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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 ㅣ 경쾌하게 고전읽기 4
이인호 지음 / 천지인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도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이 한두 권이겠는가마는 장자는 그런 책 중에서도 유난한 책 중의 하나다. 장자에 나오는 수많은 우화들은 어디에선가 한번쯤 눈동냥이나 귀동냥 했던 것들이 많다. 출전을 밝히지 않은 아이들의 동화책에서부터 출전뿐만 아니라 그 원문까지도 정확하게 밝혀놓은 해설서들까지, 어릴 때 장자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옛날 얘기에서부터 교수님께 들었던 강의까지, 멀고도 가까운 것이 장자이다. 그런데도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듯하고 들을 때 마다 처음 듣는 듯한 이 낯설음을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이란 말인가? 읽을 때마다 내가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고 하면 자뻑이고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 때마다 내가 먹은 밥그릇 수만큼 기억이 사라지는 쪽이 더 가까운 듯하다.
이런 이유로『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는 내게는 또 새 책이다. 『장자, 30구 -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언』의 개정판으로 새로 나온 이 책은 천지인이라는 출판사에서 새로 기획한 ‘경쾌한 고전읽기’ 시리즈 4번이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오는 리라이팅 클래식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도 시리즈 4번이고보니 공교롭기도 하다.
어쨌거나 『장자』라는 책은 반고본과 곽상본이 있는데 우리가 보는 『장자』는 장자로부터 600년 뒤인 위진시대에 편찬된 곽상본이라고 한다. 장자는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도합 33편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에는 28개 구절의 장자가 현대적인 해설과 함께 실려 있다. 이것을 통해 장자라는 인물의 성격, 시대적 배경, 사상 등을 재미있게 개괄할 수 있다. 책 말미에는 ‘장자가 아인슈타인을 만난다면’과 ‘장자와 매트릭스’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아인슈타인과 장자를 대담형식으로 한자리에 부른 ‘장자가 아인슈타인을 만난다면’은 전혀 상이해 보이는 물리학과 철학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장자와 매트릭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어쩌면 프로그래밍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영화 매트릭스를 장자의 나비 꿈에 관련지었다.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나비가 되어 꽃 사이를 날아다니다가 깨어난 장자는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지금 꿈속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과연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정말 나일까 혹시 털이 거친 여우 한 마리가 꾸는 꿈속에서 나는 인간 여자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었다. 깨어나야 할지 말아야할지 심히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이상하게 나와 있다.
아까 꿈에서 깨고 보니 나는 분명 장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나는 나고 나비는 나비인데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이 현실인가?
똑같은 구절이 반복되고 있는 이 구절이 내가 알고 있는 장자의 나비 꿈인지, 나비의 장자 꿈인지, 후주로 원문이 실려 있음에도 확인하고 싶지 않은 까닭에 대해서는 나를 탓하지 말라.
2009년에 만난 장자는 여전히 그 유별난 과장으로 인해 황당하기도 하지만 왠지 멀리 둘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움 때문이리라.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또 사랑의 올가미에 목이 졸리고 싶은 갈증이 더해지는 이 가을에 특히 가까이 두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