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미술관에서 쓰는 편지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너에게로 간다

     나의 작은 바람꽃과 목련나무와

     아니 나를 에워싼 공산폭포가

     은혜사와 보현산 천문대가 따라 움직인다

     살구가 익고 덩굴꽃마리가 피고

     붉은 장미가 오후의 태양을 품는다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기차가 달리고 비행기가 날아오르고

     배롱나무와 무화과의 자원들이

     가동하지 않은 수천의 꽃향기를 부른다

     넓은 운동장을 추상화처럼 내건 미술관에서

     모든 꽃나무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핀다

     미술관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몽유도원도,

     나도 모르게 너에게만 푸앙푸앙

     나는 지금 미술관 안으로 걸어 나간다

     너에게 가는 길 무슨 꽃 피는지

     미술관은 수천의 꽃 진자리 펼쳐놓는다  (P.71 )

 

 

 

 

 

 

 

         우리 도서관에 꽃핀다

 

 

 

 

 

 

       우리 도서관에는 꽃나무가 많다

       열람실로 올라가다 고개를 젖히면

       화르르, 천장에서도 꽃들이 쏟아진다.

       나도 잠시 꽃나무가 되는 순간인가

       쏟아진 햇살이 내안에서 출렁거린다.

 

 

       너 없는 동안 나는 여기서 책을 읽었다.

       지난 겨울, 난해한 구름나무 책들을 대출하고

       빈 나뭇가지 여위듯 너를 잊으려 했다.

       눈을 쓸고 도서관 앞뜰에서 배드민튼을 치거나

       홀로 은종이에 싼 감자를 꺼내 먹기도 했지만

       모든 관계가 단절되어서야 너를 생각한다.

 

 

       마른 꽃잎처럼 책장 안에서 길을 잃어도

       너에게 새로 펼쳐 보이고 싶은 꽃나무를 위해

       나는 지금 도서관에 있다 말하지 않겠다.

       어둔 몸속에서도 흘러가는 물소리와

       내 안에 있는 작디작은 꽃씨 찾아내기 위해

       오늘 하루 나는 여기서 책장을 넘긴다.

       나는 꽃피는 도서관에서 꽃나무를 필사하고

       다시 사랑의 기술*을 읽고 또 읽는 것이다. (P.106 )

 

 

         * 에리히 프롬.

 

 

 

 

 

 

 

 

          시인론

 

 

 

 

 

        매일

       시를 읽는 왕과

       시를 읽는 법관과

       시를 읽는 환경론자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꽃처럼 번지는 슬픔을 읽을 수 있다면

       마른 뿌리를 흔드는 빗물처럼

       모든 피어나는 것들에

       손 내밀 수 있다면

       누구나 시인이다

       정의다, 바다다  (P.47 )

 

 

 

 

 

 

 

             꽃

 

 

 

 

 

 

        이름을 묻는 말에 나비라고 했다

        샤르트르라고 말한다는 것이

        불쑥 꽃의 전령사가 튀어 나왔다

        몽마르트 언덕의 낡은 의자에 앉아

        얼굴을 좀 자유롭게 그려 달라 했다

        혁명보다는 고요함을 그리는 화가는

        가벼운 붓과 수채화 물감으로

        유럽식 건물을 흐릿하게 뒤꼍으로 깔고

        얼굴 표정을 도드라지게 살리려 했다

        좋은 그림은 존재를 자유롭게 하는 것,

        나는 한국에서 날아온 파랑새*라고 농을 했다

        나의 이름과 자유롭게라는 추상은

        끝까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다만

        이름을 묻는 말에 돈키호테처럼 웃었다

        말로 통하지 않는 것은 몸으로 교정했다

        잠시 뒤 도화지에 활짝 핀 나를 보았다

        그림 속에 나를 가두고 내가 자유로워졌다  (P.63 )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단디

 

 

 

 

 

          책도 단디 읽고

          밥도 단디 먹는 거다

          사랑도 단디 하고

          외로우면

          외로움도 단디 하는 거다

 

 

          너를 만나기 전

          작약도 그랬다  ( P.29 )

 

 

 

 

 

 

              -한상권 詩集, <단디>-에서

 

 

 

 

 

 

 

 

 

 

 

 

한상권의 한 마디


 무릇 꽃을 보기 위해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닫는다. 너와 나의 무수한 층위도, 말하자면 꽃과 빗소리 사이에 있다. 그 안에서 직면하는 모든 경계와 무위를 온몸으로 담는다.
아무것도 어떤 것도 아니라 하나 그 안에서 너와 공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길이든 너무 늦은 처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정언명령도 가슴 뛰지 않을 때 너는 내게 가만히 손을 내민다. 마치 온화한 수시(手施) 같고 반짝이는 지평 같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손이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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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07-22 06:34   좋아요 1 | URL
넘 좋네요
님 덕분에 이 아침 꽃구경과 시를 읽습니다

appletreeje 2015-07-22 09:35   좋아요 1 | URL
하늘바람님께서 좋다하시니 저도 참~ 좋습니다.^^
후덥지근한 아침이지만,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책읽는나무 2015-07-22 08:38   좋아요 0 | URL
시는 식전에 읽고 댓글은 식후에 씁니다^^
꽃을 먼저 보고 시를 읽으니 시에서 꽃향기가 나는 듯합니다
오늘 하루도 단디 챙기는 하루가 되어야겠네요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세요^^

appletreeje 2015-07-22 09: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는 지금 아침을 먹었습니다^^
정말 그렇네요~ 꽃을 보고 시를 읽으니 꽃향기가 나는 듯 합니다~
저도 오늘 하루 단디 살아야겠습니다~~
책 읽는 나무님께서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해피북 2015-07-22 08:41   좋아요 1 | URL
오늘부터 장마라 그런지 하늘이 찌뿌둥해서 기분도 찌뿌둥 했는데 마치 봄향기 머금은 시들이 참 좋았어요 꽃사진두 참 멋졌구요 ㅋㅂ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애플트리제님^~^

appletreeje 2015-07-22 09:49   좋아요 2 | URL
찌뿌둥한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지셨다니~ 고맙습니다^^
어젯밤 하이드님 예쁜 꽃들이 말을 걸어와서, 뭐 별로 해줄 말은 없고 해서
대신 시를 읽어주었습니다~ㅎㅎㅎ
함께 즐겁게 들어주셔서~ 감사드려요~~
해피북님께서도~ 해피한 하루 보내세요. ^~^

숲노래 2015-07-22 09:08   좋아요 1 | URL
첫 줄에 깃든 마음이
모든 마음이로구나 싶어요.

편지를 쓰는 동안
내 모든 사랑이
이 편지에 깃들어
훨훨 날아가서
고요히 깃듭니다.

appletreeje 2015-07-22 09:54   좋아요 1 | URL
정말 그렇치요~?^^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너에게로 간다`

편지를 쓰는 일은, 내 마음의 사랑을 모두 너에게 전하는 일.


후애(厚愛) 2015-07-22 11:31   좋아요 1 | URL
꽃 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습니다~
저 보라색(?) 꽃잎이 실크처럼 무척 부드럽게 보이면서 참 예쁩니다!!!^^
예쁜 꽃과 멋진 시들~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참 좋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appletreeje 2015-07-22 12:00   좋아요 1 | URL
예~특히 `핑크 소국`의 풋풋하고 상큼한 향기가 다른 꽃향기들을
아우르며 싱그러운 향기,를 은은히 보내주네요~~
검정색 예쁜 꽃고추에서는 고추 냄새가 나구요~ㅎㅎ
저 꽃잎,` 카라`인데 정말 실크처럼 예뻐요~~
카라는 키큰 카라만 보았는데, 하이드님 덕분에 다양하고 어여쁜
미니 카라들도 만나게 되어~진짜 좋아요~!!^^
즐겁게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후애님께서도,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15-07-22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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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15: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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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5-07-22 15:27   좋아요 0 | URL
시안미술관은 영천에 있고 별별미술관으로도 불리웁니다. 차도 한잔 무료로 할 수 있고, 마실삼아 동네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곳을 보면 좋습니다. 복숭아꽃이 필 때가 그래도 더 멋진 것 같더군요.

낯익은 미술관, 가끔 들러보는 곳이라...인사겸 이렇게 흔적남깁니다. 좋은하루되시구요. 여울드림

appletreeje 2015-07-22 15:42   좋아요 1 | URL
아~그렇군요 ^^ `별별미술관`이란 이름도 참 좋네요~
언제 영천에 가게 되면 꼭 들려봐야겠습니다.
여울님께서 올려주시는 미술관 사진들과, 좋은 그림들, 마음의 글들
늘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여울님께서도 좋은 하루 되시구요, 고맙습니다~*^^*

보슬비 2015-07-22 23:17   좋아요 1 | URL
같은 꽃인데도 나무늘보님께서 올려주시는 꽃은 분위기가 너무 다른것 같아요.^^
참 곱고 단아해보입니다. 계속 화면속 꽃을 바라보고 싶어요. ㅎㅎ


appletreeje 2015-07-22 23:59   좋아요 1 | URL
요즘 스크린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서 그런 것 같아요.^^
긴장감은 있지만, 하이드님이 보내주셨을 때의 그 어여쁘고 싱싱한
생동감이 없어서 늘 아쉽고 죄송하지욤. ㅎㅎ
곱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2015-07-23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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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17: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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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4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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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4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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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5-07-25 17:46   좋아요 1 | URL
비를 조금이라도 아주 쬐끔이라도 좀 보내주시와요~ 헤헤

주말 즐겁고 시원하게 보내세요~*^^*

appletreeje 2015-07-25 18:02   좋아요 1 | URL
야~아~~압!!!!!!!!!! 빠쌰~!!!!!!!!!!!!!!!!!!!!
지금 비 보내드리고 있습니닷~~ㅋㅋㅋ
비가 후애님께 날아가느라~뚝, 그치고 어느새
청량한 새소리들이~~ ˝지지배배˝ ~ 울리네요~~~*^^*

후애님께서도, 주말 시원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2015-07-26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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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6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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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5-07-27 13:28   좋아요 1 | URL
주말도 벌써 지나가고 7월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와~ 시간 정말 빨리 지나가네요.^^

더위조심하시고요,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appletreeje 2015-07-27 15:22   좋아요 1 | URL
옙! 정말 7월도 며칠 안 남았네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니~ 더운 여름도 또 빠르게
지나가겠지 긍정적으로 맘을 먹고 있습니담.ㅋㅋ
그래도 어디선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오후 ^^


후애님께서도, 더위조심 건강조심하시고요
새롭고 즐거운 한주 되세욤~~~*^^*

2015-07-28 18: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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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8 1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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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9 1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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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0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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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쁘띠, 하고 말하면 웃음이

 

 

 

 

 

     그 말을 경멸한 적 있다.

     부르주아 앞에 붙여 썼는데, 요샌 좋다

     기득권의 포기가 강권된 때, 졸업을 포기했다

     간신히 수료인 셈인데, 박사보다 좋은 게 밥사란다

     밥 파는 놈이 되었기에 망정이다

     옆 미용실 원장은 쁘띠 같은 분

     밥사보다 나은 게 봉사라니까

     경멸해도 쁘띠 부르주아가 되었으면 좋겠다

     쁘띠, 쁘띠, 쁘띠

     밥사 주는 쁘띠가 되어야지

     재활용을 내어다 놓는다 내다 놓은 것은 빈 것

     올려다보아야 가로수다

     봉사보다 나은게 감사란다

     (요사이 뜨는 분은 웃자란다)

     웃자 웃자자(곱빼기다), 기지개를 켜본다

     공무원이 대세라 주사를 치지만

     술사가 땡긴다 가로수 한 번 올려다본다

     한 박자 쉬는, 한 잔 좋습니다

     쁘띠 술사의 말씀입니다 절로 웃어진다

     쁘띠 쁘띠 쁘띠-  (P.21 )

 

 

 

 

 

 

 

 

         냉국에 헤엄치는 여름

 

 

 

 

 

 

     우려낸 다시마를 만지면

     돌고래 등껍질을 만지는 듯하다

     다시마튀각은 깨진다 찡긴다

     미역만 보면 괜히 눈시울,

     미역국만 보면 마음이 뿌예진다

     밥알을 말아서 입술로 먹으면

     왠지 미안하고 괜스레 고맙다

     미역을 그냥 잘라서 맨물에

     오이채에 맨 소금 간,

     싱거우니, 그래서 식염 식초

     그거 좋다, 암 것도 안 들어간 투명이 좋다

     미역은 또 물과 어울려 노니, 맑아

     이때는 업소용 레시피도 용서 된다

     바다 소식 바다 소식 바다 소식

     미끌거리는 미역과 사각거리는 오이와

     찡기는 밥알이면 소식도 좋다

     다시마야 제 물을 다 뺐으니 불어 미끌거리는 것

     입천장에 붙어도 이쁜 미역

     신맛마저 맑은 냉국

 

     미역만 보면 몸도 마음도, 멱 감듯

     해산 한 듯, 다, 풀린다  (P.26 )

 

 

 

 

 

 

 

        밥에는 색이 있다

 

 

 

 

 

 

     물드는 것처럼 무서운 게 없다

     김칫국물, 스며버린다

     희미해질 뿐 안 지워진다

     나갔던 김치에 국물을 붓고

     새 걸 얹어도 층이 진다

     밥물이라는 게 있다

     밥은 색을 넘어 어떤 기운까지 빨아들인다

     숟갈 젓가락을 넘어

     입술지문까지 묻어난다

     나갔던 밥에 밥을 얹으면

     공구리 친 것 같다고 충고하는 친구가 있다

     밥에는 마음이라는 게 있다

     덜어 먹는 마음,

     '손대지 않은 거거든요' 설명하는 마음

     물들지 않은 밥은 못 버리겠다는 마음이 있다

     밥풀 때만큼은 착해지는 손이 있다

     밥장사하는 마누라 밥 버리게 하는데, 십년이 걸렸다고

     흥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진심을 듣고도 밥을 못 버리는

     엉거주춤한 마음이 있다

     버리고 우는 마음이 있다

 

 

     돌아온 밥공기를 보면

     사람들이 보인다

     그 사람이 보인다  (P.43 )

 

 

 

 

 

 

 

            국숫집에 가는 사람들

 

 

 

 

 

 

        혼자 먹어도 좋은 게 국수다

        상심한 사람들은 국수집에 간다 불려, 국수를 먹는다

     울기를 국수처럼 운다 한 가닥 국수의 무게를 다 울어야

     먹는 게 끝난다 사랑할 땐 국수가 불어터져도 상관없지

     만 이별할 땐 불려서 먹는다 국수 대접에 대고 제 얼굴

     을 보는, 조심히 들어 올려진 면발처럼 어깨가 흔들린다

     목이 젓가락처럼 긴 사람들, 국수를 좋아한다 국수 같은

     사랑을 한다 각각인 젓가락이 국수에 돌돌 말려 하나가

     되듯 양념 국수를 마는 입들은 입맞춤을 닮았다 멸치국

     수를 먹다가 애인이 먹는 비빔국수를 매지매지 말기도

     하고, 섞어서 먹는다 불거나 말거나 할 말은 사리처럼

     길고 바라보는 눈길은 면발처럼 엉켜 있다 막 시작한 사

     랑은 방금 삶은 면과 같아서 가위를 대야 할 정도의 탄

     력을 갖는다 국수는 그래서 잔치국수다 (라면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사랑이 곱빼기인 사람들은 국수집에 간다

     손가락이 젓가락처럼 긴 사람들,

        국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을 때서야 그 빈그릇이 빛

     난다  (P.56 )

 

 

 

 

 

 

           칠월칠석

 

 

 

 

 

 

     호박잎 쌈 싸먹으면

     잉어 낚시 간다, 쪄

     물기 손바닥에 묻는 호박잎 손에 얹으면

     깊어져, 달라붙은 호박잎 떼어 밥을 싸는 일은

     죄 같아 묽은 된장을 찍는다

     호박잎 먹고는 푸른 똥 싸고 피의 일부는

     강물을 닮아가겠지 우기와 건기를 다 기어온

     이파리가 몸인 이것

     손바닥 같은 호박잎을 손에 얹으면

     안지 못한 손

     일 안한 손, 호박잎 물든

     손금까지 전수 보인다

     삶은 호박잎 보면, 삶은 뭉친 잎처럼 깊어져

     생모래 먹었다 뱉는 그 끊어지는,

     물속에서 폐음절 울음 들리는, 잉어 보러

     강변에 나간다 노는 잉어처럼

     강에 박힌 밤하늘이

     저냥 보인다  (P.101 )

 

 

 

 

 

 

 

              한 상 받다

 

 

 

 

 

 

         밥은 얻어먹을 때 맛이 깊다 김은 밥을 쌀 때 바스러

      지는 맛에 맛나고 이름마저 칼칼한 깻잎은 잎맥이 밥을

      싼 여문 모과 빛에 맛나고 콩장은 이에 찡기는 맛에, 두

      부는 숟갈로 끊는 맛에 맛나고 모양도 감사납고 맛도 쓴

      고들빼기는 순전히 이름 맛에, 총각김치는 앞니에 끊어

      지는 맛에 맛이 깊다 뚜껑을 덮는 밑반찬에 먹는 밥은

      얻어먹을 때 비로소 모양도 맛이 된다 공기밥, 얻어먹을

      땐 이름까지 맛이 된다 청국장은 황금빛 국에 콩알 맛

      에 숟갈 가고 달걀은 후라이가 좋고 계란은 찜이 좋다

      맛이라면야 얻어먹을 땐 라면도 좋지만 어머니의 배춧

      국이야말로 숟갈 씹히게 좋은 일품요리

         다들 아는 당연한 맛이 볼수록 깊어진다 씹을수록 구

      뜰하다 받아든 한 상이  ( P.111 )

 

 

 

 

           -윤관영 詩集, <오후 세 시의 주방 편지>-에서

 

 

 

 

 

 

 

 

 

 

 

 

 

 

 

 

 

 

 

 

 

 

 

 

 

 

 

 

 

 

 

 

 

 

 

           사는 일의 기본은 어쩌면 먹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잘 먹는다는 건, 그 음식이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여정을

           살피며 감사히 맛있게 먹는 일.

           무더위와 쌓인 일들에 치이다, 국수가게에서도 일하고 냉면가게에서도

           일하다 지금은 아들 민주와 망원동 '父子부대찌개'를 운영하는 시인의

           힘 뺀 힘, '어떤 한참 운 사내에게 남은 것 같은 힘의 그림자' 같은

           "애벌 삶은 사골엔 풀빛 기름이 인다"는 시들을 만나며, 즐겁게 기운을

           한껏 차린다. 이 시집은 이준규 시인의 심심하고 심상하지만 가만히

           지켜본 눈빛의 정다운 발문,도 맛있다.

           오늘은 소서를 맞아, 흰 국수를 삶아 슴슴한 오이지를 썰어 얼음 띄운

           담백하고 시원한 국수를 먹어야지.

           그리고 읽을 때는 힘들지만 읽고 난 후엔 힘이 솟는 그래픽노블 '마당씨의

           식탁'과  먹방이나 쿡방의 허세를 떠나 먹는 것의 원형의 의미와 즐거움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산다는 건 잘 먹는 것'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오늘은 조금 있으면 도착할 꽃님들과, 비소식에 설레는 花曜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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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5-07-07 11:45   좋아요 1 | URL
선별된 시 밑에, 쓰여지는 나무늘보 님의 코멘트는 언제 읽어도 좋습니다.^^

식욕 어쩌구 운운하며 먹는 일을 잠깐 깔본 터라, 공연히 부끄럽네요.ㅎㅎ

.....부대찌개 먹고 싶습니다!!

appletreeje 2015-07-07 12:04   좋아요 1 | URL
한수철님께서 좋다, 하시니 저도 왠지 부끄러우면서도 좋습니다~

저도 요즘 날이 너무 무더워 밥을 거의 못 먹고 시원한 것들로만
때우곤 하는데, 밥집하는 시인의 시들을 읽으니 밥맛이 불끈 돌아오네요!

점심은 국수로, 저녁은 부대찌개와 소주로 먹고 싶습니다!! ㅎㅎ

숲노래 2015-07-07 12:38   좋아요 1 | URL
꽃하고 비하고 국수하고
시원한 오이 국물이 어우러진
노래 한 가락으로 칠월이 무르익는군요~

appletreeje 2015-07-07 13:00   좋아요 1 | URL
예~아직 꽃도 비도 안 오셨지만 시원한 오이국물에 국수
먹으며 즐겁고 설레게 기다립니다~~
숲노래님의 숲내음 나는 고마운 댓글도 함께 하면서
칠월이 무르익어가네요~*^^*

2015-07-07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18: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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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2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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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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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2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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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8 2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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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9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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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7-09 01:13   좋아요 0 | URL
먹는 것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뭐든 이렇게 한 박자 늦어요. 아니 몇 박자...
앞으로 정성스레 밥상 차려 감사히 먹겠습니당.^^

appletreeje 2015-07-09 01:55   좋아요 1 | URL
저도, 덥고 귀찮다는 게으름으로, 막 사다 먹고 그럽니다.^^;;
그런데도 정갈하고, 좋은 음식은 귀신같이 알아서 그런 자리가 있으면
마구 먹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는 분들도 제가 워낙 잘 안 먹는 인간인지라, 다 헤아려 주시네욤.^^;;

저도, 앞으론 실력은 없더라도,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 감사히 먹겠다는
그런 마음이 불끈, 들었답니다!

이 늦은 밤, 반갑고 고마운 댓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처럼 서울에 비가 내린 밤, 서늘하고 편안한 밤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5-07-09 10:41   좋아요 0 | URL
잊고 지냈던 시를 읽게 해주시니 너무 감사드려요 ㅎㅎㅎ
시 제목들도 모아두니 시가 되는군요 ^^~
시는 나중에 시간날 때 천천히 읽어볼게요 ~

appletreeje 2015-07-09 11:20   좋아요 1 | URL
오홋!~~시 제목들도 모아두니 시가 된다는 말씀에
다시 읽어보니 그렇네요~!!
역시 울 드림님의 빼어난 포착은~늘 저를 감탄하게 하는군요~~
사랑하는 드림님!!!
오늘 하루도, 시원하고 싱싱하고~ 멋진 하루 되세요~~*^^*

2015-07-10 17: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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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0 2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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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0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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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1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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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13 22:01   좋아요 0 | URL
국숫집에 가는 사람들, 특히 좋으네요.
국수는 잔치국수죠!! ㅎㅎ
시집 담아갑니다.^^

appletreeje 2015-07-14 06:32   좋아요 1 | URL
예~~국수는 잔치국수죠~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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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4일(토)

 

 

 

히라마츠 요코, <산다는 건 잘 먹는 것>

서경식, <시의 힘>

'Leflicition Of My Life' 1982년 한남동 프란치스코.

 

냉장고 청소

성서영성신학 '다정한 편견' (2015. 7. 3 PM 22 :15 dltlsqnsla answk)

 

 

<산다는 건 잘 먹는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음식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모습이나

생기, 의미를 잘 보여줘 가벼운 탄성이나 조용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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