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막걸리에,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먹고 돌아왔다.

          오전까지 읽던 김아타의 신선하고 서늘한 프로젝트 작업에 대한 행보와 ,

          "썩은 물이나 깨끗한 물이나 배를 띄우는 부력은 같다." '나는 오염된 현실을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물을 빌려 인간의 본성을 풍자했다.'라는 귀절을

          떠올리며  나는 깨끗한 물인가 썩은 물인가? 인간은 인간이라는 물이 띄우는

          부력으로 세상을 만들고 그 물 위에서 산다. 나 또한 같은 부력을 가진 물이기

          도 한다. 그런데 나는 썩은 물 같아 뜨끔했다.

 

 

 

2008년. 나의 사적인 박물관을 짓는 <뮤지엄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한 경계에

있었다. 그것은 '니르바나 시리즈'였다. 유리박스에 여든이 넘은 어머니를 황금색

연꽃 좌대 위에 세웠다. 알몸이었다. 그날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염화미소

를 지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를 알몸으로 촬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큰 형님이

"꼭 그래야 되나" 하며 울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형도 이미 전설이 되었다.

(P.119~120 ) / 김아타 산문집, <장미의 열반>.

 

 

 

           완벽한 자유는 없다. 그래서 자유는 스스로 자유라 말하지 않는다.

           조르바처럼, 새처럼 두 팔을 벌려야지.

 

 

 

           세상의 혓바닥이나, 손가락들이 유령들처럼 웅성거리며 소란하다.

           저잣거리건 인터넷상이건. 

           막걸리에 김치찌개를 먹고 온 날,

 

 

디지털의 배후에서 아날로그의 세계가 껄껄 웃는다. 눈길 위에서 스승의 손이 나의

손을 잡는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진정성과 성실성을 말없이 폭로하는 굳은 살이

무섭게 나/ 의 손을 눌러왔다. (P.134 )  /  '아름다운 손' 中

신동호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미닫이가 닫힌 냉면집 앞을 한동안 서성였네

                       기울어진 간판이 요즘의 나같이 좀 모자라 보이는 것이

                       NLL이나 중국 어선 같은 건 그냥 육수로 끓여버릴 것 같

                    았네

                       냉면 맛 또한 설핏하게 날 위로해줄 듯 했는데

                       허리 굽은 아저씨는 잠시 황해도 고향에 갔는가 보네

                       바람만이 미닫이를 슬쩍 밀었다 제자리에 갖다놓고 있

                       었네

 

 

                       육수를 내던 자국만 담벼락에 붙어 고향 냄새를 풍겼네

                       병사들의 차는 잠시 속도를 줄이면서 굴뚝을 보았네

                       주인의 부재는 천안함처럼 의문만 남기고

                       눈치 빠른 병사들이 남긴 바퀴 자국 위로 개 한 마리 지

                    나갔네

                       노를 저어 잃어버린 맛을 찾아갔는가 보네

                       장촌냉면집 지붕이 자꾸 낮은 포복을 하고 기어갔네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는데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바다가 물러난 사리 갯벌 어디에서 개불을 잡고 있을까

                       까나리액젓은 현무암 빛깔로 곰삭은 맛을 내고

                       인생도 물냉면 사리처럼 물컹해버렸는데

                       혹시! 아무도 가지 않는 방공호를 돌아보고 있단 말인

                    가?

                       텅빈 길 위에서 나 혼자 분단의 두려움에 떨고 있었네  (P.97 )

 

 

 

 

 

 

                             성천막국수

 

 

 

 

 

                          소주 세 잔이 심심하다.

                          날은 창창하고 근심을 널어 말리니 겨우내 묵은 절망의,

                          퀴퀴한 냄새가 기화하는 듯 하다.

 

 

                          답십리 성천막국수는 한 여름 깊은 산 계곡 같다.

                          스승 상천 선생의 말이라 해서 철석같이 맛을 믿었다.

                          지난밤 비에, 길은 벚꽃으로 얼룩졌고 국수집엔 메밀꽃

                          이 피었다.

                          강원도 횡성, 여름날의 갑천은 나뭇잎 하나 없이 투명했다.

                          동치미 국물에 잠긴 국수는 흔한 고명 하나 없이 솔직했다.

 

 

                           삶은 자주 단순하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 또한 양념이 필요치 않다.

                           지난밤 아내의 엉덩이를 두드린 일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면 삶는 냄새를 콧등에 남긴 오후, 길다.  (P.136 )

 

 

 

 

 

                                  - 신동호 詩集,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에서

 

 

 

 

 

 

 

 

 

 

 

 

 

 

 

 

 김아타의 작업은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 수적천석水滴穿石과 같은 오랜 반복 행위의 산물이다. 8시간, 24시간. 사흘, 나흘 무한한 장노출을 통해 고정되어 있는 물체는 기록되고 움직임이 빠른 물체는 이미지가 사라져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는 <온에어 프로젝트>가 그러했으며 전 세계의 역사적인 도시 열세 곳을 주유하며 1만 컷의 사진을 하나로 포갠 <인달라> 시리즈가 그러했다. 자기 새끼에게 자기 살을 내어주기 위해 거미줄로 제 몸을 묶어 본능적인 도망을 차단한 염낭거미처럼 배수의 진을 치고 작업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의 작업은 그렇게 쉼 없는 반복 행위의 중첩인 동시에 끊임없는 진화의 연속이었다. <해체>에서 <뮤지엄 프로젝트>로, <뮤지엄 프로젝트>에서 <온에어 프로젝트>로, <온에어 프로젝트>에서 <인달라>로, <인달라>에서 <자연드로잉>으로 진화하며 사진 너머의 세계로, 예술 너머의 세계로 미적 지평을 넓혀왔다. 그는 자기 진화의 속도를 제어하지 않았다. 자기 복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새로움을 항시 추구했고 그 새로움도 내일이면 버려야 할 관념이라 여기며 오로지 전진했다.
자연에 캔버스를 설치하여 무궁하고 내밀한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쓰는 글로벌 프로젝트 <자연드로잉>은 바로 지난 작업들의 축적이 오늘에 나타난 진화의 현재형이며, 그런 의미에서 김아타의 작업은 하나라도 들어내면 무너져 내리는 레고 블록 쌓기와도 같다. 그렇기에 《장미의 열반》은 아티스트 김아타가 쌓아올린 사상의 레고이며 우리 앞에 드러hfs 김아타 철학의 진경이다.

 

 

 

 

 

 

       장촌냉면집에도 못 가고, 답십리 성천막국수도 갈 수 없으니

       저녁은 집 앞의 봉평막국수나, 열무물김치 국수나 먹어야겠다,

       마음을 심심하고 투명하게, 어루만지고 싶은 저녁이다.

 

 

 

 

 

 

 

 

 

 

 

 

시대의 아픔으로 지은 평화의 노래

1990년대 시집 『겨울 경춘선』과 『저물 무렵』을 발표하며 80~90년대 한국의 암울한 시대상을 노래하며 현대사의 좌절을 딛고 새로운 깨달음을 모색한 신동호 시인이 20년 가까운 오랜 침묵 끝에 새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분단과 분열, 억압을 극복하고 화해와 소통, 이해로 가는 길을 찾고자 모색한다. 시인은 그 길에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희망보다는 좌절을 후대에게 넘겨주고자 한다. 후대는 그것을 탐침봉 삼아 현실이 좌절한 원인을 찾아 극복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울 지나 봄…… 그러나 다시 겨울

“갈 곳이 더는 없었네/더 가봐야 철책선,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시작하는 시 「겨울 경춘선」을 읽어본 이라면, 이 표제시를 품고 있는 그의 첫 시집 『겨울 경춘선』을 읽어본 이라면, 80년대 말 90년대 초 뜨거운 가슴으로 이 땅을 살아온 이라면, 신동호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힘차고 푸르렀던 젊은 날의 심박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막차. 겨울은 뼛속까지 밀고 들어왔다. 사랑이 고통이라면 다른 고통쯤은 다 잊고도 남았다. 시간이 가까워오면 조금씩 대화의 간격이 줄어들었다. 말줄임표도 사라져갔다. 우리들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을까, 새벽을 기다리며 가난한 대합실의 작은 온기를 나누었을까. 사랑은?

종착역. 끝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없기에 슬프고, 없기에 다행이기도 했다. 혁명은 억지로 봄을 부르지만 겨울아, 왜 사랑은 눈꽃처럼 네 안에서만 피어나는 것이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는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길 끝에 종종 길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_ 시 「겨울 경춘선 2」 부분



20년 만에 경춘선을 달리는 겨울 기차가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도 뼛속까지 밀고 들어온다. 오래전 그에게는 “가난한 대합실의 작은 온기”를 나누듯 따뜻한 사랑을 나누던 사람들이 있었다. 자취방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난장을 만들어놔도 ‘내 새끼’ 하던 “남철 형”, 민족 해방 얘기는 하지 않고 만날 고향 얘기만 하던 “종혜 누님”, 칸트를 읽고도 운동권이 될 “광운”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이 모여 살던 골목, 그 골목의 제일분식에서는 “계급 운동이 막걸리를 마시고”, 이모집에서는 “민족 운동이 젓가락을 두드렸다”(「譜學」). 그 시절 그들의 주머니는 텅 비었을지언정 가슴만은 늘 부푼 꿈으로 두둑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추운 겨울도 머지않아 끝나리라 믿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올 줄 알았더니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내 친구 내 부모를 지킨다는/그래서 내 동포 내 조국을/영영 동강낸 채 내버리고 말겠다는”(「겨울 경춘선」, 『겨울 경춘선』) 철책선은 아직도 건재하다. 이 겨울의 막차는 여전히 갈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광운”이는 약을 먹고 바다거북이 되었고, 인문대 계단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조그만 여자 “종혜 누님”은 지금 그곳에 없다. 제일분식과 이모집의 “악다구니”들은 바다로 가버렸고, 그렇게 그들의 꿈도 푸르렀던 그 시절과 함께 “유폐”되었다. 그곳은 “안기부 지하실”이거나 “서울구치소”, “박제된 동물”들이 전시된 “자연사박물관” 한쪽 귀퉁이다(「운동권 考古學」).
친구를 잃어버리고, 꿈도 잃어버린 한 남자의 뒷모습은 “늙은 코끼리”처럼 쓸쓸하다. “열망을 이루지” 못한 그는 “열에 들뜬 후회”를 짊어지고 “억새 빛나는 황혼 길”을 걷고 있다(「가을 나그네」).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사막은 뜨거웠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바람을 따라 민주주의는 자주 자리를 옮겨 다녔다. 모래언덕을 오르며 뒷걸음칠 때 마른번개가 몰아쳐왔다. 낙타는 천둥 속으로 묵묵히 걸어갔고 나는 목도했다. 피뢰침을 머리에 꽂고 장준하가 쓰러졌다. 김근태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오래도록 엎드려 신을 향해 기도했으나 그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아라비아 공주는 군사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_ 시 「영등포에서 보낸 한 철」 부분



광운이와 종혜 누님, 남철 형이 사라진 땅에서 “사거리에 안철수의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새정치’가” 그를 내려다볼 때, 시인은 마치 자신이 “수락산 능선의 떡갈나무처럼 통째로” 쓰러진 것만 같다(「늙은 코끼리」). 혁명은 전염병처럼 왔다가 “카-알(Karl)”만 남기고 사라졌고, 혁명을 꿈꾸던 이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무도 모른다(「阿Q」).
남은 것은 후회뿐, “사랑도 혁명도 차단기를 내린 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눈은 쌓이지 못하고 그렇게 흩어져갔다”(「겨울 경춘선 2」). “공주가 城 밖에서 늙은 왕의 옥새를 들고 식민지 백성을 용서하고” 있었다(「阿Q」).

 

 

 

남북저작권센터의 통일 오작교 놓기



시인은 그의 시집을 오래 기다린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꼭 시를 써야만 시인이 아니다. 세상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시집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산문집을 여럿 발표하며 여전히 현실 한가운데서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프고 소외된 곳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의 말마따나 단 한순간도 시인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스무 살에 90년대를 버텨온 이들의 가슴에는 아직 그의 시어들이 비수처럼 꽂혀 있다. 한 시대의 격랑을 그처럼 온몸으로 부딪친 이도 드물 것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문화국장으로 학생 운동을 주도해온 그는 몇 년 전 남북저작권센터를 꾸리고 남과 북이 불행한 과거를 용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1995년쯤 한 대형 서점에 간 그는 『조선수군사』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를 갖고 펼쳐보았는데, 껍데기만 남쪽 식으로 새롭게 덧씌우고 속은 북쪽 책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 후 합법적인 저작권 교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오며 2000년 6.15 선언을 기회 삼아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승인서’를 접수했다. 승인이 나오자 그동안 조사한 저작권 침해 사레와 저작권 교류에 대한 기획서를 들고 무작정 베이징행 비행기를 탔다. 첫 번째 무모한 시도 끝에 다음 해 두 번에 걸쳐 북쪽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금강산에서 열린 6.15 1주년 기념하는 행사였는데 이때 시인 박세옥, 소설가 김보행 등 작가동맹의 노작가들과 함께 장혜명 통일문학 편집국장과 젊은 시인 신흥국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그해 8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축전에서는 홍석중 선생을 비롯해 『청춘송가』의 남대현 선생도 만날 수 있었다. 2003년에는 문화 협력 사업으로 남북저작권센터 구성과 남북 합작 영화, 전자도서관 구축, 인쇄소 설립 등을 추진했다. 이후 남쪽 최초로 남북 간 직접적인 저작권 양도계약서를 이끌어내게 되었고, 『임꺽정』, 『고려사』, 『황진이』 등 서적의 보상 문제를 처리하기로 하고, 『휘파람』 등 노래와 200여 종의 서적에 대한 이용과 재출판 사업이 제기되었다.
그때까지 남쪽에서 출간된 북녘의 책들은 거의 모두가 불법(?) 출판물이었다. 해방 이후 한설야나 이기영과 같은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출판된 사례가 있으나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금서로 묶여 출판이 금지되었고, 극히 제한된 곳에서 복사물이 읽히기도 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불법은 상업적으로 ‘혹은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변모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조선수군사』처럼 때로는 표지갈이만으로, 심하게는 『북한의 민속놀이』처럼 저자가 바뀌어서 출판되었다. 『리조왕조실록』과 같은 규모가 큰 출판물은 형식상으로 판권 계약이 이뤄졌지만 실상 저작권자인 북쪽의 연구자들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중국의 브로커와 제3자 계약이나 불평등 계약으로 저작권료가 북쪽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분단 상황은 많은 불합리를 낳았다. 분단으로 허용되는 것들이 무질서를 방조했고 그 무질서가 불신을 키워왔다. 하지만 이제는 남과 북이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출판과 관련된 문화 교류는 북녘에서 민족화해협의회가 담당한다. 대남사업단위인 민족화해협의회를 통해 저작권사무국이나 사회과학원, 인민대학습당, 윤이상음악연구소 같은 단위들과 접촉할 수 있다. 현재 남쪽에서는 사단법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 남북저작권센터를 통해 민족화해협의회의와 만날 수 있다.
그해 겨울 운행을 멈춘 듯하던 겨울 경춘선이 실은 꽝꽝 얼어붙은 동토를 뚫고 이 겨울에도 쉼 없이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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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6-25 21:18   좋아요 0 | URL
김아타 이분은 '예술가'이지 '사진가'가 아닌데,
늘 사진밭에서 이름을 오르내려서......
안타깝다면 김아타 이분 스스로 이녁이 '아티스트'라고 밝히면서도
한국에서는 '사진 분야'에서 맴돌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제 빛을 드러내지 못하지 싶어요.

백남준 님이 '아티스트'이듯
김아타 이분도 '아티스트'로서 '사진밭에서 독립'해서
제대로 꽃피울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아요.

참, 그렇습니다.

appletreeje 2014-06-27 22:25   좋아요 0 | URL
예, 김아타 이분도 카메라는 자신의 개념을 담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라 하시더군요. 그간의 '프로젝트'들을 사진을 매체로 한 작업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듯 합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진행 중인 '자연 드로잉' 연작에선 아예 카메라를 배제했구요.


저는 2007년에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를 통해 이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런 독특한 작업을 하는 분이로구나.로만 생각을 하였는데 <장미의 열반>을 읽으며 김아타라는 분의 '생각 노트'로 많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 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초대받았고 '온 에어(On-Air) 프로젝트'의 '8시간 연작'중 맨해튼 파크 애비뉴를 찍은 한 점을 빌 게이츠가 우리 돈 8800만원에 사 갔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구요.
함께살기님께서도 사진가로 사진을 찍으시는 것이 아니듯이, 김아타님께서도 그러시겠지요.


백남준 님처럼, 김아타 님도 활짝 꽃피시는 아티시트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2014-06-25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7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6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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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7 2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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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6 0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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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7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4-06-26 09:21   좋아요 0 | URL
아~~~ 김아타의 이 산문집, 무척 좋네요.
'성천막국수' 시도 너무 좋구요.
어쩌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결국엔 글로, 말로, 시로 바뀌는 것 같아요.
나무늘보님은 봉평막국수, 열무물김치 국수 많이씩 드셔서 이렇게 시원~~한 글을 쓰실 수 있나봐요.
저도, 시원한 열무물김치 국수 먹고 싶네요^^

appletreeje 2014-06-27 23:07   좋아요 0 | URL
예~ 참으로 즐겁고 좋았습니다.^^
막연히 읽기 시작했던 책이었는데, 읽어 갈수록 많은 느낌과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었습니다.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를 읽으니 '손녀에게 주는 책이다. 손녀가 어른이 돼서 정신적으로 이 책과 공감하는 날 내가 부활할 것이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라 하더군요. 손녀가 이제 9개월인데요.^^


'성천막국수' 좋지요~?^^ 단발머리님께서도 좋다 하시니, 참 기쁩니다~
'어쩌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결국엔 글로, 말로, 시로 바뀌는 것 같아요.'-란 말씀이 딱! 너무나 좋습니다. 아아..
ㅎㅎ 저는 국수를 좋아해서인지 술도 국수도, 술술~ 다 잘 먹습니담.
시원한 글,은 아니지만요.ㅋㅋ
여름에 열무김치 국물 자작하게 넣고 국수 씨원하게 말아 먹으면 참 맛나지요.
맛있게 드시길요~


단발머리님! 편안하고 행복한 밤 되세요~*^^*

2014-06-26 2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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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7 2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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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6-27 19:59   좋아요 0 | URL
아니 대체 어딜 가신 겁니까?

댓글이 이렇게 달리도록 놔두고,

봉평까지 막국수 먹으러 갔다가 메밀꽃에 취해 물레방아 로맨스라도 찍고 계신 겁니까?

사뭇 진지..

appletreeje 2014-06-27 23:23   좋아요 0 | URL
ㅋㅋ, 소인 인저 대령했습니담~
봉평에 가서 막국수 먹고 메밀꽃에 취해 물레방아 로맨스라도 찍었다면,
더할 바람이 없겠지만요! 아쉽게도 양평에서 1박2일의 워크샵을 막 달리다 왔습니다...ㅠㅠ
죄송해유~ㅎㅎ

그나저나, 알라딘 들어 오니 '김아타 작품 대형 포스터'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
친필사인에 넘버링이 들어가 있다는데 도착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욤.


컨디션님! 불금인데, 벌써 달리고 계시겠지요~?^^ ㅎㅎ
즐겁고 좋은 밤 되세요~*^^*

2014-06-28 05: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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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8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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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8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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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8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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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0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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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0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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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1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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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1 1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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