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도로당은 사람임을 판단하기 위해, 품성도 지성도 감성도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통행료를 지불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사람임을 판단한다. 물신주의라고?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품성과 지성과 감성을 제멋대로 평가하여 저지를 수 있는 판단의 삿됨을 막는 것이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어떤 품성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지성 넘치며 감성으로 가득찼는지는 중요치 않은 것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본연을 잃고 그저 도구로써 사람을 바라보게 될 뿐이다.

그래서 유료도로당은 길을 걷는 목적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값에 맞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면,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렇기에 신을 잃은 불쌍한 이들도 동편 한 닢에 그들의 노정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사모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유료 도로당의 사람을 보는 관점이었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모든 요소가 무시되고 있었다. 여행자의 품성과 지성과 감성 따위는 유료 도로당에게 조금도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여행자가 통행료를 지불하느냐 지불하지 않느냐의 이분법만이 존재했다. 사람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일 수 있는 그 장면에서, 그러나 사모는 동시에 정반대의 의미도 발견했다. 여행자의 외모와 종족과 고향같은, 어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람다움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들 또한 유료 도로당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보좌관은 말했다. ‘저 두억시니들은 통행료 안 냈다.‘
사모는 그 말을 뒤집어 보았다. ‘통행료를 내면 저들은 여행자다. - P114

"여행자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 유료 도로당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우리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보좌관은 천천히 케이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케이건 드라카. 저 두억시니들은 목적없이 쏟아져 아무렇게나흐르는 흙탕물이 아니오. 당신들을 쫓는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소.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목적을 찾아 길을 걷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위해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오. 그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소. 우리는 그들의 목적이나 꿈을 평가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의지를 통행료로 확인하오.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우리가 준비한 길을 걸을 수 없소. 그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거요. 이건 말이오, 케이건, 완전히 저 두억시니들과 우리의 문제요. 저 두억시니들이 당신들을 쫓는다고해서 마치 크게 배려해 준다는 듯이 그냥 통과시키느니 말라느니 말할 권리가 당신네들에겐 없소. 그것은 참견이오. 그것도 오만한."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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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1 (양장) - 심장을 적출하는 나가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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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가 연재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작가는 서른의 나이에 이런 이야기를 쉴 새 없어 쏟아 내었었다. 이제 하이텔도 없어지고, 작가의 나이도 쉰이나 되었지만, 이야기의 스케일과 짜임새는 지금 다시 읽어도 정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이영도 작가의 글은 끝까지 읽어야 그 규모가 한 눈에 들어온다. 벌써 너댓번의 독서라 이야기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터, 그래서인지 작가가 벌려두는 갈등과 사건들이 이후에 어떻게 합치되고 분기할지를 떠올리며 더더욱 소름돋곤 한다.

왕이 없던 시대, 왕을 소망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첫 권을 장식한다. 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벌이는 자들에 맞서 신을 잃은 이들의 (섣부른) 슬픔과 분노가 권의 끝을 달군다.

작가의 표현을 빌어 1권의 감상을 마무리 해 본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지만 소망은 사라지기는 할지언정 절대로 충족되지는 않는다. 불이 언제나 더 많은 땔감을 소망하지만 땔감을 공급한다고 해서 불이 충족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땔감이 공급되면 불은 더욱 커진다. 소망 또한 마찬가지다.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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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오해하지만 소망은 사라지기는 할지언정 절대로 충족되지는 않는다. 불이 언제나 더 많은 땔감을 소망하지만 땔감을 공급한다고 해서 불이 충족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땔감이 공급되면 불은 더욱 커진다. 소망 또한 마찬가지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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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춤채’에 대한 서술을 보며 이영도 작가에
대한 놀라움을 가진다. 이 설정이 오마주가 아니라면, 온도를 ‘볼’ 수 있는 나가라는 이종족에 대해서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구상하여 펼쳐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환타지는, 주제를 펼쳐내기 위해 인간이 아닌 종족을, 인간과는 다른 형상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이영도 작가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마치 엘프 같은 종족인 나가를 만들어 내면서, 엘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면서 온도를 보는 그 나가들에게 춤채를 쥐어주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가는 이야기 속의 존재이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다. 이 모든 ‘설정’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보이지 않고 겪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이 오류 없이 맞아떨어지는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 환타지가 주는 매력 중 가장 큰 것은, 창조이다.

인간들이 등불이나 촛불로써 낮의 일부를 밤 속으로 끌어들였을 때 그 낮에 의해 추방된 밤의 일부는 자신의 자리를 잃고 방
황했다. 어떤 도깨비가 그 방황하던 밤을 낮 속으로 끌어들였다.
밤을 얻음으로써 그는 밤의 다섯 딸인 혼란, 매혹, 감금, 은닉,
꿈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도깨비는 그들의 도움으로 거성을 쌓았다.

도깨비다운 품위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것이 재미있을 거라 여겼다.

혼란은 성의 내부를 결정했고 매혹은 성의 외형을 결정했다.
감금은 무수한 미궁과 미로와 함정을 결정했고 은닉은 비밀통로와 비밀문, 암호를 결정했다. 그러나 다섯째 딸이 성의 건축에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밤의 막내딸인 꿈은 다른 네 언니와는 전혀 다르다. 꿈은 가장 밤다운 것이지만 동시에 밤과는 정반대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밤은 감추고 숨기고 덮지만 꿈은 드러내고 발견하고 열어보이며, 그러한꿈의 성질은 공교롭게도 낮을 닮아 있다. 그러나 밝은 낮에는 볼수 없고 암흑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꿈의 성질은, 별과 마찬가지로, 그 본성이 밤에 속함을 증명한다. 이 복잡한 성질의 막내딸은 언니들과 함께 성의 건축에 개입했지만 그 개입이 어떤 성질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꿈의 개입을 차치하더라도 즈믄누리는 충분히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 - P40

나가들은 춤을 출 때 손에 독특한 물품을 들곤 하는데, 긴 쇠막대에 나무 손잡이가 달린 이 물건을 인간이 본다면 아마도 인두라고 생각할 것이다. 춤채라고 불리는 이 물건은 실제로 인두에서 파생된 것이며 인두처럼 화로에 의해 달궈진다. 하지만 그 쓰임새에 있어서 춤채는 인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가 무용수들은 달궈진 춤채를 들고 춤을 춘다. 춤채가 없을 경우 횃불 등의 물건을 쓰기도 하지만 횃불의 경우엔 그 온도가 너무 높아서 효과가 신통찮다. 달궈진 쇠막대, 무용수의 손에 쥐어진 두 개의 찬란한 광선이 가장 적합하다. 무용수는 그 광선들로 공기를 희롱하고 전율시키고 광포하게 날뛰게 만든다. 따라서 나가는, 그리고 오로지 나가만이, 무용수 주위에 일어나는 형언키 어려운 색채의 향연을 볼 수 있다. - P106

화리트는 짐짓 기운차게 닐렀다.
<자, 심장을 뽑으러 갑시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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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이렇게 한다
낸시 프레이.더글러스 피셔 지음, 강정임 옮김, 이찬승 감수 / 교육을바꾸는사람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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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피드백을 피드 포워드란 용어를 통해 재개념화하고 있는 책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학생들의 배움에 대해 교사가 하는 반응 혹은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교사가 제공하는 배움거리들을 적절하게 유목화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의 차이가 있어 - 예컨대 성취기준 수립 주체 - 이를 고려해야 하는 측면이 있고, 실례로 제시하는 것이 이미 우리 교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훌륭한 사례로 소개하는 것보다 우리 교실이 더 잘하고 있는 것도 있어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교실 배움에 있어 교사의 역할을 확장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고 있고, 이를 위해 나름대로의 프레임워크를 제시하고 있어, 교실에서의 완전한 배움을 위해 고민하는 교사가 이를 참고하여 교육과정 운영 계획을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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