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이 즐겨 입으시던 옷 중에 몸빼 바지라는 것이 있었다. 흐늘흐늘한 천에 허리띠는 고무줄로 되어있어 무한 신축적이었던 보기에 몹시도 편해보였던 바지. 각자무치라(角者無齒)라는 말이 있다. 후안무치와 비슷한 뜻은 당연 아니고, 뿔이 있는 짐승은 이가 없다는 이야기인데, 뭐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 좋을 수는 없다는 대충 그런 뜻으로 쓰이는 사자성어다. 말하자면 이 몸빼바지는 패션(멋)을 희생하고 편함을 취했던 것이다. 외출복으로는 좀 부적절 했지만 동네 시장 정도는 커버할 수 있고 그 편안함으로 말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소견이다. 소생이 뭐 직접 입어보지는 안았지만 척 보기만 해도 딱 알 수 있다.
사실 소생은 이 몸빼 바지를 한 번 꼭 입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그 몸빼 바지가 요즘은 쿨링 팬츠라고 하여, 패션을 그리 많이 희생하지 않은 듯 하면서도 편안함은 그대로 간직한 듯한 그런 모양새로 등장하여 주위에서 많이들 입고 다니는 것이 소생의 이 흐리멍텅한 눈에도 자주 보이는 바, 소생은 큰 마음을 단디 먹고 얼마 전에 드디어 쿠팡에서 아내와 커플로 쿨링팬츠를 구입하고야 말았다. 땡땡이 무늬가 있는 것으로. 커플로 구입한 사유는 뭐. 다 늙어 쌍으로 붙어 다니면서 뭐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고, 9800원 이상이 되어야 배송료가 없다고 해서 그리한 것 뿐이다. 어쨌든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바지가 도착하고 착용을 해보니 하늘하늘하고 시원한 촉감에 입은 듯 벗은 듯 몹시도 편안한 착용감은 소생이 상상하던 바로 그 몸빼바지의 착용감 그래로인 것이었다.
그런데....이걸 자세히 보니 잠옷 비슷하기도 해서...이걸 착용하고 어디까지 진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아내와 소생사이에 사소한 논쟁이 있었는데,,,, 소생의 생각은 이게 뭐, 칸 영화제 시상식같은 공식적인 자리에 입고 나가기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이마트나 홈플 등 대형마트 정도는 무난하다는 주장이고, 아내의 입장은 야밤에 동네 공원이나 아니면 아파트 바로 앞에 위치한 재래시장에나 입고 갈 수 있지, 어디 벌건 대낮에 입고 여기저기 돌아댕기기는 것은 범절모르는 본데 없는 짓이다 라는 것이었다.
아내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아뿔싸! 소생 그래도 글줄 꽤나 읽고, 방귀 좀 뽕뽕 뀌고, 신독(愼獨)을 좌우명으로 삼고있는 선비로서 함부로 입고 돌아다닐 만한 물건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아니..... 인생 뭐 있나...내가 뭐 벌거벗고 불알 달랑거리며 나다니는 것도, 빤스만 입고 뻔뻔하게 싸돌아댕기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들고... 갈팡질팡 갈피를 못 잡고 있어 여러 알라디너님들의 고견을 듣고 싶은 마음에 글월을 올립니다... 사실 어젯밤에 이 쿨링팬츠를 입고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재래시장에 잠깐 다녀 왔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동네 시장이라고 하니 문득 생각이 났는데,,,,,이건 아주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긴데요. 소생이 중딩 때인가 헐렁한 체육복을 입고 딸딸이를 끌고 동네 시장을 자주 일렁일렁거리며 왔다리 갔다리 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네 시장통 입구에 있는 메리야스집의 여중생 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볼까 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이었는데요. 철없던 어린 제 눈에는 그녀의 미모로움이 나스타샤 킨스키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심한 소생은 그녀를 ‘나타났다 킨스키’로 명명하고, 방과 후나 방학 때나 일요일이나 할 일 없을 때는 그냥 정처없이 ‘나타났다 킨스키’가 나타나길 고대하며 시장 주위를 일렁일렁 왔다리 갔다리 했던 것입니다. 진짜 가끔은 그녀가 저 쪽에서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그러면 저는 또 부끄러워서 바로 뒤돌아서서 시장을 빙돌아서 집으로 되돌아왔던 기억도 납니다. 아...생각해 보니 그립군요...그 시절이...그 시절의 나타났다 킨스키는 지금은 무엇이 되어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