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석 연휴의 왠지 모를 피곤함을 한 방에 싹 날려주는 소설이었다. 윤선생이라는 시발점의 할매와, 이장과 베트남 부인 쑤언, 이장 어머니 양촌댁과, 심지 깊은 절골댁, 달구 새끼 임보인 장씨댁, 한씨와 한씨댁 等, 평균 연령 78세의 노인들이 사는 수평마을에 전입을 한, 성진과 혜진 찌니들이 레즈비언임이 밝혀지자 벌어지는 직설적이고 심란하고 뭉클하고 유쾌한 소설. 성소수자, 다민족 가족, 가부장제와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주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 ‘노인들의 실리와 포용은 그들이 대단히 선한 본성의 소유자여서도 아니다. 그들의 호오는 전통이거나 학습된 관념이다. 반면 일상은 구체다. 몸쓰며 노동한다는 것은 몸으로 구체를 실천한다는 것, 어떤 관념도 그 구체성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228). ‘느그가 난 년들이다. 난 년들이여. 한 년이 아프면 딴 년이 밥이라도 채릴 것 아니냐.‘ 찌니들은 난감하기만 했지만 그런데 이상도 하지.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수평마을에서 이 사람들과 수평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가슴 저 밑바닥부터 따스한 봄기운 같은 것이 스멀거린 듯했다. (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달 목욕탕 ㅣ 사계절 그림책
김상근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 저 멀리, 일년에 딱 하루 문을 여는 곳이 있어. 오늘은 달 목욕탕이 문을 여는 날. 달 목욕탕 직원들은 일년 동안 모은 별 물로 가득 탕을 채우고 손님을 맞이해. 다알려줌마 아주머니는 손님들에게 맞는 탕을 안내해 주고 미용의 신 싹둑 아저씨와 굳은 때도 안 아프게 싹싹 미는 그 유명한 다민다 특공대. 그런데 신입 사원인 ‘후‘라는 작은 아이가 있고, 그 아이는 언젠가 꼭 특별한 직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애를 쓰지만 모두 손님들에게 실수만 저지르고 낙심한 가운데 어디선가의 조그만 목소리를 듣는다. ˝ 저도 씻고 싶은데...제가 보이지 않나 봐요.˝ ˝ 사실 이런 적이 많기는 해요. 제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후는 작은 손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도 씻을 수 있는 마음탕에 같이 간다. 오호 할아버지가 계시는 마음탕에 갔지만, 그곳에서도 손님에게 맞는 탕을 발견하지 못하자 후는 노란 얼굴을 조금 떼어 내 달 모양으로 빚어서 아주 작은 마음탕을 만들었어. ˝ 우리 후가 이제 어엿한 초승달이 되었구나!˝ ˝ 마음을 씻었더니 몸이 가벼워. 신기해. 힘이 나.˝ 와! 작은 탕이 생겼네. 지금 목욕해도 되나요? 그럼요 어서 오세요! ˝ 여러분도 와 보실래요? 달 목욕탕.˝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아이 같은 존재들에게도 마음의 때가 덕지덕지 찌들은 어른들에게도 아주 따뜻한 달 목욕탕 별 물처럼 위로를 건네는 그런 그림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빵도둑과 사과 가면 ㅣ 빵도둑
시바타 게이코 지음, 황진희 옮김 / 크래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빵도둑이 따끈따끈한 빵을 배달하러 꼬꼬농장에 왔을 때, 아빠 닭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고 농장 뒤편의 과일나무들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빵도둑은 농장을 살펴보러 나서고 범인인 멧돼지 형제들을 찾았다. 멧돼지들은 맛있는 빵이다! 외치며 빵을 잡으려는 순간, 사과가면이 나타났고 빵도둑과 함께 멧돼지들을 퇴치한다. 사연은 멧돼지들도 ˝배가 고파 그랬어. 요즘 산에 먹을 게 없거든. 크억.˝ 그날부터 멧돼지들은 모종을 심고, 부러진 가지들을 정리하고, 다음 햇과일을 거둘 때까지 부지런히 농장일을 돕는다. 이윽고 수확철이 되고, 그들은 ‘다 함께 과일을 듬뿍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실컷 먹었어요.‘ 어른들이 읽기엔 뻔한 얼개이지만,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선 기쁜 눈높이겠구나. 새삼 반성과 즐거움이 들었던 책이다. 이쯤되면, 추석에 나윤이와 동생 소율이가 송편을 먹고도 과일 샌드위치를 먹자고 조를까 하는 행복한 걱정이 되는구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박완서의 낱말들 - 아름다운 낱말 하나를 얻는 순간 세계는 곱절로 선명해진다
박완서 지음, 호원숙 엮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띠지에 박힌 문장처럼 ˝아름다운 낱말 하나를 얻는 순간 세계는 곱절로 선명해진다˝라는 말이 딱 공감되는 冊. 발음 기호와 품사와 해설이 함께해 더욱 120개의 아름다운 우리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낱말 하나하나 입에 머금고 동그랗게 입을 열어 발음해 보게 하는 한국어의 은은한 아름다움이 조롱조롱한 책. 잘 여문 알곡 같은 박완서 표 진국 같은 말의 향연으로 삶이 더욱 풍성하고 풍요로워졌다.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들이 새삼 다시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한, ‘구메구메‘ ‘노느매기‘가 참 그리운 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가을 호텔 ㅣ 노는날 그림책 46
다비드 칼리 지음, 안나 아파리시오 카탈라 그림, 박재연 옮김 / 노는날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브라운의 가을이 그립기도 했고, 추석에 꼬마 나윤이에게 줄 그림책인데 이크! 너무 빨리 만난 ‘겨울잠‘을 자려는 동물 친구들이 오는 가을 호텔이었구먼. 추위가 성큼 다가오자 숲속 동물들도 겨울잠 잘 준비를 하고 가을 호텔도 손님맞이 채비를 모두 마쳤다. 마멋 가족도, 곰 아저씨도, 고슴도치 가족도, 햄스터 가족들도, 거북이 부부도, 박쥐 가족도, 달팽이 부부도, 무당벌레 가족도, 모두가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겨울잠쥐 기로도, 벨보이 까치들과 오소리 지배인의 환대를 받으며 무사히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포근포근, 이불을 덮고 ˝ 모두 단잠 주무세요!˝ ˝기로도 잘자!˝ 겨울잠에 들어간다. 나윤이에게는 그맘때쯤 선물하면 되고, 어린이들에게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과 그들의 습성과 먹이까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아주 따뜻하고 멋진 그림책이다. 동물들은 때가 되면 겨울잠을 자는데 인간들은 그렇지 않는다. 사시사철 밤낮으로 무언가를 위해 노상 바쁘기만 할 뿐이라. 아, 나도 때가 되면 가을 호텔에 가서 포근한 이불 푹 덮고 겨울잠을 자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