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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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독일의 문학상인 폰타네 상을 받게 되지만 익명의 이름을 밝히고 상을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당시의 헤세는 이미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고 오로지 작품만으로 평가받고 싶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싸르트르가 작품에 대해 언급하자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로맹가리가 비평가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깨뜨리기 위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고 콩쿠르 상 수상자로 지명되자 수상 거부 편지를 보낸 것과 유사하다.

헤세가 사용한 필명 에밀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싱클레어는 책의 첫 페이지에서 말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은 질문 같기도 하고 회한 같기도 한 이 첫 구절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열 살이 갓 지났을 무렵 싱클레어는 황당무계한 도둑 이야기를 꾸며대어서 동네의 불량소년 크로머의 손아귀에 빠져든다. 크로머의 온갖 협박에 시달리면서 싱클레어는 이 세계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뿐만 아니라 또 다른 세계와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깨닫는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의 햇빛이 충만한 세계와는 반대편에 있는 음침하고 폭력적이며 불안이 두근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싱클레어가 처음 알게 된 이 세계로부터 싱클레어를 구해준 사람은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와 함께 못 박혔던 도둑의 이야기 등을 새롭게 해석하여 싱클레어가 성서 설화와 교리에 대해 보다 개인적이고 자유롭게 풀이하는데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준다. 또 밝음과 어둠, 허용된 세계와 금지된 세계, 선과 악의 세계 등 이분된 세계로부터 완벽하게 자기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싱클레어에게는 오랜 방황의 시기가 찾아온다. 방황기간 중에 만난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가 그토록 궁금해 하던 압락삭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신적인 세계와 악마적인 세계를 동시에 간직한 압락삭스를 이해할 무렵 데미안을 다시 만난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과의 만남을 갖는다. 싱클레어에게 에바부인은 어머니이면서 연인이기도 하고  자기 내면의 상징이기도 하다. 

데미안과 에바부인 곁에서 싱클레어는 그들과 연대감을 느끼며 평온을 되찾는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구름 속에서 거대한 새가 푸른 혼돈을 깨치며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 데미안 역시 낡은 세계가 와해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을 예감한다. 전쟁이 선포되었고 그들은 전장으로 나갔으며 부상당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조우한다.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에바 부인의 입맞춤을 전한다. 싱클레어가 눈을 떴을 때 데미안은 사라졌지만 그러나 그가 사라진 곳은 언제든 싱클레어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자기 자신 속이었다. 데미안은 외부세계에 실재하는 인도자인 동시에 내 안에 존재하는 자아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천양희 시인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고 “모든 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었으며 “길의 모든 것은 걷고 싶지 않아도 걷게 되는 것”이라고. 싱클레어가 자기 안의 데미안에 이르는 길은 시인의 시 <뒷길>의 삼행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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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9-2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고려쩍에 읽었던 책!!!!그땐 그저 읽었는데 리뷰를 읽어보니 그런 심오한 뜻이~.

반딧불이 2009-09-2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등학교때 읽은것 같은데 그때는 제가 책을 읽으면서 그냥 한글떼기 공부를 한건 아니었나 싶을정도에요.근데요.나비님. 사진이 바뀌셔서 나비님인가 전도연인가 한참 들여다봤지만 아직도 잘모르겠어요~

2009-10-12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3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