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이 뭐지? : 음양편 젊은 한의사가 쉽게 풀어 쓴 음양오행
어윤형, 전창선 지음 / 와이겔리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의 문학과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에 대한 상식이 필요했다. 종교도 없으면서 내가 <표준 새 번역 개정판 성경전서>를 사서 가끔씩이나마 들여다보는 이유다. 최근 우리 고전을 들여다보면서 또 필요해진 것이 음양오행에 대한 이해였다. <동의보감>에 이어 최근 이옥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필요가 가중되었다. 이옥 전집 1권의 제목은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이다.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에 대해 이옥은 음양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 나는 알겠다. 하늘은 남자에 해당하고, 땅은 여자에 해당하는데, 여자는 음의 기운이요, 남자는 양의 기운이다. 양기는 자월(子月)에 생겨나 진사에서 왕성한 까닭에 사월은 순전한 양의 기운이 된다. 그러나 천도(天道)는 성하면 쇠하는 법이니, 사월(巳月)이후 부터는 음이 생겨나고 양은 점차 쇠한다. 쇠하면서 무릇 서너 달이 지나면 양의 기운이 소멸하여 다하는데, 옛사람이 그때를 일러 ‘가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즉 가을이라는 것은 음의 기운이 성하고 양의 기운은 없는 때이다. ...... 오직 사람으로 양의 기운을 타고난 자가 어찌 가을을 슬퍼하지 않겠는가?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움이 많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픔이 많다”라고 한다. 이는 자연이 가져다주는 느낌이다.   <이옥 전집 1권 442-443쪽>

 

 

 
     

 
너무나도 쉽게 또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게 설명해두어서 달리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읽어도 읽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될 것이 염려되어 짬짬이 음양오행에 대해 눈도장이라도 찍어두기로 한다. 

사실 나는 음양이라고 하면 단지 해와 달, 남자와 여자를 떠올리거나 사주팔자, 관상 등을 떠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거나 도올 같은 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라 여기고 알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내가 전혀 기웃거려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하는 의혹과 조바심이 생겨났다.  

단순히 이분법으로 알고 있었던 해/달, 남/여 외에도 불/물, 동물/식물, 단단함/부드러움, 양지/음지, 기쁨/슬픔 등 서로 대립하는 성질을 모두 음양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서로 쌍으로 둘이면서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태극기가 음양오행의 축소판처럼 보였고 카를 구스타프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도 음양이론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동안 신비와 미신의 너울로 너울거리던 것이 하나씩 내 머리 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언제나 좋지 않은 일을 탓하고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릴 때 흔히 사용하는 사주팔자 타령의 그 ‘사주팔자’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알고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사주팔자에서의 사주(四柱) 즉 네 개의 기둥은 인간이 태어난 생년월일을 말하고, 팔자(八字)는 그것을 여덟 개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었다. 즉 천간 10개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와 12개의 지간(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을 이용하여 생년월일을 갑자년 을축월 계축일 신유시 하는 식의 갑자, 을축, 계축, 신유 의 여덟 글자로 바꾸어 우주의 원리와 비교해보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성을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하늘의 이치가 곧 사람의 이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성격이 어떠하고 등을 알아맞히는 것이 사주가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자신의 생년월일에 적용하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옛글을 이해하는데 밑 걸음이 되고자 들여다 본 것이 처음 접하는 신기함으로 인해 글은 뒷전이고 본인의 사주팔자를 살펴보는 일에 흠뻑 젖어있다.

그러나 이옥의 말처럼 모든 것은 성하면 쇠하는 법. 젖어있던 것은 마르게 마련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되면 단지 입술에서 이열치열 하며 나불거리던 여름에는 삼계탕, 겨울에는 냉면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여러 가지 지구의 현상이 나타나듯이 내 인생의 어긋남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긍정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을 믿는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에 와서야 동양의 남녀관을 종속적으로 파악하지 고대에도 그리했을지 의문입니다. 음양만 놓고 봐도 그렇지요. 융은 상당히 평등한 관계로 남녀를 본듯 해요. 그는 남녀가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이 평등을 해치지 않는다고 보았거든요. 의식과 무의식 측면에서 다른 면을 서로 보충하며 비슷한 크기의 인격으로 변할수 있다고 보니까요. 그게 아니마,아니무스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프로이트는 비판할 부분이 있죠. 그는 여성의 열등감을 남근결손에서 찾잖아요? 해서 일방적으로 여성심리를 남성우위의 관점에서 서술하구요.
음양을 아니마 아니무스와 연결시키는게 탁견인듯 해 중언부언했습니다^^;

반딧불이 2010-10-22 01:11   좋아요 0 | URL
음양이론에서는 종속이라는 개념보다는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개인의 무의식을 강조했던 프로이트와는 달리 집단 무의식을 강조하면서 융은 프로이트와 갈라지는데 융이 동양사상에 상당히 경도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동양철학에서 음양의 합을 태극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도 아니마 아니무스가 서로 조화로워야 안정적이라는 거니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갖고 계시고 언제나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2 12:14   좋아요 0 | URL
근래 융의 자서전을 읽을까 했는데, 이 리뷰를 보니 읽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결해집니다.
융이 직접적으로 음양에 관해선 말하지 않을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알기론요. 관음보살을 비롯해 불교 쪽 연구는 많이 했지요. 음양과 연관시키는 게 제겐 참신해 보였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최근엔 베르나르 리에테르라는 경제학자가 융과 아담 스미스를 연결시키던데 흥미로웠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융이 말하는 '위대한 어머니' 원형에 대한 그림자가 희소성에 대한 탐욕과 두려움이라고 해요. 아담 스미스가 빅토리아조 시대에 '위대한 어머니'에 대한 억압이 절정에 달하자 탐욕의 메커니즘으로서 경제학을 칭시했다고 합니다. 어미를 잃고, 갈 길도 잃은 아이들이 돈이라는 탐욕의 아들과 딸이 되어버린거죠.
융은 한 번 공부해볼만한 사람 같습니다.
제게 공부의 마음을 일게 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반딧불이 2010-10-22 13:06   좋아요 0 | URL
융의 자서전은 분량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어요. 저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는데 융의 저작중 가장 잘 읽히는 책 같아요. <원형과 무의식>은 우리나라의 융학회에서 번역을 했다는데 특히 앞부분의 번역은 안그래도 속력이 안나는 융의 이론에 자꾸만 브레이크를 걸더라구요.

경제학자와 융의 조합. 도무지 상상이 안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원형과 무의식>에서는 다양한 어머니 콤플렉스가 나와요. 그걸 읽고 나니까 영화나 최근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좀 보이는 것 같아 흥미로웠어요.

남은 관심사는 융이 우리 안의 무의식을 계발해야한다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최근 '인셉션'이라는 영화에서는 무의식까지도 인간이 조절하는 걸 봤어요. 참 놀라웠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더라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2 13:57   좋아요 0 | URL
먼저 시작하셨군요?
소설가 조성기 선생님과 트위터를 하는데 이 분이 번역하셨다길래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작가분이라서요.
영화 <인셉션>은 선배가 귀가 닳도록 보라는데, 여태 미뤄두고 있어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는 몰아서 한 번 봐야겠어요^^
말슴해주신 무의식과 관련해서도 염두에 두구요.

반딧불이 2010-10-22 15:03   좋아요 0 | URL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보게 되엇어요. 얼마전 개봉했던 셔터아일랜드와 인셉션이 동일선상에서 보이더라구요. 저는 이 사람이 혹시 정신분석학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기회되시는대로 영화보시고 좋은 말씀 주세요.^.^

2010-10-22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0-22 15:06   좋아요 0 | URL
ㅎㅎ 제 독서는 그리 훌륭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도움 주시는 분들이 많아 자극을 받지요. 독서도 좋지만 좋은 말씀들은 댓글에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들때가 많아요.

cyrus 2010-10-22 16: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다양한 독서를 하시느 분들을 만나서 참 좋은거 같습니다.
저도 반딧불이님을 포함해서 여럿 분들의 서재를 통해서
유익한 정보과 새로운 감정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반딧불이 2010-10-23 00:43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책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여서 제가 알라딘을 떠나지 못해요. 저는 오로지 텍스트 지향주의자지만 사이러스님의 리뷰들은 이미지까지 곁들여서 지루하지 않고 훨씬 재미있었어요. 종종 오셔서 좋은 말씀 남겨주세요.

blanca 2010-10-2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유행가 가사 같은 얘기가 아니었군요. 놀라워요.. 그리고 댓글도 너무 유익하고...융의 자서전을 읽고 난 참이라 반딧불이님과 파고세운닥나무님의 주고받음이 참 와닿아요..반딧불이님, 사주도 일종의 통계학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얘기도 그렇고 저도 공부해 보고 싶은데 결정적으로 저는 한자가--;; 안됩니다. 그래서 반딧불이님이 너무 부러워요. 시월의 끝을 붙잡고 반딧불이님 리뷰를 읽다 이제 정말 드디어 한자 공부를 더는 미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님의 깊이있는 그리고 체계있는 독서는 저를 언제나 정신차리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딧불이 2010-10-23 00:57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우리가 은연중에 사용하는 말들이 음양이론에서 나온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개와 고양이는 천적관계라고 하는데 이것을 동양학에서는 상극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기고 지는 동물이 함께 있으면 지는 동물은 절대로 멸종하지 않는데요. 쥐에게 고양이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숙명적인 필요악이 되기 때문이라고해요. 상생은 좋은것 상극은 나쁜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제가 뒷통수를 한대맞은 격이었어요. 물론 유쾌한 뒷통수죠.

저도 한자 잘 몰라요. 요즈음은 번역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몰라도 다 할 수 있는걸요. 용기를 내보셔요. 불끈!! 이미 블랑카님 정도의 독서량이면 많은 것을 알고계실테니까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고 자신합니다.

라로 2010-10-2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댕개 같은 사람이라 자세히는 몰라도 풍월은 잘 읊습니다.ㅎㅎㅎ
암튼 올려주시는 음양 이야기는 늘 재미있어요~.
제 사주도 좀 봐주시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 또 딴소리 들을까봐~~~.ㅋㅋㅋ
저는 요즘 불교 서적을 읽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모든 학문이 밀접하게 다 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위에다가 잘 지내시냐고 여쭸는데 포스팅이 많이 올라온 걸 보니 잘 지내시고 계신것 같아서 기뻐요~.^^

반딧불이 2010-10-25 15:53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저의 도가 깊어지면 그때는 자진해서 봐드리겠사오니..섭섭히 생각지 마시오소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