나와 같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이나 통념에 저항하는 청년으로 자라나기를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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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4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0-25 09:10   좋아요 0 | URL
ㅎㅎ 저 국어교사 아니에요. 그러니 띄어쓰기 맞춤법 이모티콘 남발 하셔도 아무 상관없어요.
외국에서 살다온 제 조카녀석과 같은 조건에 있는 친구녀석이 함께 읽었어요.

2010-10-25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5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0-25 09:15   좋아요 0 | URL
선생이 말뜻 그래도 먼저태어났다는 뜻이라면 몰라도 직업은 아니에요. 근데 저와 공부하는 녀석들은 학교 안 가고 그냥 저랑 공부해서 검정고시보겠다는 넘도 있어요~ ㅋㅋ

허전하고 헛헛하셨다는건 그만큼 애정이 많으셨던 게지요..

라로 2010-10-2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도 가르치시는 군요!!
화상으로도 가르치신다면 제 아이들도 부탁드리고 싶네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죠??

반딧불이 2010-10-25 15:51   좋아요 0 | URL
어 나비님 어디다녀 오신거에요? 근데 이 잘생긴 남정네는 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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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만족, 클릭 소리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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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깔끔하고 재질도 좋은데 어댑터와 마우스 넣을 공간이 없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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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이 뭐지? : 음양편 젊은 한의사가 쉽게 풀어 쓴 음양오행
어윤형, 전창선 지음 / 와이겔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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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문학과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에 대한 상식이 필요했다. 종교도 없으면서 내가 <표준 새 번역 개정판 성경전서>를 사서 가끔씩이나마 들여다보는 이유다. 최근 우리 고전을 들여다보면서 또 필요해진 것이 음양오행에 대한 이해였다. <동의보감>에 이어 최근 이옥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필요가 가중되었다. 이옥 전집 1권의 제목은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이다.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에 대해 이옥은 음양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 나는 알겠다. 하늘은 남자에 해당하고, 땅은 여자에 해당하는데, 여자는 음의 기운이요, 남자는 양의 기운이다. 양기는 자월(子月)에 생겨나 진사에서 왕성한 까닭에 사월은 순전한 양의 기운이 된다. 그러나 천도(天道)는 성하면 쇠하는 법이니, 사월(巳月)이후 부터는 음이 생겨나고 양은 점차 쇠한다. 쇠하면서 무릇 서너 달이 지나면 양의 기운이 소멸하여 다하는데, 옛사람이 그때를 일러 ‘가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즉 가을이라는 것은 음의 기운이 성하고 양의 기운은 없는 때이다. ...... 오직 사람으로 양의 기운을 타고난 자가 어찌 가을을 슬퍼하지 않겠는가?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움이 많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픔이 많다”라고 한다. 이는 자연이 가져다주는 느낌이다.   <이옥 전집 1권 442-443쪽>

 

 

 
     

 
너무나도 쉽게 또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게 설명해두어서 달리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읽어도 읽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될 것이 염려되어 짬짬이 음양오행에 대해 눈도장이라도 찍어두기로 한다. 

사실 나는 음양이라고 하면 단지 해와 달, 남자와 여자를 떠올리거나 사주팔자, 관상 등을 떠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거나 도올 같은 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라 여기고 알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내가 전혀 기웃거려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하는 의혹과 조바심이 생겨났다.  

단순히 이분법으로 알고 있었던 해/달, 남/여 외에도 불/물, 동물/식물, 단단함/부드러움, 양지/음지, 기쁨/슬픔 등 서로 대립하는 성질을 모두 음양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서로 쌍으로 둘이면서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태극기가 음양오행의 축소판처럼 보였고 카를 구스타프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도 음양이론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동안 신비와 미신의 너울로 너울거리던 것이 하나씩 내 머리 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언제나 좋지 않은 일을 탓하고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릴 때 흔히 사용하는 사주팔자 타령의 그 ‘사주팔자’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알고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사주팔자에서의 사주(四柱) 즉 네 개의 기둥은 인간이 태어난 생년월일을 말하고, 팔자(八字)는 그것을 여덟 개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었다. 즉 천간 10개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와 12개의 지간(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을 이용하여 생년월일을 갑자년 을축월 계축일 신유시 하는 식의 갑자, 을축, 계축, 신유 의 여덟 글자로 바꾸어 우주의 원리와 비교해보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성을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하늘의 이치가 곧 사람의 이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성격이 어떠하고 등을 알아맞히는 것이 사주가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자신의 생년월일에 적용하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옛글을 이해하는데 밑 걸음이 되고자 들여다 본 것이 처음 접하는 신기함으로 인해 글은 뒷전이고 본인의 사주팔자를 살펴보는 일에 흠뻑 젖어있다.

그러나 이옥의 말처럼 모든 것은 성하면 쇠하는 법. 젖어있던 것은 마르게 마련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되면 단지 입술에서 이열치열 하며 나불거리던 여름에는 삼계탕, 겨울에는 냉면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여러 가지 지구의 현상이 나타나듯이 내 인생의 어긋남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긍정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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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10-2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에 와서야 동양의 남녀관을 종속적으로 파악하지 고대에도 그리했을지 의문입니다. 음양만 놓고 봐도 그렇지요. 융은 상당히 평등한 관계로 남녀를 본듯 해요. 그는 남녀가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이 평등을 해치지 않는다고 보았거든요. 의식과 무의식 측면에서 다른 면을 서로 보충하며 비슷한 크기의 인격으로 변할수 있다고 보니까요. 그게 아니마,아니무스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프로이트는 비판할 부분이 있죠. 그는 여성의 열등감을 남근결손에서 찾잖아요? 해서 일방적으로 여성심리를 남성우위의 관점에서 서술하구요.
음양을 아니마 아니무스와 연결시키는게 탁견인듯 해 중언부언했습니다^^;

반딧불이 2010-10-22 01:11   좋아요 0 | URL
음양이론에서는 종속이라는 개념보다는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개인의 무의식을 강조했던 프로이트와는 달리 집단 무의식을 강조하면서 융은 프로이트와 갈라지는데 융이 동양사상에 상당히 경도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동양철학에서 음양의 합을 태극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도 아니마 아니무스가 서로 조화로워야 안정적이라는 거니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갖고 계시고 언제나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2 12:14   좋아요 0 | URL
근래 융의 자서전을 읽을까 했는데, 이 리뷰를 보니 읽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결해집니다.
융이 직접적으로 음양에 관해선 말하지 않을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알기론요. 관음보살을 비롯해 불교 쪽 연구는 많이 했지요. 음양과 연관시키는 게 제겐 참신해 보였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최근엔 베르나르 리에테르라는 경제학자가 융과 아담 스미스를 연결시키던데 흥미로웠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융이 말하는 '위대한 어머니' 원형에 대한 그림자가 희소성에 대한 탐욕과 두려움이라고 해요. 아담 스미스가 빅토리아조 시대에 '위대한 어머니'에 대한 억압이 절정에 달하자 탐욕의 메커니즘으로서 경제학을 칭시했다고 합니다. 어미를 잃고, 갈 길도 잃은 아이들이 돈이라는 탐욕의 아들과 딸이 되어버린거죠.
융은 한 번 공부해볼만한 사람 같습니다.
제게 공부의 마음을 일게 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반딧불이 2010-10-22 13:06   좋아요 0 | URL
융의 자서전은 분량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어요. 저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는데 융의 저작중 가장 잘 읽히는 책 같아요. <원형과 무의식>은 우리나라의 융학회에서 번역을 했다는데 특히 앞부분의 번역은 안그래도 속력이 안나는 융의 이론에 자꾸만 브레이크를 걸더라구요.

경제학자와 융의 조합. 도무지 상상이 안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원형과 무의식>에서는 다양한 어머니 콤플렉스가 나와요. 그걸 읽고 나니까 영화나 최근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좀 보이는 것 같아 흥미로웠어요.

남은 관심사는 융이 우리 안의 무의식을 계발해야한다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최근 '인셉션'이라는 영화에서는 무의식까지도 인간이 조절하는 걸 봤어요. 참 놀라웠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더라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2 13:57   좋아요 0 | URL
먼저 시작하셨군요?
소설가 조성기 선생님과 트위터를 하는데 이 분이 번역하셨다길래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작가분이라서요.
영화 <인셉션>은 선배가 귀가 닳도록 보라는데, 여태 미뤄두고 있어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는 몰아서 한 번 봐야겠어요^^
말슴해주신 무의식과 관련해서도 염두에 두구요.

반딧불이 2010-10-22 15:03   좋아요 0 | URL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보게 되엇어요. 얼마전 개봉했던 셔터아일랜드와 인셉션이 동일선상에서 보이더라구요. 저는 이 사람이 혹시 정신분석학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기회되시는대로 영화보시고 좋은 말씀 주세요.^.^

2010-10-22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0-22 15:06   좋아요 0 | URL
ㅎㅎ 제 독서는 그리 훌륭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도움 주시는 분들이 많아 자극을 받지요. 독서도 좋지만 좋은 말씀들은 댓글에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들때가 많아요.

cyrus 2010-10-22 16: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다양한 독서를 하시느 분들을 만나서 참 좋은거 같습니다.
저도 반딧불이님을 포함해서 여럿 분들의 서재를 통해서
유익한 정보과 새로운 감정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반딧불이 2010-10-23 00:43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책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여서 제가 알라딘을 떠나지 못해요. 저는 오로지 텍스트 지향주의자지만 사이러스님의 리뷰들은 이미지까지 곁들여서 지루하지 않고 훨씬 재미있었어요. 종종 오셔서 좋은 말씀 남겨주세요.

blanca 2010-10-2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유행가 가사 같은 얘기가 아니었군요. 놀라워요.. 그리고 댓글도 너무 유익하고...융의 자서전을 읽고 난 참이라 반딧불이님과 파고세운닥나무님의 주고받음이 참 와닿아요..반딧불이님, 사주도 일종의 통계학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얘기도 그렇고 저도 공부해 보고 싶은데 결정적으로 저는 한자가--;; 안됩니다. 그래서 반딧불이님이 너무 부러워요. 시월의 끝을 붙잡고 반딧불이님 리뷰를 읽다 이제 정말 드디어 한자 공부를 더는 미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님의 깊이있는 그리고 체계있는 독서는 저를 언제나 정신차리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딧불이 2010-10-23 00:57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우리가 은연중에 사용하는 말들이 음양이론에서 나온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개와 고양이는 천적관계라고 하는데 이것을 동양학에서는 상극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기고 지는 동물이 함께 있으면 지는 동물은 절대로 멸종하지 않는데요. 쥐에게 고양이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숙명적인 필요악이 되기 때문이라고해요. 상생은 좋은것 상극은 나쁜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제가 뒷통수를 한대맞은 격이었어요. 물론 유쾌한 뒷통수죠.

저도 한자 잘 몰라요. 요즈음은 번역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몰라도 다 할 수 있는걸요. 용기를 내보셔요. 불끈!! 이미 블랑카님 정도의 독서량이면 많은 것을 알고계실테니까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고 자신합니다.

라로 2010-10-2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댕개 같은 사람이라 자세히는 몰라도 풍월은 잘 읊습니다.ㅎㅎㅎ
암튼 올려주시는 음양 이야기는 늘 재미있어요~.
제 사주도 좀 봐주시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 또 딴소리 들을까봐~~~.ㅋㅋㅋ
저는 요즘 불교 서적을 읽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모든 학문이 밀접하게 다 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위에다가 잘 지내시냐고 여쭸는데 포스팅이 많이 올라온 걸 보니 잘 지내시고 계신것 같아서 기뻐요~.^^

반딧불이 2010-10-25 15:53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저의 도가 깊어지면 그때는 자진해서 봐드리겠사오니..섭섭히 생각지 마시오소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