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완주는 소생의 오랜 원망이었다. 처음 세계문학전집 완독에 도전한 때는 기억에도 가물하니 까마득하다. 아마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아아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꽃같은 나이였다. 돼지를 닮은 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게 그렇다는 말이다. 범우사판 세계문학전집이었는데 30~40권 정도 읽은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 선생 작품들도 이때 많이 읽었다. 아니 읽어내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다.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입속에 처넣듯이 아무생각없이 그냥 눈으로 글자들만 ‘꾸역꾸역’ 읽었다.
40대 초반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모으면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완독에 도전했지만 채 열권을 읽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그때는 뭐 황금의 꽃같이 굳은 맹서도 없이 충동적으로 시도했던 까닭에 소 여물 씹듯하는 그 ‘꾸역꾸역’이 잘 되질 않았다. 이제 반백을 바라보는 이 마당, 이 고지에서 다시 세계문학전집에 도전한다. 노익장인가? 참내.. 이번은 을유세계문학전집이다. 소생은 2017~2018년 양년에 걸쳐 을유세계문학전집을 다 읽어내겠다는 다짐을 알라딘 독자제현 앞에서 엄숙히 하는 바이올습니다. 참고로 밝히자면 소생의 계획은 다만 읽겠다는 것이지 읽고 리뷰를 쓰겠다는 것은 아니다.
소생이 을유를 선택한 데에는 몇가지 연유가 있다. 희디흰 그녀의 속살이 아니라 눈꽃 빙설 위로 줄줄 혹은 질질 흘리고 뿌려주시는 그 연유가 아니다. 뭐 다 아시겠지만 그냥 쓸데없는 소리 한번 해봤어요 네... 소생이 아는 혹자는 이 연유를 숟가락으로 국 떠먹듯이 하는데 보고 있으면 먹지 않아도 속이 달디달아 뒤집어진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소생의 연유는 세가지.
첫째, 을유는 수량이 적다. 민음사가 스코어가 350이 다되어가고, 문동, 열책, 펭귄도 뭐 살뜰이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다 200은 넘는 것 같은데 을유는 아직 86번에 머물러 있다. 2018년까지 100권이 나온다해도 1년에 50권이다. 만만치는 않겠지만 해볼만은 하다.
둘째, 민음, 문동, 열책, 펭귄 들은 소생이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많은 반면에 을유는 소장하고 있는 책이 거의 없어 한권한권 사모으면서 읽는 재미가 꽤나 있을 것이다. 이달의 우수사원 영업실적 똥작대기 그래프처럼 쑥쑥 자라는 장서의 수량이 소생의 독서력을 추동할 것이다.
셋째, 타 전집에 비해서 소생이 읽은 책이 별로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른 전집이라고 소생이 읽은 책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소생이 계획하는 완주는 1권부터 끝번까지 빠짐없이 차례대로 읽는 것인 바, 완주를 하려면 이왕에 읽은 책도 다시 읽어야 하는데 읽은 것이 별로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쨌든간에 소생은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차례차례 차차례대로 질서도 정연하게, 시선은 전방 15도 턱은 당기고, 똥배는 넣고 궁뎅이는 빼고, 보무도 늘름하고 발소리도 경쾌하게 착착착, 작두로 소여물을 썰듯 낫으로 벼를 베듯 싹둑싹둑 무심하게 쳐나갈 것이다. 궁뎅이 밖으로 비어저 나온 커다란 불알을 달랑이며 촐싹거리는 한심한 돼지의 꼴사나운 행보를 주시하시라.
<첨언>
을유 세계문학전집 1권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다. <마의 산>은 옛날에 범우사판으로 읽었지만 그렇거말거나 다시 읽어야 한다. 어차피 거의 다 잊어먹었기도 했거니와 어쨌든 <마의 산>부터 시작이다. 레이스의 초반에 벌써 엄청난 산이 떡 버티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용이 씬다. 일단 이 산을 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