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귀환’ 시리즈의 3탄이 되겠다. 소생이 금일 수성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은하철도 999, 40주년 기념전>에 다녀왔다. 전시를 둘러보고 있는데 김국환이 부르는 ‘은하철도 999’의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오면~~” 박진감 넘치는 짱짱한 스타워즈의 오프닝 뮤직과 달리 은하철도 주제가는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만화임에도 트로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심금이 울어버리고 만다. 가사도 구구절절 애절하다. “.....끝없는 레일 위에 햇빛이 부서지네, 꿈을 쫓는 방랑자의 가슴에선 찬바람 일고....”
사실 1982년 MBC에서 처음 방송할 당시의 오프닝 주제가는 이 노래가 아니고 “외로운 기적소리에 눈물마저 메마르고, 찬바람에 별빛마저 흐느끼네....”로 시작하는 이른바 “눈물실은 은하철도”인데 노래가 너무 구슬퍼서 어린이들의 정서에 맞지않다는 이유로 5회부터는 위의 노래로 새로 만들어 오프닝 주제가로 쓰고 “눈물실은 은하철도”는 극 중간에 삽입 음악으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눈물실은 은하철도”의 가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엄마 사랑 찾는 그리움에, 무정한 기차는 무정한 기차는 흐느껴 우네, 말 좀 해다오 은하철도야 내 갈 곳이 어디냐....” 멜로디도 가사도 완벽한 신파고 성인가요다. 듣고 있으면 심금이 울어 저절로 눈물이 줄줄 흐른다. 소생은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 물론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로 시작하는 주제가도 좋아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사방이 온통 ‘은하철도 999’와 관련된 삽화들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마음은 벌써 아득한 유년의 그 일요일 아침으로 돌아가 추억에 흠뻑 젖어있는데, 이 노래를 듣게되니 그만 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 뭉클뭉클한 것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러내렸다.(뭐 진짜로 운 것은 아니고 그런 심정이었다는 약간 과장된 비유의 표현으로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이렇게 울컥한 적은 이스탄불에 있는 순수박물관 방문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Let everyone know, I lived a very happy life.”(모든 사람이 알아 주었으면 합니다. 내가 아주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파묵의 육필원고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3층 벽면에 쓰여진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날 박물관에서 실제로 그 문구 앞에서 우는 아가씨를 봤다. 내가 입장할 때 우리 앞에 미리 와 있던 중국인 아가씨 세명이 있었는데 그중 단발머리의 키가 작은 아가씨였다. 그 문구 앞에서 2~3분 정도 흐느껴 울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어서 옆에 다가가 어깨를 쓸어주거나 가만히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그러지는 못했다. (돼지가 무슨 소릴 지껄이고 있나 궁금하신 분은 “순수박물관”을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각설하고, 은하철도 하면 역시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 먼저 생각나는데 부끄럽게도 소생은 아직 읽어보질 못했고 책도 소장하지 못하고 있다. 깊이 반성하는 의미에서 조만간 구입을 다짐한다. 읽는 것은 아무 때고 시간날 때 읽기로 하고. 다음으로는 또 생각나는 사람은 함성호 시인과 얼마전 스웨터를 짜던 김현 시인이다.
먼저 함성호 시인의 시다.
열차는 달리고 싶다 철이는 흑기사 파우스트의 아들이다 파우스트는 완벽한 질서와 영원한 생명의 기계제국 라 메탈 LA METAL 행성의 전설적인 기사이다. '천국의 문' 신도들이 혜일·밥 혜성의 꼬리를 따라가고 있다 닥터 반은 철이의 엄마를 사랑했다 닥터 반은 프로메슘의 남편인데 그녀는 바로 기계제국을 세운 천재 과학자이다. 신의 백성인 유대의 전사들이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쑥밭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닥터 반은 철이와 철이 엄마가 인간성을 상실한 기계 인간이 될 것을 우려해 비밀리에 지구로 피신시킨다 질투에 불탄 프로메슘은 닥터 반을 죽이고 김구는 피살된다 철이 엄마도 죽는다. 그룹 황장엽이 귀순하고 프로메슘의 딸 메텔은 죄책감에 검은 문상복을 입고 철이를 기계 제국으로 데려온다 파우스트를 진짜 아버지로 믿다가 사실을 알게 된 가짜 하록은 성수대교가 무너지자 메텔과 목숨을 건 일전을 불사한다. 철이는 파우스트와 외디푸스적인 사투를 벌이고 자지에 털이 나자 메텔을 따먹는다 777호와 999호가 지네처럼 엉켜 있다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대부분 동안 열차는 모독에 대해 생각했다.
- 함성호, ‘라이프니쯔, 미분 계산을 다룬 논문의 첫 페이지’ 중에서
이건 소생이 2004. 5. 3. 알라딘 서재에 올린 페이퍼에서 복사해온 것으로, 그때는 분명히 어디선가 보고 올린 것이 분명한데, 거의 1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출전을 찾으려고 하니 포털에 검색을 해도 안나오고 소생이 가지고 있는 함성호의 시집 세권 <너무 아름다운 병>, <聖 타즈마할>, <56억 7천만년의 고독>을 뒤져봐도 흔적이 없다. 어디에 나오는 시편일까 몹시 궁금하다. 강호제현의 지도편달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음은 일전에 <아무튼 스웨터>를 짠 김현 시인의 시집 <글로리 홀>을 잠깐 훑어 보니 ‘은하철도 999’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목도 ‘은하철도 구구구’다. 일부를 옮겨본다.
(상략) 안드로이드들의 마지막 노랫소리가 평화롭게 기차를 메웠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모든 안드로이드들의 작동이 끝났다. 우주장례식 시물레이션이 꺼졌다. 달밤은 더 달밤이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길 기다리던 샘 빌은 G버튼을 눌러 지구의 문을 열었다. 유효기간이 지난 안드로이드들을 싣고 비둘기호는 불타는 지구를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샘 빌은 모든 샘 빌과 이브들을 향해 홀로 인사했다.
- 김현, ‘은하철도 구구구’ 중에서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수가 없다. 그건 그런데 시집 제목으로 쓰인 ‘글로리홀’이 무엇인가 싶어 찾아봤다. 사파이어홀, 에메랄드홀 하는 호텔의 무슨 웨딩홀 이름인줄 알았는데 위키백과의 설명은 이렇다. ‘글로리홀(Glory hole)은 공중화장실 칸 내에 남자 성기를 넣을 수 있을 만큼 구멍이 뚫린 칸을 말한다. 포르노와 어덜트 비디오에 자주 나오는 요소로, 성기를 넣은 뒤 사람이 자위를 시켜주거나 오럴 섹스를 한다.’ <아무튼 스웨터>에 대한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 김현의 시집 <글로리홀>이 ‘상당히 세’다고 하더니 말마따나 김현이 센놈이 맞긴 맞는 거 같다. 스웨터나 짜고 있을 인사가 아닌 것이다. 아니다. 센놈이라고 뭐 십자수를 놓지 말란 법은 없다. 인간이란 원래가 다층적이고 다중적이고 복합적이고 아무튼 좀 복잡한 물건인 것이다.
전시회 도록, 팜플릿, 스티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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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소생이 소장하고 있는 유일한 메텔 피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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