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동네 비상벨 브로콜리숲 동시집 7
박승우 지음, 유루시아 그림 / 브로콜리숲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들이 쓴 동시집을 세 편째 읽었다.

앞선 두 편의 동시집은, 시가 가진 서정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시는 서정, 소설은 서사, 라는 편견은, 그러나 초보자들에게는 꽤나 유용한 구분이자 잣대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앞서 읽은 동시집들은, 시의 서정보다는 시의 운율에 조금 더 집착하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운율 중에서도 특히 압운. 세로드립을 사용한 시집도 있었고.

물론, 아이들은 그런 말장난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어른들 중에서도 세로드립 같은 것은 꽤나 재미나게 받아들이곤 한다. 요즘 힙한 힙합들은 라임을 잘 구사하여 독특한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는 아름다웠으면 한다.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세 가지를 이야기 할 수 있다. 비유, 심상, 운율.

*

[나무동네 비상벨] 동시집은, 그런 면에서, 앞서 읽었던 두 편의 동시집 마냥 아쉽다.

우선 대부분의 시가 짧다. 뭔가 머릿속과 마음 속으로 그림을 그리기에는 짧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삽화가 있다. 삽화는, 시를 그대로 혹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는 삽화와는 다른 이미지를 독자에게 그릴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독자의 머릿속과 마음 속에 그림이 그려져야, 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텐데... 이 시집의 시들은, 시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학교 수업을 일컫자면 동기 유발 같은. 시 한 편을 읽고, 자연의 삶, 환경오염, 미세먼지 등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시 자체를 두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시집은 초등학교 고학년의 글밥은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초등학생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반드시 시의 서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

이 동시집은, 하상욱 시인의 순화된 느낌이 난다. 길이는 하상욱 시인의 시들과 같으면서, 비유는 그것보다는 조금 덜한. 즉, 촌철살인의 느낌은 덜하여 읽기에 부담없으면서도, 너무 짧아 충분히 시에 빠져들 여지가 적다.

운율감이 느껴지지 않는 아쉬움도 있다. 산문을 그저 양적으로 압축한 느낌이 드는 시들도 있다. 동시집을 많이 읽지 않은 편이라, 일개독자의 수준 탓일 수도 있다.

*

마음에 들었던 시 한 편을 꺼내면, 이 시를 읽은 일개독자 본인의 수준을 고려하며 위 평가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함박눈

하늘들판 추수는
겨울에 하나 보다

함박함박 쏟아져
소복소복 쌓이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생들이 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까지는 문학의 형식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교사는 문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학의 담론과 문학 바깥 세상에서의 담론을 구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학을 읽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가장 빈번히 저지르는 실수는, 시나 소설이 말하는 것만 찾으려 하고, 그것을 말하는 방식을 제쳐둔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독서는 작품의 "문학성"을 제쳐두는 것입니다. 그 글이 네브래스카 주의 토양 침식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시나 희곡, 소설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문학 작품은 보고서일 뿐 아니라 수사적인 글입니다. 그것은 특히 주의 깊은 독서를 요구하지요. 어조와 분위기, 속도, 장르, 구문, 문법, 문장 구성, 리듬, 서사 구조, 구두점, 다의성 실은 "형식" 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한 특히 주의 깊은 독서를 요구합니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 김창규×박상준의 손바닥 SF와 교양
김창규.박상준 지음 / 에디토리얼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기대는, SF 전문가들이 나와서 SF의 기저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와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SF 매니아들이 미래 사회를 엽편으로 엮어낸 후 이것이 기반하는 현재의 소식을 덧붙인 여러 편의 글모음집이다.

그래도 실린 짧은 이야기들은 생각 이상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고, 미래 사회를 앞둔 상황에서 철학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생각해 볼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다만, 기대했던 것이 ‘지식’인지라 그 부분의 빈약함은 못내 아쉽다. 그렇다보니 상상력을 풀어낼 수 있는 힘은 많이 떨어지는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학이란 무엇인가 -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과학의 핵심
피터 앳킨스 지음, 전병옥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화학 시간이 생각났다. 공유결합이니 이온결합이니, 금속결합이니 하는 이야기들. 그 때는 딱딱하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그저 배웠던 듯 싶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개념들이 쉽게, 명확하게 이해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화학 수준의 지식이 있으면, 그 수준에서 다뤄지는 많은 화학 용어나 개념이 기초적인 수준에서 적정한 분량과 적절한 예시와 함께 소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여년 전에 배웠던 화학 과목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선 느낌이다.

책은 짧고 간단하지만, 화학적 개념과, 화학 학문의 대략의 역사, 야기한 문제점 및 과제와 함께 앞으로의 전망까지 알차게 들어가 있어, 언제라도 생각날 때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 무엇보다, 책 읽기가 쉽게 잘 번역되어 - 혹은 변역하기 쉽게 잘 쓴 덕에 - 휴지기 없이 쭈욱 읽어갈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클리어 2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책이 재미있어서 주말 새벽을 반납하며 단숨에 읽어갔다.

전작인 [블랙아웃]과 연결되는 책인 바, [블랙아웃] 두 권과 [올클리어] 두 권 도합 네 권은 하나의 시리즈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 따라서 [올클리어] 부터 읽으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없다. 책을 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책은 타임머신 패러독스의 중핵을 뚫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 그게 꽤나 성공적이라는 생각 - 어쨌든, 결말을 보기 위해 책을 동틀녘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으니 - 을 하게 된다.

이야기는 줄곧, 과거의 문을 두드리는 옥스포드의 역사학자들이 과연 역사의 복잡계에 흠집을 내는지, 역사의 복잡계는 이를 만회(혹은, 복원)하기 위해 자정작용(!)을 펼치는 것인지에 대한 대립 사이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물리학적 기술로는 타임머신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이론상으로는 과거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작은 소망 - 사실 인간이 빛의 속도를 넘어선다면 시간을 거스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선형적 사고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며, 세상은 선형적이고 단일한 시간계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다 - 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타임머신 담론은 계속 인간 상상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 이야기도 그런 상상력의 나래를 이루는 타임머신 패러독스에 대한 것이며, 미래에서 찾아든 역사학자들이 과거의 인물들에게 미치는 소소한 영향이, 마치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복잡계를 뒤흔들고 붕괴할 수 있는가를 바탕으로 짜임새 있게 네 권의 이야기 - 약 2천 페이지 - 를 구성하고 있다.

*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블랙아웃]과 [올클리어]의 결말은, 타임머신 패러독스 중 주목할만한 영화인 [12 몽키즈]의 이야기 구조와 동일한 방식의 결말을 취하고 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찾아든 주인공의 행동 때문에 그 미래가 나왔다는 순환 역설. 이 책도 결국은 과거로 찾아든 역사학자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미래가 지금처럼 흘러가게 되었다는 순환 역설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결국, 미래를 알고 있기에, 과거가 결정되어 버린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과거로부터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서 시간의 물줄기가 미래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는 이영도의 [퓨처 워커]의 이야기 구조와 같다. 시간이 과거로 거슬러 흐르지 않는 바람에,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퓨처 워커]의 패러독스도 참 마음에 들었더랬는데... 어쨌든.

코니 윌리스는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를 통하여, SF적 상상력에 기반한, 독자로 하여금 홀딱 빠져들어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블랙아웃]과 [올클리어] 시리즈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시공간적 시점에 따라 이야기를 들쑥날쑥하게 제시하면서 이야기의 모든 얼개를 순차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다. 덕택에 복잡하기도 하고, 정신도 없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이야기가 한 줄기로 연결되면서 궁금함을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만... 이상하게도, 코니 윌리스의 문장에는 집중이 좀 어렵다. 번역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문장을 좀 복잡하고 정신없이 쓰는 바람에, 간혹 무언가를 놓친게 있는 것 같은 찝찝함이 남기도 한다. 그래도 코니 윌리스의 이야기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일개독자의 결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