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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과학의 차이 - 서양 과학, 동양 과학, 그리고 한국 과학
김영식 지음, 임종태 엮음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한중일 과학의 차이, 동양 과학과 서양 과학의 차이 정도,
그리고 근세 조선에서 어째서 서구와 같은 과학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다룬
심도 깊은 저서다.
일단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조선에서 서양 같은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유학" 더 정확히는 "성리학"에 있으나, 그것은 성리학이 황당무계하거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도덕 체계만 강조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1. 거꾸로 그것은, 세상 발전과 통치, 도덕 함얌에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는
물음들까지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상당히 배격한 성리학의 "지나치게 실용적"인
속성에 있었다는 중대한 깨달음이다.
성리학의 "격물치지" 즉 각 사물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거기서부터 이치를 탐구하는
것은 성리학이 선불교의 수련법 중 일부를 받아들여 실용적으로 발전시킨 것인데,
그 중 "격물"이 "과학"과도 연결될 여지는 적지 않았으나 끝내 서구 같은 물음으로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은,
격물이 각 사물의 세부적 특성을 파악하기보다는 그걸로 인간 사회의 어떤 도덕적, 철학적
특징을 끌어내어 사회의 도덕을 끌어올리는 것에서 끝났던 데 원인이 있었다.
즉 사물들의 특성을 끌어내서 공통점을 끌어내어 세부적 속성을 파헤치는 건
당장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성리학에서 막지도 않았지만 권장하지도 않아
과학 발전에 저해가 되었다는 중대한 지적인데, 나는 여기서 그렇게 실용을 좋아하는
로마 제국이 그리스 과학을 받아들였음에도 너무 실용적이라서 "이학"을 배제해버린 끝에
이슬람 과학이 등장할 때까지 과학 발전이 멈춰버리고 말았다는 서양 사학자들의 지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지나치게 실용적"이어서 쓸데없는 걸 다 배제하는 짓은 자유로운 사색을 막고
과학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학"분야에서.
2. 그밖에 더 중요한 건 일본 과학이 동양 과학의 흐름에 물론 있었으나,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아예 직접 서구 과학을 수입할 통로가 있었고, 메이지 유신 이전에 이미 서구 과학을
독자적으로 받아들여 소화할만큼 충분한 과학 역량까지 지식인 일반이 올라와 있었다는
사실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불과 1890년대까지는 서구 과학을 거의 따라잡아 서구에서 일본 과학자들에게 연수를 더이상 시켜주지 않거나, 거꾸로 서구에서 일본의 국가적인 과학 진흥책을
흉내내서 적용하고 있었다는 대목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경제력이 1900년대에 이르러 대한제국의 수십 배에 달하긴 하였으나, 이미 그 전에 과학역량이란 점에서는 거의 게임이 끝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게 깊은 충격이었다.
일각에서 일본의 "난학" 즉 네덜란드학이란 게 별 것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진정 틀린 주장이었음을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3. 한국 과학이 중국 과학의 이론을 받아들여 몇몇 세부적인 분야에서는
중국 과학을 넘어서는 성과를 낸 것도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중국 과학이 한국 과학보다
앞서 있었고, 한국 과학이 중국 과학자들도 읽을 수 있는 한문 서적으로 주로 산물을 생산했으나
중국 과학자들은 한국 과학쪽 성과에 무관심했고 한국 과학자들은 중국 과학의 산물 수입에
늘 열을 올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즉 어쨌든 중국 과학이 한국 과학보다 내내 앞서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서구 쪽은 이슬람 과학을 수입할 때 기독교, 즉 종교측이 이슬람 과학으로 들어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거부감을 느꼈으나 결국 수용한 반면, 한중은 성리학 철학계가 서구 과학계와 함께 들어오는 기독교 사상에 결국 거부감을 불식시키지 못해 서구 과학까지 받아들이는 게 늦어져버렸다는 사항을 지적한다.
즉 보통은 철학이 종교를 용납하는 것보다 종교가 철학을 용납하는 게 쉽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00년 전 기독교에 대해 이해도 못하면서 죄다 틀린 얘기만 하는
안정복의 그 논리에 여적까지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통탄할 현실이 뼈아프다.
5. 또 한가지 중대한 오해를 저자는 지적한다. 그간 한국 전근대 국가들은 조선을 포함해
과학기술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었고 대우도 나빴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
조선의 위정자들은 사실 고려나 신라도 그랬듯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자들에게
괜찮은 경제적 지위, 평민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주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그들이 국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오히려 중국에 비하면 더 나았다고도 볼 수 있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과학이
중국보다도 늦어져버린 건, 조선의 위정자들이 과학기술을 통치 기술의 일부로 보지 않거나,
과학 기술 담당자들을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는 층에서 완전히 배제한 게 큰 원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아울러 이런 조선을 망하게 하는데 일조한 "중인의식"이 현대에도 이어져,
전반적으로 한국의 통치 엘리트들도 과학기술을 수단으로만 보지 학문적인 호기심은
극히 적으며, 한국의 과학기술자들도 국가의 명운이나 향방에 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것이 1980년대 상황이라고 전제를 붙이지만, 글쎄.....
오늘날이라고 다른 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