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름부터 정리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마호메트(Mahomet)라고 많이 쓰고 있는데 이것은 옛 유럽인들이 사용하던 표기이다. 요즘 영어권에서는 무함마드(Muhammad)라고 표기한다. 무함마드라고 불러야 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랍어 발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음에는 ‘ㅗ’에 해당하는 것이 없다. 코란도 꾸란이라고 해야 그쪽 발음에 가깝다. 둘째는 마호메트라는 표기에는 유럽인의 적대감이 담겨있다고 무슬림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무슬림들은 마호메트가 악마를 뜻하는 스코틀랜드의 옛말 ‘Mahound’의 변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1)
무함마드는 570년경에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의 하심 가문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죽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 밑에서 크다가 할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삼촌인 아부 탈리브가 맡아서 키웠다. 아부 탈리브는 나중에 4대 칼리프가 되는 알리의 아버지다. 무함마드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런대로 평범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어려서는 양치기였으며 커서는 그의 아버지처럼 상인이 되었다. 그는 부유한 미망인 사업가인 카디자의 상단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보다가 스물다섯 살에 열다섯 살이나 연상인 그녀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함마드가 가장 신뢰하는 반려자였고 그가 박해를 받을 때 그녀의 지지와 위안은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녀는 첫 번째 무슬림이었다. 무함마드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일부일처제를 유지해 다른 아내를 두지 않았다.
무함마드는 40세 때 명상을 위해 산속의 동굴에 들어갔다가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신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곧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전도를 시작했다. 무함마드의 신앙은 당시의 우상숭배와 금권정치에 물들어있던 기존 질서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어서 많은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무함마드는 암살자들에게 쫓기며 622년 7월 16일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주(‘헤지라’라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이 해를 원년으로 삼고 있다)하여 그곳에서 이슬람 신앙 공동체인 ‘움마’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무함마드의 설교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는 분쟁을 조절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뛰어난 군사 전략가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적에 대한 관용과 고아와 과부, 노예 등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었다. 아무리 치명적인 손해를 끼친 적이라고 하더라도 복종하고 용서를 비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고 전쟁에서 전사한 동료의 가족은 물론 적의 가족까지 보살폈다. 아라비아 반도 전역의 부족들이 점차 무함마드의 지도력을 받아들이고 움마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메카의 군대와는 몇 차례의 전투가 있었지만 630년 1월 무함마드는 메카를 평화롭게 접수했다. 카바 신전의 우상들은 모두 폐기되었고 카바는 이슬람의 성전이 되었다. 메카의 주민들도 거의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632년에 무함마드는 메카로 순례를 떠났다가 메디나로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병이 들었다. 예언자는 그가 하디자 이후로 가장 사랑했던 부인 아이샤의 무릎을 베고 누워 세상을 떠났다. 예언자는 62세였고 아이샤는 18세였다.
무함마드는 흔히 세계 4대 성인의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예수와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죽은 자를 살리거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거나, 오병이어(五甁二魚)와 같은 기적은 단 한 번도 행하지 않았다.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으며 죽은 뒤에 신이 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신과 소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감화시켜서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가 포교한 신앙은 들불같이 번져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어쩌면 지난날 유대인들이 예수에게서 원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바로 무함마드와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수는 우리가 죽은 뒤에나 갈 수 있는 천상의 왕국을 약속했지만 무함마드는 살아생전에 누릴 수 있는 신앙의 왕국을 이 지상에 건설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 무함마드의 평전 또는 전기로 나와있는 책은 네 권 정도 되는 것 같다. 우선《25시》의 작가로 유명한, 전생이 한국인이었다는 루마니아 태생의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가 쓴 《마호메트 평전》이 있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찬가》를 출간하기도 했으며, 특이하게도 루마니아 정교회의 사제의 신분으로 무함마드에 대한 평전을 썼다. 네 권 중에 가장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의 평전이다. 시공디스커버리 총서로 나와있는 《마호메트, 알라의 메신저》는 내용은 소략이지만 말미에 이런저런 흥미로운 자료들이 첨부되어 있다. 7년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수녀 생활을 했던 영국 출신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마호메트 평전》은 다소 설명적이다. 이슬람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나 이슬람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가 직접 나서서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는 둥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함 같기도 하지만, 이름난 종교학자로서 이슬람이라는 이 거대하고 강력한 종교로부터 호의를 얻고 싶은 의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자에서 이슬람 비평가로 변신하여 살만 루시디처럼 죽음의 파트와가 발령된 하메드 압드엘-사마드의 《무함마드 평전》이 있다. 읽어보면 그가 왜 이슬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평전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이 너무 편향적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이야기는 역시 무함마드의 여자문제다. 다른 평전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여기 좀 자세하게 옮겨본다.
(무함마드는) 말년에는 여자들을 기호에 따라 수집하는 물건처럼 대했다. 마지막 8년 동안 그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새로운 여자와 혼인했다. 하디자 뒤로 부인이 열두 명이나 있었는데, 그중 아홉 명이 같은 시기에 한집에서 살았다. 그 밖에 열네 명의 여자가 더 있었는데, 그는 이들과 혼인 서약은 했지만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 또한 약혼했지만 전쟁 계획이나 다른 부인들의 계략 때문에 혼인하지 못한 여자도 스무 명이나 더 있었다. 여기에 추가로 전쟁에서 약탈했거나 선물로 받은 성노예들이 있었다. 2)
당시의 관점으로 볼 때 군주나 통치자들이 수많은 처첩을 거느리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적 결속을 위한 혼인 역시 비일비재했다. (고려 왕건도 아내가 스물아홉 명이었다고 한다.) 이슬람의 경우에 특이한 것은 전쟁이 빈번했던 시대에 남편을 잃어 생계가 어려운 여자와 그 자식들을 부양할 목적으로 과부와 혼인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인도적인 차원의 다처제라 할 것이다. 무함마드 아내의 명단에도 늙은 과부들이 몇 명 올라와 있다.
하지만 《무함마드 평전》은 하디제 사후 무함마드의 성적 분출이 마치 봇물이 터지듯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른 무슬림들에게는 아내를 네 명까지만 둘 수 있다는 제한을 두었지만 자신은 그 계시를 지키지 않았다. 또 비록 양아들의 아내이지만 어쨌든 자신의 며느리와도 혼인을 했으며, 부하 병사가 선점한 여성 노예를 빼앗아서 취하기도 했다. 특히 6살에 불과한 아부 바크르의 딸 아이샤와 혼인했는데 그때 무함마드의 나이는 50세였다. 잠자리를 가진 것은 3년 뒤였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홉 살이었고 아이샤 본인이 직접 밝히기를 무함마드는 처음부터 성적으로 접근했고 삽입을 제외한 거의 모든 행위를 했다고 한다. 충분히 소아성애자로 오해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무함마드와 아이샤의 혼인은 향후 수백 년 동안 무슬림들이 미성년자와 결혼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무함마드 평전》에 의하면, 무슬림 공동체에서 여성은 ‘남성 위로’라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들의 낙원은 어떤 모습일까? 천상의 사창가를 연상시킨다. 여자들이 하루 24시간 순교자들에게 봉사한다. 순교자는 처녀 72명을 상으로 받고, 추가로 70명의 하녀도 얻는다. 중세 신학자 알 수유티는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가 ‘후리’와 잠을 자면 그들은 언제나 다시 처녀로 변한다. 무슬림의 성기는 잠들지 않을 것이다. 발기는 영원히 지속되며, 합방의 쾌락은 끝없이 달콤하고 이 세상에는 없는 맛이다. (중략) 모든 선택받은 자는 현세에서 가졌던 부인들 외에 후리 70명을 더 갖는다. 모두가 매혹적인 성기를 가졌다.”3)
물론 꾸란이나 무함마드의 여성에 대한 언급 중에는 여성을 배려하고 존중하라는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순교에 대한 보상 혹은 이슬람에서 말하는 천국에 대해서 저렇게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이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주
1. 인터넷 한겨례신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515.html
2. 하메드 압드엘-사미드,《무함마드 평전》, 배명자 옮김, 한스미디어, 2016, p154~155
3. 하메드 압드엘-사미드,《무함마드 평전》, 배명자 옮김, 한스미디어, 2016,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