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철학 대 철학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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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간 소식을 [시사인]이던가 [한겨레21]이던가 - 아니면 둘 다 이던가 - 에서 서평을 통해 만나보고 나서는, 학교 도서관에서 잡고 한 3분의 1정도를 읽었더랬습니다. 마침 한창 바쁘던 4학년 1학기 시기인터라 책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하다가, 요즘 잉여 생활 와중에 다시 책을 잡아 한 달여 정도 걸려 다 읽어 내었습니다. 



900쪽이 살짝 넘는 책의 분량, 그리고 자그마치 112명 (플러스 알파)의 동/서양 철학자들이 맞부닥치는 책의 구성, 그리고 의외로 읽기에 나쁘지 않은 저자의 필력 등이 잘 어우러져서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저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러셀이 [서양철학사]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기 이전만 해도, 보통 '철학사'라고 하면 서양 철학사를 일컬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두 번째 대학교 시절에 '법철학회'라는 학회에 몸담으면서 [철학과 굴뚝 청소부]라던지, 아니면 [철학 A반을 위한 philasophy] 혹은 [소피의 세계]를 읽으면서 가졌던 편견은 당연히, '철학사는 서양 철학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사실 편견이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동양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만한 학문적 고찰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인터라, 동양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여지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철학사는 서양 철학사다, 라는 인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 [철학VS철학 (이하, VS)]의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전체 56장의 챕터 중에서 동양 철학의 사유 부분에 전체의 절반인 28장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퇴계 선생과 고봉 선생의 논쟁부터,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백가쟁명 시대의 다양한 주장들을 아우르는 저자의 폭넓음은 경이로운바 있습니다. 여담으로, 저와 고작 7살 차이밖에 나질 않는데, 폭넓게 인용하면서 다양하게 주장하는 것은 저자의 그동안의 학문적 고민과 성찰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VS]와 같은 책에서 독자가 가장 주의하여야 할 점은, 저자의 관점이 강력하게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책의 독서에서, 저자와의 적절한 거리감을 두면서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장 속에서 독자가 나름대로의 생각을 열매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할 독서의 목적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책은, 타겟으로 삼는 독자군이 애매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원전을 상당부분 저자의 주관적 관점을 통해 압축한 후에 그것을 통해 저자의 주장을 강화하는 요소로 삼는 이러한 책에서, 철학에 입문하는 독자라면 원전의 텍스트는 놓친 채 저자의 해석을 마치 원전의 그것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이런 책이 넓으나 깊지 않아 독서가 형식적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책은 저같은 애매한 - 철학에 관심은 있으나 깊이 있게 아는 것은 아닌데다가, 계열성을 구축하지도 못해 사유를 조각모음해야 할 필요가 있는 - 독자에게 적절한 부분이 있는 책입니다. 게다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 위해 원전을 함부로 인용한다면 자칫 역사적 사유가 아닌, 저자의 사유를 받아들여 치환시켜 버릴 우려도 다분합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애매한 독자인 제가 보기에, 인용이 적절했고, 저자가 욕심부리지 않고 가장 일반적인 철학자의 주장(?!)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졌다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두 철학자의 주요한 주장을 하나의 챕터 속에서 VS 형식으로 대립시키면서 두 철학자의 주장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상당부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철학자들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저자는 철학자들의 텍스트 중에서 아주 극소수의 일부 - 한 문단 정도? 많으면 두 문단 정도 - 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용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으며, 텍스트가 어려울 경우에는 적절한 해석을 통해 철학자의 주장을 설명하고 있기까지 하므로 철학자들의 다양한 생각에 더 가까와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절반을 동양 철학의 사유를 설명하고, 서양 철학의 사유와 연게성을 부여함으로써, 서로간의 연결을 통한 이해의 확장을 돕고 있으며, 가깝지만 먼 유학이나 불교, 선종 또는 교종의 주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연결짓고 있는 것에서 동양적 사유를 풍성하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VS]를 읽은 후에 펑유란의 [중국 철학사]를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책의 부록에는 주요한 철학자와 철학적 개념어 사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또한 유의미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책의 말미의 부록을 읽으면서 책 전체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참 어려운 학문임에 분명합니다. 철학은 내가 나를 만나는 과정에 대한 사유이며, 내가 남을 대하는 양상을 통한 사유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깊고도 넓은 철학적 사유를 하나하나의 원전을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는터라, 우리는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 정리된 사유를 만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강신주 교수의 이 책 [VS]는 독특한 시도를 통해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자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하였고, 그러한 마주침을 통해 넓이 있는 사유를 이끌어 내었으며, 깊이 있는 사유를 욕망하도록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원전을 접하면서, 나름대로의 철학적 사유를 구축한 연후에, 저자의 이 책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며,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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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찐따 2014-12-2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 잘 읽었습니다!
철학에서 ˝애매하다˝라는 말을 저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
어떤 술어가 적용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누는 기준이 부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참고: http://textexture.tistory.com/21

하리야헌처크 2014-12-28 23: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방문 감사합니다. (꾸벅)

알려주신 부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D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꾸벅)
 
경제 119 -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유종일 교수의 정책 대안
유종일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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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유종일 교수는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소장 경제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한국경제 새판짜기]라고 하는 책의 인터뷰이 interviewee 로 참여하기도 했던 학자이고, [시사인] 같은 시사주간지에도 종종 불려나왔던(!) 이력이 있는 분입니다. 

특히, 저자는 이번 책을 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 - 대통령 당선 다음 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유종일 교수에게 '정치는 내가 할테니, 정책은  유교수가 하시오'라고 말하셨지만, 결국 경제관료와 대기업의 입장에 서셨다는 - 를 밝히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경제적 스탠스가 제 것과는 다른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종일 교수가 밝힌 일화 부분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책 제목인 [경제 119]는 두 가지의 함의를 담고 있는 제목입니다. 

우선 우리나라 경제가 응급실로 향해야 할 만큼의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119에 전화해야 한다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빨강색으로 책 제목을 달고, 빨강색 폰트를 잔뜩 달아둔 책 표지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함의는, 헌법 제 119조, 특히 2항에 관련된 '경제 민주화' 항목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1987년의 대통령 직선제 쟁취 투쟁의 결과물로 나온 것입니다. 정치학자들은 '87년 체제'라고 일컫는 이 9차 개정 헌법은, 5년 단임제의 대통령 직선제 통치 체제를 규정하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총 다섯 명의 대통령을 선출한 헌법입니다. 작금에 이르러, 5년 단임제라고 하는 통치 체제에 대한 문제점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바, 특히 박정희 독재 체제 및, 군부 독재 질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단임제 체제가,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자치제 선거 시기와 묘하게 틀어지면서, 5년 임기의 대통령제를 약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다양한 채널에서 표현되고 있고, 이런 문제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참여정부 말기에 '원포인트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으로 하고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년도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헌법 개정에 대한 주장이 더더욱 고조되고 있는 바, 특히 5년 단임제가 가진 더 큰 의미의 문제 - 대중과의 불통 및 그것의 원인이 되는 강력한 대통령 권한이 야기하는 문제 - 로 인해 '2013년 체제'로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의견 및 그를 위한 개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의도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4년 중임으로의 개헌이 또다른 독재 정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자칫하면 8년간 상대방에게 정권을 맡기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제 정당간의 개헌 합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아울러, 경제학자 중 일군은 또다른 이유에서 개헌을 반대하는데, 그것은 바로 헌법 제 119조가 헌법 조문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소위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고 하는 헌법 제119조 특히 2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법조문에서 '할 수 있다'는 아주 오묘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하는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반면,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하지 않아도 좋다로도 해석이 가능한 것이죠. 작위와 부작위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어구이기 때문에, '한다'로 끝이 나는 경우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 조항은, 지금까지 하는 쪽으로는 해석된 바가 별로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럼에도,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이 조항을 꼭 없애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이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이 조항에 근거한 다양한 경제법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정부가 등장하거나, 정당이 제1당이 된다거나 하는 경우를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이 조항은 그냥 읽어도 (시장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무시무시합니다. 혹여 여러가지 불법이나 탈법을 사용하여 부당한 부를 축적한 이들이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부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분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내용이기도 합니다. 

유종일 교수는, 이러한 헌법 제119조를 근간으로 하여, 나름대로 진보적이며 실제적인 경제 정책을 내어놓고 싶어한 듯 하고, 특히 민주당의 - 현재는 통합민주당 - '헌법 제 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여러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 구상한 진보적 정책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헌법 제119조가 언급하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에 대한 저자의 정의와 함께, 그에 따른 12가지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책 대안들이 구호나 선언에서 머물지 않도록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러나, 분량이 상당히 작습니다. 8,000원의 책값과 123쪽의 분량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책입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스테팔 에셀이 쓴 '분노하라' 처럼 소책자를 지향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용은 팜플릿 같은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목차는 명료하나, 그 내용은 세세하지 않습니다. 가령, 저자는 경제민주화의 정책 대안 중에 '중소기업 보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현실의 경제 이슈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원청과 하도급 업체의 힘의 불균형에 대한 약간의 진보적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정도의 간결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학문적인 고찰은 없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에 어느 정도의 진보적인 관점이 없는 독자라면, 현상과 그에 대한 대안만 있을 뿐, 현상에 대한 분석은 없는 이 책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와 같이 경제를 상식 수준에서만 알고 있는 이가, 특히 진보적인 관점에서 경제 지식을 넓히고 싶을 때, 팜플릿처럼 간단하게 열어보고 조금 더 깊이 있는 경제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길잡이 노릇을 해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책에서 주목하게 되었던 부분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정규직 대비 110%의 임금을 지급한다'라는 부분 같은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책이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언급되었다는 기시감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비정규직이 지니고 있는 고용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동일노동가치 동일임금을 관철하는 것에 더 나아가, 비정규직 고용 불안에 대한 고용안정수당 명목으로 임금의 10%를 더 지급해야 한다는 것은, 사용자 측에서는 펄쩍 뛰고 나가 자빠질 주장이지만, 반드시 사회적으로 한 번은 공론화할만한 가치가 있는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보적 경제 이론 및 정책이 가지는 어려움이라면, 제 얇은 지식으로는,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이 가장 뼈아프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분배를 중시할 수 밖에 없는 진보적 경제 이론 및 정책은, 그것을 '명목'으로 걸고는 서구의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대립해왔던 동구권의 실패가, 분배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나쁜 선례처럼 되어버린 것이 어려움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이 분배를 명목으로 하여 자본주의 경제 질서보다 더 큰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였으며, 그것을 민주적으로 해결할만한 정치 체제도, 역량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을 볼 때, 그 귀결이 몰락임은 자명하고 또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분배가 몰락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마타도어임이 또한 당연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및 정책이 야기한 양극화의 문제는 어찌보면 이 또한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동구권 공산주의와 분배 시스템은 분리하여 고찰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유종일 교수가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적인 세 축으로 공정경쟁, 참여경쟁, 분배정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는 결국 경제 주체들 또한 민주적 절차에 의한 참여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경제 문제의 해결이 어떤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주체들이 민주적인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절차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 민주화를 통해, 저자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하의 양극화를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을 위해 무엇보다도 경제 주체의 한 축인 시민이 민주적 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당히 얇은 책이기에,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고, 또한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저자의 언급이 있었던 것도 아닐 뿐더러, 책값도 분량대비 그다지 저렴하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시사인북]에서 나온 - [시사인]의 자매회사죠 - 책이기에, 또한 진보적 경제 정책에 대한 소장 학자의 대안을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의 독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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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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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씨는 환타지 읽기 Reading Fantasy 홈페이지 http://readingfantasy.pe.kr 의 초청연재공간에 단편을 게재해주시기도 하셨던 작가입니다. 이름이 낯이 익은터라, [타워]가 나왔을 때 눈여겨 봐두었다가, 재작년에 기회가 있어 사두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된 책입니다.


아. [타워]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은 '빈스토크' 만으로도 100점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빈스토크'는 이 책에 등장하는 국가명입니다. 647층짜리 빌딩국가, 4층에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국경이 있는 나라. 국가의 개념을 실체적인 3차원적 개념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빈스토크'. 국경분쟁은 빌딩 출입구에서 시작되고, 아래로부터 드나들수는 있지만 앞뒤좌우나 위로는 드나들 수 없는 빈스토크라는 국가.


이 길지 않은 한 권의 책 속에는, 빈스토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다루어지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건과 사고들 속에서 작중인물들이 겪는 여러가지 일과 고민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겪고 있는 여러가지 사건과 사고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2차원적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3차원적 공간의 문제의 발생을 기화로 그 흘러가는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더 풍성한 사고의 확장을 돕는다는 생각을 글을 읽으면서 하게 됩니다. 



이 책은 옴니버스 식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터라, 각각의 스토리를 가진 여섯 편의 글과 권말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들의 대립 속에서 한 공무원이 자신의 이해를 넓혀가면서도 공직에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로 구성된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이었습니다. 


사실 이 책 [타워] 같은 책들이 가진 목적 - 효용? - 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독자에게, 곁가지들이 없는 가공된 현실을 통해, 실제로 발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곁가지들을 다 쳐낸 채 몸통만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소통의 끈을 만든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환상 - 상상, 비현실, 설정 - 에 근거한 세계가 의도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맞부닥치는 사건에 대한 본질적 문제점을,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곁가지들을 다 도려낸 채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령, [반지의 제왕(군주?)] 같은 책에서는, 인간의 선을 향한 마음과 악을 열망하는 마음이 순수하게 부닥치고 갈등하는 장면을 다루기 위해, 현실에서 빌보와 프로도를 빼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빌보와 프로도가 우리와 같은 세계에 발디디고 있다면, 그들이 겪는 선과 악의 본질적 투쟁은 아마도 여러가지 비본질적인 사건과 사고들에 의해 비틀려지고 가려져 버려서 작가의 발제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선과 악의 다양한 투쟁의 양상은 현실 세계를 발딛고 살아가는 작중 인물로써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가령 남여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사랑과 전쟁' 같은 프로그램도 충분히 그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것을 배제한, 선과 악의 격렬하고 미묘한 투쟁의 양상을 그리기 위해서 작가가 그 주변의 모든 것을 배제하고 통제하기를 원한다면, 이야기의 세계는 다른 곳이어야 합니다.


[타워]가 그 힘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준 단편은 바로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이라고 생각한 바, 현실과 잇대어 있는 환상 속에서, 현실과 묘하게 겹쳐보이는 상황을 통해, 현실 이상의 의미를 독자로 하여금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컨대, 수평운송노조와 수직운송조합의 묘한 작명부터 그 단체들이 추구하는 이상(!)까지,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과 잇대어 있으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상황을 통해서, 현실을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조금 더 넓은 것까지 아우르며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작중화자의 오묘한 공무원 식 어투(응?) 및 사고방식(응??)과 잘 어울려 단번에 읽어낼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른 작품으로,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의 경우에 이성적으로는, 지나친 낭만이며, 현대 사회와 이성에 대한 작가의 낙관이 조금 오버한 경향이 있다, 라고 생각하였지만, 감성적으로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독자인 제 마음 속의 어떤 부분과 공명하여 내는 울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고로 실종된 민소를 찾기 위해, 차가울 것 같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함으로써, 따뜻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가가 기대하는 미래 시대의 유토피아를 위한 하나의 지향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여, 그 무모함에 이성적으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도, 그 호기로움에 감성적으로 공명하게 되는 단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단편들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딱히 제가 이해하고 공명할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을 생각해야할지 발견할 수 없고, 무엇을 느껴야할지 받을 수 없는, 그런 나머지 네 편의 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은, 다른 '빈스토크' 이야기들을 기대해보게 됩니다. '빈스토크'는,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100점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하였습니다. 비록 '빈스토크'를 통한 이야기들에 크게 공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작품 전체를 통해 '우수함'의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다만 이 작품 [타워]가 '빈스토크' 이야기의 첫 권이라면, 이후에 작가가 제 2, 제 3의 빈스토크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비추어내고, 조금 더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면, 이 책 [타워]는 조금 더 의미있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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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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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중인 장하준 교수는, 제도주의학파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경제학에는 문외한인지라,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대략 이해한 바로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이로써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경구로 유명한 아담 스미스를 꼽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 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큰 틀을 제공하게 된 시대적 배경으로는 산업혁명을 꼽아야 합니다. 산업혁명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생산혁명입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하나의 물품을 생산하던 시대가, 도시 사회의 발달과 함께 여러 사람의 힘을 합하여 하나의 물품을 생산하는 시대로 변모하고, 이제 여러 사람의 힘보다 훨씬 강력한 힘인 증기 기관의 힘을 생산에 도입하는 시대로 변모함으로써 비로소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생산 댓가로 발생하는 이윤의 분배에 대한 이론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범주가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경제학에 대한 논의는 주로, 생산과 소비에 대한 자연스런 균형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장에 대한 신뢰로 귀결되는 듯 합니다. 초과생산은 가격을 낮추고, 초과소비는 가격을 높이다가, 비로소 그 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생산과 소비의 장인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다는 것이 초기 경제학 이론의 근간이라고 이해했고, 그것이 고전파의 논리이기도 하다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 즉 수요와 공급의 자연스러운 조절은 큰 시련을 맞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1929년의 대공황입니다. 이 대공황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기인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요/공급과는 상관 없이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비약적으로 늘어난 농/공산품의 생산량이 전쟁이 끝난 후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채 과소비 풍조를 조장하다가 거품이 빵! 터져버린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너져버린 균형에 대해서, 존 메이나드 케인즈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자들의 대안은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국가 재정의 본격적인 투입과 그를 위한 증세 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금기는 1970년대 말쯤에 국가의 방만한 재정 운용과 함께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국가가 재정을 운용하게 될 때, 과연 공무원들이 경제학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어서 재정 운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비판과 함께, 눈먼 돈이다(!)라는 인식 때문에 국가가 효율적으로 공공 재정을 집행할 리가 없으므로, 민영화시켜 시장의 효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이 득세하게 됩니다. 이것이 흔히 신자유주의 이론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해가 하찮아 정리가 조악하지만 대략의 경제학의 흐름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고, 혹여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수정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저렇게 흘러가는 경제학의 흐름에 큰 반향을 주었지만, 제가 잘 몰라서 일단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몸담고 있는 제도주의학파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를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단지 그것 만으로는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고, 그러한 개입은 '제도'로써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학파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케인즈 주의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케인즈 주의도 아니기에, 재벌 체제에 대해 비판적이나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2008년의 금융위기 심화 이후에는 조금 더 비판적으로 돌아선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의 경제 발전에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큰 공헌을 하였기에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위하여 국가의 개입을 용인해야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으며, 선진국들이 무역협정을 통하여 개발도상국들의 국가 보조를 통제하는 행위는 [사다리 걷어차기]라 하여 맹비난하고 있는 학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장하준 교수의 학문적 경향 때문에, 1990년대 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초빙 때,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일색인 서울대학교 교수들 사이에서 비토되어 서울대 교수로 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은 다른 이야기들도 많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대략의 흐름을 잡는데는 유용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는 실제로, 저자의 전작인 [나쁜 사마리아인들]보다는 그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다른 사레를 제시함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부분에 대한 파훼를 시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맺는말에서는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책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전작들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해서 기시감이 꽤나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같은 경우, 장하준 교수의 책 중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장하준, 정승일 공저)] 을 읽었고, 저자의 책 중 가장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되는 [국가의 역할]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위의 책들과 상당부분 겹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는 것이 쉬우면서도 집중하는데 힘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Thing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같은 파트는, 실제로 다양한 주장과 논지가 얽힐 수 있고, 조금은 다양한 시각에서 소개될 수 있는데, 책의 구조상 대립적인 논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현상에 대한 시야가 제약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의 이러한 대립적 구조는, 저자의 의도라면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명제들에 대해 선명한 반대항을 구축하여 그에 대한 파훼를 시도하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지만, 우선 저자가 제시한 반대항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게 다가올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Thing 이외에도, 몇몇 대립되는 명제들은 제 3, 제 4의 명제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열린 논의가 필요해 보이는 상황에서 너무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로 미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ing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된다, 같은 경우, 주주가치 극대화라고 하는 유한주식회사의 절대선 격인 명제에 대한 명확한 반대 논리를 제시하여, 주주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재 기업 질서를 되돌아보게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 측면 등의 여러 생각해 볼만한 좋은 논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주가치 극대화 원칙이란, 유한 책임 원칙의 주식회사 시스템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많은 자본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는 이들의 리스크를 고려하는 원칙이라 할 수 있으며, 점점 자본의 비중이 노동의 비중보다 커지는 현 상황에선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러한 주주가치 극대화 원칙이 기업의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업이 망하더라도 자본은 결코 손해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럴 헤저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는 듯 하며, 따라서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는 측면의 문제를 문제제기 하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Thing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같은 경우, 기업의 파산법과 시민 개인에 대한 복지 제도를 병렬항으로 취급함으로써, 큰 정부에 대한 필요성을 신자유주의적 논지를 차용하여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더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장하준 교수의 책은 출간된 순서를 역으로 읽어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선 책들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상당하고, 책 자체도 에세이처럼 가볍게 쓰여져서 몰입도도 떨어진데다가, 무엇보다 저자는 심혈을 기울였을 반대항에 대한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것처렴 느껴지고, 각각의 명제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저는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의무감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의 책은, 한 권 정도 읽어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만약에, 저처럼 경제학에 대해 초보자이면서, 아직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23가지]는 추천할 수 있는 책입니다. 에세이 식이라면, 깊이는 옅은 대신, 접근성에서는 좋은 점이 있을 테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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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예의, 의리, 이런 단어들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몸담고 있는 여러 모임/단체들에서 일어나는 사람 사이의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일들을 겪다보면서, 무례하고 의리없는 다양한 행태들에, 저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라는 굳은 다짐을 여러 차례 하다보니 그런가봅니다. 

그런 다짐을 한 여러 일 중에, 지난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을 '버리고' 간 사람들이 보여준 일도 한 몫 합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이건 아니다, 라고 의심할 수도 있지만, 일백가지 일 중에 하나만 틀어져도 관계를 끊어버리는 그런 모양은... 도무지 그렇게 해서는 부부끼리도 헤어질 수 밖에 없잖은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매정한 모양새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이해타산을 따져가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거리를 둔 이들... 저는 그런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때 봉하마을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유시민 대표를 굉장히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유시민 대표 같이 자기 주관 강한 이가, 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주장에 다 동의하지 않았겠지만, 일단 대통령께서 결정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접어두고 대통령 편을 든 것... 한미FTA나 대연정, 이라크파병 등, 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여러 일들에 대해서, 유시민 대표는 보통의 헛똑똑이들과는 달리 자신의 의견을 접고 대통령의 의견에 자신을 맞춥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굳은 심지를 가진 모습에, 한결같이 노무현 대통령의 곁을 지켜온, 마치 사시사철 푸르고 올곧은 소나무의 풍모를 지녔다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 문재인 실장이, 이번에 자서전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만, 자신의 인생 역정에,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엮어 한 권의 책을 펴낸 것이 이 책, [문재인의 운명] 입니다.  

책은 시종 담담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첫머리로 하여,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 자신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생각,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인생 중에서 함께 보내온 시절, 참여정부의 여러 정책에 대한, 약간은 의식적인 평가를 담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의 기대어린 전망을 담아, 누가 읽어도 담담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이슈가 되었던 것은, 바로 문재인 실장의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사건들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전두환 여단장과 장세동 대대장 휘하의 공수부대에서 군생활을 한 일화부터, 경찰서 유치장에서 미결수 신세로 사법고시 합격의 기쁨을 맛본 일, 그리고 연수원 차석 졸업에 판사 임용을 받지 못한 일까지. 그러면서 부산/경남의 인권변호사로서, 사실 변호사가 국민의 인권을 편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언급을 통해 모든 변호사는 인권변호사 일 수 밖에 없다는 상식적인 이야기까지. 

자신을 드러내기 바쁘고 자신을 빛내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근간의 세태에, 묵묵하게 자신의 해야할 마땅한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온 분이, 마침내 빛이 나는 그런 일을 보면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이 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한 가지 크게 공감하는 것은, 많은 진보세력에게 지탄받아온 참여정부의 정책 중에 이라크 파병에 대한 문재인 실장의 변호였습니다.  

물론 이라크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국가경영입니다. 진보/개혁진영이 집권을 위해선 그런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70쪽)

문재인 실장은, 이라크 파병을 통해 미국의 네오콘 세력의 목소리를 낮추고 부시 정권으로 하여금 대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가져가도록 주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한 폭격 이야기도 네오콘 세력으로부터 흘러나오던 시기에, 이라크에 비전투병 3천명을 파병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를 통해 6자회담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제원조같은 것을 얻기 위한 파병이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한 파병보다는, 그래도 받아들이기 쉬운 파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진보/개혁진영이 수권진영으로서 자리매김을 하려면 조금 더 실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준비를 해야할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권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사안에 대한 로드맵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2012년, 진보/개혁진영이 집권하게 되었을 때, 그러나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집권하게 되어 강경한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을 때, 진보/개혁진영은 두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지혜를 발휘할 것입니까? 참여정부가 보여준 불가피성에 대한 냉철하고 섬세한 판단과 평가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해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문재인 실장은 정치를 하시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해보게 되었습니다. 유시민 대표의 근저 [국가란 무엇인가]나 공저 [미래의 진보]를 읽어보면, 유시민 대표가 가지고 있는 국가 통치의 기본적 방향에 대한 뚜렷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치 '출사표'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문재인 실장의 이 책은, 그런 부분이 없습니다. 당위에 대한 선언들만 있을 뿐입니다. 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문재인 실장은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자신은 선수로 뛸 용의가 없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을 정치적 타살로 몰아넣은 이들에 대한 생각은 확고한 듯 합니다. 그네들에 대하여 자신이 어떻게 맞서야할지에 대한 다짐이자 현실적 인식이, 책의 말미에 담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467쪽)

문재인 실장은, 아마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자신의 앞날을 투신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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