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 6개국 30여 곳 80일간의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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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양이에 대한 학대와 차별이 가장 심한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들의 고양이 현실은 어떠할까 떠나서 만난 이야기다. 읽는 내내 행복했고, 더불어 슬펐다. 최소한 이곳에서는 고양이에게도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대만에 다시 가면, 고양이서점 `유하서점`에 꼭 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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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7-01 22:56   좋아요 0 | URL
한국이 고양이 학대와 차별이 가장 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한국에서도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고,
다른 나라에도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아마, 고양이는 어디에서라도
스스로 씩씩하고 즐겁게 잘 살리라 믿습니다 ^^

appletreeje 2014-07-01 23:1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잘은 몰라도, 아마도 가장 그런 정서가 많은 나라인 듯 싶습니다.
정말 이해도 오해도 잘 납득이 안되는 일이지만요...아마 오랫동안 고양이를 키우고, 더불어 고양이들의 현실을(보호받지 못하는 고양이들에 대한) 많이 접하고 구조활동을 했던 현실이나 상황에 대한 느낌이라 할까요.^^

물론,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지만...보편적으로 이렇게 차별이 큰 나라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그것은 고양이 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르고 이익에 위배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저를 비롯한 캣맘이나 캣대디, 그리고 함께살기님의 아름답고 안전한 보금자리에 깃든 아이들은 예외이겠지만요~


부디 모든 사람이, 최소한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아도...이유없이 미워하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

2014-07-02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2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하철도의밤 2014-10-12 12:08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가 고양이 학대하는 나라는 분명하죠..
길냥이 밥주는 것도 뭐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들은 필요 이상으로 먹어서 배가 남산만하게 나와서
뒤뚱거리면서, 길냥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사료와 물 주는 것조차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정말 슬픕니다.

appletreeje 2014-10-13 23:55   좋아요 0 | URL
예, 정말 고양이 학대가 심한 듯 싶습니다...ㅠㅠ
저도 길냥이 밥 주면서, 모두가 잠든 밤에 간첩처럼 나가서
주고 돌아오곤 하지요...
왜, 자신이 안 하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들까지..

사실, 길냥이들이 간혹 쓰레기봉투를 뜯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그애들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최악의 먹이를 구하는 일인데요.
그것이 싫다면, 사료나 아니면 잔밥이라도 따로 놓으면 안 그럴텐데
참...언제나 마음이 아프네요.


Serendippity님! 반가운 댓글, 고맙습니다~*^^*
 

 

 

 

 

 

 

 

          서울 생막걸리에,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먹고 돌아왔다.

          오전까지 읽던 김아타의 신선하고 서늘한 프로젝트 작업에 대한 행보와 ,

          "썩은 물이나 깨끗한 물이나 배를 띄우는 부력은 같다." '나는 오염된 현실을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물을 빌려 인간의 본성을 풍자했다.'라는 귀절을

          떠올리며  나는 깨끗한 물인가 썩은 물인가? 인간은 인간이라는 물이 띄우는

          부력으로 세상을 만들고 그 물 위에서 산다. 나 또한 같은 부력을 가진 물이기

          도 한다. 그런데 나는 썩은 물 같아 뜨끔했다.

 

 

 

2008년. 나의 사적인 박물관을 짓는 <뮤지엄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한 경계에

있었다. 그것은 '니르바나 시리즈'였다. 유리박스에 여든이 넘은 어머니를 황금색

연꽃 좌대 위에 세웠다. 알몸이었다. 그날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염화미소

를 지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를 알몸으로 촬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큰 형님이

"꼭 그래야 되나" 하며 울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형도 이미 전설이 되었다.

(P.119~120 ) / 김아타 산문집, <장미의 열반>.

 

 

 

           완벽한 자유는 없다. 그래서 자유는 스스로 자유라 말하지 않는다.

           조르바처럼, 새처럼 두 팔을 벌려야지.

 

 

 

           세상의 혓바닥이나, 손가락들이 유령들처럼 웅성거리며 소란하다.

           저잣거리건 인터넷상이건. 

           막걸리에 김치찌개를 먹고 온 날,

 

 

디지털의 배후에서 아날로그의 세계가 껄껄 웃는다. 눈길 위에서 스승의 손이 나의

손을 잡는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진정성과 성실성을 말없이 폭로하는 굳은 살이

무섭게 나/ 의 손을 눌러왔다. (P.134 )  /  '아름다운 손' 中

신동호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미닫이가 닫힌 냉면집 앞을 한동안 서성였네

                       기울어진 간판이 요즘의 나같이 좀 모자라 보이는 것이

                       NLL이나 중국 어선 같은 건 그냥 육수로 끓여버릴 것 같

                    았네

                       냉면 맛 또한 설핏하게 날 위로해줄 듯 했는데

                       허리 굽은 아저씨는 잠시 황해도 고향에 갔는가 보네

                       바람만이 미닫이를 슬쩍 밀었다 제자리에 갖다놓고 있

                       었네

 

 

                       육수를 내던 자국만 담벼락에 붙어 고향 냄새를 풍겼네

                       병사들의 차는 잠시 속도를 줄이면서 굴뚝을 보았네

                       주인의 부재는 천안함처럼 의문만 남기고

                       눈치 빠른 병사들이 남긴 바퀴 자국 위로 개 한 마리 지

                    나갔네

                       노를 저어 잃어버린 맛을 찾아갔는가 보네

                       장촌냉면집 지붕이 자꾸 낮은 포복을 하고 기어갔네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는데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바다가 물러난 사리 갯벌 어디에서 개불을 잡고 있을까

                       까나리액젓은 현무암 빛깔로 곰삭은 맛을 내고

                       인생도 물냉면 사리처럼 물컹해버렸는데

                       혹시! 아무도 가지 않는 방공호를 돌아보고 있단 말인

                    가?

                       텅빈 길 위에서 나 혼자 분단의 두려움에 떨고 있었네  (P.97 )

 

 

 

 

 

 

                             성천막국수

 

 

 

 

 

                          소주 세 잔이 심심하다.

                          날은 창창하고 근심을 널어 말리니 겨우내 묵은 절망의,

                          퀴퀴한 냄새가 기화하는 듯 하다.

 

 

                          답십리 성천막국수는 한 여름 깊은 산 계곡 같다.

                          스승 상천 선생의 말이라 해서 철석같이 맛을 믿었다.

                          지난밤 비에, 길은 벚꽃으로 얼룩졌고 국수집엔 메밀꽃

                          이 피었다.

                          강원도 횡성, 여름날의 갑천은 나뭇잎 하나 없이 투명했다.

                          동치미 국물에 잠긴 국수는 흔한 고명 하나 없이 솔직했다.

 

 

                           삶은 자주 단순하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 또한 양념이 필요치 않다.

                           지난밤 아내의 엉덩이를 두드린 일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면 삶는 냄새를 콧등에 남긴 오후, 길다.  (P.136 )

 

 

 

 

 

                                  - 신동호 詩集,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에서

 

 

 

 

 

 

 

 

 

 

 

 

 

 

 

 

 김아타의 작업은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 수적천석水滴穿石과 같은 오랜 반복 행위의 산물이다. 8시간, 24시간. 사흘, 나흘 무한한 장노출을 통해 고정되어 있는 물체는 기록되고 움직임이 빠른 물체는 이미지가 사라져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는 <온에어 프로젝트>가 그러했으며 전 세계의 역사적인 도시 열세 곳을 주유하며 1만 컷의 사진을 하나로 포갠 <인달라> 시리즈가 그러했다. 자기 새끼에게 자기 살을 내어주기 위해 거미줄로 제 몸을 묶어 본능적인 도망을 차단한 염낭거미처럼 배수의 진을 치고 작업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의 작업은 그렇게 쉼 없는 반복 행위의 중첩인 동시에 끊임없는 진화의 연속이었다. <해체>에서 <뮤지엄 프로젝트>로, <뮤지엄 프로젝트>에서 <온에어 프로젝트>로, <온에어 프로젝트>에서 <인달라>로, <인달라>에서 <자연드로잉>으로 진화하며 사진 너머의 세계로, 예술 너머의 세계로 미적 지평을 넓혀왔다. 그는 자기 진화의 속도를 제어하지 않았다. 자기 복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새로움을 항시 추구했고 그 새로움도 내일이면 버려야 할 관념이라 여기며 오로지 전진했다.
자연에 캔버스를 설치하여 무궁하고 내밀한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쓰는 글로벌 프로젝트 <자연드로잉>은 바로 지난 작업들의 축적이 오늘에 나타난 진화의 현재형이며, 그런 의미에서 김아타의 작업은 하나라도 들어내면 무너져 내리는 레고 블록 쌓기와도 같다. 그렇기에 《장미의 열반》은 아티스트 김아타가 쌓아올린 사상의 레고이며 우리 앞에 드러hfs 김아타 철학의 진경이다.

 

 

 

 

 

 

       장촌냉면집에도 못 가고, 답십리 성천막국수도 갈 수 없으니

       저녁은 집 앞의 봉평막국수나, 열무물김치 국수나 먹어야겠다,

       마음을 심심하고 투명하게, 어루만지고 싶은 저녁이다.

 

 

 

 

 

 

 

 

 

 

 

 

시대의 아픔으로 지은 평화의 노래

1990년대 시집 『겨울 경춘선』과 『저물 무렵』을 발표하며 80~90년대 한국의 암울한 시대상을 노래하며 현대사의 좌절을 딛고 새로운 깨달음을 모색한 신동호 시인이 20년 가까운 오랜 침묵 끝에 새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분단과 분열, 억압을 극복하고 화해와 소통, 이해로 가는 길을 찾고자 모색한다. 시인은 그 길에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희망보다는 좌절을 후대에게 넘겨주고자 한다. 후대는 그것을 탐침봉 삼아 현실이 좌절한 원인을 찾아 극복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울 지나 봄…… 그러나 다시 겨울

“갈 곳이 더는 없었네/더 가봐야 철책선,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시작하는 시 「겨울 경춘선」을 읽어본 이라면, 이 표제시를 품고 있는 그의 첫 시집 『겨울 경춘선』을 읽어본 이라면, 80년대 말 90년대 초 뜨거운 가슴으로 이 땅을 살아온 이라면, 신동호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힘차고 푸르렀던 젊은 날의 심박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막차. 겨울은 뼛속까지 밀고 들어왔다. 사랑이 고통이라면 다른 고통쯤은 다 잊고도 남았다. 시간이 가까워오면 조금씩 대화의 간격이 줄어들었다. 말줄임표도 사라져갔다. 우리들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을까, 새벽을 기다리며 가난한 대합실의 작은 온기를 나누었을까. 사랑은?

종착역. 끝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없기에 슬프고, 없기에 다행이기도 했다. 혁명은 억지로 봄을 부르지만 겨울아, 왜 사랑은 눈꽃처럼 네 안에서만 피어나는 것이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는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길 끝에 종종 길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_ 시 「겨울 경춘선 2」 부분



20년 만에 경춘선을 달리는 겨울 기차가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도 뼛속까지 밀고 들어온다. 오래전 그에게는 “가난한 대합실의 작은 온기”를 나누듯 따뜻한 사랑을 나누던 사람들이 있었다. 자취방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난장을 만들어놔도 ‘내 새끼’ 하던 “남철 형”, 민족 해방 얘기는 하지 않고 만날 고향 얘기만 하던 “종혜 누님”, 칸트를 읽고도 운동권이 될 “광운”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이 모여 살던 골목, 그 골목의 제일분식에서는 “계급 운동이 막걸리를 마시고”, 이모집에서는 “민족 운동이 젓가락을 두드렸다”(「譜學」). 그 시절 그들의 주머니는 텅 비었을지언정 가슴만은 늘 부푼 꿈으로 두둑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추운 겨울도 머지않아 끝나리라 믿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올 줄 알았더니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내 친구 내 부모를 지킨다는/그래서 내 동포 내 조국을/영영 동강낸 채 내버리고 말겠다는”(「겨울 경춘선」, 『겨울 경춘선』) 철책선은 아직도 건재하다. 이 겨울의 막차는 여전히 갈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광운”이는 약을 먹고 바다거북이 되었고, 인문대 계단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조그만 여자 “종혜 누님”은 지금 그곳에 없다. 제일분식과 이모집의 “악다구니”들은 바다로 가버렸고, 그렇게 그들의 꿈도 푸르렀던 그 시절과 함께 “유폐”되었다. 그곳은 “안기부 지하실”이거나 “서울구치소”, “박제된 동물”들이 전시된 “자연사박물관” 한쪽 귀퉁이다(「운동권 考古學」).
친구를 잃어버리고, 꿈도 잃어버린 한 남자의 뒷모습은 “늙은 코끼리”처럼 쓸쓸하다. “열망을 이루지” 못한 그는 “열에 들뜬 후회”를 짊어지고 “억새 빛나는 황혼 길”을 걷고 있다(「가을 나그네」).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사막은 뜨거웠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바람을 따라 민주주의는 자주 자리를 옮겨 다녔다. 모래언덕을 오르며 뒷걸음칠 때 마른번개가 몰아쳐왔다. 낙타는 천둥 속으로 묵묵히 걸어갔고 나는 목도했다. 피뢰침을 머리에 꽂고 장준하가 쓰러졌다. 김근태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오래도록 엎드려 신을 향해 기도했으나 그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아라비아 공주는 군사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_ 시 「영등포에서 보낸 한 철」 부분



광운이와 종혜 누님, 남철 형이 사라진 땅에서 “사거리에 안철수의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새정치’가” 그를 내려다볼 때, 시인은 마치 자신이 “수락산 능선의 떡갈나무처럼 통째로” 쓰러진 것만 같다(「늙은 코끼리」). 혁명은 전염병처럼 왔다가 “카-알(Karl)”만 남기고 사라졌고, 혁명을 꿈꾸던 이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무도 모른다(「阿Q」).
남은 것은 후회뿐, “사랑도 혁명도 차단기를 내린 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눈은 쌓이지 못하고 그렇게 흩어져갔다”(「겨울 경춘선 2」). “공주가 城 밖에서 늙은 왕의 옥새를 들고 식민지 백성을 용서하고” 있었다(「阿Q」).

 

 

 

남북저작권센터의 통일 오작교 놓기



시인은 그의 시집을 오래 기다린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꼭 시를 써야만 시인이 아니다. 세상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시집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산문집을 여럿 발표하며 여전히 현실 한가운데서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프고 소외된 곳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의 말마따나 단 한순간도 시인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스무 살에 90년대를 버텨온 이들의 가슴에는 아직 그의 시어들이 비수처럼 꽂혀 있다. 한 시대의 격랑을 그처럼 온몸으로 부딪친 이도 드물 것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문화국장으로 학생 운동을 주도해온 그는 몇 년 전 남북저작권센터를 꾸리고 남과 북이 불행한 과거를 용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1995년쯤 한 대형 서점에 간 그는 『조선수군사』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를 갖고 펼쳐보았는데, 껍데기만 남쪽 식으로 새롭게 덧씌우고 속은 북쪽 책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 후 합법적인 저작권 교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오며 2000년 6.15 선언을 기회 삼아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승인서’를 접수했다. 승인이 나오자 그동안 조사한 저작권 침해 사레와 저작권 교류에 대한 기획서를 들고 무작정 베이징행 비행기를 탔다. 첫 번째 무모한 시도 끝에 다음 해 두 번에 걸쳐 북쪽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금강산에서 열린 6.15 1주년 기념하는 행사였는데 이때 시인 박세옥, 소설가 김보행 등 작가동맹의 노작가들과 함께 장혜명 통일문학 편집국장과 젊은 시인 신흥국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그해 8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축전에서는 홍석중 선생을 비롯해 『청춘송가』의 남대현 선생도 만날 수 있었다. 2003년에는 문화 협력 사업으로 남북저작권센터 구성과 남북 합작 영화, 전자도서관 구축, 인쇄소 설립 등을 추진했다. 이후 남쪽 최초로 남북 간 직접적인 저작권 양도계약서를 이끌어내게 되었고, 『임꺽정』, 『고려사』, 『황진이』 등 서적의 보상 문제를 처리하기로 하고, 『휘파람』 등 노래와 200여 종의 서적에 대한 이용과 재출판 사업이 제기되었다.
그때까지 남쪽에서 출간된 북녘의 책들은 거의 모두가 불법(?) 출판물이었다. 해방 이후 한설야나 이기영과 같은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출판된 사례가 있으나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금서로 묶여 출판이 금지되었고, 극히 제한된 곳에서 복사물이 읽히기도 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불법은 상업적으로 ‘혹은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변모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조선수군사』처럼 때로는 표지갈이만으로, 심하게는 『북한의 민속놀이』처럼 저자가 바뀌어서 출판되었다. 『리조왕조실록』과 같은 규모가 큰 출판물은 형식상으로 판권 계약이 이뤄졌지만 실상 저작권자인 북쪽의 연구자들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중국의 브로커와 제3자 계약이나 불평등 계약으로 저작권료가 북쪽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분단 상황은 많은 불합리를 낳았다. 분단으로 허용되는 것들이 무질서를 방조했고 그 무질서가 불신을 키워왔다. 하지만 이제는 남과 북이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출판과 관련된 문화 교류는 북녘에서 민족화해협의회가 담당한다. 대남사업단위인 민족화해협의회를 통해 저작권사무국이나 사회과학원, 인민대학습당, 윤이상음악연구소 같은 단위들과 접촉할 수 있다. 현재 남쪽에서는 사단법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 남북저작권센터를 통해 민족화해협의회의와 만날 수 있다.
그해 겨울 운행을 멈춘 듯하던 겨울 경춘선이 실은 꽝꽝 얼어붙은 동토를 뚫고 이 겨울에도 쉼 없이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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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6-25 21:18   좋아요 0 | URL
김아타 이분은 '예술가'이지 '사진가'가 아닌데,
늘 사진밭에서 이름을 오르내려서......
안타깝다면 김아타 이분 스스로 이녁이 '아티스트'라고 밝히면서도
한국에서는 '사진 분야'에서 맴돌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제 빛을 드러내지 못하지 싶어요.

백남준 님이 '아티스트'이듯
김아타 이분도 '아티스트'로서 '사진밭에서 독립'해서
제대로 꽃피울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아요.

참, 그렇습니다.

appletreeje 2014-06-27 22:25   좋아요 0 | URL
예, 김아타 이분도 카메라는 자신의 개념을 담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라 하시더군요. 그간의 '프로젝트'들을 사진을 매체로 한 작업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듯 합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진행 중인 '자연 드로잉' 연작에선 아예 카메라를 배제했구요.


저는 2007년에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를 통해 이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런 독특한 작업을 하는 분이로구나.로만 생각을 하였는데 <장미의 열반>을 읽으며 김아타라는 분의 '생각 노트'로 많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 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초대받았고 '온 에어(On-Air) 프로젝트'의 '8시간 연작'중 맨해튼 파크 애비뉴를 찍은 한 점을 빌 게이츠가 우리 돈 8800만원에 사 갔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구요.
함께살기님께서도 사진가로 사진을 찍으시는 것이 아니듯이, 김아타님께서도 그러시겠지요.


백남준 님처럼, 김아타 님도 활짝 꽃피시는 아티시트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2014-06-25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7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6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7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6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7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4-06-26 09:21   좋아요 0 | URL
아~~~ 김아타의 이 산문집, 무척 좋네요.
'성천막국수' 시도 너무 좋구요.
어쩌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결국엔 글로, 말로, 시로 바뀌는 것 같아요.
나무늘보님은 봉평막국수, 열무물김치 국수 많이씩 드셔서 이렇게 시원~~한 글을 쓰실 수 있나봐요.
저도, 시원한 열무물김치 국수 먹고 싶네요^^

appletreeje 2014-06-27 23:07   좋아요 0 | URL
예~ 참으로 즐겁고 좋았습니다.^^
막연히 읽기 시작했던 책이었는데, 읽어 갈수록 많은 느낌과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었습니다.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를 읽으니 '손녀에게 주는 책이다. 손녀가 어른이 돼서 정신적으로 이 책과 공감하는 날 내가 부활할 것이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라 하더군요. 손녀가 이제 9개월인데요.^^


'성천막국수' 좋지요~?^^ 단발머리님께서도 좋다 하시니, 참 기쁩니다~
'어쩌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결국엔 글로, 말로, 시로 바뀌는 것 같아요.'-란 말씀이 딱! 너무나 좋습니다. 아아..
ㅎㅎ 저는 국수를 좋아해서인지 술도 국수도, 술술~ 다 잘 먹습니담.
시원한 글,은 아니지만요.ㅋㅋ
여름에 열무김치 국물 자작하게 넣고 국수 씨원하게 말아 먹으면 참 맛나지요.
맛있게 드시길요~


단발머리님! 편안하고 행복한 밤 되세요~*^^*

2014-06-26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7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4-06-27 19:59   좋아요 0 | URL
아니 대체 어딜 가신 겁니까?

댓글이 이렇게 달리도록 놔두고,

봉평까지 막국수 먹으러 갔다가 메밀꽃에 취해 물레방아 로맨스라도 찍고 계신 겁니까?

사뭇 진지..

appletreeje 2014-06-27 23:23   좋아요 0 | URL
ㅋㅋ, 소인 인저 대령했습니담~
봉평에 가서 막국수 먹고 메밀꽃에 취해 물레방아 로맨스라도 찍었다면,
더할 바람이 없겠지만요! 아쉽게도 양평에서 1박2일의 워크샵을 막 달리다 왔습니다...ㅠㅠ
죄송해유~ㅎㅎ

그나저나, 알라딘 들어 오니 '김아타 작품 대형 포스터'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
친필사인에 넘버링이 들어가 있다는데 도착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욤.


컨디션님! 불금인데, 벌써 달리고 계시겠지요~?^^ ㅎㅎ
즐겁고 좋은 밤 되세요~*^^*

2014-06-28 0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8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8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8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30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30 0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1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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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1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화

 

 

 

 

 

                        너무 멀리 왔구나

                        말이 곧 밥이 되고 법이 되던 땅으로부터

 

 

                        토해내지 못해

                        안으로 타들어간 말들이 끄는 대로

                        두 눈 멀쩡히 뜨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길을 찾지 못해

                        쌓이고 쌓여 헝클어진 말 덩어리가

                        쭈글쭈글한 몸 여기저기 불쑥불쑥 찌르며 비집고 나오는데

 

 

                        어두운 몸을 찢고 나온 혼돈의 말들은

                        화려한 독버섯이 되고 사금파리가 되고

                        이 땅의 모든 불씨를 사위어버리게 하는 얼음이 되고

 

 

                        너무 멀리 떠나왔구나

                        말이 곧 목화가 되고 따뜻한 구름이 되던 땅으로부터

                        구름을 타고 하늘을 만지고 놀던 때로부터  (P.15 )

 

 

 

 

 

 

                         버들치

 

 

 

 

 

 

                             중택이는 버들치의 청도 사투리다 중학교 때부터 중택이

                          란 별호(別號)를 얻은 까까머리 친구가 있다 1급수에만 사

                          는 버들치같이 맑은 눈을 가졌기 때문인지 중 같은 머리 때

                          문인지 지금도 청도서 가장 깊은 계곡 버드나무 숲 속에다

                          집을 짓고 산다 버드나무 숲 때문인지 눈물 많은 중택이 때

                          문인지 이곳 바람은 눈물처럼 맑고 푸르다 으레 술자리가

                          막 벌어질 즈음이면 주식 얘기. 군대 얘기 다음으로 먹는 얘

                          기가 따라나와서 개, 개구리, 뱀 잡아먹던 얘기로 마무리되

                          지만, 물이 맑고 길이 곧은 청도서 나온 우리들에겐 뻐구리,

                          송사리, 버들치 얘기로 끝이 난다. 한밤에 차를 몰아, 버들

                          치같이 해맑은 얼굴로 산림청 서기를 하다가 이제는 진짜로

                          버들치가 되어버린, 바위틈에 숨쉬고 산다는 중택이를 찾아

                          가는 친구도 있다  (P.17 )

 

 

 

 

 

 

 

                           감자 먹는 사람들

 

 

 

 

 

 

                            왜정 때 배삼식 씨는 봉화에서 목도질로 먹고 살았다

                            하루종일 어깨, 허리 무더져라 황장목을 나르고

                            물감자 한 바케스 받아들고 후들거리며 돌아왔다.

 

 

                            뭄바이에 가면 왼종일 옷을 수 천 벌씩 빠는

                            인간 세탁기 불가촉천민이 있다.

                            꿀꿀이죽 같은 카레를 허겁지겁 퍼먹을 때도

                            허리가 펴지지 않는 청년 핫산이 있다.

 

 

                            야생 히야신스를 닮은 채털레이 부인이 사는

                            영국 중부에 지옥 같은 탄광촌 테버셜이 있다.

                            날카롭고 사악한 전깃불 밑에서 말을 잃어버린 광부들이

                            껍질도 안 깐 돼지감자로 허기를 메운다.

 

 

                            누에넹 들판의 시든 야생화 같은

                            먼지 자욱한 집 속을 고흐가 들여다보고 있다.

                            두엄 빛깔 옷차림의 농부들이 갈고리 같은 손으로

                            설익은 감자를 먹고 있다.

                            서먹서먹한 내면을 희미하게 가려주는 램프,

                            지친 얼굴들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겨울에도 난방을 못하는

                             질퍽거리는 우리 안 돼지보다 못한 노인

                             라면 하나로 하루를 떼운다.

                             노인의 흐릿한 촛점 너머로 바퀴벌레들이

                             말라버린 라면 찌꺼기를 뜯어먹고 있다.  (P.29 )

 

 

 

 

 

 

 

                          우체부 김판술

 

 

 

 

 

 

                             고흐가 그려준 우체부 룰랭의 얼굴은 진흙 빛이다

                             올리브 색깔의 구겨진 제복을 입은 룰랭은

                             아를르의 포도밭 둑길을 늙고 지친 노새처럼 돌아다닌다

 

 

                             우체부 김판술 씨의 얼굴은 해를 넘겨 삭아버린 상수리

                          열매 빛이다

                             보릿짚 색깔의 제복을 입은 김판술 씨는 낡은 자전거로

                             청도의 복숭아밭 둑길을 헉헉대며 오르내린다

 

 

                             룰랭과 김판술 씨의 좁은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멍에 같기도 하고 핸들 같기도 하다

                             경사진 시골길에서 곧 쓰러질 듯 비뚤비뚤거리지만

                             좌우로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아 나아갈 줄 안다

                             비바람 맞으며 무르익은 나이가 중심이다  (P.39 )

 

 

 

 

 

 

                            송사리

 

 

 

 

 

                                 1급수에서만 산다 개울로 흘러드는 샘물을 먼저 마시며

                              떼를 지어 욜욜거린다 물정 모르는 어린애들처럼 순진해서

                              곧잘 낚인다 어망에 갇히면 가슴이 답답해서 곧장 죽어버

                              리는 녀석들도 있다 성(姓)이 송씨여서 초등학교 때부터 송

                              사리, 송사리라 불린 진짜 송사리처럼 맑고 여린 친구가 있

                              었다 탁류 같은 서울은 겁이 나서 못 살고, 대구쯤에서 그

                              것도 한적한 변두리에서 겨우겨우 숨을 몰아가며 살고 있다

                              초등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문구점을 하며 커다란 두 눈 껌

                              벅이고 있다 고향 떠나 잡어가 다 되어버린 친구들 사이에

                              서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친구. 인터넷에다 '송사리'란 카페

                              를 열어놓고서 여기저기에다 샘물을 퍼나르는 친구. 나 같

                              이 눈이 퇴화된 잡어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 방에 들어가

                              면 누구나 금방 이마가 둥글고 눈이 순한 송사리로 변해버

                              리고 만다  (P.43 )

 

 

 

 

 

 

 

                            고갱 2

 

 

 

 

 

 

                               물을 갈지 않은 수족관 뒤쪽에

                              <타이티 풍경>이 빛바랜 채 걸려 있다

                               길벗다방 까무잡잡한 레베카에게는

                               남국의 플루메리아 암향이 난다

                               스쿠터 타고 화산리에 배달 나온 길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 집에서 설거지를 해주고 있다

                               친정 온 맏딸같이 들깨도 털어준다

                               플루메리아 가지 모양 낭창낭창한 레베카,

                               홀아비들 자글자글 금이 간 마음을 휘휘 감아준다

                               읍내까지 심부름도 마다않는 레베카는

                               늙은이만 남은 동네에서 맛소금이다

                               비슬산 정기가 뻗쳐내려온 화산리에서 레베카랑

                               밤에 은근히 따로 만나자는 할아버지들도 있다

                               명절날 살짝이 선물을 챙겨주는 딸들도 있다  (P.48 )

 

 

 

 

 

 

 

                           참꽃 같은

 

 

 

 

 

                                 속이 텅 빈 말의 배를 눌러

                                 시를 게워내게 하고 싶지 않다

                                 사물의 껍질에서 끝없이 미끄러지고 마는 말로

                                 시를 주물럭거리고 싶지는 않다

                                 염통이 팔딱팔딱거리는 말로

                                 구멍투성이 말랑말랑한 말로

                                 참꽃 같은 시를 낳고 싶다

                                 참말로 먹을 수 있는 시를  (P.57 )

 

 

 

 

 

                                                            -최서림 詩集, <버들치>-에서

 

 

 

 

 

 

 

 

 

 

 

 

 

 

● 편집자의 책 소개

사람 이야기로 쌓아올린 든든한 말의 집 


서정시의 힘과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자신의 시에서 그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시인 최서림의 여섯번째 시집 『버들치』가 출간되었다. 1993년 『현대시』를 통해 문단에 나온 최서림 시인은 등단 후 20여 년 동안 꾸준히 시집을 펴내며 삶과 말에 대한 관심을 시에 오롯이 담아내왔는데, 이번 시집에 이르러 이러한 그의 색은 절정에 이르렀다.

시인이 바라보는 삶이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땅에서 조상을 같이 하며 살아온 고향 사람들이나 시인이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만나온 사람들, 그들의 황폐하고 비루한 삶을 말하는 것이며, 시인은 이렇게 찾아낸 삶의 원형을 바탕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힘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시인이 무기로 삼는 것은 다름아닌 언어, 말이다. 그는 거칠고 폭력적이며 공허한 말놀이에 그치지 않는 세상의 언어를 관찰하고, 그 거친 언어를 감싸안으며 허기진 삶을 채워줄 수 있는 살아 있고 먹을 수 있는 시의 언어를 꿈꾼다. 그리하여 “말이 곧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말이 곧 법이 되고 밥이 되는 때로 돌아가기, 아니/ 말이 곧 목화가 되고 햇콩이 되는 때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물렁물렁한 말의 혓바닥으로/ 깨어진 말의 사금파리에 베인 상처 핥아주기”(시인의 말)에 이르는 것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혜원의 진단처럼, 최서림 시인은 “서정시야말로 삶의 상처와 비애에 공감하면서도 그 본바탕을 탐구하고 치유와 각성의 언어를 실현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닌다고 보고 그 가능성을 추구해나가고 있다.”

 



중택이는 버들치의 청도 사투리다 중학교 때부터 중택이란 별호(別號)를 얻은 까까머리 친구가 있다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같이 맑은 눈을 가졌기 때문인지 중 같은 머리 때문인지 지금도 청도서 가장 깊은 계곡 버드나무 숲 속에다 집을 짓고 산다 버드나무 숲 때문인지 눈물 많은 중택이 때문인지 이곳 바람은 누물처럼 맑고 푸르다 으레 술자리가 막 벌어질 드음이면 주식 얘기, 군대 얘기 다음으로 먹는 얘기가 따라나와서 개, 개구리, 뱁 잡아먹던 얘기로 마무리되지만, 물이 맑고 길이 곧은 청도서 나온 우리들에겐 뻐구리, 송사리, 버들치 얘기로 끝이 난다 한밤에 차를 몰아, 버들치같이 해맑은 얼굴로 산림청 서기를 하다가 이제는 진짜로 버들치가 되어버린, 바위틈에 숨쉬고 산다는 중택이를 찾아가는 친구들도 있다
-「버들치」 전문

 



표제작 「버들치」는 “말이 곧 법이 되고 밥이 되는 때로 돌아가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로 읽을 수 있다. 시인이 꿈꾸는 시의 언어는 “버들치”처럼 1급수에만 사는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의 언어이다. 그리고 그 속엔 유년의 순수한 기억이 함께 자리한다. “버들치같이 맑은 눈을 가”진 친구도 그 언어 안에서 다시금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유년의 기억으로 천진하고 충만한 삶의 원형을 재현하는데, 그것은 동시에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현재의 자리를 다시금 실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현재를 낙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말이 곧 목화가 되고 햇콩이 되는 때가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년의 순수한 기억의 말뿐 아니라 현재의 아름다운 삶의 말도 그의 시에 담겨 있다.

 

 

한편 이번 시집에서는 고흐, 고갱, 마티스, 렘브란트의 그림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와 결합하고, 옛 대중가요에 기대어 내밀한 감성을 드러낸 시편들을 한데 볼 수 있다. 최서림 시인에게는 예술의 경계가 따로 없고, “삶의 비애를 간파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좋은 예술의 기준이 된다.”(이혜원)



시인이 이번 시집뿐 아니라, 자신의 말이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시인으로서 마침내 이루고자 하는 경지는 “물렁물렁한 말의 혓바닥으로/ 깨어진 말의 사금파리에 베인 상처 핥아주기”이다. 유년의 친구, 황폐한 삶을 절실하게 건너는 사람, 명화와 대중가요 속의 이야기와 맞닿은 지점에 놓인 사람…… 『버들치』는 그들의 이야기를 최서림 시인의 “물렁물렁한 혓바닥으로” 쌓아올린 단단한 말의 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자 시론가로서 서정시의 뿌리를 탐색해온 그는 말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무서운 상처를 낼 수도 있고 크나큰 위안이 될 수도 있는 말을 다루는 데 있어 이제 그는 누구보다도 뚜렷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외롭고 굶주린 이웃에게 한마디의 위로와 한 그릇의 밥이 될 수 있는 말로 시의 집을 지으려 한다. 그것은 화려하고 공허한 말들이 일으킨 신기루가 아니라 상처와 사랑으로 다져진 견고한 집이다. 서정시의 견고한 뿌리가 자리잡고 있는 핍진한 삶의 거처이다. _이혜원, 해설 「삶과 서정의 뿌리」에서

 

 

 

최서림의 한 마디

 


말이 곧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말이 곧 법이 되고 밥이 되는 때로 돌아가기, 아니
말이 곧 목화가 되고 햇콩이 되는 때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물렁물렁한 말의 혓바닥으로
깨어진 말의 사금파리에 베인 상처 핥아주기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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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1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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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2 0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1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2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6-22 08:55   좋아요 0 | URL
송사리도 버들치도
깨끗한 물일 뿐 아니라,
흙과 모래와 돌이 있고
둘레에 숲이 있는 곳에서
살아요.

그러니 송사리와 버들치를 노래하자면
이 모두를 사랑하며 아끼는 눈길이
되어야 할 테지요.

냇물다운 냇물과 골짜기다운 골짜기가
거의 다 사라지는 요즈음에...

appletreeje 2014-06-23 01:26   좋아요 0 | URL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이 시집에서는 버들치나 송사리,를 빗대어 그렇게 맑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따듯함으로 얘기하는데, 함께살기님께서는 한층 더 나아가 둘레에 숲이 있는 곳에서 버들치와 송사리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근원적인 눈길을 이야기 하시니까요.
모두 다 맞는 마음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14-06-22 21:32   좋아요 0 | URL
감자 먹는 사람들, 우체부 김판술, 그리고 레베카, 아니 고갱2...
사실 전 버들치, 송사리 쪽보다는 이런 시가 더 끌리네요..^^
고흐나 고갱 같은 유명한 화가를 겉핥기 수준으로나마 알고 있어서 일까요..
음..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예 몰랐어도,

좋아할 거 같아요.

appletreeje 2014-06-23 07:30   좋아요 0 | URL
음...버들치나, 송사리는 은유적인 시이고, 감자 먹는 사람들, 우체부 김판술,
고갱 2는 삶과 직접적으로 맞물리는 현실시,라 더 끌리는 듯 했습니다.^^
저는 버들치나 송사리는 개인적인 친분의 사랑하는 분을 떠올려서 더욱 좋았구요,
나머지 화가,들에 대한 시는..제가 좋아하는 소재라, 더욱 반갑고 즐겁게 읽은 듯 합니다.^^

컨디션님! 좋은 하루 되세요~*^^*

하늘바람 2014-06-23 14:36   좋아요 0 | URL
너무 멀리왔구나

하늘바람 2014-06-23 14:37   좋아요 0 | URL
섬세하고 꼼꼼한 시인같아요 잘 지내셨나요

appletreeje 2014-06-25 04:28   좋아요 0 | URL
예~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하늘바람님께서도, 태은양과 동희군과 잘 지내셨지요~?^^
요즘 날씨가 더웠다 서늘했다 이상한데요 감기 조심하시고
늘 좋은 날 되시길, 빌겠습니다.

하늘바람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14-06-23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0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6-25 21:21   좋아요 0 | URL
아직도 '4대강사업'이 어떻게 문제인가를 모르면서 '4대강사업 비판'만 하는 분들이 많아요.
여러모로 이분 시에서는 이 대목에서 조금 더 깊이 헤아리면서 건드렸구나 하고 느꼈어요.
이런 마음을 읽고 이렇게 이웃과 나누도록
징검다리가 된 appletreeje 님도 어떤 빛을 느끼셨겠지요.

참말 요즈음은 시골에서
'흙을 아끼는 이웃'을 보기 너무 어려워서
흔한 말로 '외롭'지만, 우리 식구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
'흙을 아끼는 이웃'이 예쁘게 잘 살아가면서
우리를 지켜보리라 생각하곤 합니다..
 

 

 

 

 

 

 

                      청춘

 

 

 

 

 

 

                    내가 추억을 떠올리는 가장 익숙한 방식은

                    빵집의, 벽시계의, 초등학교의, 강아지의 이름이

                    아니라 배우들의 이름이다

                    즈느비에브 뷔졸드

                    그녀였다

                    서점에서 최신 영화 잡지......M을 뒤척이다

                    40년가량 잊고 있었던 그녀를 0.01초 만에 알아보았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녀가.....얼마나 반가웠던지

                    아직 살아 있어 고맙다고 말할 뻔 했다

                   <천일의 앤>에서 앤 불린을 연기했던 그녀.....

                    머리와.....얼굴이 유난히 작고 예뻐서 영원히 늙지 않

                    을 것 같았는데

                    할머니 같은 소녀가 되었다, 즈느비에브 뷔졸드(42년생)

                    샤를로트 갱스브르(71년생) 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이다

                    美는 기억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샤르트르도 한때는 프랑스였겠지만

                    줄리 크리스티(41년생)도 엄청 늙었고

                    장 루이 트래티냥도 엄청 할아버지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32년생), 데버러 커.....이들은

                    이미.....고인이 되었고.....리 마빈, 막시밀리안 셸도

                    죽었고

                    말론 브란도(24년생)도 죽었다

                    그네들과 비슷한 연배인 27년생이신 나의 아버지

                    정종옥 씨께서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좋아했고

                    33년생이신 나의 어머니 배소란 여사는

                    대머리에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의 배우,

                    율 브리너를 무척 좋아하셨다

                    이빨은 빠지고 허리도 아프시지만

                    두 분 다 밥 잘 드시고, 잘 계신다  (P.46 )

 

 

 

 

 

 

 

                     두터운, 툭 까진

 

 

 

 

 

 

                      사라 장, 반가워요 귀국연주회는 잘 되어가나요

                      당신의 두터운 입술과 졸리嬢의 툭 까진 입술을

                      토마토라고 생각했어요, 터져버린.....오우, 마이, 갓.

                      사라 장, 안젤리나 졸리嬢과는 초면이신가요

                      만난 기념으로 키스 한번 하시죠

                      저는 호흡이 짧아서요 툭 까진 졸리嬢 당신의

                      입술에 대고 밤새도록 호흡하고 싶군요

                      역시, 입술관리에 신경을 쓰는군요

                      남자의 이마에 입 맞추어요 달콤한 인생이 시작되겠죠

                      사라 장, 버스 옆구리에 붙어 있는

                      당신의 립스틱 광고는 보셨나요

                      한 달에 립스틱은 몇 개나, 무슨 색깔을 선호하시나요

                      졸리嬢, 당신의 아이스크림 옥외광고는 봤나요

                      아이스크림과 당신의 입술은 잘 어울리죠.

                      영화 속에서 인간의 권리와 모자의 권력을

                      낭독하는 당신의 툭 까진 입술이 고귀해 보였어요

                      당신처럼 예쁘게 툭 까지려면 얼마나 드나요

                      사라 장, 당신의 두툼한 입술로 만든 소파 위에 누워

                      당신 입술 모양 쿠션을 베고 잠들고 싶어요

                      졸리嬢, 사라 장의 콜로세움 연주회에 같이 가요

                      당신 입술이 가끔은 불편해 보이기는 해요

                      툭 까진 입술이 얼굴 전체를

                      뒤집어씌울까 걱정되네요. 오우, 조심하세요

                      입술이 없어 말 못하는 여자들에 관한 기사 보셨나요

                      꽃며느리밥풀, 버들피리나 이슬 머금은 여자들 보다

                      배짱 두툼하고 심정 툭 터진

                      여자들이 짱이에요. 오우 유아 쏘우 섹쉬,

                      정말 충격적인 입술이네요  (P.48 )

 

 

 

 

 

 

 

                       서론, 본론 그리고 평행봉

 

 

 

 

 

 

                         팅, 탱, 경쾌하게 오가는 셔틀콕 소리에

                         겨드랑이 속 접어두었던 날개들이 움찔한다.

 

 

                         끼리끼리 한 조를 이루어 팝콘처럼 튀어 오른다.

                         팅, 탱......어, 어라, 이 친구,

                         그것도 하나 못 받아쳐. 물 좋은 시절 다 지나갔군.

 

 

                         그러니까 본론은 피부를 탱탱하게 하고

                         생활에 탄력을 준단 말이지.

                         팅탱, 팅탱, 사랑 주고, 눈물도 주고.....이봐, 그렇다고

                         너무 쉽게 튕겨나서는 안 돼.

 

 

                         누군가와 이별을 할 때까지 훌라후프를 돌려보는 거야.

                         자, 돌려봐, 더 세게, 그렇지 계속해서, 힘내, 더, 더,

                         봐, 헬리콥터처럼 떠오르잖아.

                         너도 가끔씩은 뜨고 싶을 때가 있잖아.

 

 

                         결론은 평행봉이야. 겨드랑이 속으로 오그라드는

                         두 날개를 펼쳐 봐. 우선은 멱살을 잡고 보는 거야.

                         힘들겠지만 해 보는거야. 힘들지 않으면 그게

                         사는 거야? 하나둘, 하나둘, 두 다리를 힘차게 들어 올려.

                         중심을 잡고 세상과 수평을 유지하는 거야.

 

 

                         마음 뿌듯해지는군.

                         우, 이 근육 좀 봐. 탱탱하지.  (P.52 )

 

 

 

 

 

 

 

                         사과의 기분

 

 

 

 

 

 

                           아침에 일어나서 유리컵에 든 차가운 우유 한 모금 마시고

                           냉장고에서 꺼낸 사과 한 입을 베어 먹습니다.

                           혹, 이 맛을 아시는지요?

 

 

                           행복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이런 사과의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애인을 만나 빵집에서 점심을 먹고

                           과일 도매 상가로 사과 한 상자를 사러 갈 것입니다.

 

 

                           사과 향기에 어울리게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는데

                           비가 오지 않아도 뭐, 상관없어요.

 

 

                           사각, 사각, 사각, 이런 사과의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사과나무 농장의 여인에게서

                           사과 따는 방법을 배우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들의 애틋한 애플 스토리.

 

 

                            하지만, 인생은 사과 맛처럼 혹은 사과의 기분처럼 항상

                            달콤할 수는 없다는 것, 아니, 아니, 당연히

                            생의 태반을 썪은 사과를 씹어 삼키는,

                            삼켜야만 하는....그런.....썪을 맛이겠죠.

 

 

                            사과나무에서 바로 따낸 사과를

                            옷소매에 슥슥 문질러 한 입 베어 먹죠.

 

 

                            입 안에서 폭발하는 사과, 사과의 즙이 입가로 흘러내리

                            지요.

                            언제 날아왔는지, 나비들이

                            내 얼굴 부위를 맴돌고 있었죠. 어차피 오늘은

 

 

                           이런 사과의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근처 바닷가로 가서

                           사과를 씹으며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봐야겠죠.  (P.74 )

 

 

 

 

 

                                                                     -정익진 詩集, <스캣>-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재현되는 세계

자유분방한 언어로 유쾌한 사유를 펼쳐온 정익진 시인의 새 시집 『스캣』(문예중앙시선 033)이 출간됐다. “깊이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자유로워지고 유쾌해지는 시”(김상미 시인), “보디빌더의 몸, 헬스클럽의 시”(김언 시인)라는 평을 들으며 기이하고도 유머러스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정익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조작된 기억과 이미지, 언어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다.
정익진이 바라보는 세계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다른 얼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재현되는 큐브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는 “신기루가 사라지고 난 뒤”나 “사자에게 물려 가기 직전”의 풍경이 겹쳐지고, “책 밖으로 천천히 지느러미를 저으며/지나가는 물고기들”과 같은 이질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해설을 쓴 조재룡 평론가는 “(정익진 시인은) 어떤 사실을 확인하러 모험의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 후차적으로 주어질 저 미지가 뿜어내는 공포를 마다하지 않”는다며 “오로지 실현 불가능한 상태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에 의존해서만 현실을 재구성해”내고자 한다고 평한다. 정익진 시인이 그러한 구성적 작법으로 발생시킨 ‘어긋남의 나열’을 전체로 조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열리는 인식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스캣, 말더듬이의 흥얼거림



 골반과 골반이 함께 튀는군, 튄다, 튀어, 튀튜튀튜 튀밥밥……
날 더 튀겨 줘, 날 먹어 줘, 날, 날로 먹어,
한 번만 더 오우 오우달링 슈슈룹디들라

또 누군가의……
미쳐가는……관자놀이를 관통하는…… 비명,
늙은 아랍여인들의 혓바닥 굴리는 소리, 와할랴하르르랴랴ㅤㄹㅑㄹ
―「스캣」 부분

시집 『스캣』을 펼치면 가장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이 바로 말줄임표이다. 이 ‘……’는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침묵인 동시에 음률이 되려는 하나의 흥얼거림이다. 표제작의 제목이기도 한 ‘스캣’은 재즈 보컬리스트가 가사 대신에 뜻 없는 말로 즉흥적인 프레이즈를 만들면서 부르는 창법을 뜻한다. “쉬쉬쉬괜찮아쉬쉬 브와브와브와예 오키프 깊이 더 깊이 안아줘, 사랑해…… 사랑해 푸르스름한 푸르디시린”과 같이 「스캣」의 저 말줄임표들은 기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되, 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흩어지려는 언어들의 아우성을 돕는다. 한편 「청춘」과 같은 시에서는 “서점에서 최신 영화 잡지…… M을 뒤적이다/40년가량 잊고 있었던 그녀를 0.001초 만에 알아보았다/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녀가…… 얼마나 반가웠던지/아직 살아 있어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라는 부분에서 엿볼 수 있듯이, 덧없이 흘러가버린 시간들에 대한 침묵의 관조로 활용된다. 이 침묵은 마침표와 같은 문장의 매듭이 아닌, 이어질 말을 호출한다는 점에서 순간의 침묵이며 곧 리듬이다. 한편 말줄임표는 낯선 이미지로 이루어진 문장들 사이에 놓인 비밀의 끈이 되기도 한다.

 

 

 

 

 

 

       萬花方暢인 6月이지만, 마음은 먹다 남은 눅눅해진 과자나 무더운 날씨탓에

       쉽사리, 쉬어 버린 옥수수 같았는데...오늘 날아온 [스캣]을 읽다보니 허파에 커다란

       부레를 새로 장착하듯 기분이 퐁퐁, 하릴없이도 날아가는구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같이 이상한 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날개를

       달고 날아 다니고, 비록...이 시집의 詩, '스캣'은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는

       내 맘대로 바비 맥퍼린의, 공중의 한 가운데 떠서 통통통 울리는 '아베마리아'나 정신이

       아뜩했던 'Air'.  그 옛날  제법 음악을 일용할 양식처럼, 별미처럼 먹고 살았을 때의

       그 아름다운 바흐,를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인간의 목소리로 표현한 바비 맥퍼린의

       음반을 꺼내 듣지는(이젠 그 음반들이 어디론가 사라졌..) 못 하지만 따로 비상용으로

       챙겨 놓은, 위장이나 십이지장 쪽으로 부리나케 살금살금.. 나팔꽃, 같은 귀를 손에 쥐고

       빠르게 헤엄치고 있는 중이다, 스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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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4 17: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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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5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4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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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5 0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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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15 09:51   좋아요 0 | URL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사망했는줄 몰라서, 깜짝 놀랐어요.
외국 배우지만, 오드리 햅번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거나 비비안 리가 말년에 버림받고 쓸쓸히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왜 그리 맘 한 구석이 서늘하던지.... 영화 속에서만 본 인물들인데.

아침부터 차가운 더치 커피 한모금 물고 있네요.
화창하지만 더위를 예고하는 일요일 아침입니다. ^^

appletreeje 2014-06-16 23:3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랬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망.
정말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배우들이지만...어느 시간 속에서
우리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 그런 듯 싶습니다.^^
개개인의 방에 함께 들어가 있는, 추억의 사진첩이라고나 할까요~?^^

더치 커피.' 커피의 눈물'이라 할 만큼 참 좋지요~
저도 요즘 더치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더치 라떼를 즐겨 마십니다.
더치 맥주는 맥* 같지만요. ㅎㅎ


마녀고양이님! 서늘하고 편안한 밤 되세요~*^^*

비로그인 2014-06-16 11:14   좋아요 0 | URL
트리제님의 이 페이퍼에 댓글 달기 전에 제가 어떤 일을 했는지 말씀드릴게요.
1. 즈느비에브 뷔졸드를 검색하다.
2. 孃이라는 한자를 읽지 못해 별 짓을 다하다.
3. 萬化方暢을 또 몰라서 검색을 하다.
4. 스캣을 검색하다.
(검색결과 1. 재즈에서 가사 대신 “다다다디다다” 등 아무 뜻도 없는 소리로 노래하는 창법.
2. 반짝이는 기지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원하는 결과를 성취해내는 능력.
예상치 못한 긴박한 상황에서 대응방법의 수립과 실행이 동시에 이뤄지는
창의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제가 이러느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ㅎㅎㅎ


appletreeje 2014-06-16 23:57   좋아요 0 | URL
ㅋㅋ,
1. '천일의 앤'은 한참 전에 보았는데 그 배우가 잘 생각이 안 나서 저도 검색을 했습니다.
2. 嬢이라는 한자는 알았지만, 졸리嬢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어요.ㅎㅎ
3. 萬花方暢,은 조금 지났지만 그래도 제 기분이 그래서 그런 표현,을 했습니담..
4. 스캣,은 검색결과 1.로만 알았습니다. 2번은..단연코 몰랐구요.
이 시집의 제목 '스캣'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느낌은...바비 맥퍼린(Don't Worry Be happy' 의.) 이었어요. 요요마의 앨범 'Hush'에서 'Air'를 듣고 아찔했지요.^^ 인간의 목소리로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웠던 '공명통'이라고나 했을까요~?^^

사랑하는 컨디션님의, 생동감 넘치시는 댓글 덕분에 이 밤도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담!
충만하고 좋은 밤, 되세요~*^^*

2014-06-16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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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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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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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Graphic Novel 2014.6 - 영화같은 만화 그래픽 노블 100, 창간호
피오니(월간지) 편집부 엮음 / 피오니(잡지)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그래픽 노블을, 처음 만났던 것은 1998년에 <쥐>와 <죽음의 행군>, 이었다. 그리고 근래에 보슬비님 덕분에(`담요`) 다시 그래픽 노블의 매력에 흠뻑 빠진 듯 하다. 이 책은, 그래픽 노블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래픽 노블을 시작할 모든 사람들에도 꽉차고 알찬, 즐거운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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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3 0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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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3 07: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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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4 0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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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5 0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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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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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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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6-19 18:06   좋아요 0 | URL
아.. 이런책이 있다니 정말 궁금해지네요. ^^

저도 나무늘보님 덕분에 '죽음의 행진'을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
목차보니 읽은 책들도 있고, 읽을책들도 있고...

창간호인것을 보니 계속 나오는건가봐요?

appletreeje 2014-06-19 23:31   좋아요 0 | URL
50편의 그래픽노블,에 대한 짧지만 비중감 있는 일종의 개요서인데요
그 개요가, 엄청 압축파일 처럼 알차고 꽉차 있어 한층 그래픽노블에 대한
집착(?)을 강하고 행복하게 나침반처럼 이끌었던 그런 창간호지요.


그래픽노블,이라는 용어도 모르고 예전에 저 책들을 읽었는데
보슬비님 덕분에, 다시 그래픽노블의 매력에 흠뻑~빠지게 되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


예~이번 창간호에 이어 다음 번에는 나머지 50편에 대한 소개를 한다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단발머리 2014-06-24 09:31   좋아요 0 | URL
지난 번에 appletreeje님 방에 놀러와서 시 읽었을때는 '버들치'가 좋았는데, 오늘은 '우체부 김판술'이 좋네요~~~ 역시, 시는 읽을 때마다 다른 감흥을 줘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한 편을 금방 읽을 수 있지요^^

appletreeje 2014-06-25 04:4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듯 싶습니다~ㅎㅎ 어느 때는 이 시가 좋았는데
또 다시 읽다보면 다르게 좋은 시들을 만나게 되지요.^^
시가 주는, 즐거운 매력 같습니다~
저도 너무 길고 난해한 시들보다는, 금방 읽을 수 있고 시의 풍경이 절로
떠오르는 시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