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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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저자는 전우용 씨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신,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저자는 이전부터 여러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역사학자답게 역사적 사실 속에서 반추하는 트윗으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저자의 트윗을 다른 경로로 - 저는 트위터를 하지 않습니다 - 접할 기회를 가지면서, 저자의 탁월한 통찰에 고개를 끄덕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담긴 책을 여러가지로 검색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저자가 누구인지 안 후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1'


이런 종류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여행에 관심을 가지면서였습니다. 


어릴적 부모님따라 다녀왔던 동해안 해수욕장이나, 교회 수련회 등의 특수 목적의 장소가 아닌,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해 봤던 것은, 결혼하기 전에는 2박 3일의 부산행이 유일한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은, 학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했던 고학생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었기에, 스물 다섯 살의 초여름 어느날, 동기 녀석이 살고 있던 부산에 잠시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딱히 여행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우선 면허가 없었고, 따라서 차도 없었습니다. 면허를 따고 나니, 학원 강사 신세라 어디로 갈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고, 둘째 낳고 세 번째 대학 생활을 하고, 돈을 벌고 하다보니, 역시나 여행을 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불현듯 부산에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의 석가탄신일 날, 당일치기로 부산행을 감행했었지요. 아침 여덟시에 출발해서, 첫 기착지인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이 오후 네 시. 자정 무렵까지 단지 여덟 시간 동안 부산 공기를 맡기 위해서 왕복 열 여섯 시간의 운전을 결행했던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쁜, 그런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에 대한 의문이 든 것은, 아마도 재작년 전주 행이 직접적인 이유였다고 할 수 있겠고, 더 나아가서는 서울의 인사동, 삼청동 등지에서 느꼈던 의아함이 그 단초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어번의 인사동 행은, 왜 여기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고, 삼청동 행은, 이 곳이 왜 이런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당일로 다녀온 전주 행은, 그런 제 의문을 확실한 무언가로 만드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오리엔탈리즘 학습은 토속적인 역사, 죽은 역사는 즐거이 상품화하면서도 아직껏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는 아프고 창피하다는 이유로 감추고 숨기는 태도를 깊이 심어주었다.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대장간은 후딱 복원하면서, 난지도 역사를 살아서 증언해온 구조물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허물어버리는 이율배반의 시대가 21세기형 '역사의 시대'요 '문화의 시대'였다. (중략)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한다. (10~11쪽)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한 여행일 뿐, 그 소비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는 그런 여행, 그것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한동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작년 여름을 통째로 건너 뛰는 - 세째의 출산도 있었지만 - 까닭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은, 소비하는 여행 이상을 누릴 수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만 명소가 어디이고 맛집이 어디인지, 어떤 숙소에서 어떻게 소비하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이 지내온 삶을, 그 곳이 가지고 있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찾는 곳은 누군가 살던 곳이고, 무언가를 하던 곳이며, 그러면서 생각과 생각이 맞닥뜨리던 그런 곳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여행이 주는 감동은 소비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여정을 보낼 수 있다면, 아마 다음에도 같은 장소를 한 번 더 찾을 수 있겠지요. 그 곳의 삶과 관계 속에, 그 곳을 지내온 나의 삶과 관계도 녹아들었기에, 조금 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그 곳은, 나를 한 번 더 당겨들게 되겠지요. 조금 벅차더라도, 이런 책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부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2.


이 책은, 도시로써의 서울, 농촌과 대비되는 장소의 의미를 가진 서울이 지내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가 '도시사'라는 학문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도시의 역사에 대한 책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마침 저자가 책 중간에 '도시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내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분명하여졌습니다. 그런 서울의 역사 중에서도 특히, 이 책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 그러나 근대로의 이행이 일제에 의해 좌절되어가던 시기인 '대한제국'기와, 1950년부터 1960년까지, 이행되지 못한 근대의 신기루를 뒤로 한 채, 탈근대 - 가져본 적 없는 시기라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 의 몸부림이 가시화되던 시기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바라보는 서울은 '결핍의 공간'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시(또는 서울)는 없는 게 없이 풍족한 공간이고 농촌(또는 시골)은 여러 가지가 부족한 빈곤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물질의 총량에 대해서만 통용될 수 있을 뿐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질에 관한 한, 도시는 오히려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결핍의 공간'이다. (중략) 앞에서 중세 도시의 크기를 규정한 여러 요인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 경제적으로 가치 없는 요소들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생산력적, 기술적 토대를 만들지 못했던 것도 도시 확장을 제약한 중요 배경이었다. (272~273쪽) 


도시는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소비 지향적인 공간이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견해입니다. 따라서 도시는 '생산 자체보다는 그 생산물을 분배하고 관리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128쪽)' 인류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이며, 도시는 그러한 인류의 모습을 '지표 위에 도로와 필지, 그 위에 우뚝 솟은 건조물'이라는 '관계망이 그려낸 그림(128쪽)'입니다. 풍부하나 빈약한, 넘치는 듯 하나 메마른, 그런 공간 중에서도, 특히 서울이라는 곳은 극장 하나, 공연장 하나 없는, 유교적 사상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영된 그런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도시 서울, '그 안의 사람들과 밖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24쪽)'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는, 그러나 실은 '농촌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루이스 멈퍼드, 24~25쪽에서 재인용)'하는 외로운 공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의식이 사라진 도시(57쪽)'을 살면서 '공간과 장소를 공유해 본 경험을 갖지 못한 채(56쪽)', 2~3m앞의 간판들에 시야를 뺏겨버려 멀리 내다볼 수 없는 그런 근시안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경박성(188~189쪽)'을 한껏 드러내며 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도 못한 채, 혹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면서 '서울과 시골 사이에 시간적 장벽을 쌓아가는(101쪽)' 그런 삶을 자랑스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와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자리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서울 사람이 아주 낙향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중략) 이제 부의 원천은 더 이상 농토에 국한되지 않았다. (중략) 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이니 하여 학연으로 혼맥으로 끼리끼리 뭉친 서울의 대관 나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못 하는 일이 벗었고 안 하는 짓이 없었다. 특히 시골의 인재를 빨아올리는 빨판 구실을 해왔던 과거제가 심각하게 망가졌다. (중략) 17세기 중반부터 서울 문체와 시골 문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의 경화 자제들은 시골 유생들이 배우기 어려운 새로운 문체를 배웠고, 출제자들은 그에 합당한 문제를 냈다. (중략) 경화거족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급제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었고(후략). (100~101쪽) 


요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획일적인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된 서울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온 시골의 문화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디를 가도, 거기와 같은. 풍부한 듯 보이지만, 지나치게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마도 서울의 특징이라기보다는, '21세기의 문화(7쪽)'가 서울을 외피로 하여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1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으니, 21세기의 문화가 분명할 것입니다. 



3. 


이 책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견해를 곁들여,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서울에 대해, 압구정과 석파정의 서울에 대해, 양란 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서울에 대해,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에 대해, 5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서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장소로써 주목하기보다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삶에 관련된 서울을 주목하여 보는 편입니다. 특히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고종 황제입니다. 고종에 대한 역사적인 견해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대원군의 것보다 더 많을 듯 싶습니다. 보통 고종이라면, 대원군 혹은 민비 - 명성황후라고도 하는 - 와의 연계 속에서 고찰하는 시선도 많지만, 몇 년 전에 읽었던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같은 책에서 드러나는 조금은 긍정적인 시각도 일부 존재합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고종에 대해서, 나약하고 의존적인 군주였다기보다는,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확고한 통치 철학을 가진 군주로써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설계한 사람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181쪽)' 탓에 고종의 의도는 그 방향을 곧 잃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긴 하지만 말이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아마도 천지가 개벽하는 것같은 급변의 시대에, 고종이 군주로서 자신의 의지를 오롯이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 


이 책은, 서울의 '역사'를 '도시'의 역사 속에서, 농촌 - 시골 - 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하고 있는 그런 책입니다. 장소적으로는, 경운궁(덕수궁), 종로, 청계천, 남대문시장 등을 언급하지만, 어디를 가기 위해서 읽어야하는 답사기 격의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울을 사는 이로써, 서울에 대해서, 근대적 의미의 도시에 대해서, 거대한 위력을 휘두르는 메가시티로써의 서울에 대해서 조금은 관심있게 바라보고 싶은 분들이 읽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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