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기행 - 어느 인문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올레, 돌챙이, 바람의 풍경들
주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본문에는 쓰지 않았으나, 제주도 자체가 거대한 테마파크의 섬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역사'라는 홉스봄의 표현처럼, '만들어진 섬'이 된 것입니다. 수많은 상징과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가공되어 진실한 역사인 양 우리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4쪽) 


국내의 이곳 저곳을 다닐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가족들과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탓도 있겠고, 어릴 적부터 궁금하던 곳을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은 욕망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인상적이었던 곳은 부산, 그리고 군산이었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시간이 흘러갔던 흔적을 마치 슬라이드처럼 한 몸에 담고 있는 도시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산은 옛날이 현재와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부산은 옛날 위에 지금을 조금씩 덧쌓아 올린 곳이라는 생각을 했고, 군산은 옛날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실망했던 도시는 전주였습니다. 옛날을 덮어쓴 현대, 그러나 그 욕망은 옛것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 [제주기행]을 쓴 저자가, '제주'를 포착한 것 이상으로, 전주라는 도시는 '만들어진 옛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주를 조금 더 알고, 포장된 전주가 아닌, 숨겨진 전주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기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도시의 외피가 아닌, 속내를 관통할 수 있는 안내서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명소와 맛집을 알려주는 여행기는 많지만, 그 뒤에 숨겨진 그 땅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기행]은 제주도라는 섬을 인문학적으로 포착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는 흔히 변경에 남아 있다. 중앙에서 성립한 문화가 변경으로 번져나가게 되지만, 그 중앙은 변화가 빠른 까닭에 잃어버리기도 잘 하는 법. 변경은 변화가 느리기 때문에...... (하략) (356쪽) 


제주도를 포착하면서 저자가 취한 하나의 표상은 '변경'이라는 이미지입니다. 폐주 - 광해군 - 가 귀양오던 곳,  쿠빌라이 칸의 거대한 목장 구실을 하던 곳. 제주도는 그 너머가 망망대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과 절연한 곳으로 인식되었고, 세상을 넘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 출륙금지령 - 변경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가장 먼저 맞닿는 곳이 되었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세상의 끝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제주도는, 그래서 여러 부분에서 아직도 오롯이 옛 모습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모두 잊혀진 것, 아직도 제주도는 제주 방언을 가지고 있고, 곶과 자왈이 만나 이룬 숲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에 몸 담그는 잠수 - 잠녀, 혹은 해녀라고 하는 - 가 아직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신들이 자신의 위용을 뽐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상처도 많습니다. 아직 채 70년도 지나지 않은 제주 4.3 항쟁의 아픔은, 공식적으로 1만 4032명의 희생자를 낸 채 아직도 제주도 안에서 삭혀지고 있습니다. 1901년의 이재수의 난은 옛날 그 영화대로 - 1999년. 박광수 감독. 이정재, 심은하 주연의.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본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납니다 - 새것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일본에서 동남아시아를 지나는 해상루트의 전초 기지로써 변경으로써가 아닌 시작점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는 중앙 관력에서 바라보는 변경에 위치한 페리퍼리(periphery)로서의 제주도, 다른 하나는 일본 등 외국과의 최선단 접촉점에 서 있는 프론티어로서의 제주도이다. 페리퍼리와 프론티어라는 상반된 제주도의 역사적 위상은 중앙의 일방적 지배 구조, 이에 대처하는 제주도민의 주체적 삶의 방식이 빚어낸 역사적 유산으로, 오늘날에도 그 유산은 갈등을 안은 채 지속되고 있다. (허남린, 책에서 재인용, 416쪽) 


고려 중기 이전에는 '탐라국'으로써 독립적인 위치를 영위하였던 시절부터, 무수한 신화로 남아있는 제주도의 주체적 위상까지. 이 책에서는 제주 땅이 지닌 독자적이며 독립적인 삶과 문화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주도는 단지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가지고 있는 섬일까요? 볼거리, 즐길거리, 누릴거리 많은 휴양섬일까요? 제주도에도 그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고, 그 사람들이 삶을 살아내면서 문화를 남겼고, 흔적을 남겼고, 신화를 품었으며, 현재에 이르렀음을 알지 못한 채, 그 섬에 다다른다면, 우리는 그 섬의 지나온 세월과의 교감없이, 잘 꾸며진 테마파크에서 꾸며진 감격과 감동을 가득 안은 채, 그 뒤에 숨겨진 세월의 감격과 감동은 절대 알수도, 느낄 겨를도 없이, 아마 잘 꾸며진 일상에서 잘 꾸며진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것에 그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땅을 조망하고,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탐색하는 책으로써, 이 책 [제주기행]은 만만치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하고, 내년 초 쯤 제주도를 가려고 계획하고 있는 제게는 제주도라는 장소에 대한 프롤로그 격의 역할을 충분히 한 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처음 세 장에는 '바람, 돌, 여자'라는 삼다도로써의 제주도를 조망하고 있고, 4장과 5장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귤과 해녀 - 잠수 혹은 잠녀 - 를 제주도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6장에서 8장은 곶자왈, 테우리, 화산을 통해 제주도가 가진 자연환경의 특징 - 화산섬 - 과 함께 변경으로써의 위치로 인해 누리게 된 말목장의 역사 및 고스란히 보존된 원시림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9장에는 궨당 - 괸당 - 문화, 10장에는 먹거리 문화를 통한 제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11장부터 15장까지는 제주도의 역사를 신화부터 현재까지 분절하여 짚어내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맛집과 명소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이 책을 한 번 쯤 읽으면, 다른 분들이 좋다고 하는 곳에도, 다른 분들은 미처 관심갖지 않는 장소에도 모두 다 관심이 갈만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제주도에 대한 책을 더 읽어내고, 내년 초의 제주도 행을 준비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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