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 ‘춤채’에 대한 서술을 보며 이영도 작가에
대한 놀라움을 가진다. 이 설정이 오마주가 아니라면, 온도를 ‘볼’ 수 있는 나가라는 이종족에 대해서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구상하여 펼쳐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환타지는, 주제를 펼쳐내기 위해 인간이 아닌 종족을, 인간과는 다른 형상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이영도 작가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마치 엘프 같은 종족인 나가를 만들어 내면서, 엘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면서 온도를 보는 그 나가들에게 춤채를 쥐어주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가는 이야기 속의 존재이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다. 이 모든 ‘설정’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보이지 않고 겪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이 오류 없이 맞아떨어지는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 환타지가 주는 매력 중 가장 큰 것은, 창조이다.

인간들이 등불이나 촛불로써 낮의 일부를 밤 속으로 끌어들였을 때 그 낮에 의해 추방된 밤의 일부는 자신의 자리를 잃고 방
황했다. 어떤 도깨비가 그 방황하던 밤을 낮 속으로 끌어들였다.
밤을 얻음으로써 그는 밤의 다섯 딸인 혼란, 매혹, 감금, 은닉,
꿈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도깨비는 그들의 도움으로 거성을 쌓았다.

도깨비다운 품위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것이 재미있을 거라 여겼다.

혼란은 성의 내부를 결정했고 매혹은 성의 외형을 결정했다.
감금은 무수한 미궁과 미로와 함정을 결정했고 은닉은 비밀통로와 비밀문, 암호를 결정했다. 그러나 다섯째 딸이 성의 건축에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밤의 막내딸인 꿈은 다른 네 언니와는 전혀 다르다. 꿈은 가장 밤다운 것이지만 동시에 밤과는 정반대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밤은 감추고 숨기고 덮지만 꿈은 드러내고 발견하고 열어보이며, 그러한꿈의 성질은 공교롭게도 낮을 닮아 있다. 그러나 밝은 낮에는 볼수 없고 암흑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꿈의 성질은, 별과 마찬가지로, 그 본성이 밤에 속함을 증명한다. 이 복잡한 성질의 막내딸은 언니들과 함께 성의 건축에 개입했지만 그 개입이 어떤 성질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꿈의 개입을 차치하더라도 즈믄누리는 충분히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 - P40

나가들은 춤을 출 때 손에 독특한 물품을 들곤 하는데, 긴 쇠막대에 나무 손잡이가 달린 이 물건을 인간이 본다면 아마도 인두라고 생각할 것이다. 춤채라고 불리는 이 물건은 실제로 인두에서 파생된 것이며 인두처럼 화로에 의해 달궈진다. 하지만 그 쓰임새에 있어서 춤채는 인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가 무용수들은 달궈진 춤채를 들고 춤을 춘다. 춤채가 없을 경우 횃불 등의 물건을 쓰기도 하지만 횃불의 경우엔 그 온도가 너무 높아서 효과가 신통찮다. 달궈진 쇠막대, 무용수의 손에 쥐어진 두 개의 찬란한 광선이 가장 적합하다. 무용수는 그 광선들로 공기를 희롱하고 전율시키고 광포하게 날뛰게 만든다. 따라서 나가는, 그리고 오로지 나가만이, 무용수 주위에 일어나는 형언키 어려운 색채의 향연을 볼 수 있다. - P106

화리트는 짐짓 기운차게 닐렀다.
<자, 심장을 뽑으러 갑시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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