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보았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만큼이나 지루하게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었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까닭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두 작가 모두 내게는 수면제에 다름 아니었는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열람을 하다가 그르니에의 책이 나란히 꽂혀있는걸 보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상적 삶』을 빼어들었었다. 선채로 읽었던 그 책은 여행, 독서, 담배, 비밀 등 그야말로 우리의 일상에 관한 글이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깊은 사색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르니에=수면제라는 최초의 내 등식을 수정해야했고 눈에 띄는 대로 그의 책을 사모아 두었었다. 책꽂이에 7권의 책이 모였는데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에게 손이 간다.

7권의 책 중 『어느 개의 죽음』은 타이오라는 자신이 기르던 개의 죽음에서 비롯된 단상들을 묶었다. 타이오는 때때로 그를 귀찮게 하기도 했지만 그 귀찮음 마저도 그에게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기쁨은 사라졌다. 한 존재가 사라지자 부재(不在)가 그 자리를 가득 채운다. 이 충만한 부재가 그에게 글쓰기를 종용한다. 부재 안에는 개와 인간,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존재와 죽음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는 개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면서 나라마다 풍습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기도 하고, 인간중심주의는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떠돌이 개중의 한 마리를 데려다 키움으로 해서 배고픔은 해결해 주었지만 개의 자유를 제한했음을 깨닫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또 개를 안락사 시키면서 과연 그런 행동은 개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한 것인지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그르니에에게 타이오의 죽음은 매순간 확실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 앞에서는 자신도 타이오와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고통을 덜어내는 하나의 방편으로 글을 쓸 수 있음을 위안 삼으면서 공허함도 함께 느낀다. 타이오의 죽음에 관한 안타까움에서 글은 시작되었지만 타이오의 부재를 통해 결국 그가 다다른 곳은 자기 자신이었다. 마지막 단락에 실려 있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짧은 글’에서 그르니에는 개에게서 친밀감을, 고양이에게서 거리감의 속성을 찾아낸다. 이 양극의 특징은 다시 결합과 결별로, 감성과 지성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마치 개와 고양이의 속성으로 두 부류의 인간을 얘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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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9-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르니에의 섬만 하나 달랑 읽었는데,,,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지요,,,^^;;;;<일상적 삶>이라고요,,,,음 함 찾아 읽어 봐야겠어요,,,ㅎㅎㅎ

반딧불이 2009-09-08 10:11   좋아요 0 | URL
어? 나비님 오랜만이에요. 돌아오신건가요? 아무튼 반갑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