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가 후계자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죽자 움마 공동체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누군가가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 급하게 소집된 원로회의에서 예언자의 오랜 친구이자 장인이고 최초의 무슬림 중 한 명인 아부 바크르를 칼리프(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하여 무슬림 공동체를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로 삼는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알려진 바로는 첫 번째 무슬림은 예언자의 아내인 카디자이고 그다음은 사촌 동생인 알리, 세 번째가 아부 바크라고 한다.)

 

조그만 아파트의 대표자를 뽑는데도 지지고 볶고 시끄러운데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신흥 종교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분란이 없을 수 없다. 원로회의가 급하게 아부 바크르를 예언자의 후계자로 선언했지만 당시 움마에는 후계자 자리를 넘보는 세력이 적어도 세 집단은 있었다.

 

먼저 쿠라이시족 타임 가문의 아부 바크르와 쿠라이시족 아디 가문의 우마르 연합세력은 아부 바크르를 추대하고자 했으며, 메카에서 이주해온 예언자를 도와준 메디나의 토착세력도 역시 후계자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정당한 후계자로 보는 쿠라이시족의 하심 가문이 있었다바크르-우마르 연합세력은 먼저 메디나의 부족들을 힘으로 굴복시킨 후에 알리를 찾아가 바크르를 칼리프로 인정하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예언자의 딸이자 알리의 아내인 파티마에게도 위협을 가했다. 결국 우마르와 알리 사이에 칼싸움이 벌어졌고 결투 중에 알리의 칼이 부러지고 말았다. 알리도 새로운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함마드의 사망 소식이 아라비아 전역으로 퍼지자 일부 부족들이 무함마드가 구축한 동맹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유일신을 믿고 무함마드의 권위는 인정했지만 더 이상 메디나에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부족들도 많아졌다. 심지어 자신이 알라의 사도라고 주장하는 자들까지 생겨났다. 아부 바크르는 이러한 이단과 분리주의자들에게 단호하게 대처했다. 그는 결코 얕잡아 볼 수 있는 전략가였다. 배교자 전쟁이라고 불린 반란을 종식시키고 다시 아라비아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배교자들에게는 단호했지만 무슬림 공동체를 대할 때는 겸손과 애정, 자비심만을 보여주었다. 어깨가 구부정한 남자였던 그는 소박한 옷을 입고 검소하게 살았다. 메카에서 살던 시절에 아부 바크르는 부유한 상인이었지만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재산을 거의 다 잃었다. 칼리프로 지내면서 그는 움마를 지도하는 대가로 적은 봉급만 받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전에 하던 교역을 부지런히 되살려서 그 수입으로 그럭저럭 살아나갔다. 때로 그는 푼돈을 벌기 위해 이웃의 소젖을 짜기도 했다. 아부 바크르가 메디나의 거리를 걸어가면 아이들이 그에게 달려가 아빠! 아빠!”하고 소리쳤고 그러면 아부 바크르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탕을 주었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의 캘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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