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슬픔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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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미발표 유고작 47편이 실린 이 詩集의 시들과 육필 원고를 읽노라니.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한 생을 살아가셨는지 감히 조금이라도 알 것만 같았다. ‘가지에 걸려 찢긴 옷자락 꼴이 되어도/ 진정 내 존엄 버릴 수 없어‘(64). ‘인생이란 숫제 나의 생애가 아니다/ 목숨들의 모습이며 목숨들의 시련이며/ 목숨들의 환희요 목숨들의 비애이다‘(72). ‘ 심장을 으깬 듯한 절실함은/ 아아 검은 밤/ 저 검은 하늘의 희미한 별/ 아마도 나는 그것인 것 같다‘(74). ‘나는 원고를 쓰고/ 우리 고양이 세 마리는 코 자고 있다/ 잠자는 시간과 사료 먹는 시간 외는/ 항상 산을 싸돌아 자유롭다‘(82). 서문의 말 ‘그 표현에는 어떤 성역도 없기에 가장 인간적이며 거룩합니다.‘처럼 우리도 여전히 박경리 선생님의 ‘슬픔의 밑바닥에 숨겨놓은 찬란한 빛‘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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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 걷는사람 시인선 148
김주대 지음 / 걷는사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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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빛이 자라고 손끝에 눈이 생긴다는 ‘꿈꾸는 사람들‘처럼, ‘모르는 물결이 물풀에 눕듯 모르는 사이가 친구가 되는 사이처럼, ‘한사코 세상의 아픔 쪽으로 걸어가서 뜨거워진‘ ‘작약‘같은 사람처럼, 슬픔의 탁본처럼, 바다가 되어 가는 사람처럼, ‘눈물이 어데서 마르도 않‘는 사람처럼, 오래된 안부처럼, 돌과 돌탑처럼 능소화의 귓바퀴처럼, 미황사 동백나무가 된 누이처럼. 참, 울다가 읽다가 웃으며 읽다가.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들‘에게 보내는 헌사. ‘가장 멀리 간 사람이/ 가장 가까운 데 있다‘(79쪽, ‘가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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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호박 집
이분희 지음, 김이조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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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끝이 서늘한 어느 날, 이는 듬성듬성 빠졌지만 팔팔하고 에너지 넘치는 누덕 할매가 세상에서 가장 큰 누렁 호박을 발견하고 어찌할까 고민하다 도끼로 껍질을 까고 식칼로 껍질을 잘라내고 주걱으로 호박 속을 파내어 멋진 호박 집을 짓고는 첫눈이 내리는 밤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반달곰이 그루터기를 집들이 선물로 갖고 오고, 눈이 더 많이 내린 다음날엔 봄 털갈이 때 빠진 털을 모아 짠 담요를 선물로 가져온 여우 가족이 찾아 오고, 계속 숲속 동물들이 조그마하지만 소중한 선물들을 갖고 찾아와 겨우내 할머니의 죽과 떡과 전이랑 범벅 호박 식혜를 먹으며 지내다, 호박집이 껍질만 남자 모두 함께 떠났다. 봄볕에 호박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고 자라서 다시 세상에서 가장 큰 호박이 되었답니다! 무기력한 날들에 누덕 할매 덕분에 에너지가 불끈. 우리도 각자가 지은 호박집에서 호박속을 잘라내어 몸도 마음도 배고픈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지냈으면 참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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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 창비시선 532
송진권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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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始原)의 회귀로서의 여기 이 자리. 아스라한 그림자 같은 속엣말 같은 누에고치에서 뽑아져 나오는 비단 같은 향언(鄕言)들이 낭출낭출 ‘서로를 부르며 함께 있으려는 마음‘처럼 ‘패랭이꽃처럼 생생하‘게 아득하고 그윽하게 무작위로 흘러가는 절창의 詩集. ‘이윽고/ 물이 잠잠해지고/ 여기 살았을 적 내 얼굴이 떠오른다/ 한없이 몸이 물러지더니/ 물이 나를 품는다/ 나는 사방팔방으로 즐겁게 흘러간다(150쪽,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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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반느.


"물에 빠진 사람에게 왜 물에 빠졌냐고 물어 보는 것 그거 안 되는 거예요."


슈베르트 '보리수(Der Lindenbaum)'


모리스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08년 온라인 연재 당시부터 17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영화 개봉을 앞두고 다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이는 개정판에는 소설 속 ‘나’와 ‘그녀’, 요한의 17년 후 이야기를 더해 독자들에게 한층 확장된 감동을 전한다.

1980년대 서울 변두리를 배경으로, 못생긴 여자와 상처 입은 두 청년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외모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백화점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 서사를 넘어, 부와 아름다움이라는 허울 좋은 기준에 편입하지 못한 절대다수의 자화상, 그리고 그 바깥에서 존재를 지키려 했던 한 세대의 감정사를 대변한다.

마돈나, 마이클 잭슨, 켄터키 치킨집 등 소비문화가 촘촘하게 번져가던 시대적 풍경 속에서, 박민규는 ‘못생김’이라는 낙인을 단 인물에게서 오히려 진정한 사랑과 인간다움을 조명하며 외모 중심의 질서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비교 속에 지쳐가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그의 소설은 소수의 화려한 빛이 아닌 불완전한 우리 각자가 가진 내면의 빛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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