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비 에어로프레스 커피 & 에스프레소 메이커
AEROBIE, INC
평점 :
절판


초간단 맑은 맛을 내는데 그만이지만 물 온도가 맛에 절대적 영향을 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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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5-1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기로 가열하는 제품이 아닌가 봐요.
그렇다면 물 끓이기가 진짜 관건이겠는걸요~^^

반딧불이 2011-05-11 11:34   좋아요 0 | URL
전기포트에 끓여서 붓는데..온도를 잘 맞추면 환상적인 맛이나요. 주방용 온도계를 하나 사야되나 싶을 정도로 민감해요.

루쉰P 2011-05-1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물 온도라...정수기로 타 먹는 커피는 그래서 항상 실패하는군요. 게다가 믹스라서?

반딧불이 2011-05-14 02:25   좋아요 0 | URL
제가 잘 모르지만 인스턴트 커피는 물 온도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을거 같아요. 믹스를 드시면 온도보다는 물의 양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루쉰P 2011-05-15 08:01   좋아요 0 | URL
호...예리하심. 물의 양이라 뭔가 커피 한 잔에도 칼 같은 냉철함이 요구된다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오늘입니다.

파워콜 2011-07-16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반적으로 정수기 온수의 온도는 80도이며, 차의 최적 추출온도와 같습니다. 커피는 고온 추출시 쓴 맛이 강해지며, 카페인 성분이 증가합니다. 에어로프레스는 토탈이머전 방식의 브드러운 공기압을 사용하여 추출하므로 저온 추출이 가능하며 깊고 풍부한 향미를 맛보실 수 있습니다.
 
<사유의 악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유의 악보』,  

이 책에 대해 내가 쓰는 모든 말은 변죽이거나 불협화음이거나 삑사리다.


1. 변죽


이 책『사유의 악보』를 받아들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사유악부>였다. <사유악부>는 정조 때 의 인물 김려의 글이다. 그는 이옥, 강이천의 친구로 당대 최고의 소품작가였다고 한다. 김려는 강이천 사건에 연루되어 부령과 진해로 두 번 유배를 갔다. 부령에 유배되었을 때 만나 사랑에 빠졌던 기생 연희를 그리워하는 글이 남아있다. <사유악부>가 온통 연희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글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소품문을 쓴다는 것이 그가 귀양을 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이렇게 감각적인 글을 쓰고도 정조에게 찍히지 않았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其. 1


問汝何所思 묻노니, 그대 무얼 생각하는가

所思北海煝 내가 그리는 건 북쪽 바닷가

眼中分明城東路 눈 감아도 뚜렷한 성 동쪽 길

第二橋邊蓮姬住 그 곳 두 번째 다리 옆에 연희가 살았지

屋前一道淸溪流 집 앞에는 길이 있고 맑은 시내 흐르고

屋後亂石顚山周 집 뒤엔 암석이 즐비하고 산은 병풍을 두른 듯

溪上楊柳數十株 시냇가엔 늘어진 버들이 수 십주가 자라고

一株堂門映粉樓 문 앞에 서면 한그루 나무와 고운 누각

樓上對牕安機杼 누각에선 창을 마주하여 앉아 베를 짜고

樓下石臼高尺許 누각 아래는 한자쯤 되는 고상한 절구가 있었지

樓南小井種櫻桃 누각 남쪽 작은 우물가엔 복숭아와 앵도가 있고

樓外直北會寧去 누각 밖의 북쪽으로 곧장 난 길은 회령 가는 길..



其. 二


問汝何所思 묻노니, 그대 무얼 생각하는가

所思北海湄 내가 그리는 건 북쪽 바닷가

全樹桃花結訌萼 복숭아 꽃망울 나무에 온통 어지럽게 엉켜 있고

一花先坼明綽約 그 중에 먼저 피어난 예쁜 꽃 한 송이 보여

我手攀枝摘花來 나는 손으로 가지를 잡고 꽃을 따서는

恰似蓮姬寶靨開 연희가 웃을 때 보조개랑 닮았구나 하면서

聊將投擲蓮姬前 슬쩍 연희에게 던져 주니

蓮姬雙擎玩一廻 연희는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살피다가

笑彈纖指捻一捻 웃으면서 고운 손으로 꽃잎을 하나씩 따서 내게 던지며

道似阿郞醉紅頰 술에 취한 서방님 붉은 뺨 닮았네요, 하며 대꾸 했지

我今老醜還喫笑 나는 지금 늙고 추한걸 하니 연희 뒤돌아서 깔깔 웃고

强把花鬚較霜獵 난 억지로 연희를 붙들고 꽃술을 수염대신 붙이곤 했었지.



<사유악부>와 <사유의 악보>는 글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극과 극이다. <사유의 악보>를 읽다가 갑갑해지면 <사유악부>를 소리 내어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이 두 글을 한 이불 속에 재우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2. 불협화음


작가의 이력이 다채롭다. 작곡가, 비평가, 기타리스트.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은 음악적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 본문 혹은 프롤로그 에필로그가 아니라 서곡 악장 변주 종곡 등 낯선 이름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형식이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이다. 왜? 나는 악보를 볼 줄 모르니까. 다행이다. 왜? 나는 음악적 형식의 책을 읽는 것이지 책의 형식을 가진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것은 아니니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비교적 서문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대부분의 서문에는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나 의도 각 챕터별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책의 맥락을 잡고 나면 내용파악이 훨씬 쉽고 내가 꼭 필요한 부분을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책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기준으로 또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서문에 해당하는 서곡을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것이 한번 연주로 끝나는 음악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다시 읽었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이건 악보가 아니라니까 이 등신아!” 자학하며 곁가지들을 마구 잘라냈다. 잘라내면서 보니 한 문장이 평균 대여섯 줄이다. 길기는 하지만 문장에 리듬이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몰라도 줄줄 읽힌다. 음악가의 특성이 글쓰기에도 적용 되는군, 재미있는 경험인데 주절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런데 한참 저자의 리듬을 따라 가다가 술어를 맞닥뜨리면 갑자기 당혹스럽다. 왜 이런 술어가 나왔는지 모르겠는 거다. 문장이 너무 길어서 주어가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샤프를 이불 꿰매는 대바늘처럼 놀려 주어를 찾아 술어와 꿰고 문맥을 다시 짚어본다.


서곡의 첫 문단은 시대에 대한 진단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시대는 주어진 쾌락 속에서 우울하며, 강요된 안정 속에서 불안하다.” 상당히 멋지다. 그런데 나는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어진 쾌락’은 무엇이고 ‘강요된 안정’은 또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튼 이러한 시대에 “이론과 사유가 다시 촉발되고 가동되어야만 하는 필요성이 절박해진다.”고 저자는 적었다.

그러나 ‘반드시 사유해야 한다는 당위성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나도 동의한다.) 오히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사유해야 하는가’이다. (사그라지지 않는 시덥잖은 내 반항정신과 맞아떨어지는 면도 있다.) 이 책에 적힌 글들은 그러니까 왜 사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극단까지 밀고 가서 그 끝을 확인하고자 하는 작업이며 그 극단에서 그가 내린 ‘오답’이거나 또 다른 질문이고 동시에 ‘오문(誤聞)’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시작된다는 믿음을 저자가 가지고 있다고 내 멋대로 해석한다.


저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은 모두 저 극단을 ‘증폭’시키거나 ‘심화’시키거나 ‘악화’시키거나 심지어는 ‘폭발’시키기 위해서다. 오사마 빈 라덴이 저격되었다는 소식 때문인지 모래바람 부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전쟁터에 서 있는 느낌이다. ‘설득’하거나 ‘해명’하는 글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책읽기의 방식은 잠시 잊어버리자. 내가 나를 다독거리며 읽는데 저자는 이 글을 소수의 어떤 이들만을 위한 글이라고 명시해두었다.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온다. 내가 저 소수에 편입되기 위해 이 화사한 봄날 머리 싸매고 앉아서 잘라내고 재해석하면서 꿰어 맞추고 있는 것이란 말이냐! 그건 아닐 것이라고 믿기로 한다. 어떤 특권의식을 가지고 ‘소수’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또 내가 나를 다독인다.

3. 삑사리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증폭’되거나 ‘심화’되거나 ‘악화’되기로 마음먹는다. 심지어 ‘폭발’도 피해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무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내게는 정말 다행이지 않은가. 이미 폭발은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면에서 두어 번 했지만 말이다. 독자들을 흩트려 놓기로 작정한 저자 앞에 내가 정색하고 글을 쓰는 것은 농담을 다큐로 받는 것과 다름 아니다. 또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내가 기타리스트 앞에서 박자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한 쪽 굽이 떨어진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그저 들어오는 것만큼만 읽기로 한다. 내 기분 내키는 대로이니 아마도 삑사리가 틀림없을 것이다.

서문보다는 아니 서곡 보다는 훨씬 잘 읽히는 아니 들리는 변주와 악장들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일반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뒤집는 저자의 문장들을 만날 때 나는 분명 증폭되었다. 지하철 안의 맹인 걸인이 애절한 ‘비가’로 청각을 자극하여 시선을 구걸하는 것에서 ‘감정과 변용의 문제’를, 그리고 거기에서 윤리의식보다 미학적 감수성을 떠올리는 저자를 보면서 내가 왜 지하철에서 맹인들을 만날 때 그토록 마음이 불편했는가를 깨달았다.

그런가하면 증조부의 제삿날 ‘산 사람도 살게 해줘야 죽은 사람도 잘 얻어먹는 것입니다.’ 라고 구시렁거리던 저자가 ‘제사라는 형식에 대해 역전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 고백할 때 그리고 그 우월감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가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즐거우면서도 질투에 떨었다.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야하는 집안의 제사라는 행위에서 기독교에 대한 역전된 우월감을 간파하고, 거기에서 다시 전근대적인 공자의 유물론으로, 또 다시 속고 속이는 환상의 매커니즘 속에 단순히 빠져있는 것과 알면서 이용하는 것의 차이를 꿰뚫어보려는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바로 이런 것이 사유의 즐거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문학전집 출간의 변속에 감추어진 문학적 이데올로기를 언급할 때,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다룬 『아톰의 철학』이라는 책이 철학코너에,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 레저 코너에,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가 스포츠 코너에 분류되는 현상을 본 그가 단순히 분류법을 문제 삼지 않고 거기에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회의할 때, 소설을 쓰자고 말하는 시와 가지고 있는 시를 다 내놓으라고 말하는 소설을 들어 그 곳에서 조롱의 문법을 찾아내고 비평을 위치시킬 때, 나는 심화 되었다. 가금류에게 강제로 음식을 퍼먹이듯이 우리에게 교육되고 주입된 모든 것들, 그리하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는 끊임없이 다시 묻고 또 대답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단번에 읽히지 않는다. 저자의 생각의 결이 겹겹이어서 그것들을 벗기지 않으면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생각을 더듬고 차근차근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면 지적 유희가 샘물처럼 고여 있다. 물론 글의 목적이 유희가 아님은 당연하다.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들, 겉모습이 아닌 사유의 힘으로 얻어진 문장들에 사로잡힐 때, 그리하여 그 문장이 대체 어떤 사유를 거쳐 만들어졌을까를 되짚어 생각하는 것은 녹녹한 일이 아니었다. 나 같은 무지한 독자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책이다. 내게는 언젠가 통독하고 또 정독해야할 책으로 남을 것이다. 저자가 이미 서곡에 ‘소수’를 위한 책이라고 밝혀두었으니 내말은 그저 뱀발에 불과하겠지만 한 가지 저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독자를 증폭시키거나 심화시키거나 악화시키기 위해서는 방법적으로 고민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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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04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 서재에 다신 댓글에서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신 걸 본 적이 있는데(죄송!) 결국 쓰셨네요. 사유의 '악보'에 '변죽'과 '불협화음'과 '삑사리'로 대거리를 하시니 저도 그래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ㅋㅋ 아 물론 먼저 책을 읽어야겠지만 말예요. 근데 다들 어렵다고 하시니 겁이 나서 자꾸 주저되네요^^

반딧불이 2011-05-04 19:15   좋아요 0 | URL
마감날짜를 지키지 못했지만 결국 썼습니다. 덕분에 마감날짜를 어긴 최초의 글이 되었습니다. 더 있어봐야 머 더 좋은 글이 나올리도 없구요. 저의 무지와 무식과 무능을 인정하고 나니 쓰는게 별로 두렵지 않았습니다.두고두고 씹어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후와님이 주저하시면 안되죠. 제가 이런 판단을 내리기는 뭣하지만 좋은 내용이 많습니다. 빨랑 읽으시고 리뷰 올려주세욧!! 리뷰 예약1번입니닷.

쉽싸리 2011-05-04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유(思有)냐, 사유(思惟)냐,
너무 많은 생각은 오히려 해가 된다 하지만 그 '너무 많다'는 제각각이죠.
아직까지는 사유(思惟)할 때고, 그것은 사유(思有)로써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즐거운? 봄 밤 입니다. 안해님께서 장구를 두드리고 있네요.


반딧불이 2011-05-05 23:09   좋아요 0 | URL
제 알량한 사유로 남의 사유를 잰다는 것이 어찌나 고단하던지요. 또 사유(事由)는 어찌나 많던지요.
쉽싸리님께는 아름다운 봄밤이군요. 고운 꿈이 함깨하시길. ..

람혼 2011-05-05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의 위트 넘치는 쾌속의 리뷰를 타고 저 또한 즐거운 속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섬세하면서도 유머가 충만한 독해에 깊이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샤프를 이불 꿰매는 대바늘처럼 놀려 주어를 찾아 술어와 꿰고 문맥을 다시 짚어본다"는 저 멋진 표현을 읽고,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도 동시에 어떤 반가운 동류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바느질'은 심지에 제가 제 글을 읽을 때도 취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읽으시면서 느끼셨겠지만, 저의 중독(中毒/重讀) 증세는 하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의 꼬리를 무는 사태, 하나의 문장 안에서도 어떤 요소가 다른 요소들을 끊임없이 소환하고 참조하는 사태로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저뿐만 아니라 제 글을 읽는 독자 분들께서 사유의 조각들을 곱씹을 수 있게 만드는, 그리하여 말 그대로 중독되고 중독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글쓰기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을 너무 섬세하게 짚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나 제 책의 7악장(이 악장에 대해서는 독자 분들에 따라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듯한데요^^)에 대해 보여주신 깊은 관심, 그리고 섬세한 공감과 예리한 해석의 말씀을 읽었을 때 저는 큰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반딧불이님 덕분에 김려의 <사유악부>를 처음으로 읽을 수 있었네요.^^ 이 점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반딧불이 2011-05-05 22:59   좋아요 0 | URL
람혼님의 악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이따위로 삑사리를 내서 죄송합니다. 제대로 읽고 한바탕 질펀하게 놀고 싶었으나 제 여력이 여기까지밖에 안 되었습니다. 어느 곳엔가 눈 밝은 독자가 있어 람혼님의 악보에 맞춰 흥겨운 지식의 놀이마당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제게는 다른 글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7악장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4악장, 변주1, 10악장, 11악장, 변주8, 종곡 등 읽은 것들은 모두 제게 中毒은 아니더라도 重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음도 밝혀 두고 싶습니다.

<사유악부>나 <사유의 악보>는 시대를 앞서간다는 공통점이 서로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 고마워하실 것까지야...

변죽만 울린 글이 불쾌하실 수도 있으실텐데 흔쾌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1-05-05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1-05-0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글 너무 잘 읽었어요.
저자가 세계문학전집과 관련해 쓴 글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흉내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리고 꼭 비슷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많은 부분 제가 가졌던 의문을 콕 찝어서 정리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반딧불이 2011-05-06 11:38   좋아요 0 | URL
쉽게 읽히는 글들은 아니지만 공감되거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책이었어요. 차근차근 곱씹어보는 재미가 따로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조금은 해보게 되구요. 9기 신간평가단도 계속하시는 건가요?

굿바이 2011-05-06 12:55   좋아요 0 | URL
저는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좋은 글 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는 그저 읽는 재미에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
반딧불이님은 계속 하시나요?

반딧불이 2011-05-06 13:24   좋아요 0 | URL
저도 신청하지 않았어요. 신간평가단도 해보니까 제게는 거의 노가다더라구요. 저도 그냥 굿바이님의 글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글이나 읽으려구요.

양철나무꾼 2011-05-10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려를 읽었었는데...이렇게 연결짓지는 못했었습니다.
멋지십니다~^^

아웅~ㅠ.ㅠ
신간평가단을 하지 않으신다니...심정은 알 것도 같지만, 많이 아쉬운걸요.

반딧불이 2011-05-1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양철댁님도 참, 위에 밝혀두었다시피..그냥 '변죽'이자너요.~

책을 많이 읽으시고 바지런하신 양철댁님같은 분이 신간평가단을 하셔야하는데...저도 아쉬운걸요.

루쉰P 2011-05-1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게 무지와 무식과 무능을 인정하고 쓰신 리뷰라니..읽는 내내 좋은 문장들이 안에 있어서 감탄하며 읽었네요. 워낙 철학책은 잼병이라 러셀의 '서양철학사'도 소화를 못 시키고 몇 년째 책장에 꼽아 놓고 있는 저에게 참 무서운 벽 같은 책이에요.

반딧불이님은 좀 너무 심하게 겸손하신 듯해요...저는 너무 부럽습니다. ^^

반딧불이 2011-05-14 02:35   좋아요 0 | URL
내용도 만만찮았지만, 뭐랄까요...이런 글에는 어떤 리뷰를 써야하는지 정말 고민되었습니다. 책을 늦게 받은데다가 꼼꼼이 읽을 시간도 없었고 마감날짜는 지났고 그러니 머 어쩌겠어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되는대로 주어섬겨야죠.^.~

루쉬P님이 드신 밥그릇 수가 저보다 훨씬 적으시잖아요.~ 제 나이가 되면 저 같은 건 발톱에 낀 때만큼도 안 여기시게 될거에요.

루쉰P 2011-05-15 08:02   좋아요 0 | URL
무슨 그런 말씀은 인간은 몸은 20대를 넘어가면 퇴화하기는 시작해도 정신은 무한히 성장하다고 하더라구요. 아마도 반딧불이님을 뛰어넘는 일은 제 평생에는 없을 듯해요. ㅋㅋ

이렇게 독서를 하신다면 말이죠.

바까장 2012-07-2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저 바까장입니다.
말씀 들고 와서 보았습니다.
눈으로 읽다기보다는 마음으로 읽으신 듯
묘사와 서술이 재미지고, 흥겹습니다.
저도 다읽고 꼭 감상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딧불이 2012-07-30 12:52   좋아요 0 | URL
여기서 뵈니 더 반갑네요. ^.^
책으로도 모자라 강의까지 들으신다니...기대됩니다.
병원에서 뵙는 것으로는 우리의 수다(?)가 턱없이 부족하지요? 선생님과 책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쁨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래봅니다. 무더위에 건강하소서.
 
아날학파와 엠마뉘엘 라뒤리
몽타이유 - 중세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 역사도서관 005 역사도서관 5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 지음, 유희수 옮김 / 길(도서출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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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 남부의 랑그독 지방은 알비 카타리즘, 카타르파에 감염되었다. 1208년 알비파 이단에 대한 십자군 전쟁이 있었고 카타르파 최후의 보루였던 몽세귀르 성이 함락된 뒤에 이단재판이 맹위를 떨쳤다. ‘약속된 탈선의 땅’이라 불리는 이 지역에는 그 뒤에도 끈질기게 이단이 창궐한다. 도시에서 쫓긴 이단들은 이곳 산골 농민세계로 퇴각해 생존의 땅을 얻었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단자들을 좇아 이곳에 새로운 교구를 신설하고 재판을 통한 이단척결공세를 퍼붓는다.

파미에 지방에 새로 부임한 자크 푸르니에 주교는 이단 심문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그는 카타르파 이단을 색출하거나 가톨릭 교리에 어긋난 일탈행위를 색출하기 위해 이단재판관의 공격, 가택수색, 일제점거 등 모든 일을 불사했다. 특히 그는 250여명의 마을주민들을 장시간에 걸쳐 모조리 심문했다. 그는 이것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심문 내용은 카타르파에 대한 추적을 넘어 이 마을 사람들의 삶과 농민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우리는 확대경으로 땀구멍을 들여다보듯 피레네 산 해발 1300미터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한 마을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자크 푸르니에의 재판기록에 등장하는 가타르파 이단은 교황을 첫 번째 악마 즉 마왕으로 불렀고 프랑스 국왕을 두 번째, 파미에 주교를 세 번째, 카르카손 재판관을 네 번째 악마로 불렀다. 이러한 호칭은 당시 98%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앙시앙 레짐기 프랑스 사회의 제3신분이었던 시민, 노동자, 농민들의 권력층에 대한 성향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증가하는 십일조에 대한 부담, 입으로 진리를 외치면서도 비대하게 살진 성직자들을 악마로 규정했던 것이다.

랑그독 지방의 사람들은 재판소의 이단 색출에 쫓기면서도 피에를 클레르그 본당신부를 중심으로 ‘완덕자’ 혹은 ‘선한 사람들’이라 불리는 카타르파의 모임을 꾸준히 가졌다. 이들은 식사를 하거나 양을 치거나 길을 오가며 대부분 구전으로 포교활동을 했다. 가난한 농민과 양치기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결혼도 집안끼리 했고, 귀족이라 해도 산간마을 귀족의 상대적 빈곤 때문에 귀족과 비귀족 간의 갈등도 하찮았다. 이단자로서 쫓기는 신세였으므로 정주보다는 이동목축을 하는 양치기 직업이 많았다. 

 양치기들은 열악한 생활을 했지만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으며 영주제로부터 자유로웠고 심지어는 결혼까지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랑그독 지방의 농민 대부분은 글도 몰랐고 촌수를 헤아릴 줄도 모를 정도로 무지했다. 그들은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수평적으로 동물과 인간 속에서 윤회를 하고 수직적으로 맨 마지막인 저승으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구원은 최고의 가치였고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하면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교리는 별 특별한 것이 없다. 고기는 먹지 말고 생선만을 먹을 것, 결혼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과 할 것,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금욕할 것, 십일조라는 강제적 개념과는 달리 선을 이해하는 사람과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정도였다. 그러나 교리가 그대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본당신부 피에르 클레르그는 달변과 권력과 협박을 이용해 마을의 모든 여성들과 자유로운 성관계를 가졌다. 언니와 동생, 엄마와 딸, 늙은이와 젊은이, 미혼녀와 유부녀 등 신분과 나이와 결혼 여부를 가리지 않았고 장소 또한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자식은 낳지 않았고 이 모든 행위에 대해 더없이 당당했다. 피해자들도 그에게 나쁜 감정을 갖지 않았고 암묵적으로 용인되기까지 했다. 그는 오히려 아내를 두지 않고서 연애행각을 벌여 독신을 유지하고 재산을 축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착한 아들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교회에서 치르는 결혼식을 ‘세속적 사치’라고 혹독하게 비난했다.

양치기들은 주인과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양치기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집안의 막일은 도맡아 했고 여주인의 정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피레네 산맥을 넘나들며 이동목축을 했던 유능한 양치기 피레네 모리 역시 자신의 가난에 대해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난을 이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에 대한 반감이 있었지만 그것은 세속적 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성직자들의 부에 대한 반감이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교황권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특별한 교리도 없고 위계적이고 강력한 집단을 형성하지도 못한 알비 카타리즘이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세속귀족 즉 영주나 귀족에 저항하기 보다는 교회의 재산을 비난했다. 성직자가 토지 세력으로 군림했고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십일조에 대한 의무를 강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몽타이유 사람들이 증오했던 것은 사악한 부자인 성직자들과 탁발 수도사들의 흉측한 비곗덩어리였던 것이다. 성직자의 지배와 십일조 징수에 반대하는 이들의 저항은 카타르파에서 칼뱅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단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프랑스 아날학파3세를 이끈 역사가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에게 몽타이유는 예외적 공간이었다. 그는 이 예외적 공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주목했고, 이 예외를 역사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 같다. 재판기록으로 남아있던 몽타이유 지역의 카타르파 이단의 심문기록이 라뒤리에 의해 중세의 한 마을사람들의 삶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사료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재생산되는 것을 확인했다. 예외가 보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몽타이유』를 통해 보편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가 세가와 열전을 통해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경험했던 것처럼 미시사가 동반되지 않은 거시사를생각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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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양제국주의가 쪼갠 인간과 환경
    from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2011-05-03 21:11 
     날씨가 계속 좋다. 고비사막으로부터 유입된 황사가 누런 대기를 장악했지만 모종을 내기에는 습도와 기온이 최상이다. 올해는 고추를 적게 심고 옥수수와 단호박을 주작물로 정했다. 그러나 달력을 5월로 넘기면서도 밭에 로타리를 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농사에는 때가 있다. 일찍 심는다고 수확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절기에 따라 농사를 짓는다. 절기는 기온과 강수량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또한 연작을 하면 토질은 물론이고 수확량이 급감하는 작물..
 
 
알케 2011-05-0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타리..천년이 넘는 영지주의 전통의 계승자들.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카타리와 보고밀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 중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ㅎㅎ

반딧불이 2011-05-03 22:53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이거 제가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쓴 거 아닌가 싶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11-05-0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사에서는 랑그도크를 대단히 중시하는 것 같아요.카타르 교도에 대해서는 십자군 전쟁 때 기독교도들이 이슬람교도 뿐이 아니라 같은 기독교 소수종파에 대해서도 숙청을 가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기억에 남더군요.라뒤리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 많을텐데 직접 읽어보셨다니 멋집니다.

반딧불이 2011-05-03 22:57   좋아요 0 | URL
랑그독 지방이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도 나오더라구요. 당시의 가톨릭교도들 입장에서 보면 암세포나 다름없는 지역이었을 거 같아요.

라뒤리를 저도 처음 접했는데요. 아날학파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는 탓인지 단지 미시사 학자에 대한 견해라면 저는 긴즈부르크가 더 매력있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5-05 15:0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치즈와 구더기> 덕에 일반독자에겐 긴즈부르크가 더 익숙하죠.아날학파에 대한 책을 보면 마르크 블로흐와 함께 페르낭 브로델과 엠마누엘 라뒤리를 늘 선두에 놓더라구요.라뒤리 책은 요 몇년 간 우리나라에도 번역되기 시작하고 있고요.

반딧불이 2011-05-05 23:07   좋아요 0 | URL
아날학파도 1,2,3세대가 서로 지향점이 다르더라구요. 저는 물론 3세대 먼저 접했지만 차차 접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쉽싸리 2011-05-04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로쟈님 소개글, 파란여우님 글, 반딧불이님의 <치즈와 구더기> 리뷰까지 읽었어요. 눈과 마음이 호강했어요. 눈은 혹사인가? ㅎㅎ
특히 중세에 관한 미시사 연구가 한국엔 없는것 같아요. 그래선지 서양의 미시사 관련 책들을 보면 일단 흥미로워요.

반딧불이 2011-05-04 12:43   좋아요 0 | URL
아이고..쉽싸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건 완전 셋트메뉴같아요. 두분께 감사드려야겠는데요. 쉽싸리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중세에 대해서 저는 그저 '암흑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 어둠 속에서도 자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배울게 많더라구요.

양철나무꾼 2011-05-04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미시사적인 대목에서, 장르소설 얘길해서 그렇지만...'수도원의 죽음'의 연장을 보는 것 같았어요~^^

반딧불이 2011-05-04 12:52   좋아요 0 | URL
도입부분이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나름 재미있어요. 양철댁님 말씀을 듣고보니 이단심판에 대한 추적 자체가 라뒤리의 의도는 아니었는데 저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읽은 것 같아요.

루쉰P 2011-05-1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시사적 세계사만 보는 습관이 있어서 미시사에 대한 부분은 그냥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독서 성향이 있는데 반딧불이님의 리뷰를 보니 왕 반성이 되네요. 이런 류의 책으로 저는 '반역의 책'을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부류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전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과 '책과 혁명'을 읽었는데 그 책들도 이런 미시사 역사 분류에 속하는 건가요? 좀 따분하기는 하더라구요. 헤헤 아직도 독서력이 부족합니당~~

반딧불이 2011-05-14 02:45   좋아요 0 | URL
저도 역사 공부한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아는게 별로 없어요. 다만 미시사쪽으로 알려진 책들이 <고양이 대학살>, <치즈와 구더기>, <몽따이유>, <마르탱 게르의 귀향>, <야생정신 길들이기> 같은 책들이 있는걸로 알고 있어요.
<반역의 책>은 잘 모르겠구요. <책과 혁명>은 읽지는 못했지만 저자인 로버트 단턴이 미시사학자인 걸로 알고 있네요.

저도 미천하지만 거시사와 미시사를 함께 보는 것이 역사를 제대로 아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구요.

루쉰P 2011-05-15 08:08   좋아요 0 | URL
하여튼 뭘 하나 공부하려고 해도 제대로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듯 해요. <반역의 책>은 중국 청나라 시대 때 명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소문이 어느 시골 마을에서 들리고 있다는 얘기에 청 황제가 그 동네에서 소문의 근원이 되는 책을 찾아내라고 지시해 그 책을 찾아 그 얘기를 퍼 트린 사람들을 추적, 추적하는 내용인데 ^^ 마치 지금 증권사 찌라시의 근원을 찾아내서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처럼 청 황제가 얘기는 있는데 한 사람이 없는 상황 속에서 대 분투하는 내용이에요. 역사서 인데도 불구하고 웃으며 읽은 기억이 있어요. ^^ 청 황제가 고생하는 게 웃겨서요. ㅋㅋ

로버트 단턴이 미시학자가 맞군요. <책과 혁명>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란 책을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봤기 때문이다라는 학설을 단턴이 그 시대 서점들의 금서 목록을 조사하며 무엇을 읽었는가를 세심하게 분석한 결과 저 학설이 맞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제시하는 책인데 좀 지루한 감이 있어요. ㅋㅋ

반딧불이 2011-05-15 13:3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두 권 모두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릴케 현상 2011-05-18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언제나... 무진장 공부 열씸히 하시네요^^ 숙제 하다가 잠깐 마실 왔습니다. 기회 되면 저도 독서의 기쁨을 누려 보고 싶네요

반딧불이 2011-05-19 00:57   좋아요 0 | URL
제가 할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요. 힛~. 이시간까지 숙제하시는 산책님이야말로 정말 열심히 하시는거죠.

루쉰P 2011-06-1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사를 연구하시다가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실 줄 알았습니다. ^^ 너무 축하드리고 알사탕이 반딧불이님의 미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ㅋ

반딧불이 2011-06-11 12:01   좋아요 0 | URL
크..연구는요 무슨. 재미삼이 읽는건데요. 알사탕으로 바뀐뒤부터 이상하게 잘 안써먹게 되더라구요. 한때 오만원씩 받았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무슨 계를 탄 것같아 보고싶은 책을 몰아서 사곤 뿌듯해 하곤 했는데 말이에요. 루신P님도 축하드려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1881 함께 읽는 교양 9
조슈아 아바바넬.제프 스위머 지음, 유자화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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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겨울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나는 이미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겨우내 서랍 속에서 함께 산 좀벌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내 옷을 갈아 먹으면서 겨울을 난 모양이다. 그것도 폴리에스테르가 섞인 것은 하나도 안 건드리고 백퍼센트 울 제품의 비싼 옷들만을 갉아 먹었다. 찢어진 그물처럼 여기저기 구멍을 내 놓아서 버린 것이 태반이지만 정말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은 아플리케라도 해야겠다고 골라 두었다.

청소기를 최고 흡입력으로 돌려서 서랍 속을 훑어내고 옷가지들은 햇볕에 널어 말렸다.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나니 제 풀에 지쳐 소파 위에 나가 떨어졌다. 소파 위를 뒹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간도 벌레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후벼 파고 흐르는 물을 막고 자연의 모든 것들을 착취하고 끊임없이 종족을 번식하고.......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어떤 벌레보다도 더 악질의 변종 바이러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 좀 몇 개 갉아먹은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좀벌레에게 너그러워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칸칸이 쟁여 넣은 좀약은 치울 수가 없었다.

빈대, 이, 집 먼지 진드기, 모낭진드기와 옴 진드기, 서양 좀벌레와 집게벌레, 파리, 개미, 바퀴벌레, 흰개미, 벼룩과 흡혈진드기, 의류해충과 부엌해충 등이 이 책에 당당하게 활보하고 다니는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도 낯선 것이 없다. 생물학적 지식과는 전혀 무관하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에는 많은 균들이 살고 있다. 당연히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불, 카펫, 소파, 침대 등에도 균이 있을 것 아닌가. 무좀에 걸린 사람은 무좀균을 키우고 있고, 감기에 걸린 사람은 감기 바이러스와 동거 하고 있는 것이다. 집 먼지 진드기를 박멸한다고 수시로 의료팀을 방불케 하는 청소 팀이 다녀가고 탈탈 털어 햇볕에 말려도 어차피 그것들을 전멸 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것들을 박멸하려다 인간이 먼저 박멸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끔 내 몸에 균이 침입해와 내 몸을 괴롭힐 때, 고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할 만큼 아플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빈대, 이, 파리, 개미,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질 때 아마도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지도 모르겠다.

드물지만 책을 읽고 나서 짜증이 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누군가 권해서 읽었는데 도대체 왜 권했는지 알 수 없을 때, 내용이 턱없이 부실 할 때, 도무지 이 글을 왜 썼는지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종이 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으로 농락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 때 등 등.......

이 책은 이 모든 조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갖추었다. 거기다 호화 양장본이다. 벌레를 유난스레 싫어하거나 천적처럼 여기지 않는 나도 이 책을 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벌레들의 특정 부위를 현미경으로 극대화 시켜 보는 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왜 이 책이 인문 사회분야로 분류되는지도 모르겠다.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라고 버젓이 부제를 달고 있는데 말이다. 제목도 부제도 장난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는 외로운 영혼을 달래는 속삭임같다.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아니다. 인간을 숙주로 삼아 살고 있는 벌레들의 적나라하지만 지극히 간략한 보고서다. 

이 책에서 내가 새롭게 발견한 정보는 세 가지다. 첫째, 파리가 뒤로도 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곤충 중의 하나라는 것. 둘째, 빈대의 수정 방법이다. 암컷 빈대의 몸에는 생식기 개구부가 없어서 수컷이 암컷의 배를 갈라 벌리고 그 안에 정자를 넣는다는 것, 곤충학자들은 이것을 외상성 수정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암컷 사마귀가 교미 후에 수컷 사마귀를 머리부터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느꼈던 종족 보존의 잔인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셋째, 벼룩의 점프 능력이다. 벼룩은 제 키보다 150배 높이 뛸 수 있고 수평으로는 80배 더 멀리 뛸 수 있단다. 엄청난 능력이다. 이 능력의 비밀은 다리에 담겨 있는 레시틴이라는 탄성 단백질이란다. 벼룩의 키를 0.5 센티미터라고 가정한다면 75센티미터를 뛰어 오르고 40센티를 멀리 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내 허리아래서 놀잖아 생각하다가 인간과 비교해보니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이다. 내가 만약 탄성단백질을 가졌다면 나는 24000센티미터 그러니까 240미터를 높이 뛰기 할 수 있고 12960센티미터 그러니까 129.6미터를 멀리 뛰기 할 수 있다. 엄청난 능력이긴 하다. 레시틴을 연구하다가 자신의 몸으로 생체실험을 하고는 지구밖으로 튀쳐나간 인간이 있을 것만 같다. 또 내가 혼자서 너무 멀리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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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4-2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증나는 책을 끝까지 지속해서 읽고 나간다는 것도 굉장한 힘이죠. ㅋ

항상 느끼는거지만 읽은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양서(?)만을 골라 읽으려 노력 중이에요. 리뷰도 꼼꼼히 보구요.

근데 반딧불이님처럼 먼저 길을 가보고 이 길이 아니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분이 계셔서 그런 오류를 벗어나 좀 더 이 부족한 시간 아껴서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 여겨요.

주례사 비평이라고 하던가(?) 책들에 마구잡이로 달려 있는 칭찬 일색의 글들은 신뢰가 떨어져 더 이상 믿지를 못하죠. 차라리 이렇게 서재의 리뷰들이 더 신뢰감을 팍팍 줍니다. ^^

반딧불이 2011-04-22 00:26   좋아요 0 | URL
수정하는 동안 벌써 읽으셨군요. 안 읽고 리뷰를 쓸 수는 없어서 꾸역꾸역 읽었네요. 루쉰P님의 시간을 좀 벌어드렸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루쉰P 2011-04-23 09:52   좋아요 0 | URL
헤헤 제가 1등으로 읽은 듯, 그래도 다 읽고 리뷰 쓰신 것은 대단하죠. 전 마음에 안 들면 아예 읽어 버리지도 않는 냉정한 면이 있습니다. -.- 시간 완전 벌어 주셨삼. ㅋㅋㅋ 감사해요.

쉽싸리 2011-04-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과학'분야 책으로 선정된듯 합니다.
과학이라고해도 너무 넓죠. 벌레,곤충에 대한 얘기가 자연과학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요. 서평단의 한계일수도 있겠구요. ^^
서평단은 계속하시는지요?

반딧불이 2011-04-22 10:03   좋아요 0 | URL
서평단의 한계라고 말씀하시니 좀 위로가 됩니다. 한계는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저도 분야를 갈아탈까 하다가 이번 서평단은 지원하지 않았어요.

blanca 2011-04-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 리뷰가 재미있어요. 벼룩의 점프능력 정말 죽음이네요. 그런데 순간 너무 징그러워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제목 한번 기발합니다.^^

반딧불이 2011-04-22 21:11   좋아요 0 | URL
책얘기 쓸게 없으니까 주절주절 제 얘기만 늘어놓았는걸요.
기발한 것까진 좋았는데 저는 책가지고 장난하는 건 정말 싫어요.

비로그인 2011-04-2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럼 제가 끙끙 앓고 있는 동안에도 최소한 혼자는 아니었던 거로군요. 감기 바이러스가 저랑 함께하고 있었으니 말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 괜찮아지는데요ㅎㅎ 게다가 이렇게 재미있는 리뷰를 여전히 볼 수 있으니 살아 있다는 거 그거 괜찮은 거 확실하네요^^

반딧불이 2011-04-22 21:13   좋아요 0 | URL
얼마나 외로웠으면 바이러스와 동침한다고 생각을 했겠어요. 그래도 동침하니까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긴 합디다. 나를 이렇게 달뜨게 하는게 또 어디있으랴..고마워했죠.머. 제 경험을 후와님께 강요해서 죄송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4-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벌레가 너무 싫어요.
그런데 '가정용 곤충'이란 살가운 단어로 불리워도 되는거래요?^^

전 벌레에 관한 얘기들만 언급돼도 소름 돋고, 가려워서 긁적여요.
아웅~ㅠ.ㅠ
호화 양장본이란 말에 또 혼자 상상하고 북북 대고 앉아있습니다~

반딧불이 2011-04-22 21:16   좋아요 0 | URL
저도 벌레 싫어요.~ 특히 다리 없는 벌레는 딱 질색이에요.
책장을 넘기다가 확대된 벌레의 성기, 집게를 맞딱뜨리면 나도 모르게 외면하게 되더라구요.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가 벌레의 눈과 제 눈이 딱 마주칠 땐 포스트잇으로 가리고 봤어요!

교고쿠 2011-04-24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좀 별로였어요. 서평단으로 뽑힌 책들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는듯 합니다. 끄악! 이런 혐오스러운 벌레 확대사진 따위! ㅋ
게다가 양장본이면서도 장정 부분이 약해서, 제가 책을 굉장히 소중히 다룸에도 불구하고 사진 몇 장 찍다 보니 장정 부분이 갈라져 버렸어요.

반딧불이 2011-04-24 16:39   좋아요 0 | URL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책 내용도 그렇지만 책이 주는 느낌도 참 다양하다는 걸 느꼈어요.
위의 여러가지 못마땅한 것에다가 불량 제본까지 보태야겠군요. ㅋㅋ

반딧불이 2011-04-24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세기 프랑스 사람들에겐 서로의 '이'를 잡아주는 것이 초보적인 위생 관리와 애정의 표현방식이 결합된 몸짓이었다는군...<몽타이유> 281

원숭이들이 서로 이 잡아 주는 모습과 다르지 않구나.
 
경쾌한 유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89
이재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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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는 그만이 쓸 수 있는 시가 있는 듯하다. 랜드 마크처럼 시인을 대표하는 시가 시인마다 있다. 정지용 하면 ‘향수’가 떠오르고, 김소월의 이름은 자동적으로 ‘진달래꽃’을 불러오고 서정주 하면 ‘애비는 종이었다’는 첫 구절이 저절로 시작되면서 ‘자화상’이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시인은 이상하다. 이재무 하고 부르면 나는 가장 먼저 ‘밥’ 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위대한 식사’라는 시 때문일까? 얼마 전 펴낸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라는 산문집 제목 때문일까? 
 



위대한 식사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부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 된장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 있는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카맣게 몰려 오늘 풀벌레 울음

베어 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뜨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 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시골의 저녁식사 풍경이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깃불을 곁에 두고 멍석 위의 두리반에 모여 앉은 가족들. 반찬은 우렁된장찌게, 풋고추, 물김치가 전부다. 기름기 없는 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트림 몇 번으로 꺼지는 것으로 보아 밥은 보리밥이었을 게다. 물김치는 열무김치가 어울리겠다. 냇가에서 하루 종일 물장난 치며 놀다 잡아온 우렁으로 막 된장찌개를 끓여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장이 반찬이라 모두들 말없는 가운데 수저질만 분주하다. 고기냄새는 명절 때나 간신히 맡을 수 있을 뿐 푸성귀뿐인 풍경을 그려내며 시인은 ‘위대한 식사’라 부르고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온 가족의 노동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일까? 사발의 이가 빠지듯 그 때의 가족들이 듬성듬성 사라진 지금 온가족이 모여 앉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물김치에 뜨는 별, 풀벌레 울음소리가 맛을 더해주던 그 정경 때문일까? 지금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기 때문일까? 허청, 모깃불, 멍석, 사립 같은 어휘들이 잘 버무려져 투박한 듯 하면서도 정겹고, 사람냄새 가족냄새가 나는 시다. 그의 시어들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시어들보다 이렇게 사투리와 투박한 단어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들이 시에서 힘을 얻는다.  


장갑들



벙어리장갑으로 하늘의 눈 자주 불러 내렸지
하루가 노루 꼬리만큼 짧았지

털장갑 때문에 외출할 일 많았지
읍내 빵집과 만두집이 깻잎 머리와 상고머리로 붐볐지

가죽장갑만 끼면 까닭 없이 배짱 두둑해져
차부 앞이나 극장 뒷골목 단물 빠진 껌 질겅질겅 씹다가
잇새로 찍, 침 뱉고 휘파람 불어대며 뜨거운 피 식히곤 했지

오늘은 빨간색 페인트로 코팅된 목장갑 끼고
입술 담배 연기 내뿜으며 일터에 가고 있지
콜타르처럼 끈적끈적, 목에 잠긴 가래 긁어 뱉으며
 


가죽장갑하나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우쭐대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차부 앞이나 극장 뒷골목 단물 빠진 껌 질겅질겅 씹다가/잇새로 찍, 침 뱉고 휘파람 불어대’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시인과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영화배우도 흉내 내지 못할 것 같다. 배우에게 그것은 연기이지만 시인에겐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이 시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땡깡을 부리거나 깡짜를 놓거나 어깃장을 놓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야단치거나 때려주거나 하지 못하고 왠지 다 받아주어야만 할 것 같다. 
 


술이나 빚어볼거나




올가을엔 만사 제치고

내 고향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에 가서

철없던 유년 소풍 갔다가 보물찾기로 받은

호루라기 종일 불다가 잃은 뒤로

빛과 색 더욱 무성해진 풀밭에 빈 항아리로 누워

산그늘 덮고 한 달포 자다 깨다 하면서

저 잘난 세월에 농이나 걸까

그러다 여우비 내리걸랑 고스란히 아껴두었다

한량 같은 구름 몇 살 오른 별 몇

동동, 동치미처럼 띄워놓고

산달 앞둔 여자 둥근 배 같은 달도 푹 담가 띄우고

떼로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삼태기로 쓸어 담아

꾹꾹 눌러 쟁이고

오명가명 수박씨인 양 툭툭,

내뱉는 누룩 내 나는 사투리도 몇

함께 절여서 도수 높은 술이나 빚어볼거나

명리에 밝은 샌님들 불러들여

인사불성 될 때까지 대작할거나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볼만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김사인의 시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남자가 되어>는 그 질탕함에서 이보다는 한 수 위다. 김사인의 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나도 그 앞에 퍼질러 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러나 이재무의 시는 잘 다독거려 달래면 곧 착한 사내로 다시 돌아올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미워 할 수가 없다. 이렇게 가끔 땡깡을 부리던 시인이 정색하고 이런 시도 쓴다.



펜에 대하여



마른 땅 파 들어가는 삽이여,

묵은 논 갈아엎는 쟁기여,

고랑 타고 앉아 풀매는 호미여,

돌멩이에 날(刀) 찍혀 우는 쇠스랑이여,

이마에 한 톨 두 톨 돋는 땀이여,

경작의 노고보다 헐한 소출이여,
 


시력 30년이다. 30년 동안 시집, 수필집, 시평집, 공저 등을 모두 합쳐 15권 남짓이다. 쉬지 않고 시를 써온 세월과 노고에 비하면 결코 넉넉한 작황이라 할 수 없다. 그의 말대로 ‘경작의 노고보다’ 턱도 없이 헐한 소출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땅을 일구지 않고 언어의 밭을 가꾸었으니.



불의 지청구



배화교도 되어 타오르는 불 숭배한 적 있다

주황빛 속에 청색의 손 적시며 축축한 생각

꼬들꼬들 말리다 보면 영혼의 동굴 안쪽에까지

비단실 같은 빛 새어 들어오곤 하였다

온갖 잡념의 비린 생선 던질 때마다

불은 고양이의 혀 되어 날름 삼키곤 했다

생의 궁극은 완전한 소진에 있는 것

화구 앞에서 생의 완주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씨름 기술이 부족한 사람

번번이 샅바 놓쳐 허둥지둥 나가떨어지기 일쑤였지만

아직 시간의 끈 놓아서는 안 된다

타다 만 흔적처럼 추한 것 어디 있으랴

불 속에 덜 마른 아집의 생목 한 짐 던져 넣으니

검붉은 손톱 불쑥 나타나 눈 찌르고 얼굴 할퀸다

불의 지청구 달게 받은 뒤

자세를 고쳐 앉아 젖은 신발 벗어 말린다
 


아무리 소출이 적어도 또 돈이 되지 않아도 그만 둘 수 없다. 어차피 시인은 경작의 기술도, 씨름 기술도 없다. ‘시간의 끈’ 놓을 수 없다. ‘타다 만 흔적’보다 추한 것 없으니 ‘불의 지청구’들으면서 신발 말리는 동안 잠시 쉬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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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4-06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간에 밥과 술 얘기라니... 늘어가는 살들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요ㅋㅋ^^

반딧불이 2011-04-06 11:15   좋아요 0 | URL
괜히 엄살 부리시는거죠? 후와님은 이런 글을 읽었다고 해서 밥이나 술이 당기지도 않을 뿐더러 살집이 넉넉한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건가요?

비로그인 2011-04-06 12:55   좋아요 0 | URL
음, 최소한 마른 체형은 아닙니다. 그 이상은.... 비밀임닷!ㅋㅋ^^

양철나무꾼 2011-04-07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재무의 시는 잘 다독거려 달래면 곧 착한 사내로 다시 돌아올 것 같군요...
전 김사인의 시들이 너무 단정해서 감히 범접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말이죠~^^


반딧불이 2011-04-07 23:46   좋아요 0 | URL
단정하기로 말하면 덜 단정한 까닭에 사람냄새가 나는거 아닐까해요. 때묻지 않은 시골총각같다고 해야할까요. 김사인의 시는 모두지 빈틈이 없잖습니까.

루쉰P 2011-04-0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쪽은 워낙 읽는 것도 잼병이고, 잘 보지를 않아서요. 이렇게 반딧불이님이 올려주신 시를 감상하고 가요. '펜에 대하여'란 시는 참 너무 좋네요. ^^ 단어를 맛깔나게 저렇게 쓰는 힘들은 어디서 나오시는 건지 감탄만 하고 가요.

반딧불이 2011-04-07 23:4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냥 마음에 와 닿는 시 위주로 봐요. 안읽히는 시들도 많고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시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오가며 귀동냥 눈동냥 한 것들에 기대어 시집을 더러 찾아보기도 하고 그러는거죠. 뭐.

릴케 현상 2011-04-18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랜만에 들어왔네요^^ 마감이라 밤새는 중 ㅜㅜ

반딧불이 2011-04-18 10: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디 멀리 가신줄 알았습니다. 별일 없으시죠? 밤새워 쓰시는 원고가 궁금해지는데요. 곧 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