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근자에 들어 진득하게 앉아 독서를 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페이퍼는 올리면서 리뷰 하나 올리지 못했다. 글하는 선비로서 깊이 반성한다. 옛 성현이 말씀하셨다. 오일삼성오신하나니 위인모이불충호아, 여붕우교이불신호아, 전불습호아. 공자의 제자 증자의 말씀이다.
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해석을 해보자면 “나는 하루에 세 번 반성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데 마음을 다했는가, 친구와 사귐에 신실했는가, 가르침을 복습했는가.”이다. 이렇게 하루에 세 번 스스로를 반성한다고 하니 역시 성현의 반열은 지엄하고도 무섭다. 오늘날 성현의 말씀을 가장 잘 실천궁행하는 이는 아마도 근역의 김영승 시인일 것이다. 시인은 반성을 엄청나게 하고 있다. 그의 무수한 반성 중 하나를 소개한다.
반성 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집구석을 뒤져보니 김영승의 시집 <반성>이 없다. 분명히 샀는데... 몇 년 전 중고 대방출시 방출된 것 같다. 다시 사야겠다. 처분했다가 다시 산 책이 여러권이다. “쓸데없는 짓도 되우 하네” 아내의 말씀은 실로 지당하시다. 반성해야 한다. 책 구입을 도모하면서 정성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는가. 책과 더불어 사귐에 믿음을 다했는가. 구입한 책은 다 읽었는가. 방출한 책을 다시 산 적은 없는가....
소생도 술에 취해 뭐라고 뭐라고 주절주절 끄적여 본적이 있다. 다음날 보니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고대문자같은 글씨는 해독이 불가했다. 이런 경험은 소생도 있는데 그 해독불가의 고대문자를 끌어안고 있다가 술을 먹고 다시 본 적은 없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정말 해석이 가능할까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