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
프로코피우스 지음, 곽동훈 옮김 / 들메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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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뭐 호사가가 아니더라도 비밀스러운 이야기에는 누구나 마음이 솔깃하고 귀가 쫑긋해진다. “돼지야, 이건 정말 비밀인데 있잖아...,,놀라지 마래이...니 옆집에 사는 늙은 암퇘지가 사실은.....” 이러면 누가 뭐라 안해도 자동으로 의자를 바싹 당겨앉게 되는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소생은 뭐 돼지인 주제에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어쨌든 ‘비사’라고 하니 관심 폭발이었다. 특히나 소생이 깊이 애정하는 바 비잔틴 제국의 비사라니 말해 무엇하겠나. 설상가상에 국 쏟고 밥상이 엎어진 격이다. (항상 그렇지만 어째 비유가 적절치 않다....)

 

 

본처가 아닌 첩이라고 하면 뭔가 구리면서도 야리한 향내가 나는 듯하고, 제때에 먹는 삼시 세끼보다는 아무 때나 땡길 때 먹는 군것질이 역시 맛은 그만인데, 소생은 이 ‘비사’가 당연 ‘정사’가 아닌 ‘야사’이니 보드라운 살들도 살아 펄떡이고 달달한 냄새도 솔솔 풍기는 그런 유토피아 지상낙원 주지육림을 얼마쯤 기대했지만 이건 다 소생의 헛된 꿈이었다. 그건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야사에는 역시 유머와 위트, 노골적인 야유와 은근한 비난이 뒤석여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나쁜 짓 하는 못된 놈은 벼락을 맞는다.’는 교훈까지 가미된다면 첨상첨화요 화룡점정이 되겠다. 고려 정지상 귀신이 뒷간에서 응가하는 김부식이 불알을 잡아당겨 죽인 이야기처럼 말이다. 연이나 본 도서를 일독한 작금의 느낌이란 국 쏟고 손 데이고 뺨까지 한 대 맞은 그런 기분이다.

 

 

‘비사’라는 것의 99%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에 대한 적나라한 욕설이다. 욕도 뭐 말하자면 쌍욕이다. 두 연놈이 바로 인류를 멸절시킬 악마라는 것이다. 프로코피우스는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계속 진지하게 같은 이야기를 주장하고 있다. 아!!! 읽다가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로마의 네로나 칼리쿨라 황제, 혹은 중국 하은주 시대의 주왕이나 걸왕 등등 기타둥둥 유사이래 폭군, 혼군, 망군, 암군으로 양명한 이들이 수다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유스티니아누스 부부에 비하면 새발의 피요, 새끼 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 사이 골짜기에 끼인 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소생은 이른바 저명한 역사학자가 왜 이런 쓰레기보다 못한 글을(노리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의 귀담아 들을 가치가 없는 이야기’) 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비잔티움 연대기>의 저자인 줄리어스 노리치는 프로코피우스를 가리켜 ‘짐짓 신안심 깊은 체하는 늙은 위선자’라고 했고, 에드워드 기번은 ‘비사’의 역사서로서 효용에 대해서는 “악의에 찬 독설이 증발되고 남은 ‘비사’에서는 공적인 역사서에는 신중하게 살짝 언급만 한 불명예스러운 사실들까지 그 내적 증거와 당대의 권위있는 문헌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로마제국쇠망사 4권 p45-46)고 했지만 프로코피우스 개인에 대해서는 ‘속을 알 수 없는 역사학자’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고 있다.(로마제국 쇠망사 p78,80) 소생이 보기에 독설이 증발하고 남은 것은 속이 새까맣게 탄 빈 냄비 밖에 없는 듯하고 당연하게도 음흉한 인물들의 심사를 알기란 열길 물 속을 살피기보다 어려운 법이다.

 

 

기번은 프로코피우스가 <전사>에서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너무 치켜세우다가 그만 결과적으로 자존심 강한 황제에게 상처를 입혔고, 이를 만회하고 용서와 보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황제를 찬양한 <건축에 대하여>를 저술하여 헌상했지만 아마도 원하는 보상을 받지 못해서 실망한 나머지 은밀한 복수로 매일 밤 남몰래 써내려간 것이 바로 이 ‘비사’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거 변태 아니가? 정녕 프로코피우스가 이 ‘비사’를 썼다면 그를 역사학자라고 칭하기 낯부끄럽다. 어둑한 방구석에서 꿍꿍거리며 연예계 악성루머를 생산하는 찌라시 제작자와 한가지다. 모름지기 진정한 사관이란 바른 소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알이 까이는 그 엄청난 치욕 속에서도 이른바 ‘춘추필법’에 입각하여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불알은 까였으되 털붓은 꼿꼿하게 세웠느니, 아!!! 생각할 수록 드높아라!!! 사관의 매운 얼이여!

 

 

<비잔틴제국 비사>에 나오는 몇 구절을 옮겨본다. “그들을 보면 인간의 몸을 뒤집어쓴 악마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고 쉽게 인류를 멸절시킬 수 있는지 궁리하는 모습이 연상되곤 했다.”(p142), “유스티니아누스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였다는 사실은 그가 인류에게 초래한 재앙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p175), “이제부터 황제가 어떻게 제국의 토지 소유자들을 파멸시켰는지 설명하겠다.”(p201), “황제가 병사들의 등골을 빨아먹었던 사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p206), “이제부터 유스티니아누스가 자신의 신하들을 약탈한 방법에 대해 좀 더 서술하겠다.”(p211), “이제부터 나는 황제가 얼마나 거짓말쟁이이자 위선자였는지 보여주겠다.”(p236)

 

 

위키백과에 나오는 프로코피우스에 대한 설명이다. “프로코피우스(생몰년 미상)는 6세기의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이아 출신.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에 활약했던 장군 벨리사리우스의 비서관 겸 법률 고문으로서 페르시아 전쟁, 동고트 왕국 정복전 등에 종군하여 기록을 남겼다. 저작으로 《전사(戰史)》(전8권), 유스티니아누스의 건축 업적을 찬양한 《건축에 대하여》, 동로마 제국의 은밀한 뒷이야기가 담긴 《비사(秘史)》가 남아있다. 그의 문체는 고대 그리스의 사가 헤로도투스나 투키디데스의 것을 이어받아, 동로마 제국 초기의 역사서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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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0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이 책 <비사>는 저자의 사심가득한 책으로 봐도 될 것 같은데요.
페이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붉은돼지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붉은돼지 2015-12-10 12:4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 이입되어 있는 듯 합니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던가 아니면 황제부부에게 많이 당한게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ㅎㅎㅎㅎ

마법의활 2015-12-0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얘기죠. 다만....테오도라가 몸 파는 여자였다는 건 이 양반의 다른 점잖은 책에서도 검증되니...;;; 스트립쇼도 했던 건 분명합니다.

붉은돼지 2015-12-10 12:4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기번도 몇번 언급하더군요...몇 가지만 알아보면 금방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도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기술햇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테오도라는 흔히 곰조련사의 딸로 태어났으며 매춘부였다고 하더군요. 니카반란에서는 결기넘치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구요..

컨디션 2015-12-09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잔틴..(뿐만아니라 세계사를 통틀어) 요쪽은 제가 완전 문외한이라 이 페이퍼를 언제 다 읽고 언제 다 이해해서 언제 댓글 다나.. 똭, 보고 한숨부터 나왔다지 뭡니까. 근디, 읽다보니 님 페이퍼가 완전 제 스타일인걸요. 폭포수 같은 판소리 고수의 완창이 이렇지 싶다니까요.^^

붉은돼지 2015-12-10 12:48   좋아요 0 | URL
컨디션님~ 재미있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사실 `똭` 이거는 다락방님에게 배운 겁니다....ㅎㅎㅎㅎㅎ

기억의집 2015-12-10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페이퍼가 진지함에도 독자는 유쾌합니다~ 저의 남편이 역사를 좋아해서 집에 기번이나 다른 역사책이 있는데,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있습니다! 근데 저 때도 등골이란 단어가 있었을까요?

붉은돼지 2015-12-10 12:55   좋아요 0 | URL
`등골을 빨아먹는다`...제 생각에도 이거는 보통 엄마, 아부지가 배우자 또는 자식새끼들에게 쓰는 우리 고유의 언어같은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ㅎ

`비잔틴제국 비사`는 원래 6세기 그리스어로 쓰여있다고 하는데요, 이게 호메로스나 에우리피데스 같은 인사들이 사용하던 고대 그리스어와는 또 달라서 원전 번역이 어렵다고 하더라구요...천병희 선생은 아마 고대 희랍어 전공이신 듯 해요.. 이 책은 1920년대에 영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역본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아마 가렴주구 같은 것을 번역하다가 `등골 빨아먹는` 이런 표현이 나온 것 같습니다..

꼬마요정 2015-12-1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재미있어요~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글입니다. 테오도라는 창녀였다지만 유스티니아누스보다 더 대담했다고 하죠. 니카의 반란 때도 황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게 했으니까요. 천민과 결혼하기 위해 법까지 바꾸고 대단한 연애사이긴 합니다.

붉은돼지 2015-12-10 13:00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테오도라라는 인물은 정말 특이하고 특별한 인물 같아요...매음굴의 매춘부에서 제국의 황후(그냥 황제의 배우자가 아니라 황제 버금가는 통치자로서)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그런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법까지 바꾸어 가며 애쓴 유스티니아누스도 특이한 인물이고 ....저는 특히 벨리사리우스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제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라는 그가 아내에게는 어처구니없이 당하기만 하는지....

oren 2019-05-10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코피우스가 쓴 <전쟁사>와 <건축에 대하여> 등이 혹시라도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게 없나 하고 찾아보다가 멀리멀리 여기까지 왔네요.

예전에도 이 페이퍼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프로코피우스가 어떤 역사가인지 전혀 모르던 때여서 별 희한한 역사가가 별 요상스런 <비사>를 다 남겨 놓았구나 싶은 생각만 들었었는데, 이번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찬찬히 읽는 동안에 프로코피우스라는 역사가를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되어 거듭 놀라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쇠망사>는 이제 3권의 중반쯤인 <32장>을 읽고 있는데, 짐작했던 것보다는 훨씬 다양한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네요.^^ 이래저래 붉은돼지 님의 발꿈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기분으로 읽고 있습니다.^^

붉은돼지 2019-05-12 13:33   좋아요 1 | URL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는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별 내용이 없어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은 중역본이어서 번역상의 문제도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에도 <비사>가 드문드문 인용되고 있는데, 제가 전에 노리치가 인용한 부분들을 이 책에서 찾아 비교해 본 바로는 내용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민음사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예전에 거의 일 년 넘게 걸려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무슨 숙제처럼 무조건 다 읽어야한다는 생각에 즐기면서 읽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고 싶습니다. 기번의 문체는 뭐라고 할까요 격조가 있다고나 할까요.....민음사판은 완역이라고는 하지만 기번의 잡답 혹은 수다라고 하는 그 많은 주석을 다 번역하지는 않아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이 주석이 독서의 흐름을 끊기도 하지만, 또 나름의 재미가 있기도 하거든요...

적극 추천해 주신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금요일날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이 만한 장편은 오랜만이기도 하고 여러날 걸려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무척 아쉽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황폐한 집>을 읽어 볼 생각입니다. 이게 또 상당한 두께더군요.....다른 영국 관련 책들도 두어 권 같이 읽고 있기는 합니다만...틈틈이 세월대로 읽어볼 생각입니다. 항상 좋은 책들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oren 2019-05-12 14:10   좋아요 0 | URL
프로코피우스의 작품 가운데 제일 중요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비사>인 듯한데, 기껏 유일하게 번역된 작품마저 중역본이라니 좀 아쉽긴 하네요.

저는 다른 책들은 다 제쳐두고 『로마 제국 쇠망사』만 읽고 있는데도, 붙잡은지 한 달 만에 절반쯤 읽었네요. 앞으로도 부지런히 읽는다면 한두달 이내로는 다 읽을 수 있지 싶습니다. <기번의 잡담>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그의 박학다식함과 유머 내지는 재치더군요. 도대체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쓰기 위해 그가 뒤져본 역사 자료가 얼마만큼 많았을지도 궁금하고요.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드디어 다 읽으셨군요. <황폐한 집>은 데이비드 코퍼필드와는 또다른 묘미를 주는 작품인데, 등장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후반부로 갈수록 완벽하게 이어지는 구도는 정말 환상적입니다. 책을 처음 읽을 때부터 등장 인물들 하나 하나를 꼼꼼히 기록하면서(가령 해당 인물 옆에 해당 쪽수를 기록하는 등) 읽으시면, 후반부에 가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싶습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독서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