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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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저자는 전우용 씨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신,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저자는 이전부터 여러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역사학자답게 역사적 사실 속에서 반추하는 트윗으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저자의 트윗을 다른 경로로 - 저는 트위터를 하지 않습니다 - 접할 기회를 가지면서, 저자의 탁월한 통찰에 고개를 끄덕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담긴 책을 여러가지로 검색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저자가 누구인지 안 후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1'


이런 종류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여행에 관심을 가지면서였습니다. 


어릴적 부모님따라 다녀왔던 동해안 해수욕장이나, 교회 수련회 등의 특수 목적의 장소가 아닌,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해 봤던 것은, 결혼하기 전에는 2박 3일의 부산행이 유일한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은, 학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했던 고학생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었기에, 스물 다섯 살의 초여름 어느날, 동기 녀석이 살고 있던 부산에 잠시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딱히 여행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우선 면허가 없었고, 따라서 차도 없었습니다. 면허를 따고 나니, 학원 강사 신세라 어디로 갈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고, 둘째 낳고 세 번째 대학 생활을 하고, 돈을 벌고 하다보니, 역시나 여행을 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불현듯 부산에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의 석가탄신일 날, 당일치기로 부산행을 감행했었지요. 아침 여덟시에 출발해서, 첫 기착지인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이 오후 네 시. 자정 무렵까지 단지 여덟 시간 동안 부산 공기를 맡기 위해서 왕복 열 여섯 시간의 운전을 결행했던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쁜, 그런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에 대한 의문이 든 것은, 아마도 재작년 전주 행이 직접적인 이유였다고 할 수 있겠고, 더 나아가서는 서울의 인사동, 삼청동 등지에서 느꼈던 의아함이 그 단초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어번의 인사동 행은, 왜 여기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고, 삼청동 행은, 이 곳이 왜 이런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당일로 다녀온 전주 행은, 그런 제 의문을 확실한 무언가로 만드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오리엔탈리즘 학습은 토속적인 역사, 죽은 역사는 즐거이 상품화하면서도 아직껏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는 아프고 창피하다는 이유로 감추고 숨기는 태도를 깊이 심어주었다.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대장간은 후딱 복원하면서, 난지도 역사를 살아서 증언해온 구조물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허물어버리는 이율배반의 시대가 21세기형 '역사의 시대'요 '문화의 시대'였다. (중략)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한다. (10~11쪽)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한 여행일 뿐, 그 소비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는 그런 여행, 그것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한동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작년 여름을 통째로 건너 뛰는 - 세째의 출산도 있었지만 - 까닭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은, 소비하는 여행 이상을 누릴 수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만 명소가 어디이고 맛집이 어디인지, 어떤 숙소에서 어떻게 소비하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이 지내온 삶을, 그 곳이 가지고 있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찾는 곳은 누군가 살던 곳이고, 무언가를 하던 곳이며, 그러면서 생각과 생각이 맞닥뜨리던 그런 곳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여행이 주는 감동은 소비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여정을 보낼 수 있다면, 아마 다음에도 같은 장소를 한 번 더 찾을 수 있겠지요. 그 곳의 삶과 관계 속에, 그 곳을 지내온 나의 삶과 관계도 녹아들었기에, 조금 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그 곳은, 나를 한 번 더 당겨들게 되겠지요. 조금 벅차더라도, 이런 책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부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2.


이 책은, 도시로써의 서울, 농촌과 대비되는 장소의 의미를 가진 서울이 지내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가 '도시사'라는 학문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도시의 역사에 대한 책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마침 저자가 책 중간에 '도시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내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분명하여졌습니다. 그런 서울의 역사 중에서도 특히, 이 책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 그러나 근대로의 이행이 일제에 의해 좌절되어가던 시기인 '대한제국'기와, 1950년부터 1960년까지, 이행되지 못한 근대의 신기루를 뒤로 한 채, 탈근대 - 가져본 적 없는 시기라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 의 몸부림이 가시화되던 시기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바라보는 서울은 '결핍의 공간'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시(또는 서울)는 없는 게 없이 풍족한 공간이고 농촌(또는 시골)은 여러 가지가 부족한 빈곤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물질의 총량에 대해서만 통용될 수 있을 뿐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질에 관한 한, 도시는 오히려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결핍의 공간'이다. (중략) 앞에서 중세 도시의 크기를 규정한 여러 요인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 경제적으로 가치 없는 요소들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생산력적, 기술적 토대를 만들지 못했던 것도 도시 확장을 제약한 중요 배경이었다. (272~273쪽) 


도시는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소비 지향적인 공간이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견해입니다. 따라서 도시는 '생산 자체보다는 그 생산물을 분배하고 관리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128쪽)' 인류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이며, 도시는 그러한 인류의 모습을 '지표 위에 도로와 필지, 그 위에 우뚝 솟은 건조물'이라는 '관계망이 그려낸 그림(128쪽)'입니다. 풍부하나 빈약한, 넘치는 듯 하나 메마른, 그런 공간 중에서도, 특히 서울이라는 곳은 극장 하나, 공연장 하나 없는, 유교적 사상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영된 그런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도시 서울, '그 안의 사람들과 밖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24쪽)'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는, 그러나 실은 '농촌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루이스 멈퍼드, 24~25쪽에서 재인용)'하는 외로운 공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의식이 사라진 도시(57쪽)'을 살면서 '공간과 장소를 공유해 본 경험을 갖지 못한 채(56쪽)', 2~3m앞의 간판들에 시야를 뺏겨버려 멀리 내다볼 수 없는 그런 근시안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경박성(188~189쪽)'을 한껏 드러내며 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도 못한 채, 혹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면서 '서울과 시골 사이에 시간적 장벽을 쌓아가는(101쪽)' 그런 삶을 자랑스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와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자리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서울 사람이 아주 낙향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중략) 이제 부의 원천은 더 이상 농토에 국한되지 않았다. (중략) 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이니 하여 학연으로 혼맥으로 끼리끼리 뭉친 서울의 대관 나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못 하는 일이 벗었고 안 하는 짓이 없었다. 특히 시골의 인재를 빨아올리는 빨판 구실을 해왔던 과거제가 심각하게 망가졌다. (중략) 17세기 중반부터 서울 문체와 시골 문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의 경화 자제들은 시골 유생들이 배우기 어려운 새로운 문체를 배웠고, 출제자들은 그에 합당한 문제를 냈다. (중략) 경화거족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급제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었고(후략). (100~101쪽) 


요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획일적인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된 서울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온 시골의 문화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디를 가도, 거기와 같은. 풍부한 듯 보이지만, 지나치게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마도 서울의 특징이라기보다는, '21세기의 문화(7쪽)'가 서울을 외피로 하여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1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으니, 21세기의 문화가 분명할 것입니다. 



3. 


이 책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견해를 곁들여,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서울에 대해, 압구정과 석파정의 서울에 대해, 양란 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서울에 대해,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에 대해, 5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서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장소로써 주목하기보다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삶에 관련된 서울을 주목하여 보는 편입니다. 특히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고종 황제입니다. 고종에 대한 역사적인 견해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대원군의 것보다 더 많을 듯 싶습니다. 보통 고종이라면, 대원군 혹은 민비 - 명성황후라고도 하는 - 와의 연계 속에서 고찰하는 시선도 많지만, 몇 년 전에 읽었던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같은 책에서 드러나는 조금은 긍정적인 시각도 일부 존재합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고종에 대해서, 나약하고 의존적인 군주였다기보다는,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확고한 통치 철학을 가진 군주로써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설계한 사람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181쪽)' 탓에 고종의 의도는 그 방향을 곧 잃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긴 하지만 말이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아마도 천지가 개벽하는 것같은 급변의 시대에, 고종이 군주로서 자신의 의지를 오롯이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 


이 책은, 서울의 '역사'를 '도시'의 역사 속에서, 농촌 - 시골 - 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하고 있는 그런 책입니다. 장소적으로는, 경운궁(덕수궁), 종로, 청계천, 남대문시장 등을 언급하지만, 어디를 가기 위해서 읽어야하는 답사기 격의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울을 사는 이로써, 서울에 대해서, 근대적 의미의 도시에 대해서, 거대한 위력을 휘두르는 메가시티로써의 서울에 대해서 조금은 관심있게 바라보고 싶은 분들이 읽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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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수학 이렇게 가르쳐라
리핑 마 지음, 승영조 외 옮김 / 승산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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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2학년, 수학과교육 1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수님께서 다음 문제를 주셨더랬습니다.


1%5Cfrac%20%7B%203%20%7D%7B%204%20%7D%5Cdiv%20%5Cquad%20%5Cfrac%20%7B%201%20%7D%7B%202%20%7D%20 

위 분수 나눗셈을 문장제 문제로 바꾸어보라. 


조금 당황했었다는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사교육에 십수년을 종사하면서 꽤 많은 숫자의 학생들을 가르쳐왔지만, 막상 위의 문제를 문장제로 바꾸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눗셈 식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사실 나눗셈의 수학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위의 문제는 나눗셈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단순하게 나눗셈 기호를 곱셈으로 바꾼 후에, 제수 위치의 분수의 분자 분모를 바꾼 후에 분수의 곱셈으로 푸는, 알고리즘 - 공식 - 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가르쳐왔고 배워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가르치면 나중에 어떤 아이들이 나오냐하면, 


%5Cfrac%20%7B%204%20%7D%7B%205%20%7D%5Cdiv%20%5Cquad%203%5Cquad%20%3D%5Cquad%20%5Cfrac%20%7B%204%20%7D%7B%205%20%7D%5Ctimes%20%5Cquad%203%20 


과 같이 푸는 학생들이 꼭 나옵니다. 왜냐하면, 제수 위치의 분수의 분자와 분모를 바꾸어야 하는데, 분수가 아니니까 바꿀 분자와 분모가 없으니까 그냥 놔두는 방식으로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또는,


%5Cfrac%20%7B%204%20%7D%7B%205%20%7D%5Cdiv%20%5Cquad%203%5Cquad%20%3D%5Cquad%20%5Cfrac%20%7B%205%20%7D%7B%204%20%7D%5Ctimes%20%5Cquad%203%20 


처럼 풀어버리는 아이들도 꼭 나옵니다. 분자 분모의 위치를 바꾸어야겠는데, 분수가 하나 밖에 없으니까 그냥 그것을 바꾸어버리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수학 부진은 이런 식으로 시작이 됩니다. 개념 없는 알고리즘의 사용, 그리고 알고리즘의 왜곡과 오답, 그런데 알고리즘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찾을 수 없을만큼 수동적이 되어버린 상태. 그렇다보니, 수능 수학 점수의 경우, 평균 점수가 40~50점 정도 나오는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즘이나 되니까, 쉬운 문제로 조금 더 배려하고, 교육과정도 조정되고 그랬으니 그렇지, 공통수학과 수1이 함께 출제되던 당시의 문과생들의 수능 수학 점수는 지수, 로그, 삼각함수 덕택에 평균이 20점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서 결정이 되곤 했습니다. 


수학포기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디에선가 수학을 포기하게 되는 이러한 현상에는,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원리의 이해 없는 알고리즘의 무한 연습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수학에 대한 흥미를 느낄 겨를도 없이, 기계적으로 문제 풀이를 해대는 그런 과정, 아이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일으켜주기보다는 수학에 대한 좌절과 절망부터 맛보기에, 수학에 대해서는 수동적으로만 대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 



이 책 속에서, 저자가 결국은 '교사 탓'을 하고 있는 것을, 현재 우리나라의 공교육 상황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수학 학습을 위해서 교사가 수학의 개념과 원리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닌가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의 수학 교사와 중국의 수학 교사를 병렬적으로 비교하면서, 미국 교사들이 갖지 못한 '지식 꾸러미'를 중국의 교사가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 꾸러미라는 것은, 수학적 개념과 원리가 연계된 총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분수 나눗셈 문제 상황을 생각해보자면, 결국 분수 나눗셈의 의미는 분수 곱셈의 개념을 중시으로 정수 나눗셈의 개념 및 단위 개념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하나의 꾸러미 - 세트 - 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며, 저도 깊이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지식 꾸러미가 중요한 까닭은, 학생들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해야할 개념이나 원리는, 그 하위에 또다른 개념이나 원리와 연계되어 있는 까닭에, 만약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에, 그 하위의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학생은 결국 문제 해결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수학의 연계성이죠.


이것이 심화되면, 학생들은 유형에만 집착하게 되고, 문제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주요한 개념과 원리를 보지 못한 채, 유형을 따로따로 학습해나가야하는 상황에 이르릅니다. 그런데 시험에는 연습한 유형대로 문제가 나오지 않죠. 유형을 아우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유형을 아우르는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동은 결국 문제 해결에 이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형별 수학 문제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유형 연습을 하지만, 결국 유형을 아우르는 문제 앞에서 포기해버리게 됩니다. 유형별 수학 문제집은, 학원에서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유형을 해결하지 못하면, 같은 유형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풀려서, 그 유형을 외우게라도 만들어서, 아이도, 학원 강사도, 부모도, 모두 착시 현상에 빠지게 만드는 - 이제 이 유형을 해결했어 -, 그러나 이 아이는 유형을 아우르는 문제 앞에서, 결국 자신이 문제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암기하였기 때문에 개념과 원리를 이용하여 문제 해결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결국 깨닫지 못한 채, 왜 다 풀어봤었는데 시험은 못 보지, 라면서 좌절과 절망을 깊이 느끼게 되고 말지요. 


물론, 어떤 아이들은 그런 수학 문제집을 통해서도 유형 외의 문제를 잘 풀어냅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은 약간의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센스 Sense 를 가지고 문제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아이들일 뿐, 그런 아이들이 전체 아이들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텐데, 모든 학생들이 그런 방식으로 문제 해결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돌아가더라도,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효율적인 학습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경험하고 시도해보면서, 개념과 원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한다는 것이겠고,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교사의 몫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수준에서,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수학적 본질에 도달하기 위한 기초적이면서도 깊고 폭넓은 수학적 사고의 역량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아이들이 비록 학습 역량을 향상시킬 수 없을만큼 어릴 때, 섣부르게 아이를 재촉하는 것보다, 아이의 발달 단계가 왜곡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이를 허용하는 태도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 중에 무엇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냐하면, 저는 아이들의 발달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강요당하는 학습 역량의 향상 압력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자유롭게 사고의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고, 사고의 내면을 깊이있게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교사가 게으를 수는 없으니, 교육과정 연구와 교재 연구를 통하여 아이들에게 방법적 지식 이전에 개념과 원리를 먼저 안내할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하며, 그것을 위해 교사가 먼저 공부하고 연구하여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이 책의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수업 모델을 개발하고, 학생들에게 적절하게 교수하여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저자가 강조하는 바입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교사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에게 중요하지 않은 과목에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수학은 개념의 엄밀성과 함께 개념간 연계성이 다른 과목에 비해 워낙 강하기 때문에, 현재의 초등학교 교사들이 자신의 수학적 역량을 향상시킴으로써, 학생들이 공교육 바운더리에서 개념과 원리 중심의 수학 학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조금 더 재미나게 수학 학습을 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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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접근법 - 레지오 에밀리아의 한국 적용
유승희 지음 / 양서원(박철용)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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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접근법은, 쉽게 접근하자면 유치원/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1~2학년에서 다루는 주제별 통합학습의 한 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을 시행하면서, 초등학교 1~2학년 통합 교과서가, 기존의 '바른생활', '슬기로운생활', '즐거운생활'에서, '봄', '가족', '여름' 등의 주제별 제목을 단 교과서로 단 것이 조금 더 프로젝트 접근법에 유사한 방향으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제별 통합학습에 대한 이야기는 공교육이 시작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길게는 Dewey의 프레그머티즘까지 가야할 듯 싶고, 책에서는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의 '프로젝트 접근법'을 통해 주제별 통합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 4차 교육과정(1982년 시행)부터, 어쨌든 명목상으로나마 '바른생활', '슬기로운생활', '즐거운생활' 교과가 도입되었으니, 통합학습에 대한 역사는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접근법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아동으로부터 시작하는 교육과정, 즉 '발현적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지오 에밀리아의 프로젝트 접근법은 그것을 체현해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구요. 아동부터 시작하는 교육과정이란, 아동의 흥미와 관심을 토대로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입니다. 국가 - 정확하게 말하면 교육과정평가원, 수능 시험을 출제하는 곳으로 유명한 - 에서 학생들의 성취수준 - 학습 이후에 학생들이 도달해야 할 목표 - 을 정하고 그에 따라 교육과정을 고시합니다. 그러면 그를 토대로 성취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 도구를 선정하고 그것을 교과서라는 틀에 담습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은 총론-각론-교재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 교재, 즉 교과서는 교육과정 상의 성취수준을 달성하도록 하는 도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정 상의 성취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는, 교사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교과서가 국정 체제에서 검인정 체제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교사의 역량을 존중하고 교사가 교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기 위해,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이미 그 시행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이번 2014년도에 사회과 경제 단원 같은 경우에는 교재 재구성을 해서 교육과정 상의 성취수준을 달성하려고 시도한 바 있으며, 도덕과의 경우에도 교재 대신 성취수준만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2015학년도에도 수학같은 과목은 교과 내 재구성을 통하여 교육과정 상의 성취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수업을 계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접근법은, 그러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과연 아동의 흥미와 관심을 토대로 만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동의 흥미와 관심에 따르지 않는다면, 아동을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을 것이며, 아동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배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 식 프로젝트 접근법은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아동의 흥미와 관심에서 시작하는 발현적 교육과정을 수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프로젝트 접근법은, 우리나라의 국가 수준 교육과정 상의 성취수준을,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토대로 하여 주제별로 재구성하여 프로젝트 형식으로 구성한 수업 방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담은 책입니다.



아동의 흥미와 관심을 중심으로 한 교육의 실시는 지속적으로 교단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중심이 아동이며, 아동의 학습 동기를 높임으로써 아동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일 것입니다. 주제별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문의 엄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합니다. 하나의 학문적 이론이 그 틀을 잡아나가는데 있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고 그를 통해 갖추어진 학문적인 엄밀함을, 과연 아동들의 활동을 통해서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Bruner의 이론에도 불구하고, 저부터도 약간은, 부분적으로는, 그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별 교육과정 재구성은 어떤 면에서는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습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고, 과연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하던 방식대로 - 교과서 중심의, 아동의 흥미와 관심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 수행하는 것이 아동의 학습동기를 고양시키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015학년도에는 저도, 교과 전 범위에서의 주제별 교육과정 재구성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교과별로 묶을 수 있다면 -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시작으로 하여 -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교과를 묶어내는 주제별 교육과정 재구성을 수행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준비과정에서 읽게 된 책이기도 하구요. 


다만, 그 이상과는 별도로, 실제 사례로 소개된 부분은 그다지 크게 공감가지 않는 사례였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주제별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한 프로젝트 접근법 수행 사례로, '인체'라는 주제로 프로젝트 학습을 실시한 사례가 나왔고, 도덕과와 과학과, 수학과의 교육과정 상의 성취수준을 한 곳에 묶어낸 실제가 소개되었는데, 굳이 이렇게 재구성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제 개인적인 공감대 미형성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 바, 주제별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것이 교사의 흥미와 관심, 또는 교사의 역량까지도 고려해야하는 부분이기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듯 싶고, 다른 분들은 이 사례를 실제 교육 현장에서 변형하여 사용하시려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성향 상, '활동 중심'이라는 방식 자체에 대한 생경함때문에 가지게 된 생각이라는 것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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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기행 - 어느 인문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올레, 돌챙이, 바람의 풍경들
주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본문에는 쓰지 않았으나, 제주도 자체가 거대한 테마파크의 섬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역사'라는 홉스봄의 표현처럼, '만들어진 섬'이 된 것입니다. 수많은 상징과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가공되어 진실한 역사인 양 우리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4쪽) 


국내의 이곳 저곳을 다닐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가족들과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탓도 있겠고, 어릴 적부터 궁금하던 곳을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은 욕망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인상적이었던 곳은 부산, 그리고 군산이었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시간이 흘러갔던 흔적을 마치 슬라이드처럼 한 몸에 담고 있는 도시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산은 옛날이 현재와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부산은 옛날 위에 지금을 조금씩 덧쌓아 올린 곳이라는 생각을 했고, 군산은 옛날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실망했던 도시는 전주였습니다. 옛날을 덮어쓴 현대, 그러나 그 욕망은 옛것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 [제주기행]을 쓴 저자가, '제주'를 포착한 것 이상으로, 전주라는 도시는 '만들어진 옛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주를 조금 더 알고, 포장된 전주가 아닌, 숨겨진 전주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기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도시의 외피가 아닌, 속내를 관통할 수 있는 안내서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명소와 맛집을 알려주는 여행기는 많지만, 그 뒤에 숨겨진 그 땅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기행]은 제주도라는 섬을 인문학적으로 포착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는 흔히 변경에 남아 있다. 중앙에서 성립한 문화가 변경으로 번져나가게 되지만, 그 중앙은 변화가 빠른 까닭에 잃어버리기도 잘 하는 법. 변경은 변화가 느리기 때문에...... (하략) (356쪽) 


제주도를 포착하면서 저자가 취한 하나의 표상은 '변경'이라는 이미지입니다. 폐주 - 광해군 - 가 귀양오던 곳,  쿠빌라이 칸의 거대한 목장 구실을 하던 곳. 제주도는 그 너머가 망망대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과 절연한 곳으로 인식되었고, 세상을 넘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 출륙금지령 - 변경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가장 먼저 맞닿는 곳이 되었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세상의 끝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제주도는, 그래서 여러 부분에서 아직도 오롯이 옛 모습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모두 잊혀진 것, 아직도 제주도는 제주 방언을 가지고 있고, 곶과 자왈이 만나 이룬 숲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에 몸 담그는 잠수 - 잠녀, 혹은 해녀라고 하는 - 가 아직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신들이 자신의 위용을 뽐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상처도 많습니다. 아직 채 70년도 지나지 않은 제주 4.3 항쟁의 아픔은, 공식적으로 1만 4032명의 희생자를 낸 채 아직도 제주도 안에서 삭혀지고 있습니다. 1901년의 이재수의 난은 옛날 그 영화대로 - 1999년. 박광수 감독. 이정재, 심은하 주연의.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본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납니다 - 새것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일본에서 동남아시아를 지나는 해상루트의 전초 기지로써 변경으로써가 아닌 시작점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는 중앙 관력에서 바라보는 변경에 위치한 페리퍼리(periphery)로서의 제주도, 다른 하나는 일본 등 외국과의 최선단 접촉점에 서 있는 프론티어로서의 제주도이다. 페리퍼리와 프론티어라는 상반된 제주도의 역사적 위상은 중앙의 일방적 지배 구조, 이에 대처하는 제주도민의 주체적 삶의 방식이 빚어낸 역사적 유산으로, 오늘날에도 그 유산은 갈등을 안은 채 지속되고 있다. (허남린, 책에서 재인용, 416쪽) 


고려 중기 이전에는 '탐라국'으로써 독립적인 위치를 영위하였던 시절부터, 무수한 신화로 남아있는 제주도의 주체적 위상까지. 이 책에서는 제주 땅이 지닌 독자적이며 독립적인 삶과 문화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주도는 단지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가지고 있는 섬일까요? 볼거리, 즐길거리, 누릴거리 많은 휴양섬일까요? 제주도에도 그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고, 그 사람들이 삶을 살아내면서 문화를 남겼고, 흔적을 남겼고, 신화를 품었으며, 현재에 이르렀음을 알지 못한 채, 그 섬에 다다른다면, 우리는 그 섬의 지나온 세월과의 교감없이, 잘 꾸며진 테마파크에서 꾸며진 감격과 감동을 가득 안은 채, 그 뒤에 숨겨진 세월의 감격과 감동은 절대 알수도, 느낄 겨를도 없이, 아마 잘 꾸며진 일상에서 잘 꾸며진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것에 그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땅을 조망하고,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탐색하는 책으로써, 이 책 [제주기행]은 만만치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하고, 내년 초 쯤 제주도를 가려고 계획하고 있는 제게는 제주도라는 장소에 대한 프롤로그 격의 역할을 충분히 한 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처음 세 장에는 '바람, 돌, 여자'라는 삼다도로써의 제주도를 조망하고 있고, 4장과 5장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귤과 해녀 - 잠수 혹은 잠녀 - 를 제주도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6장에서 8장은 곶자왈, 테우리, 화산을 통해 제주도가 가진 자연환경의 특징 - 화산섬 - 과 함께 변경으로써의 위치로 인해 누리게 된 말목장의 역사 및 고스란히 보존된 원시림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9장에는 궨당 - 괸당 - 문화, 10장에는 먹거리 문화를 통한 제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11장부터 15장까지는 제주도의 역사를 신화부터 현재까지 분절하여 짚어내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맛집과 명소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이 책을 한 번 쯤 읽으면, 다른 분들이 좋다고 하는 곳에도, 다른 분들은 미처 관심갖지 않는 장소에도 모두 다 관심이 갈만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제주도에 대한 책을 더 읽어내고, 내년 초의 제주도 행을 준비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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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 함께 걷는 교육
이병민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11,680시간 가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버드대학의 로저 브라운에서 시작된 (중략)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어 습득을 시작한다. 그리고 만 1세를 지나고 만 2세를 지나 만 3세가 되면서 폭발적으로 언어 습득이 빨라지다가 만 4세가 되면 거의 자신의 모국어를 완성하게 된다. 이때 아이들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언어 소리에 노출되며 이 언어를 사용하는 주변 사람들과 간단없는 상호작용 및 교류를 한다. 이를 만약 아이가 만 4년 동안 깨어 있는 시간에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언어로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그 시간은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고 산출될 수 있을 것이다.


8시간×365일×4년=11,680시간


8시간은 아이가 하루 평균 깨어 있는 시간으로 언어로 소통한 시간이다. 그렇게 365일, 4년을 계산하면 11,680시간이 나온다.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 만 4세가 될 때까지 적어도 이 정도의 언어 노출을 경험한다. 이 정도의 시간이 한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자신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면,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자신의 추가적인 언어로 만드는 데 적어도 이 정도의 노출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237~238쪽)


11,680시간 정도가 지나면, 아이들은 모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11,680시간,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요?


11,680시간은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생각해보면 시간의 양을 실감할 수 있다. 만약 하루 8시간의 영어 노출을 4시간으로 줄인다면, 11,680시간을 채우는 데 8년이 필요하다. 이 4시간을 2시간으로 줄인다면, 11,680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16년이 필요하다. 다시 2시간을 하루 1시간으로 줄이면 같은 시간을 채우는데 32년이 걸린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적어도 하루에 1시간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어를 사용하고 듣고 말해도 11,680시간을 채우는 데 무려 32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엄청난 기간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이만큼 엄청난 양의 언어에 노출되는 것이다. (239쪽) 


월화수목금토일, 매일매일 쉬지 않고 네 시간 씩,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된다면, 아마도 8년 정도면 영어를 모국어처럼은 아니겠지만, 모국어와 유사하게 사용할 정도는 되겠군요. 


그런데 저자는 단순한 언어 환경에의 노출이 영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배우려면 아이는 인간세계에 태어나서 실제로 말을 하는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즉 인간의 언어 세계에 살아야 하며 아이의 주변에 언어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런데 이런 언어 환경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어울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TV, 카세트테이프, CD-ROM, 비디오만 듣고 본다고 말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하는 인간과 접촉하고 교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서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언어 습득도 정상적이지 않다. 인간은 부모와 형제, 그리고 주변 또래들과의 소통과 어울림, 놀이를 통한 상호교류를 통해 말을 배운다. (130쪽) 


그렇게 말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청각장애인이었다. 그 아이는 태어나서 3년 6개월이 될 때까지 TV만 보면서 생활했다. 물론 부모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정상적인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언어 입력을 받지 못했다. 이 아이의 언어 발달은 정상적이었을까? 불행히도 정상적 언어 발달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서 어른이나 또래 아이들과 6개월 정도 어울리게 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유사한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였다. 아이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은 오빠와 달리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여줄까? 동생은 정상적이었다. 이유는 바로 오빠 때문이다. 오빠와 접촉하고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아이는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여주었다. (130~131쪽) 



내부그룹, 외부그룹, 확장그룹


과연 우리나라는 부모, 형제, 그리고 주변 또래들과의 소통과 어울림, 놀이를 통한 상호교류를 해 나가면서 영어라는 언어를 습득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자는 카츠루라는 학자의 영어권 분류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카츠루에 의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크게 세 개 권역, 즉,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내부그룹과,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외부그룹, 그리고 그렇지 않은 확장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확장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지도 않고 있고,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의 경험도 없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내부그룹도, 외부그룹도 아닙니다. 그런데 확장그룹에 속한 여타의 나라들처럼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아닙니다. 확장그룹에 속하는 국가 중에서, 어떤 나라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핀란드 등을, 모국어를 가지고 있으면서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 경험도 없는데도 영어를 더 잘 사용하는 국가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확장그룹 중에서 영어를 잘 사용하는 위의 국가들은 주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인구 규모가 중소 규모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경제적인 필요상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환경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의외로 다민족 국가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여러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추가적으로 배우기에 크게 거부감이 없는 환경이라는 말이죠. 저자는 국어로 플레이시어(네덜란드어의 변종)와 프랑스어, 그리고 독일어를 배우는 벨기에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영어를 하나 더 배우는 것은 필요를 자극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그들의 경제적 필요를 위해서 영어를 배우기도 한다고 봅니다. 영어권 영화의 경우, 중소 규모 국가에서는 자국민의 시청을 위해 굳이 영어를 사용한 영화를 더빙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합니다. 그냥 영어로 방송하던지, 혹은 자막 처리를 하던지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말이지요. 우리나라처럼 인구 5천만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면, 마치 스페인처럼, 굳이 영어를 배우지 않더라도 생활하는데 크게 어려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만한 여러가지 경제성이 충족되지만, 핀란드 같은 나라는 5백만의 전체 인구보다 더 많은 6백만의 한해 관광객을 맞이하다보면 영어라는 언어가 그렇게 무시할만한 규모는 아니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영어를 통해 세계화/국제화에 더 가까와져야 할텐데, 우리나라도 중소규모 국가들처럼 영어가 일상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모국어 혹은 제2국어로 사용하는 내부그룹이나 외부그룹의 경우, 우리 생각처럼 영어에 목매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퀘벡 주의 경우에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영어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를 제2국어로 사용하는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케냐, 우간다 같은 나라들이 영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고 있지도 않습니다. 국제화/세계화라는 키워드가, 수출을 주로 하는 무역국가인 우리나라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이 영어를 모든 국민이 잘 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자가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대한 욕망, 엘리트를 향한 욕망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도, 영어를 사용할만한 여건이 만만찮은데도 영어를 향한 욕망이 넘실대고 있는 것일까요?


세계적으로 영어의 내부그룹을 제외하면 여기저기서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은 영어는 소수 엘리트들의 언어라는 점이다. 영어가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외부그룹인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필리핀이나 인도를 비롯해서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백 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지만 그 나라 대학생들이 영어를 더 잘 하려고 얼마나 무진 애를 쓰는지 모른다. 영어가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는 이런 나라에서도 영어를 둘러싼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어가 엘리트들의 언어이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욕망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원어민들이 대량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되고 그들이 전체 인구의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 그들과 우리가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전체 또는 대다수 한국인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이중언어로 사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인류의 언어 접촉이나 교육의 역사에서 볼 때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117쪽) 


저자의 진단은, 영어에 대한 욕망이 결국 엘리트를 위한 욕망이 투사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실제로 영어로 대화하거나 영어를 사용한(118쪽)' 경험을 가지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렇게 영어를 향한 욕망이 넘실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입니다. 


실은 그렇습니다. 저만해도, 영어로 대화한 경험은 손에 꼽을 지경입니다. 학교에서나 영어로 대화할 기회가 있었지, 특별하게 비즈니스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어로 말하고 들을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얼마 사용하지도 않을 영어를, 온 나라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배우려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질문을 "내가 오늘 이것을 꼭 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주제가 있으세요?"라고 바꾸면 "우리 애가 영어를 굉장히 잘했으면 좋겠다. 그 노하우를 듣고 싶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온다. 나는 다시 묻는다.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자녀가 영어를 얼마만큼 잘했으면 좋겠는지, 영어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누가 한 번 말씀해주세요."

"자유로운 의사소통……."

"자유로운 의사소통! 좋은 얘기예요. 그런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라는 게 도대체 구체적으로 뭘 얘기하는 거에요?"

"외국인하고 만났을 때, 영어를 써야 할 때, 그 때 자유롭게……."

"영어를 써야 할 때가 어떤 상황이에요? 해외여행 가서 면세점 가서 물건 살 때?"

"뭐든지……."

"뭐든지!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네요. 예를 들어서 유엔 같은 데서 연설을 할 수도 있고, 미국 CBS 방송국 기자나 ABC 방송국 기자하고 한국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인터뷰도 하고, 그런 걸 잘할 수 있는 정도, 그런 거에요?"

"상황이 되면……."

그렇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일반적인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영어에 대한 기대치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모국어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다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겠다는 것은 이중언어를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의 영어에 대한 기대치는 우리 사회가 이중언어 사회로 가야 함을 의미한다. (111~112쪽)


언제 어느 때나 필요한 순간에 영어로 프리 토킹을 하는 것이 영어 교육의 목적이다, 라는 이야기를, 결국 저자는 '이중언어 사회'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영어를 항상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나라인데, 1년에 한 시간도 영어를 말할 기회를 애써서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가지지 않을 수 있는 나라에 살면서, 영어로 프리 토킹을 언제 어느 때나 필요한 순간에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가 영어도 모국어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말 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앞에서도 인용한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사례를, 저자는 책의 다른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다. 어떤 아이가 영어 교육용 CD-ROM을 가지고 놀았다. 게임, 이야기,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유아용 영어 CD-ROM이었다. 아이가 이것을 한참 가지고 놀더니 엄마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Follow me'가 뭔지 알아?" 엄마가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었따. "그래. 그 뜻이 뭐야?"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응, '이리 와 봐. 내가 뭐 보여줄게'야." 엄마는 아이에게 CD-ROM을 보여주면 뭔가 영어를 많이 배우겠지 하는 욕심에 그것을 가지고 놀게 했는데, 아이가 2시간짜리 영어 교육용 CD-ROM에서 익힌 영어 표현은 "Follow me."였다. 그리고 그 뜻을 "이리 와 봐. 내가 뭐 보여줄게."로 이해했다. 엄마는 아이가 뭘 보고 그렇게 말했는지 궁금했다. Follow me라니, 그 뜻은 원래 "나를 따라와."라는 말인데 보여주긴 뭘 보여준다는 것인가?

유아를 위한 영어 CD-ROM에는 분명 follow me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 밖에도 수많은 영어 표현이 있었다. 그런데 왜 아이는 그 표현만 배웠을까? CD-ROM 속 상황은 이랬다. 컴퓨터 화면에 애니메이션으로 남자아이가 등장하고, 그 아이가 거북이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Follow me."라고 말하면서 어디론가 간다. 그 장면과 follow me 표현이 아마도 기막히게 잘 조합이 되어 아이에게 이해가 되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것이 그 아이가 2시간 정도의 유아용 영어 CD-ROM을 수없이 가지고 놀면서 익힌 영어 표현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그 표현 외엔 거의 배운 것이 없다. 그 CD-Rom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어 표현은 그 아이에게 무의미한 자연의 소리, 즉 의미와 상황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단순한 소리에 다름없었다. (152쪽) 


단순하게 오랜 시간 영어 환경에 노출한다고 해서 영어 활용 능력이 늘지 않는다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호 교류 속에서 영어 환경에 노출되도록 해야하고, 그러려면, 우리나라도 이중언어 사회로 가야만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능숙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엘리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충족이 되겠지요. 


그래서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 - 속칭,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저자는 그 표현이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일컫고 있습니다 - 부터 영어를 향한 욕망은 넘실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자연스러운 영어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영어를 조금 더 잘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를 수 있겠지요. 



어마어마한 영어 사교육, 그러나 그 성공 여부는


그러나 그 성공 여부도 실은 불투명합니다. 저자는 소위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와 어린아이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원어민 강사: What day is it today?

아이들: Sunny.

원어민 강사: No, what day is it today? What day is it today?

아이들: It's Tuesday.

원어민 강사: Sun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uursday, Friday, Saturday.

원어민 강사와 아이들:  Sun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uursday, Friday, Saturday. (167~168쪽)


저자는 이런 형태의 상호 교류가 '영어 수업이지, 일상의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 환경이 아니(168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수백만원을 들여서 이렇게 영어를 투입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은 인위적이고, 따라서 영어가 학습되는 형태로 아이들에게 투입되며,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 환경에서는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영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덧붙여볼까 합니다. 제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영어 강사 선생님은, EBS에 출강하시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시고 석사 과정까지 이수하셨던, 국내에서 동시 통역사로 활동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한 학기 내내 영어로 수업을 하셨는데 - 죽을 뻔 했네요 - 제일 마지막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한국어로 - 그래서 제가 알아듣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죠 - 해주셨습니다. 남편이 미국 유학 갔을 때, 자신도 따라갔었는데, 한국에서 동시 통역도 했고 학위도 있어서 영어에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미국에 가서는 한동안 바깥에를 나가지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바깥에 나가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매일매일 집에서 TV만 보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석 달 쯤 지나니 현지의 영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해서 조금씩 활동하기 시작하셨다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맞추어진 영어입니다. 항상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 조금 덜 빠르게 말하죠. 마치 우리가 외국인들하고 한국어로 소통할 때 조금 천천히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위의 예시처럼 배운 어린이들이, 조금 더 낫게 영어 사용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영어는 아닙니다. 그것은, 영어 학습 환경 속에서 잘 훈련된 것일 뿐. 수학으로 말하면, 유형 문제는 잘 풀지만, 응용 문제는 잘 풀 수 없는 그런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일이 다 풀린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G20 정상회의를 준비한 이창용 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G20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해외 유학을 다녀왔거나 해외에서 직업을 가진 민간인을 채용했는데, 정부 일이라는게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당연한 말이다. 말만 유창하다고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리 문화,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 행정 경험,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런 바탕이 없이 말만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07쪽)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할 것입니까. 벌써부터 일주일에 사흘, 닷새씩, 영어 '학습'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내 연구실에 두 명의 학생이 찾아왔다. 한 학생은 중학생이고 다른 학생은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네 살 때 엄마와 함께 미국에 가서 로스앤젤레스에서 1년, 그리고 워싱턴 D.C. 근교에서 1년 정도 유치원을 다녔다. 중학교 2학년인 다른 아이는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도 없었고,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을 다닌 경험도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 학생은 그 시절의 기억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그 학생이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그 학생은 항상 "엄마가 그랬어요."라는 식으로 말했다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쯤에 그는 한국에 돌아왔고, 돌아온 이후에 영어는 다른 아이들처럼 배웠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그렇게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깊이 공부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한편 중학교 2학년 학생은 국내에서 영어를 배운 경험만 갖고 있었다. 조기에 영어를 배운 경험도 없었다.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약간의 영어 사교육을 받았고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영어에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현재 그 두 학생의 영어 능력이 궁금하여 영어로 몇 분씩 인터뷰를 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중학교 2학년 아이의 영어 능력이 어린 시절 초등학교 입학 전에 미국에서 2~3년 살면서 미국 유치원을 다닌 아이보다 훨씬 나았다. 이는 충분히 설명이 되고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175쪽) 


영어의 투입 시기가 빠를 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영어를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영어를 잘 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또 다른 주장입니다. 차라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휘를 배우는 것은 오히려 지적으로 훨씬 성숙한 어른들이 잘 배우고, 문장의 구조나 형식에 대한 이해나 습득도 아주 나이 어린 어린이들보다 인지적으로 성숙한 어린이가 더 잘 배운다. 발음은 어릴수록 낫다는 결과가 있지만, 그것도 언제가 결정적 시기인지 명확하지 않다. 즉, 말을 배울 수 있는 것은 한 시기가 아니라 여러 시기가 있고 그런 시기도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민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이다. (145쪽)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 위해 다양한 근거로 책의 3분의 1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어를 배우는 데 나이는 수많은 여러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영어를 배우는 데 교육 시간, 노출, 나이, 동기, 언어 습득 재능, 모국어, 다국어 사회 환경 등 수많은 변수가 있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영어 습득에 있어 '나이'보다 노출의 양이나 시간과 같은 변수가 더 중요하다 때문에 만약 우리 아이가 영어 원어민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하루 빨리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 아이가 평생 영어로 먹고살고, 미국에 가서 대통령은 못 되지만 주지사라도 한번 하고 싶다면, 하루라도 빨리 미국행 비행기를 태워 보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잊고 철저하게 미국인이 되는 것만이 길이다.  (201쪽)


정말 미국인이 되라는 이야기이겠습니까.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기 위한 욕망은, 결국 영어권 '확장그룹'에 속하는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제아무리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이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 확신이기도 합니다. 



결론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일곱 가지 대안을 마련하면서, 공교육에서의 역할과 그 속에서의 교사의 자율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경험과 제 주변의 경험 이야기를 하면서 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 사전의 표제어 옆에 있는 발음기호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학교 영어 시간에, 새로운 단원을 시작할 때는 항상 샤프를 들고 긴장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본문을 읽어주시면, 저는 샤프로 선생님의 발음을 본문 밑에 한글로 적느라 바빴습니다. 선생님이 'I have some bread'라고 읽으시면 저는 그 밑에 '아이 해브 썸 브래드'라고 적는 식으로 말이죠. 왜냐하면... 그렇게 적어두어야 나중에 본문을 읽으라고 저를 시키면 저도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have' 옆에 있는 '[hӕv]'가 뭔지 몰라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여름방학 때, 동네에 있는 한 달에 3만 5천원짜리 영어 학원에서 처음으로 발음기호가 뭔지, S+V 가 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영어 '학습'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였기 때문에 항상 영어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니, 모의고사에 교과서 외 지문이 나오는 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독해 스킬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되니 - 혼자 서점에 가서 독해책을 하나 샀습니다. '리딩 튜터'라는 교재가 처음 나왔을 때, 가장 기초인 1권을 샀습니다. 독서실에 앉아서, 지문을 한 번 읽고 문제를 푼 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지문과 풀 수 없는 문제에 절망하면서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를 체크하였습니다. 거의 다 모르는 단어들이었지만 별도의 학습장에 꼼꼼히 적고 사전을 찾아가면서 뜻을 찾아 적고 외워 보았습니다. 그런 후에 다시 지문을 읽고 외운 단어를 지문의 문맥 속에서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모르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체크하고는 다음 지문으로 넘어갔습니다. 한 예닐곱줄 되는 지문을 보는데 30분 이상이 걸리더군요. 하루에 세 개씩의 지문을 보았는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1달쯤 지나, 100여개의 지문이 있던 1권을 끝낼 때가 가까와오니, 지문 세 개를 보는데 두 시간이 걸리던 것이, 삼십 분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단어도, 독해 스킬도 향상된 셈이죠. 내친 김에 1권을 마치고 2권을, 2권을 마치고 3권을 보았습니다. 최상 난이도인 3권을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결국 고등학교 1학년 11월부터 1월까지 그 석 달 동안의 제 공부가, 고 3때 수능을 보고 대학별 본고사 영어 시험을 보는 디딤돌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대학 선배 한 사람이, 군대를 다녀와서는 토익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고시 준비를 해야하나, 취업 준비를 해야하나 갈등하다가 그냥 군대나 가자 그러면서 군대를 갔는데, 갔다 와서는 고시 쪽은 접고 취업을 준비해야겠다면서 토익 학원을 등록하더군요. 3학년 1학기 여름부터 준비했는데, 그 전에는 토익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하니까 8개월 뒤에는 비로소 900점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계속 토익 시험 점수를 높여가다가 취업에 성공해서, 지금은 좋은 회사 잘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들었네요. 교사 월급보다는 뭐... 세 배 쯤 더 받는...? (쿨럭)


자녀의 영어 수준이 원어민 수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면, 결국 영어 학습의 목표는 수능과 취직이겠지요. 그것을 위해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붇는 것보다,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영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어릴 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 특히 정서적인 부분 -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도울 수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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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4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리야헌처크 2017-12-24 17:53   좋아요 0 | URL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